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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들의 樂취미들] 술꾼

  • 작성일 2015-12-01
  • 조회수 683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술꾼

 

 

 

임재영

 

 

 

    난 술이 좋다. 술 마시는 분위기가 좋다는 둥 얌전 뺄 생각은 없다. 난 술이라는 이 호사스러운 음료가 좋다. 디저트처럼, 술은 사치품이다. 막대한 재료, 막대한 노동력, 막대한 시간을 투자하여 만들어낸 허기도 달래지 못하는 먹거리다. 어떤 점에서 보면 술은 디저트보다 더하다. 디저트는 열량이라도 있지, 술은 거의 아무런 영양가도 없이, 오직 혀의 쾌락을 추구할 뿐이다. 그를 위해 몇 섬의 쌀을 갈아 넣는 것이다. 사실 쌀이 아니어도 된다. 발효만 된다면 인간은 무엇이든지간에 술로 만든다. 보리, 호밀, 조, 감자, 고구마, 아가베, 포도, 사탕수수……. 어느 험난한 시기에도 술은 언제나 만들어졌다. 아무리 가난해도 탁주든 럼이든 하여튼 술을 마셔야만 하는 술꾼들은 언제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림꾼이 비상시를 대비해 구급약을 찬장에 쟁여 두듯이, 술에서 깨는 긴급한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술병을 언제나 들고 다닌다. 이 구제할 길 없는 술꾼들은 인류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있으리라. 그리고 그 술꾼들의 이름을 모두 적어 놓은 역사만큼이나 긴 목록이 있다면, 너무 자만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아마 나도 그 말미에 손가락 하나 정돈 걸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처음부터 술꾼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술꾼으로서의 역사는 짧다. 나는 대학을 가고 군대를 전역하고 나서도 술을 거의 마시지 않던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소주와 맥주의 맛을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취하는 건 불쾌한 경험이었다. 만취하여 토하는 내 모습은 추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나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스물다섯 살이 되던 해, 처음으로 칵테일을 접하게 되었다. 달달하고, 새콤하고, 복잡했던 그 맛. 나는 그 후로 바를 전전하였지만, 칵테일은 너무 비쌌다. 나는 돈 걱정 없이 이 맛난 술을 영원히 퍼마시고 싶었다.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그때가 바로 내가 술꾼이 된 순간이었다. 광대한 술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싶다는 몽상을 한 그 순간 말이다. 술꾼은 주량이나 중독성 정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 당치 않은 술의 바다를 꿈꿀 때, 술꾼은 태어난다. 결국 나는 집에서 칵테일 수영장을 만들고 헤엄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술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보드카, 럼, 테킬라, 진, 위스키, 브랜디, 그리고 무수한 종류의 리큐어들……. 내가 사는 술들은 점점 많아지고, 점점 더 비싸졌다. 칵테일의 세계는 술집 메뉴판보다 넓고 깊었다.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사실 나보다는 내 친구들에게 더욱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술들은 쏟아졌고,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친구들을 불러 칵테일을 말아 주었다. 내 혀는 점점 높아 갔다. 그리고 내 통장 잔액도 점점 낮아졌다. 분명 처음에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 술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인데, 그런 초심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나는 점점 더 비싸고 맛있는 술을 찾아 떠돌기 시작했다. 책장으로만 가득 찼던 내 방 한구석에 술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집에서 얼마든지 시중에선 구할 수 없는 고급 칵테일들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양주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는 진과 테킬라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술은,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진으로, ‘베스텁 진(Bathtub Gin)’이다. 영국에서 구할 수 있으며, 기회가 닿는 분은 꼭 한 번 마셔 보시길. 그리고 당신이 고급 진을 구하셨다면, 고급 베르무트도 꼭 구하시길. 훌륭한 진과 베르무트로 만든 마티니는, 왜 마티니가 칵테일의 왕이라고 불리는지 굉장한 설득력으로 웅변한다.

 

    나의 술도락은 양주에서 멈추지 않았다. 술 재료를 구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둘러보던 어느 날, 나는 진열대에서 낯선 술을 발견했다. 이강주와 문배주, 우리나라 전통주였다. 술꾼으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접해 본 전통주는, 놀라웠다. 술은 종류마다 그 맛이 판이하게 다르지만, 그래도 맛 자체의 고하는 있다. 전통주는 양주와 완전히 다른 색을 가지고 있지만, 그 저렴한 가격에 비한다면 믿어지지 않는 수준의 맛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흥분했다. 좀 더 싸고, 좀 더 맛있는 술의 세계가 내 발 닿는 곳에 있다. 게다가 이 술을 만드는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도 있단 말이렷다? 나는 당장에 여행을 계획했다. 도서관에서 전통주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긁어모아, 한국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전통주의 목록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 좋은 여름날, 같은 술꾼 친구 하나와 동행하여 전국의 전통주 도가를 찾는 여행을 떠났다.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다. 백지에 불과했던 한반도가, 술을 찾겠다는 목적 하나로 새로운 의미를 띠고, 길들이 생겨났고, 또 새로운 만남이 피어났다. 우린 결코 갈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한반도의 구석을 들쑤시며 다녔다. 술의 색처럼, 술 빚는 사람들의 모습도 저마다 달랐다. 사는 모습도 천차만별이었다. 우리는 그 명인들의 한탄과 그들의 술을 마셨다. 그렇게 우리는 해를 이어 가며, 네 번의 전통주 여행을 다녀왔다. 한국에 더 이상 내가 맛보지 않은 전통주가 없을 때까지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어느 술꾼을 위해 첨언하자면, 독주로는 함양의 ‘솔송주’, 약주로는 대구의 ‘하향주’, 막걸리로는 울산의 ‘복순도가’, 정읍의 ‘송명섭 막걸리’를 추천한다.

 

    양주, 칵테일, 전통주에 이어서 다음은 맥주였다. 나와 함께 전통주 여행을 다니던 친구는, 뭐에 자극을 받았는지 자신은 맥주를 파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최소한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해외 맥주를 마셔 보겠다고 다짐하였고, 나는 참 좋은 생각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기꺼이 그 고된 여로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후로 우리는 대형마트를 돌아다니며, 돈이 허락하는 만큼 시시때때로 낯선 맥주들을 사먹기 시작했다. 세상은 본디 그렇게 돌고 도는 건지, 예전에 친구들에게 공짜로 술을 퍼 나르던 내가, 공짜로 맥주 바다에서 헤엄치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우리들은 정말 다종다양의 맥주들을 마시기 시작했다. 맥주들은 끝이 없었다. 계속해서 새로이 수입되는 맥주들을 따라잡으려면 한시도 게을러서는 안 됐다. 우린 정말 최선을 다해 마셨고, 결국 더 이상 새로운 맥주를 찾을 수 없게 된 어느 시점에서 이 방탕한 소비를 끝냈다. 맥주는 너무나 가짓수가 많고 또 사람마다 취향을 많이 타는지라 추천이 어렵다. 다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흑맥주인 ‘올드 라스푸틴’이며,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맥주 중에서는 ‘필스너 우르켈’과 ‘산토리 몰트’를 좋아한다.

 

    내 술도락은 현재 맥주에서 멈추었다. 와인, 위스키, 사케, 브랜디류는 일부러 건드리지 않았는데, 사실 그들을 건드렸다가는 내 지갑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내 술도락에 대한 간략한 기록이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술꾼이 되었다. 하지만 술꾼이 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건강과 금전이라는 사소한 지점을 제외하면, 한 인간이 술꾼이 되어 좋은 점은 꽤 많다.

 

    첫 번째로, 이곳은 새로운 맛의 세계다. 술은 다른 어떤 음식과도 공유할 수 없는 독특한, 술만이 가지고 있는 그 맛을 가지고 있다. 이 맛은 여타 다른 맛과 완전히 계통이 다른 맛으로서, 나름대로의 깊이와 수준, 그리고 무한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오직 전통주를 통해서만, 쌀에 얼마나 복잡한 맛들이 숨어 있었는지, 그리고 그중 단맛이라는 카테고리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다양한 측면이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술은 둔탁하기 그지없는 언어로는 묘사하기 힘든 아주 미묘한 미각들을 자극한다. 사실 이런 맛에 집중하기 위해서, 취기란 차라리 불쾌한 파생 효과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술을 마실 때마다 취하지 않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른다.

 

    두 번째로, 생각보다 술을 적게 마시게 된다. 술에 탐닉하다 보면, 맛없는 한국의 소주와 맥주를 마시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그러다 보니 정작 흔하게 벌어지는 술자리에서는 자연적으로 술을 자제하게 된다. 시중의 소주를 마시는 순간 드는, 그 모욕감과 비탄이란! 실제로 나는 술에 취미를 붙이면서, 종래보다 훨씬 더 취하는 빈도수가 줄어들었다. 거의 대부분의 술자리는 집에서 지인들과 여러 종류의 술을 늘어놓고 아주 조금씩 맛을 즐기는 시음회 같은 자리가 되었다. 만취도 없고, 주사도 없고, 추태도 없고, 구토도 없고, 숙취도 없다. 단점이라고는 내 집이 친구들의 고정 술집이 되었고, 내 돈으로 산 술들이 내 입보다는 친구들 입으로 더 많이 들어간다는 것 외엔 없다. 하지만 술이란 게 어차피 같이 마시려고 사는 거니까.

 

    세 번째로, 호사스런 독서를 할 수 있다. 작가 중엔 술꾼이 하도 많은지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소설에는 술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럴 때마다, 술꾼이라면 소설보다도 술에 더 시선이 가 입맛을 다시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종종 집에서 담근 위스키가 나오고, 황석영의 『여울물소리』에서는 ‘이강주’가 나오곤 한다. 나는 읽고 있는 소설에서 술이 나오면, 언제나 그와 최대한 비슷한 술(집에서 담근 위스키를 당장 구할 순 없잖은가)을 찾아내 곁에 따른다. 그리고 소설의 캐릭터가 술을 마실 때마다 함께 홀짝이며 책을 읽는데, 이는 술이 주는 여러 호사 중 하나다.

 

    이런저런 고로, 여러분, 술꾼이 되세요.

 

 

작가소개 / 임재영(소설가)

- 1985년 출생. 단편집 『아틀라스 유언장』 출간. 「찌혼, 시혼, 그리고 기구」 웹 연재 중.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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