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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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미래는 도시의 이름은 아니지만
미래는 도시의 이름은 아니지만 임수현 배롱나무에 각목을 대어놓았어요 기우뚱한 나무의 운명을 걱정할 때 등에 파스를 붙일 때도 이상한 동작이었는데 떼 낼 때도 간단하지 않네요 괜찮아 물을 때와 괜찮아 대답할 때가 비슷해져요 표정을 담담하게 지으면 덤덤한 사람이 되거든요 나는 등으로 손을 뻗어 닿지 못한 먼 미래의 등뼈를 쓰다듬어요 이렇게 많은 비 이렇게 많은 비둘기 이렇게 많은 과오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뼈들의 말 골밀도가 낮은 구름을 향해 새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서요 바닥은 파스가 붙었던 자리처럼 그림자에 기대 조금 더 휘어져요 조금 더 멀어져요 거기서부터 출발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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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하나가 둘로 갈라지면 진짜 하나는 어쩌지
하나가 둘로 갈라지면 진짜 하나는 어쩌지 임수현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으면 나와 더 친해진 것 같다 놀이공원에 가서 토끼 모양 머리띠를 나눠쓰고 솜사탕을 핥으며 우리가 친해졌음을 커피를 마시고 잘 구운 호밀빵과 원피스를 산다면 만족을 배울 것이다 일시적으로 원피스는 몸을 동그랗게 말 때 좋다 억지로 구겨 나를 원피스 안으로 넣을 수 있다 안심하고 나를 감출 수 있다 당분간 자크가 끝까지 올라가지 않아 끙끙거리며 단지 자크 때문에 울었다 인생인 것처럼 불안의 책* 불안의 꿈 불안의 심장 잠시라면 나와 친해질 수도 있겠지 웅크린 몸을 펴지 않을 것이다 샴쌍둥이의 미래는 하나가 되는 거 독초를 먹거나 포기를 쉽게 익혀서는 안 돼 우리가 되기 위해 둘이 된 거니까 둘이 되기 위해 하나가 될 거니까 *페르난도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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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누구라도 낳아야 한다
누구라도 낳아야 한다 임수현 한 아이가 지나갔지. 내가 낳은 사람 같았어. 호수를 사이에 두고 내 허락도 없이 살아 있었지. 손을 잡고 싶었어. 아이가 아름답고 호수가 아름다워. 나는 내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아서 언제나 의지가 부족하다. 호수를 향해 빵을 던진다, 빵을 따라 날아가는 새들, 내 손을 보고 있는 새들. 내가 낳지 않은 새들, 새들이 내게 명령했으면 좋겠다. 아이를 낳으라고 너는 낳을 수 있잖아, 하지만 새들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보다는 새가 알을 낳는 게 언제나 더 현명하다. 새들처럼 사랑하고 낳으라고 나는 명령하고 싶다. 앞에 가는 사람들에게, 이따 만날 친구들에게. 부드러운 빵을 나누어 주면서 말해 본다면 승산이 없지는 않겠지. 난 정말 알에서 죽고 싶다. 아이의 흔적을 따라 빵을 떨어뜨린다. 너 한 입, 나 한 입, 나누어 먹는 심정. 까만 개미들이 따라오고, 개미들은 이제 그만 번식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