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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특!기자단]근대를 건너는 문학 창고, 인천으로 통한다

  • 작성일 2014-09-24
  • 조회수 1,409


[문학특!기자단]



근대를 건너는 문학 창고, 인천으로 통한다

- 문학특!기자단 한국근대문학관 방문기




작성, 참여 : 김유진, 조인영, 정현아, 전인철, 김선정
(이상 문학특기자단 1,2기)
진행, 정리 : 변인숙(문학특!기자단 교육담당)




어디라도 문학과 통하는 곳이면 간다. 글틴문학특!기자단이 8월 정기 취재 차 인천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이하 근대문학관)을 방문했다. 6여 년의 준비 끝에 2013년 9월 개관, 2만 9천여 점의 근대문학 자료를 보유한 곳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인천역 근방으로, 관광지로도 유명한 인천 중구 개항장 거리에 있다. 차이타나운과 인천아트플랫폼 끄트머리를 지나 중구청 앞에 도달하면 발견할 수 있다. 일제시대 때는 물류창고와 김치 창고로 썼던 건물이다.
다른 지역 문학관들이 해당 지역 출신 작가를 중점적으로 소개하는 데 반해, 이곳은 근대 문학사와 작가들을 두루 알리는 게 특징이다. 근대 도시라는 인천의 지역성을 살리되, 종합문학관 성격을 갖췄다. (홈페이지 http://lit.ifac.or.kr)
근대문학관 직원들은 대개 문학 연구자들이다. 이 때문에 문학 상설 전시는 학계의 정설을 살리면서도 기존 대중적 인식도 반영했다. 문학 교과서에 잘못 기재된 문학사는 바로잡지만, 인기 작가를 살리는 식으로 균형점을 찾았다. 전시 공간의 글도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개관 준비 기간 동안 학자를 비롯해 십대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 수차례 다듬었다.
상설 전시관에서는 1890년대 근대 계몽기부터 1948년 분단까지 시대별 근대 작가를 소개하고, 작품 원본도 보여준다. 현재 활동하는 인천 작가 소개 전시도 2층에서 볼 수 있다. 기획 전시관에서는 주기적으로 문학 관련 이색 전시를 선보인다. 전시에는 동영상이나 그림, 도장, 사진, 근거리 무선통신 등 다채로운 매체를 활용해 관람객들의 참여도를 높인다.
수시로 교육도 병행한다. 상반기에는 ‘문학이 있는 저녁’이란 제목으로 한국 근대 문학 명작 특강을 진행했다. 국문과 교수와 평론가, 근대 문학관 관장 등이 강의에 나섰다. 하반기에도 계속된다. 오는 9월 17일 수요일 저녁 6시 반부터는 ‘맛보는 한국문학’ 이라는 인문학 강의가 11월까지 주마다 무료로 열린다. 백석, 박경리, 조정래, 기형도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음식으로 문학을 공부한다.
문학특!기자단이 방문한 8월에는 근대문학관의 상설 전시와 ‘시, 큐레이터와 만나다!’라는 청소년이 직접 만든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 기획 전시는 청소년들이 시인 윤동주, 김소월, 정지용에 대해 공부한 뒤 직접 큐레이터가 돼서 마련한 것이다. 2013년에도 소설가 현진건, 김유정, 황순원을 청소년들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전시가 열린 바 있다. ‘꿈다락 토요 문화학교’의 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열리는 행사로, 매해 문화 관련 직업 체험을 통해 문학을 익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교육 프로그램과 상설 전시의 인기 덕에 학생들과 국어 교사들의 방문이 잦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들이 도서부나 창작 동아리 학생들을 데리고 단체 관람을 자주 오는 편이라고 한다. 이들은 근대문학관 주변 아트플랫폼과 한중문화관 등을 함께 견학하고 간다. 이 두 곳 외에도 향후 근대문학관에서는 근방의 문화 단체들과도 소통하며 문학 관련 프로그램을 늘려갈 예정이다.
글틴기자단은 한국근대문학관의 함태영 과장(문학박사)에게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의 설립 배경과 상설 전시에 대한 안내를 듣고, 협장답사를 토대로 시(전인철)와 방문기(전현아, 김선정, 김유진) 등을 작성했다.



[글의 순서]


1. 함태영 문학박사에게 듣는 한국근대문학관, 글틴과의 질의응답
2. 글틴기자 2기 김선정 방문기: ‘낯선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에서 배우고 걸으며 만나다’
3. 객원 글틴기자 정현아 방문기: ‘차별화된 매력의 근대문학관, 누구라도 방문하길’
4. 글틴기자 1기 김유진 방문기: ‘사진 30컷과 함께 하는 문학 특!기자단 인천 여정’
5. 객원 글틴기자 전인철 방문시와 방문기: ‘빛의 전시’



1. 함태영 문학박사에게 듣는 한국근대문학관


Q (질문) : 글틴 기자단
A (답) : 함태영 문학박사


Q. 문학특!기자단 : 인천의 어떤 특징 때문에 근대문학관이 생긴 건가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인천은 개항장이죠. 우리나라가 1876년에 강화도 조약으로 열리잖아요. 일본이 운요호 군함 끌고 와서 강화도에 포 쏘면서 ‘20개월 내에 항구 5개 열라’ 요구하는데, 조선 정부에서는 끝까지 여긴 안 된다 거부했어요. 수도권 하나 열라고 하는데, 서울이 가깝기 때문에 여기가 열리면 바로 서울로 가는 거니까 버텼죠. 1881년 열기로 했다가 1883년에 개항을 해요. 역사가 그렇게 진행이 되고 개항이 되는데, 이후 인천은 도시로 개발됐어요.
안동(안동이 고향인 글틴 기자가 있어서 예시로 든 것)은 전통 도시이고 여긴 근대 도시예요. 거기는 조선 시대 때부터 번화했고, 여기는 근대 들어와 비로소 도시가 된 곳이에요. 원래 인천이라고 하면 지금 문학경기장이 있는 곳이에요. 조선시대 관아가 거기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개항이 되면서 이 동네가 인천이 된 거죠. (근대문학관 뒤로) 중구청이 일본 영사관이었고, (근대문학관 앞으로) 버스 다니는 길 안쪽은 정면이 바다예요. 배가 보여요. 구 제물포항이거든요.
개항이 되면서 근대 문물이 이리로 다 들어왔죠. 그래서 중구청 앞에 보면 인천에서 시작된 것들을 바닥에 기념해놨어요. 최초의 호텔, 전신, 전화, 전구, 커피 등 많아요.
일단 개항지, 국제 무역항이다 보니까 일본인들, 청인들, 각 서양 외국인들의 인구 비율이 높았어요. 조선인만큼은 안 됐지만요. 다문화성, 국제성도 지역성으로 들 수 있죠. 여기 조계(租界? 외국인이 거주하며 치외법권을 누리는 개항장)가 있었어요. 지금 여러분들이 있는 이쪽(근대문학관)이 일본 조계고, 저쪽 차이나타운이 청나라 조계였어요. 인천에 생긴 조계 지역은 ‘전관조계’라고 해요. 상해와 인천만 전관조계였는데, 뭐냐면 외국 정부가 조선 정부와 협상을 맺은 뒤 일정 정도 구획을 빌리고 지세만 내요. 치외법권이 되면서 영사재판권· 경찰권? 행정권을 각각 그 나라의 외교관이 집행하는 거죠. 이리로 외국인 범인이 도망 오면 조선 포졸은 못 잡는 거예요. 또 여긴 무역을 하고 수입 관세를 매겨서 나라 세금을 걷는데, 관세 징수권이 없어져 버려요. 상인들 입장에서는 꿈의 자유 무역항이 있었고, 조계들이 있었고, 국제적인 도시였어요. 항구가 있다 보니 노동자들도 들어와요. 전국 노동자들이 모이니깐 개방된 마인드가 많았어요. 토박이보다 외지 시민들이 많이 들어오니 전통적인 것보다 열려 있는 개방성이 특징이죠. 안동은 지금도 정권이 안 바뀌잖아요. 여긴 최근에도 송영길(전 인천시장·새정치민주연합)에서 유정복(현 인천시장·새누리당)으로 바뀌었어요. 전라도, 경상도 같지 않아요. 여기서 근대 시민이 탄생하는 거죠. 다양한 근대문물이 들어오고 서울로 많이 퍼져나갔기 때문에, 근대 실험장이었어요. 그 정도가 인천 특징이에요.


Q. 글틴기자 : 여기 전시관을 보면서 놀랐던 게 초판본이 많았는데요. 어떻게 구하셨나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전시관에 있는 책들은 한 권 한 권 다 팔자를 고칠 책들이에요. 한 권을 갖고 있으면 여러 번 고칠 수 있어요. (웃음) 근대문학관은 2~3만 점 근대한국학 컬렉션을 갖고 있고, 저기 168점 전시돼 있어요. 근대한국학 컬렉션은 문학만이 아니라 1950년 전에 나온 조선총독부 자료, 식민지 전 대한제국 자료, 영화 포스터, 진공관, 문학책,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래서 한국학 컬렉션인데 메인은 문학이에요.
40년을 이런 자료를 수집한 분이 계시거든요. 기업을 한 분인데, 그분 자료를 일괄 인수했어요. 전시 기획할 때 시기 구분에 따라 자료가 다 있지 않았어요. 이걸 전시해야 하는데 이건 없다 그러면, 자체 예산으로 구입을 하죠. 국공립박물관들은 공개 구입을 해요. 중앙국립박물관·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울역사박물관은 인터넷에 자료 구입한다고 공개하고 절차에 따르죠. 1차 일괄 인수, 2차는 보충해요. 기증받는 자료도 있고요.


Q. 글틴기자 : 자료를 기증받거나 구할 때 힘들었던 점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 있으면 한 가지만 부탁해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돈이 없고, 예산이 없어서 힘듭니다. 파는 사람 입장에선 많이 받고 싶고 우린 싸게 사고 싶으니까요. 좋은 자료는 비싸게 마련이니깐, 예산이 부족한 게 문제죠.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이렇다 할 만한 게 그 과정에선 없어요.


Q. 글틴기자(조인영): 속상했던 거라도 말씀해주세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속상했던 건 이런 거죠. 정말 필요한 자료가 들어왔어요. 공개 구입 때 신청자가 우리에게 매도 신청서를 내요. 희망금액을 적어서 내면, 외부 전문가 선생님들이 3차에 걸쳐서 회의를 해서 적정 가격을 매겨요. 신청자가 팔고 싶은 가격과 여기서 정한 가격의 차이가 크면, 당사자는 안 팔겠다고 하죠. 그렇게 무산된 경우는 늘 있어요.


Q. 글틴기자 : 그럼 그 파는 사람은 작가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인가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파는 사람도 산 거죠. 취미가 수집인 거예요. 지금도 몇 명 있어요. 어마어마하게 자료를 갖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Q. 글틴기자 : 수집가들은 다 연세들이 높으시겠네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대개는 높지만, 연령층도 다양하죠.


Q. 글틴기자(김선정) : 문학관을 열기 전에 주위 고등학생들에게 확인하는 과정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 과정을 통해서 변한 게 있나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완전히 변했어요. 문학관 개발하면서 이용자 계층을 첫 번째 학교 청소년, 두 번째 중고등학교 선생님, 세 번째 일반 시민, 네 번째 기타 등등으로 했는데, 전시 수준을 중학생 정도 교양을 가진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도록 했어요. 어렵게 꾸밀 수 없잖아요. 대학교에 있는 사람들에게 써달라고 하면 안 돼요. 원고는 저하고 관장님이 다 쓴 다음에 중학생부터 대학 교수까지 검토를 했어요. 중점적으로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죠. 고등학교 학생들도 인문계, 실업계 잘 섞어서 수십 명한테 받았어요. 고등학교 선생님들도 열 몇 분이 보고 난이도를 설정했어요.
전시 작품도 마찬가지예요. 문학 책이 14종인데 그 당시 나온 문학교과서와 새로운 판본을 다 구해서 어떤 작품이 있나 보고 넣었죠. 고등학교 문학 쪽 근대 문학 서술이 잘못 돼 있는 게 많아요. 국문학사와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이 달라요. 백퍼센트 교과서를 따라가진 않았어요. 학교에서 잘못 가르치는 건 우리가 바로잡겠다고 하고 고친 거예요.
김소월과 한용운은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근대 시사에서 벗어난 군소 시인인데 국민시인 반열에 올랐고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어요. 현실을 무시할 수 없고 학계만 쫓아갈 수 없으니 절충을 했어요. 윤동주는 학교에서 40년대 일제 말기 문인으로 가르쳐요. 우린 해방기로 전시해요. 학교에서 잘못 가르쳤어요. 육사, 윤동주를 일제 말기 암흑기 시인이라고 하는데, 일제 말기는 암흑기가 맞지만 두 시인은 해방 후에 알려졌어요. 작품은 창작이 되고 독자가 읽어야 생명력이 있는 거예요. 우리가 바로잡았어요.


Q. 글틴기자 : 재미있어요. 인천의 대표 작가는 없나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인천은 역사가 오래된 도시가 아니다보니깐 다행히도(?) 없어요. 안동만 해도 이육사가 있고 경주는 김동리, 박목월 작가가 있어요.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요. 되게 오래된 도시들은 있는데 인천은 이렇다 할 작가가 없어요. 대표 작가가 있으면 어떻게든 기념해야 할 텐데, 안동의 육사 같은 분은 없는 거죠.


Q. 글틴기자(김선정) : 부산에도 무역항이 있을 텐데, 인천이 다른 무역도시와는 다른 점이 문학에서 보이나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문학의 공간 얘기를 하자면, 근대문학작품에서 도시 등장 배경은 거의 서울이에요. 그 다음이 인천이에요. 그 다음은 없다시피 하죠. 인천은 일단 서울과 가깝고, 당일치기로 놀 수 있는 곳이에요. 일제시대 때는 그게 시대별로 좀 다른데, 신소설 시대는 외부로 나가는 통로였고, 그런데 20년대 이후로는 부산으로 일원화 되죠. 어차피 일본 요코하마에서 다 타야 되니 부산이죠. 인천에서 굳이 안 가요. 경부선 뚫리면서 20년대부터 여기는 공장이 많이 생겨요. 강경애 작가의 <인간문제> 같은 노동소설이 많이 나와요.
인천은 수도권 최고의 유원지, 환락지였어요. 서울에서 한 시간 이내에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불륜의 장소, 자살의 장소였죠. 이런 장소성 때문에 인천이 문학에 많이 나오게 된 거예요.
또 하나는 이쪽 근대문학관에서 1~2분 걸어가면 국민은행이 있는데, 당시 ‘미두취인소(현물 없이 미곡을 거래하는 곳. 실제 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미곡의 시세를 이용하여 약속으로만 거래하는 일종의 투기 행위가 일어났던 곳. 현재의 증권거래소 같은 곳)’가 있던 곳이에요. 투기하는 곳이 있다 보니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어요. 투기하는 것 자체가 근대적인 거죠.
소설과 시에서 인천이 드러나는 게 전혀 다르죠.
소설은 산문이고 호흡이 기니깐, 다양한 인천이 그려져요. 소설가들이 경험을 길게 가져가서 썼어요. 시 같은 경우는 호흡이 짧아요. 서울에서 시인들이 내려오는데, 잠깐 놀고 가면 좋잖아요? 항구가 있고 떠나가니깐, 얼마나 낭만적이에요? 개항장이니 옛날 건물들, 양관들이 남아 있고 이색적인 도시라 낭만적으로 그려요.


Q. 글틴기자(전인철) : 시를 낭만적으로 그린 작가들은 누가 있나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정지용, 김소월, 김기림 등이 있어요. 가령 김기림은 인천의 밤, 항구 야경을 보고 ‘부끄럼 많은 보석 상자’라고 그렸어요.


Q. 글틴기자 (조인영) : 우리나라는 작가주의 중심의 문학관이 많다고 얘기해주셨는데, 여기는 여러 작가들 특징을 얘기해주니 문학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한 작가를 보면 그 작가의 일생을 알 수 있지만 크게는 문학사와 연결이 잘 안 되거든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세계에서 유일한 종합 문학관이에요.


Q. 글틴기자 (김선정) : 다른 자료 보관은 따로 하나요?
A. 함태영 문학박사 : 수장고가 따로 있어요. 온도나 습도 조절을 위해서 항온항습 장치가 다 있죠. 육중 안전장치라서 다양하게 뭘 해지시키고 들어가야 돼요. (웃음)




2. [ 문학특!기자단 한국근대문학관 방문기]

낯선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에서 배우고 걸으며 만나다


김선정(문학특!기자단 2기)



이번 모임에서 가장 기대되었던 점은 ‘인천’이라는 장소였다. 필자에게 인천은 막연하게만 느껴져 왔다. 필자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경기·인천·부산을 제외한 전국에서 지원 가능했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경우 직접 가본 적은 없어도 친구들의 말을 듣고 친근하게 느껴졌는데, 인천만큼은 예외였다. 경기도는 갈 일이 있기라도 한데, 인천은 공항 말고는 딱히 갈 일이 없기도 했다. 1호선에 급행 전철이 있다는 것도 올해 인천에서 온 대학 친구들이 말해줘서야 알았다.
마음만큼 멀었던, 게다가 1호선 끄트머리인 인천역 가는 길. 밖이 보이면서도 시원시원하게 빠른 급행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게 했다. 그간 밀려 있던 생각들을 찬찬히 정리해갔다. 인천역에 도착한 건 생각보다 빠른 한 시간 반 만이었다.
길을 걸으며 한참을 지도와 표지판에 의지했지만, 근대문학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건축박물관 주위에 있으려니 싶어 직감에 의존해야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개관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중에 중고 음반 가게에 발이 멈춰 앨범을 무게가 꽤 되도록 사기도 했다.
인천 근대문학관은 문학사를 다루는 세계에 유일한 문학관이다. 입장료가 무료인데 반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은 ‘어마무시’했다. 일부러 전시 사진을 하나만 첨부하는데, 직접 가서 확인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모습과 똑같이 재현해 관람할 수 있게 해놓은 책과 근대작가들 캐리커처를 새긴 스탬프도 있었다. 정지용 시인의 책 옆에 시와 삽화가 그려진 판 같은 것도 있었는데, 왜 팔지 않을까 궁금할 정도로 예뻤다. 지역 예산으로 자료를 충당해야 하는 탓에 힘든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입장료를 받아도 워낙 내용이 좋아 괜찮을 것 같다. 관련 상품도 판다면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훌륭한 지갑털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내게는 낯설기만 한 인천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개항한 인천은 자유무역항이자 치외법권 지역이었기에 자연스레 국제성과 다문화성을 아우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근대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고, 다른 도시로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함태영 과장님은 인천을 요약해 ‘근대시민의 탄생지이자 근대의 실험장’이라고 적절히 비유하셨다.
“근대소설에서 가장 많이 나온 장소가 서울이고, 그다음이 인천입니다. 신소설에서는 특히 해외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고요. 공장이 많으니 강경애의 『인간문제』같이 사회주의 영향을 받은 노동소설의 배경이 됩니다. 수도권 최고의 환락·유원지구이었기에 불륜, 자살로도 많이 나오고요.”
인터뷰 등의 일정이 끝난 후, 신포 국제시장으로 걸어가 다양한 음식을 산 다음 자유공원으로 올라갔다. 당시 무척 피곤한 상태였던 탓에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괴롭힘 받는 주위 기자단. 특히 계단에서 공자로 추정되는 석상이 보여 설마 했는데, 공자가 맞았다. 저번 학기 전공 수업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자유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라고 한다. 인천이 근대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는 인터뷰 내용을 실제로 본 것이다. 정상에서는 부둣가가 보였는데, 작은 싱가포르를 보는 듯했다.
내게는 낯설었던 인천이 하루 만에 익숙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근대문학관에서의 인터뷰로 인천에 오래 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인천의 특성을 알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나중에 다른 계기로라도 인천을 방문한다면, 오늘을 지우개 삼아 이전의 낯섦이 지워질 테니까.


ksj-11. 한국근대문학관의 극대작가 초상화. 여성작가는 강경애뿐이었다.


ksj-22. 동인천역. 갈아타기 전 찍은 전철. 떠나는 사람과 되돌아오는 사람이 잠시 스치는 곳


ksj-33. 입구에 특별전시전. 함태영 과장님은 전시된 책 한 권만 있어도 인생이 여러 번 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ksj-44. 2층에서 바라본 근대문학관


ksj-55. 귀가 도중 하늘 전경


ksj-65-1.그날 오는 길에 찍은 하늘사진을 첨부하는 이유는 내가 보고 싶기 때문이다.




3. [ 문학특!기자단 인천근대문학관 방문기]

차별화된 매력의 근대문학관, 누구라도 방문하길


정현아(객원 문학특!기자단 2기)



새벽 4시 30분. 모닝콜 소리에 눈을 떴다. 끄고 다시 자고 싶었지만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어서 준비해야 했다. 여름이지만 아침 공기는 상쾌했다. 택시를 타고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서울로 가는 표를 끊으려고 줄을 서있는데 하필 내 앞에서 6시 차의 좌석이 모두 매진된 것이다. 출발 예정 시간이 6시에서 6시30분으로 바뀌는 것이다. 나는 결국 30분 더 기다렸다가 6시 30분에야 서울행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진주에서 서울까지 3시간 40분을 달려 도착하자마자 친구를 만났다. 바로 오늘 기자단 모임에 한 번 참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 친구이다. 기자 언니를 만나 내 진로인 ‘기자’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고 기자단 모임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 체험할 기회였다. 친구와 함께 인천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또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동했다.
인천에 도착하여 기자 언니를 만나게 되었다. 기자가 꿈인 나에게는 마치 꿈을 본 순간이나 다름없었다. 초면임에도 언니는 편안하게, 아주 자세히 기자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정말 귀에 쏙 들어왔고 기억해둬야 할 이야기들을 해주셔서 정말 좋았다. 그렇게 기자 언니와의 만남이 끝나고, 이제 기자단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함께 모여 이동한 곳은 바로 ‘한국 근대문학관’이었다. 인천 차이나타운 옆에 위치한 이 문학관은 작년 9월에 개관하여 여러 국문학자들과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들이 많이 찾는 문학관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문학관들은 이육사문학관이나 윤동주문학관처럼 작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근대문학관은 작가 중심의 문학관과는 다르게 ‘근대문학’에 초점을 맞춘 문학관이다. 우리나라의 ‘근대’라는 시기에 어떤 문학가들이 있었고 그들의 작품과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다룬 문학관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관 전체를 한 번 둘러보고 기자단은 문학관의 관계자분들과의 인터뷰가 있을 예정이었다. 사실 나는 이 기자단의 단원이 아니라서 내가 괜히 끼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기자가 되고 싶은 나에게 이런 인터뷰 과정에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집중해서 참여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문학관 개관 전에 인천시의 중고등학생들과 국어교사들, 일반 시민들을 구경시키고 피드백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문학관이나 박물관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개관 과정을 거치는지는 모르겠지만 문학관 자체에서 개관 전에 시민들에게 철저하게 피드백을 받았다는 것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 문학관의 개관 이념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관람을 하는 동안 중고등학생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전시되어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다. 특히 아이들이 직접 문학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전시들이 인상 깊었다. 예를 들면 시의 내용을 노래로 들을 수도 있고, 또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간단한 만화로 만들어 말풍선을 비워놓고 그 안에 들어가야 할 말을 스스로 적어볼 수 있게 하는 것들도 있었다. 또한 2층에는 근대의 대표적인 작가들, 염상섭부터 시작해서 이광수 등의 캐리커처를 스탬프로 찍어 갈 수 있도록 준비해두었다. 참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한다. 보통 관광지에 가서 가져오게 되는 팸플릿은 관광을 할 때는 많이 보지만 시간이 지나면 라면 받침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런 스탬프는 직접 찍은 것이기 때문에 팸플릿보다는 오히려 더욱 소중히 보관할 것이고, 근대문학관을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게 하는 특별한 요소인 것 같다. 또 기억에 남는 것 중의 하나가 자료이다. 다른 문학관들처럼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시집을 그때 재질 그대로 복원을 시켜놓아 직접 만져보고 읽어볼 수 있게 해놓았다. 당시 이런 재질의 책이 존재했다고 생각하니 근대문학이 아주 먼 과거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 관람과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국문학과를 다닌다는 것이 부끄러울 만큼 문학에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그 부끄러움마저 느끼지 못하고 살던 나에게 우리 문학에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글틴 기자단과 함께해서, 그리고 그들과 함께 문학에 대해 느껴보았기 때문에 더욱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이렇게 문학관을 방문한 후 바로 옆에 위치한 ‘인천아트플랫폼’을 한 바퀴 돌고 근대 건축 전시관을 방문했다. 작은 공간에 근대의 건축물들을 모형으로 만들어 놓고 바닥부터 천정까지 활용하여 전시해놓은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그리곤 시장에서 닭강정과 공갈빵 등 여러 가지 먹을거리를 사서 바로 옆 자유공원으로 향했다. 닭강정 아주머니가 말씀해주신 지름길이 너무나 가팔라 땀이 났지만 시원한 바람 덕분에 금방 땀이 식었다. 공원에 도착하여 벤치에 앉아 다 같이 사온 음식을 나누어먹었다. 힘들게 올라온 뒤 먹어서 그런지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모임이 끝나고 다 같이 인천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진주에서 서울까지, 다시 서울에서 인천까지 거의 4시간 30분을 달려 온 이곳에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고 돌아간다. 특히 근대문학관은 다른 문학관과의 차별화된 매력을 가진 것 같다. 아까도 말했듯 작가 중심의 문학관이 아니라서 문학이라는 ‘숲’을 볼 수 있다는 것, 즉 크게 보고 넓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인 것 같다. 또한 주변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두루 갖추어 누구나 편안하게 와서 관람할 수 있는 문학관이라고 생각한다. 신설되어 문학관이 아직은 전국적으로 유명해지지는 않은 듯하지만 앞으로 그럴 만한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문학관 자체도 학생들을 위한 교육과 행사를 많이 실행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 혹은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와서 근대문학이 현재와 그리 멀지 않음을, 문학이 우리 생활과 멀지 않음을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




4. [ 문학특!기자단 인천근대문학관 탐방기]

사진 30컷과 함께 하는 문학 특!기자단 인천 여정


김유진(문학특기자단 1기)



8월 문학특!기자단의 모임 장소는 인천. 고작해야 서울만 오가며 취재 활동을 다닌 경상도 토박이에게 인천은 제법 낯선 도시였다. 어떤 교통수단으로 갈까 생각하다가, 모임 시간이 두 시였으므로 넉넉하게 서울을 경유하여 지하철로 가기로 결정했다. 지하철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인천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네 시간 반 정도였고, 아홉 시 사십분 차를 타면 적당할 거라고 생각했다. (후에 이것이 큰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서둘러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고속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는데, 집으로 돌아갈 표를 끊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몇 층의 계단을 다시 올라가 겨우 표를 끊고 지하철역에 들어서니 벌써 1시. 늦겠다 싶어 일단 노량진행 9호선에 올라탔다. 정신없이 노량진에서 내리자마자 인천행 1호선을 찾았지만, 역 밖으로 나가서 타야 된다는 표지판을 보고 다시 전력 질주했다. 1호선은 마치 기차역처럼 플랫폼이 줄지어 있었고, 나는 당연히 ‘인천행’ 전철에 올라탔다. 한숨 돌렸다 싶어 지하철에 앉아 친구들과 메신저를 주고받는데, 지하철 안내 음성이 울렸다. 이 열차가 인천행이 아닌 서동탄행이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는 수도권 친구들에게 에스오에스를 쳤고, 다행히 인천에 사는 아이가 당장 내려서 급행을 타라고 조언해주었다. 급행이 있었다니.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늦지 않게 구로에서 내렸다. 구로역 역시 플랫폼이 나뉘어 있었다. 동인천 급행 플랫폼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도중, 방금 전철이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 다음 차 시각은 2시 2분. 모임 시간이 2시인데 2시 2분행 전철을 타야 하다니. 나는 하루 종일 뛰어다녀 땀에 푹 젖은 옷을 말리며 벤치에 주저앉았다.
겨우 동인천에서 내려 (여기서도 실수했다. 인천역으로 갈아탄 후 걸어가면 되는 거였는데...) 택시를 타고 취재 장소인 근대문학관으로 향했다. 택시 아저씨는 근대문학관이 어디인지 몰랐고, 그래서 나는 직접 검색을 해서 아저씨에게 길을 알려주었다. 아트플랫폼 근처에서 내린 나는 어렵지 않게 근대문학관을 찾았고, 안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 기자단에 합류했다.


kyj-11. 근대문학관의 모습

늦게 온 탓에 1층만 대충 둘러본 후, 인터뷰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했다. 아담하고 조용한 사무실에서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한 터라 준비하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kyj-22.

인터뷰하는 문학 특!기자단과 인터뷰이. 사진을 찍어주신 분 또한 인터뷰에 참여해주신 문학박사님이셨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직접 사진사를 자청하셨다.


사십 여 분간의 인터뷰를 끝내고 우리는 다시 박물관을 구경했다. 인터뷰 때 ‘한 점만 있으면 인생을 펼 수 있는’ 작품이 많다는 소리를 듣고서 보니 왠지 모든 게 더 귀중해 보이는 기분. 1층 구경을 끝내고 2층에 올라가 각종 체험을 하고, 볕이 잘 드는 휴게실에서 사진도 찍었다. 근대문학관답게 책도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이것.


kyj-33. 유불란의 캐릭터화

한국 최초의 탐정소설가 김내성의 작품 「마인」의 주인공 ‘유불란’이다. 사진으로 잘 보일는지 모르겠지만 각도에 따라 유불란의 인상착의가 달라진다. 평소엔 백색의 평범한 조선 옷을 입고 있지만 탐정 활동을 할 때엔 나비넥타이와 안경, 모자를 착용한다고.


kyj-44. 조선시대 때 유행한 딱지본 소설들


kyj-55. 각종 작품 원서들


kyj-66. 직접 문학인 도장을 찍어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여러 작품들을 구경 후 우리는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인천에 온 만큼 대표 음식을 먹자는 의지로 우리는 차이나타운의 공화춘 짜장면과 신포 시장의 닭강정으로 논쟁(?)했다. 결국엔 네이버 사다리 타기로 닭강정 결정.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근대문학관을 빠져나왔다.


kyj-77. 근대문학관 안과 밖에서

점심을 먹기 전, 우리는 근대 건축전시관에 잠깐 들러 전시물들을 구경했다. 근대 건축전시관 역시 문학관 근처에 있었다. 각종 박물관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투어 형식으로 이곳저곳 입맛에 맞추어 돌아다니는 것도 여행의 한 방법이 될 것 같다.


kyj-88. 건축 전시관 입구

500원(청소년요금)을 내면 1층을 둘러볼 수 있다. 각종 건축 모형들과 인천의 모습들, 공화춘의 기와 등 여러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다. 우리는 모형들을 둘러본 후 뒷문으로 나왔다. 뒷문에는 근대 풍경의 사진이 있었는데, 기자단 인영이와 현아가 바로 앞에서 설정 사진을 찍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빨리 도망쳐 나왔다.


kyj-99.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 씀

신포시장으로 가는 길의 마을은 놀라울 정도로 예뻤다. 드라마에 나오는 곳 같기도 했고, 문학 작품에 묘사되는 곳 같기도 했다.


kyj-1010. 예뻤던 벽화


kyj-1111. 기자단의 늠름한(?) 뒷모습. 바람이 많이 불어서 치마를 입고 왔던 나는 꽤 힘들었다.

신포시장에 접어들자, 내가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재래시장의 길이 일자로 나 있었고 대부분은 간식거리를 팔았다. 튀김과 핫바, 부꾸미나 닭강정을 내놓고 바로바로 구워 팔고 있는 모습에 우리는 눈이 뒤집혔다.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우리는 음식을 조금씩 샀다. 시장의 끝으로 가자 닭강정 집이 가득했는데, 어느 집은 줄이 길었고 어느 집은 줄이 하나도 없었다. 미심쩍었지만 ‘닭 맛이 거기서 거기지’ 싶어 줄이 없는 곳을 선택. 닭강정까지 사가지고 우리는 다시 자유공원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자유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매우 가팔랐다. 흔한 체력 부족 청년인 우리들은 올라가는 내내 헉헉거렸다. ‘다시 내려가 버릴까’도 몇 번 말했던 것 같다.


kyj-1212. 올라가는 길에 발견했던 공자 석상. 철학과 선정이가 보고 소름끼쳐했다.


kyj-1313. 공자를 등지고 두 컷. 멀리 바다도 보인다.


kyj-1414. 드디어 자유공원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공원 입구의 유일한 슈퍼에서 음료수를 사 적당한 자리를 구했다. 결국 벤치 낙점. 겨우 앉은 우리가 사 온 음식을 폈다. 기자 언니가 대학생 시절에 이곳에서 음식을 펴고 먹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도 패기 있는 젊은 대학생마냥 모두가 쉬는 벤치에 앉아 각종 음식을 폈다. 꽤 많이 산 덕에 의자가 꽉 찼다.


kyj-1515.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하이에나들의 손.

닭강정, 치즈만두, 핫바, 부꾸미, 공갈빵, 그리고 술떡까지. 비록 기대했던 닭강정의 맛이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인기 있는 곳은 괜히 인기 있는 곳이 아니다 싶은) 어찌됐든 우리는 점심을 맛있게 해결했다. 특히 중국식(인지 아무튼, 우리나라식은 아닌) 치즈 만두의 맛은 일품이었다. 인천 국제신포시장에 가면 꼭 먹어보길 바란다.


kyj-1616. 공갈빵이 엄청 컸다. 농담 보태서 우리 얼굴만 했던.

점심을 먹은 우리는 자유공원의 정상으로 올라갔다. 익숙한 국민체조 노래가 들려와 봤더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유니폼을 맞춰 입고 체조를 하고 계셨다. 아마 동호회 같아 보였다. 체조가 끝나자 율동을 시작하시더니, 우리가 내려갈 때쯤엔 고난이도의 댄스를 하고 계셨다. 무슨 동호회일지 아직도 궁금하다.


kyj-1717. 자유공원과 의문의 동호회

바다가 보이는 자유공원에서 한 컷을 찍고 우리는 하산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훨씬 쉬웠다. 어쩌다보니 내려오는 길엔 온통 연애 얘기만 한 것 같다. 연륜이 느껴지는 기자언니의 연애 상담이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차이나타운을 지나간 후 인천역으로 가기로 하고, 우리는 시끌벅적한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빨간 간판이 가득한 것을 보니 흡사 중국의 어느 골목에 온 듯한 느낌. 길거리 곳곳에서는 지팡이 아이스크림과 공갈빵을 팔았고,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는 곳곳을 둘러보며 최초의 짜장면 집 공화춘도 지나쳤다. 역시 명소답게 줄이 길었다. 다음에는 꼭 와서 먹어봐야겠고 생각한 후, 바로 인천역으로 향했다.

짧지만 긴 여정을 끝마치고 우리는 전철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쉼 없이 조잘대다가 모두 헤어졌다. 지역만 달라졌을 뿐인데 어느 때보다 더 알찬 모임이 된 기분. 취재뿐만 아니라 짧은 여행을 다녀온 것 같아 즐거웠다. 다음엔 인천 연안부두와 월미도를 가볼까 생각 중. 인천은 보기보다 무척 아름다운 도시였고, 동시에 사람 냄새나는 어촌 느낌이 물씬 풍겼다. 글틴에게도 꼭 추천해주고 싶은 도시다.


kyj-1818. 또 와야겠다!




5. [ 문학특!기자단 인천근대문학관 탐방&후기]

빛의 전시


전인철(문학특!기자단 2기)



천장의 조명 불빛이
박물관의 벽을 타고 흘러내린다


환한 유리관 속에는
빛을 바랜 책들이 놓여 있다


우글우글한 책들은
모래시계처럼
각각이 품고 있는
한 날의 시간을 돌고 돈다


누렇게 뜬 책의 페이지에는
첫 번째 페이지이자
마지막 페이지가 될 수 있는
빛의 경로가 세워져 있다


다른 모습을 가진 그늘의 표본
그것이 주인으로 둔 빛줄기를 따라
하나의 색으로 익어가고 있는 것이다


뜨겁게, 더 뜨겁게
달아오른 그늘을
빛줄기가 따르게 되기까지


나는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 소재지를 둔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그렇지만 십 수년을 인천에 살고 있음에도 백일장이나 타 행사들이 다른 지역에서 이루어져 대부분의 주말을 타지에서 보내곤 한다. 그래서 학교나 집근처 외에는 인천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한다. 오죽하면 지금도 인천에 대한 것은 내가 인천을 살면서 알게 된 것보다도 한국사를 공부하며 배운 지식이 많은 편이다.
그런 나로서는 이번 한국 근대문학관으로 인터뷰를 가게 되었을 때 묘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한국 근대문학관에 방문했을 때는 근대의 대표적인 소설과 시들의 초판이나 출간본이 시대별로 유리관 속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왜 굳이 이런 귀한 자료들을 인구가 밀집되는 서울이 아닌 한 구석에 위치한 인천에 문학관을 지어 전시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까닭이었다. 내가 아는 한 인천은 최근 들어 책 읽는 도시나 문화 산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긴 하지만, 도시 자체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안동의 이육사나 봉평의 이효석과 같이 대표되는 문인도 없고 문학에 대한 어떤 연관성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한국 근대문학관에 근무 중인 큐레이터와 함태영 과장님을 인터뷰하면서 왜 인천에 한국 근대문학관이 들어서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첫째는 인천이 바다라는 지리적 특성상 근대에 신문물을 가장 먼저 수용해왔던 곳이라는 것에 의의를 둔다는 점이고, 둘째는 오히려 대표적인 문인이 없다는 데서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총괄적인 문학을 다룬다는 점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참 인터뷰가 오고 가며 나는 국문학 박사학위를 가진 함태영 과장님의 말씀에서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들을 수 있었는데, 이는 주로 국문학을 전공한 이후에 전공을 연계하여 문학관에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편이었다. 문예창작학이 문학을 심도 있게 창작하는 법에 대하여 배운다고 하면 국문학은 문학뿐만 아니라 문학에 관련된 총제적인 점들을 폭넓게 다룬다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았고, 한국 근대문학관에서 예를 들자면 자료의 수집이나 적격여부의 심사 그리고 편의상 왜곡되거나 지나치게 부각된 문학사에 대한 정정 같은 것, 또 문학의 내용을 만화 등 다른 시각 매체와 연관시켜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오게 하는 노력 같은 것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확실히 근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문화를 수용하던 인천을 터로 잡은 것이 근대의 문학사를 보여주기에 큰 의의를 갖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긴 인터뷰를 마치고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가 그곳에 전시되어 있는 문학으로 만든 여러 프로그램을 체험했다. 각도에 따라 작가를 탐정으로 보여주는 홀로그램이 있어 신기하기도 했고, 그 옆에 준비된 문학관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퀴즈는 문학관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둘러보았다면 충분히 풀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문학관의 취지에 맞게끔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문학을 알리고자 고민한 흔적들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후에는 우측의 전시물들을 지나 빛이 새어 들어오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전면이 창으로 된 트인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세계문학과 다양한 책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타 문학관에서는 책을 읽는 공간이 있다 하여도 작은 공간에 형식상으로 만들어두는 경우가 많은데 나무 의자와 책상이 구비되어 편히 책을 읽힐 수 있도록 하는 배려가 엿보였다.
문학이 몇몇 사람들에 갇혀 있는 예술이 아닌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문학관이 점차 늘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문학을 쉽게 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을 때 비로소 문학이 문예로 다가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각자 전시관을 조금 더 둘러보다가 독서 공간 앞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문학관 밖으로 조용히 발길을 돌렸다.



《글틴 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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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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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8-01
최진영 작가님의 다정한 목격자 되기 − 우리가 작가님의 북토크에 계속 가는 이유

[문장서포터즈] 문장서포터즈 1기 '몽글' 6명은 만 18세 이상 미등단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몽글'은 직접 작성한 활동계획서를 기반으로 문학 관련 콘텐츠를 취재하며 다양한 형식으로 재생산하는 기획자로서 문학을 탐구합니다. 2024년 8월부터 2025년 1월까지 6개월간 문장웹진 '모색'에서 문장서포터즈의 다양한 기획을 만나보세요. *몽글 : 문장서포터즈의 이야기가 독자의 마음에 몽글몽글 뭉치어 있게 해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 최진영 작가님의 다정한 목격자 되기 − 우리가 작가님의 북토크에 계속 가는 이유 배연주 삶에 활력을 주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가는 일. 아름다운 예술을 접하는 건 일상에서 이벤트가 되어 준다. 그러다가 좋아하는 특정 예술가가 생기면 그 사람의 작품이나 공연을 계속 보러 간다. 소위 ‘덕질’을 하게 된다. 나는 공연도 전시도 좋아하지만 가장 오래된 덕질 분야는 소설이다. 공연을 보는 일이 짧은 시간 안에 폭발적인 즐거움을 준다면, 문학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파를 남긴다. 읽으면서 마음에 남았던 문장도, 당시에는 와 닿지 않던 문장도 시간이 흘러 다시 읽으면 새로운 감동을 준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작품에 관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건 책 출간 직후뿐이다. 그래서 나는 북토크 소식이 들리면 꼭 찾아간다. 최근에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최진영 작가님의 북토크에 자주 다녀왔다. 얼마 전에 내가 또 최진영 작가님의 북토크에 간다고 하니 한 친구가 물었다. “같은 작가님 북토크 가면 항상 똑같은 말만 듣는 거 아니야?” 나는 곧장 아니라고 대답했다. 동시에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최진영 작가님을 좋아하게 된 계기와, 계속 북토크에 가는 이유에 대해 말이다. 1. 독자, 수강생, 팬 작가님의 책을 처음 읽었던 때는 2011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이었다. 우리 가족이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2주에 한 번씩 도서관 버스가 왔다.(지금 찾아보니 공식 명칭은 ‘이동도서관’이라고 한다.) 개조된 버스 내부 서가에 있는 책을 빌려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때 최진영 작가님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을 빌려 읽었다. 이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에 내가 침대에 거꾸로 엎드려서 책 읽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 두꺼워서 오래 읽느라 어깨가 아팠던 기억이 있다. 14살의 나는 분명 ‘소녀’ 이야기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좋았다. 실제로 내가 겪어 보지 않거나 알지 못해도, 감각으로 좋다고 받아들이는 것들이 있다. 멋진 그림을 보면 그것이 왜 아름다운지 기술적으로 분석해서 설명할 능력은 없더라도 마음속에 박히는 것처럼. 가령 이런 문장들이 그랬다. ‘죽는 순간 공포나 고통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죽으면 끝이니까. 끝이란 걸 어떻게 아느냐고? 왜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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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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