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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에서 쓴 일기

  • 작성일 2024-07-01
  • 조회수 41

[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달린다. 천천히, 조심히, 서두르지 말자고 속으로 되뇌다 보면 더 긴장이 된다. 내 잘못으로 큰 사고가 날까 봐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걸을 때마다 나쁜 상상을 물리치려고 애쓴다. 서울 오면 이동할 때마다 너무 긴장을 해서 몸이 뻣뻣하고 아프다. 퇴근시간 되기 전에 지하철 타려면 이제 일어나야지. 앞머리에 말아 둔 헤어롤 빼는 거 잊지 말자. 


   20240529


   소음

   pm01:10.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 앉아서 이 글을 쓴다. 길에도 카페에도 사람이 엄청 많다. 오늘 수요일이고 점심시간도 지났는데 넓은 카페가 가득 찼다. 인구의 대부분은 서울 경기권에 모여 사는 것 같다. 어쩜 가는 곳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까? 밀폐된 카페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말을 하니까 대화가 아닌 소음처럼 느껴진다. 말소리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온다. 불안하다. 심장이 빨리 뛴다. 무섭다. 머리가 울린다. 이렇게 시끄러운 곳에서도 서로의 대화에 집중할 수 있다니······ 그래서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걸까? 경쟁하듯 오가는 말이 귀에 박힌다. 아니아니, 그런 게 아니고. 아니 내 말은 뭐냐면. 그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고. 알고 싶은 걸 물어 보려면 자리를 마련해야지. 나는 일단 중립 기어를 박았어······. 나는 할 말이 없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처럼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서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는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점점 취약해지는 것 같다. 여기 앉아 조금만 더 버티다가 서울역으로 갈 것이다. 오후 3시 23분 기차 타고 대구에 간다. 저녁 행사 무사히 마친 뒤 밤기차 타고 올라올 예정. 왜냐하면 내일 저녁 서울에서 또 다른 행사가 있기 때문에······.


   질문

   어제 북토크 때 독자분이 물었다. 작가님은 ‘사랑을 믿는 것’ ‘사랑을 사랑하는 것’ ‘사랑을 소망하는 것’ 중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나는 사랑을 소망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때로 사랑은 없는 것 같다. 허상 같다. 기만이나 과장 같다.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추구하는 사랑을 소망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밤기차

   지금 시간 pm9:10. 동대구역에서 서울행 ktx를 탔다. ktx 정말 빠르고 편하다. 이렇게 말하면 나 너무 옛날 사람 같겠지만······ 대구에서 서울까지 두 시간이 채 안 걸리다니 진짜 놀랍다. 육지 올 때마다 ktx의 속도에 놀라고 지하철과 버스 운행의 정확도에 감탄한다. 서울에 살 때는 편리함을 모르고 태연히 사용했던 많은 것들을 이제야 새삼 대단하다고 느낀다. 한편으로는 교통과 뉴스, 문화예술, 교육과 주택, 이슈와 소비와 행정 등 전반이 서울 경기 중심임을 절감한다.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는 말은 그저 비유가 아니다. 서울로 가야 길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천안에 살 때는 본가인 경북 영주로 가는 직통 버스나 기차가 없어서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 가서 영주행 버스를 탔다. 서울-타지역 간 대중교통은 대부분 직통이 존재하지만 지방-지방을 잇는 대중교통은 불편한 경우가 많다. 기차 타기 전에 너무 배가 고파서 플랫폼 의자에 앉아 김밥 한 줄을 우걱우걱 먹었다. 김밥 또한 너무 편리한 음식. 순식간에 허기가 지워졌다. 아무튼 이렇게 달리는 ktx에 앉아 랩톱으로 글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도시에서 도시를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창밖 야경을 배경 삼아 오늘 하루를 회상하는 글을 쓰는 지금······ 운치가 있다.


   20240530   


   직장인

   오늘은 시간 여유가 있어서 식당을 찾아 점심을 제대로 먹었다. 직장인들 틈에 섞여서 덮밥을 먹고 남산한옥마을을 한 바퀴 걸었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고 점심시간의 짧은 산책을 즐기는 직장인들 속에 있으니 마치 나도 아홉 시에 출근해서 여섯 시에 퇴근하는, 월급을 받는, 그런 직장인이 된 것만 같다고 생각하다가 곧바로 아니야 나는 결코 그런 생활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고쳤다. 왜냐하면 짧게나마 해봤으니까. 직장에 다닐 때 나는 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도,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늘 연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 생활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란 생각보다 ‘언제 그만둘까’란 생각을 훨씬 많이 했다. 만약 직장에 계속 다녔다면, 매일 적당량의 환멸감과 어색함을 느끼면서 기어코 소설을 썼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간절하게 소설을 나의 탈출구로 여기면서 어떻게든 뭐라도 썼겠지. ‘어쩌다가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까?’란 질문을 들으면 ‘내가 과연 소설을 선택한 걸까?’라고 자문한다. 소설을 선택한 게 아니다. 소설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옥마을 나설 때 세 명의 여성이 한옥마을 입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줄 수 있느냐고 부탁했다. 나에게 핸드폰을 건네며 “바쁘지 않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네!” 하고 경쾌하게 대답했다. 바쁘지 않은 사람을 아주 오랜만에 본다는 듯 놀라는 눈치였다. 


   두통

   지난 4월부터 서울에만 오면 두통에 시달린다. 통증의 기미도 보이지 않다가 행사나 인터뷰를 시작하면 전원 스위치를 올리듯 바로 통증이 온다. 육지에 있는 내내 지끈거리다가 제주 내려가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통증과 어지러움증. mri를 찍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목디스크 증상 중 두통이 있다는 얘길 듣고 x-ray부터 찍어 봤는데 역시나 심각한 거북목 진단을 받았다. 돌이켜보면 과거에도 인터뷰용 사진을 찍을 때마다 “거북목이네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자세가 너무 나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올바른 자세를 모른다. 40년을 비슷한 자세로 살아왔다. 이젠 정말 수정이 필요하다. 가슴을 펴자. 언제나 가슴을 펴고 살자. 고개를 숙이지 말고 하늘을 보자. 땅만 보고 걷지 말고 사람들을 보면서 걷자. 그리고 숨을 쉬자. 나는 어떤 것에 집중하거나 긴장하면 숨을 아주 얕게 쉰다. 그렇다는 것을 십여 년 전에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알려줬다. 내 어깨를 잡고 눈을 바라보면서 숨을 쉬라고 말해 줬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모른다. 모르고도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는 괜찮다가 오후부터 두통이 시작되는 걸 보면 긴장성 두통인 것도 같다. 무거운 머리를 몸이 아닌 목으로만 지탱하기 때문이다.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숨을 쉬자. 가슴을 펴자. 집에 돌아가면 괜찮아질 것이다. 


   20230531


   서울역

   지금 시간 am11:53. 서울역에서 동대구행 ktx를 기다리고 있다. 엊그제 갔던 대구에 다시 간다. 내가 짠 스케줄이지만 참 이해가 안 된다. 서울에서 2박, 대구에서 2박으로 짤 수는 없었나? 오후에 대구의 대학교에서 강연할 예정인데, 사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러 가는지 정확히 모른다. 반가운 사람이 오라고 해서 가겠다고 했을 뿐. 역사 안 2층 의자에 앉아서 이 글을 쓴다. 여기 분명 건물 내부인데······ 내 옆에서 비둘기가 사람처럼 걸어 다닌다. 비둘기는 자기가 비둘기인 걸 알까? 자기에게 날개가 있다는 걸 알까? 제주에는 새가 굉장히 많다. 다양한 새소리가 하루 종일 들린다. 서울에서 자주 듣던 인공적인 새소리를 제주에서 산책하다가 들었다. 진짜 새소리로 들었을 때의 생경함이 떠오른다. 나무의 풍성한 수관 어딘가에서 새가 노래했다. 제주에는 지하철이 없는데, 기차역도 없는데, 지하철을 탈 때마다 스피커에서 울리던 그 소리가 들렸다. 내가 사는 한림읍에는 요즘 제비가 참 많다. 제비가 도로 위를 저공비행할 때마다 차에 치일까 봐 조마조마하지만 사고를 당한 제비를 본 적은 없다. 걸어 다니는 제비도 본 적 없다. 제비는 봄에 나타나 둥지를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다가 날이 선선해지면 떠난다. 전깃줄에 앉아 있는 제비는 귀엽다. 한편으로는 나를 향해 돌진할까 봐 무서울 때도 있다. 내가 제비보다 50배는 큰데 공격을 당할까 봐 걱정한다. 아무튼 제비의 재빠른 저공비행은 정말 멋지다. 기차 타기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았으니 산책하는 비둘기 옆에서 소설집 교정지를 봐야겠다. 두통은 여전하다. 아침에는 괜찮았는데 배낭 메고 무거운 캐리어 끌고 서울역까지 오는 동안 통증이 다시 올라왔다. 몸에 근육이 없어서다. 체력을 길러야 한다. 지난 봄, 친구와 했던 대화가 생각난다. 여기저기가 아파서 이런저런 마사지 기구를 샀다고 했더니 그 친구가 대꾸했다. “몸 쓰는 것말고 다 하고 있군.” 그렇다. 운동은 하지 않고 기구만 사들이는 삶······ 날개가 있는데도 걸어 다니는 삶······. 


   20240601


   고성

   경남 고성 도서관에서 북토크가 있어 오늘 아침 동대구역에서 ktx 타고 진주로 왔다. 도서관 사서님이 나를 데리러 진주역까지 나와 주셨다. 고성은 정말 아담하고 예쁜 곳. 도서관 창 너머로 송학동고분군이 보였다. 연두색 고분과 산세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서 처음에는 세트장인 줄 알았다. 나 어쩌다가 이런 사람이 되었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도 인공적인 세트장을 떠올리는 그런 사람. 북토크 마치고 사서님이 김해공항까지 태워 주셨다. 고성에서 김해공항까지 가려고 무려 다섯 개 지역(고성-마산-창원-부산-김해)을 통과했다.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친절하게 태워 주신 사서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내가 두통 때문에 좀 힘들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마치 준비해 둔 것처럼 괄사를 건네주셨다. 마치 도라에몽의 주머니 같았다! 선생님 덕분에 괄사를 처음 사용해 보았는데 시원하고 좋았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님들 모두 정말 친절하셨다. 프로그램 운영도 진심으로 열심히 하셔서 감동했다. 속으로 반성을 많이 했다. 진심으로 좋아서 열심히. 나도 그렇게 살고 있나?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친절한 사람일까. 누군가에게 친절함을 받으면 수건돌리기를 하듯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친절함을 건네는, 그런 사람이라면 좋겠다. 더할 것도 없이 받은 만큼만 나누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웃는 사람이 많아질 텐데. 나 때문에 누군가가 기분이 좋아진다면 그만큼 나도 기분이 좋아질 텐데. 김해공항 2층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지난 며칠 서울과 대구와 고성을 오고가다 이제 김해. 남한을 가로지른 기분이다. 육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환대와 친절에 감사한 마음. 응원을 전해 주셔서 힘이 났어요. 보답하겠습니다. 글 열심히 쓰겠습니다. 곧 제주로 간다. 홈 스위트 홈.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니. 그곳에서 두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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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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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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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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