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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들의 樂취미들] Kenny G 오타쿠와 소프라노 색소폰 이야기

  • 작성일 2015-12-01
  • 조회수 3,725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Kenny G 오타쿠와 소프라노 색소폰 이야기

 

 

 

류성훈

 

 

 

 

    학창 시절, 케니 지(Kenny G)의 음악에 완전히 빠져 있던 때가 있었다.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사서 컴포넌트에 끼워 음악을 듣는 것이 당시 학생들의 몇 안 되는 즐거움이었던 시절. 누나가 사온 ‘광고음악 모음집’이라는 특이한 기획의 카세트를 들으며 놀던 날이 있었다. 그중 어느 유명 청바지 메이커 광고 시그널 뮤직으로 사용되었다는 곡을 듣고 나는 그 특유의 소리와 감성에 혼자 전율했다. 나는 그때 그 특별한 색소포니스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국내 대중가요밖에 아는 것이 없던 어린 시절, 나는 그 아티스트의 앨범을 찾아 최초로 음반 가게를 기웃거렸다. 결국 찾아낸 그 곡의 정체는, 케니 지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인 《Montage》(1990년)에 처음 수록된 「Going Home」이었다. 이 곡은 지금도 수많은 한국 팬을 거느린 케니 지의 대표곡 중 하나인데, 그 「고잉 홈(Going Home)」을 시작으로, 학창 시절 대부분의 맥을 함께했던 나의 케니 지 앓이는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용돈이 모일 때마다 케니 지의 정규 앨범을 구입했다. 카세트테이프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CD로 음반매체의 변혁이 완전히 이루어진 이후에도, 출시될 때마다 모두 구입하는 등 팬으로서의 기본(?)을 다했다. 국내에서는 마니아들 이외에겐 별로 알려지지 않은 첫 앨범을 비롯해 CD로 본격 출시된 걸로 기억하는 《Classics In the Key of G》와 같은 고전 아티스트들 명곡 어레인지 음반까지 모두 섭렵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Sentimental」(《Breathless》, 1992년)이란 곡을 듣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직접 이 곡들을 연주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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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니 지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보자면, 그의 음악은 여타 재즈들과 여러 면에서 다르다. 장르를 불문하더라도 물론 그는 재즈 연주자다. 그러나 편의를 위해 굳이 구분하는 만행(?)을 해보자면, 흔히 컨템포러리 재즈(Contemporary Jazz)라고 해서 팝과 프로그레시브, 그리고 어떤 면으로는 뉴에이지 음악의 속성까지도 걸쳐 있는 독자적인 스타일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 끈적하고 자유로운 올드 재즈보다 쉽고 대중적인 스타일이라고 보면 편할 것이다. ‘존 콜트레인’이나 ‘소니 롤린스’ 같은 올드 재즈 색소포니스트들과 다른 점은 정형화된 구성과 악보가 존재한다는 점이며, 또한 알토나 테너가 아닌, 소프라노 색소폰이 주력이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비슷한 스타일의 아티스트로는 데이비드 샌본, 캔디 덜퍼, 데이브 코즈, 케니 가렛 등이 있는데, 대부분 마일즈 데이비스나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1999년 사망)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중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사람이자 소프라노 색소폰 특유의 음색을 기조로 음악성 등 여러 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연주자는 단연 케니 지다.
    소프라노 색소폰은 클라리넷처럼 직관으로 되어있는데, 크기가 다른 색소폰들보다 작아 음색이 맑고 가녀리다. 그럼에도 날카로운 하이 톤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유의 강력한 개성이 있다. 반드시 그런 건 아니지만, 뚝배기 장맛 같은 묵직한 연주보다는 경쾌한 팝이나 프로그레시브에 더 어울린다고나 할까. 단 그만큼 음정이 불안정하고 컨트롤이 힘들며, 적응되지 않으면 장시간 연주하기 힘들다는 단점도 있다. 어쨌든 음악마저 난해하고 불편한 것을 듣고 싶진 않던 당시 마음을 돌이켜보면, 나는 케니 지 음악의 그런 편안하고 서정적인 점들을 좋아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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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나는 저렴한 대만제 보급형 소프라노 색소폰을 구해 한동안 열심히 배우고 연습했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 학원도 다녔고 기타의 신이라고 불리던 동네 형에게 두어 달 기타도 배워보았다. 하지만 뭔가 내 취미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악기 하나쯤은 꼭 해보고 싶던 나는, 아는 사람도 없고 연계된 소스도 없이 아등바등 색소폰을 배우고 싶어 했다.
    악기를 하는 모든 사람의 욕심이 그러하듯 이런 나의 케니 지 ‘팬질’은 결국 오타쿠처럼 변해 어떤 정점을 찍는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저급한 악기와 저급한 실력으로는 케니 지의 파워풀하면서 맑게 터지는, 금속성 소리의 매력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불 수 있게 된 후, 나는 케니 지가 무슨 악기를 어떻게 세팅해서 사용하는지 알아보았다. 결국 어떤 계기로 인해 케니 지가 생산 시리얼 번호 8만 번 대의 뉴욕 셀마 마크 식스(Mark VI, 색소폰의 명가인 프랑스 앙리 셀마의 역사적인 명기로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대부분이 사용한다. ‘뉴욕 셀마’는 미국에서 부속을 수입해 뉴욕 공장에서 조립한 일부 모델을 말하는데, 이 당시의 모델은 더욱 희소성이 높을 뿐 아니라 음질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를 사용하고, Bobby Dukoff D8호 마우스피스에 미국제 Robner 가죽 리가처, P. Hemke 2 1/2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음을 확인했다. 그러곤 많은 수소문과 노력 끝에, 이와 거의 같은 악기 사양을 세팅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나는 대학원 가기 전 잠깐 다니던 작은 언론사에서 받은 돈, 서울시청 관광과 공공근로 일과 어학용 교재 회사 물류창고 일을 하면서 이리저리 모은 돈, 그리고 용돈을 보태었다. 결국 뉴욕 셀마 모델은 아니지만 프랑스제 진품 ‘마크 식스’를 구했고, 듀코프 마우스피스 D8호도 구했다. 모자란 것은 ‘실력’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음질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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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욕심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오래 전부터 케니 지의 내한공연을 모두 관람해 왔는데도 나는 사인회에 가볼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했던 내한공연을 기회삼아 나는 내 색소폰을 들고 공연장으로 갔다. 그러곤 공연 후의 팬 사인회에서 내 학창 시절의 추억이자 최고의 아티스트인 그를 만났다. 그리고 악기와 케이스에 사인을 받았다. 솔직히 그의 오랜 팬 중 한 사람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그의 음악을 들으며 살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수백 명이 줄 서서 기다리는 상황에서 그런 여유는 없었다. 하지만 너무 뿌듯했고, 꽤 벅찬 경험이었다. 케니 지의 팬 중에서 악기를 할 줄 아는 분들이 그에게 사인을 받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내가 그중 하나가 될 줄은 예상치 못했다. 중학교 때 우연히 들은 청바지 광고음악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오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물론 그 악기는, 지금도 내 보물 중 하나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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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면 내가 최소한 오타쿠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케니 지의 광팬이나 마니아쯤 되었던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나는 사실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쓴 것도 처음인데다 사람들 앞에서 연주를 들려준 경험도 몇 번 되지 않는다. 성탄절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한 공연에서 한 번, 동료 문청/시인의 결혼식 축가 두 번과 낭송회 때 연주 한 번이 전부다. 잘 얘기하지 않는 성격 탓이기도,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즘은 바빠서 악기를 꺼내 본 지가 언젠지 잊을 정도로 연습도 못 해보고 있다. 하지만 생활에 더 여유가 생기면 수준 높은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더 배우고 연습하겠다는 의지는 그대로이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내가 장가를 가게 된다면 신부에게 내 색소폰으로 멋진 축가를 연주해 주고픈 소박한(?) 꿈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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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 류성훈(시인)

- 1981년 부산 출생. 201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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