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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거룩하다기보다는 눈물겨운

  • 작성일 2015-05-04
  • 조회수 863

 

[박경리 선생님을 추억하며]

 

 

거룩하다기보다는 눈물겨운

 

 

 

박정애(소설가)

 

 

 

 

    1994년 여름, 나는 첫아이를 뱃속에 품은 채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어떤 회사에 다녔다. 몸은 쉽사리 피곤해졌고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기왕에도 몇몇 직장을 때려치운 전력이 있던 나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한 누군가를 떠올렸고, 어쩌면 나 또한 그런 종류의 인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학부 전공을 살려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 과정을 밟으려 합니다.”
    사표를 제출하며 내가 상사에게 한 말인즉슨 그랬다. 하지만 내가 그해 11월 남산만 한 배를 헐렁한 겨울 코트로 가리고 대학원 입학시험을 치르러 간 곳은 사회과학대학 언론정보학과가 아니라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였다. 내가 겪은 가장 더웠던 여름과 가장 반가웠던 가을, 그 몇 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두고도 곧바로 대학원 입시 준비에 매달리는 건 싫어서, 준비운동 삼아 『임꺽정』이나 『토지』 같은 대하소설이나 읽어 볼까 싶었더랬다. 나한테 낯익고 만만한 쪽은 『토지』였다. 내 또래라면 대부분 그렇듯 TV드라마에서 만난 서희라는 인물과 『토지』의 서사가 워낙 강렬했던 까닭이다. 강수연 씨와 한혜숙 씨가 어린 서희와 성인 서희를 연기한 <토지>를 먼저 보았고, 안연홍 씨와 최수지 씨 주연의 <토지>는 몇 년 뒤에 보았다. 드라마답게 서희 편과 조준구 편이 선명한 선악 대결 구도를 펼쳤는데, 재미도 있었고 인기도 많았다. 대하드라마를 그렇게 두 번이나 봐서 그랬나, 서점엘 가도 『토지』라면 이미 읽은 작품으로 치부하고 다른 책을 골라잡곤 했다.
    어쨌거나 너무너무 더워서 짜증을 내다 못해 울기까지 했던 그 여름에 나는 『토지』와 더불어 살았다. 어려서 TV를 보던 때야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는 단연 서희였다. 서릿발 같은 자존심에다 그에 걸맞은 미모와 재기를 지닌 완벽한 인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뺨치는 최서희의 카리스마에 흠뻑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울룩불룩 꾸르륵꾸르륵 움직이는 배를 쓰다듬으며 책으로 읽은 『토지』는 달랐다. 임이네, 강청댁, 함안댁, 두만네, 막딸네 등 하동 평사리 아낙네들에게 정이 갔다. 그녀들은 생생하게 살아서 마실 다니고 품앗이하고 악다구니하고 생존을 위해 발버둥질했고 종종 내 꿈속에까지 좇아와 수다를 떨어댔다. 마지막 권을 덮으면서 나는 『토지』의 수많은 인물들과, 그리고 박경리 작가와 깊고도 오랜 대화를 나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중에 이보다 충만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디 있겠느냐, 이왕 공부할 거면 이렇듯 풍요롭고 이렇듯 매력적인 세계를 공부하자고 나는 마음을 바꿔 먹고야 말았다. 내 대학원 전공은 그렇게 바뀌었다.
    그리고 2001년 겨울 어느 날, 나는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 창작실에서 잠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오오 7일, 7일, 이 7일이 오롯이 내 것이기를. 종교가 없는 나는 세상의 모든 신께 기도했다. 둘째 아이를 낳은 후에 등단했기에, 내 일상은 글 쓰다 아이 보고 빨래하다 글 쓰고 그러다 저녁 찬거리를 장만해야 하는 식으로 파편적이고 분열적이었다. 힘겹게, 때로는 힘겹다는 자의식조차 느낄 새 없이 종종거리던 시절인데, 토지문화관의 창작 지원 프로그램에 힘입어 7일 동안 내 생명력과 창조력을 오직 글쓰기에 집중해도 되는 축복의 시간을 가졌더랬다. 재현이, 채연이, 두 아이들과 처음으로 그렇게 오래 떨어져 있으면서 내가 작업한 파일의 이름은 ‘재현이와 채연이를 위하여’였다. 나는 내 아이들을 위해, 내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세상을 일구어 나갈 또래 아이들을 위해 장편동화(나중에 『똥 땅 나라에서 온 친구』라는 제목으로 출간)의 초고를 그 7일 동안 완성할 수 있었다.
    그뿐이던가. 도시에선 오래전에 추방당한 칠흑의 밤, 먼 산 주름을 감싸고 도는 신비로운 이내, 늦겨울 여윈 싸락눈에 덮여 눈부시게 빛나는 아침, 서리꽃 만개한 솔수펑을 나는 보았고, 진정 고마운 마음으로 즐겼다.
    퇴소하던 날, 토지문화관 옆에 아담하게 지어진 자택을 찾아 박경리 선생과 따님을 만나 뵙고 잠시 담소를 나눈 기억도 잊을 수 없다. 칼칼한 음성, 꼿꼿한 자태로 현금의 문학판에 대한 당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하시던 당시 일흔일곱의 대선배는, 모든 여성 작가들의 역할 모델로서 부족함이 없으셨다. 그러시다가도 현관을 나서는 내 등허리를 쓰다듬으시며 문 앞 돌계단에서 미끄러지지 말라고, 당신은 거기서 미끄러져서 일 년째 고생하고 있다고 염려해 주실 때는 푸근한 할머니 같으셨다.
    『토지』의 인물에 빗대자면, 박경리 선생은 서희와 임이네 사이에 우뚝 서 계신 것 같았다. 외면이든 내면이든 완벽을 추구하는 서희라는 초자아, 자기보존이라는 생명체 본연의 충동으로 한 생애를 꾸역꾸역 살아내는 임이네, 그 사이 어디쯤에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깎이고 쓸리며 남다른 삶을 일구어 오신 당신의 모습을 언뜻 본 듯했다.
    이듬해 여름에는 박사 논문 초고를 쓰느라 한 달 가량, 토지문화관 창작실에 머물렀다. ‘50, 60년대 여성 작가 연구’가 논문 주제여서 자연스레 이 시기 대표적 여성 작가인 박경리 선생의 작품과 삶 또한 더 꼬치꼬치 들이파게 됐다. 그때 발견한, 선생의 육성 한 마디를 소개하고 싶다. 1960년대 후반, 파월 종군작가단장으로 활약한 최정희, ‘시’로써 파월 장병을 독려한 모윤숙의 목소리가 한국 여성 문단을 휘덮었던 시대, 박경리 선생은 다른 목소리를 내셨다. “우리 젊은이들의 피는 거룩하다기보다 눈물겹다.” 자체방위도 힘겨운 한국이라는 조그마한 분단국에서 수만의 전투병을 파병해야 하는 현실을 슬퍼하신 것이다.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에 포박된 수사인 ‘거룩하다’에서 근원적 차원의 인간애를 제시하는 ‘눈물겹다’의 거리야말로 이전 세대와 박경리 선생의 거리였던 바, 까마득한 후배로서 우러르는 선생의 초상 또한, 거룩하다기보다는 눈물겹다는 생각에 잠시 콧잔등이 시큰해졌던 기억이 난다.

 

 

 

작가소개 / 박정애(소설가)

강원대학교 스토리텔링학과 교수. 장편소설로 『물의 말』, 『덴동어미전』, 『강빈』 등, 장편동화로 『똥 땅 나라에서 온 친구』, 『친구가 필요해』, 『사람 빌려주는 도서관』 등 출간.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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