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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순천 책방심다(제1회)

  • 작성일 2022-11-01
  • 조회수 1,087

[책방곡곡]

 

 

 

순천 책방심다(제1회)

 

 

사회/원고정리 : 오월
참여 : 한솔, 파인애플, 청포도사탕, 현
책 : 박지영, 『고독사 워크숍』(민음사, 2022)

 

 

 

 

 

오월 :
이번에 함께 읽은 책은 민음사의 오늘의젊은작가 시리즈 36번째 책, 박지영 작가의 『고독사 워크숍』입니다. 데뷔작 이후 9년 만에 나온 책이더라고요. 심야코인세탁소에서 진행하는 고독사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쓴 책입니다. 작가님은 이 책이 ‘명랑하고 고독하게 함께 잘 읽고 잘 죽어갈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쓰셨다고 해요. 다들 어떻게 읽으셨나요? 사실 저는 좀 힘들었어요.(웃음)

한솔 :
맞아요. 고독사의 ‘사’가 죽을 사(死)를 쓰잖아요. 그런데 읽어 보니까 이 ‘사’자가 역사 사(史)처럼 그냥 고독한 사람들의 역사를 적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 문장 한 문장 굉장히 공감도 가고 밑줄도 잘 그었는데, 전체적으로는 조금 난해했죠.

파인애플 :
저도 한솔 님처럼 읽히기는 잘 읽히는데 은근히 진도가 안 나갔거든요. 인물들의 특징이 강해서 천천히 읽다 보니까 앞 내용이 기억이 잘 안 나서 다시 앞으로 넘어가서 읽었어요.

청포도사탕 :
저도 책을 두 번 읽었어요. 원래 책에 밑줄 긋지 않는데 그었어요. 인용한 책이라든지 음악이 많이 나오는데 내가 기본 지식이 없고, 그럼에도 이걸 여기에 쓴 이유는 있을 거고, 그런 데 신경 쓰다 보니까 더 어렵게 느껴진 것 같아요. 그리고 옴니버스 형태다 보니 쭉 읽으면서 인물 의 연관이 바로바로 지어지지 않아서 더 어렵게 느껴진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어려웠지만 읽고 나서 고독사지만 잘 죽기 위한 방법이 어떻게 보면 잘 살기 위한 방법과 같다는 느낌을 가졌어요.

현 :
처음에 이 책을 읽기로 결정했을 때 사실 전에 읽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왜 포기했는지 알겠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어떻게든 읽고 나니까 그때 포기했다면 이 책의 의미를 영영 몰랐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고독사 이야기가 많이 나올 줄 알고 봤는데 죽음에 관한 건 사실 반전처럼 나오는 것 하나 말고는 없잖아요. 결과적으로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무기력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한솔 :
그게 좀 신기하지 않았나요? 저는 워크숍이라고 하고 표지도 대화하는 그림이어서 만나서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비대면 시대에 걸맞게 인터넷으로 글을 올리는 워크숍이더라고요.

오월 :
맞아요. 그리고 저는 읽으면서 좀 피식했던 부분들이 있는데요. 워크숍 장소로 미국의 ‘노퍽’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부산의 ‘노포동’으로 가라고 하거나, ‘아일랜드’를 이야기했는데 인천에 있는 ‘어쩌다, 아일랜드’라는 공간으로 안내하는 부분들이요. 또 하나 좋았던 점은 책 안에 아예 ‘밈’이라고 해서 나오잖아요. ‘여름이었다’와 같은 소위 인터넷 용어로 드립이라고 하는 것들이요. 코로나 이야기도 나오고, 이 시대에 할 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으니까 좋더라고요. 신간을 읽는 장점 중 하나 같아요.

 

 

 

오월 :
책에 나오는 많은 인물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파인애플 :
저는 송영달이요.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인가 헷갈리기도 한데, 제가 밑줄 그었던 문장을 보면 40쪽에 이런 속마음이 써져 있어요. ‘무딘 연필로 필기를 하고 무딘 연필로 일기를 썼다. 뭉툭한 연필로 쓰인 뭉툭한 글자들은 뭉툭한 생각과 뭉툭한 하루를 만들어 냈다. 무딘 심처럼 무딘 마음을 갖고자 했다.’ 뭔가 노력을 한 거잖아요. 자기를 억누르면서 무딘 마음을 가지고 싶어서. 주머니에 연필을 가지고 다닌 것도 그렇고요. 나무에 연필을 꽂아 놓았을 때도 연필이 자라면 자기가 전규석의 눈을 찔렀던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행동이잖아요. 그게 좀 짠하다고 해야 하나. 실수를 돌이키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는 거, 그게 마음에 남더라고요.

청포도사탕 :
저도 송영달이요. 이 에피소드 마지막에 ‘결국 당신의 실패가 그 아이를 실명 위기로부터 구한 거네요. 그렇다면 매일 좀 더 실패해 봐도 좋지 않을까요?’ 이 부분도 약간 결론을 지어 주는 게 너무 유쾌하고 마음에 들었어요. 실패를 해보는 자체가 삶을 잘 살아가는 자세로 이어지는 것도 느꼈고요. 그래서 저도 이 인물에 공감하며 봤던 것 같아요.

오월 :
현 님은 어떠셨어요?

현 :
저도 송영달 좋았는데, 착하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어디서 그 착함을 느꼈냐면 칼 버릴 때 두세 번 싸서 버리는 거. 웬만큼 착한 사람도 그렇게 못 하거든요.(웃음)

파인애플 :
그냥 버리고 싶은 마음을 참고.

현 :
자기 안의 악이랑 계속 싸우잖아요. 그리고 저는 의자 뛰어넘는 알리스, 이 사람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저도 책을 두 번 읽었는데 첫 번째 읽을 때는 별로 인상에 남지 않는 인물이었거든요. 너무 무색무취의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청포도사탕 :
저도 읽을 때 제일 어려운 인물이었어요.

현 :
다시 읽으니까 알리스가 자기의 감정을 외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감정을 적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이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알리스가 ‘학습된 너그러움과 용납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나오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해도 사과를 요구하지 못해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요. 남들한테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계속 자신의 감정을 외면한 채 가만히 있는 것을 추구해 왔어요. 그런데 점차 고독사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장의 남편에게 다시 사과를 요구하기도 하고요. 그 부분을 보면서 굉장히 나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도 부당한 일이 있거나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스스로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냥 짜증난다거나 화난다는 말로 일축을 하거나 외면해 버려요. 알리스도 외면하는 태도가 계속 반복되었기 때문에 이런 식의 무색무취의 인간이 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뒷부분으로 가면 253쪽에 ‘나는 비겁해서 감히 용기도 내지 못하는 높은 곳을 뛰어넘기 위해 고독을 선택하고 코어를 단단하게 단련하고 있었다고.’ 이게 알리스가 하는 의자 뛰어넘기랑 같은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를 극복하려는 행동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이 인물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오월 :
저는 앞에서 한솔 님이 잠깐 이야기한 조문남이라는 인물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볼게요. 이 책 맨 처음에 웨이비 그레이비의 묘비가 나오잖아요. 저는 이게 계속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이 묘비가 조문남 에피소드에서 나오더라고요. 치매에 걸려 자신이 손녀를 죽인 줄만 알고 살아가고 있는 조문남이 손녀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스크림 부활 버튼을 끈덕지게 매일매일 누르는 것이 참 뭐랄까, 안타깝기도 하고 마음이 쓰였어요. 거북이 수프의 묘비명의 ‘꾸준한 자가 경주에서 이기는 법. 거북이 수프는 계속 달렸습니다. 당신은 반대할지도 모르지만 거북이 수프는 이제 쉬어도 됩니다.’라는 말이 괜찮다고 위로를 해주는 것 같기도 했고요.

파인애플 :
26쪽에 보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강제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아주 작은 비겁함과 다정함입니다.’ 이 문장과 통하는 맥락이 있는 것 같아요.

한솔 :
28쪽에 보면 하루 세 번 시시한 글을 올리잖아요. 요즘 갓생 트렌드가 자꾸 생각이 나는 거예요. 이 사람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데 그냥 회사 갔다가 집에 가는 게 끝인 내가 되게 시시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TV와 같은 매체를 봤을 때 내가 굉장히 낮아지는 느낌이고 인생에 대해서 회의감이 느껴지는데 이 책에서는 그냥 ‘야! 너 시시한 일 그냥 하루에 하나씩만이라도 하면 돼!’ 이렇게 말해 주어서 좋은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청포도사탕 :
그리고 시시한 것들도 매일 하나씩 하면 그 시간이 특별해지기도 하고 기록이 되기도 하잖아요. ‘일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예전에 ‘시시한 미니멀리스트’라는 블로거가 있었는데 지금은 책도 내고 강의도 다녀서 시시한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지만, 그 블로그를 2016년도부터 했는데 처음에는 진짜 시시했어요. 여기서 저는 그걸 떠올렸거든요. 내가 봤을 때 시시했던 것이라도, 예를 들어 알리스가 의자를 뛰어넘는 것도 마찬가지고 매일매일 하나씩 기록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게 특별해지고 삶의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솔 :
맞아요. 꼭 대단하게 살아야지만 인생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현 :
요즘에 ‘챌린저스’라는 어플도 있잖아요. 거대한 목표를 세울 수도 있지만 그냥 하루에 세 번 하늘 보기 같은 작은 목표를 정하고 인증샷을 올리는 것도 생각나더라고요. 남들이 보기에는 되게 시시하고 별 볼일 없는데 당사자한테는 꾸준히 하다 보면 뭔가 성취하는 기분도 있고요. 저는 이 책에서 각자 올리는 부고가 그냥 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고독사라는 게 여기서 진짜 사(死)가 나오진 않잖아요. 저도 이걸 그냥 인생으로 바꿔서 읽으면 여기 있는 말이 다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62쪽의 경우 ‘슬픔 없는 고독사는 정말이지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이 문장을 ‘슬픔 없는 인생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이런 말로 바꿔 읽을 수 있다고도 생각했어요. 188쪽에 ‘생각해 보면 삶도 마찬가지다. 완성되기까지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도대체 왜 쓰였는지 알 수 없는 무의미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문장을 보면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잖아요. 삶은 어차피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결국 죽는 건 혼자니까 고독사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그래서 이 고독사라는 게 완결된 것으로서의 죽음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워크숍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끝을 생각하지 않고 이 과정으로서의 삶을 다시 살아 보는 연습을 하는 게 고독사 워크숍이구나. 책에 우울하고 지친 인간들만 나오는데 이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다시 한 번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인애플 :
오 대리가 첫 출근한 날 할머니가 했던 이야기가 23쪽에 나오거든요.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세상이 형편없으니까 네 마음대로 더 형편없이 굴어도 된다.’는 게 응원을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용기를 주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러니까 진짜로 갓생 사는 것만이 대단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쁜 게 아니라는 얘기들이 나오는 게 좋았어요.

한솔 :
이렇게 응원도 하다가 저는 57쪽에서 어떻게 보면 삶을 버리는 이유도 한번 짚어 주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송영달은 문득 깨달았다. 재난 대비용 라디오를 판 남자는 재난이 오지 않는다고 믿게 된 것이 아니었다. 재난에 대비할 수 있다고 믿지 않게 된 것이었다.’ 어떠한 물건이 필요 없어질 때, 이걸 더 이상 희망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쓸모없어졌다고 생각했을 때 버리는 것처럼, 인생도 희망적인 미래보다는 쓸모없다고 느껴졌을 때 버리는 거였구나. 스스로 선택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은유처럼 비춘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오월 :
지금 말씀해 주신 부분들은 저도 밑줄을 그어 뒀어요. 다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읽고 있었구나 싶네요. 읽으면서 느낀 또 다른 생각이 있나요?

한솔 :
우리에게도 대신 울어 주는 판다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청포도사탕 :
우는 판다였던 소년의 이야기가 앞에서 했던 이야기들이 종합된 느낌도 들었어요. 시시하고 선량한 일이라든가 고결한 돼지처럼 죽는다는 표현도 그렇고요.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죽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고 멀리,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는 일은 하지 않을 거였다. 그래도 화재가 일어난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들을 구하려다 죽는 일은 그대로 할 거였다. 그 죽음이 자살로 오해받더라도. 무고한 800마리의 돼지를 죽인 방화로 기록되더라도.’ 시시하고 선량한 일을 하다가 죽었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 사람이 결국은 우는 판다였고, 이 사람의 삶 자체에 다른 사람들이 말한 것들이 다 포함된 것 같아서 이 부분도 괜찮았어요.

파인애플 :
우는 판다가 있으면 왠지 한번 찾아가서 울고 싶을 때 있을 것 같아요. 내가 굳이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나보다 더 서럽게 울어 주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가는데 나중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면서 매장당하는 부분은 참 현실적이었죠.

오월 :
되게 ‘한국’ 같았어요.

현 :
저는 우는 판다 이야기에서 궁금한 게 있었어요. 105쪽에 ‘양이’라는 인물이 우는 판다가 사라지고 나니까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잖아요. 왜 무서움과 두려움을 느끼는지 궁금했어요.

파인애플 :
그런데 이것도 약간 감정의 표현 아닐까요? 우는 것도 뭔가 발사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눈물을 흘리면 감정의 해소가 되는데 양이는 처음에 울지 않았잖아요. 아까 알리스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해요. 감정표현이랑 연관을 지어서 양이도 뭔가 표현하지 않았으니까, 표현하지 않아서 무섭고 모든 게 두렵고. 우는 판다가 있었을 때 핑계로라도 자기가 표현했으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저는 후회의 무서움과 두려움으로 받아들였어요.

오월 :
105쪽 ‘한번 깃든 무서움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여기부터 쭉 읽으면 파인애플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느껴져요.

한솔 :
앞쪽의 103쪽을 보면 우는 판다가 사라지는 이유가 나오잖아요. ‘우는 판다를 거리에서 쫓아내기 위해 등을 떠민 5000명의 손이 있다면 그중에 양이는 한 손바닥도 아니고 한 손가락 정도의 힘밖에 얹지 않았다. 그러니까 양이에게는 아무 책임이 없었다. 그러면 다른 5000명은? 그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악플이랑 비슷하죠. 양이도 어떻게 보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어쨌든 판다를 좋게 생각했잖아요.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게 사라졌을 때, 이 세상을 살 만한 거라고 느껴지게 만들었던 것이 하나 사라졌을 때의 그런 두려움 아닐까요.

오월 :
이 책을 보면 QR코드가 포함된 의문의 초대장이 계속 발견되잖아요. 그런 거 발견하면 찍으실 것 같나요?

한솔 :
저는 궁금해서라도 한번 찍어 볼 것 같아요.

오월 :
저는 절대 안 찍을 것 같아요.(웃음)

파인애플 :
저도 찍어 볼 것 같아요. 이름도 약간 특이하잖아요. 고독사 워크숍.

오월 :
특히나 초대장이 많이 발견되는 김자옥의 에피소드에서 김자옥이 도서관 공공근로잖아요. 여기 사서 선생님들도 계시고 도서관 자료실에서 근무해 보신 분도 계시는데 책 정리하고 이런 모습들이 현실적이고 공감이 많이 됐겠어요.

한솔 :
김자옥이 말한 그 부분이 너무 웃겼어요. 아니 사람들은 다시 볼 것도 아니면서 왜 책에 밑줄을 긋는지 모르겠다고.(웃음)

파인애플 :
저도 이 에피소드 읽고 작가 인터뷰를 찾아봤거든요. 실제로 책을 안 내고 있던 동안 도서관에서 기간제로 일하셨대요. 그래서 너무 잘 알고 있는 느낌?

청포도사탕 :
그 에피소드에 보면 포스트잇이 발견될 때 7, 8, 12번 포스트잇이 발견되고 47번이 발견되잖아요. 그리고 목차를 보면 워크숍 1부터 11까지 가다가 갑자기 워크숍 48이 나와요. 왜 그럴까요?

오월 :
저도 궁금했어요. 이 간극이 시간의 차이인가 했는데 또 그건 아닌 것 같고.

파인애플 :
뒤쪽의 작가의 말에서 ‘워크숍 49는 아버지를 위해’라고도 적혀 있고요.

오월 :
작가님께 물어 보고 싶은데요.(웃음)

현 :
저는 또 읽으면서 귀여웠던 게 마지막에 밴드 이름이 진짜 많이 나오잖아요.

파인애플 :
맞아요. 이것도 진짜 시시한데 댓글 달아 준 게 상냥하기도 하고.

현 :
여기 나온 밴드 중에 혹시 가입하고 싶은 밴드가 있는지.

오월 :
저는 어쩌라고 밴드.(웃음)

한솔 :
저는 이거요. 될 대로 되라면서 실은 잘 되길 바라는 밴드.

현 :
온전히 내 편인 한 사람이 내가 되는 습관 연구 밴드.

오월 :
밴드 이름이 나열된 것처럼 230쪽을 보면 ‘고독사도 번역이 되나요’라는 소제목으로 각자의 고독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잖아요. 저는 ‘줄어들지 않는 물그릇’이라고 표현할 것 같아요. 저는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이 친구가 제 삶에 큰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우리 고양이가 항상 물을 먹으니까 물그릇의 물이 줄어들기 마련인데 물이 줄어들지 않는 것을 상상해 보면 ‘고독’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만약 내가 고독사 채널을 운영하고 영상을 올린다면 고양이와 함께하는 영상일 것 같고요. 내 채널이 있다면 나는 뭘 할 것 같다 생각해 보신 분 있나요? 먼저 여기에 초대를 받았나 안 받았나부터 생각해 봐야 하나.(웃음)

파인애플 :
저는 버스를 기다릴 것 같아요. 하루에 3번. 버스 기다릴 때 외롭다고 느끼거든요. 지금은 어플이 있지만 어플이 없을 때는 딴 짓도 못 하고 잠깐 편의점 같은 데도 못 간 채 기다리잖아요. 그럴 때 쓸쓸함을 많이 느꼈거든요. 놓쳐서는 안 되니까. 그래서 버스를 기다릴 것 같아요.

현 :
저는 아직 여기 참여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되려고, 이루려고 애쓸 것 같아요. 하루에 한 자씩 뭐라도 쓴다든가 이럴 것 같아요. 뭘 해도 의미를 굳이 찾으려 할 것 같아요.

한솔 :
저도 시간이 아까운 느낌이라 이런 거 할 시간에 그냥 더 생산적인 걸 하고 싶은?

현 :
아, 생산적이라는 말 공감해요.(웃음)

한솔 :
왜 자꾸 뭔가를 남기려 할까요?

오월 :
한국 사람이라서.(웃음)

한솔 :
그냥 흘려보내지를 못해요. 무언가를 하면 나한테 남는 결과물이 있어야 돼요.

오월 :
저는 아까 초대장의 QR은 절대 안 찍는다고 했지만,(웃음) 그냥 다른 사람들 채널도 보고 시시하고 선량한 일 하면서 이 워크숍에 참여하고 싶어요. 각자 삶에 대한 태도가 다르니까요. 아, 저 이 내용도 나누고 싶었어요. 243쪽에 규석의 아내 수연이 규석에게서 나는 냄새가 탈모 방지용 한방 샴푸 향이라는 걸 알게 되고, 『아직은 대머리가 될 수 없다』는 책을 규석의 집에서 발견하잖아요. 그런데 이 부분을 보면서 기시감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봤더니 62쪽에 송영달이 올린 글의 세 번째 댓글에 이 샴푸와 책 이야기가 나와요. 전규석이 쓴 댓글 같은 거예요.

현 :
대박.

청포도사탕 :
옴니버스 소설을 많이 읽진 않지만,(웃음) 제일 촘촘하고 연관이 다 되어 있는 것 같아요. 자칫하면 내가 소설을 쓰면서도 잊어버릴 수 있겠더라고요.

오월 :
그래서 다른 댓글들도 이 책의 다른 인물들이 쓴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이거 발견하고 재밌었어요. 더 나누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한솔 :
저는 355쪽에 재호가 연주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나오는데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분노가 끓어오르더라고요. ‘약사인 줄 알고 좋아했지만 약사인 줄 알고 나 같은 게라고 마음을 접으려고 했는데 그게 아니라면 뭐 나 정도도 괜찮지 않은가 싶었던 거였다.’ 뭔가 현실적으로 급 나누는 그런.

오월 :
뒤에 연주가 혹시 저 선배가 나 좋아하나? 싶으면 그건 오해고 저 새끼가 나 좋아하는 거 아냐? 하면 그건 100퍼센트 확률로 진짜라는 거라고 말할 때. 연주랑 어떻게 돼가려나 했는데 술자리에서 연주가 바로 칼차단하길래 속 시원했어요.

한솔 :
재호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재수 없죠.

파인애플 :
맞아요, 이런 거 너무 재밌었어요. 저는 또 공감 갔던 게 우는 판다에 은영이라는 인물 이야기 있잖아요. 95쪽 보면 ‘무엇보다 일 때문에 생긴 일로 우는 것을 자신에게 허용할 수 없었다.’ 우리도 일 때문에 가끔 눈물 날 때 있잖아요.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울음이 터졌는데 현타 올 때도 있고.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이 감정을 지배하거나 울게 만드는 걸 용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저는 일할 때 감정을 배제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감정을 모르는 척하지만 이미 상처를 받았고, 애써 외면하는 거죠.

한솔 :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업무 때문에 운다기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크죠. 내가 일처리를 못 해서, 나 자신에게 실망해서 우는 게 아니라 인격 모독적인 지적을 하는 사람 때문에 울게 되잖아요. 그게 너무 싫어요. 그리고 전 이 책 읽으면서 되게 공감은 가지만 현실적인 부분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렇게 소소하게 살다가 나중에 죽을 때 돈 없으면 어차피 고독하게 죽을 텐데.

현, 오월 :
맞아요.(웃음)

청포도사탕 :
이 책의 첫 문장. ‘고독사하는 데도 돈이 든다.’(웃음)

한솔 :
어떻게 보면 말년에 돈 없을까 봐 걱정하느라 전전긍긍하면서 지금 30~40대를 힘들게 보내잖아요. 그래서 복지적인 면에서 내가 늙었을 때 국가에서 보장해 주는 게 있다면 나도 인생을 즐기면서 도전을 많이 해봤을 텐데 하는 자조적인 생각도 들었어요. 책에 나오는 것처럼 ‘그래, 소소하게 살아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런데 돈까지 소소해지면?’ 자꾸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현 :
저는 165쪽에 이게 너무 좋았거든요.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의 장소들은 모두 살아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려고 가는 곳이었다.’ 그러니까 행복은 단순히 어딜 가거나 하는 사소한 데서도 느낄 수 있는 거예요. ‘굳이 목표가 없어도, 의미를 찾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작가의 뜻을 계속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보통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나오는 사람들은 조그마한 목표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도 잘 살아 가죠. 저는 이런 삶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솔직히 저는 소설 속 인물이니까 공감하고 이해하는 거지 내가 이렇게 산다면 스스로 용납이 안 될 것 같거든요. 그래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목표 없는 삶.

청포도사탕 :
시시한 일들, 자기가 하고 있는 걸 계속하다 보면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시시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사는 거죠. 일을 할 때도 하다 보면 익숙해져서 상투적으로 해야 될 것 같은 느낌으로 사는 게 아닌가. 저도 여기에서처럼 고독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아닌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미래를 생각해서 목표를 세우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사실 40대 이후로는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지 대단한 목표는 딱히 없거든요. 행복함을 찾아다니고 내가 기분 좋아지는 곳에 가고, 이런 식으로 살다 보니까 일상 하나하나가 목표가 되는, 내지는 그걸 위해 그냥 사는 거 같아요. 젊고, 앞으로 내가 뭘 해야 되겠다고 목표를 세우는 사람도 있지만 늘 그냥 하는 거 하면서 안주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아요.

오월 :
저는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괜찮지 않나.(웃음) 그런 말도 있잖아요.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아, 너무 회의적인가? 그래도 어쨌든 이 세상에 나왔으니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살아간다면 목표나 살아가는 이유가 딱히 있어야 할까 싶기도 해요. 책방에서 일도 하고 배우고 싶은 것도 배우고 바쁘게 살지만 만약 저에게 누군가가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해 준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실제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사실 저는 무기력을 디폴트로 가지고 있는 인간 같거든요. 딱히 목표 안 가져도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고 멍 때리고.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고요.(웃음) 실제로 누군가는 그렇게 살겠죠. 그렇지만 아무도 그 사람에게 너 왜 그렇게 사냐고 타박할 자격은 없잖아요.

한솔 :
지금은 왜 목표가 없냐고 물어 보는 시대 같아요. 그래서 방금 생각해 보니까 없어도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까.(웃음) 그래서 여기 나온 사람들이 한심해 보이거나 탓하고 싶진 않은 거죠.

현 :
팟캐스트에서 들은 말인데 목표나 꿈이 없이 사는 게 나쁜 삶도 아니고 불행한 삶도 아닌데 당연히 어떻게든 다 살아지는데 목표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의 차이는 시간, 쓸 수 있는 시간이 있고 없고의 차이래요. 그러니까 자기가 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그 시간을 어떻게 견디느냐 어떻게 보내느냐의 차이라고 하더라고요.

파인애플 :
저의 삶의 태도는 목표가 없는 것보다는 살아감에 있어 에너지를 분배하는 거예요. 몇 년은 너무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살다가도 또 뭔가 하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요. 시시한 거를 하다 보니까 다른 것에 관심이 생겨서 갑자기 없던 용기가 생겨서 도전해 볼 수도 있고요. 그걸 하면서 에너지를 쏟다가 쉬고 싶으면 또 약간 방전된 채로 살다가. 저는 그렇게 살았거든요. 저는 목표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이런 태도?

오월 :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엄청난 기승전결이 있거나 커다란 사건이 생기지는 않잖아요. 그냥 흘러가는 느낌? 우리가 방금 목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봤듯이 이 안에 있는 인물들도 지금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다른 사람들 채널을 보면서 댓글도 달아 보고 이런저런 시시한 일을 하다 보면 새로운 목표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현 :
이 책의 핵심이 256쪽의 첫 문장인 것 같아요. ‘대체로 나아지고 있습니다.’

오월 :
‘대체로’라는 말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요.

한솔 :
하지만 고독사하고 싶진 않아.(웃음)

파인애플 :
진짜 죽음이 나왔으면 오히려 더 뻔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한솔 :
그런 거 있잖아요. 다 같이 모여 가지고 고독사를 준비했지만 으쌰으쌰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난 고독하게 죽지 않아, 당신 때문에.” 이런 대사 나오고 그랬으면 와…… 오…… 하면서 읽었을 텐데.(웃음)

오월 :
오, 저도 사실은 나도 모르게 제목을 보고 이런 내용을 나 혼자 예상하고 있었나 봐요.(웃음) 그래서 읽으면서 점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한솔 :
각자 슬픈 사연을 가지고, 가족에게 헌신을 했는데 버려진 노인이 나오고 이런 내용이 나올 줄 알았는데.(웃음) 오히려 우리 또래 이야기가 나와서 신선했죠. 목차의 ‘워크숍 10번’을 보면 트위터 내용이 나오잖아요. 289쪽부터 시작하는데, 특히 요즘 많은 사람이 SNS상에서 제2의 캐릭터를 만들기도 하잖아요. 그런 거 생각하면서 읽으니까 시의적절한 내용이다 싶었어요. 또 SNS에 사생활을 올리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는 내용도 와 닿고요. 사진 하나 올린 걸 보고 위치나 방향을 유추해서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가 나오잖아요. 결국 여기서 마르탱은 SNS를 자신의 진짜 인격을 내보이는 좋은 선순환의 구조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사생활 부분에서는 굉장히 위험했죠. 그런 부분도 굉장히 양면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뒤쪽에 ‘여름이었다’라는 말도 그렇죠. 오글거린다는 말이 생긴 이후로 그 말이 대체 불가한 상황을 표현하기 좋지만 이렇게 낭만적인 말을 잘 못하게 됐잖아요.

오월 :
진정으로 솔직하기가 힘들어졌죠. 감정도 표현도 솔직하게 하면 나만 바보 되는?

한솔 :
조롱하는 게 많이 생겼죠.

오월 :
진짜 ‘존중’을 바탕으로 하면 그렇지 않을 텐데요.

현 :
존중 이야기하니까 생각났는데 19쪽을 보면 처음에 고독사 워크숍에 대한 공고를 말해 주기 시작할 때 ‘자기혐오와 자기 구애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마침내 고독사에 이르는 법이거든요. 고독사란 결국 인간의 존엄이랄지 위엄에 대한 절박한 구애의 형태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라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지금 여기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전부 타인한테서 존중을 받거나 인정을 받는 게 결여된 사람들이잖아요.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고 생각해요. 자기혐오와 자기 구애를 계속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고독사에 이른다고 나와 있는데요. 타인한테서 자기가 배제됐다는 그런 자기 혐오감, 그런데 자신에게만이라도 스스로 존엄하고자 하는 욕망. 그런 것 때문에 이 고독사 워크숍이라는 게 이 사람들한테는 탈출구, 어쨌든 자신을 존엄하게 만드는 통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매일매일 부고를 하루 세 번씩 쓰면서 뭔가 하고 있는 게 사실이잖아요. 인간은 성실하게 뭔가 계속했을 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느끼듯이 자신을 존엄하게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게 고독사 워크숍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인애플 :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어서 그걸 꾸준히 한다는 게, 결국 서로 얼굴은 모르지만 다 연결돼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오월 :
맞아요. 뒤에 소년 에피소드 335쪽을 보면 소년은 덧셈이나 곱셈이 아닌 뺄셈으로만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375쪽을 보면 ‘고독사 워크숍 안에서는 누구나 0.5인분의 하루만 살아 내면 된다. 과거나 미래와의 연속성에서 단절된 딱 0.5인분의 하루. 자기 삶은 0.5인분만 책임지면 되니까 구시렁구시렁 오지랖만 넓어지고, 그렇게 또 다른 0.5인분의 삶에 참견하다 보면 어느새 0.5+0.5는 1인분이 되고, 그렇게 결합된 1인분은 결합 과정에서 생긴 에너지로 인해 1+1, 자연히 원 플러스 원이 되어 다시 각자 1인분의 삶이 된다는 거였다.’ 이걸 보면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은 뺄셈이 아닌 덧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 같아요.

한솔 :
저도 또 공감 간 문장이 있어요. 129쪽의 ‘알리스가 부러운 것은 그들의 전문적인 지식이나 원하는 것을 소장할 경제력 이전에 그들의 취향이었다.’

오월 :
저도 공감해요. 보니까 이 부분 다들 밑줄 그으신 것 같은데요.

한솔 :
저소득층 아이들한테 학원비 지원해 주는 사업도 있잖아요. 그런 사업이 확대되어서 모든 아이들에게 혜택이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 나이대에는 뭐든 해봐야 되니까. 경험을 해봐야 내 취향인지 아닌지 느낄 수 있잖아요. 이 부분을 읽으면서 그런 게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월 :
취향이 없는 게 창피하거나 잘못된 게 아니잖아요.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취향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방금 이야기하신 아이들의 경우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를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한솔 :
어릴 때 “너 스키장 가봤어?” 이런 질문들을 들으면 안 가봤다는 사실에 작아지기도 했죠.

오월 :
맞아요.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른다는 게 슬퍼요. 129쪽에 ‘알리스의 경우에는 취향 없음을 숨기기 위해 타인의 취향을 훔쳐보며 다수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 정도가 유일한 취향이었다.’ 이게 너무 슬프잖아요. 그래서 저도 이 부분에 밑줄을 쳐놨어요. 혹시 더 나누고 싶은 문장이 있나요?

파인애플 :
저 마지막으로 나누고 싶은 내용 있어요. 심야코인세탁소의 오 대리가 자체 승진 후 오 부장으로 출근하는 첫날에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가 너무 좋더라고요. 할머니에게 ‘내가 계속 이렇게 형편없이 살아도 될까?’ 물어 보자 할머니가 ‘당연하지. 세상이 왜 이렇게 형편없는 줄 알아? 형편없는 사람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형편없이 살아. 그러다가 가끔 근사한 일 한 번씩만 하면 돼. 계속 형편없는 일만 하면 자신에게도 형편없이 굴게 되니까. 근사한 일 한 번에 형편없는 일 아홉 개. 그 정도면 충분해.’ 이 이야기는 제가 아까 말한 삶의 태도랑 비슷한 거 같아요. 무기력하게 힘없이 살다가도 다시 의욕이 생길 때, 근사한 일 하나 정도 해도 된다고 응원해 주는 메시지처럼 와 닿아서 좋았어요. 한 번씩 지칠 때 이 문장 읽으면 힘이 날 것 같아요.

청포도사탕 :
저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요. 전규석의 에피소드에서 할머니가 추락사하잖아요. 그 뒤에 218쪽에 ‘오늘의 부고: 마리아 칼라힐(84세, 프리다이버) 지중해에서 잠수 중 실종, 다행이야, 네가 아니라서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나와 있잖아요. 그 추락사를 부고로 표현한 걸까요? 아니면 자기가 상상해서?

한솔 :
저는 그렇게 이해했어요. 할머니의 마지막을 희망적인 느낌으로 장식해 주려는 걸로요.

청포도사탕 :
그냥 떨어져 죽은 게 아니라 자기는 진짜 잠수를 하려고 약간 그렇게 이해한 게 맞나 싶어서. 조금 어렵긴 하더라고요.

파인애플 :
이런 게 중간중간 한 번씩 나와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오월 :
어떨 때는 명확하게 알려주는 게 좋을 때도 있는데 고민해 보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게 이 책과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저도 물음표를 적어 둔 부분이 꽤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도 이 부분 좋았어요. 프리다이버 마리아 칼라힐.

청포도사탕 :
내가 이해한 게 맞는다면 부고를 그렇게 표현한 게 너무 괜찮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니까 좋네요.

파인애플 :
혼자 읽을 때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야기하면서 이해되는 부분도 있고요.

오월 :
현 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고독사 워크숍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시시하고 선량한 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분량이 꽤 되는데 바쁘신 와중에도 끝까지 읽고 성실하게 준비해 오셔서 오늘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 포함 모두가 혼자서 읽을 때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하니 의문점도 해결되고 다양한 의견도 나눌 수 있어서 책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다들 수고하셨고요.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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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2022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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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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