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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의 집

  • 작성일 2012-01-31
  • 조회수 1,399

 

[2012년 미리 보는 올해의 시집]

 

미인의 집

 

박준

 

 

 

 

 

 

  다시 말하지만 골목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어두운 골목, 사실 사람의 몸에서 그림자보다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노래다 울지 않으려고 우리가 부르던 노래들은 하나같이 고음(高音)이다 노래가 다음 노래를 부르고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붙잡는 골목이 모래내에는 많다

─ 「모래내 그림자극」 부분


 

  나는 빠른 음악을 듣지 못한다. 빠른 음악을 들으면 아무것도 못 하고 화만 낸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이다. 라디오를 좋아하지만 오래 듣지 않는다. 세 곡에 한 곡은 꼭 빠른 박자의 노래가 나오기 때문이다. 가끔은 클래식도 내게 너무 빠르다.

 

  재작년부터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진행해 오다 얼마 전에 그만두었다. 일요일 밤마다 세 시간 동안 혼자서 시를 읽고 산문을 읽고 소설을 읽었다. 중간 중간 트는 노래의 선곡도 내가 혼자 했다. 물론 내가 아는 노래들만 틀었다. 문제는 신청곡이었다. 청취자들이 신청한 빠른 노래가 혼자 있는 스튜디오에 쿵쿵쿵쿵 울렸다. 괴로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힘들게 만든 방송국이었고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진행료도 매력적이었지만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려서부터 나는 빠른 음악을 싫어했다.

 

  더 어려서는 피아노를 쳤다. 동네 어느 가정집에 차려진 피아노 학원이었는데 대학생 누나가 내 손을 잡고 검은 건반과 흰 건반을 번갈아 짚어 줬다. 한 3개월 쳤다. 바이엘 하권까지 쳤다. 그쯤 배우니까 악보들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왼손과 오른손이 서로 하는 일을 몰랐다.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었다. 그 후부터는 피아노 학원에 가고 싶지도 않았고 가세가 기울어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도 다시 태어나면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는 빠른 음악을 들어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빠른 음악을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

 

  그런데 요즘은 하나 신기한 일이 생겼다. 그룹 〈거북이〉가 불렀던 빠른 노래들이 싫지 않은 것이다. 왜 갑자기 생경하게 〈거북이〉를 말하는가 싶겠지만…… 내가 그 그룹의 노래를 좋아한 것은 리더의 사망 소식을 들은 직후부터였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그렇게 신나고 재미있을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그들이 그간 불렀던 노래의 영상들을 찾다가 인상적인 장면을 짚어냈다. 데뷔 5년 만에 처음 1위를 했던 날이라고 했다. 2006년 8월 마지막 주의 일이다. 그룹의 리더는 수상소감에서 눈물을 꾹꾹 참으며 “정말…… 정말…… 열심히 살게요.”라고 짧게 말했다. 그 모습이 나는 너무 좋았다. 그건 그가 울지 않으려고 불렀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빠르건 느리건 상관없이.

 

  죽은 사람들이 괜히 좋아지는 것도 병이라면 병일 것이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나보다 먼저 죽은 사람들과 모두 함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단, 독재자나 고문기술자나 전쟁광이나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 사람이나 아이들과 동물들을 학대했던 사람과는 같이 태어나고 싶지 않다.

 

 

  저녁이면 벽제에서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 석재상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오후 늦게 일어나 울음을 길게 내놓는 행렬들을 구경하다 밤이면 와불(臥佛)의 발을 만든다 아무도 기다려 본 적이 없거나 아무도 기다리게 하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돌의 발, 나란히 놓인 것은 열반이고 어슷하게 놓인 것은 잠깐 잠이 들었다는 뜻이다 얼마 후면 돌의 발 앞에서 손을 모으는 사람도, 먼저 죽은 이의 이름을 적는 사람도, 촛불을 켜고 갱엿을 붙여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돌도 부처처럼 오래 살아갈 것이다

─ 「연화석재」 전문


 

  아마 내 첫 시집에는 미인(美人)들이 들어가 살고 있을 것이다. 시집의 제목을 『미인』으로 하고 싶지만 담당 편집자가 반대하고 있어서 그렇게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제목이야 어떻든 시집을 펴면 발바닥이 깨끗한 미인들이 나와 당신을 맞이해 줬으면 좋겠다.

 

  미인은 예쁘다. 나는 그런 미인과 한동네에 살고 싶다. 또 미인은 잘 놀란다. 미인은 거짓말을 거짓말처럼 한다. 미인은 약속시간에 종종 늦기도 하는데 그건 미인이 누군가에게 미안해하는 일을 즐겨하기 때문이다. 미인은 낯선 길을 잘 알려준다. 미인은 우리가 가려는 길에서 저만치 먼저 걸어가기도 한다. 그런 미인이 앞서 가는 길을 따라 걷는 것은 괜히 미안해지는 일이다. 미인은 처음 만나도 오래 알고 지낸 사람 같다. 사람들은 멀리서도 미인을 잘 알아보고, 미인은 만나는 사람들마다 겸손하다. 미인은 아무나 잘 사랑하고 아무나 잘 믿는다. 그래서 잘 죽는다. 내가 아는 미인들은 모두 이르게 떠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꽃 같은 미인들이 지고 있다. 해서 나는 무시로 슬프다. 괜찮다, 괜찮다 혼자 도닥이다 터진 눈물을 삼키려 그물망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내 그리움에 미인들이 걸려 있는 게 아니라 저 미인들의 슬픔에 내가 걸려들어 있다는 생각. 아마 내 시집은 미인들에게 쓰는 연애편지이거나 혹은 미인들의 유서(遺書)일 것이다.

 

  내가 지금 두 달째 잡고 있는 시는 수내동에서 손을 두 번 흔들고 떠난 미인에 관한 이야기다. 세상에는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 그것들과 쉽게 친해졌으므로 내 시는 창작보다는 취재나 대필에 가깝다. 쓰는 게 아니라 그들의 유언을 받아 적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당신의 유언이 궁금하다.

 

 

  나는 유서도 못 쓰고 아팠다 미인은 손으로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번갈아 짚었다 뭐야 내가 더 뜨거운 것 같아 미인은 웃으면서 동백꽃같이 커다란 귀걸이를 걸고 문을 나섰다 한 며칠 괜찮다가 꼭 삼일씩 앓는 것은 내가 이번 생의 장례를 미리 지내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렵게 잠이 들면 꿈의 길섶마다 열꽃이 피었다 나는 자면서도 누가 보고 싶은 듯이 눈가를 자주 비볐다 힘껏 땀을 흘리고 깨어나면 외출에서 돌아온 미인이 옆에 잠들어 있었다 새벽 즈음 나의 유언을 받아 적기라도 한 듯 피곤에 반쯤 묻힌 미인의 얼굴에는, 언제나 햇빛이 먼저 와 들고 나는 그 볕을 만지는 게 그렇게 좋았다

─ 「꾀병」 전문


 

《문장웹진 2월호》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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