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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늑대의 문장』중에서

  • 작성일 2014-02-14
  • 조회수 1,352

김유진, 『늑대의 문장』중에서



첫번째 희생자는 세 명의 여자아이였다.

날은 이례적으로 따뜻했다. 아이들은 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첫째아이는 시멘트 바닥에 찍힌 까마귀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둘째아이는 개의 목줄을 잡아끌며 걸었다. 코 주변이 까만 강아지는 목에 힘을 주며 버텼다. 셋째아이는 지폐 한 장을 만지작거리며 걸었다. 며칠 전 받은 세뱃돈이었다. 그러나 작은 섬에서 여섯 살배기 아이들에게 돈이 쓸모 있을 리 없었다. 때문에 첫째와 둘째는 돈을 모두 어머니에게 주었지만, 셋째는 그러지 않았다. 돈을 보석처럼 아끼는 막내는 접힌 부분이 다 해질 정도로 펼쳐보고 숨기기를 반복했다. 갑자기 둘째아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개가 말썽이었다. 신경질이 난 아이가 목줄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개가 공중으로 붕 떴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자지러졌다. 그러자 길 양쪽 밭 사이사이 돌멩이처럼 박혀 있던 염소들이 따라 울기 시작했다. 고요했던 길이 순식간에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당황한 아이들이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밭에 퇴비로 놓은 해삼 냄새가 뒤를 쫓았다. 숲이 가까워지자 시멘트 대신 흙길이 이어졌다. 녹녹해진 땅에서 더운 김이 올라왔다. 숲의 입구에서 세 아이들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검고 무성한 숲이 짐승처럼 포복하고 있었다. 생각난 듯이, 셋째아이가 황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돈이 안전히 잘 있음을 확인하자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아이가 다시 주머니에 돈을 넣으려 할 때, 지뢰가 터지듯 셋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폭발의 원인이 될 만한 것은 없었다. 그 자리에 단무지처럼 얇은 다리와 덜 자란 내장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다. 막내는 폭사 후에도 오랫동안 살아 있었다. 발견 당시 아이의 시선은 자신의 몸에서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는 팔과 손에 들린 돈을 향해 있었다. 사람들은 돈을 보며 폭발의 원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허사였다. 아이들의 팔다리를 꿰맞추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몇 분 간격으로 태어난 아이들은 세쌍둥이였다.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었던 아이들의 팔다리 역시 모두 같아 보였다. 목줄이 잘린 개는 사라지고 없었다. 아이들은 관습에 따라 화장되었다.


작가_ 김유진 – 소설가. 1981 서울 출생. 2004년 《문학동네》신인상 수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지은 책으로 소설집『늑대의 문장』, 『숨은 밤』이 있음.

낭독_ 우미화 – 배우. 연극 <말들의 무덤>,<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농담> 등에 출연.


배달하며


대략 십년 정도 전에 이 단편을 읽었을 겁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 읽었을 때의 깊은 인상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제목부터가 근사했지만 ‘마른 붓’ 의 의미를 분명하게 보여주었죠 (제목에 다른 뜻이 들어있다 하더라도 저는 文章으로만 읽힙니다). 먹물이 흘러넘치는, 과잉의 붓질을 떠올려보면 ‘마른 붓’이 무엇을 의미 하는 지 느낌이 옵니다. 정확하고 냉정한 문장이 주는 감정의 절제미. 지금 보아도 이십대 젊은 처녀가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외롭고 고고하고 단순하고 분명한 것은 늑대의 특징이기도 하여, 말 그대로 늑대의 문장입니다.

문학집배원 한창훈

출전_ 『늑대의 문장』(문학동네)

음악_ song bird av212

애니메이션_ 송승리

프로듀서_ 양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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