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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제주풀무질(제1회)

  • 작성일 2022-08-01
  • 조회수 1,350

[책방곡곡]

 

 

 

제주풀무질(제1회)

 

 

함께한 사람들 : 정인, 은종복, 박해숙, 이지민, 이경미
책 : 『소로의 문장들』(소로 씀, 박명숙 엮고 옮김, 마음산책 펴냄, 2020년에 나옴)
곳 : 책방 제주풀무질(제주시 구좌읍 세화합전2길 10-2)
때 : 2022년 6월 10일 금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이야기 나눈 것

 

은종복 : 오늘은 제가 사회를 볼게요. 우리 모임은 돌아가면서 사회를 보는데 오늘은 아르코에서 도움을 주셔서 모임을 해요. 제가 사회를 봐야지 정리를 해서 아르코에 낼 수 있거든요. 아르코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에요. 물론 저희 모임은 국가기관에서 지원을 주지 않아도 모임을 죽 해오고 있지요. 책은 다 읽으셨나요. 오늘 이야기할 책은 소로가 쓴 책이지요. 누가 먼저 이야기해 볼까요.

 

이지민 : 한 달에 한 권 책 읽기도 힘드네요.

 

은종복 : 다 못 읽었어도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을 한 가지씩 말씀해 주세요. 문제 제기를 하나씩만 하면서 이야기를 나눌게요. 사실 저도 아직 다 못 읽었어요.

 

박해숙 : 독서가 힘들어지니까 책을 끝에서부터 읽기도 해요. 활자에 집중이 안 돼서요. 이 책은 자연주의 삶을 이야기하네요. 소로는 2년만 월든 숲에서 살았네요. 2년 살아서 자연을 알 수 있을까 싶어요. 그리고 아름답고 유려한 문장들이 눈에 딱 들어오진 않았어요. 그래도 200년 전 사람인데도 비폭력저항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고 자연의 소중함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대단해요.

 

이지민 : 219쪽을 한번 읽어볼게요. “내가 숲으로 간 것은 의도적으로 살아 보고 싶어서였다.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하고, 인생이 가르치는 것을 배울 수는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죽음이 닥쳤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음을 깨닫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이란 그토록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한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체념을 배우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헬렌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의 삶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교육 시장에서 돈을 많이 벌다가 그만두었어요. 일을 그만두기가 참 힘들었어요. 돈이 자꾸 벌리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소로가 얘기했듯이 죽을 때 후회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대상포진이 몸에 퍼졌어요. 이러다 죽겠구나 싶었지요. 죽음을 많이 생각했어요.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은 하면서 살아야겠다 싶었지요. 제가 제주도로 내려온 것은 바로 이런 이유였어요. 도시에서 살던 것을 다 정리하고 내 삶을 살러 제주도로 왔어요. 소로가 숲으로 들어가서 자신을 찾으려고 했듯이 저는 섬으로 내려와서 나를 찾고 싶었어요. 지금 아주 만족해요. 돈은 많이 못 벌지만 삶이 풍요로워요. 제주도에 있는 오름과 숲에 가면서 몸도 마음도 행복해요. 나는 날마다 행복할 거예요. 온전한 내 삶을 찾았어요. 이 책도 그런 내 삶에 용기를 주네요.

 

이경미 : 소로를 가깝게 다시 볼 수 있는 책이네요. 『월든』과 『시민의 불복종』을 읽었는데 좀 딱딱했어요. 이 책은 소로가 쓴 일기나 월든, 시민의 불복종, 또 다른 글 가운데 편집을 잘했네요. 저는 220쪽 마지막에서 221쪽에 있는 글을 읽어 볼게요. “내가 아는 한 젊은이가 몇 에이커의 땅을 물려받았는데, 할 수만 있다면 자기도 나처럼 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난 어떤 이유에서든 다른 사람이 내 생활 방식을 따르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가 내 생활 방식을 충분히 터득하기도 전에 난 또 다른 생활 방식을 찾아냈을지도 모를 뿐 아니라, 이 세상에 되도록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각자 매우 신중하게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내어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지,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이웃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다.”
저도 이전에 있던 것을 다 내려놓고 제주도에 왔어요. 이 책 10쪽과 11쪽을 보면 ‘건설적 고독’이라는 말이 나와요. 사람들은 고독하다면 싫은 것으로 아는데 소로는 그렇지 않네요. 저는 ‘건설적 고독’이라는 말을 ‘충만한 고독’이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힘으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고독이랄까요. 물론 사회에서 일어나는 고독은 아니고요.

 

정인    : 소로가 쓴 『시민의 불복종』에서 말하는 사회적 변화와 생태학적 관점이 어떻게 교차되는지 궁금해요. 시민의 불복종은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면서 하루 동안 소로가 옥살이를 하며 쓴 글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살고 싶어 했는지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 그냥 소로는 월든에서 자급자족을 하며 살 수 있는지 실험을 했다고 봐요. 초자연주의, 초월주의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숲에 들어가서 살기도 하죠. 그런 사람들을 쫓아서 방송에도 나오고요. 하지만 소로는 아주 깊숙한 숲에 살지도 않았어요. 마을과 2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살았고 자주 마을에 내려왔다고 해요. 소로는 문명사회를 아예 거부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은종복 : 제가 이 책을 읽고 문제 제기를 해달라고 했는데 느낌을 주고 말씀해 주셨네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죠. 정인 님이 말씀하신 것은 저도 생각을 해봤어요. 아시겠지만 미국은 인두세를 내라고 했죠. 멕시코를 쳐들어가는 돈을 내라는 거죠. 소로는 낼 수 없었어요.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죠. 소로는 이렇게 말해요. 미국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모두 감옥에 있다고. 어떻게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는 일에 돈을 주는 일에 찬성할 수 있냐고. 이렇게 사람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면 자연에서 사는 생명들도 귀하게 여기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람들이 자연과 어울려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다른 분들도 이야기를 해주시죠.

 

박해숙 : 이 책에는 일기가 많잖아요. 좋은 글은 일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어요. 저는 글을 쓰는 게 참 어려운데 이렇게 일기를 잘 쓰는 사람을 보면 부럽네요. 일기가 글쓰기의 기본이구나 생각해요. 이건 좀 딴 얘기인데요. 사람들이 글을 쓸 때 섹스에 관해 쓰는 곳은 오탈자가 안 나온대요. 그만큼 성에 관해서는 관심이 많다는 것이죠. 이 책을 보면서 소로는 자연을 참 사랑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아마 소로는 일기 글도 오탈자가 없었을 거예요. 마음을 다해서 글을 쓴 것이 보여요.
지금은 철도 관광이 생태관광이잖아요. 소로가 있을 때 처음 생겼고요. 소로는 철도를 아주 싫어했더군요. 나무가 잘리고 숲을 파괴해서 생긴 거니까요. 기차가 다니면 소음도 크고 새와 동물도 서식처를 잃잖아요. 2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워요.
태어날 자리는 못 정해도 죽을 자리는 내가 정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소로는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 않았나 싶어요. 사람은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요. 소로는 자연회귀를 뼛속까지 알았다고 생각해요. 소로가 쓴 문장의 화려함을 보기보단 그가 보는 당대 현실의 아픔을 보고 싶네요.

 

이경미 : 숲에서 느끼는 ‘건설적 고독’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현재를 사는구나, 지금은 잘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누구나 현재를 살고 있지만 살고 싶은 삶을 사는 사람은 드물잖아요. 소로는 그런 삶이 자연 속에 있을 때, 자연을 해치지 않고 살 때만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삶은 외롭지 않죠. 그래서 ‘건설적 고독’은 외롭지 않은 고독이에요.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것, 아이처럼 고독을 즐기는 것이죠. 사람들은 멀리 여행을 가면서 행복해 하지만 소로는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숲과 함께했어요. 그래도 외롭지 않다고 말해요. 그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362쪽 끝부분에서 363쪽 앞부분을 볼게요. “나는 정치적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들 때문에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누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뒤쫓아 와 자신들의 더러운 제도로 그를 거칠게 다루며, 어떻게 해서라도 그를 자신들의 절망적인 비밀제공조합에 강제로 속하게 하려고 기를 쓴다. 사실 나는 효과가 있든 없든 사회에 강력하게 저항할 수도 있었을 테고, 사회를 향해 ‘미친 듯이 날뛸’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보다는 사회가 나를 향해 ‘미친 듯이 날뛰게’ 하는 편을 택했다. 더 필사적인 쪽은 내가 아닌 사회였으니까.” 이렇게 자신이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행동을 했죠. 단지 비폭력 비협력 불복종으로요. 이것은 뒤에 마하트마 간디나 마틴 루터 킹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고요.

 

정인    : 저는 제주도 강정에 있는 구럼비가 나오는 다큐를 보고 제주도에 오고 싶었어요.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면서 마을과 바다가 파괴되는 것을 그린 것이죠. 소로처럼 생태사상이 깊지는 않지만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둬야 한다는 생각에는 동의해요. 이 책이 그런 힘을 주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은종복 :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넓어지면 잘못된 개발에 반대할 수밖에 없어요. 소로가 생각하는 시민 불복종과 자연생태사상은 자연스럽게 함께 가지 싶어요.

 

이지민 : 107쪽 첫 문단을 같이 보고 싶어요. “나는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세상에 온 것이 아니다. 좋은 곳이든 나쁜 곳이든 그 속에서 살고자 세상에 왔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며 ‘절대고독’을 느꼈어요. 김현승 시인이 쓴 시 「절대고독」을요. 사물 앞에서 겸손한 사람만이 절대고독을 느낀다고 했던가요. 소로도 세상이 아무리 살 만한 곳이 아니어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갈 힘이 있는 것은 이런 사물과 적당한 거리두기와 겸손함에 있지 않을까요. 자연 앞에 서면 그런 고독은 힘과 사랑으로 바뀌고요. 다시 말하면 남들에게 집중하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죠.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가를 끝없이 물으며 사는 거지요.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은 아무것도 없는 것, 아무런 번뇌가 없는 것이고요. 숲에 들어가 있을 때는 더욱더 그런 삶이 가능했고요. 저도 그렇게 살려고 제주도에 내려왔어요. 121쪽을 읽어 볼게요. “진정한 지혜에 이르는 길은 구속이나 엄격함이, 아니 자유분방함과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이다. 무언가를 알고 싶다면 먼저 그것을 즐겨라.”

 

은종복 :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했네요. 시간이 금방 흘렀어요. 이제 30분이 채 안 남았어요. 다음 달 책읽기 모임을 할 책과 날짜도 잡아야 하니 꼭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나눴으면 좋겠어요.

 

이지민 : 요즘은 제일 큰 효도가 내가 잘사는 것이라 생각해요. 소로는 부양가족이 없으니 숲에 들어가서 실험적인 삶을 산 것이 아닐까요. 식구가 있고 아이가 크면 돈 들어갈 일이 많아요. 그 아이가 커서 부모에게 효도를 한다고 하는데 돈을 벌어 주지 않아도 좋으니 손만 안 벌리면 효도예요. 이렇게 개인 하나하나가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건강하면 나라도 건강하지 않을까요. 소로처럼 숲에서 살면 좋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진 못하지요. 사실 소로도 사람들이 자기처럼 꼭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요. 각자 형편에 따라서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살아야 한다고요. 물론 자연을 더럽히지 않으면서요.

 

박해숙 :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정치적 독립이 되려면 경제적 독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밥을 굶지 않고 내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으면 행복하지요.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부모 재산에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는 청년이 얼마나 될까요. 지금 세대는 처음으로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보다 돈이 많은 세상이라고 하잖아요. 지금 젊은 사람들은 나중에 늙은 사람들 부양하느라 진짜 힘들 거예요.

 

이지민 : 그래서 지난달에 읽은 책이 좋았어요.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오준호 씀, 개마고원 펴냄) 책이요. 기본소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달마다 누구에게나 품위를 지키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을 국가에서 준다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을까요. 경제적으로 독립이 되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돼요. 사회구성원들이 굶어 죽을 염려가 없다면 사람들도 좀 순해지지 않을까요. 소로처럼 많이 배우고 적게 벌어서 적게 먹는 사람만 있진 않잖아요. 그렇게 도덕적으로 우월한 사람들은 찾기 힘들어요. 소로는 좀 특별한 사람이지요. 그렇다면 국가에서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보장을 해주는 것이 맞아요. 그러다 보면 소로처럼 자연을 아끼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지금 같은 약육강식 사회에서는 자연을 더럽히는 일을 예사로 하지요. 제주도도 난개발로 몸살을 앓잖아요.

 

박해숙 :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존 러스킨 씀, 김대웅 옮김. 아름다운날 펴냄)란 책을 봤어요. 포도원에서 일을 하러 온 사람들 이야기요. 아침에 오거나 저녁에 오거나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일당을 주잖아요. 그것도 기본소득이라고 생각해요. 일을 하러 온 사람들은 모두 식구들이 있고, 저녁에 온 사람도 사정이 있지만 하루를 살려면 돈이 필요하니까요. 지금은 너무 능력을 보고 사람들에게 돈을 주니까 점점 살기 힘들어요.

 

이지민 : 요즘 사람들은 너무 미래 일을 걱정해요. 기본소득이 된다면 나중 일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요. 그래서 지금 당장 행복한 일, 오늘 이 순간 만나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할 거예요. 최소한 생계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행복하려고 지금 이 순간을 참는다면 나중에 가서도 행복할 수 없어요. 그때는 건강도 잃고 마음도 더 찌들지 않을까요.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야 해요. 육체적 쾌락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요.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고 나도 그곳에서 기쁨을 느끼는 거요. 오늘 같은 책읽기 모임도 작은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행복이 모여서 큰 행복이 오지요. 그러면 국가도 행복하지요. 소로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감옥에 가면서까지 저항을 한 거지요.

 

박해숙 : 고독이 필요해요.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고독이요. 소로처럼 숲에 들어가건,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있건, 나 혼자 온전히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요. 저는 그래서 제주도에 왔어요. 남편에게도 자유를 주고 제게도 자유를 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잖아요. 소로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지만 저는 있는 돈을 까먹으면서 사니 불안하기도 해요. 조금씩 일을 찾아보려 하는데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사는 사람들 보면 진짜 부러워요. 나이가 들어 늙는 것도 서러운데, 늙는 것이 죄인 세상이 되는 것은 더 안 좋네요.

 

이지민 : 온전한 삶이란 무엇일까 많이 생각해요. 소로도 바로 온전한 삶을 찾으려고 숲에 들어갔지요. 제가 어떤 책에서 보니 소로는 엄마, 누나가 뒷돈을 대주어서 살 수 있었대요. 스스로 독립해서는 살 수 없으니까 그랬겠죠. 물론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없으니까 경제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돈이 필요하잖아요. 엄마, 누나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살기 힘들었을 거예요.

 

은종복 : 전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소로는 밭농사를 지으면서 자급하려 했지요. 월든 책에도 나왔는데 콩을 심고 집도 주위에 있는 나무를 구해서 지었어요. 그리고 가끔 글을 써서 원고료도 받고 강연도 자주 나갔지요. 아무튼 소로는 가난하게 사는 일에 익숙했나 봐요. 감옥에 갇혔을 때 보석금을 누군가 내주었다는데 엄마, 누나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박해숙 : 소로가 콩 농사를 지어서 얼마나 벌었겠어요. 그것도 몇 년 짓지 않았잖아요. 분명히 식구들에게 손을 벌렸을 거예요.

 

정인    : 이 이야기는 안 하려 했는데 저 어제부터 밭을 잃었어요. 땅 주인이 땅을 안 빌려준다고 해요. 30가지 넘게 작물들을 키웠는데 모두 죽게 생겼어요. 감자, 병아리콩, 작약, 완두콩은 씨앗부터 심어서 모종을 내고 잡초를 뽑아 주면서 키웠어요. 옥수수가 조금씩 자라는 것을 보면서 작은 기쁨을 느꼈지요.
제게 온전한 삶이란 집착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정성스럽게 키운 작물들이 한순간에 뿌리째 뽑히는 현실을 보면서 느꼈어요. 그런 현실도 나한테 왔기 때문에 내 것이라 생각해요. 소로는 자연 속에서 수많은 식물과 벌레들과 교감을 하잖아요. 그러면서 삶이 충만한 것을 느끼고 그것이 훼손되었을 때 힘들어하고 그런 아름다움에 취해서 자꾸 숲으로 들어가잖아요. 저도 비슷해요. 내가 키운 작물들이 폭력적으로 뽑혀 나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 아팠지요. 하지만 그것도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집착을 하지 않으니 좀 나아요.

 

은종복 :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벌써 9시를 넘겼네요. 정인 님 텃밭을 꾸릴 수 있도록 함께 힘을 모아요. 저희 옆집 땅이 비어 있으니 그쪽에다 심으셔도 돼요. 오늘 모두들 애 많이 쓰셨어요. 다음 달에 만나요.

 

 

 

 

 

   《문장웹진 202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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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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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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