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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공개 인터뷰 나는 왜 제3회 최민석 자선소설] 괜찮아,니 털쯤은

  • 작성일 2014-06-09
  • 조회수 1,766

 

[연속 공개 인터뷰 나는 왜 제3회 최민석 자선소설]

 

 

“괜찮아, 니 털쯤은”

 

 

 

최민석

 

 


 

 

[작가 노트]

 
    이 소설을 쓸 당시, 저는 ‘콤플렉스와 상처가 없는 인간이 존재하기는 할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만약 모든 인간에게 상처와 콤플렉스는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 싸우고 있다면? 그렇다면 과연 그 분투의 극단적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품고 있다가, 결국 가장 극단적인 경우인 ‘내가 만약 원숭이가 되어 간다면 어떠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이 질문에 답한다는 심정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 소설은 그야말로 내키는 대로 써버렸기에 쓰다 보니 길어져서 단편이 아닌, 중편소설이 되어버렸습니다. 거, 참.

 

1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다. 키 큰 사람, 키 작은 사람, 머리숱 많은 사람, 머리숱 적은 사람, 근육질의 남자, 왜소한 체격의 사람, 그리고 원숭이 인간.
    ‘아, 잠깐. 뭐라고, 원숭이 인간?’
    ‘맞다, 원숭이 인간.’
    그렇다. 내가 실은 원숭이라고 말을 하면 처음에는 농담으로 생각하다가, 나의 진지한 얼굴을 보고는 ‘설마겠지’라는 표정을 짓다가, 결국에는 당혹감을 감춰버리지 못할 것이다.
    뭐,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물론, 내가 원숭이라는 사실을 사람을 만날 때마다 떠벌리지는 않는다. 아무리 사회가 다양화되어도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사실 원숭이입니다. 밤마다 목이 감겨버릴 정도로 털이 자랍니다”라고 첫인사를 건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원숭이라는 사실을 몇 명에게 밝혔다.
    첫 번째, 엄마다. 나는 마치 초경을 한 소녀가 죽을병에 걸렸다고 걱정하듯이 심각하게 고백했다. 하지만, 엄마는 “시장에서 바나나 사올게. 많이 먹고 재주도 보여주렴” 하고 대답하고선, 이틀에 한 번씩 필리핀산 바나나를 사오고 있다. ‘왜 유독 필리핀 바나나냐?’고 물으면, 엄마는 “평생 동안 사야 하는데 매번 비싼 제주 바나나를 사올 순 없잖니”라고 말했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매번은 어려울지라도 한두 번은 제주 바나나를 사올 법도 한데, 여태껏 제주 바나나를 사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교리를 엄격히 지키는 구도자처럼 묵묵히 필리핀 바나나만 사오고 있다.
    별말 없이 바나나만 사온 게 이십 년째니, 엄마도 내가 원숭이라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이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그저 필리핀 바나나를 꾸준히 사오고, 욕실 배수구가 털로 막히면 꾸준히 뽑아내고, 아침마다 내 방에 수북이 쌓인 털을 묵묵히 쓸어낼 뿐이다.
    두 번째는, 나의 주치의다. 그는 담담하게 이미 학계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증상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 줬다. 나와 같은 사람이 우리나라에만 약 백여 명에 달하며, 일본에는 특히 이 증상이 성행해 약 만 명에 가까운 환자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매일 면도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바나나만 먹으면 완전한 원숭이가 될 수도 있으니 인간과 같은 식단을 꾸준히 지켜야 한다고 충고했다. 특히, 된장이 좋다는 말을 강조했다. 최근 의학계에서 인간이 원숭이로 퇴화하는 걸 막는 데 가장 좋은 성분이 바로 콩이 발효할 때 생성되는 펩타이드 성분이라는 것을 밝혀냈다고 했다. 물론 의학계만의 비밀이었다.
    또, 팔이 다리로 퇴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상체 근육을 단련해야 하고, 두뇌의 퇴화를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독서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잘만 훈련하면 야구선수 이치로처럼 오히려 인간 이상의 신체적 능력을 지닐 수 있다는 성공사례도 곁들였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꾸준한 독서로 오히려 작가가 된 케이스라며 격려했다. 의외로 나 같은 증상을 겪고 있는 원숭이 인간이 많았고, 그들의 ‘인간 승리’는 눈물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
    따지고 보면, 주치의에게 한 고백은 일종의 치료이자 직업적 관계에서 나눈 상담이었다. 그러니 나는 한 번의 진정한 고백과 한 번의 의료적 고백을 했는데, 추가하자면 약간 생소한 고백도 하나 있다. 지면이 부족할 것 같아 생략하려 했으나, 아무래도 그 고백의 대상이 그냥 지나치기에는 미안하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야겠다.
    아버지다. 명색이 아버지인지라 자식 된 도리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준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항상 자기 관점에서 말을 재구성한 뒤에 답을 했다.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이가 돼버렸다.
    그런고로, 나는 간결하게 “실은 제가 원숭이입니다”라고 말했고, 아버지는 날 한동안 뚫어지게 보더니 “허, 원숭이 자식이라도 되고 싶은 거냐?”라고 쏘아대고는 읽고 있던 신문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1분 정도 걸렸다. 엄마처럼 바나나를 사오거나 털 청소를 해주는 실천 따위는 물론 없었다.
    아버지의 행동이 나의 콤플렉스를 모른 척해 주려는 속 깊은 배려는, 당연히 아니었다. 단지 무관심이었다. 아버지는 나의 고백을 십대의 반항 정도로 치부해버렸다. 나 역시 정말 진지하게 목청 높여 ‘당신 아들이 바로 원숭이라고요’라고 고함지를 생각은 없었다.
    이게 다 이십 년 전의 일이다.

 

    이렇듯 내 고백은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되고, 처리되었다. 의사는 어쩔 수 없다 쳐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반응은 너무나 태연하거나, 무관심했다.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이러한데, 과연 세상 그 누가 이 고백을 진지하게 받아 준단 말인가. 내 고백은 타인에게 어떤 행동을 취할지 결정하라며 강요하는 위협과 같았다. 서글픈 현실을 자각하자 나는 ‘정상적인 인간들’을 힘들지 않게 하기 위해선, 진실을 철저히 밀봉해야 한다고 여기게 됐다. 가면을 쓴 채 생의 모든 날을 대면해야 한다고 여기니, 그만 몹시 외로워졌다. 컴컴한 우주에 홀로 쓸쓸히 버려진 것 같았다. 그 깊고 허무한 좌절의 바다에 빠져 나는 한동안 밥조차 먹을 수 없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그때 바나나만 먹었다. 탄수화물과 펩타이드를 꾸준히 섭취해 줘야 인간의 외모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의사의 권고를 무시한 채, 바나나만 먹어댔다. 바나나를 안 먹을 때는 바나나 맛 우유, 바나나 맛 소시지, 바나나 맛 초콜릿 같은 것만 먹었다. 통제와 균형, 절제 따위와는 철저히 담을 쌓고 오로지 본능의 강에서 허우적거렸다.
    한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은 탓에 털이 이집트산 카펫처럼 빽빽이 내 몸을 뒤덮었다. 면도할 생각도 없었으며, 아버지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그저 방문을 잠그고 하루키의 책만 읽어댔다. 당시에는 어떤 현자의 공허한 위로보다 같은 원숭이로서 고통을 딛고 묵묵히 문학의 길에 정진하는 그의 글이 나를 위로해 줬다. 비틀스의 음악도 내 가슴을 비슷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폴 매카트니 역시 원숭이라는 사실도 이즈음 알았다.
    하지만 이때 저지른 실수가 있는데, 그건 바로 엘지 트윈스의 야구를 본 것이었다. 시즌 내내 봤다. ‘그래도 프로팀인데 언젠가는 이기겠지’ 하는 심정으로 오기 부리듯 봤는데, 희망이라고는 없는 좌절과 패배의 연속이었다. 그들의 야구를 통해 무턱대고 희망만 품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깨달았다. 비참한 시간이었다. 하루키의 글과 비틀스의 음악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위로를, 속수무책 야구가 송두리째 무너뜨리곤 했다.
    그러는 동안 털은 계속 자라기도 했고, 그만큼 빠지기도 했다.
    역시 어머니는 말없이 바나나를 내 방 안에 넣어 줬고, 간혹 내가 담배를 피우러 옥상에 올라가면 틈을 놓치지 않고 내 방의 털을 청소해 주곤 했다.
    물론 방황의 날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그 어느 누구도 손을 내밀지 않는 한, 나는 스스로 일상의 구덩이에서 기어 나와야 했다.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는 이는 오직 나 자신밖에 없었다. 우주에 홀로 버려진 이상 스스로를 구원하지 않으면 이 끝없는 암흑 속에서 유영해야 했다. 의사는 학계의 새로운 발견이라며 김치찌개와 DHA가 풍부한 등 푸른 생선을 먹길 권했고, 나는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신약 테스트에 참가한 불치병 환자라도 된 양 의사의 말대로 꾸역꾸역 먹었다. 인간들의 음식은 위장에 쌓여 가고 있었지만, 정말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니 공복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장은 여전히 바나나를 소화할 준비가 돼 있었다. 어떤 때는 바나나가 먹고 싶어서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고, 금단현상인지 눈가가 퀭해지기도 했다. 겪어 보지 않아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고 말할 순 없어도, 색욕에 들끓는 고교생이 자위행위를 한 달 정도 참는 고통은 되었다.
    좌절의 바다에 빠져 있는 동안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는데, 조금만 더 있다간 등이 완전히 굽어버릴 판이었다. 나는 자신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서 헬스클럽에 갔다. 가는 김에 매일 나갔다. 소림 무술 영화의 주인공처럼 다리를 운동기구에 끼운 채 허리 힘만으로 상체를 들어 올리는 운동을 매일 100회 이상 반복했다. 역기와 덤벨도 빼놓을 수 없었다. 러닝머신 위에서 제자리를 지키는 길이 쉬지 않고 뛰는 수밖에 없듯, 퇴보를 막는 길 역시 무리를 해서라도 진일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한 상황은 혹독했지만, 나는 도리어 긍정적인 생각을 하려 했다. 어차피 사람은(혹은 원숭이는) 누구나 자기만의 굴레를 지니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대머리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단신으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비만으로 살아간다. 나는 단지 원숭이로 살아갈 뿐이다.
    나는 대머리라기보다는 오히려 털이 많은 사람(이길 바라는 원숭이)이다. 어떤 이는 역한 겨드랑이 냄새를 감추기 위해 화장실에 숨어서 킁킁거린 후 향수를 뿌릴 것이며, 어떤 이는 혹시 가발이 돌아가지나 않을까 싶어 바람 부는 강변에서 조심스레 자전거를 탈 것이다. 나는 내 실상을 (아주) 약간 감추고 사회에 맞춰 생활하기 위해 식이요법을 하고 운동을 하며 면도를 할 뿐이다.
    그뿐이다. 그렇다. 그뿐이다.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것은 있기 마련이다. 걱정은 각자의 금고에 보관한 채 집 밖에 나와서 웃으면 된다. 대화중에 쓸데없이 고백을 하는 우를 범할 필요도 없고, 설사 타인의 그런 고백을 듣더라도 꼬치꼬치 캐물을 필요도 없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이고, 책에서 배우지 못한 ‘사회화’다. 나는 면도를 할수록 더욱 ‘사회화’될 뿐이다.

 

 

2

 

    이쯤에서 내가 왜 이런 증상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약간은 곤란하다.

 

    실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학계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에 논리적 근거나 과학적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건 하나도 없다. 그나마 관심을 받고 있는 설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황탄무계한 학설이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 때문, 이라고 주치의가 말했다.
    최근 들어 학자들은 지구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지구의 ‘회귀력’이라는 것이다. 이건 기본적으로 자정 능력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지구는 오염된 대기를 나무가 배출하는 산소로 스스로 정화한다. 이게 자정 능력인데, 이것이 한계에 다다르면 지구는 더 이상 자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를 최초의 상태로 돌리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일례로 지구의 대륙 간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 아주 사소한 차이이긴 하지만 현재 유럽과 아프리카는 백 년 전에 비해 약 일 미터 정도 가까워졌다. 마치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내리듯 지구는 더 이상 환경오염에 견디지 못해 자신이 태어날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모든 대륙이 하나로 합쳐져 있던 그때로 말이다. 과거에 제기됐던 대륙이동설이 이제는 대륙합체설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제제기는 진화론을 신봉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 이들은 인간이 진화를 한 것은 지구의 환경 변화 때문인데, 그 환경이 초기의 상태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인간 역시 서서히 진화하기 이전의 모습, 즉 원숭이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학계에서는 터무니없는 가설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1964년 브라질에서 털북숭이가 돼버린 10세 소년이 발견되면서 이 주장은 서서히 관심을 받게 되었다. 1976년에는 온몸이 털로 뒤덮인 아기가 중국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80년대 들어서 피부과를 중심으로 이 같은 환자들이 점차 늘어 가고 있다는 보고가 속출하자, 이를 설명할 준비가 돼 있지 않던 학계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비록 논리는 빈약했으나 ‘인간회귀론’을 주장하는 이른바 원숭이 학파만이 적어도 무슨 말이라도 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학계가 그럴싸한 논거를 찾지 못한 사이, 우왕좌왕하던 학자들은 원숭이 학파의 이론에 편승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삼십 년가량 지나니 이것은 자연스레 하나의 학설로 자리 잡았다. 물론 그렇다 해서 외부적으로 공개할 정도의 가치는 (당연히) 없었고, 그저 내부적으로 가타부타하며 의심을 받는 정도의 학설이었다. 근거라면 끊임없이 속출하는 환자들의 존재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세상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의문투성이였고, 원숭이 인간은 점차 늘어만 갔다. 원숭이 인간들은 그 존재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었고 의학계 역시 그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으므로 일반인들이 우리의 존재나 지구의 변화, 특히 인간의 신체적 변화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어디 가서 “이치로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원숭이래” 하고 말해 봤자 정신병자 취급만 받을 뿐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역시 원숭이 인간으로 추정되고 있는데(나는 원숭이로 믿고 있다), 그가 <렛 잇 비> 앨범을 작업할 때 딱 하루 집에 가지 않았는데 그새 털북숭이가 돼버려 멤버들이 아연실색했다는 일화를 증거로 들 수 있다. 이를 말해 주며 주치의는 날카로운 식견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며 경계를 드러냈다. 나는 당연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로 폴이 좋아져 버렸다. 비틀스에 빠지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야기가 점점 내 개인사와 멀어져 가서 미안하긴 하지만 기왕 시작한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이 원숭이 인간들끼리 갖는 엘리트 모임이 있다. 유명 원숭이 인사들이 주축이 돼서 결성한 모임으로, ‘MGM(Man of Great Monkeys, 위대한 원숭이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본거지는 도쿄에 있다. 많은 원숭이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취지로 설립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이치로는 열심히 안타를 쳐대고, 하루키는 또 성실히 글을 써내고 있다. 폴 매카트니는 아직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어, 클럽의 끈질긴 구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숭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뭐, 이런 잡다한 이야기가 왜 이렇게 길어졌냐 하면, 실은 이 클럽 소개가 내 개인사와 완전히 동떨어졌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클럽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삶의 의지 같은 것이 발동돼 버렸다.
    그렇다.
    나는 이 클럽에 가입하는 것을 생의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내 삶을 남의 삶인 양 수수방관하며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더욱더 근면 성실한 (원숭이) 인간이 되기로 작정했다.
    우갸갸갸갸.

 

 

3

 

    누구나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그 약점을 의지에 따라 감추고 살아가거나, 마지못해 인정하며 살아간다는 정도뿐이다.
    예컨대 키가 작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인정하며 살아가는 부류다. 간혹 키높이 깔창을 잔뜩 깔고 다니는 무리들이 있긴 하지만, 언젠가는 신발을 벗어야 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반면에 대머리들은 감추고 살기도 하고 내놓고 살기도 한다. 듬성한 채로, 벗겨진 채로 살아가는 ‘순응형’, 오히려 삭발을 하는 ‘개척형’ 들이 인정을 하며 살아가는 부류다. 반면, 아침마다 가발을 고쳐 쓰거나, 흑채를 뿌리거나, 아니면 옆머리나 뒷머리를 한 올씩 정수리 쪽으로 끌어당겨 빗는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 부류다. 일일이 예를 들자면 끝이 없으니 이쯤에서 끝내자면, 이 모든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익숙한 약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원숭이라면 곤란하다. 단신인 사람, 대머리인 사람, 냄새가 심한 사람, 모두가 ‘사람’이다.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선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젠장, 하필 나는 원숭이다.
    아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나는 원숭이이기에 오히려 더욱 노력해야 한다. 평발이기에 더욱 노력했던 박지성처럼, 가진 것이 아예 없었기에 더욱 노력했던 이순신처럼, 들리지 않았기에 더욱 연습해야 했던 베토벤처럼, 나 역시 원숭이이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
    나는 원숭이이기에. 제기랄, 망할 원숭이이기에…….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보아야 한다.
    눈을 잃었기에 오히려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장님처럼, 발이 없기에 오히려 발이 닿지 않는 사람의 마음까지 더 다가갈 수 있었다는 한 장애인처럼, 온몸에 화상을 입어 오히려 마음을 더 가꿀 수 있었다는 한 소녀처럼…… 주어진 상황을 감사하게 여겨야 희망을 볼 수 있다. 그래야 기쁘다. 살 수 있다. 내 삶의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대체 뭘 감사하지?

 

 

4

 

    ‘주어진 삶이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것은 삶의 태도’라는 거창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면서 해버렸구나). 사실 나는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원숭이가 되어 갈 뿐이고, 동물원이나 아마존에 가서 살지 않기 위해서는 보통 인간 이상의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한때는 역겨운 된장을 먹고(이런 젠장), 무거운 덤벨을 들고(어우 염병), 아침마다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털을 밀어대는(이런 털 같은) 내 삶이 싫어, 진짜 동물원에나 들어가 버릴까 했다. 아니면 아마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밀림에서의 자유로운 삶이라.
    하지만 생각해 보니, 원숭이 아내를 맞아(오 마이 갓) 빨간 엉덩이를 잡고 교배를 하고(발기나 될까), 서로의 털 속에 감춰진 이나 잡아 주는(둘의 이가 교배를 해 더 번성하지 않을까) 삶이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쩌다 보니 원숭이가 되어 가고 있지만, 난 원래 원숭이로 태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사랑하고 있다.
    아침마다 쏟아지는 햇살(원숭이도 이걸 느낄까), 두 다리로 걸으며 느끼는 산책의 평온함(중요한 건 두 다리다), 매번 지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기대를 걸게 되는 트윈스의 야구, 한강변을 끼고 있는 합정동에서 내려 마시는 드립 커피(커피 마시는 원숭이를 상상할 수는 없지 않은가), 서늘한 여름 밤바람과 잠자는 나무를 깨우는 조깅, 심야 영화, 소소한 일상이 빛나는 수필, 언제일지는 모르나 목선이 가냘프고 웃는 얼굴이 화사한 여자와의 연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동물원이나 아마존에서는 영위하기 어려운 삶이다. 혹시 나와 같은 원숭이 인간들이 몇 억 명 속출해 이 모든 문화와 삶의 방식을 구축하지 않는 한, 나는 적어도 인간의 사회에 속해 있어야 했다. 물론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역시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현실적으로 나와 같은 원숭이를 위해 그간 인류가 구축한 모든 문화와 삶의 방식을 재현해 낸다 해도 적어도 내 생애 동안은 불가능할 것 같다. 체제의 문제라면 체제의 문제고, 개척의 문제라면 개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어디에 끼워 맞추든지 다 들어맞을 만큼 광범위하고 모호한 문제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가 처한 현실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노력했다. 열일곱 살 때부터 매일 8킬로미터를 뛰었다. 주치의가 뛰지 않으면 다리의 기능이 점차 퇴화되고, 허리는 굽어져 결국 원숭이처럼 기어 다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간단히 말해, 직립보행이 어렵다는 거였다.
    직립보행이 어렵다는 말을 들으니, 교과서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유인원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인간으로서의 첫발을 디뎠다.’
    그것이 인류의 첫걸음이었다. 직립보행을 포기하는 것은 인간에서 원숭이로 회귀하는 결정적 대목인 것이었다. 이 말은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이 되었다. 총이나 칼보다 강력한 문장이 운동화 끈을 조이게 만들었다.
    나는 정말 직립보행을 유지하기 위해 뛰었다. 마치 인간으로서의 첫발을 다시 내디딘다는 심정으로. 그뿐이었다. 살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뛰다 보니 악에 받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끈적대는 땀이 내 끈적끈적한 운명 같아 짜증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땀보다 눈물을 많이 흘리기도 했다.
    그런데 혼란의 시간을 겪고 난 후 마음을 비워내니 의도치 않게 뛰는 게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우선은 몸이 가벼워졌다. 다리의 기능을 유지하려 했던 것뿐이었으나, 본의 아니게 지방들이 다 타버렸고, 또 본의 아니게 복근까지 생겨버렸다. ‘동물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재롱이나 부리며 살 수는 없어’라며 바람에 눈물까지 흩날리며 뛰었는데, 결과는
    ………
    상당한 힙 업이 돼버렸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여자 동기들은 물론 여자 선배들마저도 내가 지나가면 내 엉덩이에 시선을 둔 채 수군거렸다.
    장애는 반대로 보면 행운이라 했던가. 동물원에 갇힌 발정 난 원숭이처럼 빨간 엉덩이만 보면 침 흘리며 달려들 수는 없다는 심정으로 달렸더니, 어이없게 섹시한 엉덩이남(男)으로 통하고 말았다.
    비슷한 심정으로 두 팔이 앞발로 퇴화해서는 안 된다는 심정으로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씩 땀이 피로 변할 때까지 덤벨을 들었는데, 그만
    몸짱이 돼버렸다.
    역시 본의는 아니었다. 물론 나중에야 위대한 원숭이 모임인 ‘MGM’에 가입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도 가졌지만, 처음에는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은’ 원숭이의 간절함일 뿐이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기어 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역시 비슷한 이유로 허리 운동을 했더니만, 어깨부터 엉덩이 위까지 아널드 슈워제네거 같은 뒷모습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불행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칠수록 오히려 반대급부가 따라왔다. 하긴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어릴 때 너무 허약해서 보디빌딩을 시작했다고 했지.
    이런 식으로 정말 살기 위해, 이십대에 원숭이가 되는 것이 싫어서 미친 듯이 책을 읽어댔고,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렸다. 역시 그러다 보니 책의 매력을 알게 됐고, 다음과 같은 어이없는 말을 해대고 말았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맙소사.
    내가 이런 사람이(아니 원숭이가) 될 줄이야.
    가문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떠들어댔다. 실상을 아는 나와 어머니는 ‘실제로 난 건 용이 아니라 원숭이잖아’라고 크게 외치지는 못했고, 그저 그런 눈빛을 둘이서만 주고받았다.
    공부라는 것도 ‘멍청하게 우리 안으로 던져 주는 바나나만 받아먹고 살 수는 없잖아’라는 심정으로 했을 뿐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이게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다. 함수방정식이 주는 오차 없는 세상과 각종 통계수치 안에 숨겨져 있는 음모론들, 역사를 통해 오늘을 보는 재미, 죽은 현인들의 가르침, 애덤 스미스의 책을 읽으며 그와 펼치는 무언의 토론. 어느새 책이 한 권 두 권 늘어나 내 방은 도서관처럼 책으로 가득 찼고, 내 머릿속 역시 백과사전처럼 지식의 보고가 되어 갔다. 적어도 방 안이 바나나 껍질로 가득 차고 머릿속이 암컷의 빨간 엉덩이로 가득 차는 것보다는 나았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얽힐 대로 얽혀버린 질풍노도의 십대를 노력과 분투로 지내다 보니 나는 어느새 전교 학생회장이 되었고, 학생회장은 전통적으로 서울법대를 가야 한다는 담임선생님과 학교의 시대적 요청에 못 이긴 척, 그만 국립 대학교 법대생이 돼버렸다.
    한번은 한 남성 잡지에 ‘엄친아 대학생’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이 ‘남자지’(그들은 자기네 잡지를 꼭 남자지라 불렀다)는 남성의 몸을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잡지였는데, 공교롭게도 웃통을 벗어젖힌 내 사진이 실린 기사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나는 그만 ‘몸짱 엄친아’라는 별명을 얻고야 말았다.
    나로서는 이 대목이 꽤나 억울한데, 분명 에디터는 나를 독서하는 대학생으로 소개한다 했다. 나는 그 콘셉트에 맞춰 내 두뇌처럼 잘 짜인 체크무늬 셔츠를 목까지 잠그고, 뜨거운 조명 아래 고풍스러운 나비넥타이까지 맨 채로 책을 보는 사진을 수백 컷 찍었다. 정말 수백 컷이었다. 뜨거운 조명과 목까지 잠근 셔츠로 몸은 땀범벅이 됐다. 잠시 셔츠를 벗고 선풍기 아래서 땀을 식히자고 해서 그랬는데, 그때 에디터가 “기념으로 찍게 포즈 한번 취해 보시죠”라고 했다. 대형 선풍기에 땀이 식어서 그제야 안도의 웃음이 나왔고, 이미 수백 컷을 찍은 후라 나도 모르게 카메라만 보면 반사적으로 포즈를 취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지’에는 그 사진만 실렸다.
    대형 선풍기 앞에서 웃통을 벗어젖힌 채, 더 이상 평온할 수 없다는 듯 흐드러진 미소를 짓고, 머리를 날리며 포즈까지 취한 내 모습 말이다. 이게 그만 화제가 돼버렸다(거참, 세상일이란).
    그 후로도 몇 개의 신문사와 방송국, 인터넷 매체가 인터뷰를 하자고 했고, 어쩔 수 없이 몇 번 응하기는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평소보다 더욱 세밀하게 새벽부터 면도를 해야 했다.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십 년 동안 정말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람다운 모습으로 살고자 발버둥 쳤을 뿐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자기관리의 달인’, ‘엄친아’, ‘끝없는 욕심의 소유자’, ‘누나들의 로망’, ‘꿈꾸면 바로 현실’ 등의 별명이 따라다녔다. 대학 내내 관심을 받았고, 그 여세를 몰아서 헤드헌터들의 관심도 받았다. 전화위복인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근무한다. 여의도에서 일한 지 5년 만에 과장으로 진급하여, 업계 최연소 33세 과장이라는 타이틀도 덩달아 달았다.

 

    드리블의 달인, 메시가 그랬나?
자긴 키가 작기 때문에 그저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해, 공을 발에 붙이듯 드리블할 수밖에 없었다고.

 

 

5

 

    사실 원숭이로 살아가려면 살아갈 수 있다. 까짓것 먹고 싶은 바나나 맘껏 먹어버리고, 아침마다 번거로운 면도도 건너뛰고, 원숭이가 된 채로 비틀스를 듣고, 톨스토이를 읽고, 야구를 볼 수도 있다. 뭐, 어떤가. 어머니가 인정해 주고(그녀는 해줄 것 같다), 아버지도 동의한다면(이건 도저히 모르겠다), 집에서 바나나만 먹으면서 한평생 유유자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집 안에만 있는 것은 답답하다. 원숭이가 된 채로 외출을 하면 사람들이 옷을 입고 다니는 원숭이를 이상하게 볼 것이며, 커피를 마시는 원숭이에 놀랄 것이며, 동물원에서 탈출한 원숭이라고 신고할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불편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만, 실상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통제 불가능한 것이었고, 예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내 심장은 두뇌의 지시와는 상관없이 뛰기 시작했고, 내 마음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머리와 심장이 철저히 따로 놀았다. 두뇌는 더 이상 그녀를 생각하지 말라 했지만, 그럴수록 내 머릿속은 그녀 생각에 지배당했다. 온통 그녀 생각으로 가득 차,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가끔은 밥을 먹었는지도 헷갈렸다. 물론 식욕도 없었다. 밥을 요구해야 할 위장의 자리에, 일을 생각해야 할 두뇌의 자리에, 문학을 공급해야 할 가슴의 자리에 온통 그녀가 가득 차 버렸다. 내 몸 전부가 그녀로 채워져 버렸다. 그녀가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총체적으로 나는 엉망진창인 상태에 빠져버렸다.

 

    가끔은 나도 동경을 받으며 지내곤 하지만, 실상 이렇게 사랑에 빠져버리면 한없이 초라해진다. 지식이 아무리 늘어 가고, 근육이 아무리 단단해져도, 사람들이 아무리 치켜세워 줘도, 나는 그저 원숭이일 뿐이다. 바나나만 보면 군침을 흘려대고, 해보다 일찍 일어나 지겹도록 면도를 해야 하고(간간이 이도 잡아야 하고), 조금만 방심하면 허리가 굽어져 버리는 원숭이일 뿐이다. 오늘 보니 이제는 미간에도 털이 자라고 있다.
    반면, 그녀는 내게서 너무 동떨어져 있다.
    그녀의 피부는 실크처럼 매끄러워 보인다. 존경스러울 만큼 천사 같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향기도 난다. 조금만 씻기를 게을리 하면 강아지 냄새가 나고, 심지어 이까지 생기는 나와는 천지 차이다. 과한 향수 냄새도 아니고 싸구려 비누 향도 아닌, 비 온 뒤 아침의 꽃에서 나는 향기가 배어 있다.
    말투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아마 추상명사인 배려를 속도로 설명해야 한다면, 그녀가 말하는 속도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녀가 하는 행동들은 마치 적정 속도를 지키는 초보운전 지침서 같다. 웃음 역시 과하지 않고, 미소 또한 내빼는 법이 없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광화문에 있는 한 예술영화 상영관이었다. 나는 종종 그 영화관에 가서 아무 영화나 보곤 했다. 그저 혼자 자주 가는 카페에서 즐겨 마시는 커피를 마시듯, 별 목적 없이 영화관에 갔다. 언제나 아무 계획 없이 아무 표나 사서 영화를 봤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실망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무 때나 갔으므로 상영시간은 매번 맞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을 읽었다. 폴 오스터를 읽었고, 체호프를 읽었고, 마르케스를 읽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있고 싶을 때는 《씨네21》 같은 영화 주간지를 읽었다. 영화관 안에는 언제나 기분 좋은 커피 향이 가득했고, 나는 매번 영화관이 선사하는 설렘의 공기와 커피 향에 취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상영되는 영화에 상관없이, 극장과 그 극장에서 머무는 시간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날도 그저 시간이 나는 대로 극장에 들렀다. 영화관에서는 늘 그랬듯이 무슨 무슨 기획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간과된 국제영화제 수상작들’ 같은 느낌의 기획전이었다.
    그날 본 영화는 <내 책상 위의 천사(An Angel at My Table)>였다.
    심각한 수준의 빨간 곱슬머리에다 뚱뚱하기까지 해서 폐쇄적인 성격이 돼버린 소녀는 오로지 문학에만 탐닉하게 된다. 그 속에서 해방을 맛보지만, 소녀의 선생은 소녀의 폐쇄적인 면을 이상하게 여겨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소녀는 8년 동안 200회의 전기충격 요법으로 치료를 받으며 더욱 이상한 모습으로 변해 간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최초의 진단이 오진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하지만 소녀는 이미 오랜 정신병동 생활을 통해 다른 모습으로 변화된 후였다. 소녀는 결국 고통스러웠던 자신의 경험과 문학의 세계에 침잠해 맛보았던 기쁨을 의지적으로 결합시켜 작가가 된다. 이 날 우리가 본 영화는 왠지 극화되지 않은 생의 날것 같은 냄새가 풍겼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알고 보니 뉴질랜드의 대작가 재닛 프레임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였다. 결국 이런 삶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 이쯤에서 이 영화를 본 것이 ‘나’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한 것에 대해 설명해야겠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함께 영화를 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속을 하고 영화를 보러 온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가 시작된 지 약 10분 뒤에 입장했고, 그녀는 약 30분 뒤에 입장했다.
    처음에 나는 영화관 안에 아무도 없어서 상당히 흥분했다. 영화관에 올 때마다 관객 수가 많게는 열댓 명에서 적게는 두세 명 정도여서 언젠가는 혼자 영화를 볼 날이 오리라 은근히 기대를 해왔는데, 실제로 상영관 안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자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 상태에 빠졌다. 그대로 잠자코 앉아서 스크린만 바라보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고, 나아가 죄악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끄러미 스크린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환호성을 질렀다. 뭐 어때, 혼자인데, 라는 생각으로 상황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간 가슴 속에 담아 뒀던 말부터 음담패설까지 속 시원하게 온갖 말을 아무렇게나 늘어놓았다.
    아하하, 내 물건은 10미터라네.
    보고 있나, 매카트니. 나도 원숭이라네.
    우리 같이 고함이라도 질러 볼까.
    하하하.
    무척 속 시원했다. 내 속에 감춰 두었던 모든 본능과 비밀들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큰 목소리로 외친다는 것은 기묘한 쾌감을 선사했다.
    나는 이참에 ‘원숭이면 어때’라는 자학적인 심정으로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최대한 숨을 조금씩 길게 내뱉으며 외쳤다.
    우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갸.
    약 1분간 외쳐댔다. 그러다 ‘턱’ 하고 그만, 호흡이 걸리고 말았다.
    사람이 들어왔다! 순간 나는 당황해 외침을 뚝 끊었지만, 약 1분간 지속된 음파는 메아리처럼 극장 안에 남아 끈질기게 울렸다. 분명 짧은 순간이었지만, 시를 읊는 영화 속 남자 배우의 중후한 목소리와 나의 ‘우갸갸갸갸갸갸갸갸’가 처참하게 섞였다. 소리의 출처를 찾아 고개를 돌리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괴성의 잔음은 완전히 소거되었다. 화면에는 눈부신 뉴질랜드의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서정적인 선율의 배경음악이 극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괴상하게 일그러진 표정의 나와 그녀의 눈이 처음으로 마주쳤다. 캄캄한 극장 안에서도 빛을 발하는 그녀로 인해 나의 뇌는 순간 마비돼 버렸다.
    우린 세상에서 소외당한 한 소녀가 자아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영화를 함께 보았다. 괴성 탓인지 ‘단둘이’ 영화를 보는 약 두 시간 남짓 동안 약간의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나는 그게 좋았다. 어색한 기운은 항상 어딘가 본격적인 연주를 하기 전에 맛보는 전주 같은 기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우리 사이는 그저 같은 영화를 관람한 평범한 두 명의 관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색함을 지우려 했기 때문인지, 나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내려갔을 때, 그녀는 작으면서도 주관이 있어 보이는 자신의 소형 승용차에 시동을 걸려고 했다. 그러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방전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내게 와서 자기 차와 연결을 해서 시동을 거는 데 필요한 점프선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점프선이 없다’는 대답 대신 용기를 내어 ‘그건 없지만, 당신을 집에 바래다줄 시간은 있다’고 했다(평소의 나라면 이렇게 뻔뻔한 말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나의 사회적 체면과 대화의 지적 수준을 모조리 포기하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엷은 웃음을 살짝 지어 보였다. 내 대답 때문인지 아까 지른 괴성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녀의 미소는 주차장 조명을 받아 빛났다. 그 미소로 미뤄 보아, 그녀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보고 있지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첫 만남, 첫 드라이브, 첫 데이트를 함께했다. 광화문에서 광명까지 가는 동안 나는 그녀가 피아니스트라는 것, 그녀 역시 이 영화관에 종종 혼자 영화를 보러 온다는 것, 커피를 좋아한다는 것, 독서와 산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는 것도 알았다.

 

    광명의 작은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말을 건네고 내 눈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노래 한 소절 부를 여유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시에는 무척 길게 느껴졌다. 길었다고 말하긴 했지만, 풍성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맞겠다. 말없이 내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녀에게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 힘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게 되었고, 그 속에는 내가 있었다. 나를 보는 그녀와, 그녀를 바라보는 나와, 우리를 비추는 달빛이 좋았다. 그녀는 의아하게도 작별인사도 없이 눈동자만 바라보고선 뒤돌아서 아파트 입구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음 회가 더욱 기대되는 드라마의 첫 회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그녀의 등 뒤로 달이 떠 있었고, 아파트 계단으로 올라서는 그녀의 머릿결과 치마 결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정결하게 찰랑거렸다.
    첫 만남은 짧았지만, 길었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떨어져 있을 때도 나는 줄곧 그녀와 함께 있었다. 내 일상의 모든 기억은 그녀와 함께한 밤에 머물렀고, 내 일상의 모든 상상은 그녀와의 미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의 말투, 미소, 향기. 나의 하루는 그녀와의 첫 만남, 철저히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모든 상황을 그녀와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됐고, 모든 시간을 그녀와 나누고 싶었다.
    그녀는 호의에 보답을 하고 싶다며 연락처를 주었지만, 우린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아마 내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와 주기를 바랐던 것 같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생각이 너무 많았고, 두려웠다.
    그녀의 생각이 떠나지 않을수록,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수록,
    단 한 번 만난 사람이 나를 흔들수록,
    나는 더욱 두려워졌다.
    그녀의 존재는 행복이자 고통이었다. 나는 그녀를 통해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느꼈고, 그녀를 통해 원숭이로서의 고통을 느꼈다. 그녀를 생각할 때마다 기대했고,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좌절했다.

 

    그즈음이 내 삶에서 가장 변덕이 심한 시기였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한 올도 빠짐없이 면도를 해서 그녀와 잘해 봐야지’라고 다짐을 하다가도, 문득 짜증날 정도로 많은 털을 밀다 보면 ‘도대체 나 따위를 좋아해 줄 리가 없잖아’라는 육중한 자각에 좌절했다. 그러다 다시 ‘부지런히 밀다 보면 탈모 증상처럼 털이 사라질지도 모르잖아’라며 무턱대고 희망을 품기도 했고, 다시 ‘그래 봤자, 결국 원숭이잖아’라는 현실적인 자괴감에 빠졌다.
    아무리 몸짱에, 엄친아에, 여의도의 블루칩 따위의 수식어가 붙더라도 나는 한낱 원숭이에 불과했다. 그런 생각이 들수록 더욱 연락을 할 수 없었다.

 

 

*

 

    이 원고는 소설집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에 수록된 중편소설 「괜찮아, 니 털쯤은」에서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나머지 부분은 해당 소설집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출판 계약으로 인해 전문을 싣지 못한 점 양해 바랍니다.

 

 

 

 

   《문장웹진 6월호》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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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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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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