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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동화

  • 작성일 2022-11-01
  • 조회수 2,131

[단편소설]



겨울 동화



강기희





1
짧은 겨울 해가 산정에 걸리는가 싶더니 바람이 거칠게 일었다. 바싹 마른 낙엽이 공중으로 흩어지자 해는 산을 넘었고, 어둠이 밀려온 골짜기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을 몰고 온 바람은 밤새 문풍지를 흔들었다. 그 소리는 새벽이 되어서야 멀리 달아났고, 바람이 그친 골짜기엔 폭설이 쏟아졌다.


날이 밝자 새들이 먼저 하늘을 날았다. 새들은 풀대궁에 얹힌 눈을 털어내며 아침을 준비했다. 새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마른 풀씨를 쪼아 먹고 있을 때였다. 책방 문이 끼익 열리며 인기척이 났다.


2
“아이구, 뭔 눈이 이리도 많이 내렸을꼬. 눈이 처마 댓돌을 다 덮었네.”
얼마나 많은 눈이 내렸는지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마당인지 알 수가 없었다. 눈으로 인해 사라진 것은 길과 마당뿐이 아니었다. 책방 주변을 구성하고 있던 사물 모두가 눈에 묻히면서 어디에 도끼와 장작이 쌓였고 눈길을 낼 넉가래가 어디에 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저 눈을 어찌한담.’
골짜기에 책방을 연 이래 가장 많은 눈이었다. 책방 주인은 난감한 듯 주변을 살피던 주인은 뒤란으로 가 낡은 목삽 하나를 찾아왔다. 아궁이 재를 퍼내던 삽으로 그나마 요즘엔 사용하지 않는 목삽이었다. 목삽으로 간신히 길을 낸 책방 주인은 장작과 불쏘시개를 찾아 책방 난로에 불을 지폈다. 연기가 폭폭 피어오르자 그사이 책방 아내는 아침밥을 짓고 청국장을 끓였다.
“간밤에 도깨비들이 다녀간 게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릴 리가 없거든요.”
아내가 아침상을 차리며 말했다. 아내는 골짜기에 오랫동안 전해지는 도깨비 전설을 믿는 듯했다. 아내가 믿고 있는 도깨비 전설이란 도깨비들이 잔치를 벌이며 방망이를 두들기면 어느 때는 금은보화가 쏟아지고 어느 땐 하늘에서 눈이 쏟아지고 어느 땐 땅이 갈라지며 큰비가 내리고 어느 땐 전쟁이 나고 어느 땐 싸우던 사람들이 무기를 버리고 땅을 갈아 농사를 짓는다는 등의 이야기였다. 조금은 터무니없다 싶은 이야기지만 간밤 예보도 없던 폭설이 내렸으니 아내의 말처럼 도깨비가 다녀간 게 맞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당신이 꿈꾸던 동화 속 나라가 만들어졌군요.”
“참으로 아름다워요. 그렇지 않나요?”
아내는 식사를 하다 말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3
식사를 마친 부부는 책방 문을 열었다. 오늘은 폭설 이후라 사람 대신 바람과 햇살이 책방을 다녀갈 것이었다. 아내가 책을 정리하는 시간 주인은 책방 주변으로 길을 냈다. 문제는 마당의 눈이었다. 치우기엔 너무 많고 녹을 때까지 그냥 두자니 그것도 하세월이었다.
“눈도 많은데 우리 눈 조각이나 만들까요?”
눈 조각을 만들면 자연스럽게 마당 눈이 치워지지 않겠냐는 거였다. 아내의 제안에 책방 주인은 “오, 그거 좋은 생각이오.” 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방한복으로 갈아입은 주인과 아내는 눈을 모아 눈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눈을 모으고 굴리며 다져 나갔다.
“뭘 만드는 거요?”
아내의 작업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남편이 물었다.
“까뮈 친구를 만들어 주고 있어요. 혼자라 심심해하거든요. 당신은요?”
까뮈는 책방에서 키우는 고양이다.
“곧 당신 생일인데, 당신에게 줄 선물을 만들고 있어요.”
아내가 “뭘까요?” 하며 남편의 눈 조각을 살폈다.
“어머, 물매화로군요. 고마워요, 당신!”
아내는 물매화를 좋아했다. 봄에 피는 매화와 달리 물매화는 가을에 피었다. 구월 중순에 꽃대를 밀어 올린 물매화는 시월에 절정을 이루다가 단풍이 물들면 슬며시 사라졌다. 물매화 중에서는 왕관 모양의 꽃술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 듯한 물매화가 가장 인기를 끌었다. 사진작가들은 그 립스틱 물매화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는데, 책방 주인이 만드는 물매화도 립스틱을 바른 물매화였다.
“어때요?”
붉은 잉크로 물매화 꽃술을 만든 남편이 아내에게 물었다.
“어머, 진짜 물매화 같아요! 이름은 뭔가요?”
“플로라요.”
“아, 정말 멋진 생일 선물이에요.”
아내가 기뻐하자 남편은 물매화에 ‘플로라’라는 이름을 새겨 주었다.


4
아내가 만든 고양이는 책 읽는 모습을 하고 있는 눈 고양이였다. 책방에 어울리는 고양이라는 생각이 드는 귀엽고 지적인 아이였다. 남편이 물매화 이름을 플로라라고 짓자 아내는 눈 고양이의 이름을 ‘눈바’라고 지어 주었다. 눈바는 예전에 키우던 고양이 이름이었는데, 골짜기로 이사 오던 날 개들에게 쫓겨 달아나면서 잃어버린 고양이였다.
아내가 점심을 준비하는 사이 남편은 고양이와 물매화를 마무리했다. 그림붓과 구슬 목걸이를 해체하여 고양이 눈과 콧수염을 만들고 물매화 꽃술도 만들었다. 책방 앞에 눈바와 플로라가 만들어지자 마당은 마치 눈 조각 전시장처럼 화사했다.


5
오후 시간 책방에 손님이 들었다. 폭설을 뚫고 온 이는 골짜기의 사계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 서은혜 작가였다. 그녀는 1년 프로젝트로 골짜기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동식물 등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는데, 간밤 골짜기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고 했다.
“오늘은 아무도 안 올 줄 알았는데 서 작가가 오네.”
“이 멋진 눈을 두고 집에 있을 수 있어야지요.”
“아무렴, 서 작가 아니면 누가 이런 풍경을 기록하겠나.”
“선생님, 풍경 사진을 많이 담아 봤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겨울 풍경은 처음 봐요.”
서 작가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말했다.
“도깨비가 한 짓이라니 그럴 만도 하겠지.”
“도깨비요?”
서 작가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되묻자 아내가 골짜기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들려주었다.
“아항, 그렇군요. 오늘 풍경을 보니까 그럴 만합니다. 저도 인정!”


6
골짜기에 어둠이 내렸다. 그믐이라 하늘엔 별이 초롱초롱했다. 그럼에도 주변은 눈으로 인해 환했는데, 산등성이로 지나가는 짐승이 보일 정도였다. 밤이 깊어 가면서 찬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기온도 급강하했다. 얼마나 추운지 문고리에 손이 쩍쩍 들러붙었다.
“날이 부쩍 추워졌어요. 아궁이에 군불을 많이 넣어야겠어요.”
아내의 말에 남편은 “알았어요.” 하며 아궁이에 장작을 가득 넣었다. 남편은 불씨가 아궁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단속을 하곤 책방 문을 닫았다.


7
모두가 잠에 빠져든 시간, 책방 마당에 방망이를 든 깨비가 나타났다. 지난여름 반딧불이에게 몹쓸 짓을 한 죄로 도깨비 궁에서 쫓겨난 불량 깨비였다.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깨비가 “이건 뭐야. 못 보던 것들이 있네?” 했다.
깨비는 눈 조각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이건 고양이고 이건 물매화 같은데, 눈바와 플로라라고 되어 있네. 눈바와 플로라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로군.’라고 중얼거렸다. 주변을 살피던 깨비가 방망이를 치켜들었다.
“미안하지만 플로라는 내가 가지고 가야겠어. 이렇게 어여쁜 물매화를 고양이에게 줄 순 없지.”
깨비가 방망이를 내리치며 소리쳤다.
“플로라야, 깨어나랏!”
그 소리에 플로라와 눈바가 잠에서 깨어나며 기지개를 켰다.
“아함, 잘 잤다. 근데 넌 누군데 곤하게 자고 있는 날 깨우는 거니?”
눈바가 깨비에게 물었다.
“내가? 난 널 깨운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야? 방금 전 방망이를 내리치며 소리쳤잖아.”
눈바의 말에 깨비가 “아, 플로라를 깨우기 위해 그런 거지. 난 고양일 좋아하지도 않는데 널 왜 깨우겠니.” 했다.
“이 녀석 말하는 것 좀 보게.”
눈바가 발톱을 세우며 말했다.
“어어, 그러지 마. 난 고양이 발톱이 정말 싫거든.”
깨비가 도리질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이번엔 플로라가 나섰다.
“그렇다면 나는 왜 깨웠니?”
“심심해서.”
“심심? 넌 심심하다고 자는 꽃을 깨우니?”
플로라가 어이가 없다는 듯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한바탕 놀자고 깨운 거지 딴생각은 없어.”
“칫, 음흉한 녀석. 너 지난여름 반딧불이 희롱하다가 깨비 궁에서 쫓겨난 거 다 알거든.”
“어어, 그러지 마. 그건 헛소문이야. 내가 반딧불이를 왜 희롱하겠어.”
“그런데 궁에선 왜 쫓겨나니?”
“그거야 뭐…….”
깨비가 말을 얼버무리더니 “아, 심심이라는 말은 취소하지. 대신 사과하는 의미로 좋은 구경 시켜 줄 테니 날 따라와.” 하며 눈길을 앞장섰다.
“어딜 가는데?”
눈바와 플로라가 동시에 물었다.
“따라와 보면 알아. 지금 궁에선 느이 같은 애들은 절대로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거든.”
“그게 뭘까? 가볼래?”
플로라가 눈바에게 물었다.
“좋아, 가자. 내 등에 타!”


10
플로라를 등에 태운 눈바는 깨비를 따라 밤길을 나섰다. 눈바가 걸음을 떼어 놓을 때마다 휘청휘청 흔들리자 플로라가 “이거 백마 탄 공주가 부럽지 않은걸.” 했다.
“플로라, 그러다 떨어지면 다치니까 꼬리 꼭 붙들어. 알겠니?”
눈바가 꼬리를 곧추세우며 말했다.
“알겠어. 눈바.”


11
깨비는 눈바와 플로라를 도깨비 산으로 데리고 갔다. 산 아래에는 도깨비 소가 있고, 소엔 도깨비 궁으로 연결되는 비밀통로가 있었다.
“조용히 따라와. 보초 깨비에게 걸리면 나는 물론 느이들까지 불지옥에 떨어지거나 도깨비 감옥에 갇히고 말 거야. 도깨비 궁은 평화를 깨는 외부 침입자들을 크게 경계하거든.”
깨비가 도깨비 궁을 살피며 말했다. 깨비의 말에 플로라가 “무섭다. 우리 책방으로 돌아가자.”라며 눈바 뒤로 숨었다.
“내가 있으니 걱정 마.”
눈바가 플로라를 안심시키는 사이 깨비가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지금이야, 어서 들어와.”


12
통로를 지나 한참을 들어가자 드넓은 도깨비 궁이 나타났다. 바깥세상은 눈으로 가득한데, 도깨비 궁은 향기 나는 꽃으로 가득했다. 거리는 축제 중인지 깃발이 펄럭였고 도깨비들의 춤판도 곳곳에서 이어졌다.
“축제 중인가?”
“축제는, 오늘은 도깨비 공주가 이웃 나라 도깨비 왕자와 혼인을 하는 날이야. 마음껏 놀고먹는 날이기도 하지. 곧 공주와 왕자가 광장에 나타날 거야.”
깨비의 말이 끝나자 꽃가루가 날리면서 궁궐 음악대가 앞장을 섰고, 마차를 탄 도깨비 왕과 공주가 뒤를 따랐다. 반대편에서는 갑옷으로 무장을 한 이웃 나라 왕자도 등장했는데, 허리에 번쩍이는 칼을 차고 있었다. 왕자가 도깨비 신이 있는 제단에 자리 잡자 마차에서 내린 공주도 제단으로 올라갔다. 왕자와 공주가 도깨비 신께 혼인을 약속하며 증표를 주고받자 지켜보던 도깨비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공주님 만세! 왕자님 만세! 평화 도깨비 만세!”
도깨비들의 환호가 잦아들 즈음이었다. 왕자가 칼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평화는 깨졌다. 궁을 장악하라!”
그 순간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무기를 든 도깨비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며 광장을 장악했다. 왕과 공주는 무슨 일인가 싶었고, 평화를 노래하던 도깨비들은 공포에 질려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왕이 마차를 타고 도망을 쳤지만 무장 도깨비에게 잡혔다. 도깨비 왕이 무장 도깨비들에게 체포되자 공주가 “안 돼요! 아버님은 풀어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공주를 모셔라!”
왕자의 명에 무장 도깨비들이 공주를 데리고 갔다. 이어 도깨비 궁을 상징하는 평화의 깃발이 내려지고 악마를 상징하는 이웃나라 도깨비 깃발이 올랐다.


13
“무슨 일이야?”
플로라가 겁먹은 얼굴로 깨비에게 물었다. 깨비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글쎄, 나도 모르겠는걸. 잠깐 기다려 봐.”
깨비가 사정을 알아보겠다며 어디론가 떠났다. 한참을 기다려도 깨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 잘못되어 도깨비 궁에 갇히기라도 하면 책방에 돌아가기도 전 녹아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곧 날이 밝을 거야. 어서 책방으로 돌아가야 해.”
플로라가 다급하다는 듯 눈바의 등에 올라탔다. 해가 뜨면 돌아갈 길이 막힌다는 것을 눈바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가자.”
눈바는 플로라를 등에 태우곤 도깨비 궁을 조심스럽게 나섰다. 궁을 막 빠져나올 무렵 뒤에서 “저놈들 잡아라!”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눈바의 움직임이 워낙 빨라 도깨비들에게 잡히지는 않았다. 책방에 도착하자 플로라가 살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휴, 큰일 날 뻔했네.”


14
간밤 도깨비 궁에서 벌어진 공포와 달리 책방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책방 주인은 늘 그러하듯 기상과 함께 난로를 피우고 책방 문을 열었다. 연기가 폭폭 굴뚝을 타고 나올 무렵이면 아내 또한 늘 그러하듯 아침밥을 짓고 찌개를 끓였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책방 주인은 작업 중인 소설 쓰기를 시작했고, 그러다 손님이 오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거나 책을 팔았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폭설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책방 주인은 글쓰기를 포기하고 손님들에게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말해 주었고, 여행자들은 사인 받은 책을 들고선 책방 주인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15
밤이 되자 깨비가 또 나타났다. 어제와는 달리 풀이 잔뜩 죽은 표정이었다. 플로라가 물었다.
“어찌 된 일이야?”
“세상이 바뀌었어.”
“세상?”
“응, 악마 도깨비 왕자가 공주와 혼인을 하겠다고 속이곤 도깨비 궁을 점령했어. 도깨비 궁을 장악한 악마 도깨비들이 평화 도깨비들을 노예로 삼아 금을 캐고 있는데 벌써 죽은 이들도 많아.”
“도깨비가 금을 캐? 방망이로 만드는 게 아니고?”
눈바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도깨비 방망이로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생기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어제까진 그랬지. 하지만 간밤 도깨비 왕자가 도깨비들이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어. 그 능력은 자신만 가져야 한다는 거지.”
“그럼 도깨비 방망이도 쓸모없게 되었네?”
“해볼까?”
깨비가 자신의 방망이를 내리치며 마법을 걸어 보지만 어떤 주문도 먹히지 않았다.
“역시 안 되네.”
깨비가 방망이를 살피더니 필요 없다는 듯 마당가로 휙 던졌다. 침울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이 없던 깨비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도깨비들에게 마법을 되찾아 주면 어떨까? 그러면 도깨비 궁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고 싶지만 우리가 무슨 수로?”
플로라가 나섰다.
“마법을 막은 게 왕자이니 왕자에게 풀 방법 또한 있지 않을까?”
깨비의 말에 눈바가 “일리가 있는 추론이야. 당장 찾아보자.”라며 발톱을 세웠다.


16
깨비는 도깨비궁 지도를 그려 가며 궁 내부에 대해 설명했다. 궁은 생각보다 넓고 깊은 데다 크고 작은 굴이 끊임없이 이어져 지도가 없으면 어디가 어딘지 찾아갈 수도 없을 정도였다. 지도 한 장씩 품에 넣은 눈바와 플로라는 깨비를 따라 도깨비 궁으로 들어갔다. 꽃으로 화려했던 궁은 하루아침에 동굴 사막처럼 휑했다.
“아름답던 궁을 이렇게 만들어 놓다니!”
플로라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궁은 하루 전보다 경계가 삼엄해졌고, 궁을 지키는 보초 깨비들의 손엔 방망이 대신 무기가 들려 있었다. 깨비는 눈바와 플로라를 데리고 왕자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갔다. 도깨비 왕이 머물던 건물을 차지한 왕자는 노예들을 동원하여 궁궐에 금 단장을 하고 있었다.
“빨리빨리 해라! 게으름을 피우는 놈은 불구덩이로 던져버릴 것이야.”
악마 도깨비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노예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왕자를 지키는 경호 도깨비 수가 엄청난걸. 어쩌지?”
플로라가 물었다.
“어쩌긴, 방법을 찾아야지.”
눈바가 주변을 살피며 생각에 잠겼다. 그사이 많은 도깨비들이 불구덩이에 던져졌고, 광장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플로라는 “저, 저런 나쁜 놈들.” 하며 치를 떨었다.
“깨비야, 도깨비 궁 왕과 공주가 있는 곳으로 가자. 어쩌면 그곳에 답이 있을지 몰라.”
눈바의 제안에 깨비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며 동의했다.
“그런 생각을 해내다니 제법인걸.”
깨비의 말에 플로라가 한마디 했다.
“너보단 백 배 아니 천 배는 제법일걸. 책 읽는 눈바 아니냐.”
“좋아, 인정! 그러니 왕과 공주가 있는 곳으로 가보자.”


17
왕과 공주는 도깨비 궁의 지하 감옥 중에서도 접근하기 가장 힘든 곳에 있었다. 감옥 주위엔 호수가 있고, 검푸른 호수를 지나야만 감옥으로 오를 수 있는 절벽이 나타났다. 깨비가 놀랍다는 듯 중얼거렸다.
‘저런 곳에 감옥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엄청나군.’
호수엔 굶주린 물고기들이 펄떡였고, 어쩌다 건넌다 해도 감옥이 있는 절벽은 접근조차 힘들어 보였다.
“저길 어떻게 간다지?”
깨비가 감옥 주변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눈바가 보기에도 경비는 허술했지만 왕자가 있는 궁으로 가는 것보다 험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로라는 곧 날이 밝을 것이니 내일 다시 오자고 했다. 플로라의 말에 깨비가 “그래, 자칫하면 우리까지 개죽음 당할 수 있으니 무모한 일은 벌이지 말자.” 했다. 플로라가 눈바 등에 올라타며 깨비를 위로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뭔가 방법이 있겠지.”


18
오늘은 책방 주인과 친구 사이인 소설가가 찾아왔다.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소설가는 눈길을 걸어왔는데, 메고 온 배낭 안엔 술과 안주가 잔뜩 들어 있었다. 친구를 반갑게 맞이한 책방 주인은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웠다.
“이런 산중에서 답답하지 않냐? 외롭지는 않고?”
술이 몇 잔 들어가자 소설가가 물었다.
“답답이야 도시가 더 하지. 여긴 자연 그대로라 사람과 사람 사이나 사람과 자연 사이에 있는 벽이란 게 없어. 그러니 답답하거나 외로울 이유가 없지.”
책방 주인의 말에 소설가가 “그런가?” 했다.
“근데 여기까지 어쩐 일이냐?”
책방 주인이 물었다.
“폭설에 굶어 죽지나 않았는가 해서 왔지.”
소설가는 그렇게 말하고 허허롭게 웃었다.
“지난번 작품이 표절 때문에 시끄럽다며?”
책방 주인이 술잔을 비우며 물었다.
“소식 들었구나.”
“늦어서 그렇지 산중에도 소식은 온다.”
“휴, 실은 그것 때문에 바람도 쐴 겸해서 왔다. 머리가 좀 아파야지.”
소설가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어쩌고 싶은데?”
“뭐 어째, 깔끔하게 표절 인정하고 이참에 절필해야지.”
소설가는 그렇게 말하곤 술을 털어 넣었다.
“캬아, 술은 또 왜 이렇게 쓰냐!”


낮술은 밤까지 이어졌다. 책방 마당에서 시작한 술자리는 책방 안으로 옮겨졌다가 잠자리가 펴진 사랑방으로까지 이어졌다. 책방 주인에게 답답하지 않느냐고 물었던 소설가는 정작 본인의 삶이 답답하고 외로웠는지 주정처럼 자주 ‘답답함과 외로움’을 토로했다.
밤은 더 깊어 빈 술병만 남았을 때 소설가는 앉아서 졸고 있었다. 소설가 친구를 요에 눕힌 책방 주인은 친구에게 “잘 자게.” 하고 방을 나섰다. 책방 주인이 문지방을 넘을 때 친구가 정신이 드는 듯 “표절 시비로 고개 들고 다니기도 힘들었는데, 자넬 보니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겨 주어서 고맙네, 친구.”라고 말했다.
“나도 고맙다.”


19
책방이 조용해지자 깨비가 눈바를 찾아왔다.
“눈바야, 왕과 공주에게 접근할 방법은 찾았어?”
“그래, 여기로 모여 봐.”
눈바가 지도를 펼치며 말했다. 깨비와 플로라가 눈바 주위로 모여들었다.
“내 말 잘 들어. 이번 작전은 단시간에 끝내지 않으면 다 죽어. 알았지?”
눈바의 말에 깨비와 플로라의 얼굴에 긴장이 내려앉았다.
“내가 플로라를 등에 태우고 호수를 건널 거야. 그러면 깨비 넌 밧줄을 내려 줘. 플로라는 그 밧줄을 타고 절벽을 올라 왕과 공주를 만나.”
눈바의 말에 깨비가 “멋진 생각인걸.” 했다.
“이번 작전의 성공은 깨비에게 달려 있어. 깨비가 보초 깨비들을 해치우지 못하면 나나 플로라는 호수를 건너지도 못하고 죽고 말 거야.”
눈바의 말에 깨비가 “알겠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나와 넌 눈으로 만들어졌는데 호수를 어떻게 건너니? 물에 녹아버리고 말 텐데.”
플로라의 말에 깨비가 “어, 그렇네. 생각해 보니 매우 위험한 일인걸.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했다.
“걱정 마. 오늘 엄청 추운 날씨라 몸이 얼음처럼 변했거든. 그러니 호수에 들어간다 해도 눈처럼 금방 녹진 않을 거야.”
눈바의 말에 플로라가 자신의 몸을 만져 보더니 “어머, 정말이네. 내 몸도 얼음처럼 단단하게 굳어 있네.”라며 신기해했다.
“좋아, 다들 준비되었으면 출발!”
깨비는 책방 주인이 사용하던 로프 등을 챙겨 도깨비 궁으로 향했다. 도깨비 궁에 도착한 눈바는 플로라가 등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단단히 묶었다. 깨비가 감옥을 지키던 보초 깨비 하나를 해치우자 눈바는 플로라에게 “자, 건넌다. 꼭 잡아!”라고 소리쳤다.
플로라를 태운 눈바가 호수로 첨벙 뛰어들었다. 호수 물은 가만히 있으면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찼다.
눈바가 호수를 빠른 속도로 건너자 물고기들이 눈바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칠게 달려드는 물고기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갈 때 경계를 서고 있던 악마 도깨비가 호각을 불었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그 순간 동굴 천장에서 화살이 쏟아졌고, 화살은 플로라와 눈바의 몸 곳곳에 박혔다. 플로라가 “눈바! 화살은 내가 뽑을 테니 계속 달려!”라며 몸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화살을 맞은 자리는 다시 얼음으로 변했고, 물고기가 문 자리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몸이 부서졌을 텐데, 물이 얼음물처럼 차서 다행이야!”
“그러게!”
눈바와 플로라가 말을 주고받을 때 화살이 또 한 번 쏟아졌다.
“저, 저런!”
큰일 났다 싶었다. 깨비는 로프를 걸고 천장으로 기어올랐다. 천장에 이르니 감옥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고 보초 깨비 하나가 수십 개의 화살을 동시에 날릴 수 있는 화살 판을 조정하고 있었다. 침입자가 전망대에 나타나자 보초 깨비가 무기를 들고 공격했다. 결투 끝에 보초 깨비를 제압한 깨비는 화살 판을 사용 불능으로 만들었다. 이어 천장에 로프를 건 깨비는 밧줄을 내렸다.
“플로라, 밧줄을 잡아!”
플로라는 “알겠어!” 하며 깨비가 내려 준 밧줄을 타고 절벽을 기어올랐다.
“잘했어, 깨비!”
눈바가 깨비를 향해 소리쳤다.


20
절벽을 오른 플로라는 도깨비 왕부터 찾아갔다.
“왕이시여. 악마 도깨비 왕자가 평화 도깨비들의 마법을 정지시켰나이다. 부디 마법을 되살릴 방법을 알려주시옵소서.”
“오, 안타깝게도 짐은 그 방법을 알고 있지 못하오. 공주는 혹 알지 모르니 공주를 만나 보시구려.”
도깨비 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탄식했다. 플로라는 공주가 있는 감옥으로 갔다. 공주가 갇혀 있는 감옥에는 시종이 하나 있었는데, 놀랍게도 갈색 털을 한 고양이였다.
“그댄 누구시오?”
고양이가 물었다.
“플로라입니다. 왕자가 없앤 도깨비들의 마법을 되살릴 방법을 찾고자 왔습니다. 마법만 되찾으면 도깨비 궁을 되찾을 수 있고 공주님께서도 풀려나실 수 있습니다.”
플로라의 말에 시종은 공주에게 그 말을 전하겠노라 했다. 시종으로부터 말을 전해 들은 공주가 플로라를 만나러 왔다.
“마법을 되살릴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왕자가 들고 있는 악마의 칼을 없애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 쉽지 않을 거예요.”
공주는 두 가지 방법 다 힘들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또 하나는 뭐죠?”
“궁을 꽃밭으로 만들면 도깨비 마법이 저절로 살아날 겁니다. 하지만 도깨비 궁은 동굴이라 꽃을 살리기 무척 힘들거든요.”
“왕자가 꽃밭을 서둘러 없앤 이유가 그것이었군요.”
동굴을 사막처럼 만든 게 이해가 갔다.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제가 동굴에서 잘 자라는 꽃씨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을 뿌려 보세요. 꽃 기르는 방법은 시종 눈바가 잘 알려 드릴 겁니다.”
공주는 시종을 시켜 꽃씨를 가져오게 했다. 시종이 꽃씨를 가지고 오자 플로라가 물었다.
“책방 눈 고양이 이름도 눈바인데, 같은 이름이군요.”
“책방이요?”
시종의 눈이 번쩍 뜨였다.
“예, 함께 왔거든요.”
“오, 저도 책방 고양이였어요. 이곳으로 이사 오는 날 개들에게 쫓겨 도깨비 궁에 오게 되었고, 공주님의 시종이 되었지요. 책방 어머닌 잘 계신가요?”
시종 눈바가 눈물을 글썽이며 책방 아내의 안부를 물었다. 플로라는 책방 소식을 전해 주며 “잘 계십니다. 반가워요. 그러고 보니 우린 다 책방 식구로군요.” 했다.
“책방 소식을 여기에서 듣게 되다니요. 고맙습니다.”
시종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 하지만 우리가 지금 시간이 없어요. 보시다시피 눈으로 만들어진 터라 몸이 이렇게 녹아들고 있거든요.”
“아, 미안해요.”
시종은 꽃씨를 뿌리고 키우는 방법을 빠르게 설명하곤 꽃씨를 건넸다.
“자, 성공을 빌게요. 어서 떠나요!”


21
책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소설가는 날이 밝자 골짜기를 걸어 나갔다. 밥이라도 먹고 떠나라는 책방 주인의 말에 친구는 “느이 집사람 보기 미안하니 그냥 가는 게 좋겠네.”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책방 주인은 친구를 향해 “힘내게!” 하고 소리쳤다. 소설가 친구는 책방 주인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눈 덮인 도깨비 소를 빠져나갔다.
친구가 떠나자 책방 주인은 난로에 불을 피우고 친구와 만든 간밤의 흔적을 하나씩 지워 나갔다. 방 청소까지 끝낸 책방 주인이 밖으로 나왔을 때 아내는 “해장국을 준비했는데 드시고 떠나지.”라며 먼 산을 바라보았다.


22
“응, 이 녀석들이 왜 이러지? 여보, 눈바와 플로라가 이상해요.”
마당에 나가 있던 책방 주인이 아내를 불렀다. 마당으로 나온 아내가 눈바와 플로라를 보더니 “어머, 이 상처 좀 봐. 상처가 심각한데, 어서 치료를 해줘야겠군요.” 했다. 아내의 말처럼 플로라는 꽃잎이 무너져 내렸는데, 아름답던 꽃술은 흔적도 없었다. 눈바도 꼬리가 절반이나 잘려 나간 데다 곳곳이 금이 가거나 깨진 상태여서 상처로 보면 플로라보다 눈바가 더 심각했다.
“간밤에 눈바와 플로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책방 주인의 말에 아내는 “도깨비들이 다녀간 게 아닐까요?” 했다.
“도깨비가 우리 애들을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그야 모르지요. 너무 멋지게 만들어서 질투가 났던 건 아닐까요.”
아내가 그렇게 말하곤 웃었다.


책방 주인과 아내는 손대지 않은 깨끗한 눈을 모아 눈바와 플로라를 복원시켰다. 책방 주인은 단순한 복원에 그치지 않고 이번엔 눈바의 겨드랑이에 날개까지 달았다. 복원을 끝낸 책방 주인은 눈바에게 ‘날으는 눈바’라는 이름을 붙여 주며 “이젠 아프지 말고 훨훨 날거라.” 했다.
아내는 플로라를 꽃의 여신답게 더 아름답게 꾸몄고, 누구든 플로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랑의 묘약까지 몸 깊숙한 곳에 심어 주었다.
“이젠 아프지 말고 사랑만 받고 살아라.”


23
“아함, 잘 잤다.”
눈바가 기지개를 길게 켜며 잠에서 깨어났다. 눈바가 “어, 내 몸에 날개가 생겼네?”라며 날개를 퍼덕거렸다.
몸이 둥실 떠오르자 “어어, 내 몸이 하늘을 나네?” 눈바는 신기한 듯 날개를 살폈다. 눈바가 소란을 피우자 플로라도 끙,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 상쾌해.”
잠에서 깬 플로라가 콧노래를 부르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깨비가 책방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라? 느이들 괜찮아?”
“괜찮지. 왜?”
“왜라니, 난 느이 둘 다 죽은 줄 알았다. 여기까지도 간신히 왔거든.”
“그랬나? 전혀 기억이 안 나네.”
눈바와 플로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허, 이게 뭔 일이야. 간밤 도깨비 궁에서 있었던 그 엄청난 일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단 말야?”
깨비의 말에 눈바가 “정말이야. 아무런 기억이 없어.” 했다. 그 말에 깨비가 간밤에 벌어진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깨비는 또 플로라가 공주에게 받은 꽃씨가 자신에게 있으며 시종이 한 말을 몇 번이고 중얼거리더라며 “플로라, 몸 어딘가에 꽃씨가 있을 거야. 찾아봐.” 했다. 깨비의 말에 플로라가 “어머, 깨비 말이 맞네. 내 꽃대에 공주에게 받은 꽃씨가 들어 있어.”라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깨비가 꽃씨를 받아 들며 “거봐, 이제 내 말을 믿겠니?” 하며 눈바와 플로라를 번갈아 보았다.


24
눈바가 플로라와 깨비를 태우곤 날개를 활짝 폈다.
“자, 도깨비 궁으로 출발한다. 꼭 붙잡아!”
눈바가 공중으로 날아오르자 플로라가 “아, 밤하늘이 이토록 아름답다니. 눈바에게 날개가 있으니 참 좋네. 하늘을 다 날고.”라며 신기해했다. 도깨비 산을 크게 한 바퀴 돈 눈바는 “도깨비 산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도깨비 궁으로 향했다.
도깨비 궁에 도착한 눈바 일행은 보초 깨비들의 눈을 피해 꽃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사흘, 꽃씨 뿌리는 일도 보름이 지났다. 그렇게 한 달을 넘기자 궁 여기저기에서 싹이 하나씩 트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향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왕자가 코를 벌름거렸다.
“흠흠, 이게 무슨 향이지?”
생전 처음 맡는 향이었지만 무척이나 매혹적인 향기였다. 왕자는 그 향을 자신만 맡은 건 아닌가 싶어 경호 깨비에게 물었다.
“이봐, 무슨 냄새가 나지 않는가?”
왕자의 말에 경호 깨비가 코를 큼큼거렸다.
“왕자님, 금에서 나는 향기가 아닐까요?”
“금?”
왕자가 궁궐을 둘러보았다. 금 단장이 마무리에 이른 궁궐은 왕자가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왕자는 ‘저렇게 아름다운 금에서 향기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지.’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이 맡은 향기가 금에서 나는 향기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건 금 향기였어. 금!”


25
꽃이 하나씩 피어나자 그 향기가 도깨비 궁 전체로 퍼져 나갔다. 향기가 퍼지자 절망에 빠져 있던 평화 도깨비들의 머릿속에는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았고, 그 희망이 꽃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는 걸 알아차린 건 한 달이 더 지난 후였다.


26
궁궐 단장을 끝낸 왕자는 자신의 궁궐을 자랑하기 위해 축제를 열었다. 채찍을 휘두르며 노예를 다루던 깨비들에게 모처럼의 휴식과 특식이 내려졌다.
“도깨비 형제들이여, 마음껏 먹어라. 그동안 금을 캐기 위해 수고한 너희들을 내 사랑하리라. 오늘만큼은 마음껏 놀고 즐겨라. 형제들이여.”
왕자가 축배의 잔을 높이 들며 기뻐했다.
“난 세상에서 금 향기가 가장 좋느니라! 이처럼 아름다운 금 향기가 또 어디에 있겠느냐. 형제들이여, 나를 위하여 금을 더 캐다오. 알겠느냐!”
왕자는 궁 주변을 환하게 만든 금 향기가 오늘따라 더욱 짙다고 생각했다. 그 시간 눈바와 플로라는 꽃을 더욱 활짝 피웠고, 축제가 시작될 무렵 꽃향기 또한 절정에 이르렀다.
악마 깨비들이 꽃향기에 취해 경계를 늦추는 시간, 노예로 살았던 평화 깨비들이 방망이를 들고 광장으로 나타났다. 그와 동시에 나팔소리가 길게 울렸고, 도깨비 왕과 공주가 마차를 타고 광장에 들어섰다.
“우리의 마법이 살아났도다. 도깨비 궁을 악마의 소굴로 만든 사악한 왕자와 악마 도깨비들을 추포하라!”
왕이 평화 도깨비들에게 큰 소리로 명했다. 마법이 살아난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악마 도깨비를 공격했다. 축제를 벌이던 왕자는 “무, 무슨 일이냐!” 하며 소리쳤다. 왕자를 지키던 경호 깨비들이 외쳤다. “와, 왕자님! 피하셔야 합니다. 도깨비 마법이 살아났사옵니다!”
왕자가 도망을 치자 눈바와 플로라가 뒤를 쫓았고, 길목을 지키던 불량 깨비가 준비했던 그물을 왕자를 향해 던졌다.
“잡았다!”
깨비는 왕자를 사로잡았고, 칼을 빼앗긴 왕자는 “졌다!”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도깨비들이 환호하며 왕과 공주를 연호했고, 눈바와 플로라는 눈시울을 적셨다.
“우리가 해냈어!”


27
왕과 공주가 도깨비 제단을 올라 도깨비 신께 고했다.
“신이시여, 평화 도깨비들이 악마들을 물리치고 도깨비 궁을 되찾았나이다. 두 번 다시 제단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을 것이니 신께서는 평화 궁을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28
도깨비 궁에 평화가 찾아오자 불량 깨비는 다시 평화 궁의 일원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훈풍이 불어오면서 봄같이 따신 날이 이어졌다. 날이 풀리자 복수초가 피어났고, 동박나무도 싹을 틔웠다.
다들 봄을 기다렸지만 봄이 야속한 이도 있었다. 봄 날씨가 이어지자 눈바와 플로라는 맥을 추지 못했다.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어느 날엔 날개가 사라졌고, 어느 날은 다리 한쪽이 사라졌다.
답답했던 깨비가 방망이를 흔들며 “겨울로 돌아가랏!” 했지만 도깨비 마법도 봄처럼 따뜻한 날씨를 겨울로 되돌려 놓지는 못했다.
“이러다 죽겠다. 지금이라도 도깨비 궁으로 가자.”
깨비가 눈바와 플로라의 손을 잡았다.
“늦었어. 날개도 없고 다리도 이미 녹아버렸는걸.”
“나도 그래, 꽃대가 다 사라졌어. 이젠 말하기조차 힘든걸.”
눈바와 플로라가 고통스럽다는 듯 힘겹게 말했다.
“아, 아니야. 도깨비 궁으로 가면 살 수 있어. 거기엔 얼음 동굴이 있거든. 너희도 알지, 왕자를 가둔 얼음 동굴. 거기 가면 살 수 있어. 어서 가자!”
깨비가 다시 한 번 재촉했다.
“깨비야, 널 만나 즐겁고 행복했다. 아무리 막아도 봄은 올 거고 봄이 오면 우린 떠나야 해. 그게 우리의 운명이야. 그러니 울지 마.”


29
봄꽃이 다투어 피어나던 날 서은혜 작가가 책방을 찾았다.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인데, 도깨비 소에서 처음 보는 꽃을 발견했다며 사진을 보여주었다.
“선생님, 혹 이 꽃 아세요? 매혹적인 향기를 지녔던데…….”











강기희
작가소개 / 강기희 

강원 정선에서 태어나 강원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대한민국 최고 오지이자 한국의 네팔이라고 알려진 덕산기계곡에서 ‘숲속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장편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도둑고양이』, 『은옥이』, 『개 같은 인생들』, 『원숭이 그림자』, 『위험한 특종』, 『연산의 아들 이황』, 『이번 청춘은 망했다』, 소설집 『양아치가 죽었다』와, 시집 『우린 더 뜨거워질 수 있었다』 등을 출간했다. 2000년 한국 최초 전자책 전문업체인 바로북닷컴이 주최한 ‘5천만원고료 제1회 디지털문학대상’ 수상,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창작기금 수혜, 2018년 소설 『위험한 특종』으로 레드어워드상을 수상했다. 민족작가연합 상임대표,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문장웹진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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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 없이

좋아하는 마음 없이 김지연 안지는 이른 결혼을 했는데 실패로 끝났다. 아니, 그걸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이혼을 한 건 사실이었지만 안지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그때 이혼한 일을 실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더 행복해졌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삶을 살게 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면 늘 그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여러 말들이 떠오르곤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때문에 이혼했다는 사실은 안지의 비밀은 아니었지만 먼저 나서서 밝히지도 않았다. 어릴 때 안지는 무척 전형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그런 표현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저 자신이 속해야 하는 집단에서 튀지 않는 사람, 아주 평균적인 사람이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을 했다. 찬반투표를 할 때면 눈치를 보다가 다수의 의견에 따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친구가 좋아하는 가수를 따라서 좋아하고 친구의 것과 비슷한 브랜드의 신발을 사서 신었다. 친구들이 싫어하는 선생을 따라서 싫어했다. 사실 안지는 그 선생에게 남몰래 호감을 갖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를 먹다가 술술 흘러나온 그 선생에 대한 욕을 듣고 재빨리 노선을 바꿔 함께 욕을 했다. 한동안 안지는 수학 시간마다 왜 애들은 저 선생을 싫어할까? 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서 더 열심히 선생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수학을 가르친다는 점만 빼면 딱히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다. 학생이 쉽게 답할 수 없는 내용을 골리듯 물어보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생들한테 사과를 할 줄 알았다. 뭔가 잘못 알고 섣불리 화를 냈을 때, 그러다 결국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른 선생들은 그러게 헷갈릴 만한 짓을 왜 하고 다니느냐고 도리어 짜증을 부렸는데 그 선생은 재빨리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 알았어. 미안해. 가끔 안지는 머릿속으로 그 목소리를 재생해 보곤 했다. 그 때문에 선생이 더 좋아졌지만 여전히 싫어하기 위해 애썼다. 누구나 다 그런 식으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나? 내가 아닌 사람이 되어 보려고 노력하면서? 안지는 대학에 갔고 연애를 했고 졸업을 했고 취직을 했다. 결혼도 했다. 아주 평균적인 삶이었다. 조금씩 빠르기도 했다. 조바심이 나 있었으므로. 자신도 남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빨리 증명해 보이고 싶었으므로. 어느 정도 성공적인 것 같기도 했다. 남편이 바람이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식도 올리기 전 임신을 해 낳은 아이가 막 돌을 지난 참이었다. 임신이 아니었으면 결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남편은 계속 후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낙태를 밀어붙이지 않은 것을, 시간을 끌다가 영영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만 것을, 어떤 결단력을 가지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새로운 여자가 생겼을 때는 안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이혼을 해달라고 요구했다. 겨우 육 개월을 만났을 뿐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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