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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쾌의 여정

  • 작성일 2024-05-01
  • 조회수 395

[에세이]


   책쾌의 여정

   우당탕탕 독립출판 북페어 기획자 도전기


임주아


   뜻밖의 부재중 이름이 폰에 떠 있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S 팀장이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일로 만난 공무원이 퇴근 시간을 넘어 전화 문자 콤보로 연락했다는 건 모종의 긴급 상황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목소리였다.

   “헉 제가요?” 요지는 전주에서 처음 독립출판박람회를 여는데 내가 총괄 기획을 맡아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는 6~7월이라 했다. “오늘이 벌써 3월 7일인······” 기간도 기간이지만 독립출판 전문가도 아닌 내가 총대를 메는 게 맞는지 주제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팀장은 전주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동료와 팀을 꾸리면 어떻겠냐며 인건비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당황스러우면서도 눈에 광이 돌았다. 단기간에 아이디어를 짜고 사람 모으고 경주마처럼 내달리는 일은 내 주특기 아니던가. 그렇게 살아온 임시변통스러운 삶에 드디어 어떤 보상이 따르려나. 함께할 내 기쁜 동료는 누구인가.


   기획자 동료 구하기

   첫 타깃은 전주에서 10년 가까이 독립출판 전문책방을 운영중인 뚝심의 M이었다. 그의 책방 인스타그램 프로필에는 ‘기성으로 출간된 도서는 입고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단호하게 적혀 있다. 설사 혈육이 역사에 남을 명저를 썼다 하더라도 독립출판이 아니면 가차 없이 거절 메일을 전송하고야 말 꼿꼿함이었다. 그런 M의 책방에는 개인이 스스로 쓰고 만든 각양각색의 독립출판물이 대거 진열되어 있는데 그 큐레이션된 목록에는 웰메이드 작품인 ‘책방을 꾸리는 중입니다’라는 에세이도 있다. 화학공학과를 나온 공대생이 어쩌다 모교 대학로의 한 건물 지하에서 책방을 시작해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됐다는 애환 서사가 담긴 책이다. 그는 그 책을 들고 전국을 쏘다니며 독자를 만났다. 주6일 책방 문을 여는 그가 문 닫는 날엔 어김없이 북페어 현장에 가 있었으니까. 

   캐리어를 끌고 고속버스를 타고 기꺼이 책 보부상으로 분해온 그는 힘들다 힘들다 해도 매년 매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전주에서 오로지 독립출판만을 다루는 책방 주인은 M이 유일해서 대표성도 남다른 터다. 때문에 함께 하자는 내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그의 눈높이도 짐작이 간다. 일찍이 S 팀장이 독립출판박람회 관련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여러 번 M의 책방을 찾았으나 그는 ‘박람회’라는 명칭부터 맞지 않다고 생각해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독립출판 행사는 스스로 책을 낸 제작자나 책방 운영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해 열리는데 전주에선 도서‘관’ 주도로 만들어질 행사라 생각하니 최대한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럴수록 나는 M이 적극적으로 합류해 의견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잘되면 그가 책방 꾸리는 일에도 전환점이 올 거라 확신했다. 때문에 “박람회는 진짜 아니에요, 취업박람회도 아니고!”라는 그의 애정에 격하게 동의하며 매일 귀찮게 전화를 걸어 야금야금 민관협력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L이었다.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나를 책이라는 ‘물성’의 세계로 인도한 사람이자 좋은 책은 어떤 변별력을 가져야 하는지 ‘북페어 현장 실습’으로 깨우쳐준 선배다. L이 만든 책을 싸들고 서울과 제주의 북페어를 다니면서 나는 새삼 책 파는 기쁨과 슬픔을 다시 느끼게 됐다. 현장에서 책을 팔아보니 책방과는 차원이 다른 활력과 성찰이 뒤따랐다. 이틀에서 사흘까지 보통 7시간에서 길게는 9시간가량 한자리를 지키며 끊임없이 자기가 만든 책을 설명하고 판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책을 알아봐주는 독자를 만나면 사정 없이 꼬리가 흔들렸다. 마음에 드는 책을 보면 순식간에 지갑이 털렸다. 무엇보다 작가와 눈앞에서 직접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L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2019년 어느 지자체가 범한 역행 때문이다. 같은 지역에 사는 또래이자 책방 운영자로서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지역일간지에 ‘청년이라는 빈집, 박제되는 풍경(https://www.jjan.kr/2072896)’이라는 칼럼을 기고했고 그 계기로 그녀와 친해져 브런치에 서신교환을 연재하기도 했다. 

L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노량진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책공방 K 대표를 만나 출판 길을 걷게 됐다. 책 만드는 기계와 도구들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자 일 년에 딱 한 권 ‘자유출판’으로 책을 만드는 책공방에서 그녀는 성장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기록과 물성의 힘으로 ‘책기계수집기’ ‘책공방탐사’ 등 차별화된 책을 만들었고, ‘책만들기실험실’을 운영하며 책문자기획자로 산다.

   “폐 안 끼치게 잘해야 할 텐데, 이래서 오픈 멤버는 두렵다”는 M과 “관이라면 힘든 기억밖에 없지만 주아 님 부탁이니 가본다”는 L의 말에 뜨끔따끔하며 거듭 고마운 마음으로 두 사람과 함께할 수 있었다.


   완판본을 아세요?

   가장 큰 고민은 이름이었다. 무난하게 ‘전주북페어’로 갈 수도 있지만 내 오지랖상 용납이 안 됐다. 영어가 아닌 명칭으로, 전주만이 가진 책 문화자산과 연결될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려면 전주가 가진 것부터 다시 살펴야 했다.

   조선시대 출판도시로 융성했던 전주는 예로부터 땅이 비옥하고 험한 산세가 없어 ‘완전한 고을(온고을)’이라 불렸다. 한자로 하면 ‘완산(完山)’이다. 전주에서 만든 책이란 의미의 ‘완판본(完板本)’이란 말도 완산에서 왔다. 이 완판본을 이해하려면 전라감영의 역사를 짚어야 한다.

   전주는 조선시대에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제주도를 관할하던 최고 관청인 ‘전라감영’이 있던 큰 도시였다. 감영 안에는 한지를 만들던 ‘지소’, 책판을 인쇄하고 책을 만들던 ‘인출방’이 있었다. 자체적으로 닥나무를 재배해 각종 한지도 만들었는데, 전국 최고의 품질과 생산량을 자랑했다. 

   전라감영에서 그 유명한 <동의보감>을 비롯한 60여 종의 책이 나왔다. 이때 발달한 한지, 각수(목판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기는 장인), 목수, 인쇄시설은 전주 지역의 출판문화 활성화로 이어졌다. 내가 주목한 점은 개인이 소장용으로 만든 책을 뜻하는 ‘사간본’이 그 시대에 250여 종류나 나왔다는 것이었다. 이어 판매를 목적으로 민간에서 만든 책 ‘방각본’도 발간되어 조선 후기 전주는 가장 왕성한 출판문화를 갖게 됐다는 역사가 귀했다.

   이 기세를 몰아 19세기 초부터는 판매용 한글 고전소설을 찍어내기 시작했는데, 무려 130여 년간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전> 등 한글 고전소설 23종을 유통하고 보급했다. 완판본 소설은 전라도 지방의 어휘를 풍부하게 담고 있으면서 내용이 세밀하고 유머가 풍부하다는 고유한 특징이 있었다. 북페어 키워드를 ‘독립출판의 도시 조선’과 ‘전주 사투리’로 잡으면 어떨까?


   책쾌 존재 더하기

   내친김에 책과 관련된 조선시대 직업을 찾아보다 우연히 ‘책쾌’를 알게 됐다. 책쾌는 보부상처럼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책을 파는 책장수를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이 아니다. 책쾌들은 정약용 같은 당대 선비들을 일대일로 만나 책을 추천하고 설명해 줄 정도의 학식을 갖추고 있었고, 세상과 책을 보는 안목이 남다른 지식인이었다. 특히 이 책의 주인은 누구였는지, 어떤 사람 손을 거쳐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세세하게 말해 줄 수 있는 걸어 다니는 서점이자 마케터 역할도 했다. 자기 손으로 목판을 직접 찍어 책도 만들고, 더 이상 구하지 못하는 책은 필사를 해서 판매하는 등 수완도 발휘했다. 책쾌 중에는 한양에서만 활동하던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국을 무대로 지방과 한양을 오가며 책을 팔던 이들도 있었다.

   이렇듯 책쾌에 관한 호기심이 발동해 여러 자료를 찾아보길 며칠째, 결정적으로 꽂힌 책이 있었다. ‘평생을 책과 함께한 마지막 서적 중개상’이라는 부제가 적힌 <책쾌 송신용>. 이 책의 서문을 읽고 나는 그 시대 상황을 더욱 명확하게 알게 됐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물어 보라. 전공이 뭐냐고. 열에 아홉은 아마 ‘독서’라고 답할 것이다. (...) 그러나 독서 강대국 조선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 알량한 자부심도 빛 좋은 개살구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은 동맥경화에 뇌경색으로 호흡하기조차 곤란한 중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책이 돌지 못했다는 뜻이다.”  


   누워 있던 사유를 일으켜 세우던

   저자는 “하지만 이러한 증상을 치유할 수 있는 대표적 방법으로 비공식적이며 자율적 민간요법이라 할 ‘서적 중개상’, 곧 ‘책쾌’가 있어 그 숨통이나마 터주었다”고 진단하면서,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을 거친 책쾌 송신용의 삶을 자서전 쓰듯 핍진하게 써내려갔다. 숭고함마저 느껴졌고, 저자에게 편지를 쓰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결국 메일을 보냈다. 며칠 뒤 그의 답장이 왔다. 

   “책쾌에 관심이 많고 졸저도 탐독했다니, 벌써 이문회우(以文會友)하고 이우보인(以友輔仁)하는 인연을 맺었다 생각합니다. 책쾌는 단순한 서적상이 아니라 누워 있던 사유를 일으켜 세우던 시대의 지식 전위병이자 문화기획자였음을 역사가 알려줍니다. 또한 ‘잘’ 듣고 또 ‘잘’ 들려줄(나눠줄) 줄 알았던, 진정한 사회의 storyteller였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전주책쾌 북페어가 독립출판인들의 자기만족의 자리가 아니라, 울림이 있고 감동이 있는 대타적 이야기의 장이자 소통의 장이 되기를 소망하며 응원하겠습니다.” 

   나는 멍하니 메일 창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이런 분이 있다니. 좋은 저자는 좋은 책과 다르지 않구나. 그날 이후 머릿속에 책쾌가 떠나지 않았다. 책쾌라는 말이 주는 신비로움, 시원함, 빤하지 않음이 좋았다. 책 뒤에 어떻게 ‘쾌’라는 말이 붙을 수 있지? 이런 한자가 있었나 싶게 신기했던 ‘쾌(儈)’는 상인을 뜻하는 ‘사람인변(亻)’에 ‘모일회(會)’ 두 조합이었다. 쾌는 사람을 모으는 말이구나. 전국 각지에서 온 책쾌들이 전주에 모이는 여름, 직접 만든 독립출판물을 선보이고 판매하는 책 시장을 떠올렸다. 예컨대 이런 모습이다.


   “붉은 수염에 우스갯소리를 잘했는데 눈에서는 번쩍번쩍 빛이 났다.” 

   - 정약용 <조신선전>

   “소매에 잔뜩 넣어 다니는 것은 오직 책뿐이었다.” 

   - 장지연  <일사유사>

   “몸 안에서 한 권 한 권 계속 꺼내어 그렇게 내놓은 책이 방 안 가득 쌓이곤 했다.” 

   - 서유영  <금계필담> 

   “천하의 책이 모두 내 책이요 이 세상에서 책을 아는 이는 오직 나밖에 없다.” 

   - 장지연  <일사유사>


   기획서를 제출하다 

   기획자 제안을 받은 지 20일 뒤 도서관 본부장실에 그와 독대하고 앉았다. 한 시간 전 제출한 ‘2023 전주책쾌’라는 기획서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본부장 K는 내 설명을 유심히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짧은 시간에 연구 많이 하셨네요. 고생하셨습니다. 이대로 가시죠.” 함께 자리에 앉은 과장, 팀장, 주무관의 표정이 일순 밝아졌다. 나도 순간 긴장이 풀려 얼떨떨했다. 본부장 K는 도서관 국장으로 문화예술 계통 업무 이해도가 높아 시청 공무원들 사이에 ‘깨인 분’으로 통했다. 그런 사람이라 하더라도 전주책쾌라는 명칭에 대해 좋지 않은 피드백을 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한 번에 통과되니 마음이 시원했다. 책쾌 뒤에 뭘 붙이자고 하면 이렇게 말할 생각이었다. “책쾌라는 이름 뒤엔 아무것도 없어야 어울리겠습니다. 책쾌는 늘 혼자 다니는 단독자로 책을 판다는 환한 자긍심과 또 책을 판다는 쓸쓸함이 이름에 온전히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점점 진지해져갔다.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것. 그것은 이름. 동시에 그 이름이 생소한 사람들에게 적극 홍보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선비이긴 한데 엉뚱하고 웃기고 말 잘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그리고 싶었다. 밝은 앞모습과 피로한 뒷모습이 구별되었으면 좋겠다. 전주책쾌니 전주 사투리도 팍팍 쓰면 좋겠다. 

   기획의도를 알아준 디자이너가 포스터 초안을 보내왔다.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선글라스를 낀 선비가 한쪽 발을 들고 스케이드 보드를 타고 있는 붓 그림이었다. 속으로 외쳤다. ‘됐다 됐어!’ 이후 내부 사람들의 의견을 거쳐 선비 그림은 다양하게 변주됐다. 백팩을 메고 걸어가는 뒷모습 선비, 태블릿을 들고 책을 설명하는 선비, 신사임당과 소크라테스 사이에서 책 읽는 선비 등이었다. 포스터는 부시장까지 보고된다고 했다. 역시 행정은 다르구나. 갑자기 막 뒤집어지진 않겠지? 며칠 불안감에 휩싸였으나 다행히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오히려 ‘선비 여성’이 있으면 어떻겠냐는 피드백이 들어왔다. 놀라웠다. 내가 놓친 부분이기도 했다. 최종 포스터에는 선비 여성 캐릭터가 포함됐다. SNS에 공개하자 신박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조선의 힙선비라는 댓글도 달렸다. 다음은 숏폼 전략이었다. 전주의 댄서를 섭외해 갓을 쓰고 춤추는 영상을 제작해 차례로 올렸다. 첫 배경음악은 힙합곡 ‘작두’였다. 


   네? 개막식을 하라고요?

   잘 나가다가 복병이 생겼다. 도서관 측에서 개막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 첫 독립출판 축제를 각인시킬 수 있고, 내년 예산 또한 무리 없이 이어질 거란 전망이었다. 맞는 말이라 거스를 수 없었지만 처음엔 세 명의 기획자 모두 저항감이 심했다. 우선 어떤 독립출판 행사에 가든 개막식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독립출판 정신에 위배된다(어떤 정신이죠?), 정장 입고 우르르 나타났다간 위화감만 생긴다, 자칫하다간 책쾌가 들러리 된다, 전주책쾌는 누구를 모시는 축제가 아니다 등등 한 치의 양보 없는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도서관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가 시도해 보면 새롭지 않을까요?”라는 S 팀장의 말에 더 이상 반대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팽팽한 줄다리기 끝에 최대한 관 냄새 나지 않게 해보기로 했다. 

   우선 내가 요청한 주문은 드레스코드였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들이하듯 책 사러 와주시면 좋겠다, 부시장과 시 의장 멘트는 짧고 굵게, 5분도 너무 길어요! 지루하면 끝이다 등등 호소전을 펼치며. 훈화 말씀 많은 진부한 개막식이 되지 않도록 사회자는 책쾌 복장을 한 연극배우로 섭외하고, 다 같이 함께 낭독하면 좋을 ‘책쾌 선언문’도 썼다. 한국 독립출판의 산파이자 해방촌 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 강영규 책쾌와 전국을 대표하는 군산의 만화출판사 삐약삐약북스 전정미 책쾌가 선언문을 낭독했다. “2023 전주책쾌는 책쾌를 아끼고 존중하며 다가올 미래 세대 책쾌를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쓰것다!”라는 대목은 전정미 책쾌의 즉흥 아이디어로 그의 아들 김솔 군이 읽었다. 도서관 앞에서 개막식을 마치고 도서관 내부로 들어서자 전국에서 온 65팀의 독립출판 창작자, 출판사, 책방 책쾌들이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하나라도 더 챙기고 싶어 미안한 사람들과 그 진심을 알아준 고마운 사람들의 이틀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특히 도서관 직원들의 위기 대응력과 일사분란한 조직력에 나는 절로 두 손을 모았다. 기획자는 떠들고 운영자는 행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쪼록 다시 일 년이 지나 새로운 전주책쾌를 준비하는 지금, 매일 깨어날 때마다 징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다.


   다시 깨끗하게 행복

   지난해 얼떨결에 북페어 기획자가 된 이후 감사하게도 내 삶에 없던 생기가 돌았다. 성매매 집결지에서 3년을 공존하고, 업소들이 모두 폐쇄된 후에도 여전히 책방 문을 여는 동안 이곳이 아니라면 겪지 못했을 경험을 품었다. 그것이 내 삶에 주어진 질문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어떻게든 풀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스레 쌓인 어떤 찌꺼기들은 토출구를 찾지 못했다. “너 힘들지?” 눈빛을 알아챈 사람이 넌지시 말을 걸어 오면 슬 웃다가 집에 돌아와 한 달에 한 번 크게 울었다. 

   모르겠다. 책을 판다는 건, 책방을 한다는 건, 하루하루 두렵고 웃긴다는 건. 나도 그 옛날 책쾌들처럼 이 길을 택한 이상 평생 책과 함께하며 환하고 어둡게 거침없이 찔러 보며 독자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게 독소이자 회복 같다. 울고 일어나면 단정히 살아나고, 자고 일어나면 깨끗이 시작되는 아침. 한 장의 날 선 종이, 세상보다 빠른 날렵한 검은 글씨. 시 쓰는 인간이라 버텨 온 것 같은. 비어 있는 자리에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 굳어버린 옛 시간과 살아 있는 지금을 꿰어 보고 싶은. 전국의 책 축제를 찾아 책을 이고 지고 다니는 이 시대 책쾌들과 함께하며. 재밌는 걸 어떡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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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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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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