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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경기 꿈틀책방(제2회)

  • 작성일 2021-02-01
  • 조회수 797

[책방곡곡]

 

 

 

경기도 김포시 꿈틀책방(제2회)

안도현,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창비, 2020)

 

 

사회/원고정리 : 이숙희(꿈틀책방 책방지기)
참여 : 곽민희, 김보영, 양승주, 오민수, 최수이

 

 

 

 

 

    결국 이번엔 책방에서 만나지 못했습니다. 5인 이상 집합금지 규정 때문이죠. 시집으로 독서모임을 하는 것이 처음인 데다 비대면 진행이어서 적잖은 부담이었는데, 기우였습니다. 모니터 너머로도 책과 사람, 그리고 문학은 충분히 이어질 수 있더군요. 안도현 시인이 8년 만에 낸 11번째 시집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회자 : 지금까지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하거나 진행을 맡았는데, 시집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는 건 개인적으로 처음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지 궁금해요. 이 시집을 읽은 소감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곽민희 : 저는 이 시집을 두 번 필사했어요. 감수성이 떨어지는 편이라 시를 잘 이해 못 하는데, 이 시집도 한 번 읽어만 봤을 땐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데 손으로 따라 써내려가 보니 조금씩 느껴지는 것이 있었어요. 무엇보다 제가 시인을 섣불리 판단하고 오해했더라고요.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씀드립니다.

 

사회자 : 음, 시인에 대해 어떤 판단과 오해를 하셨는지 좀 더 얘기해 줄 수 있나요?

 

곽민희 : 시집 앞부분에 실린 「그릇」, 「연못을 들이다」, 「꽃밭의 경계」 같은 시를 읽고는 시인이 백 년 넘은 그릇을 가졌다기에, 집 마당에 연못과 꽃밭을 만든다고 하기에 그 사실에만 샘이 난 거예요. 하지만 시를 읽어 갈수록, 필사해 나갈수록, 시인을 이해하게 되고 시에 숨겨진 의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사회자 : 자신의 시집 한 권을 두 번이나 필사한 독자가 있다는 것으로도 시인은 충분히 기쁠 것 같아요.

 

곽민희 : 숙제 같았어요. 연륜 있는 시인인데 내가 함부로 말할 수 있겠나 싶어서 최소한 삼독은 하자고 마음먹었던 거죠.

 

양승주 : 저는 그 반대였어요. 살면서 시집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시든 소설이든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거나 내 스타일이 아니다 싶으면 그냥 덮어버렸거든요. 이번엔 독서모임을 하니까 겨우겨우 끝까지 보긴 했는데, 민희 님 말씀을 듣고 나니 좀 부끄러워지네요. 아, 시인이 무생채랑 뭇국을 좋아한다는 게 기억에 남았어요. 시인은 화려한 레시피가 필요 없는 담백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좀 더 알아보고 싶어졌고,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었어요.

 

최수이 :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하는 일은 드물지 않을까요? 저도 아무데나 펼쳐서 읽고 시 한 편을 오래 생각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이번 기회에 책꽂이에 꽂혀 있던 안도현 시집을 모두 꺼내 처음부터 읽어 봤어요. 이번이 11번째 시집인데 제가 10권을 갖고 있더군요.

 

사회자 : 세상에, 안도현 시인을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최수이 : 그간의 시집을 쭉 읽어 보니 변화가 느껴졌어요. 보통은 나이를 먹을수록 초기 시의 거친 맛을 잃고 너무 부드러워지기만 한 경우가 많잖아요. 안도현 시인의 이번 시집은 초기와 비교해 시와 삶의 거리가 확연히 좁혀지면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로도 보편적인 삶을 노래하고 있어서 좋았어요. 현실에 길들여져 가는 게 아니라 현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치열함이 여전히 살아 있어 인상적이었고요.

 

오민수 : 비슷한 맥락에서 저한테는 이 시집이 시와 에세이의 중간으로 다가왔어요. 일반적인 시어로 시작하다가 점점 개인적인 서사가 펼쳐지면서 빠져들었고, 각각의 시마다 다른 느낌을 얻었어요.

 

김보영 : 대중에게 알려진 것 외에 안도현 시인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고 그분의 시집은 처음 읽었는데, 왜 저는 안도현 시인의 시에서 선생님 같은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삶의 밑바닥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퍼 올린 시가 좋은데, 뭔가 틀이 느껴지더라고요. 가르쳐주려고 하는 느낌도 들고, 너무 세련된 거 같기도 하고. 좀 어려웠어요.

 

곽민희 : 몇 편의 시에서는 저도 비슷한 걸 느꼈어요. 시를 읽은 독자에게 여지를 남겨 주면 좋겠는데, 시인이 결론을 내버리는 것 같은.

 

사회자 :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곽민희 : 시집에 나와 있는 안도현 시인 프로필이 단 두 줄이라는 것과 연결되지 않을까요? 언제 태어나서 지금 뭐 하는 사람인지만 단 두 줄로 써놨잖아요. 그만큼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평생 시를 쓰고 가르쳐 온 사람이라는 걸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어요.

 

최수이 : 2012년에 발표한 시집 『북항』에 황현산 평론가의 해설이 실렸는데, 마지막에 이런 문장이 있어요. “그래서 해설자는 사족으로 한마디 덧붙인다. 시인이여, 늘 잘 쓰지 말라. 저 빛의 손상을 겁내지 말라.(p.110)” 안도현은 시작법이 굉장히 뛰어난 ‘프로 시인’이잖아요. 물론 저는 그의 쉽게 읽히면서도 깊은 시적 표현을 좋아하고 부러워하지만, 한편으론 보영 님처럼 느껴질 수 있겠다 싶어요. 어쩌면 그런 맥락에서 황현산 평론가가 충고한 것이 아닐까요?

 

양승주 : 시인이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이전까지 시에 대해 욕심을 부렸는데 지금은 덜하다.’라고. 돌아가신 황현산 선생님께서 이 시집을 보신다면 이번에는 뭐라고 사족을 다실까 궁금해지네요. 8년 전 내가 한 말을 잘 알아들었다고 하실지, 또 같은 말을 하실지 말이에요.

 

사회자 : 네, 그럼 이제 시집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다들 시집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게 처음이라 하셨는데요, 한참 머물렀던 시가 있다면 나눠 주시겠어요?

 

오민수 : 「시창작 강의」요. 직업마다 피해야 할 금기가 있는데, 시인은 고독이란 단어를 피해야 한다는 거. 처음엔 계속 피해 다녔지만, 이제는 굳이 그럴 필요도 없고, 오히려 고독을 찾는다는 게 재밌었어요. 첫 번째 「그릇」과 마지막 「식물도감」은 생각을 오래 하게 만든 시이고요.

 

최수이 : 저도 「시창작 강의」 좋았어요. 아이가 가끔 시를 써서 보여주는데 조언을 해주는 입장에서 공감되더라고요. 외롭다, 슬프다, 직접 쓰지 말고 비유나 상징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거든요. 시인의 입장에서 이런 시를 썼다는 건, 이제 무엇으로든 시를 쓸 수 있겠구나, 틀을 깨트리고 나오고 있구나, 라고 느꼈어요. 「호미」를 읽으면서는 과연 내가 갖고 있는 호미는 어떤 호미인가 생각했어요. 눈앞의 일에만 급급해 잘못된 일에 날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사는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사회자 : ‘호미는 불에 달구어질 때부터 자신을 녹이거나 오그려 겸손하게 내면을 다스렸을 것이다 날 끝으로 더 이상 뻗어나가지 않으려고 간신히 참으면서’

 

양승주 : 저는 처음엔 이렇다 할 만큼 마음에 드는 시가 없었어요. 매사에 원인과 결과, 논리적 상관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보니, 시를 읽으면서 자꾸 따지게 되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시 중의 하나가 「호미」였어요. 농사짓는 도구인 호미와 세상을 깊이 사랑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었던 거죠.

 

김보영 : 시 하나를 꼽기보다는 자기를 성찰할 수 있는 문장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릇」, 「꽃밭의 경계」, 「호미」와 같은 시의 문장들이 담담하게 나를 찾아와 스스로 깨닫게 해주더라고요.

 

양승주 : 보영 님 얘기를 듣고 보니 저도 「꽃밭의 경계」라는 시가 좋았던 것 같아요.

 

곽민희 : 저는 「임홍교 여사 약전」을 읽다가 코끝이 찡했어요. 일곱 쪽에 걸친 어머니의 전기시 한 편에서 힘들었던 시인의 지난 세월이 읽혔어요. 힘들고 가난했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와 닿았어요. 개인사이지만 보편적으로 다가왔던 거죠. 「안동」을 비롯한 다른 시들도 다시 보이더라고요. ‘누구도 폐허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라는 구절이 오래 남아 있어요. 한편으론 이런 형식, 이런 내용도 시가 되는 건가, 라는 의문이 일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오민수 : 어릴 때 너무 궁금해서 이상의 시를 찾아본 이후, 시에서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새로운 시도도 좋구나, 내가 알고 있던 틀을 벗어났다고 해서 시가 아닌 건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사회자 : 모든 책은 시작과 끝이 중요하지요. 모든 작가가 가장 고심하는 것이 첫 문장이고, 마지막 문장이 아닐까 해요. 이 시집은 「그릇」이 첫 번째 시로, 「식물도감」이 마지막 시로 선택되었는데요, 보편적인 접근에서 시작해 점점 개인의 서사로 옮겨가면서도 보편성을 잃지 않고 있다고, 앞에서 몇 분이 언급하셨는데요, 마지막 시 「식물도감」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봤으면 해요.

 

양승주 : 사실 저는 이 시집을 펼쳤을 때 제일 먼저 찾아본 시가 「식물도감」이에요. 과학적으로 검증된 내용이라기보다는 재밌는 표현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어요. ‘잔디 깎다가 방아깨비 두어 마리 허리도 잘랐다 그러고도 나 저녁밥 잘 먹었다’ 같은.

 

오민수 : 저는 꽃과 풀을 잘 몰라서 하나하나 다 찾아가면서 이 시를 읽었어요. 꽃과 나무 이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정말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 작약 빼고는 여기 나온 식물 죄다 모르겠더라고요. 집에 도감이 많은 편인데, 양적으로는 비교하기 어렵겠지만, 저한테는 이 시 한 편이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 가장 멋진 식물도감이었어요. 도감이란 게 원래 정보만 알려주는 건데, 이 시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식물도감이잖아요.

 

 

사회자 : 저도 식물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흥미를 느끼고 여러 번 읽게 되더라고요. 앞에 나온 시들과 형식도 다르고. 무엇보다 시집의 제목이 어디쯤 숨어 있나 궁금했는데 이 시에서 발견하고 기뻤죠.

 

곽민희 :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이 능소화가 되었구나, 라고 느껴졌어요. 시집 초반에 실린 「우물」이라는 시에 우물을 파다가 허공과 땅이 만났다는 표현이 있잖아요. 허공과 땅속의 입김이 만나 결국에는 능소화로 피어난 것이 아닌가 싶었죠. 시 안에 사계절과 다양한 식물과 여러 장소가 어우러져 있는데, 지금 우리는 그걸 잃어버린 것 같아요.

 

김보영 : 몰랐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시에 식물뿐 아니라 계절이 다 들어가 있네요. 저는 여기 나오는 시들이 대부분 낯익은데, 나이 때문인지 시골 생활을 한 덕분인지 모르겠어요. 다시 이 식물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만져 보고 싶어지네요. 한편으론 이 식물들은 죄다 시골에나 가야 만날 수 있는데,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요즘 아이들은 이거 다 무슨 말이야, 하겠어요.

 

곽민희 : 시인이 그걸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너희들이 도시에서 보는 식물은 장식용일 뿐이야, 식물 세계의 극히 일부일 뿐이야, 라고.

 

오민수 : 일반적으로 알려진 식물 이름도 다양하게 나오지만, 시인이 만들어낸 언어가 재밌어요.

 

사회자 : 가령, ‘사무치자, 막막하게 사무치자’ 같은.

 

오민수 : ‘6월에 제주 여행 가서 멀구슬나무꽃 핀 것 보지 못했다면 김포공항으로 돌아오지 말 일이다’니, 저는 김포공항에 돌아오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다가오는 6월엔 꼭 제주도에서 멀구슬나무꽃을 보고 오겠어요.

 

양승주 : 저는 지리산에서 하산하지 말았어야 해요. ‘지리산 노고단 가서 물매화 보지 못했다면 하산하지 마시게.’ 지리산을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네요.

 

김보영 : ‘아들아, 여자친구에게 혹여 점수 따고 싶거든 제비꽃 꽃반지 만드는 법 배워두거라’ 했는데, 남편한테 토끼풀 대신 제비꽃 꽃반지 해달라고 해야겠어요. 아이들한테 가르치고 말이죠.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시를 보니 훨씬 눈에 들어오는 게 많네요. 재밌어요.

 

사회자 : 민수 님 말씀처럼 최고의 식물도감 맞네요. 읽을수록 찾아보고 싶게 만들고 기억하게 되니까요. 저도 이 시에 나오는 식물 몇 가지는 처음 봤지만 절대 안 잊을 것 같아요.

 

최수이 : 「식물도감」 시에서는 뭐랄까, 시인의 연륜이 드러나더라고요. 치열한 데서 벗어나 주변의 작은 것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아는. 마지막 연에서는 달관도 느껴졌고요. 저도 민수 님처럼 사진을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읽었다면 더 좋았겠다 싶어요. 가만 보면 식물에 대한,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지리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다면 더 재밌게 읽힐 것 같고요. 영호남과 남북한을 아우르는 식물도감, 매력적이었어요.

 

양승주 :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쭉 듣다 보니 문득 저도 아까 민희 님 말씀처럼, 시집 제목의 ‘능소화’가 시인 자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능소화가 피면서 시인이 이렇게 (8년 만에) 시집을 낼 수 있었다는 비유가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이 시의 인상적이고 재밌는 구절을 나누긴 했지만 사실 전 마지막 구절이 제일 좋네요. ‘이름에 매달릴 거 없다 알아도 꽃이고 몰라도 꽃이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최수이 : 능소화가 시인을 의미할 수 있겠다는 말 공감해요. 왜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는지도 알 것 같고요.

 

사회자 : 능소화가 시인이라면,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양승주 : 꽃을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창가에 악기를 내다 걸 듯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시를 쓰겠다는 의미로 다가와요.

 

곽민희 : 창가에 악기를 ‘걸어두었다’가 아니라,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한 것을 보면, 그전에는 걸어두지 못하다가 이제는 걸어둘 수 있는 자격이 생겼다는 뜻 아닐까요? 시를 쓰지 못하다가, 또는 쓰지 않다가, 쓸 수 있게 된 시인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 같아요.

 

최수이 : 시인에게 ‘악기’란 시잖아요. 안도현 시인이 4년 전 절필을 한 이유가, 박근혜 대통령 아래에서는 글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이었죠.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고요. 암울한 시대를 지나 꽃이 활짝 피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여름이 되었고, 시인은 시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로 읽혀요.

 

이보영 : 능소화가 피는 여름이면 지천에 다른 꽃들도 피어나고, 꽃과 꽃향기가 어우러져 충분히 음악이 될 수 있어요. 창가에 핀 꽃이 얼마든지 악기가 되는 거지요.

 

양승주 : 악기를 벽에 걸 수도 있고 바닥에 내려놓을 수도 있는데,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좀 내보이고 싶었다는 뜻 아닐까요? 이제는 시를 좀 더 편안하게 쓸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곽민희 : 그죠. 창가에 저리도 활짝 꽃이 피었으니 이제 시를 써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사회자 : 실제로 시인은 절필 선언 후 자신을 돌아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대요. 시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이제는 작고 느린 것들에 대한 가치를 시로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죠.

 

오민수 : 지금 저는 혼자 시를 볼 때랑 이렇게 함께 모여서 이야기 나눌 때랑 너무 달라서 계속 놀라고 있어요. 열 명이 모여 토론을 하면 한 권이 아니라 열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게 아닌 거 같아요. 단순하게 몇 배의 수치로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새로운 가치가 있다고 봐요. 오늘 정말 많이 배웠어요. 저는 주로 외국 작가 위주로 시나 소설을 봤는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우리 시의 매력을 발견했어요. 다른 시집과 시인들도 찾아보고 싶어졌어요.

 

곽민희 : 저도 시집을 가지고 토론하는 건 처음인데, 정말 잘한 거 같아요. 시와 시인에 대한 편견도 깨트리고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어 좋았어요.

 

사회자 : 자연스럽게 마무리로 넘어가 볼까요.

 

양승주 : 문학을 많이 접해 보지 않아서 그런지 종종 틀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드는데요, 이렇게 독서모임을 하면 울타리 너머에도 뭔가 있구나, 생각하게 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경험하게 돼요. 혼자라면 못 할 텐데 함께여서 가능하네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김보영 : 시를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지만, 책모임에서 시집을 가지고 이야기 나눈 건 처음이에요. 다양한 생각을 만나고 깨닫는 순간이 귀하게 여겨졌고, 서로 다른 듯 비슷한 맥락과 숨겨진 연결고리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최수이 : 항상 느끼는 거지만 독서모임은 나를 넓고 깊게 만들어줘요. 오랫동안 안도현 시인을 좋아했고 그의 시를 꽤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에 시집을 다시 읽어 보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지나쳤던 부분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다음 모임도 정말 기대됩니다.

 

사회자 : 저도 새로운 경험을 꿈꾸게 되었어요. 꿈틀책방에 안도현 시인을 모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이숙희
사회·원고정리 / 이숙희

‘인생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라 믿고 사는 책방지기입니다.

 

곽민희
참여자 / 곽민희

매일 달리고, 채식을 하며, 책을 읽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김보영
참여자 / 김보영

그림책과 시를 사랑합니다. 세상에 밝은 리듬을 뿌리는 삶을 추구합니다.

 

양승주

참여자 / 양승주

공연과 캠핑, 책을 좋아하는 과학 강사입니다.

 

오민수

참여자 / 오민수

여덟 살 아들과 동네책방 여행하는 것이 취미입니다. 요즘은 독서모임의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최수이

참여자 / 최수이

책을 이고지고 사는 여자입니다.

 

 

   《문장웹진 2021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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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01
다시 서정을 위해

[에세이] 다시 서정을 위해 권상진 스무 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서른이 되기 전에 시인이 되겠다고 주변에 떠들고 다녔던 기억이 아슴하다. 「홀로서기」를 외웠고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외웠다. 이생진을 읽고 백창우를 읽고 박노해를 읽었다.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게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시편들이 심장을 가로세로로 뛰게 만들었다. 백석과 김수영과 기형도의 이름은 몰랐지만 굳이 그들이 아니어도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집이 이천 원에서 삼천 원 정도 할 때여서 큰 부담 없이 고를 수 있었고 외출할 때 시집 한 권을 들고 밖을 나서도 아무도 이상하게 쳐다보는 이도 없었다. 오히려 뭇 여성들의 시선이 슬쩍슬쩍 내 턱선을 지나 책장에 닿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생일이나 기념일에는 으레 서점에 들러 시집을 골랐다.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원태연),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친구가 화장실에 갔을 때』(신진호) 같은 시집을 골라 슬쩍 건네던 날들이 아련하다. 스물이라는, 가라앉을 것 하나 없는 맑은 감정에서 속살거리는 말들을 시인들은 대신 말해 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십 대는 가고 이십 대가 펼쳐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하고 대학을 쫓겨나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어느새 아무데도 기댈 수 없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오래된 가난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가난은 나를 가만히 두지를 않았다. 공장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해보는 노동이란 게 미치도록 좋았다. 종일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일이 알 수 없는 쾌감을 안겨 주었고 월급이라는 보상까지 덤으로 안겨 주었다. 시를 읽고 쓰는 일만큼 일이 재미있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없이 좋았다. 지쳐 잠들기 전 문득 돌아본 시의 한때는 짧은 여행지의 추억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나의 스물은 급류처럼 흘러갔고 시는 둑 너머에 있어 쉽게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일과 돈, 그리고 자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노동은 즐겁고 땀은 향기로웠지만 갑자기 내가 꿈꾸던 삶이 이런 것이었던가 하는 질문이 나를 툭 한 번 치고 갔다. 해지는 풍경만 봐도 맥박이 난동을 부리고 꽃과 낙엽의 표정을 살피면 왠지 모를 눈물이 맺히던 한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피곤에 지친 등을 흔들어 깨웠다. 시인이 되겠다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나를 공장 노동자로 내몰았던 대학교 재단 이사장의 말이 떠올랐다. ‘약속은 지키면 좋은 것이고 못 지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던 그의 말. 그가 지키지 않은 약속 때문에 학교에서 쫓겨난 나는 궤도를 이탈해 버린 행성처럼 어둠 속으로 무작정 떠밀려가고 있었다. 막막한 혼돈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던 약속이란 단어가 다시 나를 수습하고 있었다. 시간은 이미 서른을 지나갔고 아무도 내게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이는 없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은 끝내 지켜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가 다시 내게로 왔다. 세월도 변했고 시도 변해

  • 관리자
  • 2024-10-01
과거를 보는 미래 SF

[에세이] 과거를 보는 미래 SF 곽재식 며칠 전 나는 한 행사에서 SF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소개하는 발표를 하나 맡게 되었다. 발표가 다 끝나고 질문 답변 시간이 되었는데 청중 중 한 분이 “SF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왜 옛날 SF를 소개했느냐?”라고 질문했다. 그날 행사 중에는 답변을 짧게 드렸지만 이 내용은 한번 깊게 따져 볼 만한 재미난 주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명작 SF로 자주 손꼽히는 1970년대 영화로 <>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다. 찰턴 헤스턴이 주연을 맡아 대형 영화사에서 배급한 그야말로 정통 할리우드 영화인데 그러면서도 비참한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서 보여주는 내용이다. 그 결말도 뻔한 할리우드 영화의 행복한 결말이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눈에 뜨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는 SF 영화사에서 유명한 대사 순위를 꼽으면 상위권에 자주 오를 만큼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미래는 인구가 너무나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에 멸망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인구가 너무나 많은 데 비해 식량과 자원은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굶주리고 모든 물자가 부족해 다들 비참하게 살고 있다. 영화 제목인 “소일렌트 그린”이란 식량이 부족한 세상에서 특별히 개발해 보급 중인 신형 인공 식품을 말한다. 그러므로 <>은 19세기 맬서스의 등장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미래 인류의 멸망 시나리오라고 철석같이 밀었던, 맬서스 함정을 정통으로 다룬 영화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데,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성장한다.”라는 말은 어지간하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지구는 망한다, 그러니 사람이 많은 것은 해악이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은 곧 “사람이 곧 모든 파괴의 근원이며, 사람이 없어져야 지구가 살아난다.”는 생각으로도 자주 이어지기도 한다. 재미난 사실은 이 영화에서 다루는 멸망해 가는 미래가 2022년이라는 점이다. <>은 1973년에 개봉된 영화이므로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이란 영화가 제작되던 1972년으로부터 50년 후를 말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이 SF 영화에서 말하는 2022년의 미래라는 시간은, 2024년을 사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2년 전의 과거가 되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이렇게 시간의 꼬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신비롭다. 게다가 요즘 이 영화의 내용을 보다 보면 더욱 중요한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실제 2022년이 인구가 너무 많아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는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겪고 있는 2020년대는 인구가 너무 많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문제인 시대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한국에서 인구 문제가 워낙 극심하게 나타나

  • 관리자
  • 202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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