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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 작성일 2014-04-05
  • 조회수 912

 

[문학카페 유랑극장 참관후기]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 대전문학관 김선우 시인, 강신주 철학자

 

이은선(소설가)

 

 

 

 

    문학카페 유랑극단이 원주와 서울, 양평을 거쳐 대전까지 내려갔습니다. 어쩐지 한반도 북쪽의 중요한 문학관들을 점점점점 찍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형국입니다. 봄꽃은 남도에서부터 올라오고 있다는데, 문학카페 유랑극단은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고 있어요.
    남도에서 북진 중인 봄꽃 소식과 북쪽에서 남하하는 유랑극단이 한반도의 허리, 대전에서 만났습니다. 꽃과 문학 그리고 시인과 철학자가 만나 사랑과 에로스 그리고 혁명의 기운과 일상의 감사함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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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문학관에서의 일입니다. 대전문학관은 전국 지자체에서 처음으로 자비로 건립된 문학관이며, 그곳을 이끌어 나가는 사람들 또한 면면이 무척 화려했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장》 웹진의 토대를 만들고 홀연히 대전으로 내려가신 박상언 대표님, 대전 지역의 대표적인 문인이자 문학관 관장을 맡고 계신 박현오 시인님 등이 그곳에 계신 까닭이었지요. 초창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모든 기초적인 업무를 박상언 대전문학관 대표님께서 총괄하셨다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새삼 그분의 어떤 노력이 고마워지기까지 하였습니다. 《문장》 웹진, 문장의 소리, 아르코의 크고 작은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랐기 때문이었어요. 그런 일들을 한 사람의 손에서 일궈진 대전문학관이라!
어쩐지 더 많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여러 차례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여자, 에로티시즘,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로 철학자 강신주,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의 시인 김선우, 그리고 오로지 자칭 신비주의 미녀 소설가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들 셋의 조합은 어쩐지 조금 익숙하게 느껴졌어요. 네, 강신주 철학자와 저는 작년에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라는 코너를 다섯 번 정도 진행하였고, 김선우 시인과는 강정마을에 관한 동화 『구럼비를 사랑한 별이의 노래』(김선우, 이은선, 전석순)를 통하여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셋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라 저는 무척 신경이 쓰였어요. (아, 김선우 시인… …예쁜데!) 아니나 다를까! 강연 도중 셋이 함께 앉아 있어야 했던 대담 코너에서 강신주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소중한 사람은 눈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맞은편에 앉은 제 눈을 아주 이글이글한 눈으로, 강력하게, 아주 똑바로 쳐다보고서 말이지요. 에로스와 사랑 그리고 김선우의 사랑과 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아무 말 없이 강신주 선생을 노려보고야 말았습니다. 모두 웃었지만, 저는 웃지 않았어요. 진행자의 본분을 잊은 까마득한 순간이었지요. 선생께서는 재빨리 사과를 하셨지만, 저는 그 이후의 행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농담 아닙니다. 모두 그의 강연 속으로 빠져 들어갔지만 저는 행사를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도통 가늠이 되지 않았어요. 왜 그럴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아 그냥 강연의 주제가 ‘여자, 에로티시즘 그리고 사랑’이었던 까닭이라 믿기로 하였습니다.
    강연 도중에 강신주 선생은 한 대학생에게 성적인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요지의 질문을 던졌고, 미혼의 대학생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래도 또박또박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또 한 여성분은 생리적인 현상을 묻는 강신주 선생의 질문에 ‘이제는 그런 시기가 지났다’는 말로 그를 당황케 하였지요. 아, 사랑과 사람, 에로스에 대한 질문이 이렇게 우리를 뒤흔들다니! 그리고 그 모두를 유심히 지켜보던 시인이 있었습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도 솔직해지고 싶고, 사랑 속에서 살고 싶으며, 내 안에 잠들어 있을 법한 어떤 이에 대해 전심전력을 다해 솔직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시인의 말이 그곳에 모인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사랑을 통해 태어난 생명들이고, 사랑을 하면서 삶의 균형을 잡기도 하는 불안한 영혼들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꼭 어떤 균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은 사회적인 약자와 자신에게 벌어진 불리한 일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든 가식적인 핑계를 대려는 세상의 그 모든 것에 대해 사랑의 언어를 빌린 혁명의 시(「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를 읽는 것으로 항변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사랑이, 그녀가 사랑이라고 믿고 행하고 있는 혁명이 우리 모두를 감싼 순간이었지요.
    사랑과 시, 시와 혁명 그리고 일상의 존귀함에 대하여 시인이 철학자의 말을 이어 주었고, 그곳에 앉아 있던 관객과 스태프들 모두 그분들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가고야 만 두 시간 삼십여 분. 사랑의 말과 힘이 그곳에 있던 모두의 가슴을 관통해 버렸어요.

 

    유랑극단은 매 시간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을 선물로 나눠 주곤 했는데 그날도 저는 행사 직전에 슈퍼에 들러 여러 가지 선물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철학자의 날카로운 질문에 속내를 드러내고야 만 그 대학생의 용기에 박수를 쳐주고 싶어 선물을 전달했어요. ‘사랑은, 그와 그녀만을 위한 청결에서 시작’되는 것이니, 칫솔과 여행용 비누 세트를 드린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어쩐지 그날, 저는 그 청년의 뒤를 가만히 따라가 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응원의 마음을 가득 담은 비밀 탐정처럼 말이에요. (앗, 엿보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에요!)
    모두의 마음속에는 사랑받고, 사랑하기를 원하는 어떤 이가 들어 있다는 점을 철학자와 시인이 같은 말이지만 다른 표현법으로 이야기를 해준 시간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솔직한 사랑과 그것에 건강하게 충실한 어떤 일들에 대하여 아름답고 좋은 말로 이야기해 주는 시인이 있고, 그 말에 사유를 얹어 모두에게 전달해 주는 철학자가 그곳에 우리와 함께 있었다는 사실. 순간의 스침만으로도 영원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다행입니다, 다행입니다, 당신들이 있어서!
    함께해 주어, 고맙습니다, 모두, 모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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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된 모든 행사가 끝났지만 대전문학관을 꽉 채운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설 줄 몰라 진행을 하던 제가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만큼 열띤 곳이었고, 진지했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봐 주는 좋은 분들이셨어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너무도 많은 이야기가 있고, 그것의 사유에 관해서라면 그보다 더 많은 문장들이 있습니다. 하고 많은 이야기 중에 하필 사랑이라니, 에로스라니, 여자라니! 그러니 그 자리, 우리 모두가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그 자리가 바로 사랑의 시원(始原)이고, 태초에 사랑이 머문 자리가 시간을 따라 흘러온 ‘여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에 관해서라면 어떤 논란도, 수많은 다짐도 필요 없으니 그저 ‘사랑’을 ‘지금’, ‘하라’는 시인의 당찬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울리는 밤입니다.

 

    목련과 벚꽃이 만개한 때입니다. 대전을 떠나오며 내내 대전문학관에 모여 앉아 계시던 여러분을 생각했습니다. 행사가 끝나고 정신없이 뒷정리를 하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도리어 ‘용기’ 얻고 간다고 누군가 말씀을 건네 오셨는데, 그분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봄꽃을 보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저희는 다음에 목포로 내려갑니다. 그곳에 고인 어떤 시간을 뜨거운 눈물로 어루만지고, 마음을 기울여 볼 셈입니다. 원주에서 출발한 발걸음이 목포까지 가닿는 동안 어느덧 절반의 행사가 지나가버렸습니다. 행사를 함께 일구고 있는 좋은 스태프들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을 즐겨 보자, 는 다짐을 했지만 어떤 응원이 꼭 필요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우리의 말에 귀 기울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우리를 ‘기다려 주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안다는 것’이 우리에겐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절반을 넘어선 어떤 시간이 누군가에게 꼭 어떤 의미로 다가서지 않더라도, 유랑극단이 함께하고 있는 동안은 그 누구와도 손을 맞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과 ‘시원(始原)’의 어떤 힘이 우리의 배경이 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목포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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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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