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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지옥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3-07-19
  • 조회수 1,634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2023년 3월 18일

 나는 16살 김주석이다.

나는 서울에 있는 명월중학교로 전학을 왔다.

내가 명월중으로 전학 온 이유는 내가 다니고 싶었던 특목고와 가까웠기 때문이다.

명월중은 일진들이 많은 학교라고 수소문 끝에 들었었다.  

하지만 오늘 진짜 보니 더 양아치들이 많은 것 같았다.

"안녕 나는 명성중에서 전학 김주석이라고 해! 성적은 지난 학년 올A야! 궁금 한 것 있으면 물어봐도 돼!"

"어머! 명성중이면 시험 어렵다고 소문난 중학교네!"

"정말! 정말!"

"오지랍 떨고 있네! 지랄하지말고 짜져 있어 이 찐따 기생수 자식들아!"

"선생님 저 아이 안말리세요? 수업시간에 할 언행은 아닌듯 한데요?"

"너는 저런일로도 이르냐? 미친 새끼"

"너! 이름 뭐야! 사람 한태 새끼가 뭐니?"

"주석아! 좋은 말 할 때 그만해!"

솔직히 말하면 이 학교에 큰 문제는 교사들인 것 같았다.

아이가 학폭을 해도 말리지 않는 학교라 내가 이 학교에서 잘 버틸 수 있을까?


 2023년 3월20일

 오늘 따라 책가방이 무거웠다.

나는 어제 민정이라는 아이와 순철이라는 아이가  일진무리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학폭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순철이와 민정이를 도와주었다.

"괜찮아?"

"얼른 도망쳐 전학생! 저 새끼들에게 낙인 찌키면 죽어!"

"야! 전학생 좋은 말 할 때 비켜라!"

"싫다면? 너는 뭐 아이들 때리는 권리라도 있어?"

"시발! 너 이 새끼 대가리만 좋으니 뭐 할 말이 없네! 너 내일 봐!"

"같이가 민재야! "

"빨리와! 국주,민호,민서,서영"

"너희들 이름은 뭐야? 그리고 왜 맞고 있어?"

"나는 민정 제는 순철이라고 해! 우리 같은 병신 새끼들은 맞아도 싸"

"맞을 자격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어!"

"이무튼 우리 도와줘서 고마워! 전학생"

이런 일이 있어서 그런지 내 책가방이 오늘은 무거웠다.

오늘 학교에 가보니 누가 내 책상에 죽은 나비 시체를 두었다.

"누구야! 누가 내 책상에 곤충 시체 올렸어!'

"나야!  정민재"

"민재야 왜 이딴 어린짓을 하는 거니?"

"어리다고! 야 이 미친놈아! 어제 그 기생수 새끼와 찐따 새끼 도와 주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는데 죽을래?"

그러고 민재는 나에게 주먹질을 했다.

"야! 쌤 한태 다 말씀 드려야겠다!"

"그래라! 이 미친놈아"

나는 교무실에 갔다.

"쌤  정민재라는 아이의 패거리가 순철과 민정을 어제 때렸고 오늘은 저를 때리고 나비 시체도 저의 책상에 올려 났습니다"

"그게 뭐! 너가 전학을 와서 뭐르겠지만 민재 패거리는 세계적인 기업들의 아들,딸이야! 너 따위가 건들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니야!"

"이런 정신나간 학교가 있내요!"

"그래! 우리는 정신나간 학교야!  전학 갈 것이면 가고 있으려면 있어!"

"차라리 이런 교사 및에 있는 것 보다 전학을 가는게 좋겠네요!"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 나는 책가방이 무거워 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할려고 했지만 엄마 학교 또한 학폭이 터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4월 20일

오늘은 내 생일이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오늘은 또 얼마나 맞을까?

1달이 지나도 끊나지 않는 폭행.

부모님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도  부모님은 요즘 바쁘셔서 말을 못했다.

지금까지 모아온 자료들을 바탕으로 내일 부모님께 말씀을 드릴려고 했다.

"아들 무슨 일 있어? 가방이 무거워 보이네"

"아니야! 무슨 일 없어!"

나는 화난 목소리로 엄마의 질문에 답했다.

그리고 학교 안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아이들이 도가 심하게 넘었다.

국주가 나를 남자 화장실로 불러내고 민재와 함께 쌍방으로 폭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민호는 뜨거운 물을 나에게 뿌렸다.

민서와 서영이는 내 몸 구석 구석 찍었다.

나는 분함 뿐 아니라 이들 때문에 성적 수취심도 생겼다.

그리고 이들 보다 더 화난 것은 방관한 순철이 때문이다.

순철 뿐 아니라 다른 우리반 아이들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나에게 문자 한 통이 왔다.

바로 오늘의 동영상 이었다.

나는  이 영상을 부모님께 보내고 지금의 선택을 한다.

엄마 사랑해요!


4월20일{부모 시점}

나는 주석이의 엄마 한지해다.

요 두달 간 우리학교에는 학폭 신고 연락이 끊임없이 많아 정신이 없었다.

오늘은 주석이 생일이라 주석이에게 말도 걸어 보았지만 주석이는 툴툴 거리며 무거운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갔다

그리고 오후 나는 충격적인 문자와 함께 전화가 왔다.

우리 아들 주석이가 자살을 한 것이다.

나는 주석이가 보낸 자료를 가지고 홍광백  주석의 담임에게로 찾아갔다.

"선생이라는 사람이 이것도 모르거에요!"

"미래가 창창한 아이들에게 벌을 주는 것은 아니죠! 그나마 집안이 평범한 당신 아이 벌 주는게 낫지!"

"뭐라고요!"

선생이 이렇게 나온 이유는 가해 학생 집안이 부잣집이였기 때문이다.

나와 남편은 이 이유를 알고난 뒤로 부터 복수를 다짐했다.


14년후 4월 20일

이제 복수의 칼날을 뽑을 때가 되었다.

타격을 받을 사람은 프리마돈나로 유명해진 국주와 여배우인 민서 그리고 아나운서 서영 .EF전자 회장 민재 그리고  청솔 아트센터장 민호까지 이다.

나는 개인 유튜브 방송을 켜서 이들의 학폭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사람들과 언론은 내편으로 기울어 졌다.

이들은 이제 나날히 지옥을 경험 하겠지! 우리 아들이 경험한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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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끼

"천사는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하고 있어서 좋아" 9살짜리 내 동생이 입에서 꺼내는 말이다. 긍정이라 참 좋은 말이다. 근데 나는 요즘 왜 긍정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나의 천사는 어딘가에 가출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나는 동생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요즘의 나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 그립다.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머리속에서 말하고 있을까. 독립할 준비가 바쁘고 한창인데 말이다. 계속 물건을 싸고 버릴 물건을 버리고 있는데 이런 잡생각이 드니 아직 나는 사춘기의 감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사춘기 감성과 함께 짐을 싸고 있는데 9살 동생이 내게 달려와서 물었다."이 원숭이 인형은 뭐야?"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네가 가져"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신나서 원숭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주 크고 아주 헌 그런 원숭이 인형을. 계속 짐을 치우고 치었다. 10년동안 산 집에는 그 세월만큼의 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가지고 논 장난감, 기억에 잊혀진 숨겨둔 구몬 학습지 그리고 내 흑역사 저장고인 사춘기 일기장 기타등등이 이 집에 있는 화석처럼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하나,둘 버리고 구몬은 찢고 찢어 숨겨서 버렸는데 일기장은 한번 궁금하여 열어봤다. 그 일기장은 열면 않되는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였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와 선생님한테 혼난 이야기, 삼촌 결혼식 간 일, 할머니가 우릴 공격했던 일 그래서 내가 매일 밤 시달린 악몽 그리고 내 옆에서 항상 날 따뜻하게 안아준 원숭이 인형 끼끼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순간 아까 희철이가 가지고 간 인형이 떠올랐다. 그리고 난 잠시 마음 속 한 구절들이 울림을 줬다. 할머니는 엄마와 나를 괴롭혔다. "딸 낳은 년은 죄인이다." 옛날에 유행했던 가치관에서 할머니는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이런 할머니에게 매번 하녀처럼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드는 효자손 앞에 나는 그저 작아지고 약해질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할머니란 존재 때문에 안에 천사는 자라지 못했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내 안 구석에 있었고 나에게는 불안과 슬픔이 가득 차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어서 우는 버릇이 생겼다. 방에 들어가 인형을 가지고 울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훔친적이 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아닌 끼끼였다. 끼끼는 커다란 팔을 가지고 있고 이로써 나를 크게 안아줄 수 있었다. 끼끼의 팔로 눈물을 닦고 마음에 부스러기를 치우면 내 감정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다. 끼끼 덕분에 나는 불안했던 초등학교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 장례식에 들어갔는데 울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역으로 슬픔이란 감정보다 기쁨이란 감정이 맨 앞으로 나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천사는 좋고 순한 존재지만 타락의 긍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깨달았다. 그

  • 송희찬
  • 2024-06-29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괴물

엄마가 오늘도 코를 훌쩍인다. 요즘들어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케이스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코를 훌쩍거리는 것을 멈추고 나를 봤다. "엄마 비염 다시 생겼나보다."엄마에게 말하니 엄마는 "그런가봐"라 말하고 나를 피해 부엌으로 갔다. 나는 무심하게 할머니한테 공격을 당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은 붉어지고 나를 외면한 것도 아마 내 몸에 할머니,할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일종의 괴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 속이 찝찝하고 답답하다.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는 여느 가족의 할머니,할아버지처럼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나를 아껴주고 엄마와 아빠를 사랑한 좋은 부모, 좋은 시부모, 좋은 조부모였다. 나는 이런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호감이 계속 가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에게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자 꼬셨다. 그 당시 엄마도 동생을 임신했을 때였고 아빠 사업도 확장이 되고 있는 시기여서 우리 가족은 빠르게 이사 준비하고 빠르게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서는 매일이 꽃날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길은 나와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를 괴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근사한 노인이었다. 행복한 가정,돈 많은 남편과 돈 많은 아들을 둔 완벽한 여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모습은 사라진 사람이었다. 할머닌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다. 할아버지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본인 손에서 놀아나야 속이 편한 사람이다. 나는 이사 1주일이 지나고 할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내게 "이거 입어."라고 옷을 주셨다.그러나 이 옷은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의 옷이어서 할머니에게 약간의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나 할머닌 "싫음 입지마."라 하시며 옷을 쓰래기통에 버렸다. 나는 당황하여 "할머니!"소리쳤지만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옷을 버렸다. 이를 본 엄마가 할머니에게 "반품해 올까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면서 "아직도 거지근성 못 버려가지고 그러니 집안이 그 꼴이지"라며 말을 했다.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 할머니에게 나는 갑자기 화가나서 소리쳤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신거에요. 엄마에게 사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이를 들은 엄마는 "그만하고 참아. 할머니에게 무슨 말 버릇이야."라고 날 말렸지만 할머닌 나에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라며 큰 소리를 쳤다. 할머니는 그리고 손에 방망이를 드시고 내 다리를 때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분해서 소리치며 울었다. 그러자 할아버지와 아빠가 다가왔다. 아빠는 이런 할머니를 보고 "그만해요."라 말하고 문을 크게 닫고 집을 나갔다. 할아버지는 이 상화이 재미라도 있는지 막 웃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박수무당이 굿하는 것 같았다. 신이 들어온 것일까? 악귀에 빙의된 것일까? 할아버지는 마냥

  • 송희찬
  • 2024-06-28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감정을 넣는 기계 간호사

오늘도 우리 병원에는 손님이 많다.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차갑고 힘들다는데 아마 코로나 19가 사람들 마음에 자리를 잡은듯 했다. 요즘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면 단순 우울증도 있지만 딜루전과 가성치메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다. "다들 정신이 약해서야."나는 정신과에서 일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들에게 자리 잡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연두쌤이 엑팅아웃이 온 환자를 말리고 휴개실에 잠시 들어왔다.. "수쌤 요즘 환자들을 보면 너무 마음 아파 미치겠어요."라고 말을 한다. "잡소리는 일 끝나고 하자 연두쌤아" 나는 잡소리 하는 연두쌤을 뒤로 하고 섹션에 들어가 사무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연두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환자를 감정으로 보면 안되는데:::그렇다고 감정 없이 다루는 것도 않되고 참:::"라며 말을했다. 이를 들었는지 보호사님이 내게 다가와 커피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그의 선의를 거절했다. 일이 끝나고 퇴근 할라고 옷을 갈아 입고 준비할 때 연두쌤이 휴개실에 들어왔다. 나는 아침에 있었던 연두쌤 의 말이 신경쓰여서 그녀에게 작게 말을 했다. "연두쌤아 환자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마 , 너만 피곤해져. 나이팅게일도 따뜻한 마음이 있어 위인이 됬지만 그녀의 좋은 판단력이 동력이 되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거야." 연두쌤은 이런 내가 당황스러운지 땀을 삐죽 흘리며 연두 쌤은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라고 말을 하며 나를 빨리 보내기 바빴다. 역시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듣기는 어린 것 같다.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내가 말한 말을 알게 되겠지. 집에 들어오면 아들놈이 우리 집에 와 공부하고 있다. "민찬아, 엄마 왔어, 밥 먹자." 그러자 민찬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약간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보고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들이 감정 기복이 심해서 저렇게 우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무시했다. "수민찬 너가 좋아하는 피자 사 왔어." 라고 말을했다. 그러나 아들의 흐느낌은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런 민찬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3이나 먹어놓고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니 참 이기주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피자 2조각을 접시에 담아서 2층 방 문 앞에 살며시 뒀다. 고르곤졸라를 먹으니 치즈가 늘어남에 따라 내 빈 자리가 늘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젤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혼잣말을 내뱉고 나는 방에 잠을 자러 갔다. 오늘도 환자와 보호자는 계속 밀려왔다. 내가 전담으로 맞고 있는 민지 씨는 딜루전을 가지고 있는 환자시다. 민지 씨는 나를 본인의 아들을 괴롭힌 천하의 못되고 싸이코 같은 년이라 생각하는 눈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보면 계속 손을 빌고 "우리 아들에게 제발 사과 해 주면 않되요? 아이가 집에서 나오지 않아요." 나는 그 말들을 듣고 흘렸다. 흘리지 않으면 내 정신력이 넘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뭐 내가 엄마였어도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인데 라는 생각이 계속든다. 아이가

  • 송희찬
  • 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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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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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02 22:33:16
    김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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