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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 「양파 공동체」

  • 작성일 2014-02-10
  • 조회수 3,206

손미, 「양파 공동체」




그러니 이제 열쇠를 다오. 조금만 견디면 그곳에 도착한다. 마중 나오는 싹을 얇게 저며 얼굴에 쌓고, 그 아래 열쇠를 숨겨 두길 바란다.

부화하는 열쇠에게 비밀을 말하는 건 올바른가?



이제 들여보내 다오. 나는 쪼개지고 부서지고 얇아지는 양파를 쥐고 기도했다. 도착하면 뒷문을 열어야지. 뒷문을 열면 비탈진 숲, 숲을 지나면 시냇물. 굴러떨어진 양파는 첨벙첨벙 건너갈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라질 수 있겠다.



나는 때때로 양파에 입을 그린 뒤 얼싸안고 울고 싶다. 흰 방들이 꽉꽉 차 있는 양파를.



문 열면 무수한 미로들.

오랫동안 문 앞에 앉아 양파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때때로 쪼개고 열어 흰 방에 내리는 조용한 비를 지켜보았다. 내 비밀을 이 속에 감추는 건 올바른가. 꽉꽉 찬 보따리를 양손에 쥐고


조금만 참으면 도착할 수 있다.

한 번도 들어간 본 적 없는 내 집.



작아지는 양파를 발로 차며 속으로, 속으로만 가는 것은 올바른가. 입을 다문 채 이 자리에서 투명하게 변해 가는 것은 올바른가.




시_ 손미 - 1982년 대전에서 태어났다. 2009년 《문학사상》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양파 공동체』로 제3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낭송_ 성경선 - 배우. <한여름밤의 꿈>, <가내노동> 등에 출연.




배달하며


세상은 양파입니다. 나도 양파입니다. 내 친구도 양파입니다. 모두 여러 겹으로 되어 있습니다. 문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방이 나오고 다시 열고 들어가면 또 나옵니다. 오, 맙소사 맨 마지막 방에 들어가니 뒷문이 또 나옵니다그려.

‘얼싸안고 울고 싶’고, ‘익기를 기다리’며, ‘양파’의 ‘흰 방에 내리는 비’를 지켜보기도 하니 양파의 변신도 볼만 합니다. 그러나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내 집’이 또한 양파이니 매워서 그런 걸까요? 매운 슬픔 때문일까요?

나 같으면 맨 처음 한 겹으로는 사랑을 하고 그 다음 겹으로 음…… 다시 한번 사랑을 하고 그 다음 겹으로는 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또 사랑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뒷문을 열고 나가서 ‘첨벙첨벙’ ‘시냇물’을 건너서 도망을 가겠습니다. 나 같으면 그 모든 매운 방들을 사랑으로 채우겠습니다. 아무도 엿보지 못할 거예요. 너무 매운 방이라. ‘올바른지’ 아닌지도 모를 겁니다. 너무 매운 방이라.


문학집배원 장석남


출전_ 『양파 공동체』(민음사)

음악_ 정겨울

애니메이션_ 박지영

프로듀서_ 김태형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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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와 정말 재미있어요 말이 예쁘기도 하고요

    • 2014-03-04 00:27:1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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