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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제주풀무질(제3회)

  • 작성일 2022-10-01
  • 조회수 1,170

[책방곡곡]

 

 

 

제주풀무질(제3회)

 

 

 

 

ㅇ 함께한 사람들 : 은종복, 김지수, 조준희, 박정숙, 안현재
ㅇ 책 : 『여름이 온다』 (이수지 글·그림, 비룡소, 2021)
ㅇ 때 : 2022년 8월 23일 화요일 저녁 7~9시
ㅇ 곳: 책방 〈제주풀무질〉

 

 

 

 

 

이야기 나눈 것

 

은종복 : 안녕들 하셨어요. 코로나19바이러스로 모두들 안녕하지 못하지만 이렇게 인사를 나누네요. 오늘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지원해 주는 세 번째 모임이에요. 저희 책방에서 하는 마지막 모임이죠. 사실 아시겠지만 ‘제주그림책읽기모임’은 그동안 잘 되지 않았지요. 올해 1월부터 시작을 했는데 아이들이 같이 오면서 책읽기가 집중이 안 되었어요. 저는 그냥 아이들도 모임에 같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누군가 돌봐야 해서 모임이 흐트러졌죠. 오늘은 아이들이 오지 않아서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어요. 참석자들도 기존에 오셨던 분들 말고 새롭게 꾸렸어요. 아무튼 오늘 모임에 오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읽을 책은 이수지가 쓴 그림책 『여름이 온다』예요. 아시겠지만 이수지는 ‘2022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받았어요. 그 상은 그림책 노벨문학상이라고 할 정도로 그림책 작가에겐 최고의 상이죠. 이수지 작가는 『여름이 온다』로 ‘볼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에서도 상을 받았어요. 그 상도 최고의 상이에요. 우리나라 작가가 이렇게 큰 상을 받는 것은 드문 일이지요.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가 작곡한 ‘사계’ 가운데 ‘여름’을 듣고 작품을 썼대요. 모임 전에 비발디 음악을 같이 들었는데 그림책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이야기를 나눠 볼까요.

 

김지수 : 오랜만에 그림책을 읽어요. 저는 여행을 좋아해서 다른 나라에 가면 꼭 그림책을 샀어요. 다른 나라 말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그림책은 글밥이 적어서 그림만 봐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이수지 작가의 『여름이 온다』도 글이 거의 없잖아요. 오히려 그런 이유로 큰 상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아무튼 그림책은 그 나라 분위기를 알게 되고 언어를 몰라도 볼 수 있어서 좋네요.
『여름이 온다』를 보면 물풍선이 많이 나오잖아요. 다른 나라 어른들이 보면 한국에선 아이들이 물풍선을 터뜨리며 노는구나 알 수 있죠. 또 다른 나라 아이들이 봐도, 이 그림책은 보는 내내 물놀이하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저도 그랬고요.

 

조준희 : 저는 제주시 구좌읍 평대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요. 올 여름을 생각하면 끔찍해요. 당근, 감자, 무를 파종하고 나면 긴장되고 떨려요. 비가 와야 되는데 올해는 제주도에서 몇 년 만에 가장 심한 가뭄이에요. (제주그림책읽기모임을 하고 나서 태풍 힌남노가 와서 당근 파종한 것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 세화바다에서 몰고 온 소금비가 당근 밭에 뿌려져서 싹이 나지 못했다) 『여름이 온다』처럼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비가 오면 좋겠어요. 비발디 사계를 들으며 그림책을 읽었어요. 사계 가운데 여름이 모두 3악장으로 이루어졌죠. 다 들으니까 10분쯤 걸리더라고요. 책을 다 읽는 시간과 거의 맞아서 신기했어요. 음악을 들으며 그림책을 보니 더욱 생생하게 보였어요. 음악과 그림책이 한 몸처럼 느껴졌어요. 작가들은 시를 읽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보고 소설을 쓰고, 음악을 듣고 그림책을 만드는구나 싶었어요. 그것을 공감각이라고 하지요. 시각, 청각, 촉각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 말이에요. 『여름이 온다』는 한 번 보면 두 번 보고 싶고, 두 번 보면 세 번 보고 싶은 책이에요.
제 아이는 바다를 참 좋아해요. 저는 바다에 들어갔다 나와도 더워서 싫은데, 아이는 안 그래요. 더워도 바다에서 첨벙거리며 뛰노는 것을 좋아하죠. 지치질 않아요. 올해도 세화바다에 몇 번 갔는데 자꾸 또 가자고 하네요. 그런 아이들 마음을 이 그림책은 잘 나타내고 있죠. 저도 어릴 땐 그랬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되니 감수성도 떨어지고 그냥 편하게 그늘막에서 수박 먹으며 낮잠이나 자는 것이 좋네요.
왜 어른들은 여름을 두려운 대상으로 볼까요. 내가 농사를 지으니 비가 안 오는 여름이 싫을 수도 있고, 밭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잡초를 뽑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겠죠.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될수록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감정이 사라져서 그래요. 비가 오건 안 오건 아이들은 어떤 놀잇감이든지 찾아요. 『여름이 온다』에서는 비가 쏟아져서 우산이 날아가지만 아이들은 그래도 신나게 놀잖아요. 저도 덩달아 흥겹고요. 폭풍이 불지만 폭풍 뒤에는 시원한 바람도 불고요. 어른들 눈이 어린이처럼 새롭게 열렸으면 좋겠어요.

 

안현재 : 책이 두꺼워서 글밥이 많은 줄 알았는데 글밥이 없어서 빨리 읽었어요. 저도 비발디 사계 여름을 들으며 읽었어요. 저는 음악이 끝나기 전에 그림책을 다 봤어요. 이 그림책은 음악회에서 실제로 연주하는 것처럼 느꼈어요. 군데군데 연미복을 입고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이 자주 나오지요. 그림책 마지막 부분에선 그들이 청중에게 인사도 하고요. 비발디 사계를 연주하는 무대 안으로 나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그곳에서 물놀이도 하고 폭우를 맞으며 춤도 추는 나를 상상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읽을 때는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이 모두 끝나고도 계속 그림책을 봤어요. 그림책을 보면서 무한한 상상에 빠졌지요.
사실 처음에는 이 그림책이 이해가 잘 안 되었어요. 특히 비발디 사계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하는데 그림책만 봐서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그림책 날개에 작가가 쓴 설명을 읽고 나서 다시 그림책을 보면서 비발디 사계를 들으며 몰입했어요. 그 글을 한번 볼게요. “격렬하게 즐거운 물놀이와 한여름의 변화무쌍한 날씨, 그리고 비발디. 이렇게 서로 만나면 뭐라도 나오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귓가에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이 흐르자, 갑자기 음표가 물방울처럼 통통 튀고 악보에서 우르릉 천둥이 쳤습니다. 이제 독자 여러분은 마련된 객석으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그림책은 조준희 님이 말씀했듯이 공감각적 시각을 주어요. 생각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힘이 있어요. 아이들은 아이니까 재밌고 신나게 놀고, 어른들도 아이 마음이 돼서 정신없이 놀지요. 그 속에서 바이올린 연주가 폭풍우처럼 밀려오고요.

 

박정숙 : 그림책을 보면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글밥이 적고 그림으로 책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 『여름이 온다』는 글이 거의 없잖아요. 그림을 보면서 작품을 이해해야 하는데, 작가가 말하는 것을 제대로 이해했나 싶어서 더 어려웠어요. 글이 없는 작품은 늘 변주되는 느낌이에요.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음악을 들으면 마음속에서 어떤 상이 떠올라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돼요. 『여름이 온다』를 읽으려고 비발디 사계를 여러 번 들었지만 이 작품이 사계 여름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솔직히 다가오지 않았어요. 아무튼 그림책은 스토리를 글자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보면서 다르게 보는 맛은 있어요. 어떤 그림책은 볼수록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지요. 『여름이 온다』도 서너 번 읽으니 아이들이 신나게 뛰노는 그림이 그려지긴 했어요. 비발디 음악도 비구름을 몰고 오는 느낌을 받았고요. 하지만 비발디 사계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어떻게 다른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마음을 내려놓고 들어야 하는데 어른이 되면서 음악 감수성도 떨어지고, 아이들 마음을 읽는 감수성도 무뎌지나 봐요. 그림책을 볼 때도 글자에 갇혀서 이야기를 찾으려 해요. 그림책은 글보다 그림을 봐야 하는데 말이에요. 글에서 메시지를 찾으려다가 별 감동을 못 느끼게 돼요. 그림책은 이론서가 아닌데 말이에요. 상상력이 부족한 거죠. 아이들 마음을 잘 알아야 작품을 써야 하니 그림책 작가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이는 어른이면서 마음은 어린이 마음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만이 어린이 책을 잘 쓸 수 있지 싶어요.
이 책 제목이 『여름이 온다』예요. 이 책 마지막 문장이 “여름이 왔다.”예요. 그 간단한 말에 마음이 ‘쿵’했어요. 여름이 시들시들 오다가, 여름 속 주인공이 되어 무더위 속에서 물놀이를 실컷 하다가, 어느새 폭풍우가 몰아치면서 여름이 성큼 들어와요. 그 무대 속에 내가 있으면서 감동이 왔어요. 또 이 작품에서는 여름이 아주 다양한 색깔로 표현돼요. 파란색도 옅은 연둣빛 나는 파란색에서, 짙은 보랏빛 나는 파란색으로 나타나죠. 하늘도 검은색에서 흰색까지 색색으로 표현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엄습함과 웅장함을 표현하고 있어요. 아이들 몸도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이 다 나와요. 이런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피부색이 달라도 흥겹게 뛰노는 아이들 마음 같다는 것을 느꼈어요. 빗줄기도 일자로 내렸다가 휘몰아쳐 내리기도 하잖아요. 그것도 아이들 마음 같았어요. 마음껏 뛰놀고 싶은 아이들 마음이요.
궁금한 게 있어요. 이 작품에선 우산이 왜 딱 하나만 나올까요. 그 주황색 우산이 날아가기도 하고, 아이가 펼쳐 쓰기도 하는데 꼭 하나예요. 마지막 장면에는 사람은 없고 날아가던 우산이 탁자 위에 거꾸로 세워져 있죠. 초록숲 속에 있는 탁자 위에 서 있는 주황색 우산은 위태로워 보이지만 자유로웠어요.

 

은종복 : 저는 『여름이 온다』를 읽으려고 요 며칠 사이에 책방에서 비발디 사계 가운데 여름만 열 번 넘게 들었어요. 책방에 온 어린이 손님이 『여름이 온다』를 보면 비발디 음악을 들려주었죠. 그러면 책을 사가기도 했어요. 어떤 7살 난 여자 아이는 『여름이 온다』를 거꾸로 보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거꾸로 보면 자신이 무대 위에서 연주를 하는 느낌이 든대요. 이 책 끝 장면에 연주자들과 아이들이 모두 나와서 인사하잖아요. 그 장면이 처음에 연주를 하기 전에 인사하는 것 같대요. 또 강아지도 나오지요. 강아지가 무대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참 재밌대요.
이수지 작품 가운데 ‘강이’가 있어요. 데려온 강아지 ‘강이’를 바다와 산이라는 아이들이 돌보다가 하늘나라로 가는 슬픈 이야기지요. 실제 이수지 작가에게 있었던 일이래요. 그래서 그런지 이수지 작가 작품에는 강아지가 잘 나오고, 강아지 생김새도 비슷해요. 물론 아이들 얼굴도 비슷하지만요. 저는 ‘강이’ 작품을 무척 좋아해요.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예요.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 사계 가운데 여름을 떠올리며 썼잖아요, 저희 책방에 있는 비발디 음반 해설서에서 봤는데 비발디는 누군가가 쓴 소네트를 가지고 음악을 만들었대요. 그 소네트를 볼게요.
여름 제1악장 - 너무 빠르지 않게 - “이 무더운 계절에는 타는 듯한 태양에 사람이나 짐승 할 것 없이 모두 활기를 잃고 나른해져 있다. 시원해야 할 푸른 들마저 무덥게만 보인다. 멀리서부터 뻐꾸기가 울기 시작한다. 이어 산비둘기가 이에 답하듯 노래한다. 간혹 산들바람이 옷깃을 스치며 부드럽게 불어댄다. 그러나 갑자기 쌀쌀한 북풍이 불어 닥친다. 소나기가 올 듯하다.”
여름 제2악장 - 느리게 빠르게 - “불길한 천둥이 요란하게 터져 나오고, 놀란 짐승들은 두려움에 떤다.”
여름 제3악장 - 빠르게 - “드디어 무서운 일이 닥쳐왔다. 하늘은 천둥과 번갯불, 우박을 내려 풍성했던 오곡을 다 짓밟고 말았다.”
시가 음악이 되고, 음악이 다시 그림책으로 바뀐 거지요.
한 마디씩만 했는데도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네요. 『여름이 온다』 그림책 말고도 그림책 전반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눠 볼까요.

 

조준희 : 『여름이 온다』처럼 비가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림책 모임을 마치고 며칠 뒤에 우리나라에 태풍 힌남노가 몰아쳐서 당근 농사를 망쳤다) 이렇게 비가 안 오니 농사꾼이 살 수가 없네요. 비가 내려 주면 이수지 그림책을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안현재 : 『여름이 온다』 1악장은 그림이 색색으로 나오잖아요.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여름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아이들이 들떠 있는 모습이 무지개 빛깔로 나타나는 것 같았어요. 2악장 3악장에선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어서 아이들이 놀기도 하지만 도망가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라 단색으로 표현한 것 같아요.

 

박정숙 : 『여름이 온다』 앞부분은 사람들이 무료하게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있어요. 그러다 점점 더워지면서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바다에 나와서 놀아요. 세 명이 되고 네 명이 돼서 놀지요. 강아지도 함께하고요. 아이들은 세 명이 모이면 모든 게 다 돼요. 아무리 던져도 사람이 죽지 않는 물풍선(물폭탄)을 던지고, 아무리 쏘아도 피가 나지 않는 물총을 쏘면서 여름 속으로 푹 빠지죠. 여름의 맛을 알아 가는 아이들이 참 보기 좋았어요. 어른들은 더위만 피하고 싶고 비가 와서 농작물이 잘 되었으면 하는데, 아이들은 비가 안 와도 좋고 비가 와도 좋아하네요. 아이들은 자연이에요.

 

조준희 : 저는 이 작품을 보면서 아이들이 물풍선과 물총을 쏘며 노는 것이 인위적인 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늘에서 진짜 비가 오기 전에 아이들이 기우제를 지낸다고 할까요. 아니면 아이들은 이미 하늘에서 비가 올 줄 알고 물로써 하늘 비를 맞는 의식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농사를 지으니 모든 것을 비와 연관 지어서 말하네요. 아이들은 아무 뜻 없이 그냥 신나게 노는데 말이에요.

 

김지수 : 저는 『여름이 온다』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고함’이에요.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면서 지르는 커다란 소리요. 마치 어른들이 들으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아이들은 마음껏 놀 자유가 있다는 목소리요. 그 소리를 듣고 어른들은 그 놀이에 끼어드는 것이죠. 『여름이 온다』에선 아이 어른 강아지 구분 없는 해방 놀이터가 돼요.

 

안현재 : 이수지 작가가 해외 어린이문학상을 받은 이유가 있어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바로 직관적으로 느낌이 와 닿아요. 색깔과 아이들 표정이 어느 나라 아이들이나 즐겁게 볼 수 있는 작품이에요.

 

은종복 : 아까 박정숙 님이 이 작품에서 주황색 우산이 하나만 나오는 것이 이상하다고 했지요. 그 우산은 가을과 꿈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잖아요. 아이들은 여름은 여름대로 즐겁게 놀고, 가을은 가을대로 신나는 일이 생기기 않을까요. 그것은 꿈이고요. 주황색 우산이 노랑 은행잎을 닮아 보여서요. 이 책 마지막 장면이 초록색 숲이 우거진 곳,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탁자 위에 노란빛을 띤 주황 우산이 바람에 날려 와서 거꾸로 있잖아요. 그 우산은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쓸 수 있는 우산이지요. 빈 의자는 지금은 비어 있지만 누군가가 와서 앉을 수 있듯이, 그 우산은 가을이 오면 누군가의 우산이 되지 않을까요. 그 우산은 아이들에겐 물놀이와 비를 막아 주었던 추억이 있는 우산이고요. 이렇게 서로 연결되지 싶어요. 이수지 작가가 잃었던 강아지 ‘강이’가 『여름이 온다』에서 다시 살아났듯이 말이에요.

 

박정숙 : 비발디 사계를 모티브로 쓴 작품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림책에도 음표가 자주 나오잖아요. 음표는 삶의 리듬이에요. 아이들은 아이들 목소리가 있고 어른은 어른들의 고달픔이 있는데, 이 그림책에서는 그것들이 서로 어우러져 조화로운 화음이 되네요.

 

조준희 : 이 책 1악장을 보면 물싸움을 하면서 서로 괴롭히잖아요. 하지만 그것을 즐기면 괴롭힘이 아니라 즐거움이죠. 아무런 악의 없이 물총을 쏘는 모습에서 상대방을 괴롭히려는 마음보다는 시원한 물줄기를 선물하겠다는 마음이 앞선 거지요. 어른들이 벌이는 총싸움과는 달라요. 군인은 사람을 많이 죽여야 훈장을 받잖아요. 아이들 세계에서는 물총을 잘 쏜다고 칭찬을 받진 않아요. 그냥 놀이니까요. 어른들은 어린이에게서 배워야 해요.

 

박정숙 : 사람들 몸 색깔이 다른 게 좋았어요. 그것은 다른 피부를 나타낼 수도 있고, 다른 마음을 나타낼 수도 있죠. 피부가 다르고 마음이 다르다고 따돌림을 해선 안 되지요. 이 그림책에선 그것을 말없이 표현하고 있어요. 다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지요.

 

안현재 : 음악을 들으면 어떤 피뢰침 같은 찌릿한 게 있어요. 이 그림책도 음악에서 느끼지 못한 찌릿함이 있네요.

 

박정숙 : 조준희 님 말씀처럼 이 책을 보면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곳에도 파괴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요. 파괴적인 부분도 아이들 마음에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오늘 다투다가도 내일 만나면 다시 동무가 돼요. 물론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어른들은 안 그러잖아요. 한번 틀어지면 죽을 때까지 안 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림책에서 아이들이 가진 파괴성도 잘 그리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네요. 물론 아이들 마음을 잘 알아야겠지요.

 

안현재 : 비발디 음악을 듣지 않고 그림책만 봤으면 어땠을까요. 음악을 듣고 나서 그림책을 보니 어떤 음악적 감성을 책에서 찾아야 하나 싶었지요. 뭔가 숙제를 하는 기분이 들었어요.

 

은종복 : 그건 제 잘못이네요. 제가 음악을 듣고 책을 보면 좀 더 이해가 잘 되지 싶어서 그랬던 건데요.

 

안현재 : 종복 님이 사과할 일은 아니고요. 그냥 음악을 듣지 않고 맑은 머리로 그림책을 봤으면 좀 달랐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이 그림책은 한 번 보고 말 책은 아니에요. 음악을 들으면서도 보고, 그냥도 보고, 아이들과 같이 봐도 좋겠어요.

 

박정숙 : 아무튼 『여름이 온다』는 비발디 음악을 창조적으로 잘 해석했네요.

 

안현재 : 맞아요. 등장인물들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것같이 그림책을 만들어서 더 흥미로웠어요.

 

박정숙 : 나오는 사람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서 하모니를 이루죠. 독자도 거기에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고요.

 

김지수 : 이 책 2악장을 보면, 통통 뛰는 음표가 비가 오는 것처럼 보였어요. 음표를 물방울로 표현한 것도 신선했고요.

 

박정숙 : 사실 저는 이렇게 자세하게 그림책을 본 적이 없어요. 여럿이 모여서 그림책을 꼼꼼하게 보니 새로운 것들도 많이 보이고, 제가 못 느꼈던 것들도 이야기를 해주시니 참 좋네요. 이런 것이 그림책을 읽는 힘인가 봐요.

 

조준희 : 저도 아까 은종복 님이 말했듯이, 한 장면에 하나만 나오는 주황색 우산은 가을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노란 은행잎 같기도 하고 단풍잎 같기도 해서요. 어서 가을이 왔으면 좋겠어요. 비가 오지 않는 여름은 싫어요. 가을비라도 내려서 그나마 농작물들이 살아났으면 좋겠어요.

 

김지수 : 저도 우산은 가을 낙엽 같다고 느꼈어요. 무더위와 비바람을 뚫고 성장을 마친 낙엽이요. 하지만 그 낙엽은 또 다른 생장의 시작이잖아요.

 

조준희 : 제 아이는 같은 그림책을 보고 또 봐요.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림 속에 이야기가 있대요.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른대요. 저는 아무리 봐도 안 그랬어요. 하지만 『여름이 온다』는 여러 번 보니 새로운 생각이 마구 피어나네요.

 

김지수 : 나이가 들수록 그림책 보기가 힘들어요. 그림책에서 뭔가 찾아내려고 애써서 그런 것 아닐까요. 내 생각은 굳어 있는데 말랑말랑한 그림책을 해석하려니 힘들어요.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니체도 부처도 예수도 어린이 마음을 따르라고 했잖아요, 저는 이번 생에는 안 되나 봐요. 점점 어린이 마음에서 멀어지니까요.

 

은종복 : 아니에요. 지수 님은 어린이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해요. 어린이와 누구보다도 잘 놀잖아요. 다른 나라에 가면 꼭 그림책을 사기도 하고요.
벌써 시간이 다 되었네요. 그림책 한 권으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네요. 아니 그림책이기 때문에 상상력이 생기면서 풍부한 이야기를 나눴지 싶어요. 애 많이 쓰셨어요. 다음에 봬요.

 

 

 

 

 

   《문장웹진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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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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