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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모두의 방, 모두의 봄

  • 작성일 2017-03-01
  • 조회수 1,522

[기획 에세이]

 

 

모두의 방, 모두의 봄

 

 

전석순

 

 

    2월 15일에는 며칠간 온몸을 단단히 움켜쥐던 추위가 다소 느슨해졌다. 기지개를 켜는 사람도 있었고 미뤘던 외출을 서두르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는 서둘러 올해의 봄을 짐작해 보기도 했다. 한껏 온화해진 날씨보다 조금 더 따뜻한 공간에서라면 짐작은 더 짙어졌다. 어쩌면 이날 서울 프린스 호텔 2층 프리미엄패스 라운지에 모인 사람들은 미리 봄을 엿본 기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일에 대한 나지막한 이야기와 나긋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노래 그리고 그사이 내내 맴돌던 커피 향은 봄을 짐작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각자 떠올렸던 봄은 어느 순간 모두의 봄으로 번지다가 다시 다른 색의 봄이 되어 퍼져 나갔다.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더라도 우리가 반응하고 기억하는 색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마치 『호텔 프린스』에 실린 다채로운 여덟 개의 이야기처럼.

 

    『호텔 프린스』는 호텔 프린스에 머물렀던 작가들이 호텔을 테마로 쓴 이야기가 차곡차곡 모인 책이다. 이번 북콘서트는 책에 참여했던 작가님들 중 필자와 함께 김경희 작가님과 김혜나 작가님, 이은선 작가님을 만나 볼 수 있는 자리였다. 한 손에 따뜻한 커피를 든 관객들이 자리에 앉자 이은선 작가님의 사회로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극단 해인의 낭독공연이었다. 낭독공연이 시작되자 다소 들떴던 분위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낭독공연에서는 『호텔 프린스』에 수록된 김경희 작가님의 「코 없는 남자 이야기」와 김혜나 작가님의 「민달팽이」, 이은선 작가님의 「유리주의」 그리고 필자의 『거의 모든 거짓말』이 다뤄졌다. 낮고 선명한 목소리가 이어지다가 때론 날선 목소리가, 또다시 한쪽이 부풀어 오른 목소리가 울렸다. 그때마다 관객들은 그동안 읽었던 소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미처 작품을 접하지 못했던 관객들도 작품에 쉽게 빠져들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짜인 낭독공연이었다.
    흥미로웠던 점은 얼핏 들으면 한 편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네 편의 작품이 뒤섞인 공연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날 소개된 소설들이 가진 공통적인 테마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소설이 회화작품처럼 평면으로 독자들과 만나 상상력을 자극한다면, 낭독공연은 입체적으로 작품을 다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을 만나는 기회를 줬다. 낭독공연이 끝난 후에는 이양구 연출님을 모셔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도 들을 수 있었다. 작품을 압축하고 편집하는 과정에 대한 고민은 낭독하는 목소리를 조금 더 믿음직스럽게 만들어줬다.

 

    이어서 작가님들과의 이야기가 준비되었다. 인사를 나눈 뒤 작품을 읽고 난 후 서로에게 궁금했던 점을 묻는 시간이 이어졌다. 각자의 작업 공간에서 호텔에 대해 이야기를 쓰고 난 후에는 아마 다른 작가님들은 호텔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쓰셨을지 궁금했을 것이다. 겹치는 이미지가 반가운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전혀 다른 방향의 상상력과 인물이 놀라워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본 문장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의 테마로 다양하게 뻗어 나오는 이야기는 독자에게도 그렇겠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도 무척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그래서 서로에게 던지는 질문에는 마치 오래 전부터 궁금했던 것 같은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먼저 김경희 작가님께서 이은선 작가님께 질문을 주셨다. 이번 책에 실린 「유리주의」는 이은선 작가님께서 그동안 발표해 온 소설과는 다소 다른 색을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신 질문이었다. 이은선 작가님께서는 기존에 소설을 대하는 태도가 변화해 온 지점을 차근차근 되짚어 주셨다. 그와 함께 소설의 이미지와 작가의 이미지가 서로 다른 점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해주셨다. 다양한 모습을 함께 담고 있는 만큼 앞으로의 소설이 어떤 색과 형태로 나올지에 대한 궁금증을 품게 만드는 답변이었다.
    이은선 작가님은 이번 소설집에서 「민달팽이」로 인사드린 김혜나 작가님께 질문을 주셨다. 누구라도 「민달팽이」를 읽고 나면 ‘사랑’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질문 역시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랑은 무척 흔한 이야기인 동시에 한편으론 낯설어서 어렵다. 김혜나 작가님께서도 비슷한 생각이었던지 답변에 조금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20대 내내 소설을 너무 사랑했고 소설이 아니면 죽을 것 같았어요. …20대 내내 불처럼 타올랐던 것 같아요.”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각자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끔 만드는 답변이었다. 이어서 사랑이 뜨겁게 타오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동반자처럼 함께 걸어 나가는 과정으로 이어지는 속성까지 말씀해 주셨다. 김혜나 작가님의 답변이 끝났을 때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 각자가 내린 사랑의 정의에 닿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혜나 작가님께선 필자에게 질문을 주셨다. 따뜻함을 잃지 않는 이야기가 어디서 오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동안 이야기를 쓰면서 드러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 적은 많았지만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드물었다. 그래서 김혜나 작가님의 질문이 이제껏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 놓쳤던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소설에 따뜻함이 있다면 그 이유도 소설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속상한 일이나 우울은 언제라도 소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긍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에서 온기가 읽혔다면 그 때문이 아닐까, 하는 답변으로 마무리했다. 이 답변이 작품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읽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이어졌다.
    필자는 김경희 작가님께 질문을 했다. 「코 없는 남자의 이야기」는 제목에서처럼 후각에서 오는 이미지가 강렬한 소설이다. 후각뿐만 아니라 다양한 감각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 섬세한 눈길로 읽을 때 더 깊이 다가갈 수 있었다. 특히 등장인물의 감각을 하나하나 따라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워 밑줄 긋게 되는 문장도 많았다. 그래서 작가님께서 사람을 만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각이 궁금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감각 외에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동물적인 감각 같은 거 있잖아요.”
    답변이 이어지는 동안 목소리를 듣는 것도 하나의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답변 안에서 말하고 있는 감각이 무엇인지도 어렴풋이 떠올릴 수 있었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순식간에 오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감각. 오늘 모인 사람들도 서로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감각을 주고받고 있지 않았을까.

 

    분위기가 점점 진지해지자 사회를 맡은 이은선 작가님께서 색다른 제안을 해주셨다. 아마 어떤 북콘서트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제안이 아닐까 싶다. 작가들이 자신의 소설을 칭찬하는 자리였다. 머뭇거리던 작가님들 가운데에서 필자가 가장 먼저 답변하게 되었다. 짧은 생각 끝에 답변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최근에 하고 있던 고민들 덕분이었다. 요즘 사람들은 생각에서도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 엉뚱한 생각은 아예 하지 않으려 하고 그 시간을 낭비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소설을 쓰는 방식은 엉뚱한 생각과 쓸데없는 생각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면 이것도 장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답변을 마치고 나니 다른 작가님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김혜나 작가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 이면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답변을 시작하셨다. 「민달팽이」에서 그려진 호텔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기계실의 모습이 촘촘하게 그려져 있다. 어두운 공간에서 기름 냄새에 휩싸여 작업하는 인물이 인상적인 소설이다 보니 답변 내용과도 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쓰는 게 장점이라는 목소리가 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김혜나 작가님께서 ‘이면’을 말씀하셨다면 김경희 작가님께서는 ‘위로’를 말씀하셨다. 소설 속 인물을 더 외롭고 쓸쓸하고 불쌍하게 만드신다고 밝혔는데 그것이 소설에서 추구하는 위로의 방식이었다. 나만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서 건너오는 진한 위로. 그 위로가 「코 없는 남자의 이야기」에서도 전달되고 있다. 끝으로 이은선 작가님께서는 한때 힘들었을 때 겨우 살게 했던 게 소설이었다면 지금은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놓으셨다. 이어서 재미있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바람까지 말씀해 주셨는데, 「유리주의」를 읽은 분들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 안에서 생생하게 살아 꿈틀거리는 인물을 따라가다 보면 슬쩍슬쩍 미소 짓게 되는 순간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출연해 주신 작가님들과의 이야기에서 조금 벗어나 ‘멀리서 온 질문’도 이어졌다. 이번 소설집에 함께 참여해 주신 서진 작가님께서는 김혜나 작가님께 남자 친구와 해외여행을 갔는데 예약한 방에서 바퀴벌레가 나오면 어떻게 하실 것인지 물어봐 주셨다. 누구라도 웃음을 지을 만한 질문이라 호텔 안의 공기가 조금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김혜나 작가님의 답변과 남자 친구를 잡겠다는 이은선 작가님의 답변에 여기저기 웃음이 터졌다. 웃음소리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정세랑 작가님께서는 필자와 함께 이은선 작가님의 차기작에 대한 질문을 주셨다. 필자는 인테리어가 되어 있지 않은 채로 거래되는 모피방에 대한 소설을, 이은선 작가님께서는 엽전 위조범에 대한 소설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동서문학상 사무국장인 김미주 님께서는 김경희 작가님께 제주 호텔 프린스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봐 주셨다. 김경희 작가님께서는 귀가 어두운 별장지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누구에게라도 소설 속 인물처럼 들렸을 것 같았다. 호텔에 모인 사람들이 별장지기를 떠올리는 동안 밖은 조금 더 어둑해졌다.
    윤이형 작가님께서는 소설에서 이것만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을 물어봐 주셨다. 김혜나 작가님께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 김경희 작가님께서는 어렵게 쓰지 않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필자는 원칙을 조금씩 깨는 것에 대한 고민을 전달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 답변을 듣고 『호텔 프린스』를 읽는다면 좀 더 깊이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황시운 작가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방이라는 공간에 대한 질문이었다. 필자는 최근 들어 방이 시간이 멈춘 공장 같다는 인상이 든다고 했다. 김경희 작가님께서는 누구의 간섭도 없는 나만의 방을 갖고 싶은 욕망이 지금도 이어진다는 답변을 주셨다. 김혜나 작가님께서는 나이가 들수록 공간의 중요성이 커진다는 말씀과 함께 존재를 담을 수 있는 그릇과 같다고 하셨다. 이어서 이은선 작가님은 작업공간으로 방이 갖는 의미와 함께 휴식의 의미까지 전달해 주셨다.
    답변이 이어지는 동안 관객들은 저마다 사랑이나 감각,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위로, 별장지기, 방 같은 것을 떠올렸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떠올린 같은 생각이면서 동시에 모두 다른 생각. 그것은 『호텔 프린스』가 만들어진 과정과 닮아 있었다.

 

    손에 쥔 커피가 식을 무렵 초대가수인 윤덕원 님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따뜻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는 식은 커피에 온기를 더해 줬다. 이번에 발표하신 솔로곡 「농담」과 함께 「1/10」, 「유자차」 등을 함께 해주셨다. 사이사이 『호텔 프린스』에 대한 다정한 감상과 작업,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눠 주셨다. “우리 좋았던 날들의 기억을 설탕에 켜켜이 묻어 언젠가 문득 너무 힘들 때면 꺼내어 볼 수 있게”라는 「유자차」의 가사처럼 언젠가 오늘 오갔던 다정한 목소리와 따뜻한 노래를 꺼내 보며 추억할 날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봄날로 가자”는 가사를 끝으로 모든 순서가 막을 내렸다. 그사이 밖은 성큼 어두워져 있었다. 온순했던 날씨도 해가 지자 조금 싸늘해졌다. 하지만 끝인사를 나누며 서로 어깨를 토닥이는 순간, 걸음마다 바닥이 환해지고 뺨에 닿는 목소리에 온기가 돌았다. 북콘서트가 『호텔 프린스』를 읽어보셨거나 앞으로 읽어보실 분들에게는 작가님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 볼 수 있는 자리였고, 작가님들에게는 독자 분들의 목소리를 듣는 귀한 자리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모두 각자의 방에 돌아가 문득 다가올 봄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머무는 방은 모두 다르지만 봄을 생각하는 순간 방은 모두의 방이 되지 않을까. 각각 다른 시간에 호텔에 머물렀지만 소설을 생각하는 순간 하나로 이어졌던 것처럼.
    지금도 호텔 프린스에서 어떤 작가는 소설을 쓰고 있을 것이다. 이제 막 돋아날 새싹처럼 파릇파릇한 문장이 꿈틀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어질 계절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전석순
작가소개 / 전석순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회전의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1년 장편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장편소설로 『거의 모든 거짓말』이 있다.

 

   《문장웹진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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