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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무리

  • 작성일 2023-10-06
  • 조회수 604

우주의 무리

이라야


   또 말썽이다. 익숙지 않은 무리 생활. 교실에 들어서며 눈이 마주친 저 녀석과 어설프게라도 아는 척해야 하는데 도통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 뻑뻑한 관절에 수액이라도 공급하고 왔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나저나 이런 형식적인 인사가 동지애인지 우정인지 우호의 상징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투혼인지 모르겠다. 

   교실 문을 열었을 뿐이다. 턱. 아둔한 문소리에 녀석이 고개를 돌렸다. 추적된 이름 허태웅. 구지중학교 3학년 3반 22번. 우주로 변한 내가 앉을 좌표에서 뒤로 두 칸, 옆으로 세 칸 자리에 앉는 녀석이다. 그러니까 교실 뒷문 바로 옆. 

   아는 정도 99 웃는 표정 95 대화 98 어울림 98 관심 93 소통 99. 이 수치는 우주가 녀석에게 보였던 표면적 수행 내용이다. 우주의 내면? 내 알 바 아니다. 우주에게 전송받은 데이터에만 충실할 뿐이다. 지금은 그것도 버겁다. 

   눈꼬리를 내리고 입꼬리를 올리자 얼굴 근육이 불편한 듯 자세를 비틀었다. 태웅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외계인인 내 정체를 눈치챈 건 아닌가 뜨끔했다. 

   “전학 안 갔냐?”

   다행히 태웅이는 나를 우주로 딱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가진 정보로는 이 질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눈에 실핏줄이 빨갛게 올라오는 걸 보니 녀석은 불안한 모양이다. 내 팔을 잡은 녀석의 손끝에서 힘이 느껴졌다. 내 몸은 이를 공격 신호로 받아들였다. 급하게 태웅이 손아귀를 뿌리치자 내 몸에 거칠게 퍼지던 방어용 감마파가 일순간 멈췄다. 

   자리로 가려는데 반 아이들 시선이 내게 쏠렸다. 스무 명 남짓 사십여 개의 눈빛이다. 또 시끄럽게 생겼다, 달갑지 않다, 어이없다 같은 못마땅한 감정이 내 몸뚱이 여기저기에 꽂혔다. 무리의 속성인가. 이유와 원인을 불문하고 승자에게 대동단결하는 무자비함. 

   내가 자리에 앉자 나를 과녁 삼아 일제히 눈총을 겨눴다. 이쯤 되면 나름의 질서이다. 무리 생활에서 보일 법한 거창한 의전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시시하다.

   선생이 들어오자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자세를 고쳐 앉았다. 리더에게 보내는 형식적 의식. 메마른 존경과 바닥난 진정성으로 반 아이들은 버석거리는 감정의 가루를 모으고 있다. 무표정으로 덧칠한 얼굴에 조롱을 숨긴 채.

   선생에게선 지겨움과 노곤함이 감지됐다. 리더의 호기로움이나 활력은 없다. 자신이 이끄는 무리에게 호의를 보이는 건 사치인가? 이 무리에 속하는 첫날이라 머릿속이 복잡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선생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우주를 바라봤던 저 시선. 무조건 반사로 움츠러들었을 우주의 세포들. 지금 우주로 변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내가 외계 행성에서 온 생명체라는 걸 알면 저 눈빛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졌다. 

   “우주는 문제 키우지 말고….”

    무관심 99 냉정 100 동정 1.5 호의 0.7 이기심 98.5 퍼센트. 우주와 링크했을 때 전달받은 선생 데이터는 정확했다. 그러고 보니 우주는 상대를 잘 파악하는 애였다. 그럼 남의 비위도 잘 맞췄겠다. 상대 성격을 알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게 무리 생활의 기본이자 철칙 아니던가. 그렇지 않으면 도태 혹은 멸종. 

   “아직 이 학교, 3학년 3반이라는 말이다.”

   선생 말투에는 우주를 자기 책임하에서 떨궈 버리지 못한 통한이 서려 있었다. 하긴 선생은 아직 우주의 미필적 고의 사고를 모른다. 


   우주는 어제 전학하려는 학교에 갔다. 그런데 담당자가 지금 기말고사 기간이니 사흘 후에나 전학 가능하다고 했다. 난감한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 끝에 선생에게 길게 문자 보냈다. ‘ㅎ 알았다. 내일 학교 와라.’ 위로를 기대한 건 아니지만 냉소적인 선생 문자에 우주는 소름이 돋았다. 얼음 언 강 한가운데 맨발로 서 있는 느낌. 쩌억. 얼음에 금 가는 소리를 듣고도 움직이지 못하는 공포를 고스란히 감당하는 두려움. 그래서 혼자가 무섭다는 걸 아는 사람은 절대 혼자이고 싶지 않다. 단연코!

   쾅! 심각한 오토바이 사고는 아니었다. 응급실 의사가 내린 진단명은 타박상. 우주 보호자는 어차피 전학 처리가 될 것이니 사고 소식을 선생에게 알리지 않았다. 선생을 불신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니 지금 선생은 전학 처리가 안 돼 우주가 다시 학교에 나온 줄로만 안다. 사고 직후 나는 우주의 부탁으로 우주가 되었다. 길면 삼 일 정도. 어쩌면 하루.


   1교시 수업 시작 전 태웅이와 지수가 내게 다가왔다. 우주가 버티지 못한 무리에서 나는 잘 버텨 보겠다고 다짐했지만 다가오는 태웅이는 독사처럼 보였다. 혀끝에 촉을 세우고 기어드는 꼴에는 승자의 비열함이 숨어 있었다. 나는 내가 여기 온 목적을 떠올렸다. 무리에 적응하기. 

   “미안했다. 지웠지?”

   태웅이가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나는 두 단어의 연관성을 알 수 없었다. 지수가 건들거리며 나를 툭 쳤다.

   “그래. 우리만큼 친한 사이가 어딨냐? 네가 이해해. 어느 철학자인가 박사인가 교수인가가 그랬다. 친구 사이에는 미안하다고 하는 거 아니라고. 그런데도 이렇게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친구를 넘어 그 뭐냐….”

   “조용히 해 인마. 너 때문에 될 것도 안 돼!”

   을러대는 태웅이 주먹이 지수 입을 막았다. 

   “아, 그래. 그럼 조용히 해야지.”

   지수는 입술을 입 안으로 몰아 넣었다. 싱거운 녀석. 저절로 콧방귀가 뀌어졌다. 태웅이는 초조한지 검지로 책상을 콕콕콕 찍었다. 지수는 내 등을 콕콕 찔렀다. 얼른 대답하라는 뜻인 것 같았지만 의미도 모르는 말에 내가 할 대꾸는 없었다. 

 

   수업 시간 내내 우주에게 넘겨받은 데이터를 정리했다. 우주 기억 속 데이터가 내게 넘어오는 시간을 줄이려 전송 속도를 높였더니 모든 자료가 압축되어 버렸다. 더구나 전송되고 있는 와중에 우주 몸에 경련이 일어났다. 그 바람에 데이터가 끊기고 엉키고 일부는 날아갔다. 그래서 태웅이가 무엇을 미안해하고 무엇을 지웠냐고 묻는지 찾을 수 없었다. 급한 대로 태웅이 데이터만 불러냈다. 덩달아 지수 데이터가 따라붙었다. 윤희찬 자료도. 그런데 윤희찬 얼굴이 스치면 영상에 노이즈가 생겼다. 우주의 정신 작용인지 단순한 데이터 오류인지 모르겠다. 


   태웅이 데이터는 142일 전부터 시작됐다. 그러니까 3월 2일.

   급식을 받은 우주는 두리번거렸다. 다들 널찍한 테이블을 한 명씩 차지하고 있었다. 밥을 받은 아이들이 그 사이사이를 채워 앉았다. 우주는 어디로 발을 옮겨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침도 걸러 배가 고팠지만 차라리 굶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주를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가 보였다. 입이 터지게 음식을 넣고 오물거리면서 자기 옆 의자를 탁탁 쳤다. 우주는 못 본 척할 수 없어 그리로 갔다. 

   “3반이지. 나도 3반. 허태웅. 너는?”

   우주는 머뭇거리다 자기 이름을 말했다. 

   “성이 우, 이름이 주?”

   이름에 관심을 보이는 태웅이 질문에 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태웅이가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우주는 죽어도 말하기 싫은 자기 성을 가까스로 읊조렸다.

   “성은… 소.”

   “소? 그럼 소우주? … 이야! 이름 멋지다!”

   낄낄거릴 줄 알았던 태웅이 반응은 의외였다. 우주는 초등학교 시절과 전학 오기 전 중학교에서는 소우주라는 이름으로 계속 놀림받았다. 이름에 걸맞게 키도 작고 왜소한 체격은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손을 타기에 아주 딱 좋았다. 소우주 주제에 공부한다고 툭툭 치고 귀여운 인형이라도 주어진 듯 우주를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며 가지고 놀았다. 하지 말라고 소리라도 지르면 까불지 말라고 무시당했다. 그렇게 소우주에서 떠돌이 행성으로 혼자 떨어져 살다가 고등학교 진학을 핑계 삼아 도망치듯 전학 왔다. 그런데 멋지다니. 일순간 우주는 태웅이에게 녹아 버렸다. 

   우주는 다른 지역에서 왔기에 아직 친구가 없고 이 지역을 잘 모른다는 둥 자기 상황을 찬찬히 설명했다. 태웅이는 우걱우걱 밥을 먹으며 건성으로 듣더니 간단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나랑 비슷하네. 친하게 지내자.”

   뭐가 비슷하다는 건지 태웅이는 자기 상황은 말하지 않았다. 다만 세상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지만 게임도 좋아한다고 했다. 태웅이 앞에 있던 아이가 게임 이름을 대며 끼어들었다. 서지수였다. 게임 레벨과 아이템을 이야기하는데 우주도 즐겨 하는 게임이라 서로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주가 지수 옆에 있는 아이에게 시선을 돌리는데 영상 데이터가 지글거리다 꺼져 버렸다. 희찬이? 동그랗고 통통한 얼굴이었다. 확실하지 않지만 우주에게 웃어 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영상을 정상 작동시키려 했으나 헛수고였다. 희찬이가 플레이되면 영상이 어김없이 지글거렸다. 


   쉬는 시간에 윤희찬을 찾았다. 대놓고 누구냐고 물을 수가 없어 이름표를 보고 다녔다. 그런데 3반 아이 중 희찬이는 없었다. 내가 왜 희찬이를 찾아야 하는지 나도 몰랐다. 우주의 무의식이 희찬이를 부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내게 시급한 건 희찬이 찾기보다 일단 무리 이루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종족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인간들이 지구의 열악한 환경과 낮은 지능에서도 살아남은 까닭은 무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무리의 이점이 아니었다면 벌써 우주 행성 누군가의 배설물이 되었겠지. 그런데도 지구인들은 무식해서 용감한 건지 태양계 최강 생명체인 양 행세한다. 그래서 행성계에서 지구를 끼워 주지 않는다. 그러니 독자적으로 우주를 개발한다고 난리를 떠는 거다. 우습다. 

   비웃음을 머금고 교실을 빙 둘러보는데 아이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외계 행성이 지구를 보듯 한심하게. 그때야 알았다. 반 아이들이 우주에게 어떤 눈치를 퍼부었는지. 뒤섞인 아이들 전자파에서 ‘지금도 억울하냐?’, ‘잘해 주니까 뒤통수친 자식.’ 같은 말들이 날카롭게 튀어 올랐다. 아직 그 사연을 알 수 없으니 태연한 척해야 했다. 책상 속을 더듬거리는데 손에 작은 천 조각이 잡혔다. 부드럽지 않았다. 뻣뻣하고 거칠고 우둘투둘했다. 그것을 꺼내려는 찰나에 태웅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왠지 천 조각을 들키면 안 된다는 느낌. 우주의 무의식까지 전송되는 건가. 이제껏 인간과 링크했을 때 이런 적은 없었다. 나는 가만히 천 조각을 주먹에 말아 쥐었다. 

   태웅이는 주변 눈치를 살피더니 아이들 시선이 집중돼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학교 끝나면 거기로 와라.”하고는 가 버렸다. 거기란 말에 나는 또 걸리고 말았다. 여기서 나는 무리 속 생존 법칙을 하나 터득했다.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말이 있다.’ 이것을 모르는 자들은 무리에 들 수 없다. 아니 끼워 주지 않는다. 무리에서 따돌릴 때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던 슬아 사건도 떠올랐다. 하나의 합집합인 줄만 알고 있던 무리 안에 교묘한 교집합이 숨어 있음을 알려 준 슬아. 그나저나 슬아는 이제 혼자 되는 무서움에서 벗어났는지 아니면 아직도 무리에서 애쓰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차게 혼자 웃어 보면 좋겠는데 무리 생활을 안 해 본 내가 너무 쉽게 슬아를 믿은 건 아닐까. 이처럼 생각보다 복잡한 무리 생활인데 말이다. 


   말아 쥐었던 주먹을 풀자 자주색 바탕에 노란색 글씨가 새겨진 이름표가 나왔다. ‘윤희찬’ 그 이름을 되뇌자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생기며 복잡한 흥분이 일었다. 이들 무리 안에서 희찬이와 우주는 어떤 관계였는지 궁금해졌다.

   다음 수업 시간에 영상 데이터가 순조롭게 플레이되었다. 선생이 책도 안 꺼냈다고 야단쳤지만 나는 가만히 있었다. 내 태도에 화가 치민 선생은 이렇게 학교 생활하면 사회에 나가 놈팡이 된다며 인생에서 뭘 기대하고 사느냐고 악담을 퍼부었다. 

   무리에서는 어느 방식으로든 상대를 제압하고 밟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인가. 이건 반드시 검증해 봐야겠다고 메모 영역에 고정 편집했다. 선생이 수업 시간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고 언성을 높이자 지수가 “걔, 내일모레 전학 가요!”라고 외쳤다. 선생은 그 말이 무슨 사망 선고라도 되는 양 입을 다물었다. 무리를 이탈하는 자에게 관심 없다는 뜻이었다. 


   다시 재생된 영상에서 우주는 밝아 보였다. 부모는 마트를 운영했다. 둘 다 집에 늦게 오고 일찍 나갔다. 가족 영상이 별로 안 나오는 것 보니 특별히 저장해 놓은 기억이 없는 것 같았다. 끼니는 주로 편의점에서 때웠다. 브랜드별로 애용 식품을 정해 놓고 먹을 만큼 자주 들락거렸다. 처음에는 혼자 가던 편의점을 날짜가 지날수록 지수, 태웅이와 함께 갔다. 희찬이가 낀 날의 영상은 어김없이 노이즈가 생겼다. 유심히 보니 기억에서 지웠다 다시 복원한 자국이었다. 

   나는 노이즈 틈으로 보이는 희찬이 눈, 코, 입, 이마, 턱을 조합했다. 키는 태웅이와 비슷했는데 몸집은 가늘었다. 어깨는 각이 졌고 등뼈는 꼿꼿했다. 전체적인 이미지를 스캔해 분석하니 고집과 깡다구 역량이 가장 높게 나왔다. 그래서인가 노이즈의 불안정함만큼이나 희찬이는 태웅이와 자주 부딪혔다. 둘이 다투면 두말할 것도 없이 지수는 태웅이 편이었다. 무조건 태웅이 뜻에 찬성하고 그 말이 맞다고 했다. 의견을 하나로 모으자면서. 우주는 둘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희찬이를 설득했다. 참으라고 양보하라고. 그러면 희찬이가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어색하게 화해한 며칠 뒤면 또 싸웠다. 

   그날도 희찬이는 단호한 표정으로 태웅이에게 맞서더니 편의점 앞에서 친구들과 헤어졌다. 지직거리는 화면에서 희찬이가 벗어나자 미간을 찌푸리며 씩씩대는 태웅이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쿵, 쿵, 쿵 우주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박동 소리가 영상을 집어삼킬 정도였다. 심리 불안을 반영한 듯 우주 시야가 파르르 떨렸다. 그날 편의점 계산대 앞에 선 우주 목소리는 아주 또렷했다. 

   “내가 사 줄까?”

   태웅이는 꺼내려던 카드를 얼른 집어넣었다. 기억 영상에서 말소리가 이렇게 또렷하게 들린다는 건 그만큼 여러 번 되살렸다는 거다. 잊지 않으려고 그랬는지 후회하는 것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날짜를 확인하니 3월 20일이었다. 

   이후 영상 데이터는 평범한 무리 생활의 모습이 그려진다. 같이 밥 먹고 쉬는 시간마다 붙어서 얘기한다. 지수가 먼저 태웅이랑 얘기하고 있으면 우주가 다가갔다. 우주와 지수가 함께 있으면 태웅이가 나타난다. 점심시간은 어김없이 함께 시간을 보냈다. 희찬이는 끼다 안 끼다 했다. 그래도 그들 무리에서 빠지진 않았다. 학교가 끝나면 휴일에 만나 게임을 하기도 했다. 어울림. 무리의 가장 흔한 특징이다.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같은 장소에 머문다. 그래서 서로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는가. 연합 작전이 가능한가. 각자도생하는 우리 종족이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무리 속 생존 방식이 조금 감이 잡힌다. 하지만 이들이 결속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다. 비슷하고 지루한 일상으로 흘러가는 영상 데이터를 빨리 돌렸다. 그리고 스톱. 

   노이즈가 심하게 일었지만 화면 가득 화난 희찬이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우주는 또 초조한 기색으로 희찬이를 달래고 있었다.

   “친그—아. 네—ㅏ 조 차마-----지.”

   우주는 같은 말만 반복했다. 희찬이는 심한 노이즈 속에서 더는 감당 못 하겠다는 듯 양 손바닥을 위로하고 몇 번을 세게 흔들어 댔다. 희찬이가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앞부분으로 돌렸지만 내 기억이 아니라 다시 재생되지 않았다. 확인하려면 다시 우주와 링크해야 한다. 내게 그럴 시간은 없다. 우주에게도. 


   점심시간이다. 아이들이 급식실로 향했다. 복도로 나가며 지수가 “우주야!”하고 부르더니 따라오라고 고갯짓을 했다. 못 이기는 척 뒤따랐더니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한걸음 떨어진 곳에서 태웅이가 자기편 동지를 맞이하듯 우호적인 손동작을 취했다. 그런데 그 주위를 둘러싼 아이들은 모두 나를 비웃고 있었다. 아직 무리 생활에 적응 안 된 나는 이 수상쩍은 기운을 버틸 수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홱 돌아서니 당황한 지수가 내 뒷덜미를 잡았다. 팔을 휘젓는 순간 공격용 마이크로파가 뿜어 나왔다. “아악!” 지수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손을 털었다. 

   “야!”

   태웅이 소리쳤다. 지수는 자기 손목을 잡고 방정 떨었다. 

   “야, 야. 쟤, 몸 이상해. 내 손 감전된 것 같아. 찌릿, 아니 짜릿 아니 쩌릿? 야, 야, 더 심한 표현 뭐 있냐… 어? 어?”

   복도를 가득 채운 아이들이 내가 지나갈 길을 열었다. 차라리 나는 이런 상황에 더 익숙하다. 내 몸에는 아직 각개전투의 피가 흐른다. 무리의 속성을 깨우치지 못한 독고다이 정신. 

   급식실과 강당 사이 운동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았다. 학교 끝나기 전까지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희찬이를 찾는 것과 태웅이가 말한 거기가 어디인지 알아내는 것.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우주는 처음 본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것이 너무 신선했다. 나는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 본 적도 없고 도움을 청한 적도 없다. 우리 별에서는 그게 당연하다. 그래서 적들이 쳐들어왔을 때 무차별하게 죽어 나갔다. 무기나 힘에 당한 게 아니다. 우리는 무리가 아니었고 공생을 몰랐다. 

   내가 살던 행성은 강한 전자파에 둘러싸여 비교적 안전했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면서 만족스럽게 사니 불만도 없었다. 하지만 한 무리의 공격으로 전자파 벽이 뚫리고 독자 생존하던 우리 종족은 무차별한 공격에 죽임을 당했다. 내가 가까스로 적 중의 한 놈을 잡고 우리 별을 공격한 이유를 물었다.

   “이유? 없어. 굳이 이유를 찾자면 우리 무리가 심심하다는 것. 아, 어쩌면 혼자 잘 노는 꼴이 보기 싫다고 해야 하나? 뭐 이유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지. 아무튼 너희 종족은 뛰어난 감각을 지녔지만 독립적이지. 그래서 우리 같이 무리 생활하는 자들의 먹잇감으로 딱이라고. 포위당하면 혼자서 당해 낼 재간이 없잖아?”

   그는 아주 당당했다. 내가 절대 자신을 헤칠 수 없다고 장담했다. 같은 편이 없으니 용기가 없고 공격해 본 적 없으니 속수무책이란다. 

   “그러니 네가 당하는 수밖에. 우리 무리는 의리로 나를 찾을 것이고 무리의 이름으로 널 압사시켜 버리겠지. 너는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버티다가 스스로 나가떨어지게 되어 있다고. 그렇게 죽어 나간 것들이 어디 한둘이겠어?”

   나는 그 길로 도망쳤다. 

   태양계를 헤매다 만난 우주 여행자는 지구에 가 보라고 했다. 약하고 순한 인간들이 무리 생활로 자신을 지키며 생존을 위한 최적의 수단으로 무리를 선택했다고 들려주었다. 살아남기 위해 어떤 형식으로든 무리 짓기를 멈추지 않으며 무리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시간과 생각을 포기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포기하기도 한다고 했다. 무리에 속하지 않는 인간은 어떻게 되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자네가 무리에 속한 적이 없어서 모르나 본데 무리란 말이지 아주 무서운 형태야. 살아남게도 하지만 죽게도 만들지. 좁고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외로움을 주기도 해.”

   그의 말은 모호했다. 죽을 수 있는데 왜 무리에 속한단 말인가. 서로 도우며 사는데 왜 무섭단 말인가. 무리에 속하면 함께 살아갈 동지가 생기는데 왜 외롭단 말인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는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가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나는 그 길로 지구로 향했다. 

   우리 종족은 자력 보호 유전자를 가졌다. 어느 별에 가든 그 별의 종족과 같은 형태로 겉모습이 변한다. 이상 생명체라는 징후가 전혀 나타나지 않도록 링크를 걸어 특정 인물의 기억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기억을 되새기는 것처럼 영상 재생도 가능하다.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몸을 스스로 지키려는 방법으로 선택한 진화이다. 


   처음 지구에 도착한 건 한 달쯤 전이다. 눈에 띄지 않도록 투명체가 되어 돌아다녔다. 과연 인간은 무리의 존재였다. 어디를 가나 삼삼오오 무리 지어 다녔다. 공원에서 함께 운동도 하고 음식점에도 같이 갔다. 같은 옷을 입고 우르르 몰려가기에 따라가 봤더니 서점에 갔다. 책은 한 명만 샀다. 또 우르르 나와서 아이스크림을 모두 하나씩 사 먹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누구랑 같이 무언가를 해 보지 않은 나는 그런 상황이 몹시 불편해 보였다. 내 삐딱한 시선 때문일까. 그 무리 중 몇몇 얼굴에서는 불만이 깃든 표정이었지만 묘한 안정감이 엿보였다. 경기장에서 만난 무리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고 한목소리로 응원하고 있었는데 그 환호성에서 이제껏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결집력을 느꼈다. 무리의 유대가 위대해 보였다. 나도 무리 속에서 그 희열을 맛보고 싶었다.

   나는 직접 무리 속에 들어가 탐색하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다 여자아이를 만났다.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팔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손에는 샤프가 들려 있었다. 나는 조심히 전자파로 아이 뇌에 링크를 걸었다. 바로 직전의 기억부터 역순으로 전송되었다. 

   투명체였던 내 몸이 어느새 아이와 똑같아졌다. 그런데도 아이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듯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혼잣말을 했다.

   “어떡해…. 괜찮아? 괜찮지. 괜찮아, 괜찮아야 해.”

   그 애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데도 이를 앙다물며 참았다. 악착같이 버틸 거라고, 숨이 안 쉬어질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살아남을 거라고 그 눈이 말하고 있었다. 

   “힘들구나.”

   내가 해 줄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자 부르르 떨며 손에 쥔 샤프를 팔에 갖다 댔다. 내가 그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차라리 울어. 그래도 돼.”

   그제야 아이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한참 뒤 울음이 진정되자 멀리 떠나고 싶다고 했다.

   “나 혼자라는 사실을 내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애 이름은 슬아였다. 

   나는 슬아로 살기 위해 전송받은 데이터로 슬아 기억을 되살렸다. 무리 생활을 하기에는 학교가 최적화되어 있었다. 끼리끼리. 밥 먹으러 갈 때도 쉬는 시간에도 등, 하교할 때도 삼삼오오 아니면 무리 지어 다녔다. 

   처음 슬아도 안전한 무리를 가진 명랑한 친구였다. 늘 함께하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날마다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슬아는 외톨이가 되었다. 갑자기, 문득. 그 이유를 슬아는 몰랐다. 

   슬아를 뺀 다른 애들 네 명이 자기들만 속닥이며 얘기를 나누고 슬아가 무슨 얘기냐고 물으면 넌 몰라도 된다면서 알려 주지 않았다. 자기들끼리만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도 함께 갔다. 왜 안 불렀냐고 슬아가 물으면 전화했는데 안 받았다고 억지를 부렸다. 슬아의 폰에는 전화도 메시지도 온 내력이 없었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지만 슬아는 아는 척할 수 없었다. 아는 척하는 순간 정말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무것도 모르는 척해야 했다. 하지만 슬아가 돌아서면 어김없이 뒤에서 애들이 빈정거렸다. 

   “봐, 봐. 내가 뭐랬어. 쟨 눈치도 없다니까.”

   슬아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니 슬아는 점점 혼자가 되어 갔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했다. 고민 끝에 나름의 해답을 가지고 친구에게 다가갔지만 확실한 오답임을 알고 좌절했다. 그럴 때마다 자기 팔을 그었다. 아픔이 아직 살아 있다고 알려 주었다. 살 틈새를 비집고 올라오는 빨간 피가 희망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슬아가 된 내가 학교에 가자 아니나 다를까 같은 무리가 다가왔다. 다짜고짜 어제 아이스크림 가게에 왜 안 왔냐고 물었다. 안 와서 걱정했다며 정말 맛있었는데 다음엔 꼭 같이 먹자고 했다. 아주 순수하고 맑은 얼굴들이었다. 순간 어쩌면 슬아가 이 아이들을 오해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가 미안한 표정을 짓자 그 무리가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흘렸다. 소름을 넘어 섬뜩함이 느껴졌다.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다리가 휘청거렸지만 차마 자리를 뜨지 못하고 슬아처럼 가까스로 버텼다. 무리의 속성에 적응하기 위해. 

   학교가 끝나자 무리 중 한 명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휴대폰을 내게 맡겼다. 채팅창이 열려 있었다. 슬아를 뺀 네 명이 들어 있는 방이었다. 슬아를 어떻게 놀릴까 작전을 짜고 맘껏 비웃는 공간이었다. 위로 올려 읽어 보니 슬아가 무리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이유는 다른 무리의 아이를 챙겨 줬다는 이유였다. ‘주제 파악을 못하는 애’로 낙인찍고 아주 조직적으로 똘똘 뭉쳐 슬아의 뒤통수를 치고 있었다. 무리에 의한 무리를 위한 무리의 공격. 

   슬아가 왜 팔을 그었는지 알 것 같았다. 나 또한 차오르는 분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무리 생활이 이토록 졸렬한 기품을 지니는 것이라면 거부하고 싶었다. 

   며칠을 지켜보니 무리는 어느 순간에는 함께 소리 지르고 의기투합하며 대동단결하는 것 같지만 무리 중 일부와 조금이라도 감정이 상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싸웠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져 또 다른 무리를 만들어 냈다. 무리는 구심점을 중심으로 모이되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하나의 무리가 되면 떨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매달렸다. 피곤했다. 무리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파도처럼 휩쓸려 다니는 꼴을 보려니 스트레스를 받았다. 

   슬아는 일주일 후 돌아왔다. 

   “나 대신 사느라 애썼다.”

   싱겁게 웃는 슬아에게 이전과는 다른 에너지가 느껴졌다. 내가 신기하게 바라보자 슬아가 이를 눈치채고 후련한 숨을 토해 내더니 말했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 같아서 무리에 매달렸던 것 같아. 무서웠어. 얼룩말처럼 두려움이 큰 애들이 무리를 못 떠나는 것인데 말이야.”

   슬아는 무리에서 떨어진 자신을 다른 애들이 어떻게 볼까 무섭고 팽 당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겁이 났다고 했다. 

   “나는 이제 다른 방법으로 애써볼 작정이야. 계속 다른 애들만 쳐다보면서 살 수 없잖아. 한껏 웅크리고 생각해보니 이제껏 나 자신을 한 번도 제대로 봐 준 적이 없더라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혼자 있는 시간에 뭘 하고 싶은지. 먼저 나를 보고 쓰다듬어 주었어야 했는데.”

   앞으로는 자신을 자주 봐 줘야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잘못하면 스스로 손도 봐 준다고 했다. 그 말의 뜻을 못 알아들은 내가 손을 가까이 들여다보자 슬아가 못 말린다는 듯 내 손바닥을 탁 쳤다. 나는 슬아가 버텨 낼 그 무리를 떠올려 보았다. 쉽지 않겠지만 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그래, 응원할게.”

   내 말에 슬아는 오월의 강바람처럼 웃었다. 어디를 다녀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방에 틀어박혀 무리 생활하는 동물들을 탐구했을지도 모른다. 가상의 무리와 사투를 벌인 끝에 이기고 돌아왔거나 산이든 바다든 혼자 돌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혼자 있어도 즐거울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주려다 말았다. 그것을 알아냈을 때 느끼는 감격이란, 세상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크니까 말이다. 

   슬아는 딱지가 앉은 팔의 흉터를 보여 주더니 이제 이런 일 없을 거라며 미련 없이 가 버렸다. 슬아 뒤로 당찬 바람이 불었다. 

   나는 다시 투명체가 되었다. 우주를 만난 건 하필 내가 우주와 같이 횡단보도를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피했고 우주는 멍하니 서서 사고를 당했다. 그래서 미필적 고의 사고이다. 우주는 쓰러졌고 구급차가 왔다. 굽어보는 내 팔을 우주가 잡았다. 

   ‘도와줘.’

   우주의 뇌파에서 전해진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허공에 대고 한 말인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잡고 싶고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하고 싶었던 거다. 그것을 내가 들었고 거기에 내가 있었다. 우주의 간절한 눈빛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나는 전자파로 우주 데이터를 수신하고 우주가 되었다. 병원에 도착한 우주는 정신을 놓았다. 


   수업 종이 울렸다. 병원에 누워 있는 우주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무의식중에도 뭔가를 계속 보내오는데 나는 감을 잡을 수 없다. 현관을 지나 교실 복도에 이르니 태웅이가 어깨를 걸었다. 예전처럼 잘 지내자고 했다. 살짝 긴장이 들어간 태웅이 말에서 예전이라는 단어가 귀에 콕 박혔다. 태웅이가 생각하는 예전은 언제이고 잘 지내는 건 어디까지인가. 우주도 같은 생각일까. 무리 안에서 관계는 하나로 통하는 것 같지만 어쩌면 일방적이거나 단절된 조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 역시 이를 너무나 잘 알기에 전전긍긍했던 것이고.

   과학 선생은 화면을 띄우고 인간의 감각기관을 설명했다. 경험으로 통달하지 못하고 밥 떠먹여 주듯 하나하나 알려 주는 교육이 신기했다. 유전적으로 이어받은 습성과 살면서 깨달은 지혜로 자생하는 우리 종족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살아가는데 너무 많은 걸 알 필요는 없다. 

   “졸지 마라.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을 부릅떠야 한다.”

   선생이 분필로 칠판을 두드렸다. 무리에서 경쟁은 필수 요소인가 보다. 그래서 싸우고 편을 나누는 건가? 어쭙잖은 무리에 끼려고 분투하는 건가? 무리 생활에 대한 기대가 컸던 나는 실망스러움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우주 데이터를 열었다. 5월 25일 이후 희찬이는 등장하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PC방이나 편의점에서도 노이즈가 안 걸리니 희찬이가 더 궁금해졌다. 우주와 태웅이, 지수는 늘 함께 다녔다. 학교 끝나고 태웅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모두 배가 고픈 듯 편의점으로 향했다. 계산은 늘 우주가 했다. “내가 사 줄까?” 이후로 몇 번인가 태웅이는 “나, 이거 사 줄래?” 묻더니 이제는 당연히 우주가 사 주는 꼴이 되었다. 

   비가 오는 날, 우산도 없이 편의점에 뛰어갔다. 이것저것 고른 태웅이는 계산대 위에 쌓아 놓고 배고프니까 빨리 계산하라고 우주를 재촉했다. 우주가 머뭇머뭇 카드를 내밀었다. 잔액 부족으로 결재가 안 됐다. 태웅이는 눈을 흘기더니 나가 버렸다. 우주는 태웅이가 가져 온 물건들을 모두 제자리에 돌려 놓았다. 

   편의점을 나오자 비가 더 쏟아졌다. 태웅이는 전화로 지수에게 우산 좀 가지고 오라고 했다. 부탁인지 명령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지점에 있는 모호한 말이었다. 지수를 기다리는 사이 우주는 태웅이 눈치만 살폈다. 태웅이는 지수가 오지 않자 빨리 가서 게임 레벨 올려야 하는데 늦는다며 투덜댔다. 우주는 그 말에 반가운 손님 맞듯 대꾸했다.

   “내가 해 줄까?”

   이 말도 여러 번 반복해서 되새겼는지 또렷이 들리는 말소리에 살짝 크렉이 갔다. 태웅이는 좋다고 했다. 자기 아이디와 비번을 알려 줬다. 얼마까지 올릴 거냐고 물었다. 

   집에 온 우주는 곧장 컴퓨터를 켜고 게임에 들어갔다. 다음 날 학교에서 태웅이는 자기 레벨이 올라갔다며 우주를 얼싸안았다. 지수는 우주에게 엄지를 세웠다. 태웅이 환한 웃음으로 영상이 줌인 되자 태웅이는 오늘도 레벨 올려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우주는 흔쾌히 “그래!”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태웅이는 반 아이들 앞에서 ‘우주 최고!’를 외쳤다. 국어 수행에는 고마운 친구라며 우주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다. 게임이나 편의점 이야기는 빼고 자기를 위대하게 만들어 주는 친구라고 어찌나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썼는지 우주도 놀랐다. 

   학교에서는 늘 태웅이가 우주를 챙겼다. 지수도 덩달아 붙어 다녔다. 우주는 아이들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자 좋았다. 태웅이랑 함께 다니면서 인정받으니 나쁘지 않았다. 우주의 레벨 올리기는 매일 계속됐다. 학교 끝나고 학원 갔다가 집에 오면 게임에 매달렸다. 주말이면 태웅이에게 새벽 6시에 메시지가 왔다. 

   ‘일어나. 할 일 해야지.’

   다시 깜빡 잠이든 우주 꿈에 그 글자가 점점 커지면서 검은 악마로 변해 우주를 덮쳤다. 일어나니 8시였다. 휴대 전화엔 7통의 전화, 23통의 비밀 채팅이 태웅이에게 와 있었다. 우주는 주말 내내 게임에 매달렸다. 태웅이가 원하던 레벨까지 올려놓으니 일요일 밤 11시였다. 우주는 보호자가 집에 오는 11시 30분 직전에 책을 펼쳤다. 

   월요일 태웅이는 우주를 보자마자 업고 교실에 들어갔다. 아이들은 이유도 모르고 태웅이가 “우주! 우주!”를 외치자 따라 환호했다. 이제 더는 못 하겠다고 말하려던 우주 계획은 웃음과 함께 날아갔다. 

   “너도 그 아이템 봤지? 멋지지?”

   태웅이가 급식에 나온 고기 조각을 우주 밥 위에 얹으며 물었다. 우주는 그 아이템 있으면 엄청 강해진다고 대꾸하다 말을 멈췄다. 

   “우리 그거 사자.”

   그러기 위해서는 며칠 밤을 새워야 한다. 고기를 씹으며 우주는 마지막으로 이번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주는 해냈다. 태웅이는 실제로 그 아이템을 장착이나 한 듯 우쭐댔다. 


   과학 수업이 끝났다. 지수가 실실 웃으며 다가왔다. 

   “우주야. 태웅이가 진짜 미안한가 봐. 일 더 크게 안 벌여서 고맙다고. 자기가 아이템에 꽂혀서 잘못했다고. 비밀 채팅만 지워 달라는데. 지웠지? 영 찜찜한가 봐”

   지수가 말하는 틈에 돌아보니 태웅이는 나가고 없었다. 나는 고민하다 일부러 의식을 놓아 버린 우주를 떠올리고 말을 꺼냈다. 

   “희. 찬. 이.”

   “어? 너, 목소리 왜 그래?”

   인정한다. 내 목소리는 인간과 다르다. 전자파가 몸에서 생성되는 우리 종족의 소리는 조합된 전자음 비슷하다. 감정이 격해지면 음파의 요동이 심해 갈라지고 휘어진다. 지수는 상당히 호들갑스러운 아이였다. 내 목소리가 성질 사나운 로봇 소리라며 “희찬이, 희찬이”하며 흉내 냈다. 당연히 나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태웅이는 내가 희찬이 이름을 꺼냈다는 사실에 더 관심을 가졌다. 왜 희찬이 얘기를 꺼내냐고 다그쳤다. 분명히 말하지만 희찬이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스스로 선택한 거라고!”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었다. 여자 선생은 차분한 목소리로 수업만 진행했다. 나는 영상을 앞으로 빠르게 돌리다 언뜻 희찬이가 보여 멈췄다. 노이즈는 걸리지 않았다. 자전거가 보이고 강도 보이고 사람들이 오가는 풍경이 보였다. 우주가 희찬이를 찾아간 거였지만 둘의 만남은 어색했다. 한참이 지나도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자 희찬이가 간다며 일어섰다. 

   “네 편 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주가 급하게 말했다. 

   “누가 내 편 들어 달래? 네 의견을 말하라는 것뿐이었어. 뱀 새끼 같은 지수 자식이야 그렇다 쳐도 너는 생각이 있을 거 아니야. 보는 눈도 있고. 그런데 왜 항상 내가, 아니 우리가 태웅이 말에 따라야 하냐고. 왜 만날 져 줘야 했냐고.”

   희찬이는 다시 앉았다. 솔직히 그때만 생각하면 자신이 못나 보여서 화나고 계속 양보와 사과를 유도한 우주에게 서운해 이 자리에 나와야 할지 고민했다는 사실까지 털어놓았다. 

   “대체 넌 왜 그런 거냐? 태웅이가 무섭냐?”

   “무서운 건 아니야. 그냥 우리가 깨지는 게 싫었어. 그러려면 누구든 하나가 져 줘야 하잖아.”

   “그게 왜 난데? 왜 태웅이가 지면 안 되는 거야? 어떻게 인간은 네 명인데 의견은 하나여야 해? 불만이 있어도 말 못 하고 그대로 따른다면 누구 문제냐? 다른 의견이라고 말한 사람 병신 만드는 거. 분명 태웅이가 틀렸는데도 편드는 너희에게 질렸다. 그러면 너무 비겁하지 않냐? 자신한테 부끄럽고.”

   희찬이는 학교 자퇴 후 검정고시 학원에 다닌다고 했다. 태웅이와 싸운 날 우주가 희찬이를 잡아끌고 말릴 때 떨어진 이름표를 보고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학교가 아니라는 걸 알았단다. 이름표가 떨어진 교복을 보는데 이쪽 가슴이 후련했다며 희찬이는 자기 왼쪽 가슴을 쳤다.

   “우리 학원….”

   ‘우리’라는 희찬이 말이 우주 귀에 무척 낯설게 들렸다. 

   “아무튼, 열세 명인데 특이한 건 각자 의견을 다 말해. 그리고 자기 생각이 맞다고 피 터지게 싸워. 나이 차 같은 것도 상관없어. 그냥 똑같은 사람으로 보는 거야. 웃기지.” 

   우주는 그제서야 희찬이 얼굴을 똑바로 봤다. 생기가 넘쳤다. 재밌냐고 물으니 살만하다고 답했다.

   집에 돌아온 우주는 다시 게임을 했다. 보호자가 들어오자 잠깐 책 보는 척하다 새벽까지 게임을 했다. 그 사이 태웅이에게 메시지가 왔다.

   잘하고 있지? 믿는다.

   레벨 얼마? 

   빨리 갖고 싶다. 

   설마 자는 거야? 아니지? 

   네가 말했으니 책임져라. 

   채팅은 밤 12시 30분 이후로 잠잠해졌다. 부재중 전화까지 모두 91통이었다. 새벽 3시가 넘어가며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싫은데 거부하지 못하는 자신한테 부끄러웠다. 태웅이가 겁나냐는 희찬이 말에 대답하지 못했지만 겁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냥 우리가 친구인 게 좋았어.”라고 혼잣말을 했다.

   결국, 우주는 약속한 게임 레벨을 올리지 못하고 학교에 갔다. 태웅이가 성난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가 소리 질렀다. 

   “난 세상에서 약속 안 지키는 사람이 제일 싫어! 대통령이든 선생이든 친구든!”

   지수는 옆에서 좀 열심히 하지 그랬냐고 깐족댔다. 

   “벌을 달게 받아야지. 학교 끝나고 거기로 와라. 알지?”

   태웅이는 뭔가 입으로 넣는 시늉을 했다. 


   나는 영상을 정지시켰다. 너무 화가 나는데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모르겠다. 게임을 하라고 지시하는 태웅인지, 레벨을 올려 준다고 제안한 우주인지. 고개를 돌려 태웅이를 보자 노트 필기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각 과목 선생님들이 인정하는 태웅이는 모범생이었다. 

   다시 영상이 플레이되자 태웅이가 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주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풋살장과 편의점이 있는 상가 건물 사이 좁은 공터였다. 플라스틱 의자가 서너 개 뒹굴듯 있었다. 

   “왜 빈손이야? 햄버거는?”

   지수가 달려들었다. 우주는 지수를 밀치고 태웅이 앞에 섰다. 

   “나, 더는 못 하겠어. 편의점도 햄버거도 게임도.”

   태웅이는 얼굴색을 확 바꾸더니 “뭐라고?”하면서 우주 어깨를 턱, 턱 밀쳤다. 우주가 뒷걸음치다 플라스틱 의자에 걸려 나동그라졌다. 태웅이는 의자를 집어 들더니 넘어진 우주 옆으로 던졌다. 또 하나 의자를 집어 드는 걸 지수가 말렸다. 

   “내가 사 달랬어? 내가 해 달랬어?”

   태웅이가 성난 원숭이처럼 빽빽댔다. 우주는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아이, 씨!”

   태웅이는 흙을 발로 차고는 가 버렸다. 우주는 쏟아진 흙먼지 때문에 기침이 나왔다. 눈으로 입으로 들어간 흙을 털고 뱉어 냈다. 그리고는 대자로 누워 버렸다. 차라리 후련하다는 표정이었다.

 

   다음 날, 모처럼 늦잠을 잔 우주는 헐레벌떡 학교에 갔다. 교실 문을 열자 아이들이 모두 돌아봤다. 태웅이와 지수는 선생 앞에 나가 있었다. 우주와 눈이 마주친 선생은 분이 차오른 표정으로 손을 까닥였다. 

   “너희 어제 싸웠어? 사진 찍히고 학교 폭력 아닌지 조사하라고 학교로 신고 들어왔단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아이들이 웅성거렸다. 

   “이 자식들 교실에서도 싸웠어?”

   선생은 반 아이들에게 태웅이, 지수, 우주 관계를 물었다. 애들은 태웅이가 우주한테 정말 잘해 줬다고 하나같이 말했다. 칭찬도 엄청나게 하고 아주 친했다고 했다. 애들 반응을 본 태웅이는 억울하다고 했다. 그냥 밀었을 뿐이라고. 우주가 약속을 안 지켜서 살짝 밀었을 뿐이라고 했다. 우주는 망설이다 게임 이야기를 꺼냈다. 

   “야. 네가 먼저 올려 준다고 했잖아.”

   태웅이가 버럭 소리치자 지수가 덩달아 거들었다.

   “언제나 우주가 먼저 해 주겠다고 했어요. 햄버거도, 편의점 과자도 먼저 사 주겠다고 했다고요. 우리는 나쁜 애들이 아니에요. 억울해요.”

   햄버거, 편의점까지 들춰내는 지수에게 태웅이가 인상을 팍 썼다. 

   선생은 우주에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우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태웅이와 지수, 우주가 함께 있는 채팅방을 선생에게 보여 주었다. 

   “그건 그냥 내가 지금 레벨이 얼마인지 아니면 자냐고 물어본 거잖아.”

   그랬다. 내용을 모르고 보면 태웅이 문자는 교묘하게 핵심을 벗어나 있었다. 선생은 우주를 보고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주는 자신을 몰고 간 상황을 좀 더 직접적으로 보여 주고 싶었다. 비밀 채팅을 열자 태웅이가 놀라며 우주 손을 잡았다. 선생을 등지고 서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미안해. 네가 불편한지 몰랐어. 네가 해 준다니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러라고 했던 건데. 내가 네 마음을 살피지 못했어. 네가 먼저 말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주는 황당했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 사과라니. 그런데도 선생은 단순한 다툼으로 결론 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학교 망신시키지 말고 학폭 같은 피곤한 일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반 아이들이 모두 있는 데서 선생은 우주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먼저 태웅이는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는 모범생이며 학교를 빛낼 학생으로 학교와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했다. 과학고 입학을 준비하며 내신 관리를 위해 전학 왔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우주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얘기였다.

   “아, 그리고 확실히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먼저 게임 레벨 올려 준다고 한 건 우주이고, 먹을 것도 언제나 우주가 먼저 사 주겠다고 그랬답니다.”

   이 말은 시끄럽게 해 봤자 당신 아들만 손해라는 협박이었다. 

   태웅이와 지수는 떳떳한 피해자인 양 떠들고 다녔다. 우주는 그 뒤로 학교에서 입을 닫았다. 태웅이와 지수 무리에서 벗어난 우주는 수근거림과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다. 막무가내로 우주가 친구를 그것도 절친을 배신한 것으로 몰아갔다. 우주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뒤 갈피를 잃어버렸다. 존재가 외면당하며 보이지 않는 배척의 기운에 밀려나며 학교를 시름시름 앓듯이 다녔다. 그리고 6월 28일 우주는 전학을 결정했다. 보호자는 몇 개월만 버티라고 했지만 우주는 자신의 궤도를 수정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우주가 처음 자력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전학 간다는 사실을 안 태웅이는 우주를 불러냈다. 거기로.

   태웅이가 처음으로 햄버거를 사 왔다. 지수는 그 옆에서 이런 친구 없다며 설레발 떨었다. 그동안 얼마나 친한 사이였냐면서 서운한 것은 다 잊으라고 했다. 

   “네가 좀 흥분해서 그런 건데 차분하게 생각해 봐. 태웅이와 나는 네가 사 주니까 먹은 죄밖에 없다고. 안 그래? 게임 레벨도 네가 올려 준다고 하니까 좋다고 한 거고. 안 그러냐고. 근데 이게 뭐냐. 학교 폭력이라니. 우리 사이가 왜 이렇게 된 거냐고.”

   지수 말에 우주는 눈을 부릅떴다. 

   “그래서 모든 게 내 잘못이란 말이야?”

   “아니, 내 말은 네가 좀 그 뭐냐. 주제에 안 맞게 너무 무… 무리했다는 뜻….”

   “야. 됐고. 그거나 지워 줘. 비밀 채팅. 캡처한 것까지.”

   지수 말을 끊는 태웅이 말을 끝으로 영상이 툭 끊겼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풋살장 옆에서 태웅이와 지수를 만났다. 태웅이가 말한 거기가 바로 이곳이었다. 태웅이는 휴대 전화를 달라고 했다. 비밀 채팅을 우주가 지웠는지 확인하고 싶은 거였다. 내가 휴대 전화가 없다는 뜻으로 양손 바닥을 들어 보이자 그 의미가 전달되기도 전에 둘이 달려들었다. 지수가 내 팔을 잡고 태웅이가 가방을 벗기려 어깨를 짚었다. 공격을 감지한 내 몸은 방어 기능과 동시에 무조건 반사 공격용 강한 전자파가 발산되었다. 태웅이와 지수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났다. 

   “난, 나를 지켜.”

   나는 최소한의 단어로 말했지만 격한 감정이 솟아 파쇄 음이 터졌다. 

   “너. 너. 누구야!”

   태웅이가 말을 버벅거렸다. 다름을 감당도 못 하는 주제에 무리를 이루었다니. 가소로웠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는 진정한 무리일 수 없다. 하나 이상이 모인 무리는 원초적으로 모두 다른 객체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대체 왜? 독자 생존하며 스스로 문제 원인을 찾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던 습관으로 내 머리에서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 사이에도 태웅이는 계속 “너 누구야? 누구냐고.” 소리쳤다. 겁먹은 목소리였지만 눈과 발은 도망칠 방향을 찾고 있었다. 저렇게 치졸한 놈에게 내가 누구인지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별것도 아니면서 별것인 양 까불던 놈들에게 별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 아니 별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 주고 싶었다.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태웅이가 플라스틱 의자를 앞으로 집어 들고 방어했다. 지수는 울먹이며 무조건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비굴한 자는 어디에서든 비굴하게 군다. 

   태웅이는 계속 큰길가를 힐끔거리며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확인했다. 자꾸 뒷걸음치며 가는 곳을 보니 풋살장 조명 아래 CCTV가 작동되고 있었다. 야비한 자는 어느 상황에서든 야비하다. 나는 오른발을 들어 땅을 쾅 내리찍었다. 순간 공격용 전자파가 땅바닥을 타고 태웅이에게 갔다. 태웅이는 감전된 듯 몸을 떨더니 그대로 푹 쓰러졌다. 돌아보니 지수는 줄행랑치고 있었다. 

   한심했다. 무리를 멀리서 보았을 때 우리라는 이름으로 어깨를 걸고 하나처럼 보였지만 가까이서 보니 징그럽게 허술하고 야비한 굴레였다. 그 안에서 자신을 지키려는 다툼으로 우정은 이미 개에게 줘 버린 상황이었다. 잡스런 무리의 속성. 같잖았다.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 낼 수 있었던 우주가 이런 무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게 안타까웠다. 

   한참 뒤 쓰러졌던 태웅이가 꿈틀거렸다. 겨우 악어 한 마리 기절시킬 정도의 전자파를 내보냈는데 저리 맥을 못 추다니. 자기 보호 기능이 없는 종족이 얼마나 나약한지 알겠다. 그러기에 인간이 무리에 집착하나 보다. 

   태웅이가 가까스로 일어나 앉자 어디선가 지수가 달려와 괜찮냐고 울먹였다. 숨어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지수는 “태웅아, 신고할까, 우주 나쁜 새끼, 우리 엄마가 알면 나 죽어. 나는 아무 죄 없어. 너도 알지?” 같은 말을 횡설수설 늘어놓았다. 저것도 우정인가 싶어 눈물겨웠다. 내가 한 일로 태웅이와 지수에게 우주는 나쁜 새끼가 되었지만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허울 벗은 무리의 알몸을 봐 버린 순간 더 이상의 호기심이 사라졌다. 무리는 자신을 보호하는 생존을 위한 최적의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최악의 병법이었다. 최소한 무리가 자신을 구해 주리라는 믿음은 버려야 했다. 문득 우리 종족을 공격했던 무리 중 내가 붙잡은 녀석이 입에 올렸던 ‘의리’가 떠올랐다. 콧방귀가 저절로 뀌어졌다. 그 녀석은 무리가 자신을 찾지 않을 것이란 걸 이미 알았을지 모른다. 나보다 무리를 더 잘 알았을 테니. 우주처럼.


   병원 입구에 들어서는데 구급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어왔다. 간호사들과 구급 요원이 서둘려 구급차에서 간이침대를 끌어내리는 사이 익숙한 얼굴이 뒤따라 내렸다. 슬아였다. 놀란 나는 침대에 눈을 감은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아이를 봤다. 나도 아는 애였다. 내가 슬아였을 때 휴대 전화를 내게 맡기고 화장실에 간 친구. 그 무리 중 하나. 

   침대가 급하게 응급실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려는 슬아를 어떤 아저씨가 잡았다. 나는 기둥 뒤로 돌아가 투명체로 몸을 바꾸고 둘 곁에 앉았다. 슬아는 덜덜 떨면서 아저씨가 묻는 말에 대답했다. 

   슬아는 갑자기 ‘미안했다.’라는 문자를 보낸 친구가 이상해 바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어딘지 알려 주지 않고 울기만 하는 친구가 불안해 다그쳤는데 “나는 너처럼 안 된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슬아는 친구가 다녔던 학원을 생각해 내고 달려갔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이.

   슬아는 울었다. 너무 슬픈 울음이었다. 아저씨가 다독여 주는데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내 가슴도 진정되지 않았다. 대체 왜 무리가 이렇게 무서운 괴물로 변하는지 모르겠다. 

   투명체인 채로 우주의 병동에 입구에 들어서니 의사와 우주 보호자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체 리듬은 모두 정상이며 외상도 없다고 전했다. 뇌파의 움직임도 정상이란다. 다만, 깨어나지 않는 건 우주의 선택인 것 같다며 기다려 보자고 했다. 

   그대로 갈까 하다가 지구를 떠나기 전에 인사라도 나눠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지구에 다시 올 일 없겠지만 늘 내 기억에 남아 있을 우주였다. 우주에서 우주를 생각하고 있겠노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이제껏 독자 생존하면서 터득한 진리가 하나 있다면 그 무엇이든 내가 외로울 때 떠올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꼭 같은 종족이 아니어도 된다. 우주에 있는 별이라면 더 힘이 나겠지. 가만히 병실 문을 열었다. 


   없다. 

   우주가 사라졌다. 

   무리가 아니면 나름 멋있었을 우주가. 

   무리하지 않아도 당당했을 우주가. 


   병실로 돌아온 우주 보호자와 의사, 간호사가 허겁지겁 우주를 찾았다. 보호자는 망연자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의사가 어찌 된 일이냐고 간호사를 채근했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발견했다. ‘엄마, 아빠. 나한테 실망했지. 미안해.’라고 쓴 우주의 메시지였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방금 응급실로 들어온 슬아 친구 모습을 본 뒤라 혹시나 잘못된 건 아닌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우주는 모든 생각을 정리한 듯 덤덤하게 있었던 일을 정리했다. 이제껏 자신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면서 무리 안에서 불안에 떠는 자신이 보였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 알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아쉬움이 잔뜩 담긴 문장이었지만 왠지 든든하게 다가왔다. 병실에서 없어진 모습에 놀랐겠지만 자신을 믿어 주라고 마지막 문장에 남겼다.

   ‘내가 우주잖아. 소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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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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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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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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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지우개볼펜
    감동했어요

    그 시절의 나도 애써 ‘무리’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 2023-10-06 18:13:38
    지우개볼펜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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