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홀로그램 메리월 1호

  • 작성일 2023-09-29
  • 조회수 530

홀로그램 메리월 1호

이미주


   메리월이 사라진지 5년째다. ‘애니멀Z 실종신고 센터’ 직원이 홀로그램 메신저를 보냈다. 공중에 뜬 메신저가 먼지처럼 부유했다.


      - 정부지침에 따라 2053년 12월 25일 오늘부로 메리월의 공식적인 실종 수색을 강제 종료합니다. 후속 서비스를 원하시면 YES 버튼을, 원하지 않으시면 NO 버튼을 클릭하십시오.


   소야는 메신저를 올려다보다 쓴 눈물을 삼켰다.

   ‘메리월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잖아.’

   소야의 마음과 달리 정부에서는 골든리트리버의 수명과 국가적 낭비를 고려하여 실종된 지 5년이 된 골든리트리버 중 빅데이터를 돌려 사망률이 90프로 이상에 해당하는 경우 실종견을 수색하는 공식적인 업무를 강제 종료 시킨다. 대신 강제 종료 직후 3일간, 원하는 사람에 한하여 실종된 강아지의 자료들을 토대로 ‘홀로그램 도그’를 만들어주는 후속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때, 아빠가 동생 미루 손을 잡고 다가왔다. 미루가 아빠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빠, 후속 서비스 받을 거지?”

   “무료라는데 신청하지 뭐.”

   아빠가 공중에 뜬 YES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안 돼!”

   소야가 소리를 꽥 질렀다.

   “아이구, 깜짝이야. 너 왜 그래?”

   “후속 서비스인지 뭔지 그거 신청하지 마.”

   “왜?”

   “그건 가짜 메리월이잖아. 그 가짜가 오면서 우리 진짜 메리월을 찾는 수색도 끝이 나는 거고.”

   한동안 묵직한 침묵이 거실 바닥에 내려앉았다.

   “소야. 국가에서 최첨단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망률이 90프로 넘는다는 걸 증명했어. 살아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되.”

   “살아 있을 확률이 10프로나 되잖아.”

   “모든 최신 장비를 동원해 5년이나 찾았어. 그래도 못 찾았으니….”

   “그래서 뭐 찾는 걸 포기하겠다는 거야?”

   “평생 찾을 순 없잖아.”

   “그래, 알았어. 만약에 아빠가 나중에 사라져도 딱 5년만 찾을게. 그럼 되지?”

   “뭐? 참나, 녀석.”

   “왜? 그건 또 싫나 보네.”

   “어찌 됐든 일단 후속 서비스는 신청할게.”

   “싫어. 난 가짜 메리월 싫다고!”

   소야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집 밖을 뛰쳐나왔다. 

   “헉헉.”

   등허리를 굽히며 숨을 고르는데 주위의 차가운 고층 건물 전광판에서 홀로그램 광고들이 흘러나왔다.


      - 실종된 애완 동물이 보고싶은가요? 애니멀 Z 실종신고 센터로 연락주세요. 실종된 애완 동물이 눈앞에 달려올 것입니다. 아래 번호로 연락주세요. 연락처 : 0788 - 1655 - 1333-###

 

   “쳇. 광고에 안 속아!”

   소야는 공식적인 실종 수색을 믿지 못했다. 수색의 방식이 수박 겉핥기식의 보여주기식 수색이라는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식적인 실종 수색 기간에는 개인적인 수색이 금지되었다. 정부에서 재정한 ‘무분별한 경제 손실 방지 방침’ 때문이다. 

   소야는 집 반대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오래 방치된 낡은 놀이터가 나왔다. 이곳은 메리월과 소야만의 비밀 아지트였다. 

   보통 아이들은 VR 고글을 쓰고 가상 놀이터나 가상 놀이공원에 입장해 놀았지만 소야는 좀 달랐다. 가상보다는 실상을 훨씬 좋아한 할머니 손에 자랐기 때문이다. 할머니처럼 소야도 화려하고 인위적인 강한 향을 내뿜는 가상 꽃나무보다 초라하고 자연의 향기를 풍기는 풀꽃 한 송이를 더 좋아했다.

   “메리월.”

   소야는 작게 메리월을 불러봤다. 마치 메리월이 놀이터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금방이라도 뛰쳐나와 품에 안길 것만 같았다. 

   “메리월! 메리월! 어디 있는 거야!”

   털썩 소야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흙먼지가 뿌옇게 솟구쳐 올랐다.

   메리월은 소야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유일한 친구였다. 소야는 어렸을 때, 코를 훌쩍거리는 틱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소야가 코를 홀짝이면 아이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라고 놀리며 모두 도망가 버렸다. 

   외롭게 지내는 소야가 안타까웠던 아빠는 처음에 로봇 강아지를 사줬다. 하지만 소야는 로봇 강아지를 보고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소야가 일곱 살이 되던 무렵 어느 날, 아빠와 손을 잡고 할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 길을 가고 있었다. 

   “아빠, 저 강아지 귀엽다! 나 저 강아지랑 같이 놀래!”

   소야가 처음으로 누군가와 놀고 싶다고 말했다. 아빠는 소야에게 그 강아지를 사줬고 그 강아지가 바로 메리월이다. 

   “소야, 강아지 실종 방지 칩을 메리월에게 넣을 거야.”

   “싫어. 그거 주사기 같은 거 찔러야 하잖아. 내가 메리월 절대 안 잃어버릴테니까. 아픈 거 우리 메리월한테 시키지 마.”

   그렇게 강아지 실종 방지 칩을 삽입하지 않은 채 메리월과 함께 1년간 잠도 자고 밥도 먹었던 소야.

   1년 후, 함박눈이 쏟아지던 겨울, 메리월이 사라졌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메리월, 내가 그때 실종 방지 칩을 넣는 걸 반대하지 않았다면 널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소야가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꾹꾹 찍어냈다.

   “빨리 와서 언니한테 안겨. 나 많이 큰 거 보라고.”

   열세 살이 된 소야가 텅 빈 놀이터에 주저앉아 아기처럼 펑펑 울었다.

   그날 이후, 소야는 매일 이곳 놀이터로 놀러와 메리월을 생각하며 울었다.

   “언니! 이것 봐. 이것 보라고!”

   미루의 목소리에 소야가 눈물을 뚝 그쳤다.

   “뭐야?”

   소야가 까칠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뛰어오는 미루를 제치고 메리월이 뛰어왔다.

   “메, 메리월!”

   털썩 소야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벌렸다. 메리월이 품에 안겼다. 지지직 화면이 깨졌다.

   “이, 이게 뭐야?”

   “언니, 이거 그거야. 홀로그램 메리월 1호.”

   “뭐?”

   소야는 뒤로 물러섰다. 홀로그램 메리월 1호가 예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너, 넌 진짜 메리월이 아니야! 넌 진짜인 척하는 가짜라고!”

   “언니, 너무 그러지 마. 난 메리월 다시 봐서 좋단 말이야.”

   “어차피 삼 일 되면 사라지는 프로그램일 뿐인데 뭐가 좋냐?”

   소야가 몸을 돌리자 메리월이 낑낑댔다. 

   ‘저 소리는 메리월이 안아달라는 소린데.’

   눈물이 찔끔 났지만 놀이터를 나와 도망치듯 도로로 나왔다.

   “낑낑.”

   “따라오지 마! 따라오지 말라고!”

   소야가 목이 멘 소리로 외쳤다. 메리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앞발을 공중에 휘적거렸다.

   “쳇.”

   소야는 낑낑대는 홀로그램 메리월 1호를 두고 계속 걸었다. 날이 어둑해질 쯤 주위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메리월을 생각했다. 그때 멀리서 미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언니! 언니!”

   “왜 그래?”

   “메리월이, 메리월이 사라졌어. 언니가 안 보이니까 언니를 찾으러 나간 것 같아. 그때처럼.”

   “뭐?”

   5년 전 그때도, 메리월은 집 밖으로 나간 소야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사라졌다.

   “아, 안 돼.”

   소야는 눈물을 흘리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새하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메리월이 사라진 그날도 지금처럼 눈이 내렸었는데.

   “홀로그램 메리월 1호! 어디 갔어?”

   소야는 눈밭을 헤치며 홀로그램 메리월 1호를 찾아 헤맸다.

   “나 여기 있어!”

   툭 눈길에 박힌 바위에 걸려 넘어지며 눈밭을 뒹굴었다. 소야는 눈을 털어내지도 않고 눈밭을 가르며 걷고 또 걸었다.

   “여기 있나?”

   소야와 메리월의 비밀 아지트, 텅 빈 놀이터다.

   “홀로그램 메리월 1호야!”

   “낑낑.”

   홀로그램 메리월 1호가 소야와 함께 타던 미끄럼틀 꼭대기에 올라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낑낑거리고 있었다.

   “홀로그램 메리월 1호!”

   소야는 홀로그램 메리월 1호에게 달려갔다. 홀로그램 메리월 1호도 소야에게 달려왔다.

   “메리월!”

   “월월!”

   새하얀 눈을 맞으며 서로가 서로를 향해 달려갔다. 홀로그램 메리월 1호를 꼭 끌어안으니 파즈즈 소리가 울려 퍼지며 추억이 파르르 몰려왔다. 눈물이 눈처럼 펑펑 흘러내렸다. 몇 분 후, 아빠가 손에 뭔가를 잔뜩 들고 미루와 함께 다가왔다.

   “아빠, 그게 뭐예요?”

   “홀로그램 전단지다.”

   아빠는 홀로그램 전단지를 놀이터에 붙였다. 홀로그램 메리월 1호를 끌어안고 전단지를 올려다보았다. 홀로그램 전단지 안에 메리월을 찾는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아, 아빠.”

   “국가적인 수색 작업이 강제 종료되면서 이제 개인적인 수색 작업을 할 수 있잖아.”

   소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뭐해? 같이 붙이지 않고.”

   아빠가 홀로그램 전단지를 건네며 환하게 웃었다. 소야는 미루와 함께 홀로그램 전단지를 동네방네 다시 붙였다. 그 뒤를 홀로그램 메리월 1호가 졸졸 따라왔다. 

   “다 붙였다!”

   아빠와 소야와 미루가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홀로그램 메리월 1호가 옆에서 꼬리를 흔들며 짖었다. 

   아빠와 소야, 미루는 3일 동안 메리월과의 추억이 담긴 장소에 함께 돌아다녔다. 여행 3일째, 메리월을 처음 만난 할머니 집 근처 시골길을 걸으며 홀로그램 전단지를 붙이고 있었다. 그때, 홀로그램 메리월 1호에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 후속 서비스가 곧 종료됩니다. 애완 동물에게 작별 인사를 해주세요.


   소야와 미리가 홀로그램 메리월 1호를 품에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잊지 않을 거야.”


      -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10, 9, 8, 7, 6


   홀로그램 메리월 1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이며 소야와 미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야와 미리는 홀로그램 메리월 1호를 더 꽉 껴안았다.  


      - 5, 4, 3, 2, 1.


   파즈즈.

   홀로그램이 공중에서 먼지처럼 사라졌다. 아빠가 다가와 소야와 미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소야와 미리가 아기처럼 목 놓아 울었다. 

   “이제 가자.”

   아빠가 소야와 미리의 손을 잡았다. 

   “월월.”

   그때, 저 멀리서 커다란 개 한 마리의 형체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말라서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몸 여기저기에 털이 빠져 벌겋고 주름진 피부가 훤히 드러났지만, 한쪽 다리를 다쳤는지 절뚝거렸지만 소야는 그 형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소야는 눈물이 고인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두 팔을 크게 벌리며 외쳤다.

   “메리월!”

   “월월!”


추천 콘텐츠

「토끼 케이크」외 6편

토끼 케이크 히섶 웅크려 식빵 굽는 고양이처럼 발 모으고 빵 굽는 흰토끼 기다란 초 두 개 꽂힌 생크림 케이크 다가가 후우- 불면 안 돼 깡충깡충 달아날 테니. 청개구리와 손잡기 지독스레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같은 동생에게 누나가 말한다. 우리 놀이터 가서 소꿉놀이할까? - 아니, 운동장 가서 공놀이할 거야. 그럼 공놀이하고 그네 타자! - 아니, 공놀이하고 시소 탈 건데? 그래, 그네 타지 말고 시소 타자. - 아니, 나 시소 안 타고 그네 탈래. 좋아! 그럼 운동장까지 각자 뛰어갈까? - 아니, 나는 누나 손잡고 걸어갈 거야! 청개구리와 손잡은 누나가 웃는다. 제2의 로봇태권V 개발 본부 볼트 발견! 너트 발견!(땅콩 말고) 볼펜 스프링 발견! 짝지가 버린 머리핀 발견! 찌그러진 냄비 발견! 태워 먹은 국자 발견! 낡은 기타 줄 발견! 부러진 안경테 발견! 열쇠 발견! 알전구 발견! 버려진 수도꼭지 발견! 텔레비전 안테나 발견! 수많은 부품들을 발견! 발견! 발견! 이제 조립만 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겠지? 낯선 동네 코스모스 가는 이파리가 팔을 간질이는 좁은 길 낯선 이가 낯선 동네로 들어선다 쌀농사 짓는 메뚜기들이 폴폴 뛰며 마중한다 맞은편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던 백발이 다 된 진돗개 한 마리 낯선 이를 보고 우뚝 멈춰 서는데 메뚜기들 황급히 논으로 달아나고 두꺼비 한 마리 길가로 나와 몸을 납작 엎드리는 걸 보고 낯선 이도 허리 숙여 인사한다. 혀가 쭉 나온 백구 어르신 왈, “왈 왈왈 왈왈!" 잠시 눈을 흘기더니 코를 켕 풀고 가던 길 가신다. 헝클어진 머리칼 자고 일어나 부스스한 헝클어진 머리를 보면 괜히 웃음이 나와 쓰다듬어 주고 싶지 아니, 정말은 더 마구 헝클고만 싶어 아마도 헝클어진 머리칼은 조금 더 헝클어져도 괜찮을 거야 머리칼 깊숙이 손을 넣어 마구 헝클여도 좋아할 거야 헝클어진 그대로 푸식 푸식 푸시시 웃고 말겠지 바보 같은 너의 헝클어진 머리칼은. 수다쟁이들 청각 장애를 가진 어른 넷이 모여 떠든다 수다 떠는 아이들보다 더 시끄럽게 떠든다 푸르락누르락하는 얼굴 들썩거리는 몸짓으로 이리저리 휘저어대는 손짓으로 떠든다 보기만 해도 왁자지껄 못 말리는 수다쟁이들이 소리 없이 떠든다 너무 시끄럽다. 얼음 차며 간다 집으로 가는 길 주먹만 한 얼음덩이 하나 골라 발로 차며 간다 집 앞까지 얼음을 몰고 가면 소원 하나 이루어지는 거다 단, 손을 쓰면 반칙! 발로 살살 차며 가는데 얼음은 잘도 미끄러진다 모서리가 깎이고 녹아 데구루루 잘도 굴러간다 얼음은 어느 집 마당으로 굴러가고 자동차 밑으로도 굴러간다 사나운 개집 앞으로도 굴러가고 얕은 웅덩이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어느 집 마당을 들락거리고 자동차 밑으로 기어들고 개가 한눈팔 사이를 기다리고 흙탕물 웅덩이로 뛰어들고 만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저기 우리 집이 보이는데 톡, 톡, 톡, 툭-

  • 관리자
  • 2023-11-10
태몽 찾으러 왔어요

태몽 찾으러 왔어요 변선아 1. 태몽 때문이야 “4교시는 체육이니까, 수업 종 울리면 축구 골대 앞에 모여 있어요.” “네.” 3학년 1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성운이는 힐끔 선생님을 봤지요. 성운이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이 활짝 웃었어요. 교실에 남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요. ‘야호!’ 그제야 성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어요. 마음은 쌩하고 운동장으로 달려나갔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죠. 성운이는 소아 천식을 앓고 있어요. 절대로 뛰면 안 돼요. 엄마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성운이가 뛰지 않도록 부탁해요. 운동장에서 하는 수업이 있을 때는 성운이 혼자 교실에 남아 책을 읽게 해달라고 해요. 그래서 몸을 크게 움직이는 활동이 있는 수업에는 미리 선생님이 말했어요. “성운이는 교실에 남아 있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도 좋아.” 이뿐인가요? 급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도 먹지 못해요. 천식에 좋지 않으니까요. 의사 선생님은 가끔씩 한두 번 먹는 건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는 ‘절대 금지’라고 했어요. 어쨌든 지금, 선생님이 그냥 웃기만 했잖아요? 체육 수업에 참여해도 좋다는 말일 거예요. 그동안 교실에 혼자 남아서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오늘은 친구들하고 같이 운동할 거예요. 조심히 달리면 괜찮겠죠? 성운이에게 소원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맘껏 뛰어보는 거예요. 쉬는 시간에 잡기 놀이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어요.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축구 골대 앞에 모였어요. 물론 성운이도 당당하게 서 있었죠. 곧 선생님이 와서 말했어요. “오늘은 축구를 할 거예요. 성운이는 벤치에 앉아 있을까?” “네? 저도 축구 할 건데요?” 성운이가 실망하며 말했어요. “안 돼. 성운이는 뛰면 안 되니까 친구들 수업하는 걸 지켜보자.” “휴.” 그럼 그렇지요. 성운이는 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축 떨어뜨리며 벤치로 갔어요. “살살이 공성운, 넌 앉아서 공 차는 거나 구경해.” 민찬이가 성운이 뒤에 대고 소리치고는 혀를 쑥 내밀었어요. 성운이는 민찬이가 얄미웠지요. 민찬이는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어요. ‘살살이’란 별명도 민찬이가 지어준 거예요. 천식 때문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니는 걸 놀리는 거죠. 민찬이와 아이들이 공을 굴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녀요. 그 모습을 보는 성운이 마음은 소금에 절인 배추 같아요. ‘나도 뛰고 싶다.’ 생각할수록 속상했어요. 왜 자기만 천식이 있어서 뛰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었죠. 지루했던 체육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에요.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면서 밥을 많이 먹었어요.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성운이는

  • 관리자
  • 2023-11-10
「어떤 겨울밤」외 6편

어떤 겨울밤 김미혜 눈보라가 휘이잉 몰아치는 밤, 하얀 옷을 입은 눈 아이가 어깨에 소복 쌓인 눈을 털며 들어왔어. 가늘고 새하얀 손을 비비며 추워라, 추워라, 달달 떨었어. 이리 와 불을 쬐렴. 할아버지가 난로에 불을 켰어. 눈 아이 손이 흐물흐물 녹고 발목도 녹고 종아리도 녹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아, 따스해라, 따스해라 입은 녹지 않았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오던 할아버지는 그만 얼어 버렸어. 쨍그랑 찻잔이 깨져 버렸어. 할아버지는 얼른 난롯불을 껐어. 웃을락 말락 철창에서 빠져나온 흰둥이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배롱나무 뒤로 갈락 말락 잡힐락 말락 마당 밖으로 발을 디딜락 말락 숟가락 내던지며 달려 나와 저놈 좀 잡아라, 할아버지가 소리치면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한테 오지 마, 제발, 제발, 흰둥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가, 멀리 가 어둑어둑 붉어지는 논둑을 가로질러 갑니다 흰둥이가 멀어집니다 개와 늑대 사이를 달립니다 울락 말락 웃을락 말락 밤이 옵니다 족제비 일기 기름진 고기 냄새가 닭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막아요. 삼겹살 한 점이 끌어당겨요. 철커덕 철창문이 닫혀요. 오르락내리락 두리번두리번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어요. 힘이 풀려요. 잠잠해지기로 해요. 가만히 기다리면 비상구가 나타날 거예요. 어쩌나, 날이 밝아 오는데 아무 데도 뚫리지 않아요. 닭장 문이 열려요. 할아버지가 덫 안에 든 나를 안아요. 바르르 떨고 있는 나를 자동차에 태워요. 망할 놈의 족제비, 다시 잡히면 안 놔 준다, 욕하며 겁주며 구박하며 풀어 주러 간대요. 잡히기만 해 봐라, 닭이 죽어 나갈 때마다 잡히기만 해 봐라 잔뜩 벼르더니, 구불구불 강 건너 멀리 놓아 주러 간대요. 큼큼, 냄새를 맡아요. 메모를 해 둬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되거든요. 여우양말꽃이 피었습니다 여우 양말을 알록달록 걸어 놓았으니 여우가 오겠지요? 오늘 밤에는 분홍 양말 흰 양말 맘에 드는 양말 골라 신고 발소리 숨기고 신나게 놀다 가겠지요? 양말이 시들기 전에 오겠지요? 우리 집 꽃밭에는 여우양말꽃이 여러 켤레 활짝 피었답니다 민들레 걱정 민들레를 피하려다 개똥을 밟았다 “야, 개똥을 왜 밟아?” “그럼 민들레를 밟아요?” 시 선생님이랑 꽃 보러 가면 내가 아닌 것 같다 개꿈 어둠 속에 툭 던져 놓고 쌔앵 달아나는 자동차를 쫓아가요 “멈춰요! 잊은 게 있어요!” 달려가던 자동차가 지쳐 헉헉거려요 이때다, 가속페달을 밟아요 두 발로 서서 앞을 가로막아요 창문 너머로 뺨을 핥으며 인사해요 “그냥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요.” 나는 꼬리를 흔들며 보내 줘요 “안녕!” 앗, 이건 꿈이야 깨면 안 돼 나는 꿈속에서도 꿈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어서 자, 계속 자 번개처럼 꿈속으로 돌아가야 해요

  • 관리자
  • 2023-11-10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