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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곡곡 춘천 서툰책방 2편 ―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 작성일 2019-08-01
  • 조회수 831

[독자모임-책방곡곡]

 

 

책방곡곡 춘천 서툰책방 2편
―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날에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사회/원고정리 : 정승희
참여 : 한주석, 김상아, 박은솔, 조성윤

 

 

 

    우아한 밤은 언제 찾아오는 걸까. 너무 피곤해 잠이 쏟아지는 밤도 아니고, 눈물범벅인 밤도 아니고, 걱정거리를 껴안고 스마트폰을 하며 보내는 밤도 아닌 우아한 밤. 그런 날이 내게도 올까. 어떤 날은 외로워서, 또 어떤 날은 무서워서 아침을 기다리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 시간의 간격을 스마트폰과 음악과 게임과 영화와 책으로 메웠다. 내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 세상이 커다랗게 느껴질 때, 어둠이 나를 덮칠 듯한 기분이 들 때 나는 다른 세계로 점프했다. 그곳에는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었다. 불완전한 사람들, 나와 닮거나 다른 사람들이 나오는 이야기들. 이야기를 따라가면 혼자 있는 밤은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도 도망치고 싶은 밤에 읽었다. 단편소설이 여러 개 있었고, 그중에는 동화 같은 이야기도, 현실과 너무 닮은 이야기도 있었다.

 

 

 

* 이 책을 어떻게 읽었나요

 

조성윤 : 장면 묘사가 좋아서, 머릿속에 그림이 잘 그려졌어요.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썼을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한주석 : 저는 마음대로 상상하고, 의미부여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김상아 : 저도 영화를 볼 때 의미 하나하나를 파헤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요. 그걸 못 하면 내가 이해력이 부족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소설은 또 영화의 장면을 보는 것과 다른 것 같아요. 어떤 감정이 말로 표현이 안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소설에서는 그런 감정을 읽다가 문장으로 찾을 수 있어요.

 

정승희 : 맞아요. 내 감정과 생각을 말로 표현 못 할 때가 많은데,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이야!' 하고 감격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이 책에서도 그런 표현을 여러 번 보았어요.

 

조성윤 : 우리가 문학작품을 학교에서 배울 때,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이 있다고 배웠잖아요, 그런데 우리 인생에서는 어떠한 복선 없이도 바로 위기가 나올 수도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 삶이랑 많이 닮은 것 같아요.

 

한주석 :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내가 확장되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내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인데, 소설을 읽으면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예를 들어 〈산책〉이란 단편에서 은퇴한 사람의 마음을 경험할 수 있잖아요. 어떤 마음으로 이 단편의 주인공은 산책을 하는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때 오는 기쁨이 정말 즐거워요.

 

박은솔 : 그 사람 상황이 되어 보는 것이 내가 살면서 겪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만들어요. 내가 겪은 것도 다른 표현으로 보여준다거나, 내가 겪지 못한 것은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어서 소설을 읽는 것 같아요.

 

 

*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

 

조성윤 : 저는 이 책을 읽고, 제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조금 더 알 수 있었어요. 이 책은 책방곡곡 독자모임이 아니었다면 제가 선뜻 골라서 읽지는 않았을 텐데,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좋았거든요. 이번 경험으로 제가 읽는 책의 폭이 더 넓어졌어요.

 

김상아 :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전 여자 친구의 집에 예상치 못하게 무단 침입한 고양이 때문에 화가 나서 처리를 하려고 하는데 그게 잘 되지가 않았잖아요. 주인공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성윤 님이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성윤 님의 독서 취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고 했듯이 어떤 일을 겪고 난 후에 미처 몰랐던 나를 알아 가는 경험을 종종 하는 것 같아요.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나 자신을 계속해서 새롭게 알아 가는 여정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정승희 : 무단 침입한 고양이처럼 나 자신을 새롭게 알게 한 어떤 사건이나 사람이 있는지, 혹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한주석 : 저는 고양이를 불안이나, 사람이 느끼는 감정들로 받아들이고 읽었어요. 막연히 내가 겪지 않은 것들, 피하고 싶은 것들을 실제 맞닥뜨리면 생각보다 괜찮네, 라고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요. 경험하게 되었을 때 이전과 다른 인식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조성윤 : 저는 고양이를 불청객으로 생각을 했어요. 누군가 갑자기 저를 찾아오면 순간 나 혼자만의 시간이 깨졌다는 생각에 살짝 짜증을 내지만, 막상 그 사람을 만나는 시간에는 최선을 다해요. 불청객이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혼자 있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 산책

 

조성윤 : 이 책이 인상 깊었던 점이, 한국 사람이 쓴 한국 소설인데 외국 소설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외국 번역서의 느낌이 있었어요.

 

박은솔 : 저는 작가님이 '그래서 나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지?'라고 자문하게 되는 작품이 몇 개 있었어요.

 

김상아 : 저도 사실 단편 하나하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잘 파악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 권을 다 읽고 나니 불완전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소설 중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두려웠다'라는 표현이 많이 나와요. 근데 소설 속 사건들이 인물들의 삶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요. 그러나 결국엔 사건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어요.

 

정승희 : 인물이 어떤 사건을 겪고, 사건을 겪기 전과 후가 달라지는 게 소설인데, 또 그 사건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우리 인생도 그렇고요.

 

조성윤 : 네, 맞아요. 단편소설 〈산책〉에는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있는데, 진실을 놓고서 이 상태를 깨기 싫어서, 누구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현실에서도 그런 일 많잖아요. 심지어는 어떤 사람이 저를 불편하게 하면, 그 사람에게 난 싫으니까 하지 마세요, 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 사람한테 말을 못 하고, 제삼자인 친한 사람들에게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정승희 : 그렇죠. 그런데 아버지가 산책하는 이유가 너무 귀엽지 않나요?

 

김상아 : 저는 이 소설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부분이 아버지가 밤 산책하는 것을 묘사하는 장면이었어요. 저도 혼자 밤에 걸으면 살짝 두려우면서도 약간 용감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그 감정을 정말 잘 묘사한 것 같아요./p>

 

 

* 상자 사나이

 

박은솔 : 저는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소설이 〈상자 사나이〉예요. 구어체이고, 저는 공감하면서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주인공의 상황이 저와 너무 닮았다고 느꼈어요.

 

김상아 : 저는 이 소설의 결말이 정말 좋았어요. 주인공은 결혼을 앞둔 전 여자 친구를 만나 상황을 진지하게 마주하기보다, 상자 사나이 이야기를 즉흥으로 만들잖아요. 결말 부분에서 상자를 찢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이 주인공이 드디어 현실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친구는 상황을 조금은 회피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상자를 찢는 행위에서 약간은 현실을 마주한 느낌이 들었어요.

 

조성윤 : 많은 사람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말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잖아요. 사실 나는 열정적인 사람이 아닌데, 열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 계속해서 말한다면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 같아 괴로울 것 같아요.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혹은 '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안 살아?'라고 질문을 하는 것 자체에 편견이 있다고 생각해요.

 

김상아 : 〈상자 사나이〉의 주인공은 이 사회에 기득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이 정답이 아니란 걸 알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확신도 있지만, 그렇다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정답도 없었던 것 같아요.

 

박은솔 : 그들도 내게 불합격이라는 도장을 찍겠지. (190p) 저는 이 부분이 인상 깊었어요. 저도 주인공과 같은 마음이 있거든요. 옛날에는 진짜 성공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여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런데 주변에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기운이 자꾸 빠져요.

 

조성윤 : 맞아요. 열심히 안 살고 싶은 사람도 있잖아요.

 

박은솔 : 저희 교수님이 자주 이야기하는데, 본인은 젊어서 고생하고 나중에 편하게 살겠다고 이야기하세요. 근데 저는 이걸 믿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지금 고생하면, 지금만 할 수 있는 것을 놓치는 게 너무 많잖아요. 나중에 똑같은 걸 한다고 해도, 지금 느끼는 거랑 그때 느끼는 것은 확실히 다른데 자꾸 교수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지금 하고 싶은 것, 즐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즐기고, 경험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젊을 때 열심히 사는 것만 옳다고 이야기할 때 속상해요.

 

한주석 : 젊어서 고생하면 나이 들어 편해진다는 말을 곱씹어 보았어요. 높은 지위라든지 기득권에 속하는 게 좀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이라 여기는 걸까요? 젊은이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노력을 강조하고 그 노력의 과실을 나이 들어 누리길 바라는 것 같아요. 하지만 모두 노력한다고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을까요? 그리고 더 앞서서 젊어서 어떤 고생을 해야 나중에 편해지는 걸까요? 너무 추상적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사람은 각자 다른 환경과 가치관을 품고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니까요.

 

조성윤 : 저는 방향성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엉뚱한 방향으로 열심히 살면 너무 막연하고 무책임한 것 같아요. 방향만 맞으면 '열심히'가 아닌 '적당히'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정승희 : "에스키모들에게는 '훌륭한'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어. 훌륭한 고래가 없듯 훌륭한 사냥꾼도 없고, 훌륭한 인간도 없어.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어." (김중혁, 펭귄뉴스 중) 제가 정말 좋아하는 문장이에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어떤 연예인이 초등학생 아이에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가수 이효리는 "뭘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라고 이야기해요. 훌륭한 사람이 되라거나 열심히 사는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정승희 : 저는 〈임시교사〉를 읽으면서 사람은 자신이 겪은 경험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것을 느꼈어요. 소설 속 인물들이 서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속단하는 것을 보고 조금 쓸쓸했어요.

 

김상아 : 저희도 살면서 다른 사람들을 오판한 경우가 많았겠죠?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반복되었던 잘못된 선택, 착각, 부질없는 기대, 굴복이나 패배 따위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식이지. 그녀는 항상 그게 용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녀는 그게 용기가 아니라는 걸 깨닫곤 했다. 그렇다면 그건 무엇이었을까? 때때로 무엇인가를 붙잡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삶이, 그녀 앞에 놓인 삶이 버둥거림의 연속이고, 또한 기도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p.116)
 
주인공은 삶에서 어떤 일을 겪을 때, 빨리 체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임시교사로 계속 일하다가 그것조차 허락이 되지 않았을 때도, 아이 엄마의 시어머니가 요양원에 갔을 때도 마음이 불편하고 섭섭했는데 주인공은 그걸 표현하지 못했어요. 임시교사 일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도 그저 이 부인은 인생은 원래 그런 거지, 하고 체념하는 모습이 저는 조금 서글프고 쓸쓸했어요.

 

박은솔 : 이 사람은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이 다쳐 봤기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한주석 :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자꾸 냉소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건에 노출이 되면 나를 방어하는 방법으로 냉소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박은솔 : 그러지 않으면 본인이 너무 힘들고, 다친다는 걸 잘 아니까요.

 

정승희 : 그런데 모든 사람이 p 부인 같지는 않잖아요. 어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마음을 더 여는 사람도 있고요.

 

김상아 : 어떻게 보면 p 부인은 자신이 임시교사로 일했던 젊은 부부에게 배신을 당한 거잖아요. 저였으면 엄청 화가 났을 것 같은데, 아무렇지 않은 것 같아요.

 

박은솔 : 저도 너무 화가 나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도 했을 것 같아요. 저도 어리지만 냉소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임시교사〉의 p 부인이 좋았어요. 조금 외롭지만, 자기가 다치지 않는 선을 잘 알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 고양이의 보은

 

정승희 : 저는 평소에 눈물이 엄청 많은데요, 그래서 〈고양이의 보은〉이 좋았어요.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약하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눈물이 시시때때로 나고, 눈물 때문에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해지잖아요. 그런데 꿈속의 고양이를 따라가다 보니 주인공의 눈물이 다른 세상의 인물과 연결이 되어 있는 거죠. 그 인물, 눈이 아가씨는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리구요. 주인공은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하다가 주인공인 자기가 더 많이 울기로 마음을 먹어요.

 

김상아 : 〈고양이의 보은〉과 〈상자 사나이〉의 이야기가 특히 더 예쁘고, 동화 같았어요.

 

조성윤 :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슬픔에 공감하고, 힘이 되어 주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주인공이 눈이 아가씨의 눈물을 절반을 가져간다는 게,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정승희 :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같이 울어 준다는 것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데서 출발하잖아요. 그게 필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 슬픔을 나누는 것.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주인공이 처음에는 '나는 운이 좋고, 눈물 따위 흘리지 않아. 우는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야'라고 했다가 다른 세상에 있는 눈이 아가씨의 이야기를 듣게 되잖아요.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조금은 눈물을 흘려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하며 점차 변하고요. 제가 힘이 들 때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든든할 것 같아요.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게 사회 안전망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내가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 많이 힘들잖아요. 내가 힘이 들 때도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고, 또 마음에 여유가 된다면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
    마지막 이야기 〈고양이의 보은〉은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힘들 때, 속상할 때, 마음처럼 인생이 흘러가지 않을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줄 때, 좋아하는 사람과 멀어졌을 때,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 별의별 이유로 많은 눈물을 흘린 내게 위안이 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 나와 눈물이 연결된 누군가가 울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라니. 내가 어떤 일로 많이 힘들고 괴로워할 때 울면서 떠올린 생각이 있다.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 와중에 좋은 점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타인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이 작은 생각이 힘들었을 때, 밤이 아주 길었을 때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오는 데 힘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우아한 밤이 오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지금처럼 밤이 외롭고, 삼삼하고, 무서워도 내가 우는 날은 타인의 눈물을 대신 흘려 준다 생각하고, 아무 일 없이 보내는 날이면 누군가가 나를 위한다고 생각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정승희

사회, 원고정리 및 구성 / 정승희

서툰책방 여주인장. 읽고, 쓰는 삶을 좋아합니다.

 

한주석

참여자 / 한주석

서툰책방 남주인장. 즐거움을 찾아 책의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김상아

참여자 / 김상아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웃고 싶어요.

 

박은솔

참여자 / 박은솔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은 평범한 대학생.

 

조성윤

참여자 / 조성윤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과학을 전공했지만 비과학에도 흥미가 많아요.

 

 

   《문장웹진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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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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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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