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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에 핀 민들레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12-14
  • 조회수 865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난 정신 병동에 입원해 있다. 내 병명은 기침 틱으로 계속 연속 되는 기침이 나와서 명선대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이 곳은 커튼이 없어 다른 병동보다 아침이 빨리 찾아온다. 내 담당 간호사는 내게 "수연님에게도 아침이 곧 올거에요."라 말해준다. 그럼 난 힘이나서 병원에서 하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열심히 참여했다. 그 날도 평소처럼 열심히 활동하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간호사들은 계속 일을하고 내 옆에 미선씨, 다솜씨,,명선씨까지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눈 앞에 민들레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민들레는 땅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때마침 땅이 막 흔들리기 시작했다. 천장이 막 무너지려고 할 때 간호사 명신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다들 진정하세요. 우리 빨리 이 병동에서 나가요."라는 말을했다. 그러자 천장에도 민들레가 피어나고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제 죽는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억울했다. 아침을 보기 전에 이렇게 죽는다는 것이. 내 눈이 서서히 감기고 가위를 눌린 것처럼 몸도 무거웠다.


 눈을 떠보니 피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내 발은 잔해물에 깔려 움직이지 못했다. 죽음이 앞에 다가오니 나는 더 불안해져서인지 기침이 평소보다 10배 아니 100배는 더 나오는 것 같았다.  그 때 내 기침 소리 사이로 여러 사람들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나와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들과 간호사 명신씨였다. 하지만 내 시야에 보이는 것은 콘크리트 더미 뿐이었다. 그 콘크리트 더미 속 난 엣날에 다솜씨가 준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용기 내어 큰 소리로 "다솜씨 괜찮아요? 다른 분들도 괜찮아요?"라 물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환자들이 하나, 둘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 때 명신 씨의 울음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 울음은 살고 싶음에 부름일 것이다.  병동에는 울음 소리만 들려왔다. 그 때 다솜씨가 "간호사님 저는 지금 팔에 콘크리트가 깔렸어요. 혹시 간호사님은 괜찮으세요?"라 물었다. 역시 다솜씨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친절함을 유지라고 있으니 말이다. 간호사는 다솜의 물음에 "저는 아픈 엄마가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슬픈 가정사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간호사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본인을 아비 없는 자식으로 못난 소리 듣지 않게 열심히 돈을 많이 벌어 키우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랑하고 존경하는 엄마가 몇 달전 교통사고가 나서 명수대 병원에 입원해서 매일 밤 딸인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을 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안됬다 생각을 했다. 그 때 다솜씨가 말을 했다. 다솜씨 또한 지금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때는 그녀가 고등학생이었을 시절 다른 학생들로부터 일명 빵셔틀이라 불렸다고 했다. 돈을 뺏기는 것은 물론 패드립은 옵션 그리고 폭행과 망신은 서비스였다. 그렇게 매일 다니던 어느 날 그녀는 학교를 그만 뒀어야 했다. 그런데 2-3년전 학폭을 했던 일진년이 연기대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방송사에게 이 사실을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뭔 개소리 입니까. 우리 진 배우는 그런적 없습니다."라 주장하며 "정 돈이 필요하면 직접 오세요."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직접 소속사를 찾아가 진수전 배우를 만났다. 진달란 배우가 한 말은 충격적이었다. "너, 돈 필요하지? 돈 많이 가져가. 난 필요없어.근데 한 번 더 나에게 오면 넌 회사도 못다니게 할거야. 너를 내 화장실에서 죽일거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다솜씨는 발작 증새를 보이며 "야! 내가 그 정도 돈 때문에 온 줄 알아? 너 매마르게할거야!" 라는 말을 했는데 그러자 진달란 배우가 웃으며 그녀의 바지를 내렸다. 다솜씨는 이 날 이후 텔레비전과 유튜브등 방송을 보지 못했으며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막 물이 본인에게 차오르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즉 공황장애가 찾아와 결국 회사까지 그만두게 되면서 이 곳에 들어왔다 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명선씨가 "우리 아들 같아서 마음이 아프네 괜찮아?"라 말했다.  그녀 역시 그녀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녀의 딸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하지만 계속 되는 학교폭력에 결국 참지 못해 엄마인 명선씨에게 말을 했는데 그 순간 명선씨의 머리가 새 하얗게 물들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워킹맘이라 딸을 잘 돌보지 못한것에 대하여 후회가 섞여 있었다. 진정으로 내가 좋은 엄마였는지 물질적으로 좋은게 좋은 엄마는 아니라는 것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게 딸을 안고 계속 울고 지내던 어느 날 마트에서 가해자 부모를 만나고 친근하게 "명수 엄마 잘지내? 아 요즘은 대학 코디도 있다 들었는데 나도 좀 알려주라."라고 친근하게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때 이상함을 감지한 딸이 명선씨에게 "엄마 나 상담 좀 받을레." 라 말하여 상담을 받으러 정신과에 갔다고 한다. 거기서는 딸의 상담을 하고 있었는데 의사가 "영시는 잠깐 나가있어."라 말하고 명선씨와 대화를 했는데 의사가 "가성치매인 것 같아요."라 말했다. 가성치매란 가짜 치매로 젊은 층에서 잘 나타난다고 한다. 처음에는 명선씨도 부정하려고 했지만 점점 갈수록 치매는 더 심해져서 그녀의 집 위치 까지 잊은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심각성을 느끼고 이 정신병동에 입원했다고 한다.


 그 때 미선씨도 말을 꺼냈다. "그 쪽은 딸이 있군요. 부럽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본인의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해리성 기억상실과 우울증 때문에 이 곳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때는 작년 10월 할로윈을 맞아 로데오 거리에서 코스프레 대회가 열렸을 때였다. 미선씨의 아들 또한 이 코스프레 대회에 나갈려고 준비를 하고 집을 나갔다고 한다. 그 날 따라 미선씨가 꿈자리가 사나워 "아들 나가지 않으면 안되?"라 물었지만 아들의 답은 "안돼, 로나코 끝나고 처음 열리는거란 말이야." 라는 말을 남기고 문 밖을 나섰다고 한다. 근데 너무 찜찜한 상태로 집에서 계속 아들을 기다렸다. 아들이 들어오지 않으니 잠도 못이루어 테레비를 보고 있었는데 아들이 간 곳에서 압사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계속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휴대폰 화면에는 ~아들~자  뿐이었다. 미선씨는 좌절하고 또 좌절했다. 그 때 아들을 말렸다면 그 때 내가 아들을 잡았다면 이란 생각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김성태님 보호자인가요? 아들분께서 돌아가셨어요."라는 말을 했는데 그녀가 "우리 아들 집에 있는데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때 남편이 전화를 받았고 그녀는 울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다행히 그 때 남편이 바로 올라와 그녈 병원에 보내서 입원하고 있다 말을했다.그러자 주위에서 "네 이야기도 해."라며 말을 했다. 나는 웃으며 엣 기억을 회상했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아빠가 이혼해서 할머니,엄미와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엄마를 막 때리고 욕을하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물론 나도 할머니에게 엄청 맞았다. 진짜 하루라도 멍이 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할머니가 나를 이렇게 때리고 욕할 때 엄마는 내 등을 안고 귀를 먹게하여 나 대신 아픔을 다 맞았다. 엄마는 병풍같은 사람이었다.  나에게 들어오는 악한 기운을 모두 막아주는 그런 병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가 엄마를 때리다가 엄마가 죽어버렸다. 나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나를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칼로 나를 공격하려고 했다. 나는 재빨리 집을 떠났다. 다행히 그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이 할머니를 막아섰다. 할머니는 경찰서로 들어가고 엄마는 죽었고 이제 날 도와주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생각하여 불안했다. 장래식에서는 이 불안이 기침 틱 증상으로 나타났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던 순간 이혼한 아빠가 다가와 "아빠와 함께 살자."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댈 사람을 잃은 나로서 이 제안은 반갑지만 않았다. 결국 난 아빠의 말을 무시하고 장래식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 목숨을 저 바닥에 걸어놓기 위해 올라갔다. 그 때 아빠가 다가와 죽으려고 했던 날 막아섰다. 그로서 난 살 수 있었고 이 병실에 들어오게 되었다.


 서로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아픔을 잊고 마음에 민들레가 피어나는 것 같았다. 근데 왜이렇게 졸리지? 내 눈이 서서히 감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내가 그렇게 바라던 죽음이 날 반기는 것일까? 불안했지만 민들레 덕분에 안심되었다. 내 맘을 풀어놓고 나니까 괜찮아졌어. 병원의 콘크리트는 점점 무너지고 나를 뒤덮을 때 그 콘크리트 속 또 민들레 만 송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작지만 여린 빛이 나를 감싸 돌았다. "괜찮아요?"라는 말이 내 고막과 귓속뼈를 걸쳐 달팽이관으로 들어왔다. 나는 구조대원들을 보며 "저 건물에 산 사람들 많이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 근데 구조대원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저기에는 시체들과 여러 송이의 민들레만 있었어요."라고 나에게 구조대원이 말했다. 나는 이유 모를 눈물을 흘렸다. 그래 내가 지금까지 이야기해온 사람은 저 민들레니까. 내 맘에 민들레와 내 상처 속 민들레와. 부디 좋은 민들레가 되길 바랄게 나의 병동 친구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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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 202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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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희찬

    미선의 이야기는 이태원 참사를 다루었습니다. 문학에서 이런 사건을 꾸준히 다루어야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이렇게 썼습니다.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2023-12-14 19:48:45
    송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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