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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모임 - 책방곡곡 제주 시옷서점 1편 – 시 쓰기 좋은 제주도에서

  • 작성일 2019-01-01
  • 조회수 1,480

[독자모임-책방곡곡]

 


※ 기획의 말
2019년 독자모임 코너 [책방곡곡]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의 독립서점들을 방문하고, 그 지역의 문인 및 독자의 목소리를 청취하고자 합니다. 각 지역의 문학 생태계와 특수한 현안들이 곳곳에 계시는 독자들에게 서로 공유되어, 사유와 비평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제주 시옷서점 1편

- 시 쓰기 좋은 제주도에서

 

 

사회 : 현택훈(시인)
참여 : 안민승(사진작가), 홍임정(소설가), 김진철(제주대 강사, 동화작가), 허유미(시인), 김신숙(시인)

 

 

 

[caption id="attachment_142403" align="aligncenter" width="230"]김신숙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한그루, 2017)
[/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42404" align="aligncenter" width="230"]정찬일 시집
『가시의 사회학』
(다층, 2018)
[/caption]

 

 

 

 

현택훈 : 제주의 문화가 생산보다는 소비에 치중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삶의 현장과 문화가 분리되어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제주의 작가들이 과연 제주도에 대한 고민을 창작으로 연결 짓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책을 통해 제주의 현안과 연결 지어 논의해 보기로 했는데요, 오늘은 김신숙 시인의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한그루, 2017), 정찬일 시인의 시집 『가시의 사회학』(다층, 2018) 이 두 권의 시집을 중심으로 제주의 시가 제주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제주 현안 문제에 대해 제주의 시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를 하면 좋겠습니다.

 

안민승 : 명제 자체부터 말해야겠어요. 물론 예술이 생산적인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중요한가, 그것이 다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예술의 생산적인 측면을 강요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글쓰기는 과연 생산적인가, 생산적인 것은 중요한가, 비생산적인 것이 중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다양한 생각이 드네요.

 

홍임정 : 예술의 생산성이 없다는 것에 기준을 두는 것은, 예술에 대한 어떤 잣대를 대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은 예술가들도 많거든요. 그런 기준이 오히려 하나의 한계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진철 : 문학을 통한 생산의 의미도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만이 생산인가, 예술 활동을 통해서 예술가에게 좋은 에너지를 만들어주는 건 생산이라 말할 수 없을까 하는 점이죠. 제주도의 문화 정책은 생활문화 예술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서 소비형 행사들이 많아진 게 사실입니다. 그에 상응해서 도내에서 문화 관련 동아리들이 많이 활성화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대중들의 이런 문화 욕구를 단순히 생산성과 소비성으로 구분해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좁혀서 제주의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통해 제주도를 잘 들여다보고 있는지에 대한 접근이 먼저 진행되면 좋겠어요.

 

안민승 : 그러니까 제주를 도식적으로 소재로만 사용하면 제주를 말한 것이 되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요. 제주 어느 곳의 공간만 가져온다면 알맹이가 없습니다. 학술적인 접근이나 아카이브 관련으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창작자는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이 점을 생각해 봅니다.

 

김진철 : 예술가로서의 사회적인 책무에 대한 것이죠. 사회적인 부조리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이 필요하잖아요. 하지만 예술가가 그 사회에 살고 있다고 꼭 그 사회의 굵직한 이슈에 대한 이야기만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도 동시에 듭니다.

 

 

허유미 : 예술가들이 문화 행사를 하면서 시민들과 문화를 향유하면서 유대감을 느끼고 싶은데, 일회성으로 그쳐 아쉬워하는 것 같아요. 그 지점에서 지역 예술가들과 지역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그 점이 지역 예술가들의 현실적인 고민이 될 것이고요.

 

김진철 : 문학 관련 행사를 보면, 관객이 대부분 작가들입니다. 다른 예술 분야 행사에는 일반 관객들도 오는데, 문학은 왜 이리 폐쇄적이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은 대중과 깊이 호흡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작가들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구요. 행사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문예지들이 꽤 발간되고 있는데 거기에 실린 작품들이 과연 대중들한테까지 도달하고 있나, 라고 봤을 때는 아쉬운 지점이 있죠.

 

김신숙 : 제주의 문예지가 '제주'라는 이름으로 제호를 다는 것을 보면 고집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대안으로 '수평문학'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수직적이지 않은 수평적인 것으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다고 봐요. 그 점을 생각하면서 제주는 중앙 문단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점도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가령 서울의 유명한 작가를 초청하는 식의 수직적 특강이 우리에게 과연 도움이 될까, 이러한 문학 행사를 깨면 어떨까요. 그러려면 문학 관련 단체들의 성찰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홍임정 : 제주작가회의의 계간 《제주작가》는 제주 관련 특집을 꾸준히 다루고 있습니다. 이 점은 상당히 특별한 업적입니다. 특히 4·3 문제를 집중해서 다루고 있는데, 이렇게 제주처럼 제주 지역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하는 지역문학은 보기 드문 것 같습니다. 제주 문학의 특수성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좀 전에 우리가 나눈 이야기는 시스템에 관한 고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만 봐도 우리는 지금 김신숙 시인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모였는데, 여러 가지 문학 환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게 되는 거죠.

 

김신숙 : 몇 년 전에 유명한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말이 해녀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강조하더라구요. 어머니가 해녀인데, 하루 종일 물질을 하면서 고독을 견디는 수행자로서의 어머니를 느꼈다고 말했더니, 그 편집자가 그 외로움을 도시 소시민의 삶과 연결 지으라고 해서 처음엔 고개를 끄덕였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이 과연 해녀의 삶을 얘기하는 좋은 방식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책이 많이 팔릴 수 있는 내용으로 만드는 행위가 과연 진정한 제주의 문학일까.

 

현택훈 시집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걷는사람, 2018)

 

현택훈 : '제주'라는 말이 고립된 측면도 있지만 독립적인 면도 있어서요. 제주의 특수성이 장점과 단점으로 동시에 나타납니다. 그런 성격이 제주 시인들의 시에 반영될 수밖에 없겠죠. 제가 최근에 낸 시집 제목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걷는사람, 2018)를 두고 한 신문기자분이 저를 이 제목처럼 제주에 계속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시각을 가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는 늘 제주도를 떠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바다 너머를 동경해 왔습니다. 난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해서 가지 않는다고 얘기한 점이 있습니다. 기자도 그렇고 서울 사람들은 제주를 책임져 줄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닐까요.

 

허유미 : '제주'를 산업으로, 상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시옷서점을 선택한 것 같아 처음엔 반갑고 고맙다가 이 흐름이 제주 작가들에게 긍정일지 부정일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김진철 : 이곳에 오면서 《문장 웹진》이 왜 제주에 귀 기울이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것은 아마도 《문장 웹진》에서도 기존에 해왔던 것과 다른 무언가를 찾았을 것이고, 제주도에서 문학과 관련된 변화의 싹을 본 게 아닐까요. 제주의 독립서점들이 많이 생기는 트렌드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런 관심들이 진정성이 없다면 단순한 유행처럼 지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민승 : 글 노동자, 그림 노동자의 측면에서 보면 생산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4·3, 제주어도 중요하지만 이런 주제 때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작가들 스스로 다양한 시선의 생산을 고민하면 어떨까요.

 

김신숙 : 오광석 시인의 시집 『이계견문록』(시작, 2017)을 보면 샐러리맨의 삶이 들어 있는데요. 그렇다면 샐러리맨의 삶은 제주도의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오광석 시인은 오광석 시인의 방식대로 제주를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광석 시집 『이계견문록』
(시작, 2017)

 

김진철 : 그렇죠. 과거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지역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꼭 지역의 거대담론에 대한 것만 다루어야 지역의 문학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현택훈 : 공감합니다. 오광석 시인은 4·3시도 판타지로 쓰던데, 그렇다면 김신숙 시인의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에 나타나는 제주에 대한 모습을 봅시다.

 

김진철 : 기존의 제주 시인들의 시와는 정말 다른 결을 느꼈습니다. 작가들이 그동안 봐왔던 시야에서 볼 수 없었던, 또는 보지 않으려 했을 수도 있죠. 평범한 시야로는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 대한 시를 썼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이 이 시집의 가치일 겁니다.

 

허유미 : 김신숙 시인은 서귀포가 고향인데 서귀포는 낮에는 화려한 관광 도시잖아요. 그런데 김신숙 시인의 시는 서귀포의 낮이 아니라 밤을 그리고 있습니다. 항구 도시 서귀포에서 일어난 여성의 비극 혹은 가정의 비극적인 일들을 하나하나 해부하여 다소 충격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로 서술한 것에 놀랐습니다. 하지만 시집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젖에서 고름이 나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김신숙 시인의 시집은 서귀포의 여성 혹은 제주 여성의 젖에 오랫동안 고여 있던 고름을 짜주는 역할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고향을 소재로 한 시들은 보편적인 정서를 띠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향에 대한 서정과 풍경만 노래하는데, 이 시집은 고향 여성의 삶을 다루고 그 삶을 처절하게 울부짖는 심정으로 썼습니다. 이제까지 제주 여성 시인들의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작품입니다.

 

김진철 : 제주가 관광산업이 부각되면서 외부에 보이는 이미지가 중요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유배지였던 역사나 4·3과 같은 제주의 부정적인 이면에 대한 언급을 금기시했던 시절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이런 지점들의 금기를 하나씩 깨고 있는데요. 이 시집은 그런 제주의 또 다른 금기를 깨는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열다섯 살의 차도르」라는 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주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한 소녀의 삶을 보여주면서 제주 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판타지를 철저하게 깨뜨리고 있습니다. 결국 그녀들이 겪었던 삶들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주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 시집은 말하고 있습니다.

 

홍임정 : 제주를 여행하면 오름이나 유명 관광지를 돌게 되는데, 오름, 바다, 한라산만이 제주는 아니에요. 저는 이 시집에서 한림읍의 뒷골목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항구의 지린내 같은. 김신숙 시인의 시는 피상적인 제주가 아니라 실제의 제주를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아요.

 

안민승 : 저는 사진을 찍으니까 제가 이국적인 사진을 찍고 김신숙 시인의 시와 연결 지어보려고 했는데, 이국적인 시가 없었어요. 가족 이야기, 유년의 이야기를 하는데요. 사적인 이야기의 원형이 설화처럼 들리면서 제주의 원형으로 다가오는 묘한 느낌을 받았어요. 가령 「새끼회」, 「복자성당」, 「신혼」 등의 시에서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김신숙 : 서귀포에 있는 시인들의 시를 보면서 자랐어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한 예쁜 시를 읽었는데, 내 눈에 보이는 서귀포는 그렇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한번은 제 시집을 잘 읽었다는 편지를 받았는데, 그 내용이 내 시집 속 유약한 한 소녀에게 보내는 편지라서 굉장히 기분이 안 좋았어요. 나는 그 소녀의 슬픔을 말하고 있는데, 그 독자는 그 소녀를 성적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실망한 것이죠. 그러니까 제가 고등학생일 때 술집에 나가는 친구들을 봤습니다. 1997년 그즈음에 원조교제, 허영심, 어려운 가정환경을 이용한 어른들의 모습에 대해 나름 저 바탕에 자리 잡게 된 겁니다. 예전에 서귀포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이혼 후 노래방 도우미 일을 하던 여성분이 거리에서 칼에 찔려 숨졌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그녀의 딸이 자라서 술집에서 일하다가 자살을 한 것을 접했습니다. 변함이 없는 겁니다. 이곳은 이상한 섬입니다. 다른 도시들도 다 그렇겠지만 제주는 제주라는 이름 때문에 덮는 경향이 있어서 저는 그 지점을 참지 못하겠어요.

 

허유미 : 제 고향 모슬포도 그런 경우였습니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인구 대비 단란주점이 많은 곳이었습니다. 약 30년 전만 해도 해녀들이 물질을 하지 않을 때 돈벌이를 위해 유흥업소에 가서 빨래 일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얘기를 들어 보면 정말 어린 나이에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시집에서 이름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진'과 '음희'라는 이름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 인물인 것 같은데, 그 이름들은 호명하는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강덕환 시집 『생말타기』
(한그루, 2017)

 

현택훈 : 26년 만에 복간한 강덕환의 시집 『생말타기』(한그루, 2017)와 첫 시집 이후 정말 오랜만에 새 시집을 낸 정찬일의 시집 『가시의 사회학』(다층, 2018) 두 권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흥미 있을 것 같습니다. 정찬일 시인은 굉장히 논리적 시를 씁니다. 그리고 문화운동의 측면에서 봤을 때 《다층》이라는 문예지를 정립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홍임정 : 정찬일 시인의 시 중에서 「내일 날씨」라는 작품이 정말 좋았습니다. 이경홍이라는 사진작가가 있는데, 텅 빈 내용을 사진으로 보여줘요. 그 사진과 같은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요. 고요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좋았습니다.

 

허유미 : 강덕환의 시집에는 제주의 옛 모습들이 잘 담겨 있습니다. 정찬일의 문학은 시와 소설을 넘나들면서 좋은 작품들을 계속 보여주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정찬일 시집 『죽음은 가볍다』
(다층, 1999)

 

김신숙 : 《다층》 시선의 첫 번째 시집이 정찬일의 시집 『죽음은 가볍다』(다층, 1999), 제 시집도 한그루라는 지역 출판사의 시선 1호이고, 강덕환의 이 시집 역시 제주의 출판문화 운동의 첫 번째 작품이었습니다. 질문을 던지면서 눈덩이로 모아질 것 같습니다. 시집이 갖는, 시는 무용한 것이지만 여러 질문이 모여 유용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안민승 : 정찬일 시인이 처음에 신학을 공부한 것으로 아는데, 영성적인 구도자의 길을 가는 시인의 자세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 시집을 읽으며 나쁜 시에 대한 해독제 역할을 해줬어요.

 

김진철 : '가시'라는 소재가 좋았습니다. '가시의 사회학'이라는 시를 보면 가시가 원래 우리에게 있었는데 퇴화되면서 내재화된 것으로 시인은 보고 있습니다. 장미나 고슴도치를 보면 가시가 있는데 둘 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가시들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가시는 없어도 말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가시와 같은 비수를 날리죠. 공격하기 위한 가시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죠. 인터넷 악플도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가시 하나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단면까지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김신숙 : 저는 결국 시의 힘은 문장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찬일의 시 중에서 '뼈 안이 축축이 젖는다'라는 문장을 만나 감탄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한 줄의 풍경을 문장화한 표현입니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이 시집의 문장을 통해 시인으로서 치유되는 느낌을 저도 받았습니다. 그것이 일종의 문학의 힘일 텐데, 저도 정찬일 시인의 시에 있는 문장 같은 새로운 문장을 쓰고 싶습니다.

 

허유미 : 저는 이 시집의 표제시인 「가시의 사회학」을 먼저 읽고, 다른 시들을 읽었습니다. 시인은 가시에 대해 정의를 합니다. 그 가시는 인간이 진화하면서 이루어진 퇴화기관이라는 것인데, 인간이 지닌 본능적인 감성이 현대에 살면서 사라졌기에 그 감성을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새로운 정의를 통해 이미지를 새롭게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안민승 : 언어의 유희는 아니지만, 저는 가시(可視的)적이다, 비가시(非可視的)이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과도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통증을 느끼는 것은 찌르는 것의 물성이 있는데, 통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비가시적이 비가시성의 통증에 더 집중을 해서 통증의 원인이 된 가시를 말하면서 통증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김신숙 : 제주의 새로운 풍경이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나와야 합니다. 제주도에서 느낄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을 수상한 이원하 시인의 시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나 그가 문예지에 발표하는 시들을 보거나, 제주가 고향인 문보영 시인의 시들, 또 제주에 거처를 둔 시인들의 시를 보면 제주에 관한 시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시의 성찰이나 시의 이미지들이 특화된 것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원하 시인의 제주도에 관한 시가 보편적 매력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제주의 시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기운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허유미 : 제주에 이주한 시인 중에서 신태희 시인, 안은주 시인을 주목하면 좋겠습니다. 둘의 시에서 저는 치유의 문장을 자주 봅니다. 가령 제주도 사람들 누구나 아는 외돌개를 이 두 시인은 다른 시각으로 제주를 봅니다. 자신만의 아픔을 보듬고 이겨내는 세계로 제주를 그립니다. 제주 작가들은 작품을 쓸 때 특수성과 보편성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특수하게 생각하는 제주의 모습들이 이미 보편적일 수도 있습니다. 제주 사람들이 그냥 넘기는 모습들을 외지 사람들은 특수성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제주 작가들은 그런 점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아요. 예를 들면 오름에 관한 시들이 많은데 제주 사람이 죽으면 오름에 묻는 사실을 시로 표현했다면 그 점이 특수성일 수 있으니 우리가 사는 곳은 보편성과 특수성이 거꾸로 된 곳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42403" align="aligncenter" width="230"]신태희 시집 『나무에게 빚지다』
(황금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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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tion id="attachment_142404" align="aligncenter" width="230"]안은주 시집 『오류의 정원』
(시인동네, 2018)
[/caption]

 

김진철 : 제주도에 관한 것만 강조하는 것도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데요. 제주도에 너무 빠지면 외부의 시선을 놓쳐버리는 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눈이 가게 마련인데요. 제주도에서 태어난 작가들은 오히려 제주스럽지 않은 것에 더욱 관심이 갈 수도 있으니까요. 미래의 제주 문학은 젊은 작가들이 해야 하니까 이들에게 제주적인 것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민승 : 안은주 시인의 시에 그런 비슷한 내용이 나오던데요. 유년 시절 기억에 있는 그 근린공원이 어느 도시에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특수성이 깨졌다는 겁니다.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의 <아메리칸>을 보면 아메리카의 정서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작가는 스위스 태생입니다. 고착화 된 눈으로 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특수한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보편성을 알기는 힘들어요. 저의 경우에는 '불안의 기호들'이라는 사진 연작을 준비해 봤는데요. 균형을 잃은 불안한 기호들에 관한 장면들을 이곳 제주에서 느꼈어요. 그러다 발견한 것이 '재선충'이었어요. 이 재선충 때문에 너무 많은 나무들을 잃었어요. 마치 격렬한 싸움 끝에 훼손된 채 남은 지경을 저는 봤습니다. 벌목하고, 토막 내고, 무덤을 만들고 하는 모습을 통해 4·3을 떠올려 봤습니다. 전기톱에 나무 갈리는 소리가 끔찍했습니다.

 

김신숙 : 저는 요즘 제주도 곳곳에서 몇 년씩 살아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택훈 : 그렇습니다. 지역의 지역도 있습니다. 제가 이제 마흔다섯 살인데, 제주에 이주한 지 45년 됐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제주도를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낯선 어느 마을에 가서 전형적인 제주도 마을의 풍경을 보면 낯설어요.

 

 

허유미 : 제주도는 작은 섬이지만, 동서남북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날씨가 다른 경우가 종종 있잖아요. 그것처럼 동서남북 자생하는 나무들이 다 달라요. 그런 것 같아요. 그 기후에 맞는 나무들이 자라는 것처럼 제주 문학도 제주 곳곳에서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습니다.

 

현택훈 : 오늘 이렇게 제주의 시를 통해 제주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여자 소개 / 현택훈(사회, 원고정리 및 구성)

시인. 1974년 제주 출생. 2007년 《시와정신》으로 등단.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4‧3평화문학상 수상.

 

참여자 소개 / 허유미(참여)

시인. 1979년 제주 출생. 2015 《제주작가》 신인상 등단. 라음 동인.

 

참여자 소개 / 안민승(참여)

사진가. 1972년 부산 출생. 독립출판 '파우스트' 운영.

 

참여자 소개 / 홍임정(참여)

소설가. 1976년 부산 출생. 소설집 『먼 데서 오는 것들』, 인터뷰집 『희망은 빛보다 눈부시다』, 『붉고 푸른 당신과 나 사이』.

 

참여자 소개 / 김진철(참여)

동화작가. 1981년 제주 출생. 2006년 《제주작가》로 등단. 단편동화집 「잔소리 주머니」. 탐라문화연구원 특별연구원. 제주대학교 출강.

 

참여자 소개 / 김신숙(참여)

시인. 1979년 제주 출생. 2012년 《제주작가》, 2015년 《발견》으로 등단. 시집 『우리는 한쪽 밤에서 잠을 자고』. 《시린발》 편집장.

 

 

   《문장웹진 2019년 0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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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육지에서 쓴 일기 최진영 20240528 4박 5일 동안 육지에서 여러 일정이 있어 오늘 제주에서 서울로 왔다. 앞으로 며칠간 약속과 약속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창을 열고 단상을 써보려고 한다. Are you checking in? pm04:45. 여긴 충무로의 호텔. 3년 전 제주로 이사 간 뒤 처음으로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왔을 때 숙박한 후 매번 이 호텔만 이용하고 있다. 경기, 인천 지역에서 저녁 행사를 해도 근방 호텔을 잡지 않고 여기로 온다. 새로운 호텔을 검색하고 선택하는 게 번거로워서. 합리적인 위치나 가격을 따지려다가 검색 지옥에 빠져서 몇 시간을 고민한 뒤 결국 이 호텔을 예약했던 경험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 시간이 돈이다. 더 저렴한 호텔을 찾으려 애쓰지 말고 검색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자. 점심시간 무렵 충무로 일대 분위기는 조금 묘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거리를 걷는 외국인들과 점심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뒤섞이는 거리.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듯 여러 나라의 언어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서울역, 명동, 한옥마을, 남산, 종로가 가까운 곳이어서 외국인 관광객이 정말 많다. 올 때마다 느끼지만 호텔 투숙객 중 한국인은 나뿐인 것 같다. 한 달에 두어 번은 와서 2박 이상 하니까 나름 단골이랄 수도 있는데 프런트 직원들은 매번 나를 처음 본 손님처럼 대한다(호텔의 특성이겠지?). 체크인할 때도 내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give me your passport.” 그럼 나는 “제 이름은 최진영입니다”라고 한국어로 대답한다. 성공한 인생 오늘 아침 9시쯤 택배 문제 때문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놀란 목소리로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내 용건에 개의치 않고 엄마는 거듭 물었다. 전화를 끊고 뿌듯해서 신나게 웃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 넘었는데 아침 9시에 엄마에게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느냐”는 말을 들을 수 있다니, 이번 생은 성공한 것 같아서. 그건 바로 내 투쟁의 결과다. 거의 20년을 프리랜서로 살면서 남들 다 출근하는 시간에도 ‘성인 평균 적정 수면시간’을 사수하며 꾸준히 늦게 일어나는 생활양식을 차곡차곡 쌓아 온 결과 마침내 엄마도 나의 생활 패턴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서 아침 9시에 전화하면 깜짝 놀라는 것이다. 나는 이런 게 진정한 성공 같다. 긴장감 저녁에 북토크를 할 예정이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낭독할 때는 별로 긴장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긴장하는 순간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비행기 탈 때. 기내 짐칸에 캐리어를 올리다가 무거워서 또는 실수로 떨어트려서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봐 매번 긴장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식은땀이 난다. 캐리어를 끌고 에스컬레이터 탈 때도 마찬가지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캐리어를 놓치는 구체적 상상에 시

  • 관리자
  • 2024-07-01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에세이]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 제이크 레빈 소개 거의 12년 동안 나는 한국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지난해부터 강의하는 교사의 내면적 생활과 관련된 일기와 같은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외국인 교수로서 처음 강의를 시작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교수의 삶은 익숙하지 않다고 믿는다.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고 다른 교수의 마음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른 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민족을 만나는 것 같이 나는 죽을 때까지 방랑자처럼 매일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 학교에서는 현실에 경험한 것이 꿈꾸는 것 같고 꿈꾸는 것이 더 현실처럼 느껴지듯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가끔은 사라진다. 이 산문은 시나 소설이 아니고 현실의 기록도 아닌 교사로서의 삶의 내면적 반응이다. 교사는 인간이다. 가끔 사회가 인문대 교사의 인간중심주의를 억압한다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계산하지만 인문학과 시의 영향력은 계산될 수 없는 가치다. 인간중심주의 가치를 점점 찾기 힘든 사회의 학생들은 학교에서 문화를 배워야 한다. 이 모순적인 긴장의 환경에 존재해야 한다. 학교의 목적은 타인의 인간성을 인정하는 것에 있다. 이 산문은 한 인간의 존재하는 기록이다. 거대한 존재들의 무한한 경탄이라는 제목은 완전한 이해가 불가한 타인의 인간성을 발견하는 것에서 왔다. 이 기록은 내 개인적 경험과 전해 들은 동료 교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으며 영어로 작성한 문장을 나의 소중한 학생 김혜인이 나와 함께 번역하였다. 지우개 머리 어떤 날 나는 대답하기 위해 여기 있고, 어떤 날 나는 오직 듣기 위해 여기 있다. “질문 있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그다지 어려울 것 없는 예술을 배웠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답변하는 동안 사용감 있는 지우개처럼 커피를 홀짝이며 머리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배경소리가 되어 가다가, 불현듯 보이스 오버. 지우개는 부러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얼룩을 견딜 수 있을까? 숭고한 느낌 지난 몇 주간, 를 듣는 학생들은 책상 아래 숨어 있었다. “교수님, 저희는 불확실성에 머물고 있어요.” 그들은 말한다. 일정 기간 동안 불확실성에 머문 뒤, 한 학생이 책상 아래서 나타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저는 숭고한 느낌을 얻었어요.” 그들이 말한다.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압도당해 죽음이 무섭고 두려워요.” “이제 제 핸드폰 돌려주시겠어요?” 정적. 학생이 나를 응시한다. 정적. 나는 천천히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학생을 응시한다. 흰 두루미 “주말 잘 보냈니?&r

  • 관리자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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