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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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김중일 픽션에세이]삼십대 그리고 작별이란 말
[김중일 픽션에세이] 삼십대 그리고 작별이란 말 김중일 변변한 작별도 없이 삼십대가 가고 있다. 작별 위에 누워 작별을 덮고 작별을 먹고 작별을 마시며 작별을 타고 작별을 지나 작별에 도착하여 작별을 열고 작별 속으로 들어가 작별의 한가운데에서 매 순간 작별의 시간을 살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나의 삼십대. 나는 곧 삼십대를 떠나야 한다. 나는 내가 지나온 시간의 의미를 정리할 능력이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부끄러움을 부끄러움 없이 모조리 고백하고 기록한다면 조금은 가능하다. 모든 고백의 문장들은 의미가 있다. 문장의 끝에는 마침표가 찍히기 마련이다. 내 삼십대를 고백하는 문장의 마침표로 나는 ‘작별’을 찍고 싶다. 물론 작별 이후에도 문장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 문장 역시 무엇의 기록이든 한 점 작별로 모일 것이다. 나는 의도치 않게 「삼십대」라는 제목의 시를 쓴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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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픽션에세이②] 고요와의 작별
[김중일 픽션에세이②] 고요와의 작별 김중일 김유희. 말하자면 나의 첫사랑. 굳이 문학적으로 그 아이를 비유하자고 들자면 이 세상에는 동원될 만한 수사들이 무수히 많겠지만, 나로서는 의미가 없다. 달처럼 하얀 이마랄지, 꽃잎 같은 손등이랄지, 뭐 그런 흔한 비유들도 틀리진 않으나 완벽하지도 못하다. 내게 각인된 그 아이의 이미지에 완벽히 들어맞는 수사는 오직 ‘김유희 같다’뿐이다. 나는 열두 살의 ‘김유희 같은’ 김유희를 알고 있다. 담임선생님의 별명은 투명인간이었다. 담임선생님이 교실을 뛰쳐나간 건 깊어 가던 가을의 어느 날이었다. 우리 학급은 전교에서 ‘시끄럽기’로 일등인 반이었다. 옆 학급 선생님이 수업하다 말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켜 달라며 담임선생님을 찾아오길 여러 번, 그나마도 2학기부터는 포기했다. 그러나 간혹 참지 못하고 교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는 우리 반 아이들을 향해 “이노무 녀석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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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픽션 에세이⑥] 불행과의 작별
[김중일 픽션에세이⑥] 불행과의 작별 김중일(시인) 1. 1994년 여름의 문학적 더위 최악의 무더위가 찾아왔던 1994년 여름. 벼락치기로 준비한 기말시험을 마치고 하교하는 길이었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다 무심코 시선이 간 가전제품 대리점의 모든 텔레비전에서는 일제히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다. 김일성이 죽다니! 나는 조금 어지러웠다. 김일성의 사망 때문이 아니라, 수면부족과 무지막지한 더위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예외 없이 죽어도 더위는 그야말로 불멸이다. 열여덟의 나는 구로공단역(현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대림역 사이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도림천 방죽을 따라 걷는 등하굣길, 머리 위로 철커덩 철커덩 쇳소리를 내며 전철이 지나다녔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이미 K고등학교를 알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 찾아온 첫사랑이 나와 다르게 Y중학교로 배정 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