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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숲

  • 작성일 2023-09-01
  • 조회수 619

아이의 숲

최현주


   수림은 굳게 닫힌 방문을 열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방 안은 담쟁이덩굴 같은 녹색 식물이 벽면을 타고 올라 장관을 이루었다. 빠진 곳 없이 사각의 네 벽면, 천장과 바닥, 방문 안쪽까지도 담쟁이덩굴에 감싸여 있었다. 수림은 오랫동안 식물을 키워왔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숲으로 이루어진 방은 본 적이 없었다. 녹색 식물의 파릇파릇하고 신선한 향이 퍼져 나왔다.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서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어때? 너도 좀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지? 사람들이 이 방엔 좀처럼 들어가려고 하질 않아.”

   수림은 옆에서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에게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런 건 난생처음 봐요.”

   “그러니까 우리가 널 부른 거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거든. 빨리 어떻게 좀 안 될까?”

   “저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요.”

   수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야 넌 식물을 다루는 초능력을 가진 기적의 아이잖아.”

   남자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빙긋 미소 지었다.

   수림은 ‘기적의 아이’라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아니라고 해도 다들 그냥 자기 맘대로 믿어버렸다. 기적의 아이라고 불리는 데 귀에 딱지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었다. 아파트에서 떨어진 아이가 때마침 돌풍이 불어 휘어진 나무에 걸려 살아난 우연에 사람들은 기적이라며 난리였다. 그 후로 수림은 기적의 아이로 식물을 조종하는 초능력자라고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런 엉터리같이 과장된 기사를 믿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얘기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식물 초능력자라고 받아들여졌다. 수림은 자기 의사는 없이 식물을 키우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화분 선물을 주는 바람에.

   “전 그런 능력 없다니까요.”

   “에이. 그러지 말고. 넌 이 방에 있던 아이가 걱정되지도 않아? 아이를 빨리 찾아야 하잖아.”

   수림이 아니라고 해도 남자는 믿지 않고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수림은 어제 만났을 때부터 친한 척 구는 남자가 맘에 들지 않았다.

   남자가 수림을 찾아온 건 어제 오후였다. 남자는 형사라고 소개했지만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차림새였다. 위아래가 검은색으로 된 운동복을 입고 나타난 그는 옷을 다 빨았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오늘 옷차림도 어제와 별반 달라진 게 없이 위에 점퍼 하나를 더 걸쳤을 뿐이었다. 담쟁이덩굴이 아이의 방으로 밀고 들어와 하루 만에 방 전체를 휘감아버렸다는 믿을 수 없는 말은 형사라는 사람을 더욱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반은 거짓일 거라고 생각하며 형사를 따라서 왔는데 이런 광경을 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가 사는 집은 작은 산의 중턱에 지어진 단층 건물이었다. 다행히 그곳까지는 도로포장이 되어 있어서 집까지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집은 판자로 되어 있고 장마철에 비가 많이 내려 땅에 닿은 부분의 나무가 모두 썩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색이 다 빠져서 연한 녹색으로 보이는 점퍼를 입고 흙이 묻어 더러워진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군화 같은 신발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서 그가 마당을 돌아다닐 때마다 흙이 뭉텅이로 조금씩 떨어졌다. 그는 신발을 벗고 집안에 들어와 힘이 빠진 듯 방바닥에 털썩 앉았다.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무척이나 거칠었다.

   “뭔가 더 알아낸 게 있수?”

   그의 말에 형사는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씨발, 대체 수사는 하고 있는 거요? 뭐가 진척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의 험악한 말에 형사가 수림의 소매를 끌고 밖으로 나가자는 고갯짓을 보였다.

   “우리도 열심히 수사하고 있습니다. 뭔가 있으면 바로 얘기할게요. 뭐, 어디서 연락 온 건 없죠?”

   “참나, 그런 게 있으면 이러고 있을 것 같아? 애가 없어졌다는데, 단순 가출로 무시한 게 문제잖아! 그러니 이렇게 수사가 늦어져서 단서조차 못 찾고 있고. 걔 못 찾으면 모두 다 당신들 탓이야!”

   그가 소리를 지르며 방바닥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형사가 수림의 등을 밀었다. 밖으로 나오면서도 형사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수림을 어딘가로 데려갔다. 집 뒤편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실종 신고를 했는데, 바로 수사하지 않았나요?”

   “뭐, 그렇게 됐어. 보면 알겠지만, 그동안 악성 민원인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거든. 주변에 다른 인가도 없고 산 밑으로 내려가려면 아이 걸음으로 반나절은 걸리니까. 그냥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거지. 몇 번 그런 일도 있었고 말이야. 어쨌든 벌써 일주일이나 지나버렸으니 어려운 게 사실이야. 언론에 알렸지만 목격자 제보도 없으니까. 지금 우리한테 있는 건 아이 방에 있는 식물밖에 없어.”

   “아이가 실종되면서 방이 하루 만에 저렇게 됐다고요?”

   수림은 믿을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본인이 신고한 기록이 남아있거든. 그때 신고받은 사람이 미친 사람이 헛소리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아, 다 왔군. 이것도 봐봐.”

   형사가 몸을 피하며 보여준 광경도 아이의 방과 마찬가지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건지 수림은 자기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대체 이건 뭐죠?”

   “그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야. 여긴 이틀 전에 수사하면서 찾았어. 사흘 전부터 형사들이 와서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아이 방 말고도 여기까지 이렇게 되어 있을 줄은 몰랐어. 그래서 급하게 여러 전문가를 불러 봤는데. 잘 모르겠다고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어. 근처에 네가 있다고 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탁해 본 거야. 이걸 해결해야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수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도 형사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눈앞의 광경에 온 신경을 빼앗겼다. 그곳은 개들이 사육되는 곳으로 몇 개의 구역으로 철조망이 설치돼 있었다. 개밥을 언제 주었는지 빈 그릇들이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었고 개들이 갖고 놀았을 것 같은 바람 빠진 공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들이 없었다. 숲 쪽으로 가까이 둘러 처진 철조망에 담쟁이덩굴이 올라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개들이 누워 있었다. 아니, 담쟁이덩굴을 몸에 뱅뱅 감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기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지도 않았는데 왠지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개들이 죽었나요?”

   “그래. 저기 옆에 담쟁이덩굴 줄기만 있는데 보이지? 저기에도 개 한 마리가 있었거든. 죽은 개를 처리한다고 했는데, 개를 감은 덩굴이 너무 강해서 떼어낼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덩굴을 잘랐거든. 근데 그 순간 덩굴이 살아있는 것처럼 몸을, 아니, 줄기를 움츠리는 거야. 전에 봤는데, 뭐더라? 완전히 살아있는 인간처럼 만지면 갑자기 잎사귀를 팍 모으는 식물이 있었는데······.”

   “신경초요?”

   “아, 맞아! 그거야. 근데 담쟁이덩굴도 그럴 수 있나? 그때 사람들이 너무 놀라서 다른 걸 자를 엄두를 못 내고 있어. 자기들도 저 개들처럼 저주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떠돌 정도거든. 개들이 뼈가 부러졌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해? 식물이 살아있는 동물을 저렇게 잡아서 뼈를 부러뜨릴 힘이 있는 거야?”

   형사는 정말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수림을 바라보았다. 그건 수림이 형사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정말 이게 누가 조작한 게 아니라 진짜 일어난 일인지 말이다. 수림은 형사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무슨 말이든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솔직히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 들은 적도 없고요. 담쟁이덩굴이 개를 잡는다고요? 무슨 판타지 영화도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여기 숲이랑 주변을 좀 살펴봐야겠어요.”

   “그래. 그건 그렇게 하고. 먼저 이 담쟁이덩굴부터 어떻게 좀 해줄래? 다들 꺼림칙해서 손도 못 대고 있거든. 진짜 곤란해서 죽을 지경이야.”

   연신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어색하게 웃는 형사를 보며 이상한 현상 때문이 아니라 오직 담쟁이덩굴을 잘라줄 수 있는 사람을 불러온 것 같았다. 기분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담쟁이덩굴에 대해서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수림은 어쩔 수 없이 가위를 받아 담쟁이덩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싶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보내는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부담스러웠다. 

   담쟁이덩굴은 철조망을 지나 저 너머에 우거진 숲으로 뻗어 있었다. 어떻게 이게 며칠 사이에 여기까지 와서 철조망을 넘어오게 되었는지 어떤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저 너머의 숲으로 가 보면 뭔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담쟁이덩굴을 망설임 없이 잘랐다. 뒤에서 수림의 과감한 손짓에 헉하고 숨을 들이켜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늘어진 고무줄이 탄성에 의해 튕기듯 덩굴의 줄기도 순식간에 철조망을 넘어가 땅에 털썩 떨어졌다. 수림은 이런 탄성을 자연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신경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탄력이었다.

   나머지 줄기도 연이어서 잘랐다. 그럴 때마다 담쟁이덩굴은 철조망 너머로 툭툭 잘도 떨어졌다. 유전자가 조작된 변형 식물인 것 같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것을 다 자르자마자 뒤에서는 안심하는 한숨과 함께 박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담쟁이덩굴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였는지 느껴졌다.



   형사가 수림을 찾아와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어디 나무인지 알겠냐면서. 수림은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 나무는 근처 암자에 서 있는 천년이 된 쌍향수였다. 두 그루의 나무가 쌍으로 자라면서 줄기가 몹시도 꼬여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가 이 나무 주변에서 자주 찾아와서 놀았대. 쌍향수 근처에다 돌도 쌓았다고 하고.”

   수림은 얼마 전에 식물 전문가와 함께 쌍향수를 찾은 적이 있었다. 식물 초능력자로 불리면서 전문가와 작업을 하게 될 기회가 많이 생겼다. 쌍향수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줄기가 조금씩 말라가고 가을이 아닌데도 잎사귀가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암자에서 지내는 스님의 요청으로 쌍향수를 검사해 보니 금속의 독성에 의한 영양 부족이 문제였다. 전문가는 나무에 영양제를 주사로 놓으며 상태를 관찰했다.

   수림은 줄기에 손바닥을 갖다 댔다. 눈을 감고 집중을 하면 나무에서 쿵쿵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이게 나무에서 울려오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인지 알기가 힘들었다. 주변에서 식물 초능력자라고 추켜세워줬지만, 수림은 식물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가끔은 진짜 뭔가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돌아서면 자신의 착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식물과 가까이 지내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지만 이게 다 무슨 짓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수림은 암자 스님에게서 어떤 아이에 관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쌍향수에는 나무 기둥에 동전을 떨어지지 않고 붙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래선지 나무 기둥에는 동전들이 다닥다닥 무수히 달라붙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간절한 소원을 담아 붙이고 있는 거지만, 그중에서는 접착제나 테이프 같은 걸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도 있어서 쌍향수가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나무를 정리했지만,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행위로 나무는 점점 병들어 가게 되었다.

   아이는 매일 찾아와서 쌍향수 주위를 맴돌았다. 주변에 인가가 별로 없는 산중이라 스님으로서는 어디에 사는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지나가는 척 무심하게 몇 번 물어봤지만, 아이는 웬일인지 자기를 멀뚱하게 쳐다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대답을 기다리는 스님이 민망해져서 헛기침하며 돌아섰다는 것이다. 아이는 이상하게 나무 주위에 돌만을 쌓았다. 거기다 아이의 손이 닿는 범위 내에 붙어있는 동전들을 떼어내 버리곤 했다.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혼을 내도 소용이 없었다.

   이 쌍향수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소문 때문에 동전 하나를 붙이려고 멀리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나무였다. 그래서 스님은 소원을 빌고 싶다면 왜 동전을 붙이지 않고 돌을 쌓고 있는 거냐고, 다른 사람이 힘들게 붙여놓은 동전을 왜 떼어내 버리는 건지 아이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을까 싶었지만 아이는 나무가 아파한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더 물어보려고 했지만 아이는 멀리 달아나고 말았다.

   그런데 전문가가 와서 하는 말을 듣고서야 스님은 아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됐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림은 스님의 말을 들으며 아이가 어떻게 나무의 상태를 알았는지 궁금했다. 그때는 나무의 병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수림은 아이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 서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처음에 느꼈던 서늘한 기운은 이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그때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이 담쟁이덩굴의 나뭇잎들을 흔들었다. 그 순간 수림 앞으로 나뭇잎 한 장이 떨어져 내렸다. 수림은 발밑에 떨어진 나뭇잎을 주웠다. 눈앞을 스쳐 간 나뭇잎의 색깔이 얼핏 보였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그 나뭇잎에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니, 글자 모양대로 노랗게 단풍이 들어 있었다. 원래라면 가장자리부터 말라가기 시작했을 텐데 이건 나뭇잎 가운데가 마른 것이 누가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건 누가 만들려고 해도 만들 수 없는 거라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수림은 아이의 방을 돌아다니며 떨어진 나뭇잎 외에 또 뭐가 더 있나 훑어보며 찾아다녔다. 수림의 손에 있는 나뭇잎에는 ‘요’라는 글자가 있었다. 그렇다면 앞에 다른 글자가 있다는 말이었다. ‘요’는 대체로 문장의 끝에 붙는 어미니까. 다른 글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참 동안 무릎이 아플 정도로 엎드려 돌아다닌 끝에 모두 다섯 장의 나뭇잎을 찾아냈다. 그것을 바닥에 늘어놓자 ‘도‧와‧주‧세‧요’라는 한 문장이 만들어졌다. 누가 보낸 건지는 모르지만 위험에 처한 사람의 메시지가 분명했다. 이 방에서 발견된 거라면 아이가 더 걱정스러워지는 상황이었다.

   형사에게 나뭇잎을 보여주며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는 수림이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수림이 진짜라고 했지만, 형사는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하루 만에 방이 식물에 둘러싸인 걸 보면 이런 일도 일어날 수 있잖아요. 이렇게 의심할 거면 왜 데려온 건데요? 저도 바쁘다구요.”

   수림이 투덜거렸더니, 형사는 그제야 뒷머리를 긁적이며 수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수림은 다시 아이의 방으로 돌아왔다. 방을 둘러싼 식물은 더 많이 자라서 숲이 되어 있었다. 한여름이라서 식물들은 무슨 괴물이라도 된 듯이 무서울 정도의 성장을 자랑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곳에서 벽을 타고 천장까지 올라가고 있는 줄기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방 안이 깊은 숲속에 있는 듯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아이는 이 방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지금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결국 수림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수림은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해 주지 못할 거란 걸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위급한 상황이라 자신이 너무나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누가 나타나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헛된 상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수림은 볼에서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그 느낌과 함께 잎들이 부딪히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난 곳을 찾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늦은 오후의 햇빛이 희미하게 비쳐들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식물에 관심을 빼앗겨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빽빽하게 들어찬 숲속을 헤쳐나가 방 안 깊숙이 들어갔다.

   반대편 벽에 도착해서 보니 창문 주위로 담쟁이덩굴 줄기가 뻗쳐 들어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줄기가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지 창문 주위의 벽에 금이 가면서 허물어지고 있었다. 수림이 발로 벽을 차니 금방 부서지고 말았다. 부서진 벽 너머로 담쟁이덩굴 줄기들 사이로 난 작은 틈으로 힘겹게 빠져나갔다. 담쟁이덩굴 줄기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수림이 산 위로 걸어 올라갈수록 줄기가 흩어지며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십 분 정도 걸었을까? 담쟁이덩굴이 사라져버렸다. 주위를 둘러보다 눈앞에 짙은 녹음이 드리워진 숲에서 빛이 들이치는 공터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백 년도 더 된 듯 보이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까맣게 타서 쓰러져 있었다. 나뭇가지와 줄기는 검게 그을렸고 나뭇잎은 거의 없었지만 몇 개 있는 것마저도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노랗게 말라 죽었다.

   그런데 부러진 나무 밑동에서는 파릇파릇한 새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 나무에서 담쟁이덩굴이 다시 보였다. 쓰러진 나무 기둥을 담쟁이덩굴이 감으면서 올라갔다. 밑동만 남은 나무 기둥 주위를 담쟁이덩굴이 몇 겹이나 둘러쌌다. 그곳은 수풀로 만들어진 새의 둥지 같았다. 세상의 그 어떤 찬바람도 뚫고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수림은 그곳으로 다가갔다. 한 발짝 떼기가 힘들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늘한 기운이 몸을 감쌌다. 오싹한 한기에 어깨를 움츠리고 팔로 몸을 감쌌다. 밑동 안에는······, 아이가 담쟁이덩굴을 이불 삼아 덮고 잠을 자듯 누워 있었다.



   그날 밤 아이의 아빠가 자수했다. 그는 며칠간 잠을 못 잔 사람처럼 눈이 퀭하고 머리가 헝클어진 채였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빛으로 뭔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형사들의 조사 끝에 그는 아이가 실수로 넘어져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고 진술했다. 그렇게 이 사건이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부검 결과 아이의 팔과 다리가 부러진 것이 발견되었다. 경찰은 아이의 아빠가 전부터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해 왔다는 주변인의 진술을 토대로 아이를 때려죽이고 시체를 나무속에 숨겨 불에 태워 증거인멸을 노렸다고 보고 증거를 찾았다. 검시에서 아이의 부패 정도로 죽은 지 이 주일은 넘었을 거라고 추측했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얼굴만은 아무 변화도 없는 게 이상하다는 말이 떠돌았다.

   형사는 그의 이 주일 전 행적을 조사했다. 형사에 따르면 그는 사건을 저지르고 집을 떠나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의 방이 갑자기 숲으로 변한 걸 보고 하루 만에 그렇게 되었다고 신고한 것이다.

   아이의 아빠는 정신 이상 감정을 받았다. 아이가 원래부터 이상해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헛소리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무를 이용해 자꾸 자신의 목숨을 위협했다면서. 자신이 살기 위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식을 죽여 놓고 끝까지 아이 탓으로 돌려버리는 죽일 놈이라고 욕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관심에 이 사건은 점차 잊혀 갔다.

   잊힌 시간 속에서 아이의 아빠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는 오랫동안 버려져 부서지기 직전인 집으로 돌아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는 우연히 들른 마을 사람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는 온몸에 담쟁이덩굴에 감싸인 채로 아이의 방에서 죽어 있었다. 두 팔은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하늘을 향해 꼿꼿이 들고 있었다. 발버둥을 심하게 쳤는지 담쟁이덩굴이 살을 파고들었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는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이의 아빠가 자수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형사가 수림을 찾아왔다. 수림은 형사와 함께 화장장에 따라갔다. 화장장 관계자 외에는 아이 곁에 아무도 없었다. 그날은 화장장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날씨가 너무나 좋았다. 파란 하늘 아래 더위를 식혀주는 바람이 불어왔다.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수림은 폭력을 당하는 아이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이해되었다. 자신도 가정 폭력에 아파트 밖으로 내던져진 아이였으니까. 자신은 운 좋게 살아남은 아이였을 뿐이었다. 수림은 살아남은 자신이 더 행복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 후로도 부모님의 다툼을 지켜봐야 했으니. 그래도 옛날보다는 나은 편이었다. 자기들도 기적의 아이 부모라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의심했는데. 너 정말 식물 초능력자더라. 이번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받았어. 고맙다.”

   형사는 쑥스러운지 얼굴을 보지도 않고 말을 툭 던졌다.

   수림은 이제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기에도 지쳤다. 아예 식물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해 볼까 싶었다. 자신이 떨어질 때 나무가 받아준 순간 운명이 바뀐 것 같았다. 그게 아무리 우연의 산물이라고 해도.

   ‘나무가 자신을 선택한 건 아닐까?’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나뭇가지들이 흔들렸다. 설마······. 수림은 다른 사람들처럼 착각하지 말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진짜 식물 초능력자는 저 아이였을 것이다. 아이의 아빠가 식물이 자신을 위협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시체는 화장되어 은행나무 밑동에 뿌려졌다. 다음 날부터 한여름의 숲에서는 더위를 식혀주는 단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수림은 일주일마다 그곳을 찾아 노랑 달맞이꽃을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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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케이크 히섶 웅크려 식빵 굽는 고양이처럼 발 모으고 빵 굽는 흰토끼 기다란 초 두 개 꽂힌 생크림 케이크 다가가 후우- 불면 안 돼 깡충깡충 달아날 테니. 청개구리와 손잡기 지독스레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같은 동생에게 누나가 말한다. 우리 놀이터 가서 소꿉놀이할까? - 아니, 운동장 가서 공놀이할 거야. 그럼 공놀이하고 그네 타자! - 아니, 공놀이하고 시소 탈 건데? 그래, 그네 타지 말고 시소 타자. - 아니, 나 시소 안 타고 그네 탈래. 좋아! 그럼 운동장까지 각자 뛰어갈까? - 아니, 나는 누나 손잡고 걸어갈 거야! 청개구리와 손잡은 누나가 웃는다. 제2의 로봇태권V 개발 본부 볼트 발견! 너트 발견!(땅콩 말고) 볼펜 스프링 발견! 짝지가 버린 머리핀 발견! 찌그러진 냄비 발견! 태워 먹은 국자 발견! 낡은 기타 줄 발견! 부러진 안경테 발견! 열쇠 발견! 알전구 발견! 버려진 수도꼭지 발견! 텔레비전 안테나 발견! 수많은 부품들을 발견! 발견! 발견! 이제 조립만 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겠지? 낯선 동네 코스모스 가는 이파리가 팔을 간질이는 좁은 길 낯선 이가 낯선 동네로 들어선다 쌀농사 짓는 메뚜기들이 폴폴 뛰며 마중한다 맞은편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던 백발이 다 된 진돗개 한 마리 낯선 이를 보고 우뚝 멈춰 서는데 메뚜기들 황급히 논으로 달아나고 두꺼비 한 마리 길가로 나와 몸을 납작 엎드리는 걸 보고 낯선 이도 허리 숙여 인사한다. 혀가 쭉 나온 백구 어르신 왈, “왈 왈왈 왈왈!" 잠시 눈을 흘기더니 코를 켕 풀고 가던 길 가신다. 헝클어진 머리칼 자고 일어나 부스스한 헝클어진 머리를 보면 괜히 웃음이 나와 쓰다듬어 주고 싶지 아니, 정말은 더 마구 헝클고만 싶어 아마도 헝클어진 머리칼은 조금 더 헝클어져도 괜찮을 거야 머리칼 깊숙이 손을 넣어 마구 헝클여도 좋아할 거야 헝클어진 그대로 푸식 푸식 푸시시 웃고 말겠지 바보 같은 너의 헝클어진 머리칼은. 수다쟁이들 청각 장애를 가진 어른 넷이 모여 떠든다 수다 떠는 아이들보다 더 시끄럽게 떠든다 푸르락누르락하는 얼굴 들썩거리는 몸짓으로 이리저리 휘저어대는 손짓으로 떠든다 보기만 해도 왁자지껄 못 말리는 수다쟁이들이 소리 없이 떠든다 너무 시끄럽다. 얼음 차며 간다 집으로 가는 길 주먹만 한 얼음덩이 하나 골라 발로 차며 간다 집 앞까지 얼음을 몰고 가면 소원 하나 이루어지는 거다 단, 손을 쓰면 반칙! 발로 살살 차며 가는데 얼음은 잘도 미끄러진다 모서리가 깎이고 녹아 데구루루 잘도 굴러간다 얼음은 어느 집 마당으로 굴러가고 자동차 밑으로도 굴러간다 사나운 개집 앞으로도 굴러가고 얕은 웅덩이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어느 집 마당을 들락거리고 자동차 밑으로 기어들고 개가 한눈팔 사이를 기다리고 흙탕물 웅덩이로 뛰어들고 만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저기 우리 집이 보이는데 톡, 톡, 톡, 툭-

  • 관리자
  • 2023-11-10
태몽 찾으러 왔어요

태몽 찾으러 왔어요 변선아 1. 태몽 때문이야 “4교시는 체육이니까, 수업 종 울리면 축구 골대 앞에 모여 있어요.” “네.” 3학년 1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성운이는 힐끔 선생님을 봤지요. 성운이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이 활짝 웃었어요. 교실에 남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요. ‘야호!’ 그제야 성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어요. 마음은 쌩하고 운동장으로 달려나갔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죠. 성운이는 소아 천식을 앓고 있어요. 절대로 뛰면 안 돼요. 엄마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성운이가 뛰지 않도록 부탁해요. 운동장에서 하는 수업이 있을 때는 성운이 혼자 교실에 남아 책을 읽게 해달라고 해요. 그래서 몸을 크게 움직이는 활동이 있는 수업에는 미리 선생님이 말했어요. “성운이는 교실에 남아 있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도 좋아.” 이뿐인가요? 급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도 먹지 못해요. 천식에 좋지 않으니까요. 의사 선생님은 가끔씩 한두 번 먹는 건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는 ‘절대 금지’라고 했어요. 어쨌든 지금, 선생님이 그냥 웃기만 했잖아요? 체육 수업에 참여해도 좋다는 말일 거예요. 그동안 교실에 혼자 남아서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오늘은 친구들하고 같이 운동할 거예요. 조심히 달리면 괜찮겠죠? 성운이에게 소원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맘껏 뛰어보는 거예요. 쉬는 시간에 잡기 놀이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어요.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축구 골대 앞에 모였어요. 물론 성운이도 당당하게 서 있었죠. 곧 선생님이 와서 말했어요. “오늘은 축구를 할 거예요. 성운이는 벤치에 앉아 있을까?” “네? 저도 축구 할 건데요?” 성운이가 실망하며 말했어요. “안 돼. 성운이는 뛰면 안 되니까 친구들 수업하는 걸 지켜보자.” “휴.” 그럼 그렇지요. 성운이는 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축 떨어뜨리며 벤치로 갔어요. “살살이 공성운, 넌 앉아서 공 차는 거나 구경해.” 민찬이가 성운이 뒤에 대고 소리치고는 혀를 쑥 내밀었어요. 성운이는 민찬이가 얄미웠지요. 민찬이는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어요. ‘살살이’란 별명도 민찬이가 지어준 거예요. 천식 때문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니는 걸 놀리는 거죠. 민찬이와 아이들이 공을 굴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녀요. 그 모습을 보는 성운이 마음은 소금에 절인 배추 같아요. ‘나도 뛰고 싶다.’ 생각할수록 속상했어요. 왜 자기만 천식이 있어서 뛰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었죠. 지루했던 체육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에요.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면서 밥을 많이 먹었어요.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성운이는

  • 관리자
  • 2023-11-10
「어떤 겨울밤」외 6편

어떤 겨울밤 김미혜 눈보라가 휘이잉 몰아치는 밤, 하얀 옷을 입은 눈 아이가 어깨에 소복 쌓인 눈을 털며 들어왔어. 가늘고 새하얀 손을 비비며 추워라, 추워라, 달달 떨었어. 이리 와 불을 쬐렴. 할아버지가 난로에 불을 켰어. 눈 아이 손이 흐물흐물 녹고 발목도 녹고 종아리도 녹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아, 따스해라, 따스해라 입은 녹지 않았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오던 할아버지는 그만 얼어 버렸어. 쨍그랑 찻잔이 깨져 버렸어. 할아버지는 얼른 난롯불을 껐어. 웃을락 말락 철창에서 빠져나온 흰둥이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배롱나무 뒤로 갈락 말락 잡힐락 말락 마당 밖으로 발을 디딜락 말락 숟가락 내던지며 달려 나와 저놈 좀 잡아라, 할아버지가 소리치면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한테 오지 마, 제발, 제발, 흰둥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가, 멀리 가 어둑어둑 붉어지는 논둑을 가로질러 갑니다 흰둥이가 멀어집니다 개와 늑대 사이를 달립니다 울락 말락 웃을락 말락 밤이 옵니다 족제비 일기 기름진 고기 냄새가 닭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막아요. 삼겹살 한 점이 끌어당겨요. 철커덕 철창문이 닫혀요. 오르락내리락 두리번두리번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어요. 힘이 풀려요. 잠잠해지기로 해요. 가만히 기다리면 비상구가 나타날 거예요. 어쩌나, 날이 밝아 오는데 아무 데도 뚫리지 않아요. 닭장 문이 열려요. 할아버지가 덫 안에 든 나를 안아요. 바르르 떨고 있는 나를 자동차에 태워요. 망할 놈의 족제비, 다시 잡히면 안 놔 준다, 욕하며 겁주며 구박하며 풀어 주러 간대요. 잡히기만 해 봐라, 닭이 죽어 나갈 때마다 잡히기만 해 봐라 잔뜩 벼르더니, 구불구불 강 건너 멀리 놓아 주러 간대요. 큼큼, 냄새를 맡아요. 메모를 해 둬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되거든요. 여우양말꽃이 피었습니다 여우 양말을 알록달록 걸어 놓았으니 여우가 오겠지요? 오늘 밤에는 분홍 양말 흰 양말 맘에 드는 양말 골라 신고 발소리 숨기고 신나게 놀다 가겠지요? 양말이 시들기 전에 오겠지요? 우리 집 꽃밭에는 여우양말꽃이 여러 켤레 활짝 피었답니다 민들레 걱정 민들레를 피하려다 개똥을 밟았다 “야, 개똥을 왜 밟아?” “그럼 민들레를 밟아요?” 시 선생님이랑 꽃 보러 가면 내가 아닌 것 같다 개꿈 어둠 속에 툭 던져 놓고 쌔앵 달아나는 자동차를 쫓아가요 “멈춰요! 잊은 게 있어요!” 달려가던 자동차가 지쳐 헉헉거려요 이때다, 가속페달을 밟아요 두 발로 서서 앞을 가로막아요 창문 너머로 뺨을 핥으며 인사해요 “그냥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요.” 나는 꼬리를 흔들며 보내 줘요 “안녕!” 앗, 이건 꿈이야 깨면 안 돼 나는 꿈속에서도 꿈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어서 자, 계속 자 번개처럼 꿈속으로 돌아가야 해요

  • 관리자
  • 202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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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바다가좋아용
    공감합니다

    댓글이 삭제 되었습니다.

    • 2023-09-02 17:26:37
    바다가좋아용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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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가좋아용
    감동했어요

    짧지만 긴 여운을 주는 내용이네요. 뉴스에 나오는 안타까운 기사들과 겹쳐서 마음이 무겁네요. 식물의 복수(?)가 통쾌하기도 하지만 씁쓸함이 더 남네요. 잘 읽었어요^^

    • 2023-09-02 17:27:13
    바다가좋아용
    감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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