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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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사랑
[단편소설] 사랑 도재경 장항리 유적지 학술 심포지엄을 마친 자리에서 나는 동갑내기 민 교수로부터 내키지 않는 초대를 받았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그의 별장에서 이번 심포지엄과는 별개로 비공식 학술모임을 갖자는 것이다. 명목이야 토론자로 참석하지 않은 내 의견을 경청해 보고 싶다는 얘기였지만 보나마나 그의 수집벽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유물이나 고문서 따위를 앞에 놓고 강론이나 듣다가 돌아올 게 뻔했다. 물론 개중에는 지적 욕구를 채워 주거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것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누구보다 민 교수의 기벽을 잘 아는 나로서는 그의 초대가 마냥 달갑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하반기에 예정되어 있는 교수 임용을 앞둔 상황에서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에다가 심포지엄에서 좌장을 맡은 학계 선배인 박 교수와 한때 절친했던 이준하도 참석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민 교수는 유약한 체질이긴 했지만 학창 시절부터 집념 어린 구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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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해파리와 사랑
해파리와 사랑 장대성 슬플 일인가? 인터넷에 해파리를 검색했을 때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진보다 냉채가 먼저 나오는 게 이 집 해파리는 분명 먼 바다에서 왔을 거예요 식감이 기가 막혀요 그런 리뷰 한두 개도 아닌데 너는 불쌍하게 여기는 것 같다 해파리가 심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식탁에 젓가락을 내려 두며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더는 이 쫄깃함을 즐기지 못하겠다고 해파리는 뇌도 눈도 입도 없어 생각하지 못하고 말하거나 보지도 못한대 책장에서 오래된 과학 서적을 꺼내 읽으며 너는 신중하다 미간에 주름이 흐른다 이해는 어디서 떠밀려오는 해초일까 그런데 너는 해변까지 밀려온 해파리를 밟고 으아악 소리 지른 적 있잖아? 묻고도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해파리도 사랑을 하나 거기에 적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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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나쁜 사랑
예쁘고 착한 사랑, 일그러지고 이기적인 사랑. 조금씩 맛보고 배를 채우다가 이제는 그 속으로 뛰어들려 하고 있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기로 한 것은 전부 취소한다. 머릿속에 폭죽이 터지면서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내 눈에 설연이만 보이는 마법.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은 바로 이런 거구나. 남자고 여자고 태극기도 인공기도 하나도 중요하지 않구나. 나머지는 뒤로 쑥 물러나 이 아이만 보이는 거구나. 내게 지설연이라는 사랑이 막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연이와 나는 아파트 놀이터 그네에 가 앉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감나무 잎 소리가 사락사락 정겹게 들려온다.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던 초저녁 별들이 이내 왕창 쏟아져 내릴 듯 밤하늘을 밝힌다. 우리는 발을 굴려 그네를 움직이며 흔들리는 리듬에 맞춰 이야기를 나눈다. “네가 안 가서 좋지만 넌 아줌마 혼자 보내도 괜찮겠어?” 설연이가 입을 삐죽 내밀어 보인다. 예전엔 얄밉게 보이던 그 표정이 이젠 무지무지 귀엽다.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