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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코스모스

  • 작성일 2012-04-27
  • 조회수 1,320

 

  [2012년, 동화를 읽자!]

 

 

코스모스

 

전성현

 

 

 



 

  “02코 4567, 트럭 43스 7227 그리고,”

  내가 집 앞 골목길에 주차된 자동차 번호판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석 달 전 부터다. 우연히 발견한 다섯 대의 차 번호판 끝자리 숫자가 모두 7이었다.

  오늘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에 주차된 차를 더 관심 있게 쳐다봤다.

  “이번엔…….”

  긴장된 마음으로 트럭 뒤에 가려진 검은색 자동차 번호판을 들여다봤다.

  “23모…… 2478”

  번호가 8로 끝났다. 오늘은 아니다.

  석 달 전 일은 정말 우연이었던 걸까? 아니, 아무 때나 차가 드나드는 상가 뒷골목이기 때문에 주차된 차의 번호판 끝자리 숫자가 같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7이라는 숫자가 나에게 너무나도 특별했다. 집에 오기 전, 나는 7단원 수학 시험지를 받은 터였다. 점수가 77점이었다. 20문제에 4문제하고도 한 문제의 반을 틀렸으니 엄밀히 따지자면 77.5점이었고 반올림하면 78점이기도 했다.

  선생님이 0.5점, 아니 1점이나 깎아 점수를 줬다는 것에 나는 무척이나 서운했다. 하지만 골목길 끝에 있는 우리 집에 들어가면서 7이라는 숫자가 나에게 매우 의미 있는 숫자라는 걸 알았다.

  “정말? 당신, 정말이야?”

  현관문을 여는데 전화통화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준석아, 너희 아빠가 드디어 7년 만에 승진을 했다.”

  엄마의 외침과 동시에 내 머릿속을 떠다니던 숫자들이 7만 남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저녁, 정확히 7시 7분에 집에 온 아빠와 패밀리 레스토랑 7번 자리에 앉아 외식을 했다. 그리고 수학 점수가 떨어졌음에도 97분짜리 ‘더 문’이란 공상과학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어떤 날은 끝자리 1번을 가진 차들이, 또 다른 어떤 날은 끝자리 9번을 가진 차들이 두세 대씩 골목길에 서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다 일주일 전, 하굣길에 나는 또 다른 경험을 했다.

  ‘32사 3823’, ‘05사 3483’ 그리고 전봇대 옆 빈자리 하나 건너 ‘08사 2843’ 번호판을 가진 자동차가 골목길에 주차되어 있었다. 세 대의 자동차 번호판을 확인한 나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걸 느꼈다. 이번엔 번호판 끝자리 숫자뿐만 아니라 숫자 사이에 있는 글자도 같았다.

  ‘사’라는 글자와 ‘3’이라는 숫자.

  살짝 오줌이 마려웠지만 흥미로운 일이 또 일어날 것 같은 예감에 나는 그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낯선 자동차 한 대가 골목길로 들어왔다. 나는 급히 번호판부터 확인했다.

  ‘37누 8234’

  이런, 기대했던 번호가 아니었다. 그 자동차는 곧 전봇대 옆 비어 있는 자리에 주차를 하려 했다. 번호판의 새로운 조합을 기대했던 나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발길을 돌렸다. 그러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쿵 하는 소리를 들었다.

  후진으로 주차하던 자동차가 운전대 방향을 잘못 꺾어 전봇대를 받아버린 것이었다. 차에서 내린 아저씨가 찌그러진 범퍼를 보며 인상을 쓰더니 다시 차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차를 빼 어디론가 가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자동차가 주차하지 못했던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던 것 같다. 내가 77점을 맞아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찌그러진 범퍼의 자동차가 골목길을 다 빠져나가기도 전에 하얀색 자동차 한 대가 반대편 길로 들어왔다.

  번호판 ‘01사 1543’

  하얀색 자동차는 곧 전봇대 옆 빈자리로 미끄러지듯 들어가 주차했다. 자동차 시동이 꺼지자 하이힐 신은 짧은 치마 차림의 누나가 차 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요즘 남자애들은 참!”

이라 말하고 종종종 큰길가로 걸어갔다.

  누나 표정이 오줌 마려워 다리를 꼬고 서 있는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듯했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차 네 대나 공통된 조합의 번호판을 가지고 있었으니 다섯 개의 7번 번호판을 발견했을 때처럼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나는 잠시 더 골목길을 서성이다 집으로 갔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참았던 오줌부터 시원하게 눴다.

  “사, 사, 사, 사, 3, 3, 3, 3…….”

  같은 말을 되뇌었다. 기가 막힌 일이 생기길 기대하면서.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골목길에 있는 파란대문 집에 평소에 없던 커다란 노란 등이 걸려 있었다. 대문에 붙어 있는 마름모 모양의 종이에는 ‘喪中’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선영이네 집인데?”

  열린 대문 안을 들여다보니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아침부터 마당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팔에 완장을 찬 아저씨도 있었다. 조금 더 다가가 대문을 밀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기이한 향냄새가 몰려왔다. 녹슨 철 대문에선 끼이익 소리가 요란했다.

  “너, 이놈!”

  갑자기 술에 취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나타나 대문을 마저 열고는 소리를 질렀다. 눈은 반쯤 감겨 있었지만 비틀거리면서도 손가락은 정확히 나를 가리켰다.

  “왔으면 들어와 인사를 해야지 뭐하고 있는 거야!”

  놀라 뒤로 넘어졌던 나는 얼른 땅에 떨어진 실내화 주머니를 챙겨들고 부리나케 학교를 향해 달려갔다.

  그날 선영이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선영이네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잘은 모르겠지만 중요한 일이 골목길에 생길 때마다 알 수 없는 규칙들이 복잡한 과학 공식처럼 만들어지고 흩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 나는 서둘러 집으로 갔다. 그러고는 신문을 들여다보고 있던 엄마에게 이틀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힘이 골목길에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엄마는 신문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봤다. 내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힘?”

  “만유인력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 사이에서 규칙을 가지고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게 달라.”

  나를 보는 엄마의 눈빛이 빛났다. 점점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골목길에 주차된 자동차 번호판이…….”

  엄마는 이야기를 듣다 말고 신문지를 돌돌 말았다. 그러더니 신문지 두루마리로 내 등을 있는 힘껏 내리치며 말했다.

  “보이는 힘에 더 신경 써!”

  그날 이후 엄마는 내가 하는 말들에 그저 웃기만 했다. 실망이었다. 하지만 나는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어떠한 힘이 여전히 우리 집 앞 골목길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큐브 조각처럼 만났다 흩어지는 숫자와 글자들. 또다시 골목길에 중요한 일이 생긴다면 큐브 조각 맞춰지듯 자동차 번호판의 숫자와 글자들은 새로운 조합으로 만날 것이다.

 

  “02코 4567, 파란 트럭 43스 7227.”

  나는 왔던 길을 거슬러 주차된 자동차 번호판을 다시 들여다봤다.

  “검은색 자동차 23모 2478.”

  이번엔 숫자가 아닌 번호판 글자에 눈길이 갔다.

  “코, 스, 모?”

  나는 서둘러 검은색 자동차 뒤에 있는 은색 자동차를 보았다. 그러고는 자동차 번호판을 확인하려다 숨이 멎을 뻔했다. 은색 자동차는 우리 집 차였다.

  우리 집 차번호 ‘01스 5727’

  “코, 스, 모, 스?”

  번호판 글자들이 한 단어로 조합되었다. 도대체 무슨 힘이 이 번호판 글자들을 끌어다 꽃 이름으로 맞춰 놓은 것일까?

  코스모스. 그나저나 코스모스가 피기엔 아직 이른 계절이었다.

  “준석아, 너 또 길에서 뭐 해?”

  때맞춰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엄마가 외출복 차림으로 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엄마!”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아무래도 오늘 중요한 일이 생길 것 같아!”

  내 말에 엄마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왜? 번호판에 뭐라고 적혀 있는데?”

  “어, 코스모스. 우리 집 자동차가 ‘23 스’니까…….”

  엄마는 내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자동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냐? 이제 ‘스’자가 빠지게 돼서!”

  엄마는 약속이 있어 늦을 거란 말을 남기고 자동차를 몰아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순간 어렵게 맞춰진 큐브 조각이 봄눈 슬듯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서운하지 않았다. 분명 골목길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질 테니 말이다. 다만 지금은 선영이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곧바로 알 수 없을 뿐이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 가방을 벗어던져 놓고 축구공을 챙겨들었다. 그러고는 집을 나와 동네 놀이터로 향했다. 가는 동안 코스모스라는 단어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곧 알 수 있겠지.’

  코스모스로 인해 또다시 특별한 일이 생긴다면 골목길 안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엄마에게 당당히 증명할 수 있을 거다.

  놀이터에 도착하니 먼저 온 다섯 명 아이들 중 한 명이 휴대용 게임기를 들고 놀고 있었다.

  “애들아, 나 공 가져왔어.”

  툭, 툭 담벼락에 대고 공을 차며 말했다. 평소 같으면 금방 달려들어 공을 찰 아이들이 오늘은 게임기에서 눈조차 떼지 않았다.

  “나랑 축구할 사람?”

  내가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게임을 하던 아이가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오늘은 하기 싫어! 시간도 없고.”

  그 아이가 게임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다른 아이들도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학원에 가야 한다며 제각각 벤치에 올려놓은 학원 가방을 챙겼다.

  그러고는 한데 몰려 지나가는데 아이들 가방에 적힌 학원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얘들아!”

  내가 큰 소리로 부르자 한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왜?”

  “너희들 가방에 적힌 학원 전화번호가 모두 5번으로 끝나!”

  “그래서?”

  다른 아이들도 뜬금없단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모두 다른 학원에 다니는데 전화번호가 5번으로 끝난다니까?”

  내 말에 가장 키 큰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말했다.

  “우리 집 전화번호도 5번으로 끝나는데, 참, 네 이름도 ‘오’가 들어가지. 오준석, 오리 궁둥이, 오징어, 오줌싸개…….”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 내 별명을 부르며 놀이터를 빠져나갔다.

  ‘참, 여긴 우리 집 앞 골목길이 아니지.’

  괜히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아닐 수도 있지 뭐!”

  아이들이 가고 난 뒤 나는 한참 더 공을 찼다. 그러다 제 풀에 지쳐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 낯선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동네 사니?”

  돌아보니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땋아 묶은 또래의 여자아이가 나를 보고 서 있었다.

  “지금, 나한테 한 말이야?”

  처음 보는 아이였다.

  “혹시, 초록 도서관 가는 길 알아?”

  초록 도서관은 학교 가는 길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었다. 설명해 주려 했지만 왠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모르는 척 고개를 저었다.

  그냥 지나갈 줄 알았던 여자아이가 그네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보라색 치마를 두 손으로 쓸어내리며 그네에 앉았다.

  “정말 몰라?”

  여자아이가 그네를 타며 물었다. 하얀 다리를 내저을 때마다 보라색 치마가 꽃잎처럼 펄럭였다. 그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초록 도서관 가는 길 몰라?”

  “어.”

  한마디 내뱉는데 숨이 찼다.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벽에 대고 공차기를 했다. 여자아이의 눈길이 느껴져 괜히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너, 공 찰 때마다 일곱 번에 한 번씩 헛발질을 하는 거 알고 있어?”

  어느새 그네에서 내린 아이가 내 뒤에 서 있었다.

  “뭐?”

  “아니야.”

  여자아이가 피식 웃으며 놀이터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못 들은 척 몇 번 더 공차기를 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했는데 일곱 번에 한 번씩 공을 놓쳤다. 그러다 공차기를 그만두었다.

  집에 가려고 놀이터를 나섰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니 짝을 맞춘 듯 지나가는 네 대의 검은색 자동차가 보였다.

  “03유 2452, 05니……, 버, 스. 유니버스?”

  새로운 번호판 글자들이 조합되었다. 집 앞 골목길을 벗어나서도 글자의 조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사이 주황색 택시가 다섯 대 연속으로 내 옆을 지나갔다. 2번 끝자리 번호를 가진 오토바이가 네 대. 그리고 똑같은 휴대폰을 들고 전화 받는 사람이 편의점 앞에 세 사람이나 서 있었다.

  큰길가로 나서자 요란한 음악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광고차가 보였다. 차에 달린 전광판에 ‘스페이스 나이트’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광고차가 지나간 뒤로 ‘스페이스 PC’방이 보였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낡은 유모차에는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두꺼운 책이 놓여 있었다. 책 표지엔 우주복을 입은 한 남자가 어둠 가득한 우주 속에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남자의 표정에서 두려움과 긴장감이 느껴졌다.

  ‘어딜 보고 있는 걸까?’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할머니가 전봇대 옆에 놓인 음료수 박스를 주워 책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어딘가로 유모차를 끌고 가버렸다. 유모차에 얹혀 있던 작은 우주가 떠났다.

  그 후, 쉴 새 없이 맞춰지던 큐브가 잠잠해졌다.

  집으로 돌아간 나는 평소처럼 숙제를 하고 저녁 늦게 온 엄마와 식사를 했다. 스포츠신문을 보던 아빠가 별자리 운세를 음력으로 보는지 양력으로 보는지를 놓고 엄마와 다툰 일 말고 별다른 일은 없었다.

 

  다음날 코스모스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나는 내심 기대를 하고 학교에 갔다. 하지만 결석을 한 친구나 특별한 일이 있었다는 친구는 없었다.

  대신 아침자습시간 동안 담임선생님이 뉴스에서 봤다는 소행성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게 5,500톤에 달하는 소행성 2005 YU55가 새벽에 달보다 가깝게 지구를 지나갔다고 말이다. 선생님은 소행성이 지나간 자리를 친절하게 그림까지 그려 주며 설명했다.

  한 아이가 소행성이 어디로 간 것이냐고 묻자 선생님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금성을 스치듯 지나 2075년에 지구를 다시 지나갈 거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우주는 질서와 조화를 가지고 움직인다고 했다.

  “질서와 조화?”

  그렇다면 골목길과 놀이터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도 질서와 조화를 가지고 생겨났던 것이었을까?

  궁금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더 물어보라는 선생님 말에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우주적인 현상이 골목길에서, 아니 우리 주위에서도 일어날 수 있나요?”

  자신감 넘치는 내 질문에 선생님이 생각 외로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 글쎄!”

  “선생님, 그 소행성이 금성과 충돌하지는 않을까요?”

  내가 선생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다른 아이들의 질문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선생님, 다른 소행성은 없나요? 2012년 12월 21일 지구가 멸망한다는데?”

  “소행성이 떨어지면 지구가 박살나나요?”

  계속되는 질문에 선생님이 한 가지 대답만 내놓았다.

  “몰라. 그러니까 너희는 일 교시 수업 준비나 해.”

  내 질문에 다른 아이들의 질문이 줄줄이 뒤따르리란 것도 그리고 내가 선생님의 답변을 들을 수 없을 거라는 것도 어쩌면 우리 반 안에서의 질서와 조화였을까?

  그나저나 나는 언제쯤 코스모스에 대한 해답을 찾아 엄마에게 말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알지 못한 어디에선가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텐데.

  아이들의 질문이 계속되는 사이 드르륵 교실 앞문이 열렸다. 문 뒤로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땋아 묶은, 어제 놀이터에서 만난 여자아이였다.

  순간 가슴이 뛰었다. 어제 느꼈던 묘한 감정이 또다시 살아났다. 그 아이가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오자 이번엔 내 마음속 큐브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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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에세이] 아, ‘장르 문학’ 하시는구나 김용언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고, 열심히 읽고, 그에 관한 잡지를 만들고, 또 가끔은 관련 공모전 심사를 보면서 언제나 느끼는 바가 있다. 한국에서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여전히 심각하게 척박하다는 점이다. 가장 모순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장르 문학’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다. ‘(그냥) 문학’1)의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소설들은 굳이 ‘장르 문학’이라고 불린다. SF, 판타지, 미스터리/스릴러, 로맨스, 공포, 무협 등의 꼬리표가 붙고 낱낱이 분류되며 ‘문학은 문학이지만 그냥 문학이라고 부르기보단 그 안의 장르로 명명되어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장르 문학에 속하지 않는 작품은 그냥 문학이 아니라 ‘비장르 문학’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니면 순문학 역시 일종의 장르임을 인정하면서 모든 작품을 ‘장르 문학’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닐까? 예전 한국 문단에서는 ‘순(純)’이라는 단어가 참여 문학/민중 문학 등의 대립항처럼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참여 문학/민중 문학도 ‘그냥’ 문학에 포함된 것 같다. 아무튼 거칠게 말해서 ‘장르’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과 현실 자체에 집중하는 소설을 ‘그냥’ 문학으로 호명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장르’로 호명되는 특정한 이야기들에는 그 장르가 만들어지게 된 역사가 있고 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특정한 규칙이 존재한다. 그런 약속된 구조와 규칙을 이용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해서, 그 결과물이 ‘그냥’ 문학으로 불릴 수 없고 장르 문학으로만 불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장르 문학도 문학임을 인정하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게 아니다(그건 너무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에 굳이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그 장르 문학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불편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찾아온다. 이를테면 한국 작가의 소설이 해외로 번역되었을 때 현지 리뷰들을 찾아보면, 스릴러/미스터리/공포 등의 명칭을 명확하게 부여하면서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기존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할 때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또는 ‘경계를 넘어선 상상력을 발휘한’ 등의 애매모호한 문구로 시작할 때가 많은데, 해외에서는 자신들에게는 낯선 작가의 번역 작품의 특성을 단번에 설명하기 위해 ‘이것은 스릴러다’ 또는 ‘이것은 공포소설이다’라고 알려준 다음 그 작품의 특성이 어떤 점에서 새롭고 멋진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장르 문학과 장르 아닌 ‘그냥&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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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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