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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에세이③] 꽃들과의 작별

  • 작성일 2015-05-04
  • 조회수 825

 

[김중일 픽션에세이③]

 

 


꽃들과의 작별

 

 

 

김중일

 

 

 

 

    한 사람을 새로 만나는 시간은 우리 생에 있어 환절기와 같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계절과 계절이 스치듯 만나, 같은 계절을 살다가, 떠난다. 스치듯 그냥 지나치기도 하지만, 더러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해를 바꾸어 사귀기도 하고, 평생을 함께하기도 한다. 계절과 계절 사이는 우리에게 만남의 시간이다. 동시에 작별의 시간이다. “너를 처음 만난 건 봄이었어.” 겨울에 태어난 내게, 늘 멀리서 돈을 벌던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와 작별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니 벚꽃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사위에 온통 꽃들이 가득 차오른 봄이었지만 당시의 나는 봄이 온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봄이 아프게 가슴에 아로새겨진 것은 오히려 봄이 다 저물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제야 겨우 나는 이 봄에 내게, 그리고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실적’으로 인지할 수 있었다. 한바탕 꿈처럼 봄이 갔고 꽃들도 갔다.
    봄. 꽃이야 사철 피고 지는 것이지만, 봄이야말로 꽃들의 계절이다. 그러나 봄날의 꽃들에 대해서, 아직은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봄은 작별의 계절이다. 무수히 많은 꽃들을 짧은 만남 뒤로 고이 되돌려 보내야 한다. 꽃은 이미 피어 있을 때보다는 꽃봉오리를 곧 터뜨리며 피어나려 할 때 눈길을 끌고, 필 때보다 질 때의 모습이 눈에 깊이 와 박힌다. 봄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만큼 마음이 부서지게 아픈 계절이다. 기억 위에 덕지덕지 붙은 아주 작은 피딱지라도 자칫 잘못 떼어내면, 몸속 발끝까지 뻗어 있던 혈관다발까지 모조리 딸려 나올 것 같다. 봄은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기억 그 자체다. 조금만 삐끗하면 와르르 꽃들이 허물어질 것 같다. 또, 아무리 조심해도 꽃들이 허물어지고야 마는 것이 봄이기도 하다.
    나는 작지만 잊을 수 없이 선명한 이미지의 기억을 몇 가지 정도 가지고 있다.

 

    1994년 봄.

 

    봄이 저물어 가던 어느 날 등굣길에 보니 아파트 1층 현관에 주홍빛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장미과의 꽃이었는데, 넝쿨째 피는 장미가 아닌 마치 헌화처럼, 누군가 간밤에 따로 심어 놓고 간 향초처럼 당장이라도 하얗게 산화할 것처럼 불꽃같이 선연한 잎사귀를 매달고 있었다. 한 가닥 삐죽이 솟은 줄기는 내 무릎 높이를 조금 넘는 정도였는데, 가는 가지 끝에는 제법 주먹만 한 장미 한 송이를 매달고 있었다. 오래된 아파트의 어둑신한 현관 앞에 낀 검푸른 이끼와 대비되어, 꽃은 왠지 내가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선연함을 내뿜고 있었다. 그 한 송이 꽃은 마치 오랫동안 용기를 그러모으며 기다리다가 바로 오늘 고백을 감행하고자 하는 누군가의 용기 또는 열정 같았다. 나는 잠시 등교도 잊고 한동안 그 자리에 붙박여 있다가 어느새 내 옆에 선 대여섯 살쯤이나 됐을 법한 위층 사내아이를 발견했다. 층간소음 문제로 한번 위층에 올라갔을 때 대문을 열고 나온 창백한 얼굴의 젊은 여자의 옷깃을 붙잡고 있던 몸집 작은 그 아이를 나는 기억했다. 아이는 단 몇 초간의 응시 끝에 망설임 없이 장미를 꺾었다. 그리고 그 꽃을 뒤따라 내려온 앳된 엄마에게 건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멍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예기치 않게 불쑥 꽃을 받아든 엄마는 어리둥절한 표정도 잠시 오월의 아침보다 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내 기억대로라면, 그 해가 미처 다 가기 전에 아이의 엄마는 지병으로 세상을 버렸다. 나는 그때 그 한 송이 꽃이 ‘목숨’ 같다는 생각을 지금도 떨칠 수 없다.

 

    2004년 봄

 

    평일 늦은 오후 한양대 병원 응급실 앞 자그마한 공터. 환자복을 입은 공터의 사람들은 예외 없이 옅은 미소를 물고 있었다. 아직 한기가 느껴지는 어깨 위에 걸쳐진 스웨터처럼 편안한 웃음이었다. 굳이 병실 바깥에 있는 쉼터에서까지 걱정 근심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다닐 일은 아니지만, 공터의 분위기에는 조금은 납득할 수 없을 정도의 안도감과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공터는 약 절반 정도의 체념과 체념보다는 아주 약간 더 많은 양의 기대와 희망이 혼합된 공기로 가득 채워진 듯했다. 한쪽에 응급실이 있는 공터로 끊임없이 구급차가 위급한 환자들을 실어 날랐다. 온몸이 피로 범벅이 된 처참한 환자들도 줄곧 들어왔다.
    큰 수술을 몇 차례 넘긴 사람들은 물론 수술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도 적어도 이제는 처음 자신에게 갑자기 불행에 던져졌을 때처럼 당혹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행이란 매를 먼저 맞아 본, 몸과 마음이 이미 아픈 사람만이 갖는 묘한 평온함이다. 그것은 일종의 체념이되, 생존을 위해 생이 주는 마지막 선물과도 같은 체념이다. 이미 벌어져 버려 돌이킬 수 없는 불행 뒤에 오는 그 체념에는, 평상시 일상의 소소한 불운 뒤에는 좀처럼 올 수 없는, 생의 질긴 본능과도 같은 안도와 기대가 동반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당시 아버지는 병이 깊었지만 그런 체념과 안도와 기대를 천천히 차례차례 밟아 가며 느리게 느리게 회복하였다. 내 손을 잡고 그는 걸음마를 처음 배우듯 천천히 발을 떼어 놓으며 재활하였다. 그 시절 나는 그의 얼굴에 더 이상의 불행과 당혹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심지어 그때까지 내가 보아 온 그의 얼굴 중에 가장 편안한 얼굴이었다.
    저녁 배식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하나둘 병실로 돌아가고 공터는 비어 갔다. 여전히 요란한 벌떼처럼 구급차가 끊임없이 날아드는 응급실 앞 자그마한 공터는, 서서히 붉은 석양으로 차올랐다. 아버지를 모시고 공터를 떠나며 문득 뒤돌아보니 금세 석양으로 넘칠 듯 가득한 공터는 마치 한 송이의 꽃처럼 순간의 고요 속에 선홍빛으로 활짝 피어 있었다. 나는 그 도저한 체념과 체념 속에서만 돋는 기대 혹은 희망의 모습으로 매일매일 피고 지는 목숨의 꽃을 꺾을 힘이 없었다. 꺾기는커녕 한 그릇의 따뜻한 물이라도 흠뻑 주고 싶었다. 그러나 섣부른 도움이나 위로처럼 물을 줄 확신 또한 내게는 없었다. 선홍빛 석양이 가득한 공터를 꽃다발처럼 받아들고 병실로 돌아온 그날 내내 아버지의 얼굴에 활기가 어렸다. 아침 회진 때 주치의로부터 들은 수술 결과가 무척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시 받아 안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던 목숨이란 꽃. 그날로부터 약 십 년이 흐른 후 아버지는 안고 있던 그 꽃을 떨구었다. 공터의 봄 이후 열 번째 맞는 봄이었고, 세월호가 꽃 같은 생명을 태운 채 침몰한 봄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영정에 가장 먼저 꽃을 놓았다.

 

    2014년 봄

 

    2014년 봄 이전과 이후로 생을 나누는 데 동의하는 사람이, 나를 비롯해 무척 많을 것이 분명하다.

 

    2015년 봄

 

    놀랍게도 나는 작년에 떠난 사람을 올해 다시 만났다. 올해의 꽃이 작년과 같은 땅에서 새로 피듯, 그를 만났다. 올해의 꽃은 작년과 재작년 혹은 그 이전의 꽃은 분명 아니지만, 그 꽃이 아닌 것도 아니었다. 올해의 꽃에 작년까지의 기억을 덧입히면, 내가 알던 바로 그 꽃인 것이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몸서리치며 봐도 못 본 체하거나 일부러 안 보이게 기억이라는 꽃을 꺾어버릴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꽃이 안 피고, 안 지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어떤 꽃도 꺾을 힘과 의지와 용기가 없다. 어떻게 걷잡을 수 없이 산에 들에 들꽃처럼 피어오르는 기억을 일일이 다 솎아내겠는가. 나는 그럴 시간도 없을뿐더러, 원치도 않는다. 핀 꽃이 스스로 질 때까지 그저 지켜볼 뿐이다. 스스로 다시 필 때까지 그저 기다릴 뿐이다. 매년 모양이나 색깔을 아주 조금씩 바꾸어 가더라도, 기억 속의 어떤 모습으로든 계속해서 피고 지기를 희망한다. 내가 만약 참지 못하고 꽃을 꺾게 된다면, 여전히 생생한 상처를 단 며칠이라도 차라리 머리맡에 두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뿐이다. 꽃이 피고 지고 할 땅은 오직 나의 기억뿐이다. 나는 내 황폐한 기억까지 똑같이 소중히 보존할 것이다. 나는 내 고통스럽고 슬픈 기억을 실수라도 내버려두는 일 없이, 목숨을 다할 때까지 넓고 비옥하게 가꾸어 가려고 한다. 나와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기억들이 모이고 합쳐서 마을이 되고 나라가 되고 지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일단 기억의 문을 열지 않고는 기억의 문 안에 있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영원한 작별의 시간을 이어 갈 수 있는 다른 뾰족한 방법이 없다.

 

 

 

작가소개 / 김중일(시인)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국경꽃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가 있음.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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