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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차방책방(3회)

  • 작성일 2020-09-01
  • 조회수 1,446

[책방곡곡]

 

 

 

대구 차방책방(3회)

지금, 여기, 한국 문학

『사랑을 위한 되풀이』 황인찬

 

 

사회/원고정리 : 이재은
참여자 : 이재진, 홍지훈, 신해리, 김수운

 

 

 

 

 

    사랑 같은 것은 그냥 아무에게나 줘버리면 된다.’는 시인의 말처럼 어떤 상황과 순간에도 누구에게든 줘버릴 사랑은 생겨나고 사랑이 되풀이되는 우리의 삶은 황인찬의 문장만큼 사랑스럽고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문을 열고 나가면 아는 것들만이 펼쳐져 있는데, 문을 열고 나가면 모르는 일들뿐이라’는 시인의 문장처럼 삶은 매일 익숙한 것들로 반복되는데, 코로나19와 폭우로 익숙하지 않은 매일의 시간들을 마주하면서 사랑이라는 마음은 때때로 용기가, 때때로 위로가 된다. 권태롭다면 권태롭고 새롭다면 한없이 새로울 우리들의 삶, 모두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오늘도 사랑을 권한다.

 

사회자 : 안녕하세요. 지금, 여기, 한국 문학이라는 주제로 만나는 덕,서의 세 번째 모임이네요. 이번에 읽은 책은 황인찬 시인의 『사랑을 위한 되풀이』라는 시집입니다. 2010년 등단하면서 『구관조 씻기기』 (2012), 『희지의 세계』 (2015)를 통해 독특하고 감각적인 시를 보여준 작가라고 생각해요. 시집이 처음인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읽으셨나요?

 

홍지훈 : 시를 자주 접하지 않지만 모임 등을 통해서 읽었던 시집 중에 제일 잘 읽혔어요. 일상적인 삶의 내용들을 담은 시들이 많았기 때문에 쉽게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지점이 있었어요.

 

신해리 : 학생일 때 시가 진짜 어려웠어요. 백과 같은 거 보면서 일일이 밑줄 치며 공부했던 기억이 있어요. 언어를 새로 배우는 느낌으로 시를 배워서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이재진 : 맞아요. 시인들이 시를 쓰면서 생각했던 것보다 읽는 우리가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읽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시집을 전에 한 번 읽고 이번 모임 때문에 다시 읽었어요. 첫 번째 읽을 때는 밝은 내용의 시집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으니까 시인이 말하는 사랑이 내가 생각했던 사랑과는 또 다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 읽었을 때와 다시 읽었을 때 다가오는 감정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면서 읽었어요. 어려운 건 당연하고요. (웃음)

 

사회자 :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시는 뭐랄까, 모국어로 할 수 있는 문학적 유희 중에 고차원 단위라고 생각하거든요. 문학이 생겨난 건 결국 인간의 유희를 위해서니까요. 모음과 자음, 단어들을 배치하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재미가 있고 그래서 곱씹어야 더 재밌다고 생각해요. 그런 발견이 많아질수록 시를 찾게 되는 것 같고요.

 

신해리 : 그리고 이 시집에서 재밌었던 건 시를 읽는 느낌보다 희곡을 읽는 느낌이 더 컸어요. 설명도 많은 편이라고 느꼈고요. 시인이 시 안에서 불쑥불쑥 자기를 드러내서 모노드라마 같기도 했어요. 지난번에 읽었던 소설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면 단어나 문장구조가 굉장히 감각적이었는데 이런 감각적인 표현이 요즘 트렌드인가라는 생각도 했어요.

 

김수운 : 저는 읽으면서 이런 게 시가 될 수 있다고? 이게 시라고? 생각하면서 읽었어요. 주입식 교육으로 배운 시는 정렬되어 있고 구조도 명확했는데 이렇게 쓰인 시는 처음 봐서 시를 이렇게 쓸 수도 있다는 걸 알았어요.

 

사회자 : 「요가학원」이라는 시를 통해서 시인도 시 쓰기에 대한 고민을 표현한 것 같아요. ‘좋은 시인이 못 되면 소라도 되어야지’라면서 교과서에 나오는 시들을 인용하고 그다음에 황인찬식 시 쓰기가 연결되어 나오거든요. 사람들이 좋은 시라고 기대하는 시의 형태가 있고 시인이 써내려가는 시의 형태는 그것과는 다르고…… 무엇이 좋은 시인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제가 모임 오기 전에 기억에 남았거나 함께 나누고 싶은 시가 있다면 가져와 달라고 했잖아요. 함께 소리 내서 낭독하고 나눠 보면 좋겠어요.

 

홍지훈 : 저는 「부곡」이라는 시를 읽을게요.

 

    폐업한 온천에
    몰래 들어간 적이 있어

 

    물은 끊기고
    불은 꺼지고

 

    요괴들이 살 것 같은 곳이었어
    센과 치히로에서 본 것처럼

 

    너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론가 멀리 가버렸어

 

    풀이 허리까지 올라온 공원
    아이들이 있었던 세상

 

    세상은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 빈 것이다
    앞으로는 이 고독을 견뎌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긴 터널을 지나 낡은 유원지를 빠져나오면
    사람들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부곡」 전문


 

한 번씩 혼자 있고 싶을 때 ‘세상은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 빈 것이다 앞으로는 이 고독을 견뎌야 한다’라는 문장에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는 문장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좋았어요.

 

이재은 : 어린 시절 유치원에서 자주 간 부곡하와이가 생각나는 시였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부곡하와이도 사람들로 늘 붐비는 곳이었잖아요. 고독이 있기 전 그곳의 모습과 찾는 이가 없어져 오롯이 견뎌야 하는 고독의 시간에 대해서 생각했어요. 살아가는 일도 고독을 견뎌야 하지만 그 터널을 빠져나오면 늘 붐비는 유원지의 모습과 같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고요.

 

이재진 : 시를 읽는 데 도움이 됐던 건 센과 치히로였어요. 문장 속에서 센과 치히로를 발견하는 순간 이 시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올랐고 그때부터 시가 더 잘 읽혔던 것 같아요. 어떤 대표성을 가지는 이미지가 시 안에 있을 때 독자들은 도움을 받는 것 같아요.
저는 「아카이브」라는 시를 준비했어요.

 

    이 계단을 오르면 집에 이른다

 

    제비들이 창턱에 앉아 뭐라 떠들고 있다
    그것이 여름이다

 

    장미가 피는 것을 보며 여름을 알고
    무궁화가 피는 것을 보며 여름인 줄을 알고

 

    벌써 여름이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지난여름에도 똑같은 말과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알아차리는 순간 이 알아차림을 평생 반복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순간마다 여름은 창턱을 떠나 날아갈 준비를 한다

 

    이 계단은 집을 벗어난다

 

    여름이 무리 지어 날아다니고 여름이 이리저리 피어 있는 풍경이다
낮은 풀들이 한쪽으로 밟혀 누워 있다

 

    발자국은 보이지 않는다

 

    이 누적 없는 반복을 삶과 구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이 시의 서정적 일면이다

 

    「아카이브」 전문

 

이 시는 내용과 결말, 제목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요. 아카이브라는 말이 기록의 누적이라는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서 더 잘 이해됐어요. 누적 없는 반복과 삶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문장을 통해서 누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미 그 안에 무수한 누적이 있음을 말하는 부분이 좋더라고요. 우리는 여름이 온다는 말 자체에도 이미 무수하게 겪었던 여름을 떠올리게 되고 경험했기 때문에 다시 여름이라는 걸 깨닫는 것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카이브 안에 속해 있는 것이 좋았어요.

 

홍지훈 : 이 시를 읽으면서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됐었거든요. 이렇게 들으니 시의 제목과 내용이 명확하게 다가오네요.

 

김수운 : 저도 새롭게 깨닫고 갑니다. 읽고 난 다음에 말줄임표처럼 어…… 하고 생각에 잠겼는데 이런 내용이었네요.

 

이재은 : 마지막 문장을 자꾸 곱씹게 되는데 우리가 삶을 누적시킬 수는 없잖아요. 각 개인의 삶은 한 번만 있고 우리가 몇 개의 생을 살아낼 것이 아니니까. 누적이 없는 삶인데 매일의 일상은 반복되고 있고 그래서 이 삶은 반복의 삶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누적 없는 삶이라는 말과 맞닿게 되는 것 같고 통찰의 문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요.

 

이재진 : 아! 그리고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가 장미가 피던 5월이었어요. 지천에 핀 장미를 바라보는데 이 시가 생각이 나는 거예요. 와, 나 시 읽는 보람이 있다, 책을 읽는 보람이 있다, 시가 내 삶에 들어온다 그런 경험을 했어요.

 

사회자 : 다른 문학도 똑같겠지만 시는 능동적인 독서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를 읽고 스스로의 사유를 거쳐야만 내 것이 된다는 지점에서? 장미를 보고 이 시를 떠올린 것처럼.

 

신해리 : 저는 좋았던 거 많아요. 「재생력」도 좋았고 「아카이브」도 좋았고 「화면보호기로서의 자연」도 좋고요. 근데 좋았던 거보다는 신선했던 걸 얘기하고 싶어요. 감각적으로 읽혔던 「너의 살은 푸르고」를 같이 읽었으면 해요.

 

    그날 밤, 바다에서
    우리가 보았던 것은

 

    해변의 놀이공원,
    부모와 아이 하나로 이루어진 현대적 가족,
    요란스럽기만 한 불꽃놀이와
    어떤 기대 속에서 몸을 붙여 걷던 연인들

 

    “바다 냄새는 죽은 생물들이 내는 냄새래”
    그렇게 말하던 너의 살은 푸르고 짠 냄새가 났지

 

    그날 이후로
    너무 푸른 것은 구분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발자국을 따라 홀로 걸었다

 

    이제 해변에는 아무도 없구나

 

    바닷가의 텅 빈 유원지,
    출렁이는 검은 모래,
    죽은 물새 떼와 영원히 푸른 달빛

 

    “너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네가 말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눈앞에 펼쳐진 밤과 바다가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을 지켜보던 두 사람이 구분되지 않고,

 

    너를 생각하는 이 마음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해변의 발자국은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어갔다 푸른 밤 속으로

 

    「너의 살은 푸르고」 전문

 

뭔가 여름밤을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바다 냄새는 죽은 생물들이 내는 냄새래 그렇게 말하던 너의 살은 푸르고 짠 냄새가 났지’라는 문장이 시각, 촉각 같은 감각적인 것들을 자극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시가 가진 분위기 자체가 좋았어요. 한편으로는 황인찬 시인이 비슷한 경험을 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어요.

 

이재진 : 이 시도 그렇지만 저는 전체적인 맥락에서 퀴어적인 부분을 계속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죽음, 실패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유난히 많은데 죽음이라는 것이 실제의 죽음일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아 왔던 사랑과 다르다는 점에서 죽음이라는 상징을 가져온 것 같았어요.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에서는 직설적으로 말하기도 했고요.

 

신해리 : 아, 저도 그런 시가 몇 개 있는데 예를 들면 「떡을 치고도 남은 것들」이라는 시였어요. 많은 메타포가 깔려 있다고 생각했고, 성적 긴장감이 굉장히 높은 시면서 퀴어에 대한 부분들이 드러나는 시라고 생각했어요.

 

이재진 : 시라서 훨씬 더 상징적이고 구조적인 문장 안에 있어서 맥락이 더 잘 보였던 것 같아요.

 

신해리 : 그리고 실패한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시인의 사랑에 대한 태도? 생각이 드러나서 좋았던 시가 있어요.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다들 미안하다고 하더라”」에서 ‘사랑해, 그런 말을 들으면 책임을 내게 미루는 것 같고 사랑하라, 그런 말은 그저 무책임한데’라고 하거든요.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을 대할 때 묵직하게, 가볍지 않게 생각하는구나. 상대에 대해서 뭐랄까, 배려가 있는 사람이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수운 : 저는 사실 지금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라서 시라는 걸 아예 모르니까 어려운지 쉬운지 잘 모르고 읽었는데 함께 읽다 보니까 새로운 것들이 많아요. 저한테 익숙한 것들이 많이 나왔던 「고딕」이라는 시를 함께 읽을게요.

 

    연못에 오리들이 떠 있다
    저 오리들 다 기계인 거 알아요?

 

    그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저희가 만들었어요

 

    우리는 학교 연못가에 앉아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새의 뼈를 모방해서 만들어진 알루미늄 조립 구조에 대해 말했다

 

    또한 거기에 매달린 오리 깃에 대해, 한 마리의 기계 오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진짜 오리 한 마리분의 깃털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리고 회색기러기의 본능 동작과 자극에 의한 동작에 대한 선구적인 비교행동학 연구가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인공 연못 위를 떠다니는 기계 오리들은 가끔 물밑으로 자맥질하고, 그러다 날개를 퍼덕인다

 

    주말의 빛이 수면 위에 고여 있고
    오리들은 빛을 부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위해 하는 말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아기 오리 한 마리가 연잎 위를 기우뚱대며 걷고 있었다 저 오리는, 그가 말한다

 

    저렇게 영원히 아기 오리인 채로 작동하는 거예요

 

    영원한 아기 오리에게는
    오리 반 마리분의 깃털이 필요하겠지

 

   오리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대고 꽥 울어댄다
   그는 이제 내가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일상적인 단어를 가졌거나 크게 와 닿고 공감이 가는 건 아닌데요. ‘주말의 빛이 수면 위에 고여 있고 오리들은 빛을 부수고 있다’라는 문장, 오리들이 파닥파닥 하면서 빛을 부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어떤 존재의 개입으로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부서지는 장면이 희한하게 와 닿았어요.

 

사회자 : 뭔가 우리가 어떤 존재를 이해할 때의 과정 같기도 하네요. 오늘 모임은 평소와 다르게 각자의 호흡과 속도로 소리 내어 읽으면서 함께 나눴어요. 이렇게 소리 내어 읽어 보니 어떤가요?

 

홍지훈 : 시를 소리 내서 읽으니까 그냥 읽기만 했을 때보다는 시에서 느낀 감정이 강하게 다가왔고 이 감정에 대해서 곱씹어 볼 수 있었어요.

 

이재진 : 눈으로 읽었을 때 놓쳤던 부분이나 감정까지 콕 짚어낼 수 있다는 게 좋은 점 같아요. 그리고 함께 읽으니까 내가 어려워했던 부분과 그냥 읽기만 했던 시에도 다른 의미가 생기고 여러 가지 생각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신해리 : 소리 내서 읽는다는 게 어색했어요. 어디서 쉬어야 할지 속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목소리는 또…… 우왕좌왕했던 것 같은데 낭독으로 글을 한 번 더 읽으니까 글을 꼭꼭 씹어 먹는 기분이었어요. 급하지 않게, 체하지 않게. 어려운 문장들도 느린 호흡으로 함께 읽어서 좋았어요.

 

김수운 : 혼자 글로 읽을 때보다 긴장도 되고 묘하게 내용 안에 빠져드는 느낌도 들고 학생일 때 교실에서 소리 내서 읽었던 기억이 났어요.

 

사회자 : 다들 이렇게 세 번의 모임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줄 평 해주세요.

 

김수운 : 혼돈의 카오스. (웃음)

 

홍지훈 : 일상 속으로 스며들게 된 시.

 

이재진 : ‘바닥이 눋지 않게 주걱으로 잘 저어야 하고, 너무 졸여서 딱딱해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깨물면 과즙이 흐르는」 이게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해리 : 어째서 이 시가 좋으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이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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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 홍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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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 신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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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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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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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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