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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프지 않은 죽음

  • 작성자 송희찬
  • 작성일 2024-02-22
  • 조회수 428
이 게시글은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폭력, 자살, 자해 등)

 창 밖에 여자가 죽어있다. 그 여자는 우리 윗집 여자로 여기 오고나서 한,두번 인사하고 만난 사이다.그래서 우린 그렇게 친하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주민들은 걱정이 먼저였다. 여자에 대한 걱정? 아니 우리 집 집값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여자를 욕했다. 그 이유는 우리 집 앞에가 아이들이 놀고 웃는 놀이터에서 햇빛이 하늘에서 가장 높게 뜨는 시간에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와 와이프도 그녀를 욕했다. "죽더라도 저 산 기슭에 올라가 죽어야지. 왜 우리 아파트에서 죽고 난리야." "맞아 여보. 집값 떨어지면 어떻게 해. 그리고 여자 때문에 철수네 막둥이 놀랐을 것 같은데." 


그 때 첫째 아들놈인 명철이가 집에 들어왔다. 명철이의 표정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 있었다. 그리고 손을 부들 부들 떨고 있었다.  "이놈아 무슨 일 있어?"  내가 묻자 명철은 부들 부들한 목소리로 " 오늘 윗집 여자 죽었어?"나는 아들이 윗집 여자에 대하여 묻자 크게 화를냈다.  "네가 어찌 이 일을 알아. 네가 학교에 있을 오후 2시에 일어난 일인데!" 그러자 아들은 눈물을 훔치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들의 뒷모습은 어찌보면 어리석어 보이면서 한심해 보였다. '어찌 학교를 땡땡이를 치는지 참."


아파트 단지는 긴급 회의에 들어갔다. 그 이유는 경찰에서 죽은 여자가 타살일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파트 입주민들이 모두 모여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래야 타살로 더 집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 말이다. 철수 엄마는 행동 대장이었다. "아바이들은 그 때 회사에었고 향숙 언니를 포함한 가정 주부들은 우리 집에 모여서  바자회 한거고 어무이들과 할아방들은 경비에게 말할테니 노인정 간겨 알았제?" 우리 와이프 향숙을 포함한 입주민들은 회의 끝에 이를 정하여 말을 맞추기로 했다. 거기다 죽은 여자를 은둔형 외톨이 즉 히키코모리로 만들었다..


명철이는 오늘도 해탈한 표정으로 집에 왔다. 곧 고3이라 많이 힘들어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가끔 보면 그 표정은 기쁨의 해탈이 아닌 슬픔의 표정이었다.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아들이 걱정되어 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있어야할 아들이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야! 김명철 공부 안해?" 그러나 돌아온 것은 무음의 응답이었다. 나는 문을 쾅 닫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그까지 죽음 본 것 가지고 유난을 떨고 자빠졌네."


그 날로부터 시간이 지나니 경찰도 자살로 종결을 내렸다. 그 날 이후 사람들  모두 평소처럼 웃고 즐거웠다.단 한사람 우리 아들놈 빼고 말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둘째놈 명식이와 막둥이 명설이와 내 마누라 향숙까지 모여 여행을 가자고 회의했다. 그러나 첫째 놈의 중간고사 기간과 둘째 아들놈의 체험학습 막둥이의 건강검진이 이를 붙잡았다. 그래서 이 회의는 소득 없이 끝났다. 그냥 이 때 여행을 가서 첫째 놈의 마음을 알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탠데.


회의가 끝난 뒤 일주일. 첫째의 중간이  끝난날이었다. 그 날은 우리 아파트 단지가 시끄러웠다. "그 여편네가 아이 대리고 간거야."  "향숙 언니네 아들 아니야?" 나는 철수 엄마의 목소리와 향숙 씨의 울음소리를 듣고 바로 그 쪽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는 명철의 머리가 콘처럼 뭉게진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들,:::::::아들." 나는 작지만 강한 목소리로 아들의 석자를 내뱉었다. 아들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이었다. 그 것도 녹고 부셔진. 아들의 몸은 차갑고 고독했다. 나는 그런 아들의 몸을 안았다. 경찰들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나의 슬픔을 표현했다. 그런데 그 때 들려오는 철수 엄마의 목소리 "또 집값이 떨어지겠네." 나는 그 말에 화가나 아들을 내려놓고 철수 엄마에게 달려갔다. "야! 이 썅*아 뭐라했어!" 그러자 경찰들이 내 몸을 막았고 나는 기절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안이었다.  아들의 장례도 모두 끝난 뒤였다. 둘째,막둥이 모두 나와 향숙 씨를 기대고 왔다. 그리고 우리 손에 아들의 마지막 말의 종이를 갔다줬다. 아들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변한 이유도 모두 그 종이에 써 있었다. 종이의 내용은 날 한번 더 기절시켰다. 그리고 철수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나와 향숙 씨는 분노를 가지며 그들의 회의터로 갔다.


유서의 내용은 아들이 철수로부터 학폭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들이 학폭을 당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당했다. 또한 윗층 여자를 죽인자가 철수였다.철수는 자신 좀 도와달라던 윗층 여자를 죽였다.. 그에따라시신을 아파트 계단에서 던진 것은 아들이었다.  그 것도 폭력에의한 어쩔 수 없는 유기였다. 


철수 엄마가 우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서와. 다름이 아니라 언니네 아들 우리 아파트에서 죽었잖아.  이에대하여 이야기 하자." 나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철수 엄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멱살을 잡으며 큰 소리를 지르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 그러면서 내 필름은 결국 지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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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끼

"천사는 언제나 긍정의 에너지를 하고 있어서 좋아" 9살짜리 내 동생이 입에서 꺼내는 말이다. 긍정이라 참 좋은 말이다. 근데 나는 요즘 왜 긍정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나의 천사는 어딘가에 가출해서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인가? 나는 동생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 요즘의 나는 볼 수 없는 순수함이 그립다.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머리속에서 말하고 있을까. 독립할 준비가 바쁘고 한창인데 말이다. 계속 물건을 싸고 버릴 물건을 버리고 있는데 이런 잡생각이 드니 아직 나는 사춘기의 감성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사춘기 감성과 함께 짐을 싸고 있는데 9살 동생이 내게 달려와서 물었다."이 원숭이 인형은 뭐야?"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네가 가져"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신나서 원숭이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아주 크고 아주 헌 그런 원숭이 인형을. 계속 짐을 치우고 치었다. 10년동안 산 집에는 그 세월만큼의 많은 흔적들이 있었다. 오래전에 가지고 논 장난감, 기억에 잊혀진 숨겨둔 구몬 학습지 그리고 내 흑역사 저장고인 사춘기 일기장 기타등등이 이 집에 있는 화석처럼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하나,둘 버리고 구몬은 찢고 찢어 숨겨서 버렸는데 일기장은 한번 궁금하여 열어봤다. 그 일기장은 열면 않되는 하나의 판도라의 상자였다. 판도라의 상자 안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었다. 엄마와 선생님한테 혼난 이야기, 삼촌 결혼식 간 일, 할머니가 우릴 공격했던 일 그래서 내가 매일 밤 시달린 악몽 그리고 내 옆에서 항상 날 따뜻하게 안아준 원숭이 인형 끼끼가 그 안에 있었다. 나는 순간 아까 희철이가 가지고 간 인형이 떠올랐다. 그리고 난 잠시 마음 속 한 구절들이 울림을 줬다. 할머니는 엄마와 나를 괴롭혔다. "딸 낳은 년은 죄인이다." 옛날에 유행했던 가치관에서 할머니는 벗어나지 않고 있다. 엄마는 이런 할머니에게 매번 하녀처럼 살고 있는데 나는 이런 엄마를 볼 때마다 화가난다. 그러나 할머니가 드는 효자손 앞에 나는 그저 작아지고 약해질 뿐이었다. 내 인생에서 할머니란 존재 때문에 안에 천사는 자라지 못했다. 기쁨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내 안 구석에 있었고 나에게는 불안과 슬픔이 가득 차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숨어서 우는 버릇이 생겼다. 방에 들어가 인형을 가지고 울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눈물을 훔친적이 있다. 그런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엄마도 아빠도 친구도 아닌 끼끼였다. 끼끼는 커다란 팔을 가지고 있고 이로써 나를 크게 안아줄 수 있었다. 끼끼의 팔로 눈물을 닦고 마음에 부스러기를 치우면 내 감정은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다. 끼끼 덕분에 나는 불안했던 초등학교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 장례식에 들어갔는데 울고 있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역으로 슬픔이란 감정보다 기쁨이란 감정이 맨 앞으로 나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천사는 좋고 순한 존재지만 타락의 긍정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마음 속으로 깨달았다. 그

  • 송희찬
  • 2024-06-29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괴물

엄마가 오늘도 코를 훌쩍인다. 요즘들어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할 때가 있다. 오늘도 그런 케이스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여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는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코를 훌쩍거리는 것을 멈추고 나를 봤다. "엄마 비염 다시 생겼나보다."엄마에게 말하니 엄마는 "그런가봐"라 말하고 나를 피해 부엌으로 갔다. 나는 무심하게 할머니한테 공격을 당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눈은 붉어지고 나를 외면한 것도 아마 내 몸에 할머니,할아버지의 피가 흐르는 일종의 괴물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 속이 찝찝하고 답답하다. 우리 할머니,할아버지는 여느 가족의 할머니,할아버지처럼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나를 아껴주고 엄마와 아빠를 사랑한 좋은 부모, 좋은 시부모, 좋은 조부모였다. 나는 이런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호감이 계속 가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에게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자 꼬셨다. 그 당시 엄마도 동생을 임신했을 때였고 아빠 사업도 확장이 되고 있는 시기여서 우리 가족은 빠르게 이사 준비하고 빠르게 이사를 갔다. 이사를 가서는 매일이 꽃날 같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길은 나와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를 괴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사람이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근사한 노인이었다. 행복한 가정,돈 많은 남편과 돈 많은 아들을 둔 완벽한 여인으로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런 모습은 사라진 사람이었다. 할머닌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다. 할아버지도 아빠도 엄마도 모두 본인 손에서 놀아나야 속이 편한 사람이다. 나는 이사 1주일이 지나고 할머니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할머니가 내게 "이거 입어."라고 옷을 주셨다.그러나 이 옷은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의 옷이어서 할머니에게 약간의 어리광을 부렸다. 그러나 할머닌 "싫음 입지마."라 하시며 옷을 쓰래기통에 버렸다. 나는 당황하여 "할머니!"소리쳤지만 할머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옷을 버렸다. 이를 본 엄마가 할머니에게 "반품해 올까요?"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면서 "아직도 거지근성 못 버려가지고 그러니 집안이 그 꼴이지"라며 말을 했다.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 할머니에게 나는 갑자기 화가나서 소리쳤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신거에요. 엄마에게 사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이를 들은 엄마는 "그만하고 참아. 할머니에게 무슨 말 버릇이야."라고 날 말렸지만 할머닌 나에게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라며 큰 소리를 쳤다. 할머니는 그리고 손에 방망이를 드시고 내 다리를 때렸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분해서 소리치며 울었다. 그러자 할아버지와 아빠가 다가왔다. 아빠는 이런 할머니를 보고 "그만해요."라 말하고 문을 크게 닫고 집을 나갔다. 할아버지는 이 상화이 재미라도 있는지 막 웃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박수무당이 굿하는 것 같았다. 신이 들어온 것일까? 악귀에 빙의된 것일까? 할아버지는 마냥

  • 송희찬
  • 2024-06-28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는 콘텐츠 입니다. 감정을 넣는 기계 간호사

오늘도 우리 병원에는 손님이 많다. 요즘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차갑고 힘들다는데 아마 코로나 19가 사람들 마음에 자리를 잡은듯 했다. 요즘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면 단순 우울증도 있지만 딜루전과 가성치메의 비율도 크게 증가했다. "다들 정신이 약해서야."나는 정신과에서 일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그들에게 자리 잡지 못했다. 같이 일하는 연두쌤이 엑팅아웃이 온 환자를 말리고 휴개실에 잠시 들어왔다.. "수쌤 요즘 환자들을 보면 너무 마음 아파 미치겠어요."라고 말을 한다. "잡소리는 일 끝나고 하자 연두쌤아" 나는 잡소리 하는 연두쌤을 뒤로 하고 섹션에 들어가 사무 업무를 처리했다. 그러나 마음 한 편에 연두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저 한숨을 쉬며 혼잣말로 "환자를 감정으로 보면 안되는데:::그렇다고 감정 없이 다루는 것도 않되고 참:::"라며 말을했다. 이를 들었는지 보호사님이 내게 다가와 커피를 권했다. 그러나 나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그의 선의를 거절했다. 일이 끝나고 퇴근 할라고 옷을 갈아 입고 준비할 때 연두쌤이 휴개실에 들어왔다. 나는 아침에 있었던 연두쌤 의 말이 신경쓰여서 그녀에게 작게 말을 했다. "연두쌤아 환자 너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마 , 너만 피곤해져. 나이팅게일도 따뜻한 마음이 있어 위인이 됬지만 그녀의 좋은 판단력이 동력이 되어 사람을 살릴 수 있었던거야." 연두쌤은 이런 내가 당황스러운지 땀을 삐죽 흘리며 연두 쌤은 "네, 알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라고 말을 하며 나를 빨리 보내기 바빴다. 역시 선배의 말을 귀담아 듣기는 어린 것 같다.하지만 연차가 쌓이면 내가 말한 말을 알게 되겠지. 집에 들어오면 아들놈이 우리 집에 와 공부하고 있다. "민찬아, 엄마 왔어, 밥 먹자." 그러자 민찬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약간의 흐느낌이 느껴졌다. 나는 이를 보고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아들이 감정 기복이 심해서 저렇게 우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무시했다. "수민찬 너가 좋아하는 피자 사 왔어." 라고 말을했다. 그러나 아들의 흐느낌은 멈춰지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런 민찬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중3이나 먹어놓고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니 참 이기주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피자 2조각을 접시에 담아서 2층 방 문 앞에 살며시 뒀다. 고르곤졸라를 먹으니 치즈가 늘어남에 따라 내 빈 자리가 늘어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젤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는데."혼잣말을 내뱉고 나는 방에 잠을 자러 갔다. 오늘도 환자와 보호자는 계속 밀려왔다. 내가 전담으로 맞고 있는 민지 씨는 딜루전을 가지고 있는 환자시다. 민지 씨는 나를 본인의 아들을 괴롭힌 천하의 못되고 싸이코 같은 년이라 생각하는 눈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나를 보면 계속 손을 빌고 "우리 아들에게 제발 사과 해 주면 않되요? 아이가 집에서 나오지 않아요." 나는 그 말들을 듣고 흘렸다. 흘리지 않으면 내 정신력이 넘어갈 것 같기 때문이다. 뭐 내가 엄마였어도 저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인데 라는 생각이 계속든다. 아이가

  • 송희찬
  • 2024-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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