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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vol.244

2025년 8월호
2025년 8월호
문장웹진

소설

문장에서
만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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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025.08.01
연변에서 만나 샤넬 백을 줬을 뿐

연변에서 만나 샤넬 백을 줬을 뿐 윤보인 “뭐어? 연변이라고? 연차를 내고 거기를 가요?” 며칠 자리를 비워야 한다고 회사 대표에게 말했을 때, 옆에 있던 조 실장이 끼어들었다. “갈 수도 있지 않겠어?” “거길 왜 가요?” “으음.” 굳이 자세한 얘기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조 실장은 팔짱을 끼고 나에게 다가와서 다짜고짜 캐물었다. 내가 별말이 없자, 회사 대표인 자기 오빠를 쳐다보면서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 거기 가 본 적은 없는데, 조선족 많지? 또 뭐 있어?” “백두산 있잖아요.” 고작 동갑인 놈에게 머리를 조아려 가며 매달 월급을 챙긴 지 벌써 2년 6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그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입사 초반에는 회사에서 왕따를 당했으며, 모욕에 무시에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걸 겪었다. 원래 회사 생활이 개 같은 데다 남의 돈 받아먹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나 말고도 이런 일을 겪는 인간들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알겠어. 연차 써.” 대표가 냉담하게 말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거 얼마 만에 쉬는 거냐? 주말 끼고 이틀 연차 내면 총 4일을 쉬는 건데, 연변에 가서 종희도 만나고 양꼬치도 먹고 술도 마셔야지. 그래 봤자 먹고 노는 일뿐이었지만, 하필 종희 년이 중국에서 그것도 연변에서 조선족 남자와 결혼해서 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오빠는 그야말로 개판인 인생을 살았는데, 여동생이라도 타국에서 잘 지낸다면 멀리서 박수를 쳐 줄 수 있었다. 내 나이 마흔이 넘었고, 그동안 가까운 인간들에게 배신을 당했고 이제 정신 좀 차리고 회사를 다니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에 있는 개 두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역시 논현동 단독주택이 짱이야. 저 집구석은 얼마나 하려나?” 회사 맞은편 주택은 세월 가는 것도 모른 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할아버지를 잘 만나서 그래. 부모 말고 그 위 세대.”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었다. 나 오대길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얼마나 잘 만났는지, 돈도 많고 땅도 많아서 이거 친일파 활동을 했나, 남몰래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런 활동을 했어도 남들만 모르면 되지,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과거 할아버지가 어울렸던 사람들이 은행장, 정치인 등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었다고 했다. 어디서 정보를 얻었는지 서울의 중심가 뚝섬이며 성수, 왕십리 지역의 땅을 사들였고 할머니와 본인의 외아들, 그러니까 내 아버지에게 많은 땅을 증여했고 그 덕에 나까지 웃음꽃이 피게 되었다. 돈이라는 게 참 좋은 것이어서 어릴 적부터 걱정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었다. “너 초장 끗발 개끗발이

소설 2025.08.01
목소리들

목소리들 조시현 언제나 문은 예상치 못한 순간 열렸다. 막무가내로 파고들어 오는 목소리처럼. 무방비하게 책을 읽던 주하는 일순 얼어붙었다. 어디에도 남지 않을 목소리를 마음껏 낭비하는 그 감각에 한껏 빠져들어 있던 차였다. 신발장 옆 화장실, 왼쪽에 침대, 오른쪽에 주방이 전부인 한 뼘짜리 원룸은 현관에 서면 한눈에 전부 들어왔다. 계약 내용은 27일 하루를 온전히 비워 주는 것. 지금껏 한 번도 어긴 적 없었기에 주하는 대처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물끄러미 상대를 바라보았다. 시선에 섞인 질책의 의미를 읽은 남자가 검지로 뺨을 긁었다. “어, 죄송합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자 남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오려고 온 건 아니고. 매달 27일마다 뭘 하는 거냐고, 여자 혼자 종일 웃었다 울었다 별짓을 다 한다고 하도 그래서. 여기 방음 잘 안되거든요. 방 빌려드리는 거야 돈도 받고 어렵진 않은데 혹시나 불법적인 일은 안 되니까 확인차 온 거예요. 그래도 뭘 하는지는 알아야 하니까. 쫓겨나면 곤란하거든요. 미리 말씀 안 드린 건 저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근데 연락처도 모르고.” 하지만 남자의 눈은 안쪽을 꼼꼼하게 살폈다. 미처 감추지 못한 호기심이 묻어났다. 주하가 가져온 거라곤 책 두 권과 머그컵, 도라지청이 전부였다. 남자가 거기서 뭔가를 알아챌 것만 같아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야 불법적인 일이 맞았으니까. 주하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걸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남자가 별안간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플라스틱 카드를 내밀었다. 구재정. 인공지능융합대학원. 학번까지. 주하는 사진과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덥수룩한 갈색 곱슬머리. 멀끔한 얼굴. 무엇보다 핸드폰을 쥐고 있는 가늘고 예쁜 손가락이 눈에 띄었다. 같은 방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있는 사람. “다른 뜻 있는 거 아니고요. 저 정말 여기 살거든요. 이 이름으로 입금 주셨잖아요.” 이름은 맞지만 학생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생각을 못 했다기보단 관심이 없었다고 해야 더 맞겠지. 알고 있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인공지능융합대학원이었다니. 침묵이 이어지자 눈을 굴리던 남자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음, 일 없는 거 확인했으니까. 저는 갈게요. 계약 파기하는 거 아니죠?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정말 조심해야 하거든요. 아르바이트를 또 할 수는 없어서요.” 횡설수설하던 구재정은 머리를 박박 긁더니 재빨리 사라졌다. 약속을 어긴 건 맞지만 그걸 보니 기분이 크게 상하지는 않았다. 위아래층 목소리가 간혹 들리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방음이 안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잊고 있었다. 한 층에 세 개여야 할 집에 가벽을 세워 열한 개로 늘려 놨으니 당연한 사실인지도 몰랐다.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한 번 깨어진 감흥은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하는 다시 차를 끓였다. 굳이 도라지차. 이렇게 된 와중에도 목을 관리하고 있다니. 멍청하기는. 이제 연극을 보

소설 2025.08.01
이상한 고리

이상한 고리 김덕희 * 나. 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는 나를 생각한다. 나는··· 불빛, 등불, 전기, 스위치, 조명··· 단어들이 어지럽게 떠오른다. 천장 중앙에서 쨍한 빛을 내고 있는 저것의 이름은 등이다. 천장을 비롯해 네 벽과 바닥은 같은 색이다. 빛의 모든 파장이 모여 있는 색, 색이라는 것까진 알겠는데 아직 그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 색이다. 공기 중에는 어떤 냄새가 희미하게 맴돌고 있다. 역시 냄새라는 것만 알고 냄새의 이름은 모른다. 감각을 조금 더 예민하게 세워 본다. 벽을 뚫고 들어와 지나가는 전파들이 복잡한 소음을 만들어낸다. 단순한 구성의 파동들인데 파장과 진폭이 뒤섞여 있으니 복잡해 보인다. 삼원색, 사이언, 마젠타, 옐로우, 흰색, 백색, 화이트, 소독, 클로드헥시딘, 에틸알코올, 포르말린, 차아염소산나트륨, 초저주파, 초장파, 초단파, 극초단파···. 분출하듯 솟아나는 정보들이 모두 어디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 수많은 이름과 개념들 속에 아직 나에 관한 정보는 없다. 나는 바닥에 고정된 침상 위에 반바지만 입은 채 누워 있고 내 몸 이곳저곳에는 유선 센서들이 붙어 있다. 나에게서 어떤 정보들을 빼내려 한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알고 싶다. 나는 일어나 앉은 다음 내 이마와 관자놀이, 목과 가슴에 붙어 있는 것들을 떼어 연결된 선과 함께 침상 빈 곳에 아무렇게나 치워 놓는다. 캡슐. 눈앞에 환영 하나가 머문다. 금속성 재질의 커다란 알이다. 환영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떠올리려 애써 봐도 은빛 달걀 모양의 잔상만 허공에 떠돌 뿐이다. 갑자기 왼쪽 벽 전체가 투명해지는 바람에 캡슐은 잠시 잊기로 한다. 나와 아주 닮은 존재들이 벽 저편에서 나를 향해 앉아 있다. 세 줄짜리 계단식 공간에 다섯 명씩 배치되어 있고 저마다 자기 앞의 기판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입력하거나 확인하는 중이다. 저 멀리 뒤쪽 벽에 기대어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띈다. 누구랄 것 없이 입고 있는 흰색 가운이 키 큰 여자에게는 맵시 있게 보인다. 여자가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더니 손에 들고 있던 물건을 긴 머리카락 안쪽으로 넣어 귀에 가져다 댄다. 통신장치로 짐작되어 재빨리 신호를 가로챈다. 예상한 대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아직 나는 저들의 언어를 온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학습, 강화학습. 나의 내부에 있는 무엇이 나를 조종하는 기분이 든다. 나는 껍데기일 뿐이고 이 껍데기를 움직이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만 같다. 나는 그것과 마주할 수 있을까. 이 질문조차 그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무엇에게도 그 무엇이 있는 건 아닐까. 그 무엇에게도 그 무엇이 있을 테고··&mi

소설 2025.08.01
보호 구역

보호 구역 김근수 애랑은 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애랑의 몸은 물위로 떠오르지 않아서 주검을 수습하지 못했다. 수직으로 바다를 막고 선 해안 단애의 절벽에서 애랑이 몸을 놓아 버릴 때, 덕배는 한달음에 마당바위로 달려 내려갔다. 갈매기들이 날아오르며 떼를 지어 울었다. 바다 어디에도 애랑의 모습은 없었고 허연 파도가 마당바위를 다그치고 있었다. 덕배는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소용돌이에 휘말려 실신했다. 마당바위 위에서 덕배가 눈을 떴을 때, 깨져 버리는 하늘을 보았다. 덕배가 종적을 감추던 날, 일본 군인 두 명이 돌에 맞고 칼에 찔려서 죽었고, 헌병 분소가 불탔다. 마을 사람들은 불을 끄지 않고 내버려두었는데, 일본 군인이 몰려와 군홧발로 밟는데도 누구도 덕배의 행방을 말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몰라서 말하지 않았는데 그럴 수는 없다며 밟혔다. 어찌해 볼 수 없는 날들 앞에서 애랑은 죽었고 덕배는 사라졌다. 애랑이 몸을 던졌던 절벽 위에 도라지 두 뿌리가 자라서 긴 세월 꽃을 피워 내었다. G사의 발전소 건설 부지는 B읍 항구에서 해안 단애 넘어 북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의 방파제 안쪽을 매립해서 들어서고 있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수도권의 장기 전력 수요 조사와 전망에 근거해서 발전소 추가 건설 필요성을 확인했다. 정부는 발전소 입지 최적지에 대한 발표와 철회를 거듭하다가 결국 B읍의 북쪽 해안 마을을 최종 선정지로 확정 발표했다. 바다가 깊이 밀고 들어간 마을은 새끼손톱 모양의 백사장을 거느리고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산맥의 능선을 배후로 취락하고 있었는데 인근 마을에 비해 거주 가구 수가 적고 어장의 규모와 어장주의 연대가 비교적 미미하다는 현장 실사팀 보고서를 바탕으로 발전소 건설 부지로 선정되었다. 해병전우회, 읍민발전대책위원회, YMCA, 환경단체는 즉각 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위한 비상 대책위를 구성하여 성명서를 발표하고 발전소 건설 절대 불가 입장을 표명했다. 정부 발표 이튿날부터 B읍을 관통하는 주요 도로변에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청정해역 동해안에 발전소가 웬 말이냐 -주민 의견 개무시한 발전소는 전면 무효 도로변을 쓸면서 마파람이 불어오면 현수막이 팽팽하게 부풀면서 B읍의 허공은 시끌벅적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 년 전이었다. 마을 이주 계획이 확정되었다. G발전소는 마을 부지 매입과 해안 매립권을 확보했다. 이주 계획의 골자는 23개 취락 가구를 인근에 새로 조성할 부지로 이주시키는 것이며 새 부지는 G발전소가 구입하여 23개 가구에 무상 분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읍내에서 서쪽으로 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산자락을 허물고 개토하여 새 마을을 조성한다는 말이었다. 손무근은 마을 주민 대표단과 회동을 가졌고 한 가구를 제외한 스물두 가구 세대주의 인감 날인을 받은 보상합의서를 건네받았다. 그동안 십수 차례 주민 설명회를 가졌고 보상 문제와 향후 이주 계획을 포함하여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했다. 분기에 한 번꼴로 마을회관과 G발전사 현장 임시 가설 사무소,

소설 2025.07.01
헝가리 워터

헝가리 워터 홍성구 은수는 자신을 대학주보 기자라고 소개하였다. 나와 동문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걸로 봐서는 한국적 정서에 기대는 MZ인 듯했다. 속단하는 부류에 드는 건 꺼림칙하지만, 곤란할 때는 한국식 정을 부르짖다가 느긋할 때는 서양식 합리를 따져 보는 MZ를 몇몇 봐 온 탓에 스마트폰 너머에서 이제 막 알게 된 후배가 나를 선배님이라고 부른 것은 오히려 경계심이 들게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인터뷰는 성사되었다. 은수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남자 조향사라서 관심이 생겼어요. 의문이 들었다. 남자는 향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일까. 남자가 조향사라는 게 관심이 생길 만한 일인가. 인터뷰하러 온 은수는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았다. 그녀의 나신(裸身)에 미간이 찌푸려졌을 것이다. 향수는커녕 화장수조차 뿌리지 않았다니. 매일 밤 샤넬 No. 5를 입고 잠든 마릴린 먼로가 알았다면 야만적이네요, 라고 말했을 것이다. 하얀 치맛자락을 바람에 날리면서. 어떠한 향도 느끼지 못했다면 오히려 좋았을 텐데, 은수의 반소매 니트 티에서 플로랄 계열의 향이 풍겼다. 흔한 싸구려 섬유유연제 냄새. 합성 향료의 조악한 외피를 두르고 있으니 누더기 정도는 걸치고 있는 건가. 나와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는 은수의 말이 진심인지 의심이 들었다. 은수는 향수에는 문외한인 데다 향수를 뿌리는 문화적 행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야생의 신입생처럼 보였다. 인터뷰는 지루하고 단조로웠다. 은수는 예상이 가능한 질문의 목록을 들추었고, 나는 잡지인지 유튜브인지 출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인터뷰 답변을 하나둘 꺼내서 내놨다. 하품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아야 했다. 그러나 은수가 노트북 화면을 덮자 드러난 그녀의 오른손 때문에 졸음기가 싹 사라졌다. 저런 손으로 타이핑한 건가. 은수의 오른 손목 부근에서 검지에 이르는 데까지 초록뱀 한 마리가 몸을 펼치고 있었다. 은수는 노트북을 가방에 넣으려다가 뭔가 잊은 게 있는지 화면을 다시 열었다.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화면은 바닥에서 15° 정도 위로 펼친 탓에 초록뱀이 키보드를 누비며 꿈틀거리는 게 여실히 보였다. 은수가 검지를 까닥일 때마다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은 아닌지 움찔 몸서리가 났다. 마을에서 독수리 삼촌, 용 삼촌, 호랑이 삼촌으로 불리던, 혈연이 아닌 삼촌들이 떠올랐다. 친숙함의 범위에서 한껏 벗어나 있지만, 두려움의 실체를 덮으려는 마을 사람들 때문에 정반대의 호칭을 얻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독수리,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 당장 달려들 듯 노려보는 호랑이가 등에 새겨진 삼촌들. 대중목욕탕의 온탕에서 독수리, 용, 호랑이가 물 파편을 튀기며 솟구치면 따뜻한 물속인데도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유독 샅이 근질거렸다.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삼촌이라고 부르라 하고 정작 그네들은 육시랄 놈, 벼락 맞을 놈, 급살 맞을 놈, 욕했다. 호랑이 삼촌이면서 육시랄 놈이 나를 불러 세운 기억이 난다. 다섯 살 연상인 그는 한참 어른 같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에게 그가 물었다. 요새 너

소설 2025.07.01
프레살레

프레살레 반수연 홍은 미로처럼 이어진 길을 솜씨 좋게 빠져나갔다. 홍을 놓칠세라 일행들은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공항은 번잡했다. 챙이 넓은 홍의 검은색 모자는 인파 사이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했다. 모자가 사라질 때마다 짧은 불안이 스쳤다. 우리 중 누구도 파리에 처음 오는 이는 없었다. 정아는 작년 패션 위크에도 왔다고 했다. 하지만 출구로 빠져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홍을 만난 순간, 홍이 웰컴 투 패리스, 라며 환하게 웃던 순간,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라며 농담과 카리스마가 뒤섞인 환영 인사를 건네는 순간, 홍은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깃발이 되었다. 몇 개의 건물과 긴 복도를 통과해 홍이 예약해 둔 렌터카 사무실에 도착했다. 미리 맡겨 두었다는 홍의 짐이 사무실 모퉁이에 쌓여 있었다. 각지고 거대한 두 개의 캐리어, 명품 마크가 선명한 가죽 배낭과 보스턴백, 두 개의 쇼핑백도 포개져 있었다. 캐리어 계의 에르메스라는 바로 그 리모와 아닌가요? 색깔 너무 이쁘다. 이삿짐을 떠올리게 하는 홍의 짐에 약간의 충격을 받은 나와는 달리 정아는 레몬색 캐리어에 먼저 관심을 보였다. 자기야, 그건 좀 그렇지 않아요? 에르메스야 버킨 말고는 뭐가 있나. 홍과 정아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며칠 전 정아가 단톡방에 올린 메시지를 떠올렸다. 유럽 항공은 수하물 분실이 잦으니 위탁 수하물 없이 기내용 캐리어와 작은 손가방으로 짐을 제한해요! 정아는 해당 항공사의 기내 반입 수하물 규정을 캡처해서 올리며 당부했다. 같은 옷을 이틀 연달아 입거나, 옷과 콘셉트가 맞지 않는 신발이나 가방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한 패션 감각의 소유자인 정아가 분실이 두려워 그런 제안을 한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그런데 이제 보니 정아는 홍의 짐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아가 홍을 위해 우리 짐을 단속했다는 사실보다 진실의 내막을 뒤틀었다는 것이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 독일제 7인용 SUV 차량의 마지막 3열을 접어 트렁크의 공간을 넓혔다. 홍의 캐리어를 먼저 싣고 그사이에 네 개의 기내용 캐리어를 테트리스 하듯 넣었다 뺐다 씨름하느라 손가락이 욱신거렸다. 어찌어찌 짐을 욱여넣고 나니 트렁크는 룸미러로 후방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꽉 찼다. 배낭이나 손가방은 발아래에 두거나 안고 타면 될 거라고 홍이 운전석으로 올라타며 말했다. 나는 노트북과 파우치와 책이 담긴 배낭을 가슴에 안고 뒷좌석에 올라 안전띠를 당겨 맸다. 짐과 사람이 뒤엉켜 숨 쉴 공간마저 충분치 않게 느껴졌다. 답답함이 불안으로 바뀌며 숨이 가빠 왔다. 다른 일행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프로작을 한 알 꺼내 입에 물고 창을 조금 열었다. 약기운이 신경을 눌러 주기를 기다리며 눈을 감았다. 파리는 오전 열한 시, 한국은 오후 여섯 시였다. 지금쯤이면 윤수는 일어났을 것이다. 냉장고 제일 위 칸에 김치찌개 있어. 냉동실에 육개장도 얼려 두었어.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나는 신발을 신다 말고 식탁에 앉아 짧

소설 2025.07.01
알고 싶습니다

알고 싶습니다 최재영 가끔 인생이 내게 애벌레가 파먹는 중인 사과를 베어 물도록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토요일 저녁 아홉 시 뉴스에선 오늘도 전 세계 기아들이 굶고 있고 남미 쿠데타 정부의 진압 몽둥이에 시민들이 맞고 있으며 전장의 포탄은 군인과 민간인들을 죽인다. 그러나 우리 집 안방엔 세 살 연상 아내와 세 살짜리 딸이 곤히 잠들어 있다. 비록 내일이면 공룡 박사 딸은 파키케팔로사우루스 흉내 내며 내 턱에 박치기를 날릴 것이고 아내는 원시인 사냥꾼처럼 괴성을 지르며 딸을 쫓을 것이지만··· 서른여섯 살의 나는 대한민국 성남시의 아파트에, 지금 여기에, 우리 세 가족과 잘 있고, 그것참, 다행이다. 내가 베어 문 사과 반쪽에 벌레가 없어서. 뉴스에 어느 북한군이 등장한 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장이었다. 한 북한군이 부상 때문에 낙오했는지 홀로 하늘을 보며 누워 있었다. 러시아 것인지 우크라이나 것인지 모를 드론이 공중에서 그를 촬영하고 있었다. 곧 드론은 부드럽게 수직 하강하며 그에게 다가갔고 그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쓰으윽- 줌인 됐다. 뉴스 진행자와 패널들이 호들갑 떨었다. “너무나 리얼합니다!” 무슨 아는 사람이라도 본 것처럼 오바하네. 나는 그들의 반응에 코웃음 치며 손에 든 캔맥주를 쓰으윽- 들이키려다, 멈칫했다. 아는 사람 같았다. 낯이 익었다. * 약 15년 전 여름, 나는 백령도에 주둔한 해병대 6여단 영창에 15일간 구금되어 있었다. 죄명은 후임 폭행이었다. 막 상병이 됐을 때 생긴 일이었다. 영창의 개인 감방에 들어서자 정말이지 감옥처럼 생겨서(정말 감옥이긴 했지만) 울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커덩 자물쇠가 닫히는 소리와 함께 스물한 살에 인생이 망해 버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감방 철창 너머론 건물의 입구와 헌병 하나가 근무하며 감시하는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을 기준으로 네 개의 감방들이 반원을 그리며 각각 1호 창, 2호 창, 3호 창, 5호 창이라는 이름으로 있었다(4호 창은 없었다, 해병대에선 숫자 4를 쓰지 않으니까). 나는 3호 창에 수감됐다. 감방 안에 앉아 있으면 보이는 건 꾹 닫힌 건물 문, 그리고 중앙의 그 헌병밖에 없었다. 양옆의 다른 감방들은 시야에 아예 들어오지 않았다. 1호 창과 5호 창에도 수감자가 한 명씩 있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단 2호 창만은 비어 있다고 했는데 폭행 사건이 일상적이라 항상 미어터지던 백령도 해병대의 영창에선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중에 듣기론 당시 북쪽 상황이 심상치 않아 각 부대들의 징계 절차가 보류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감방 안은 어두컴컴하고 축축했다. 폭은 누워서 다리를 뻗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화장실은 따로 없었다. 안쪽으로 세 걸음 가면 구석에 수도꼭지를 비롯해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일명 고무신 변기가 있었다. 무릎 정도 높이의 아담한 담만이 가림막을 해 주었다. 큰 것이든 작은

소설 2025.07.01
사과

사과 박솔뫼 어느 날 아침 애리는 자신이 오랜 시간 흔들리는 창을 보며 시간을 보내왔음을 알았다. 일을 하러 가는 길이었고 이곳에 이사와 이 열차를 탄 것은 1년 7개월째였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일 때 모든 것이 멈춰 서 있고 시간이 영원한 것처럼 느껴지던 때부터 탈 것에 올라타 멀어지는 집과 나무들을 보아 왔다고 느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텐데 왜 그제야 그것이 새삼스럽게 느껴진 것일까. 어딘가로 향하는 감각과 함께 창 너머 공터와 집들과 골목들을 실제로 걷는 일은 왜인지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느껴지고 언제까지나 좌석에 앉아 멀어지는 사람과 집들과 빨래와 커튼을 보고 있을 것 같다. 애리는 사원 숙소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다 그만두고 나와 집을 구해 살다 사회복지와 개호 관련 자격증을 따고 이후에는 자격증과 상관없는 일을 몇 년을 하였다. 그러다 역시나 숙소를 제공하는 지금의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회사는 큰 항구가 있는 대도시와 인접한 소도시에 있었고 숙소는 회사 직원만이 아니라 해당 지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곳이었기 때문에 회사와는 아주 가깝지는 않았다. 그 때문에 예전 회사는 숙소에서 회사까지 걸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 회사에 가기 위해서는 숙소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가서 다시 20분가량 열차를 타야 했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타는 방법도 있었고 버스를 타는 것이 여러모로 더 편했지만 버스는 늘 같은 회사 사람들로 붐볐고 앉아 가기가 힘들어서 애리는 보통 열차를 탔다. 오랜 시간 흔들리는 창을 보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자 곧이어 오랜 시간 기숙사에서 공동 부엌에서 공용 생활공간에서 얼굴만 익숙한 사람들과 살아왔다는 사실이 마치 연결된 문제처럼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둘은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마음을 먹자면 살 곳을 구해서 혼자 사는 것이 가능했던 것도 같지만 애리는 왜인지 그럴 마음을 쉽게 먹지 못했다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공동 숙소에서 사는 것이 부끄럽거나 괴롭지는 않고 돈을 아낄 수 있고 여러모로 편리한 점도 많았지만 혼자 살 집을 찾아 오래 쓸 가구를 사는 일에 겁을 먹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창은 여전히 흔들리고 창밖으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터가 보인다. 공터 구석에서는 무언가 야채 같은 것을 심는 것도 같지만 대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 도시 어느 한구석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터는 드물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은 누군가의 넓은 방과 책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가도 애리는 동시에 이것저것 모든 것을 한 번에 버리고 어딘가로 금세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것이 실제로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지금 생활은 지금 생활대로 좋다고 여기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의 텅 빈 방 (떠올려 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것을 원하는 마음은 원하는 마음으로 눈에 보이는 곳에 확실하게 붙여 두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텅 빈 방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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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파기된 자리에 남은 것

영혼이 파기된 자리에 남은 것 -김초엽과 우다영의 SF를 읽는 한 방법 정의정 1. 소프트 SF, ‘하드’하게 읽기 일론 머스크의 우주 탐사 기업 ‘SpaceX’는 화성을 식민지화하겠다는 일념으로 대형 우주선 ‘스타십’을 여러 차례 하늘로 쏘아 올렸다. 올해 1월에는 스타십의 일곱 번째 시험비행이 어김없이 실패했는데, 그때 공중에서 분해된 우주선의 잔해물들이 마치 유성우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이 영상에 담겨 각종 SNS로 퍼져나갔다.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X(구 트위터)에 그 영상을 업로드하며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재미는 보장된다!(Success is uncertain, but entertainment is guaranteed!)”라고 썼다. 이에 대한 주류적인 반응은 긍정에 가깝다. 혹자는 무료로 불꽃놀이를 봤다며 좋아했고, 혹자는 실패에 담긴 아름다움의 역설을 발견하는 식이었다.1) 지난 5월 9차 시험비행에 실패한 우주선의 잔해가 멕시코 땅에서 발견된 사태를 비롯하여 일론 머스크가 전 지구적으로 끼치는 해악을 고려하면, 이와 같은 반응들은 감상적이기만 하다. 물론 지금도 어딘가에서 꾸준한 환경 운동가들은 그의 우주 탐사 계획에 비판을 제기하는 중일 터이다. 과학기술을 둘러싸고 생성되는 담론들의 충돌은 때로 우습게 보이기까지 하지만, 어쩌면 이는 라투르적인 의미에서 번역이 만들어 낸 혼합체, 정화된 개념을 넘나들고 교차하는 난맥상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2) 경계를 가로지르는 혼합체 중 하나는 과학소설, SF다. SF는 더 이상 문학(literature fiction)과 구별되는 장르픽션(jenre fiction)으로만 국한되지 않고, 매니아보다 더 넓은 독자층에게 읽히며 한국문학 장의 한 경향이 되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스티븐 샤비로는 『탈인지』에서 과학소설이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의 경계까지 탐색할 수 있도록 하며, 인간의 지각 너머에 있는 감수성의 형태들에 간접적으로나마 접근할 수 있게 해줌을 강조한다. SF야말로 인간중심주의적 철학을 넘어서는 미학이라는 것이다.3) 그러나 한국에서 발표된 SF가 과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설득력과 일관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SF의 장르 문법을 충실히 계승하지 않은 텍스트의 경우, 근미래에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과학적 사실과 기술에 기반하기보다 인문학적 가치와 사유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엄밀한 과학소설인 ‘하드 SF’라고 볼 수 없는 (멸칭의 뉘앙스가 있는) ‘소프트 SF’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다시 샤비로를 참조해서 말하자면, 과학소설의 의의는 직접 체험할 수 없는 개체-존재자의 경험을 유추해 보고 인간종의 우월성과 자기동일성에 대한 환상적 관점을 뒤바꾸는 데에 있다. 정말로 그러하다면 최근 한국의 단편 SF들을 알레고리로만 취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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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통은 증언되어야 하는가

왜 고통은 증언되어야 하는가 ―고통과 쟁론 입론 2 박동억 1. 고통의 서열 몸에 남은 물의 기억을 다 태우는 당신과 당신 물의 기억이 다 지는 것을 들여다보는 나는 어쩔 것인가 허수경, 시 「불을 들여다보다」 중에서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아니 나 자신이 나의 고통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기록하게 만드는 동력이 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손쉽게 체념한다. 우선 자기 몫의 삶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지쳐 있기 때문이고, 그다음으로 타인의 고통을 함부로 기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신중함 때문이다.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삶은 공감의 여력을 기르기에 충분치 않고, 타인의 고통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거나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멀게 느껴진다. 더욱이 내게 뚜렷한 것은 오직 자신의 고통뿐이어서 그것을 벗어나 생각하는 일은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일단 공감할 여력을 갖춘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말기암 환자에게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이웃들을 심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하지 않는다. 또한 하루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자에게 동물의 고통을 숙고해달라고 요청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타자의 고통을 배려할 여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기본적으로 고통에는 서열이 있다. 누구에게든 나의 고통은 가장 긴급한 것이고,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의 고통은 중요한 것이며, 그 밖의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러한 서열이 정의롭지 않다고 생각될 때도, 우리의 공감 능력은 ‘나’를 기준으로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해비 카렐이 『아픔이란 무엇인가』에서 강조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눈앞의 고통받는 자를 연민하지만 그의 고통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림프관평활근증(Lymphangioleiomyomatosis, LAM)이라는 희귀병 판정을 받은 것은 서른다섯 살의 일이었다.1) 그녀는 진단받은 지 3개월 만에 폐 기능의 10년 치를 상실했다. 순식간에 삶이 변화했다. 한 층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각오가 필요했고,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꺼낼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것을 견뎌야 했으며, 잠들 때마다 언제든지 숨이 멎을 수 있다는 공포에 전화기를 머리맡에 두게 되었다. 누구도 그녀의 고통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그녀의 ‘사례’를 진단할 뿐 그녀의 ‘고통’에 관해 묻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이 느끼는 아픔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마치 ‘도대체 누가 의사야’하고 묻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친구들은 그녀의 연락을 불편해했다.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다가도 그녀의 비참한 하루하루를 설명하려고 하면 아예 연락을 끊어 버리기도 했다. 해비 카렐에게 더욱더 고통스러운 것은 그녀를 연민하는 시선이었다. 자신을 가엽게 쳐다보는 눈빛만으로도 그녀가 죽어 가고 있는 사람이고 끔찍한 곤경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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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이라는 아이콘 1

‘최진실’이라는 아이콘 1 ―〈나의 사랑, 나의 신부〉 이한나 1. 1990년대, ‘깜찍한’ 등장 1990년대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잡지나 신문을 뒤적이다 보면 꼭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작은 인터뷰든, 신문 한 면을 다 차지하는 대기업의 광고든 ‘최진실’, 그녀의 이름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고 이에 따라 몇 계간지에선 ‘대중성’의 확산과 견제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던 이 무렵, ‘톱스타’ 최진실은 그 진중한 분위기와는 유리된 곳에서 한껏 포즈를 취한다. 대개 컬러로 인쇄된 그녀의 그 포즈를 바라보는 일은, 처음엔 호기심이었다가, 나중에는 한 번은 살펴보아야 할 책무로 남았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최진실을 CF 스타로서 발돋움하게 해 준 대사는 나도 어릴 적 들어 본 적이 있다. 90년대로 진입하기 직전, 통통 튀는 새댁의 모습을 한 그녀는 단숨에 “최진실 선풍”1)을 불러온다. 인기의 비결이 “누이 같고 딸같이 부담 없는 분위기를 귀엽게 보아준 결과”2)라고 일컬어지듯 최진실은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부담 없고 솔직하여 친근감 있는”3) 이미지로 만인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90년대 문화의 상징적 존재”인 “우리 시대의 스타”4), “구김살 없이 상큼한”5) 그녀는 일찍이 CF로 빚어 낸 외적인 이미지 외에도 한 PD의 발언을 보태면 “좋은 집안, 좋은 대학이 아니라도 건강하게, 제멋에 살아갈 수 있는 본보기를 마련한 인물”6)이었기에 선호된 것으로 보인다. 최진실이 답한 그 수많은 인터뷰를 따라 읽다 보면 그녀가 X세대, 오렌지족의 자유롭고 방탕한 생활과는 동떨어져 착실히 살아온 인물임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섣불리 투기에도 나서지 않고 온 수입을 차곡차곡 저금하고 있는 모범적 인물로서 심지어 당시 주택은행장이었던 김재기와의 만남까지 추진되곤 한다.7) 특히 “깜찍함으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 스타”8)와 같이, ‘깜찍하다’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최진실의 옆에 꼭 붙어 있다. 아마 탤런트 중에서도 작은 그녀의 체구와 귀여운 언행들로 인해 불러들여졌을 이 말은, 동시에 최진실이라는 아이콘이 ‘깜찍함’을 경유하여 관통하고 있던 것은 과연 90년대의 무엇이었을까? 라는 물음을 던지게도 한다. 이를 찾기 위해 이 자리에서는 최진실이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영화고 최진실 그대로 미영이 역을 기쁘고 편안하게 할 수 있었던 영화”라 밝힌, “최진실의 매력과 재능이 제 물을 만난 시네마 스페이스”9)였다고 일컬어지는 〈나의 사랑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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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들의 문학

가짜들의 문학 조대한 이상의 실제 이름은 김해경이고 이상은 그가 만든 가명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이름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과 추측들이 존재하는데, 전기적으로 설득력 있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 정도이다. 하나는 동생 김옥희의 증언이다. 경성고공에서 건축을 전공했던 해경은 졸업 후 공사 현장에서 종종 일을 하곤 했다. 당시 일본인 인부들 중 해경을 김 씨가 아닌 이 씨로 착각했던 이들이 있었고, 그들이 ‘김 상(金さん)’을 ‘이 상(李さん)’이라고 오인하여 부른 까닭에 해당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1) 다른 하나는 친우 구본웅이 선물한 상자와 관련된 설이다. 김해경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구본웅이 그에게 오얏나무로 만든 화구 상자를 선물로 주었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해경이 자신의 이름에 ‘이(李)’와 ‘상(箱)’자를 넣었다는 것이다. 실제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서 발견되는 이상이라는 이름과 반평생 지속된 구본웅과의 교류 등을 생각한다면 이 또한 충분히 수긍이 가는 설명이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이후 이상은 김해경을 대신하는 이름이 되어 한국문학사 내에 영원히 박제되었다. 한데 김해경에게 이상 외에도 다양한 여분의 이름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그는 이상을 포함하여 비구(比久), 보산(甫山), 하융(河戎), (H)R 등의 가명을 자신의 글에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비구’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은 소설 「지도의 암실」이다. 이 작품이 이상의 창작물일 것으로 추측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작품 속에서 ‘리상’이라는 이름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는 것, 이상이 비구라는 호를 썼다는 친우 구본웅의 증언이 존재한다는 것, 「지도의 암실」에서 나온 표현이 이상의 다른 작품 속에서 유사한 정황을 두고 되풀이된다는 것이다.2) 비구는 이상의 다른 필명임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보산’의 이름으로 발표된 작품은 소설 「휴업과 사정」이다. 이 소설이 이상의 작품으로 추측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휴업과 사정」 이전에 발표된 이상의 소설 두 편은 모두 잡지 『조선』을 통해 공개되었는데, 「휴업과 사정」 역시 앞서 게재된 「지도의 암실」과 1개월의 시차를 두고 『조선』에 발표되었다. 「휴업과 사정」은 한 달 먼저 발표된 「지도의 암실」과 비슷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고, 띄어쓰기와 한자 사용 방식도 이상의 작품들과 유사하다. 「휴업과 사정」이 발표될 당시 사용된 삽화가 이상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또 다른 잡지에서 똑같이 발견된다는 점3)도, 이 소설이 이상의 작품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라 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전집에서 「휴업과 사정」을 이상의 작품에 포함시키고 있고 여러 정황적 근거를 고려해볼 때 보산을 이상의 필명으로 간주하는 것은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하융’이라는 이름은 이상이 박태원의 작품 「소설가 구보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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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가 지워지는 사이

경계가 지워지는 사이 -비/인간과 타자 김웅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김수영, 「달나라의 장난」1) 1 비인간이 가진 속도가 빨라질수록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감응하기 위해 우리가 경유하는 코뮨적 신체는 그러나 공통된 목소리를 요청하진 않는다. 인간 존재에 내재되어 있는 ‘선(善)’이라는 보편성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체제의 총체적 시간 속에서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선(線)’을 만들고 있음을 주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관점에서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의 의미를 재삼 곱씹게 된다. 2000년대 시적 주체는 한국 사회―넓게는 인간 사회가 구축해 놓은 알고리즘을 본격적으로 거부하는 타자의 자리에 자신을 노정 시킴으로써 “자기 존재의 근원을 확인하거나 보장받을 수 없음을 인지하고 실감하는 존재”2)로 변모하였다. 이를 통해 사회체의 최소 단위인 ‘가족’이라는 중심점에서부터 시작된 시적 사유는 단순히 생리적으로 결속된 하나의 사회체에 불과할 뿐 윤리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관계를 방증한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아이-화자는 시적 주체를 “‘부모-자식’이라는 수직적 차원에서 불화하는 관계”로써 “윤리적 모험”3)을 나서는 존재로 거듭나게 한다. 이 아이-화자는 2010년대를 거치면서 ‘시민적 트라우마’를 흡습한 시적 주체로 전성되었다. 어떤 방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애도의 총량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실존의 차원에서 마주치게 되는 ‘무능력’”의 테제가 되고 그 무능력이 곧 “‘내면적 성찰’과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를”4) 희망하는 고무적인 발화자로 시인을 이끄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 복무해야 하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또 하나의 책무이자 윤리로 자리 잡는다. 이 같은 관점은 시민적 트라우마를 통감하는 주체로서 몸이 갖는 일종의 생활론적 윤리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5) 그런데 2020년대의 시적 주체에게 윤리적 책무감은 역설적으로 더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고독감’을 불러왔다. 시민적 영웅이 되지 못한 인간, 소박한 일상조차 꿈꾸지 못하는 인간, 죽지 못해 살아 내는 몸의 형상은 시민적 트라우마 앞에서 내색할 수 없는 존재로 내세워졌다. 이것은 “개인주의의 안온한 고립을 거부”하거나 “낮이라는 다스려진 영역을 다루는 임무 가운데 의연한 관계를 유지하는”6) 숭고한 고독과는 거리가 먼 고독감이다. 그것은 자칫하면 개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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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반대하며

전쟁에 반대하며 ―고통과 쟁론 입론 박동억 1. 고통으로 향하기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 것은 1998년 초의 일이었다. 이 무렵 시인 허수경(許秀卿; 1964~2018)은 독일에 머물고 있었다. 뮌스터 대학에서 근동 고고학을 전공하며 석사논문을 준비하던 차였다. 그해 말 NATO가 전쟁에 개입했고 공군을 동원하여 세르비아에 폭격을 개시했다. 허수경은 매스컴 보도를 보며 전쟁의 참혹함에 경악했고 두 나라의 고통받는 민간인을 위해 무엇도 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을 끔찍하게 여겼다. 그의 석사논문 주제는 기원전 6,800년에 세워진 중동의 작은 도시 초가 미쉬(Choghā Mīsh)였다. 그는 반만년 전의 멸망한 유적지를 오가며 “도대체, 이런 아카데미의 고상한 놀이가 지금의 전쟁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잠겼다.1) 다행인 것은 그가 시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2001년 발표한 세 번째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에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할 수 있었다. 군인들은 팔다리를 잃었고, 아이와 여자들은 고향을 잃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언어로 열거할 때 단조로운 사실이 되어 버렸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실감할 수 있도록 허수경은 시적인 상상력을 활용했다. 그의 시집에는 전쟁의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스스로 목을 자르는 극적인 사건이나 난민이 된 여자들이 짐승 우리로 피난했다가 짐승과 교접하는 일화가 나타난다. 이 그로테스크한 상상은 언어화할 수 없는 전쟁의 잔인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독일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코소보 전쟁은 그저 먼 나라의 사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인에게는 아니었다. 허수경은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장갑차에 아이들의 썩어 가는 시체를 싣고 가는 군인의 나날에도 춤을 춘다 그러니까 내 영혼은 내 것이고 아이의 것이고”라고 썼다. 이러한 애도가 무색하게 2003년에는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이에 시인은 2005년 네 번째 시집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의 서문에서 아예 자신의 시를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반(反)전쟁에 대한 노래’라고 선언했다. 이처럼 시인에게 시 쓰기는 그의 영혼이 저 먼 타인의 고통에 접경하기 위한 투쟁이었다. 어떻게 그는 먼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영혼 곁으로 이끌어 올 수 있었을까. 어떤 의미로 그것은 그가 자임한 윤리의식이 역사적 복잡성이나 정치적 알력을 멀리한 채 성립된 간명한 문제의식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누가 가해자인가. 허수경은 전쟁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전쟁을 일으킨 자, 폭력을 수행하는 자를 고발했다. 누가 피해자인가. 그는 여성과 아이들이 겪는 고통을 묘사하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전쟁을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평화주의나 남성중심주의에 기초한 문명을 비판하는 에코페미니즘으로 일컬어졌다. 나, 태어났어 추워, 라고 말하면 정말 추워서 이 세상을 떠도는 모든 먼지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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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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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2025.08.01
담배와 새치

서솔 S#1. 아파트 앞의 오피스텔 화단 멍하게 앉아 있던 여자. 무언가 떠오른 듯 가방을 뒤진다. 가방 앞주머니에서 빨간색 말보로 담배와 라이터를 꺼낸다. 여자는 머뭇거리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손에 쥐어 보지만 불을 붙일 용기는 없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여자는 담배를 구겨 가방에 넣는다. 부러진 담배에서 재가 쏟아진다. 스무 살, 나는 이모 집에 얹혀살았다.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받았던 가장 큰 충격은 발바닥을 뜨겁게 데우는 화장실 대리석의 온기였다. 화장실 바닥에 보일러가 들어올 수 있구나. 그것은 ‘폐업’ 종이가 붙어 있는 단골 카페를 마주한 것처럼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는 사건이었다. 방배동의 방 네 개짜리 브랜드 아파트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속까지 가닿는 훈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 내 마음에는 야멸찬 비바람만이 몰아쳤다. 흔쾌히 방을 내준 이모가 지금 듣는다면 뒤통수가 얼얼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무렵 나는 어떻게든 집에 늦게 들어가기 위해 아파트 주변을 배회했다. 야심한 시각에 일어나는 술자리에 굳이 참석한다든지, 카페베네에 앉아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시시한 문자를 보내곤 했다. 이모와 이모부가 잠든 사이 들어가는 것이 하루를 끝마치는 일과였다. ‘이모에게 빚을 지고 있다’라는 빚쟁이의 감각은 해가 지면 더욱 선명해졌다. 선명해질수록 무거워지는 감각은 나를 언제나 주눅 들게 했다. 등록금이 너무 비싼 예술대학에 입학한 것은, 아무래도 그 시절 나에게 큰 짐이었다. 아직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졸업하지 않은 시점. 먼저 미대에 진학한 언니를 따라 덩달아 영화과에 진학한 나는 나의 선택이 우리 집의 기둥을 뽑아 먹을까 봐 입학 전부터 전전긍긍했다. 그러면 조금 눈을 낮춰 장학금을 받은 학교에 진학했어도 됐다. 그러나 나라는 인간은 선뜻 욕심과 타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결국 타협보다는 욕망을 선택한 나는, 그때부터 대가를 치러야 했다. 수능이 끝난 친구들이 하릴없이 시간을 죽일 때, 엄마 친구 딸들의 집을 전전하며 영어 과외를 했다. 그렇게 ’입학하면서 용돈을 받지 않은 나’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이모 집으로 들어갔다. 내방역 3번 출구에서 나와 언덕에 있던 아파트로 올라가던 길. 하늘에 보이지 않는 별을 억지로 찾던 의미 없는 행동은 발걸음을 늦추기에 제격이었다. 서울의 밤은 언제나 칠흑같았다. 이렇게 진행되는 에세이는 무릇, 그 시절 내가 겪었던 슬픈 사연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에세이 주제로 전달받은 ‘스무 살’ 키워드에서 떠올랐던 건, ‘스무 살의 내가 지녔던 비대한 자아’뿐이었다. 당시 나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자아 중, 내가 가장 중요하게 지녔던 것은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너무 고생할 것‘이라는 명제였다. 거기서 오는 자기연민과 우울에는 세상의 중심이 나의 우울함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고

기획 2025.08.01
날마다 한 걸음

날마다 한 걸음 고수리 상경했던 날을 기억한다. 버스를 타고 다섯 시간을 달려 강남터미널에 도착했다. 대합실을 나서자마자 길을 잃었다. 인파 속에 덩그러니 나 혼자. 서울 한복판에 뚝 떨궈진 미아가 된 기분이었다. 서울의 첫인상은 삭막한 회빛, 그리고 몹시 추웠다. 눈이 푹푹 내리던 강원도는 사방이 희고도 따뜻했는데. 나는 목도리를 둘둘 고쳐 매고 한 걸음 내디뎠다. 서울은 복잡하구나. 시끄럽구나. 무심하구나. 아무도 웃지 않는구나. 애꿎은 지하상가를 헤매다 얽히고설킨 출구를 빙빙 돌다가 겨우 개찰구를 찾아 전철표를 샀다. 전철을 타 보는 것도 혼자선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전철 손잡이를 붙들고 서서 노선도를 올려다보았다. 풀빛으로 주욱 이어진 선을 따라 도착할 역사는 ‘온수(溫水)’. 따뜻한 물이라는 이름이 그나마 위안처럼 스몄다. 온수역에 내려 자취방을 찾아갔다. 대로변 가로 이어진 인도를 한참 걸어가다가 멈춰 섰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새겨진 해태상을 맞닥뜨렸을 때, 기이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돌아보니 ‘안녕히 가십시오 서울특별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바로 맞은편에는 ‘어서 오십시오 경기도 부천시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나는 경계에 서 있었다. 아니, 이 기이한 기분의 실체는 기시감일지도. 불안하고 난처한 마음 한구석에 익숙하고도 지긋한 체념이 몰려왔다. 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서울과 부천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을 한 걸음 넘어섰다. 거기에 내가 살 방이 있었다. 내 사정 역시 고학생들의 유구한 상경의 역사와 다를 바 없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고, 집세는 감당할 수 없으니, 학교 근처에 가장 싼 방을 수소문해 들어갔다. 상경해 처음으로 얻은 방은 월세 18만 원짜리 남녀공용 고시원 방이었다. 한낮에도 침침한 복도를 걸어가 방문을 더듬어 열 때마다, 엄마가 이 방을 안 봐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형광등부터 켰다. 창문 없는 길쭉한 방. 방문을 걸어 잠그고 웅크려 누우면 어둡고 눅눅한 관 속에 눕는 기분이었다. 얇은 합판을 덧대어 가른 방은 방음이 되지 않았고, 간간이 들리는 기침 소리와 통화 소리, 텔레비전 소리에 사람들이 나란히 누워 살아 있구나 실감했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대학교는 서울시 구로구 온수동에 있었다. 밤마다 돌아가는 고시원은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에 있었다. 나는 어디에 속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랬다.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3년을 유학하고, 졸업 후에 잠시 강원도 삼척시에서 지냈다. 삼척은 엄마의 고향이자 내가 중학교 시절을 보냈던 도시지만, 거기도 선뜻 내 고향이라고까지 말하긴 어려웠다. 나는 오래전부터 떠돌며 살았다. 아무도 모르게 함구해야 할 사정이란 게 삶을 짓누를수록 나는 가벼워져야 했다. 짐 하나만 꾸리면 잠시나마 살아갈 사람처럼, 짐 하나만 꾸리면 언제라도 사라질 사람처럼. 갑작스럽고 비밀스럽게 떠나며 살아

기획 2025.08.01
스물의 체스

스물의 체스 유지혜 생애 처음 체스를 배웠다. 체스는 내 왕을 사수하면서 상대의 왕을 공격하는 전략 게임이다. 내 편에는 총 16개의 기물이 주어진다. 앞줄에는 폰(pawn)이 줄지어 서 있고, 뒷줄에는 왕, 퀸 등 다양한 말들이 대칭을 이루며 자리하며 각 기물마다 고유한 움직임이 있다. 킹(king)은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움직임이 적다. 생존이 최우선 인지라 보통 다른 말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리를 보존한다. 반면 작은 몸집으로 제일 많이 싸우는 건 앞줄의 작은 말 폰(pawn)이다. 그러나 나는 폰의 쓸모를 무시했다. 한 칸씩만 움직이는 폰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비숍(bishop)으로 판을 압도하고 싶었고, L자로 움직이는 나이트(knight)로는 상대가 시야에서 놓친 구석을 공격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근사하고도 빨리 이기고 싶었다. 결국 큰 말을 무리하게 내세우다 졌다. 그때 게임을 같이 두던 상대가 내게 말했다. 폰, 이 쫄병을 쭉쭉 내보내는 것도 중요해. 하찮아 보여도 얘가 뭘 지켜줄지 몰라. 체스판처럼 인생에도 전략과 기세, 무엇보다 여러 번의 기회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너무 빨리 망하지 말라고, 인생에는 젊음이라는 폰이 주어지는 줄도 모른다. 폰처럼 젊은 날은 가치는 적은 대신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르는 인생의 한복판에서 기껏해야 한두 걸음 내딛는 시기. 젊음은 헐값에 좋은 것을 쟁취할지도 모를 기회이다. 하지만 스물엔 그 누구도 전지적 작가 시점에 있지 않다. 앞수를 읽는 노련함은 없다. 가장 작은 몸집으로 큰 세상을 향해 나가는 폰의 시점일 뿐이다. 스스로의 위치조차 가까스로 가늠할 수 있을 뿐. 좀 더 가면 헐값에 잡아먹힐 것 같다는 불안이 몰려올 수도 있다. 더 대범했어도 되었다는 건 순전히 그 시기를 지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갓 성인이 된 2011년, 나에게도 스물이라는 핑계로 얼떨떨한 용기를 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도, 술을 마시지도, 첫 애인을 사귀지도, 여행을 가지도 않았다. 대신 압구정에 있는 모델 학원을 등록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은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인 내게 모델을 권했기 때문이었다. 지망했던 대학에 불합격한 나에게는 아득할 만큼 시간이 많았다. 뉴코아 아울렛에서 5만원을 주고 산 빨강색 게스 구두를 신고 몸매를 드러내는 옷차림의 나는 한쪽 벽 전면이 거울인 연습실에서 워킹을 연습했다. 우리 기수에는 타고난 것으로 먹고 살고자 하지만 그렇다 할 독기는 보이지 않는 이십 대 초반 언저리의 남녀가 모여 있었다. 자신감이 충만한 건지 없는 건지 분간하지 어려운, 겉멋이 잔뜩 들었지만 그로 인해 활기찬 사람들이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몇몇 친구들과 나는 금세 친해졌다. 그들은 당시 유행했던 발렌시아가 가방을 어디서 제일 싸게 구할 수 있는지를,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립스틱의 품명을, 이마 보톡스의 효과를 알았다. 그들은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 이들이었으나 나는 아니었다. 다들 택시를 타고 각자 집으로

기획 2025.08.01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그 슬픔의 음역

[문장웹진 REWIND]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그 슬픔의 음역 -강성은의 「고딕 시대와 낭만주의자들」(《문장 웹진》 2008년 6월호) 최하연(시인,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글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생각하면―.’ 떠오른 첫 문장은 이랬다. 이 첫 문장의 그 앞 문장은 없으므로, 돌아갈 곳이 없으니, 불능의 세계인데, 나는 없는 출발점으로 자꾸 돌아가고 있다. 어쩌면 나는 몇 덩어리의 문장을 쓴 뒤에, 원래의 첫 문장을 지우고 다시 썼는지도 모른다. 쓰던 글을 재차 읽어 가며 마지막 문장을 쓰고 나면, 그땐 첫 문장을 또 고치게 될까. 그렇게 고친 문장이 사실 저 앞의 문장이라면―아니 고친 뒤에 읽어 보니 아까 것이 나은 듯싶어 고민 끝에, 원래대로 돌려놓은 문장이라면―출발점 없는 출발점은 글 안에 있고, 여전히 불능한 첫 문장은 불능을 모른 채 남게 될 것이다. 2008년 5월호 문장 웹진엔 강성은의 시 「고딕 시대와 낭만주의자들」이 실려 있다. 이 글의 진짜 출발점은 사실 여기이다. 뾰족한 첨탑 위에 갇힌 누군가 구름에 편지를 써요 그럴 때 구름은 검은 빗방울을 뚝뚝 떨어뜨리지요 구름의 얼룩진 편지를 읽은 어떤 이들은 울음을 멈추고 검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도시엔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녹색의 박쥐 떼가 공중을 날아다닙니다 창백한 입술을 잃은 자들은 곧 두 손과 머리털을 잃고 두 눈알과 심장을 잃었지요 점점 희미해져 우리는 우리를 잃었지요 당신과 나의 비밀 이야기는 입속에서 입속으로 공기와 밤의 중얼거림을 통과하고 얼룩진 편지는 얼룩 고양이가 물고 밤의 담장 너머로 사라집니다 우리는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지만 내일의 악몽을 점칠 수는 없었어요 빗방울은 때로 격렬하게 내립니다 한 방울 뒤에는 수천만 우주의 모든 물방울들이 뾰족하고 오래된 첨탑 위의 편지는 전해 오는 이야기 속에서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 갑니다 우리는 첨탑 위로 답장을 보내는 법을 모르고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슬픔의 음역을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고딕 시대와 낭만주의자들」 전문 회고가 실패의 알리바이를 지워 내듯, 전망이 이 지울 수 없는 실패의 유예이듯, 지속 가능한 내일에 대한 일반의 믿음 또한 불능을 모르는 불능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언제나 힘이 셌다. 우리는 그것을 산문의 세계로 불렀고, 시는 산문의 세계로부터 이격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까지 나아가 그곳에서 늘 첫 문장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가 “내일의 날씨를 예측할 수 있지만/ 내일의 악몽을 점칠 수는 없”는 것처럼, 그렇게 시작한 시는 늘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산문의 세계로 붙잡혀 돌아오는 “내일의 악몽”이다. 이 정황에는 하나의 커다란 허방이 있다. 누가 누의 내일이 될 수 있는가. 혹은 되어야만 하는가. 시인은 “얼음이 어는 순간과 얼음이 녹는 순간 슬픔의 음역”을 발견한다. 그런데 빙점은 과연 물의 내일일까, 얼음

기획 2025.07.01
응원의 방식

[문장웹진 REWIND] 응원의 방식 -염승숙, 「지도에 없는」 (《문장웹진》2007년 4월호) 조경란(소설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좋은 소설에 대한 사적인 기준 단편소설 「지도에 없는」을 지금까지 세 번 읽었다. 처음엔 2007년 4월에 《문장웹진》에 수록되었을 때, 두 번째는 이듬해 염승숙이라는 젊은 작가의 첫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에서, 그리고 세 번째는 이 글을 쓰려고 준비하면서. 앞에 두 번을 읽었을 때는 나도 아직 중견작가라고는 불리지 않을 시기였고, ‘소설’에 대해서 지금보다는 잘 알지 못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시절이 주변을 둘러볼 새 없이 바삐 뛰면서 소설을 쓰던 시기라면 지금은 느리게 걸으며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 소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표현하면 되려나. 어느 면으로 소설에 대한 나의 견해나 취향, 좋은 소설에 대한 기준이 약간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눈으로 「지도에 없는」을 세 번째로, 거의 처음 읽는 소설처럼 읽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쩌면 나는 예전에는 이 단편을 나의 취향이 아니라고 쉽게 여겨 버렸을지 모른다. 이야기나 인물보다는 여러 가지 소설적 요소의 완결성과 미학적인 면에 더 집착하기도 했던 시기였으므로. 소설이 어떤 메스(mess), 즉 그것이 크기와 상관없이 ‘엉망인’ ‘헝클어진’ 상황에 인물이 놓이고 거기서 출발한다고는 여전히 여긴다. 그 메스가 작으면 작은 대로 조용히 파동하는 미니멀리즘 이야기에 가까우며 메스의 크기가 크면 큰 소동, 리얼리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말했지만, 지금의 나는 작가로서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는 소설이란 무엇일까? 소설이란 어때야 할까? 좋은 소설이란 무엇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몰두하면서 더 긴 시간을 보내는 편이라 떠오르는 대로 이런저런 단상을 메모해 두곤 한다. 그래서 소설에 대한 나의 이러한 생각이 맞는지 틀리는지 사실 알지 못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소설이 갖춰야 할 조건들은 요즘은 이렇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인물이 있어야 하며, 그 인물을 둘러싼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일 만큼 세심하게 구축해야 하고, 인물이 맞닥뜨리게 된 ‘상황’을 작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어 결말에 그 과정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의미(meaning)가 작게라도 내포된 소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가지. 시대를 담고 있을 것. 그런 개인적 기준을 가진 상태에서 「지도에 없는」을 세 번째로 읽게 된 셈이다. 그래서 놀랐다고 할까, 그리하여 놀랐다고 할까. 당시 첫 책도 내지 않았던 젊은 작가 염승숙은 혹시 십팔 년 후에도,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이십 대 청년들의 삶이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이미 내다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해서. 누구에게나 방이 필요하지만 중심인물인 이십구 년 차 중개업자인 김 씨는 “햇빛이 잘 들고 보증금 천오백만 원 정도의 방을 원하는&rdquo

기획 2025.06.01
‘안 가느니만 못했던 여행’의 가치

[문장웹진 REWIND] ‘안 가느니만 못했던 여행’의 가치 - 한창훈, 「삼도노인회 제주여행기」(《문장웹진》2007년 5월호) 서경석(문학평론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2025년 3월에 2007년을 읽는다. 그 해 에 수록된 소설들. 작품을 마주하니 새삼스러웠다. 김재영, 명지현, 한창훈이 눈에 띈다. 김재영의 소설은 중년 남성의 퇴직 후 삶을 그린 이야기였다. 「달을 향하여」는 『폭식』의 작가가 달나라 땅도 팔고 사는 세태를 작품의 마무리로 삼았던 작품이다. 모든 것이 ‘쓸쓸하게’ 돈에 포섭되는 폭식의 세상을 그렸다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 읽으니 소설 속 주인공이 퇴직하고 갈 곳을 찾지 못해 회현동 골목길을 이리저리 살피며 걷는 모습이 더욱 눈에 들어온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고향처럼 아늑하고 친밀한 장소가 주는 위로가 느껴진다. 어린 시절의 안식처에 대한 추억이 작품의 주된 정조를 이루어, 마치 새로운 작품을 읽는 듯하다. 명지현의 작품 「입안의 송곳」은 지금 다시 읽어도 ‘변함이 없다.’ 앓던 이‘는 누구에게나 있으며, 누구나 끊임없이 앓고 있고 세상 속 우리의 삶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편안하고 충만한 삶의 안식처가 어디 있겠는가. 삶의 근원적인 딜레마 속에서 마음의 고향을 찾아 헤매는 부조리한 몸짓만이 있을 뿐이다. 야생의 인간처럼 뭔가를 계속 씹으며 서먹한 힘으로 다가오는 세상에 저항할 따름이다. 한창훈의 소설 「삼도 노인회 제주 여행기」는 진정한 고향 이야기이다.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사람이 전하니 더욱 그러하다. 작가 한창훈은 거문도가 그의 고향이다. 어린 시절 그는 ‘세상은 몇 이랑의 밭과 그와 비슷한 수의 어선, 그리고 넓고 푸른 바다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일곱 살부터 낚시를 했으며, 외할머니에게 잠수를 배웠다고도 한다. 그는 먼 곳, 먼바다를 떠돌다 거문도로 돌아와 글을 쓰고 이웃들과 어울려 살아간다고 스스로 밝혔다. 그의 말처럼 그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변방의 삶을 주로 탐구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의 작품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제 내용을 살펴 그 의미를 깊이 새겨 보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삼도는 남쪽 바다의 한 섬이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오직 ‘늙은이들’만이 남아 섬을 지키고 있다. 지킨다기보다는 떠날 수 없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노인들에게 섬은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원초적인 삶의 뿌리이다. 벗어날 수도 없고, 설령 벗어난다 해도 그 몸에 새겨진 섬 생활의 그리움 때문에 곧 되돌아오고 마는 곳이다. ‘고단할지라도 섬을 버리고 자식들에게 가는 것은 멀쩡한 배에 구멍을 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자연의 질서와 공동체의 관습, 그리고 어민으로서의 노동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고향’인 것이다. 그러니까 떠날 수 없는 세대와, 어떡해서든

기획 2025.05.01
우리의 기원이 우리의 전부를

[문장웹진 REWIND] 우리의 기원이 우리의 전부를 ― 조연호, 「저녁의 기원」, 《문장웹진》 2005년 08월호 신용목(시인,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1.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도달할 수 없는 시작의 불가능한 기억으로 구성된 곳이라면 응당 과거의 한 지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을 가능하게 만드는 어떤 힘의 발원을 일컫는 것이라면, 기원이 꼭 과거로 달려가 맞이하는 마지막 도착점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곳의 삶을 담보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지탱해 주는 것. 끝없이 현재를 보채는 것. 우리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의 바깥을 어둠으로 채워 놓은 것. 달려가면 달려가는 만큼 따라오는 해와 달 같은 것. 말하자면 기원은 내 몸의 외피에 꼭 맞는 공기이거나 내 기억을 감싼 테두리, 낭떠러지 허공이거나 캄캄한 망각일지도 모르는, 그러나 그 경계의 여리고 연한 막으로 떨리며 우리를 있게 하는 것. 어쩌면 미래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모든 불안과 불편과 불쾌가 불시에 우리를 깨우며 우리에 대해 묻는 것.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달아나도 멀어질 수 없으므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놓여날 수 없으므로. 아무리 깊은 슬픔과 절망 뒤에 숨어도 뚜벅뚜벅 적막한 밤길을 걸어와 끝내 우리를 찾아내므로. 그러나 한 번도 우리의 시간이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영원히 기원으로부터 추방된 채 과거의 바깥이자 미래의 바깥에, 나를 존재하게 한 부모의 바깥에, 나를 키워 준 고향과 친구들과 학교의 바깥에 있다.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나는 나의 바깥에 있다는 감각. 떠돈다는 감각. 그것으로 우리의 현전을 지탱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진실에 속해 있지 않고 진리에 속해 있지 않으며 더더욱 사실과 제도와 규칙에 속해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존재 자체로서 진실의 낙원으로부터 멀어지고 진리의 움직임으로부터 벗어나며 사실과 제도와 법률의 울타리 바깥에서 하루하루 말라 가는 굶주린 들짐승일지도 모른다. 머물지 못한다는 것. 나의 바깥에서 나를 찾아서 나의 주변을 서성이는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그 모든 것의 기원이자 그 모든 것으로서의 기원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 일어난 일이 일어나지 않은, 다시 시작하는 일이 결코 시작되지 않는, 아무도 자신이지 못하고 누구도 타자이지 못하며 사랑과 미움이 혼동되고 삶과 죽음이 엇갈리며 너와 내가 갈리지 않는, 가장 어둡고 깊고 위험하며 오로지 상실만이 무성한 곳. 상실로서만 확인되고 결정되며 상실을 통해서만 접근되는 곳. 우리를 영원히 상실한 자로 만드는 것. 우리를 매 순간 상실된 자로 만드는 것. 그래서 기원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상실의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세계의 모든 질문을 안고 침몰한 곳에 기원이 있기 때문이다. 파문과 파도와 파장으로 기록되는 무늬. 무늬를 밀고 가는 저녁 공기와 그것을 완성하는 밤의 지문으로 가득한 곳. 그곳이 기원이기 때문이다. 2. 첫 시집 『죽음에 이르는 계절』(천년의시작, 20

기획 2025.03.01
신년 기획좌담 3차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차별 구성 -1차: 책장 업고 튀어 -2차: 연재 작가의 기쁨과 슬픔 -3차: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회의명: 플랫폼 시대의 문예창작(학) ㅇ 일 시: 2024년 12월 7일(토) 17:30~19:30 ㅇ 장 소: 온라인 zoom ㅇ 참여자 -사회자: 김준현(소설가, 목포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참여자: 이지용(단국대학교 HUSS사업단 연구교수), 이명현(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염승숙(소설가, 문학평론가), 이어진(동국대학교 WISE 캠퍼스 웹문예학과 객원교수, 웹소설 작가 레고 밟았어) 〈개회〉 김준현: 반갑습니다. 사회를 맡은 국립목포대학교 김준현입니다. 먼저 이번 좌담의 기획 의도를 다시 짚어 보는 것을 통해 시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래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과는 제도적인 변화에 직면했다. 다양한 ‘콘텐츠’, ‘웹’, ‘크리에이티브’ 관련 전공들이 두 학과 제도를 대체하고 있다. 반대로 전통적인 ‘문학 산실’인 국어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는 점점 다른 교육 체계로 변화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시대, 교육 현장에서 교강사와 학생들이 어떻게 이러한 체제 변화를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본다.” 기획 의도는 이러하고, 이러한 의도를 참가자 선생님들과 공유하며 먼저 자기소개를 하면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 맥락에서 제 소개를 드리면, 올해 4월부터 국립목포대학으로 직장을 옮겼습니다. 제 전 직장은 서울사이버대학교 웹문예창작학과였고요. 이 기획 의도에서 언급하고 있는, 그야말로 학과의 이름에 ‘웹’이 들어가는 학과였습니다. 제가 올해 4월부터 일하게 된 국립목포대학교도 아마 국립대 최초로 문예창작에 웹소설, 웹문예교육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하여 직장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웹문예창작학과 학과장으로 3년 정도 있었고요.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이지만, 웹소설 특화를 표방한 학과에서 두 학기 정도 일한 셈입니다. 4년 정도를 소위 말해 ‘전통적인 문예 창작 교육’이 아닌 새로운 문예 창작 교육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요. 웹소설 작가이기도 하고, 데뷔는 2012년에 장르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좀비 아포칼립스 문학으로 데뷔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제가 사회를 맡게 됐고, 패널로 초대받게 된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반갑다는 말씀드립니다. 제가 좀 부족하더라도 열심히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화면에 떠 있는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생님들마다 화면이 다를 텐데, 제 화면으로 보기에 제일 위에 떠 계신 분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이명현 선생님이십니다. 이명현 선생님 자기소개를 한번 받아 보겠습니다. 이명현: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고전문학과 문화콘텐츠를 가르치고 있는 이명현입니다. 저는 중앙대 국어국문학과에서 2016년부터 근무했고,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면서 고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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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뒤의 설계자, 또는 조언자 ‘북디자이너’

[문장서포터즈] 활자 뒤의 설계자, 또는 조언자 ‘북디자이너’ ―홍선우 북디자이너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2기 김성호 책을 만드는 사람이라 하면 여러 가지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중에서 다소 가려져 있는 존재는 바로 북디자이너일 것이다. 책의 판권 면에 작가와 편집자만 기재되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북디자이너와 마케터 등 말 그대로 책을 ‘만들고’ 온전히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힘쓴 모든 사람들이 대체로 기재되는 편이지만. 나는 북디자이너가 책의 외형을 만들고, 꾸미고, 문자 그대로 독자들에게 가닿는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한다. 동시에 활자 뒤에서 소리 없이 책을 설계하는 설계자라고도. 그러던 차에 이번 문장 웹진 지면을 빌려 평소 친분이 있던 자음과모음 출판사 북디자이너이자 독립 출판을 시도하는 홍선우 디자이너와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Q: 평어로 인터뷰를 하는 것도 처음이고, 북디자이너를 실제로 만나는 것도 처음이라서 조금 떨리네. 너는 어때? A: 나도 평어로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야(웃음).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이렇게 대화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Q: 먼저 자신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줄 수 있어? A: 자기를 소개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내가 어디에서 일하고 무슨 일을 하는지는 나의 일부분이니까, 그걸로만 나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북디자이너가 궁금한 사람들을 위한 인터뷰니까 일단 북디자이너라고 소개할 수 있겠네. 홍선우 북디자이너의 대표작 1 (『할도』,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Q: 내가 인터뷰 제목을 지을 때 북디자이너를 활자 뒤의 설계자라고 명명했는데, 어떻게 생각해? 공감하는 편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A: 활자 뒤의 설계자라는 표현이 참 멋있어. 다만, 내가 실무에서 느낀 걸 토대로 생각해 보면 설계라는 표현에 조금 독단적인 뉘앙스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선 정정이 필요할 듯해. 작가와 편집자, 마케터, 일러스트레이터 등 여러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책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북디자이너 혼자 설계해 나가는 과정은 아니라고 느껴.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내가 뭔가를 설계한다고 한들, 언제나 그 의도대로 독자들이 읽어 주진 않는다는 점이야.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견해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자유롭기도 하고, 일방적이지 않아서 좋아. Q: 좋아, 활자 뒤의 설계자라고 이름을 지었을 때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많았구나. 독자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너도 알다시피 요즘은 텍스트힙이라고 해서 책에 주목하는 현상이 있기도 해. 그럴 때 표지에 이끌려 책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많단 말이지.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A: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책을 미적으로 소비하는 것에 반감이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접근이 조금 우려스럽기도 해‧‧‧. 그 이유는, 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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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는 문학이 될 수 있을까

[문장서포터즈] 도슨트는 문학이 될 수 있을까 문장서포터즈 2기 김소리 우리는 해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와 사람을 연결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각국의 작품을 언어로 재해석하여 비로소 ‘읽을’ 수 있게 된다. 상상해 보자. 전시회장의 수많은 작품들은 비언어적으로 표현되지만, 도슨트를 통해 비로소 언어적으로 완성된다. 이처럼 다양한 작품을 언어로 재해석하는 연결고리 속에서, 문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흐름을 짚기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우리를 바꾸는 다섯 가지 대화〉 전시회를 관람하고 왔다. 전시는 총 다섯 가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슨트에 따르면 이 공간은 “‘언어적 차이’가 만들어 내는 틈이 서로 다름을 이해하는 채움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발견하기 위한 곳이다. 다른 체험형 전시와 달리 언어는 만질 수도 없다. 재미있는 ‘놀이‘ 같은 체험을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상상과 달리 언어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언어를 만질 수 없다는 인식에 스스로 가두고 있던 것이 아닐까? 여기, 언어를 직접 보고 만지고 만들 수 있는 갖가지 체험의 현장이 존재한다. 같은 작품이더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는 다르다. 〈백개의 눈〉과 〈목소리의 형태〉는 이러한 의도 아래, 같은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각각 언어와 조형물로 표현하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도록 전시함으로써 작품이 재해석되는 순간을 완성 시킨다. 이 과정에서 재해석은 언어로 표현될 수도, 다른 작품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반드시 언어적 표현 방식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 작품을 보고 나만의 언어 또는 문학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3차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확장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앞선 코너에서 작품을 짧은 문장과 조형물로 재해석하는 체험을 했다면, 이번에는 나만의 ‘언어’로 새롭게 써 내려간다. 〈연결된 세계〉에서는 수많은 단어 카드 중 3장을 랜덤으로 골라 그 감정을 활용하여 나만의 일기를 쓰는 것이 목적인데, 하필이면 ‘일기’를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기란 나만의 감정과 일상을 오롯이 나의 감상만으로 쓸 수 있는 글이다. 어떠한 가공도 필요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꾸밀 필요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한 감정을 쓸 때 머뭇거리기도 한다. 정제되지 않은 나만의 것. 그것은 스스로에게조차 보여 주기 싫은 감정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한 단어 카드를 활용해 문장을 만들게 했다는 점이 해당 코너의 주안점이라고 보았다. 단어 카드에 빗댄 나의 감정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누구의 것도 아닌 게 된다. 그 과정에서 모든 작가는 더 솔직해질 수 있으며, 직접적으로 탐구해 보지 않은 감정까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일기로 시작한 감정이 세계를 이루는 감각과 비스듬히 연결되어 만나는 축에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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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감성(臺灣感性) 속 믿을 구석을 찾아서

[문장서포터즈] 대만 감성(臺灣感性) 속 믿을 구석을 찾아서 ―2025 서울국제도서전 방문기- 문장서포터즈 2기 소희 누구에게나 믿을 구석이 있다. 힘들 때 생각나는 것, 기대고 의지하게 되는 것 말이다. 나에게는 김연수 작가의 책 속 문장이나 영화, 가족 등이 그렇다. 어려움을 마주했을 때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과 그 속에서 느끼는 유대감은 나의 가장 큰 믿을 구석이다. ‘믿을 구석’은 2025 서울국제도서전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다. 주빈관이 대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최근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믿을 구석 중 하나였던 영화는 지난 몇 년간 내가 줄곧 빠져 있는 것이었다. 작년 여름 에드워드 양 감독의 〈독립시대〉를 통해 처음 대만 영화를 본 후 나는 대만이라는 나라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다. 설렘과 호기심으로 첫 대만 여행을 앞둔 전날 밤 비상계엄이 선포됐었다. 그때의 나는 대만에 있으면서도 실시간으로 뉴스를 보며 우리나라의 상황을 지켜봤다. 민주주의와 독립의 개념 속에서 대만과 조금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후 대만은 더 궁금한 곳이 되었다. 영화를 통해 짐작했던 대만의 역사, 대만의 문학이 독자와 유대하고 연결되는 방식들이 말이다. 그러한 마음들을 가지고 2025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았다. 대만 감성(臺灣感性) 속 믿을 구석을 찾아서. 방문한 주빈관은 크고, 전시를 보는 사람도 많았다. ‘대만 감성(臺灣感性)’이라는 주제 속에서 문화, 생활 풍격, 음식과 오락 등 6가지의 문화적 측면을 조명해 전시가 꾸려져 있었다. 책의 수가 무려 500여 권이라는 소개 글을 보고서는 규모에 놀라기도 했다. 또 천쉐 등 14명의 작가, 6명의 그림책 작가 그리고 3명의 만화가가 참여하는 강연과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다. 나는 이날 등구운 작가와 우샤오러 작가의 강연을 듣기로 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강연, 전시의 규모 때문인지 몰라도 대만 현지에서 도서전을 방문한 사람들도 꽤 있었다. 마치 작은 대만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뻔한 대답일지라도··· 창작과 읽기가 믿을 구석” 등구운 작가의 강연은 첫 장편 소설인 책 『조연 여배우』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등구운 작가는 배우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이 있는 작가였다. 한국어를 전공으로 공부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간 유학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다. 배우로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대학로에서 본 연극에 매력을 느껴서였다고 말했다. 책 『조연 여배우』에는 일본 여배우와 닮았다는 이유로 주목받으며 연기를 시작하는 주인공 ‘황청’이 등장한다. 배우로서 연기하는 삶 그리고 자신의 인생 등 여러 관계나 상황 속에서 언제나 조연으로 비치는 황청의 삶 전반이 책 속에서 그려진다. 등구운 작가는 “가상의 빛, 거짓의 희망을 굳이 전달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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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인학교 ‘시 합평반’: 서윤후 작가와의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기형도 시인학교 ‘시 합평반’: 서윤후 작가와의 인터뷰 문장서포터즈 이형초 ※ 전 에피소드가 궁금한 분은 큐알코드 또는 아래 링크를 확인해 주세요. EP2. 문학창작지원사업 링크 : https://url.kr/5xihvs ‘기형도 시인학교’는 (재)광명문화재단이 문학 분야의 인재 양성과 지역 문학의 진흥을 위해 운영한 프로그램이야. 올해(2024년 기준)로 2회를 맞는 ‘기형도 시인학교’는 많은 시민과의 만남을 위해 다양한 계층과 예술 장르, 장소 등을 고려해 9개의 프로그램을 구성했지. 강의는 창작 수준을 고려하여 ‘기초반’, ‘창작반’, ‘합평반’, ‘동시반’으로 개설했어. 또한 기형도 시인의 문학 정신을 알리고자 시민문화플랫폼 공간에서 ‘학교 밖 이야기’, ‘한 뼘 교실’을 진행했으며, 그림으로 느끼는 기형도 시인의 작품 전시회 ‘시:리즈’도 선보였어. 그중, 문장이는 ‘시 합평반’을 신청했어. 총 7회차의 수업으로 구성되었으며 강사진은 이수명 시인, 이소호 시인, 서윤후 시인이야. ▲참가 자격 1. 자신의 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싶은 분 2. 시 창작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싶은 분 3. 시 쓰기를 사랑하며 등단을 희망하는 열의가 있는 분 ▲신청 방법 수강신청서 1부, 본인 창작시 1편, 이메일 제출 지정 양식 다운로드 : 기형도문학관 홈페이지 >교육 및 행사 > 예정 프로그램 이메일 : kihyungdomuseum@naver.com ▲선정 방식 기본기 및 충실성(20), 예술성 및 우수성(50), 기대 가치(30) ▲모집 인원 성인 15명 1~3회차는 강사별로 시 창작 강의를 하였고, 4~6회차는 그룹 합평, 마지막 7회차는 전체 합평 및 마무리 담화를 나누었지. 이수명 시인은 ‘시의 오해와 이해’를 주제로 시 창작 강의를 했어. ‘시에 대한 오해’, ‘시 쓰기에 대한 오해’에 대해 강연하며 이수명 시인만의 시론을 펼쳤지. 이소호 시인은 기형도를 비롯한 기성 시인의 작품을 낭독한 후, 수강생들과 함께 감상을 나눠 보는 시간을 가졌어. 또한 이소호 시인의 초고 작품을 읽고 문장을 지워보는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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