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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러브앤프리(제3회)

  • 작성일 2020-12-01
  • 조회수 1,088

[책방곡곡]

 

 

 

광주광역시 러브앤프리(제3회)

높은 곳에 서려면 언제나 용기가 필요했다.

– 백온유, 『유원』(창비, 2020) –

 

 

사회/원고정리 : 윤샛별(러브앤프리 책방지기)
참여 : 강성희, 구희진, 윤송일, 최미나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성장’이다. 누군가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건 뭉클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 단어를 갖기까지 수많은 일들과 수많은 감정들을 겪어 왔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러브앤프리에서 마지막으로 함께한 백온유 작가의 『유원』의 주인공 유원을 지켜보며 응원의 마음을 보내며 함께했다. 유원은 내 곁에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책을 읽으며 일상에서 잘 들여다보지 못했던 우리 곁의 이들과 또, 우리의 이야기가 더해지는 시간을 세 번을 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역시도 그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하는 ‘성장’의 걸음 중의 하나가 된다.

 

사회자 : 러브앤프리에서 진행한 〈책방곡곡〉 마지막 만남이에요. (웃음과 울음) 마지막 책은 청소년문학으로 선정했어요. 백온유 작가의 「유원」이죠. 청소년 교실 풍경과 인물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책인데,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구희진 : 저는 학창 시절이 생각났어요. 옥상을 진짜 좋아하던 학생이었거든요. 매일 아침 옥상에 올라가서 무등산에 인사하곤 했던 게 생생하게 생각났어요. 그리고 책을 보면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감정들이 느껴지잖아요. 저도 고등학생 당시에 감정이 복잡했거든요. 살면서 제일 복잡했던 시절이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주인공들이 그때의 나 같은 거예요. 굉장히 친숙하게 느끼면서 읽었어요.

 

윤송일 : 책 속에 나오는 사건들 하나하나가 제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과 비슷했어요. 가족을 잃었던, 친구를 잃었던 온갖 사람들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때의 사건들이 너무 많이 생각나서 책을 읽다가 덮고, 읽다가 덮었어요.

 

최미나 :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유원이라는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는데, 마지막 246쪽에 유원이 어렸을 적 자신을 구해 줬던 아저씨에게 이런 말을 해요.

 

    “그때, 제가 너무 무거웠죠. 제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 다리가 으스러진 거잖아요. 죄송해요. 제가 무거워서, 아저씨를 다치게 해서, 불행하게 해서. ……그런데 아저씨가 저한테 그래요. 아저씨가 너무 무거워서 감당하기 힘들어요.”

 

최미나 : 이 부분이 가장 슬펐어요. 눈물이 나서 화장지로 꾹꾹 닦았어요. (웃음)

 

사회자 : 저도 뭉클했어요. 유원이가 스스로 일어섰다는 걸 보여주는 말들이잖아요.

 

최미나 : 유원이의 마음이 잘 표현된 것 같아요. 자기한테도 하고 싶었던 말이고, 아저씨한테도 하고 싶었던 말이잖아요. 속이 시원하면서도 이 말을 하기까지, 이 마음을 알아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 과정이 ‘제가 너무 무거웠죠.’라며 시작하는 말에 다 들어 있는 거죠.

 

강성희 : 『유원』이 청소년 소설이잖아요. 화자가 엄마나 아빠였으면 훨씬 더 무거웠을 것 같은데 청소년이기 때문에 가볍고 직설적으로 쓰인 것 같았어요.

 

윤송일 : 그리고 좀 더 기운찬 느낌이 있어요.

 

구희진 : 맞아요. 건강한 느낌이 있어요.

 

윤송일 : 유원의 아버지는 아저씨에게 그러지 말라고 쉽게 말하지 못하잖아요. 근데 유원은 할 수 있잖아요. 청소년이니까 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지 않을까. 어른들이면 생각해야 할 게 더 많으니까요.

 

최미나 : 유원이 청소년 시기가 아니라도 언젠가는 말했어야 할 이야기였다고 생각해요. 유원이 그런 말을 해요. '나는 그 아저씨한테 당연히 고마워해야 하는데, 고마워해야 할 사람에게 사나운 마음을 갖는다.' 아저씨의 행태가 좋지는 않잖아요. 고마워할 수가 없는데 주변의 시선과 부모님의 태도를 보면서 고마워해야 하는데 자기 마음 안에서는 밉고, 버겁고, 무겁고, 힘겹고, 저 아저씨 싫은데 드러낼 수 없는. 본인의 숙제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사회자 : 유원이라는 사람이 여러 상황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과정을 다 딛고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거죠.

 

 

최미나 : 사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은데 유원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감정선이 변해 가는 게 보였는데요. 유원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해서 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려는 거죠. 그러면서도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졌고요. 교실을 찾아가는 복도의 장면 묘사가 인상 깊었어요.

 

    ‘교실은 매우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했다. 모두에게 떠들 친구가 있었다. 소용없는 이야기를 들어줄 귀가 있었다. ……복도는 직선으로 되어 있는데 멀고 먼 길을 겨우 돌아온 것 같았다.’

 

구희진 : 복도에서 교실까지 걸어가는데 인사할 친구가 없다는 걸 보여줘요. 모두에게는 친구가 있다는 걸, 복도 풍경으로 서술하며 보여주는 거죠. 유원이라는 친구가 이 학교를 가는 게 어떤 감정일까 생각해 보게 하더라고요.

 

최미나 : 최근에 학교 밖을 나온 청소년들의 인터뷰 녹취록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공통적인 어려움 중의 하나가 친구가 없다는 거였어요. 고등학생 나이인 친구에게 ‘초등학교 때는 어땠어?’라고 묻는데, 그때도 친구는 없었다는 거예요. 그러면 몇 년을 고립된 상태에서 지냈겠구나. 유원은 수현이라는 친구 덕분에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은 거잖아요. 그런 친구가 한 명 있는 게 정말 중요한 거구나. 유원을 보면서 실제 아이들의 인터뷰가 오버랩 되더라고요.

 

윤송일 : 한 사람의 정서 형성에 부모님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만 청소년 시기에 친구도 정말 중요해요.

 

구희진 : 저는 친구가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에는 친구가 ‘내 우주, 내 모든 것’이었어요. 꼬마 때야 부모님이 중요했지만 조금만 커도 엄마 아빠 신경도 안 쓰고 친구랑 놀러 다니잖아요. 엄마 아빠 말하면 안 듣기 시작하고요. (웃음)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 친구이기 때문에 유원에게 수현이라는 존재 하나가 열여덟 살이 되기까지 풀지 못하고 억눌려 있었던 걸 해결하게 만들어준 게 아닐까 싶어요.

 

사회자 : 친구는 처음 만나는 타인이라는 생각을 해요. 유원에게는 수현이었던 거죠. 친구를 통해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을 알게 되는 거죠. 유원이 그런 경험을 하죠. 그러면서 성장을 하고요.

 

구희진 : 사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없이 그냥 지나가 버리기도 하죠. 수현이라는 존재가 굉장히 특별하잖아요. 저는 수현이를 보면서 웬만한 성숙한 어른보다 더 성숙한 청소년으로 보였어요. 이 친구도 수많은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어떤 시간을 지나왔기에 유원을 도와줄 수 있는 아이가 됐을까.

 

강성희 : 유원이에게 아무도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넌 괜찮아’, ‘지금까지 잘해 왔어.’라고 하지 않았는데 수현이가 그걸 해준 거죠. 다른 친구였다면 용기를 못 냈을 텐데 수현이라는 존재를 만났기 때문에 유원이가 더 용기를 냈던 거죠.

 

윤송일 : 수현이랑 대비되는 캐릭터가 있잖아요. 세진이라는 친구인데요. 보통의 친구들이죠. 저 역시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유원이는 ‘사건’을 겪은 애니까 친절하게 해줘야 해, 잘해 줘야 해, 이렇게 생각하는 거요. 그런데 수현은 다르죠.

 

최미나 : 책 제목이 『유원』이잖아요. 「수현」 편이 나오면 또 다르게 나오지 않을까요? (웃음) 유원이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라면 수현이는 또 다른 의지할 수 있는 타인을 만났거나 혹은 스스로 내면의 힘을 키우는 무언가 있었던 거죠. 보통의 아픔을 겪고 그러진 못했을 거예요.

 

강성희 :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바다에 빠진 듯한 답답함을 느꼈어요. 은혜라는 부채감이라는 게 정말 싫거든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 영웅들의 이야기를 한 번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구희진 : 첫 문장부터 ‘나는 미안해하며 눈을 떴다.’로 시작해요.

 

윤송일 : 계속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구희진 : 십일 년이 지나도록 죽은 언니의 생일이 다가오면 미안해하며 눈을 뜨고 내 모든 존재가 거부당하는 거잖아요. 사실 언니는 기억도 안 나는데 누구의 동생으로만 불리는 거죠. 오랜 시간을 그렇게 보낸다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내 얘기는 아무도 안 하고, 나를 조심하는 사람들만 만난다면 너무 불편할 것 같아요.

 

윤송일 : 자살한 유가족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어요. 유가족들이 패널로 나와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하는데요. 지인이랑 대화를 하다가 미소를 지었나 봐요. 그랬더니 상대방이 그러더래요. “웃음이 나와요?” 평범한 일상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강성희 : 사회에서 피해자를 보는 시선이 정해져 있어요.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거죠. 피해자는 항상 우울해야 하고 슬퍼해야 하고 웃지도 말아야 하고 이런 편견이 무서워요.

 

구희진 : 인터넷 댓글도 그렇잖아요. 이미 몇 십 년 지났는데도 ‘걔는 잘살고 있을까? 착하게 커야 할 텐데.’ 언제든지 확인할 수 있잖아요. ‘이불 아기'를 치면 지금도 그 기록은 남아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유원이가 정말 대단하다. 나였다면 계속 살 수 있었을까. 이런 선택을 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이 계속 들어요.

 

사회자 : 최근에 뉴스에서 본 ‘라면 형제'가 떠오르네요. 나중에 자라서 유원이 될 수도 있잖아요.

 

구희진 : 낙인 안에서 자유롭긴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라면 형제'라고 이야기하는 것부터 낙인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유원도 몇 십 년이 지나도 ‘이불 아기'잖아요. 그것에서 벗어나서 살아가기는 참 어려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본인들이 알아서 살아가려고 해도 주변에서 놔두지 않으니까. 계속 한마디씩 거들고 말이죠.

 

강성희 : 미디어가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자가 쓴 기사에 따라 유원은 긴 시간을 ‘이불 아기’로 살아가는 거잖아요. 펜이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아이 낳고 도망간 ‘비정한’ 엄마 기사도 떠오르네요. 그 상황도 모르고 왜 ‘비정한’을 붙이는지.

 

최미나 : 여러 방식의 폭력을 유원이가 경험한 것 같아요. 자라면서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또, 미디어에서도 또 다른 폭력이 계속 덧씌워지는 거죠. 여기서 혐오가 되고 파생되는 여러 가지가 또 만들어지고요. 폭력이 뭘까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간디가 ‘폭력은 사색과 이성적인 의사소통이 깨지기 시작되는 그때, 폭력이 시작된다.’라고 해요. 내가 어떤 말을 내뱉고, 어떤 글을 쓰고, 나라면 어떤 기사를 쓰고, 어떤 댓글을 달아야 하는지. 사색하지 않고 보이는 대로 쓰고 행동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폭력으로 전해지게 된 게 아닐까. 유원이 마땅한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주변에서 감정적인 의사소통 방식만 행하는 거죠.

 

강성희 : 유원의 반 친구들이 유원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것도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들도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그래서 유원을 조심스럽게 대했던 거고. 그것도 배려하는 거니까. 그렇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윤송일 : 주변에서 터지기 직전의 종기를 다루는 것처럼 조심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조심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기억나고 상처가 되기도 하잖아요.

 

최미나 : 세월호에서 생존한 학생들도 생각나네요. 마땅한 죄책감과 생존했지만 살아남았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움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을까. 그걸 보면서 ‘그러지 마라.’라는 말도 그 친구들에게는 안 좋지 않을까. 또 상대적으로 그때 시신을 찾지 못했던 세월호 유가족들도 있고요. 어찌 됐든 이 말을 하든 저 말을 하든 다 상처가 되죠.

 

강성희 : 그런 말도 있지 않았어요? 세월호 생존자한테 ‘네가 남은 애들 목숨까지 살아 네가 더 잘살아야지.’ 이게 정말 폭력 아닐까요.

 

구희진 : 『유원』에도 나오지 않아요? ‘너는 두 배로 잘살아야지.’ 그 말을 듣고는 수현이가 한 마디 하잖아요. ‘그냥 사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두 배로 행복하게 살아.’ 유원이가 너무 하고 싶지만 못 했던 말을 대신하죠. 사실 나는 할 수 없다고 강요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이잖아요.

 

 

사회자 : 여러분은 어떠세요? 누군가를 만나서 나를 더 표현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경험이 있나요?

 

사회자 : 제가 먼저 이야기할까요. 저는 대학 동아리 활동이 참 좋았어요. 여자 선후배로만 구성된 소모임이었는데요. 언니들이 너무 괜찮았어요. 남자 선배들이 질투하고 시기할 정도로 뛰어난 선배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언니들하고 대학생활을 즐겁게 했죠.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요.

 

구희진 : 저는 대학교 때 변했어요. 가족 때문에 힘든 경우가 정말 많잖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삶의 목표는 엄마를 기쁘게 하는 거였어요. 왜냐면 엄마는 나 아니어도 너무 힘든 거예요. 제 감정이나 욕구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학에서 철학 공부에 푹 빠져 있었어요. 나를 생각하고 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면서 서서히 내가 좋아하는 거는 뭘까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바뀐 것 같아요.

 

구희진 : 친구들한테도 영향을 받았고요. 대학 때 친해진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니까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쩜 서로 다 알고 만난 것처럼 서로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면서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깨달으면서 힘들었던 기억을 서서히 극복했던 것 같아요.

 

강성희 : 두 가지가 생각나는데요. 첫 번째는 엄마예요. 엄마는 저한테 ‘다 잘한다 잘한다.’ 항상 이렇게 말해 주셨어요. 그래서 부모가 자식한테 살 빼라고, 성형하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해가 안 갔거든요. 사춘기가 되면서 외모에 관심이 생기니까 쌍꺼풀 좀 해볼까 그러면, 엄마가 ‘너는 지금 눈이 최고야.’ 하고, 제가 하체에 살이 있는 편이어서 살 좀 빼야 할까 하면, 엄마는 ‘그게 미국 체형이야. 너는 너무 예뻐.’ 항상 그렇게 말해 주셨거든요.

 

최미나 : 부럽네요. 저희 엄마는 ‘아직도 생각이 없니?’ 하세요.

 

구희진 : 저희 엄마는 병원까지 정해 놨다고 가기만 하면 된다고 하세요. (다 같이 웃음)

 

강성희 : 자라서는 페미니즘 공부가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내가 못생겼나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될 때 그런 마음을 갖게 했어요. 더 당당해져도 된다. 여자도 다리를 벌리고 앉아도 되고, 살쪄도 되고, 피부에 뭐 나도 된다. 좋은 영향을 받았어요.

 

최미나 : 저는 어렸을 때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착한 딸의 대표였어요. 실제로 집에서 상당히 착합니다. (웃음) 책에서 ‘마땅한 죄책감’이라는 말이 가장 와 닿았어요. 엄마는 사랑이 많고 오빠하고는 나이 차이가 있어요. 딸의 입장에서 엄마가 고생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도맡게 된 거죠. 제 기억에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밥을 짓기 시작했어요. ‘엄마를 힘들게 하면 안 돼’, 또 ‘엄마 아빠가 싸우면 안 돼’ 그런 마음이 항상 있었어요. 20대가 돼서도 항상 집안일을 챙기고 더 놀고, 일하고 싶은데 부모님 저녁밥은 차려드려야 했어요. 아, 싫더라고요. 집에서 벗어나 혼자서 여행을 많이 다녔죠. 그러면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죠. ‘내가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유원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부모님이 그렇게까지 살라고 한 적 없는데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은 엄마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니까 과함, 죄책감, 오버하지 않아도 되는 착한 아이에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윤송일 : 저는 제 대학교수님이에요. 음악 공부를 했어요. 작곡인데요. 악기를 연주하든 곡을 쓰든 음악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이 드러나요. 어느 날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너는 항상 슬픈 곡, 우울한 곡만 쓴다.”고요. 그때까지 몰랐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느꼈어요. 그 뒤로 아무 말씀 안 하셨는데 계속 지켜봐 주셨어요. 레슨도 원래 한 주에 한 번 받아요. 그런데 저는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레슨 받고 또, 수업 듣고 레슨 받고 완전 특혜 같은 거였어요. 옆에서 계속 끌어 주셨어요. 곡을 쓰는 것도 공연을 하는 것도 항상 옆에서 가르쳐주셔서 시야가 넓어질 수 있게 도와주셨어요.

 

강성희 : 본인이 잘하니까 그렇게 끌어 주셨겠죠. (다 같이 웃음)

 

사회자 : 각자 어떤 시기에 타인의 영향이 있었네요.

 

강성희 :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스트레스도 받지만 또, 사람을 만나면서 치유되는 것도 많잖아요. 유원이도 그렇죠.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지만 치유를 주는 것도 사람이에요.

 

구희진 : 나로부터 멀어지는 게 성장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나 자신에 너무 몰입해 있는 시기가 어렸을 때인데, 타인을 만나고 다양한 환경을 접하고 경험하면서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고 나 이외의 다른 것들도 보게 되면서 우리는 자라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최미나 : 책의 마지막에 유원이 귀한 선물을 받아요.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건 멀리서 숲을 보는 거잖아요. 소설의 첫 시작과 마지막이 완전히 달라요. 먼 곳에서 숲에 둘러싸여 있는 나를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는 거죠. 저의 삶을 보더라도 그때는 착한 아이였지만 지금의 착한 나와는 다른 것 같아요. 결국 이 친구는 자유를 경험한 게 아닐까, 언니로부터도 가벼워지지 않았을까 싶어요. /p>

 

윤송일 : 살면서 도움을 계속 받지만 결국 자기를 달래고 구원하는 건 자기 자신이 아닐까요. 친구를 의지하고 도움도 받지만 결국에 용기를 내는 건, 주인공 유원이잖아요. 자기를 달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이에요.

 

사회자 : 네, 오늘도 <오후 3시 클럽> 뜨겁게 이야기 나눴어요. 유원이가 먼저 자신의 성장 이야기를 꺼내 줘서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어요. 마지막 모임 즐거웠습니다.

 

 

 

 

 

 

 

 

 

 

 

 

윤샛별

사회·원고정리 / 윤샛별

사랑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은 바람을 담은 서점의 책방지기입니다.

 

강성희
참여자 / 강성희

책에서 문장을 수집하는 디자이너이며 여성독서모임 ‘도그이어’를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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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 구희진

좋은 이야기에 매일 반하며 읽고 쓰는 온라인 책방 ‘언두북스’ 운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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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 윤송일

퀴어이고, 개를 키우고, 음악을 합니다.

 

김수운

참여자 / 최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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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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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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