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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쓰고, 또 쓰는 작가의 말

  • 작성일 2012-01-27
  • 조회수 971

 

[2012년 미리 보는 올해의 소설]

 

 

미리 쓰고, 또 쓰는 작가의 말

 

임수현(소설가)

 

 

 

 

 

  2008년 여름부터 소년(들)과 함께 살았다.

 

  태풍의 끝자락이었던 것도 같고, 폭염의 한가운데였던 것도 같다.

  더위가 지긋지긋했는지도 모르겠고, 비바람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해 여름 소설가가 되었다. 지레 소설을 더는 쓸 기회가 없을 거라고 단정하고, 긴 소설을 써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걸로 다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고 배짱을 부렸다. 그건 소심함을 가장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심드렁한 연극이었는데, 그게 들통 났는지, 다행으로 짧은 소설들을 쓸 기회가 계절처럼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다른 엄살을 찾아 헤맸고, 생활은 늘 간절기를 살듯 상큼하지 않았다. 나는 늘 여러 감정 사이에 낀, 감정을 오염시켜 들여다보는 게 버릇이었으니까, 그런 변덕이 제법 마음에 들었나?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겨우 소년기에 도착한 나는 소년처럼 변덕을 반복하며, 오랫동안 소년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그 소년들에게 〈태풍소년〉이란 이름을 붙여 줬다. 그렇게 그해 여름, 전자레인지와 내 책상 사이의 벽에는 붉덩물이 범람해 도로를 잠근 개천 사진과 옹벽이 무너지면서 주차장이 주저앉아 질흙에 뒤엉킨 자동차 사진이 붙었고, 나는 여전히 그 사진을 떼지 못했다. 나이의 여름인, 소년이라는 태풍이 잦아들었는데도.

 

  나는 사실 소년들이 나오는 소설을 사랑하지 않았다. 열다섯, 사랑을 시작하는 나이, 제 몸에서 기쁨을 발명하게 되는 나이, 그리고 죄를 책임져야 하는 나이. 내가 알고 있는 소년들의 이야기는 그 불온한 나이가 순진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그건 내가 알고 있는, 여전히 내 속에서 자라지 않는 소년의 이야기가 아닌 것만 같았다. 사실 내 키, 몸무게, 허리둘레는 열다섯 그대로다. 더는 자라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그 시간 그대로 멈춰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태풍소년(들)과 만난 뒤로 나는 그것이 물리적인 사실이 아니라, 기억과 등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나는 돈을 처음 벌고 사용하는 시간부터가 기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대개 (법률적으로) 죄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어야 하는 열다섯, 소년이라는 시간에 발생하고, 소년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기억이 없기 때문에, 돈으로 자신의 삶(기억)을 발명했다고 오해한다. 죄의 예감마저 공짜라고 기뻐한다. 나는 자주, 가끔 기실 부모에 기생하면서도 허영에 들떠, 아무 노력도 않고 시간만 재촉하는 소년에 흠칫했다. 나는 그 소년이 밉고, 전혀 안쓰럽지 않았다.

 

  그리고 세 번의 여름이 지난 뒤 나는 이 못돼 처먹은 태풍소년(들)이 지긋지긋해 세상으로 등 떠밀었다. 그래놓고는 세상을 자신이 발명했다고, 모래를 우주라고 과잉하는 소년(들)의 침묵 속 수다를 현미경처럼 옮겨 보고 싶었다고, 담박한 건 노인의 몫으로 두고, 늙음을 재촉해 담박해질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다 쏟아내고 나니 서둘러 소년과 노인을 한꺼번에 살아버린 기분이라고, 그리하여 나는 지금의 나로 오염된 소년을 빌미로, 낙원을 그릴 용기를 잃어버린 건지도1) 모른다고, 하지만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어제) 지옥도에 최선을 다했다고, 그 어느 글보다 태풍소년(들)을 대면하지 않을 핑계만 성실하게 궁리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 변명 중 그나마 정제된 일부분이다.

 

……

  이 소설은 아마 그런 마음에서 비롯했겠지만, 강우, 우주, 미래, 래오…… 돌림노래처럼 이어진 이름들은 오해 속에서도 어떻든 제 삶을 지속하고, 아마도 끝끝내 자신들의 절망을 반성하지 않을2)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열다섯, 소년(들)의 이야기다. 나는 그저 소년(들)에게서 부모와 학교를 생략시켰고, (한 소년만이 가냘프게 흡혈귀와 로봇이 사랑을 나누는 것 같은 부모에게 엄마기계와 아빠백작이라는 별명을 선물한다.) 그것들에 적선 받은 삶의 서사를 시늉하지 않고, 나약한 육신의 껍데기나마 세상의 부스러기라도 채워 홀로 아름다워지길 바랐다. 그저 소년(들) 서로서로 죄를 떠넘기며, 기만하고, 다투고, 배신하며, 사랑하고, 마주서도록 부추겼다. 그렇게 소년(들) 스스로 제 허약한 몸과 시간을 밑천으로 두 차례의 태풍을 통과하고 나면, 나는 발기한 성기처럼 딱딱했던 마음을 풀고, 그들의 이야기를 공들여 복기해 볼 심사이다. 나는 그것을 화해나 희망이라고 발음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때에는 소년(들)이 발명한 지옥도가 조금은 예뻐 보이기를 바란다. 이 소설은 아주 구체적인 연도와 공간을 느슨한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소년(들)의 삶에 온전히 복무하기 위하여 죄 허구로 재편됐다. 나는 나로부터 시작하지 않는 소설은 자신 없어 하는 편인데, 이 소설은 내가 이제껏 쓰고, 지우고, 버리고, 나누었던 소설 중 거의 전부에 가깝게 허구에 기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하나의 시작과 끝이 아니라, 내 온 소설의 과정 중 하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어른들의 눈에, 아이들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자신들이 자란 시간을 영원히 훔쳤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나이를 빼앗아도, 어른들은 아이들 몫의 시간까지 꿰차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영원히 소년이다.

 

……

  2004년 3월 1일, 태풍위원회는 2002년 여름을 강타한 습지에 사는 사슴이라는 뜻의 루사를 은퇴시키고, 청색 벼슬을 가진 잉꼬라는 뜻의 누리로 대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이야기는 희미하나마 2002년 여름부터 2003년 여름까지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그러니까 소년은 자신을 낳은 사슴이라는 태풍이 딱 한 번 불리고 버려질 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태풍이 돌아오는 날 소년(들)은 또다시 태어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당신,

  당신의 소년은 어떤 계절에 있는지 못내 궁금하다.

 

 

1) W. G. 제발트 『토성의 고리』 가운데, 이재영 옮김, 창비, 2011.

2) 김수영의 시 「절망」에서 빌려왔다.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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