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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으로서의 창구가 되어주길

  • 작성일 2012-12-11
  • 조회수 913

 

   [새 문장에 바란다]

 

 

문학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으로서의 창구가 되어주길

 

성경선

(배우, 문학공연 연출가)

 

 

 

 

 

   화창한 봄을 지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시원한 가을을 지나 차갑디 차가운 겨울이 다가왔다. 이렇듯 사계절 안고 사는 우리들은 많은 감성과 풍부한 감각들을 지니고 살고 있다. 요즘은 모든 것이 급변하고 다양한 것들이 우리를 자극한다. 여기서 문학은 우리들로부터 어디쯤 있을까? 발 한 치쯤 뒤에? 아님 그림자 한 치쯤 뒤? 아님 저 고개 넘어 한 치쯤 뒤일까?

   내가 처음 문장을 만난 것은 문학 집배원 문장 녹음을 위해 배우로써 녹음하러 갔을 때였다. 그 후 문장배달을 신청해서 참으로 재미나게 듣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들을 매주 다른 색깔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만 만나오던 문장. 그러던 어느 날, 문장에서 내게 ‘문장에게 바라는 것’이라는 물음을 물어왔다. 무엇을 바라나? 생각해 본다…….

   얼마 전 윤독클럽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분은 윤독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내게 얘기를 해 주셨다. 윤독은 이해가 잘 되지 않던 어려운 문장까지도 여러 차례 되짚어 이해되게 하고 윤독하는 사람들끼리의 목소리를 통한 신뢰는 어마어마한 것이라며 열변을 토하셨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낭독 공연이라는 장르도 윤독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목소리라는 신뢰와 글이 만나, 그것이 다시 각자의 뇌로 들어가 상상된 각자의 그림을 그리고 그것이 모아져 공연이 된다. 같은 이야기 속에 다른 그림들이 그려지는 것이다. 윤독자는 자신이 글을 읽음으로써 낭독자로서 희열을 느끼고 청중은 타인의 낭독을 들으며 자신만의 상상을 즐기며 듣게 되어 쾌감과 재미를 통한 이해도는 한층 높아지는 것이다.

   나는 배우이자, 문학연출가로 이런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낭독공연의 기회들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단순하게 낭독만 하는 공연도 좋지만 여러 장르가 연출을 통해 문학과 만났을 때의 재미는 더 쏠쏠할 것이다. 내가 집에서 소설을 읽고 있는데 그 소설에 맞는 음악이 저절로 흘러나온다고 상상해 보자. 그 소설이 훨씬 흥미롭지 않을까!? 그러다 순간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또는 상상과 다른, 아님 상상과 비슷한 장면이 내 눈앞에 불쑥 보인다면, 그 얼마나 재미나겠는가! 어쩌면 낭독공연이란 그런 것이리라. 문학으로 존재하면서 거기에 다른 장르의 예술이 공존한다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난 요술램프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연극배우로 20년이 넘게 활동해 왔지만 요즘은 낭독공연의 재미에 더 빠져 있다.

   문장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오프라인 행사에서 독자들이 낭독공연을 볼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얼마 전 시민 참여 낭독공연을 연출한 적이 있다. 어떤 어머니는 태교로 낭송해 주던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7살 아들과 나와 낭송했고, 어떤 이는 자신이 쓴 글을 타인에게 너무나 들여 주고 싶었다며 마치 등단한 기분이라고 기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요즘 불어를 배운다며 불어로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회를 많이 목말라 했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시민 참여 차원에서 매달 한 권의 책을 선정하고 시민들이 매주 모여 윤독을 하고 한 달에 한번 낭독공연을 하는 행사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또, 석 달에 한 번쯤은 배우들이 좀 더 프로페셔널한 무대를 보여 준다면 더욱 더 다양한 행사가 되지 않을까.

   낭독 공연은 문학의 장점과 공연의 장점이 잘 접목된 장르로 문학을 멀리하던 시민들에게도 자연스럽고 재밌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생각한다. 나는 표현을 업으로 삼고 있는 배우인데도 문장을 녹음하러 갈 때는 또 다른 재미에 녹음을 즐기고 있다. 이 재미를 문장 식구들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계절을 느끼며 사는 우리는 다양한 감성의 소유자들이기에! ^^

 

 

   《문장웹진 12월호》

 

 

 

 

 

 

 

   지금 ‘사이버문학광장(www.munjang.or.kr)’은 홈페이지 개편 작업이 한창 진행입니다. (2013. 1. 10 오픈 예정)

   본 내용은 새 '사이버문학광장'에 대한 다양한 기대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올 12월과 내년 1월 두 달에 걸쳐, 각 분야 다양한 필자의 글이 릴레이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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