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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로봇 여자의 사랑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0-20
  • 조회수 769

바람이 차디 부는 날이면 그 날이 생각이난다.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추억은 난 잊을 수가 없다. 때는 바람이 차디 불던 겨울 밤 나는 애인인 두식 씨와 함께 초라한 공원을 걸어갔다. 그 공원은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와 잔디만 있는 공원이었다. 그런 공원에서 두식 씨는 나에게 뻔한 멘트를 쳤다.

"미현아, 나랑 결혼 해 주면 안될까?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네 눈에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해줄께"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피씩 났다. 진지한 모습과 다르게 눈도 내리지 않아 분위기가 촌스러운 곳에서 프로포즈를 했기 때문이다

"잘 나가는 로열 건설의 설개 디자이너면서 이런 곳에서 나에게 프로포즈 한거야?"

"실망했어?"

나는 그 말에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식하고 둔한 모습이 내가 좋아하는 두식 씨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래 우리 결혼하자."

"정말, 사랑해. 미현아."

그렇게 우리 둘은 결혼을 했다.하지만 직업 특성상 나와 그 사람은 자주 볼 수 없었다. 나는 사전 조사와 자료 조사를 위해 전국 곳곳을 다녔고 그 사람은 대기업 사람이라 해외로 자주 출장을 갔다. 하지만 우리둘의 약속이 있었으니 우리가 처음 만나 교회를 한 달에 두번 가서 기도를 올리는 것이었다. 우리의 기도는 나와 그 사람의 성공과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작은 욕심을 담았다. 우리의 기도가 하늘에 다았는지 나는 1년 뒤 올해의 극본가 상을 받았고 그로부터 1년 뒤 나는 쌍둥이 희열과 희진을 임신하게 되었다. 우리의 앞길은 장미 꽃으로 가득 찬 정원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꽃길 같았던 인생은 내가 임신 7개월 되었을 때 막을 내였다. 그 날도 평소와 같이 나는 드라마 어마이를 쓰고 있었다. 그 날 저녁 두식 씨는 돌아오겠다는 아침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다음 날 새벽,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의 내용을 듣고나서 나는 그 자리에 앉아 바다 같은 눈물을 흘렸다. 그 이유는 남편이 집으로 오는 길에 뺑소니를 당하여 오늘 발견 되었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엄마한테 울먹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어떻게 김 서방 뺑소니 당했데, 나 죽을 만큼 괴로워. 죽고 싶어!"

"미현아, 진정해. 양수는 안 터졌니?"

"응 안터졌어.나 그 사람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없어."

"미현아,살 사람은 살아야지. 네 아이들도 있으니까.아이들을 생각해."

"나 진짜 미칠 것 같아!"

"미현아, 엄마가 바로 갈께 진정하고 있어."

나는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장래식을 치르고 어느날 남편 친구였던 개발 팀의 성정표 씨가 우리 집으로 택배를 보냈다.

"이게 뭐에요?"

"제가 드리는 위로의 선물입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택배에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안경이 들어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충격이 너무 커서 안경을 쓰고 싶지 않았다. 안경을 쓰든 안 쓰든 내가 외롭고 아픈 것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쌍둥이 희열이와 희진이의 얼굴에 그 사람이 보여 아이들을 볼 때마다 죽을 만큼 아팠다. 처음에는 모성애로 아픔을 가려보려고 했지만 모성애로도 가려지지 않는 아픔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러니 시간이 지난면서 나는 웃음과 아픔, 슬픔등 감정을 잃은 로봇 여자가 되고 말았다.그래도 난 아이들에게 웃어주지는 않지만 아빠 없는 빈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 엄마는 이런 나를 보면 괴로운지 손자,손녀들만 보고 나를 무시한다. {당연히 시가들은 나와 아이들을 보면 재수 없는 년,놈들이라 말을 한다.} 엄마마저 나를 무시한 그 때 나에게 남아 있던 사람은 친구인 작곡가 서연성과 가수 지현지만 있었다. 현지와 연성이는 나를 보면 위로해 주고 같이 음악 활동을 했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아직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현지와 연성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고 있다.


 오늘 아침 나는 연성이와 현지의 전화를 받았다.

"미현아, 너 소개팅 한번 해볼래?"

"미현아,네가 성격 좋은 남자 소개 해 줄게."

소개팅을 해 준다는 전화였다. 나는 솔직히 7살 아이 둘이 있는 이런 아줌마에게 누가 관심을 갖는지 궁금하지만 그래도 소개팅에 나가기는 싫었다. 그 이유는 똑같은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구들의 말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넌 충분히 멋지고 대단한 엄마야. 하지만 아이들은 자랑스럽고 대단한 아빠를 본 적이 없어.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고 대단한 아빠를 만들어 주자. 그게 네가 감정이 다시 생기고 아이들도 좋은 기억만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이 말을 듣고 한 번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나에게는 두식 씨의 직장에서 개발팀에서 일하는 성정표 씨가 준 미래 안경을 껴 보기로 했다. 그 안경을 끼고 원하는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의 미래를 보았다. 그 안경을 쓰고나니 내 눈이 어질어질 해지고 나는 미래 속으로 뛰어들었다. 먼저 경준 씨와 함께 사는 경준 씨의 미래를 보게 되었다. 경준 씨는 희열과 희진이를 친자식처럼 대하고 재미있게 놀아주며 술, 담배를 안하는 멋진 남편이었다. 하지만 단점이 있었으니 그는 아이들 고1 가을 때 아이들과 여행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나는 이를 본 순간 경준 씨는 제외했다.


 그 다음으로 성표 씨에 대하여 보았다.  성표 씨도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친하게 지내줬다. 또한 잘나가는 사업가에 담배와 술 모두 안하는 잘난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도 단점이 있었으니 아이들 고 1 여름 때 아이들과 여행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나는 이를 본 순간 좌절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까지 이런 아픈 상처를 주기 싫었고 나 또한 다시 상처 받기 싫어 죽음이 늦게 오는 사람을 고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깨달았다. 사람은 어차피 태어나면 죽는 다는 것을 . 하지만 이제는 이 상처가 두려워 피하지 않을 것이다. 파도에 몸을 실어 내 사랑을 탈 것이다.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고 아이들을 위한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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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08-10
끼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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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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