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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고 나니 보이는 것들

  • 작성일 2019-03-11
  • 조회수 1,518

[기획대담-지금, 여기, 문학]

 

 

넘고 나니 보이는 것들

 

 

참여 : 김유태, 박혜진, 이구용, 이태연
정리 : 박혜진

 

 

 


 

 

 

문학의 정신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문학의 육체에는 국경이 있다. 수많은 외국 작품이 한국어로 몸을 바꾸고 들어왔지만 그 반대는 쉽지 않았다. 변화는 갑자기, 한꺼번에 찾아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이 된 것에 이어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일본 사상 최초로 발간 2달 만에 8만 부를 넘어서는가 하면 대만에서도 한국 소설 사상 최대치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 한국 문학의 현장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금 여기, 문학' 첫 번째 주제는 '세계의 독자들과 만나는 한국 여성 문학'이다. 대담자들은 겨울의 끝자락이었던 2월 25일, 서교동 카페에서 만났다. 대담 날짜가 예정보다 늦어진 것은 네 명 중 세 명의 해외 일정을 피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담일과 원고마감 사이의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현장성 있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컸다. 어떤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소개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박혜진 : 2011년부터 민음사에서 문학 에디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해외 문학의 동향이나 국내 문학의 수출 현황에 대한 전문성에는 자신이 없지만 이번 주에 제가 편집한 소설이기도 한 『82년생 김지영』 일본어판 행사 건으로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성이라는 키워드와 세계문학이라는 키워드에 대한 최신의 체험을 통해 정리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을 듯합니다.

 

이구용 : 한국 책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일을 합니다. 한국 문학 이외에도 어린이 그림책, 실용서, 경제·경영서, 학술 이론서…… 가능한 모든 책이 대상입니다. 문학은 영미권과 유럽 중심으로 하고 있고 아시아권은 문학을 포함해서 모든 책을 다룹니다. 최근에는 문학 이외 영상, 그러니까 TV 드라마나 영화 판권, 오페라, 뮤지컬 쪽의 공연 판권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태연 : 번역가입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아카데미를 다니면서 번역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출판된 번역물은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이고, 그다음은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입니다. 한국문학번역상을 받게 된 것도 『바람이 분다 가라』를 통해서였습니다. 지금은 『어우야담』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김유태 :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입니다. 주로 문학과 출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래 시를 써왔고, 작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해 계속 시를 쓰고 있습니다. 낮에는 기사를 쓰고 밤에는 시를 씁니다. 오늘은 기자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박혜진 : 지난 1월, 김유태 기자님이 「한국의 '여성' 소설, 국경 넘어 세계로」라는 기사를 썼습니다. 사견입니다만 이번 기획에 영향을 준 기사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사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어떻게 그 기사를 쓰게 되었는지, 기사에 대한 피드백은 어떠했는지요.

 

김유태 : 비하인드 스토리라고 해야겠네요. 김혜순 시인의 『죽음의 자서전』 영문판이 '2019 펜 아메리카 문학상(2019 PEN America Literary Awards)' 해외 번역 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일본에서 출간된 『82년생 김지영』이 3쇄를 찍었다는 내용을 기사로 내보낸 직후였습니다. 일본 출판사 치쿠마 쇼보 트위터를 팔로잉해 항상 보고 있었는데, 속도가 굉장히 빨랐습니다. 두 건의 기사를 쓰고 보니 '여성 문학'이 어떤 하나의 흐름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울러 최근 2, 3년 동안 한국의 남성 작가보다는 한국의 여성 작가에 관심이 더 쏠린다는 판단도 들었습니다.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처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요.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졌고 기사라는 외형을 갖춰 나갔습니다. 한강 작가의 맨부커상 수상 이후 종종 연락을 주고받는 이구용 대표님께 정확한 자료를 요청 드렸어요. 역시 현장에 계신 대표님의 번역 출간 현황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모 포털사이트에서 기자로서 저의 바이라인을 검색하면 '82년생 김지영'이 연관 검색어로 함께 뜨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웃음) 많은 독자들이 『82년생 김지영』에서 생성된 '흐름'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왜 '여성' 작가일까?

 

 

박혜진 : 계속 '여성 문학'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데요, 사실 여성 문학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좀 더 정교하고 복잡한 개념과 범주가 필요하리라 생각됩니다. 단편 「식물애호」가 《뉴요커》에 소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영미권에서 상당히 호평 받고 있는 편혜영 작가의 경우 여성 서사로 범주화할 수 없죠.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는 여성 작가들의 약진까지, 말하자면 좀 더 넓은 개념에서 '여성 문학'을 논의해 보려고 합니다. 김유태 기자님이 이야기한 그 '흐름'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 볼까요. 다들 공감하고 동의하시나요? 여성 작가,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한 여성 문학의 세계적 성취에 대해서요.

 

이구용 : 제가 의도적으로 여성 작가를 더 찾은 것도 아니고 여성 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을 더 관심을 갖고 본 건 아닌데 결과를 보면, 어느 날 돌아보면, 여성 작가의 비율이 더 많습니다. 수적으로 많다 보니 시장의 반응, 문단의 반응도 더 눈에 띄는 것일 텐데요, 그렇다면 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더 두각을 나타내고 있을까요? 실제로 몇몇 나라의 경우, 가령 대만이나 일본 같은 경우에는 출판사에서 여성 작가를 소개해 달라고 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 어떤 출판사는 한국 여성 문학선을 기획하고 있으니 여성 작가를 소개해 달라고 합니다. 어떤 곳은 한국 문학 시리즈, 어떤 곳은 한국 여성 문학 시리즈, 전체적으로 여성 문학에 대한 선호가 있습니다. 시장의 반응이 있는 것이지요. 시장의 수요가 있으면 저희는 그걸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일해야 합니다.
 
다른 이유도 찾아본다면, 독서 인구 분포를 보면 아무래도 남성 독자보다는 여성 독자가 더 많습니다.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여성이 쓴 글에 대해 공감하고 즐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박혜진 : 여성 문학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있고 그에 맞춰 공급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독서의 성별 분포도라면, 최근에는 여성 집중이 훨씬 높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역사소설 읽는 남성 독자들이 있었고 남성 독자를 타깃으로 한 소설 시리즈도 기획되었습니다. 주로 경제, 경영, 의학, 역사를 키워드로 한 소설이었죠. 최근에는 그런 시리즈가 기획된다는 걸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죠. 여성 독자들이 독서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질수록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나 여성의 삶을 키워드로 한 작품들이 두드러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이구용 : 남성 독자들은 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편독이라 할까요. 한국의 남성 독자들은 문학을 여성들만 즐기는 것이라 여기는 것 같아요. 남성들은 주로 무협지, 추리, 만화 혹은 경제, 경영 같은 비소설, 즉 인문 분야의 책을 즐기죠. 전체적으로 남성 독자들은 여성 독자들에 비해 독서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은 듯하고 특히 소설의 주요 독자층이 아니기 때문에 해외 출판사에서도 여성 문학이라 할 수 있는 작품들을 찾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태연 : 저 역시 그런 경험을 했어요. 해외 출판사 에디터에게 어떤 작품을 제안하며 출판될 가능성이 높은지 물어봤더니 여성 중심의 소설을 원한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또 다른 경향이라면 순문학 중심에서 대중성 있는 작품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거예요. 프랑스에서 한국 문학 작품을 출판하고 있는 드 크레센조의 경우 순문학에서 스릴러 등 장르 문학 쪽으로 저변을 확대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좋은 작품으로 상을 받아야 된다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좀 더 대중성에 호응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어요.

 

박혜진 : 오늘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서평이 피처 기사로 나왔어요. 이 책을 중심으로 한국의 미투에 대해 분석하는 기사였는데요, 이 책이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를 '밀레니얼 세대'에서 찾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부정하고 불의한 것들에 참지 않고 견디지 않는 세대적 감수성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한국에서의 밀리언셀러나 일본에서의 8만 부 같은 성과들이 그것을 읽는 현지 독자들의 특성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유태 : 저는 균형과 불균형이란 두 단어를 떠올려 봅니다. 세계가 그렇듯, 문학은 남성의 서사가 더 강력한 자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세계 속의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마비당하거나 침묵을 강요당하는 상태에 놓여 왔고 여성의 서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걸 깨는 출발은 목소리에서 나오고 이때 목소리는 자기 인식에 따른 결과입니다.
 
여성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 '여성 문학'이 처음인가를 자문해 보면, 그건 아니었어요. 과거에도 작가들은 당대 여성의 목소리를 문학이란 형식에 담아 왔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변화하는 현실을 끊임없이 분절하며 지속적으로 재정의 내리는 목소리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동안 뜸했던 재정의라는 작업이 2010년대 들어 재개되었고, 그 분기점이 『82년생 김지영』이라고 생각해요. 소설에 관한 모두의 호응이 지금의 『82년생 김지영』을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밀레니얼 세대'와 맞닿는 지점이 아닐까 싶어요. 『82년생 김지영』은 이제 발화되기 시작한, 목소리의 정치입니다. 원자화된 소수가 하나로 뭉쳐서 몸을 이루는 단계, 그 몸이 목소리를 내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이제 세계의 불균형을 균형의 수위로 끌어올릴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구용 : 예전에는 한국 문학이 해외에 진출할 때, 현지 시장의 의지를 반영하기보다는 한국 사람 혹은 관련된 사람 혹은 기관이나 전문가, 이때 전문가는 시장 전문가가 아닙니다. 그런 분들의 의지는 대체로 내가 진출시키고 싶은 것, 내가 소개하고 싶은 것, 그리고 그다음 기준이 문학성, 예술성입니다. 문학상을 받았다거나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거나. 시장은 언제나 후순위인 거예요. 물론 이런 시도들이 다 경험이고 과정입니다. 의미가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우리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 어떤 것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지 살펴보는 맥락에서 말씀드리자면, 우리가 현지 시장의 목소리를 간과하거나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멋진 추리소설을 읽고 싶어 하고 근사한 로맨스나 SF소설을 출판하고 싶어 해요. 그런데 우리가 거기에 화답했는가. 그에 화답하는 맥락에서 산업 현장에서, 문단에서, 공공기관에서 했는가. 이 점은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이런 노력이 병행되었다면 한국 문학이 해외에서 자리 잡는 데 걸리는 시간을 훨씬 앞당길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문화라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삶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아래쪽도 있고 위쪽도 있습니다. 다양한 것을 내보내면 해외에서 알아서 즐기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조성한다고 조성되는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줘서는 대중화가 안 됩니다. 대중화가 안 된다는 얘기는 산업화가 안 된다는 얘기고 산업화가 안 된다는 것은 한국 문화가 해외에서 형성이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정유정, 이정명, 김언수 작가의 작품들은 이전의 한국 문학 작품들과 구분될 정도로 달라요. 저는 좋은 현상이라고 봐요. 『82년생 김지영』도 그런 맥락에서 기여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이태연 : 제가 가끔 이런 책을 번역하고 싶다고 출판사에 의뢰하면 에디터들도 세대별로 의견이 나뉘어서 출간 여부가 결정되더라고요.

 

김유태 : 언어라는 장벽만 넘어서면, 국경은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애국하려고 문학을 하진 않으니까요. 문학을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나의 국적을 의식하고 쓰는 작가들이 얼마나 될까요. 모국어를 사용할 뿐이지 언어를 벗어나면 국적은 희미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소설에는 국적은 없고 세대만 있다. 같은 국가에서도 오히려 세대마다 공감하는 바에 큰 차이가 있죠.

 

 

수요와 공급, 그 사이에서

 

 

박혜진 : 각각의 시장이 선호하는 경향도 궁금합니다. 이구용 대표님과 이태연 번역자의 경우, 한국 문학 작품을 보면 이 책은 해외에서도 잘 되겠다 하는 판단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은 유럽 쪽이다, 이 책은 아시아권이다, 하는 판단을 하는 과정도 궁금하고요.

 

이태연 : 저는 주로 컴퓨터 앞에서 작업만 해요. 책 선택을 할 때에도, 물론 이런 작품은 현지에서 잘 읽히겠다 아니다 정도의 판단은 하지만 1차적인 것은 '내 마음에 드느냐'예요. 솔직히 오늘 자리에 초대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이유도, 현지 사정을 제가 잘 몰라요. 저는 어떻게 보면 그 소설에 대해서, 그 작가에 대해서, 한 명의 독자로서만 생각을 하는 거죠. 편식이 굉장히 심한 독자 중 한 명에 가까워요. 그런데 번역자들은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해요. 번역하기 위해서는 읽고 그냥 재밌다 하는 수준으로는 힘들어요. 보통 책 한 권을 가지고 거의 1년을 붙들고 있어야 하니까 그저 좋아하는 정도로는 안 되고 정말 좋아해야 해요.

 

이구용 : 저는 아시아의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를 다녀요. 그렇게 일한 지 20년이 되어 가요. 그러니 그쪽 스타일을 잘 알죠. 어떤 책이 시장에서 성공을 하는지도. 섬세한 부분인데, 저는 정확히 표현은 안 돼도 읽다 보면 이건 인도네시아에서는 안 되겠다, 태국은 되겠다, 태국도 인도네시아도 어렵지만 베트남은 되겠다 하는 게 있어요. 심지어는 어느 출판사 어느 편집자가 이 스타일이다 하는 것까지 연결이 돼요. 한국에서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요. 이 작품은 어느 출판사 어느 편집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또 그 편집자는 이런 유의 작품을 성공시킨 사례들이 있다.

 

박혜진 : 20년 동안 형성된 노하우겠네요. 쉽사리 설명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이구용 : 아직도 한계인 나라가 프랑스예요. 다른 언어권에 비해서 프랑스로 진출한 한국 문학이 제일 많을 거예요. 영미권은 후발 주자예요. 사실 영미권으로 나간 예전 작품들은 정부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지요. 지금은 많이 다양화했지만. 그에 비해 현지 시장의 의지가 반영되어서, 그러니까 현지 편집자 마음에 들어서 많이 진출한 국가가 프랑스인데, 아직 프랑스에서 눈에 보일 정도로 성공한 작품이 아직 안 나왔어요.

 

박혜진 : 프랑스 하면 저는 이승우 작가님이 떠오르네요. 프랑스의 대표적인 출판사라 할 수 있는 갈리마르에서 책이 나와서 뉴스에서도 많이 다루었고요.

 

이태연 : 이승우, 황석영, 김영하 작가님은 상당히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고 봐요. 일단 포켓북으로 나왔잖아요. 처음에 일반적인 책으로 나왔다가 몇 부 이상이 팔리면 포켓북으로 나오는데, 포켓북으로 나오면 더 이상 아시아 작품으로 분류되거나 밀려 있지 않아요. 포켓북은 일반 도서 카테고리에 있으니까요. 책방을 둘러보다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거죠. 그중에서도 이승우 작가님은 프랑스에서의 인지도가 국내에서 재조명 받는 데도 영향을 끼친 걸로 알고 있어요.

 

이구용 : 출판사 못지않게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편집자가 누군가, 정말 유능한 편집자인가, 작품을 더 돋보이게 하는 편집자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세유, 갈리마르 같은 유명세도 중요하지만, 중소 출판사라고 하더라도 편집자의 역량이 뛰어나고 마케팅을 잘하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영국 '원월드'에서 나왔어요. 미국에서는 '펭귄'에서 나왔고요. 원월드는 출판계에 있는 사람만 알고 대부분이 모르는 출판사입니다. 펭귄은 모르는 사람이 없죠. 그런데 영국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팔렸어요. 영국에서는 체인서점 베스트셀러 1위에도 올랐고, 한 해 네 개 부문에 선정되었어요. 그러면 우리가 이제 열어 놓고 봐야 한다는 거죠. 에이전트도 번역자도 출판사도 관점을 좀 바꾸어야 해요.

 

박혜진 : 최근에 작지만 개성적인 출판사들에서 한국 문학 작품들을 많이 수입해 가나요?

 

이구용 : 최근 한유주 작가나 하성란 작가의 작품이 영어권에 번역된 것을 봤는데요, 유명하진 않아도 개성적이고 그 분야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는 곳들이에요. 내가 모른다, 알지만 너무 작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진행하는 건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어요. 과정 없이 한 번에 펭귄으로 가거나 랜덤으로 갈 수는 없어요.

 

박혜진 : 대형 출판사를 선호하는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오늘날 여성 문학의 성과는 국내 문학이 다양화하며 나타난 하나의 성과이기도 합니다. 한강, 조남주, 편혜영, 정유정, 이정명, 김언수 등 최근에 해외에서 높은 관심을 받은 작가들을 보면 비슷한 범주 안에 중복되는 작가가 없습니다. 다양한 수요에 맞춰 다양한 작품이 공급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 문학의 다양화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을 해외에 전달하는 중간 단계에서도 그 다양성이 반영되어야겠지요.

 

 

여성 문학을 넘어

 

박혜진 : 가장 큰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영미권인데, 최근 영미권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작가라면 한강 작가와 더불어 편혜영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작가의 작품에 대한 현지 평가는 어떤가요?

 

이구용 : 편혜영 작가의 작품이 미국에서 출간되는 데 6년이 걸렸습니다. 『재와 빨강』이 몇 달 전에 나왔고, 『홀』이 먼저 나왔습니다. 『홀』이 출간될 즈음에 그 작품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식물애호」가 《뉴요커》에 실렸고 같은 해에 「시체들」이 《하퍼 매거진》에 실렸습니다. 한 해 동안 정말 유력한 잡지에 두 번이나 실린 것은 이례적인 성과였습니다. 작년에는 『홀』이 셜리잭슨상도 받고. 며칠 전에 미국 출판사와 『선의 법칙』을 계약했어요. 『채식주의자』를 읽었을 때도 정말 강렬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여성 캐릭터의 개성과 행동이 저에게 너무 강하게 다가왔던 거예요. 시장의 초기 반응은 진지하고 무겁고 어둡다는 거였어요. 편집자들도 시장의 선호와는 좀 다른 경향의 작품이라 판단해서 당장 수용하기 어려웠던 거죠. 그러나 맥스 포터라는 편집자가 그 작품을 보고 엄청 마음에 들어 했어요. 제게 메일을 보내왔는데, 노벨문학상 후보감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하는 걸 듣고 굉장히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알아봐 줘서 고맙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채식주의자』가 나오기도 전에 『소년이 온다』를 계약했어요. 전례가 없는 경우였어요.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작가여도 먼저 낸 작품이 시장에서 반응이 없으면 그다음 작품은 계약 안 하거든요.

 

이태연 : 한강 작가님의 글은 사람을 잡아끄는, 처절하면서도 아름다운 힘이 워낙 강렬하죠. 제가 번역한 『바람이 분다, 가라』도 시간의 겹이 엄청나고 글이 워낙 어려워서 번역할 때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만큼 보람이 컸어요.

 

김유태 :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얘기를 좀 더 해보면, 이 작품이 맨부커상을 받은 건, 한국 문학과 세계문학의 낙차가 사실은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의미한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평가는 다 다르겠지만, 번역자인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에 대한 논란이 있었잖아요. 그 논란에 대해 저는 동의하지 않지만, 해당 논란이 다소 커졌음에도 원작의 정신이 구현됐다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적었다고 생각합니다. 『채식주의자』와 영문판 『The Vegetarian』은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평가도 있었지만요. 저 원작의 정신이란 부분이 역설적으로, 아주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 말을 뒤집어 보면, 한국에서의 어떤 여성 소설가들의 원작에 담긴 정신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면 해외에서도 공감하는 보편적인 정신이었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2016년 4월에 모두가 바라봤던 맨부커상 수상이 제가 이번 기사를 쓰게 되는 계기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구용 : 해외 독자들은 문 열고 나가면 보이는 것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사유를 다룬 책을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5년 전에 미국에서 출판에 종사하는 어떤 분이 한 얘기예요. 공감이 가더라고요. 그렇지, 독자들은 깊이 사유할 수 있는 작품도 보겠지만, 또 많은 독자들은 지금 내가 살아가면서 고민하고 일상적으로 사유하는 것들을 다른 나라 작가들은 어떻게 썼을까 맞춰 볼 수 있는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유태 : 반드시 국경을 넘어 한국의 여성 문학이 많이 읽혀야 한다는 의무적인 강박에서 벗어나야 하고, 다만 언어라는 옷을 갈아입으며 해외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수출 본위의 사회라지만 문학은 작품이지 상품이 아니잖아요. 해외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 긍정적인 신호가 아닌가 싶어요. 이구용 대표님과 이태연 선생님처럼 언어의 안팎을 갈아입혀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여성 문학'이란 표현을 여러 번 썼는데 '여성 문학'이란 단어는 사실 곱씹어 봐야 할 문제입니다. 기사 작성 중에 '여성 문학'이란 단어가 꽤 이상한 단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성 문학'이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고 또 아무리 생각해도 여성 문학을 정의내릴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선천적인 성으로서의 여자 대신 젠더로서의 여성성만이 정치적으로 옳다고 확신합니다. 젠더적 차원의 여성 문학에 접근해야 옳다는 생각이 들어 '여성성 문학'이라고 기사 도입부에 일부러 썼는데 아무래도 잘 쓰지 않는 단어를 신문에 적었기 때문인지 댓글이 가관이었습니다. 저게 무슨 해괴한 단어냐는 이유였죠. (웃음) 하지만 저 '해괴한 단어'를 왜 쓸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고민은 내부자들의 것만은 아니고 사회 성원 모두의 것이어야 하고, 같이 곱씹어 봐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성 문학'은 정의내리지 못하는 그 어떤 불가능성을 내포하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인간의 문학인데 여성의 문학이 존재할 수가 없는 거죠, 처음부터.

 

박혜진 : 아마존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여성 소설(women's fiction)'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문학, 역사소설, 로맨스, 에세이, 회고록 등과 같은 층위에 있습니다. 하나의 독립된 장르인 셈이지요. 해외에서 들어온 좋은 소식들은 바로 이 '여성'이라는 공용어로 국경을 넘어선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성취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 되어 줄 것입니다. 문제는 언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고요, 수많은 '여성'의 공존, 즉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공용어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문학 생태계가 나아가야 한다는 점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문학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메신저' 역할을 하고 있는 대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와 독자 이외 작품을 알리는 사람들의 열정을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는 대담이 되었기를 바라봅니다. 긴 시간 수고하셨습니다.

 

 

 

 

 

 

 

 

 

사회, 원고정리 및 구성 / 박혜진

문학평론가 및 민음사 문학 에디터.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으로 등단. 공저로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가 있음.

 

참여 / 이구용

KL 매니지먼트 대표. 국내 출판물을 해외에 소개하는 출판 저작권 에이전트로 한강, 편혜영, 김영하, 이정명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을 해외에 수출했다.

 

참여 / 이태연

프랑스어 번역가. 김중혁 『악기들의 도서관』, 클로딘 데마르토의 『내가 바로 내일의 스타』 등을 번역했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로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참여 / 김유태

《매일경제》 문화부 기자·시인. 2018년 월간 《현대시》 등단.

 

 

   《문장웹진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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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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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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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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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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