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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해 웃다 외 1편

  • 작성일 2009-06-01
  • 조회수 2,627


정한아

 

단편 <나를 위해 웃다> 중에서

단편 <휴일의 음악> 중에서

 

 

 

나를 위해 웃다

 

 

작가의 말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아마 고통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고통의 의미가 궁금했다. 어디에서 이 아픔이 올까, 왜 모든 사람이 다 아플까,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답은 찾을 수 없었고, 대신 나는 그 질문들을 소설로 썼다. 나는 아직 학생이었고, 미래는 보이지 않았고, 언제나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소설을 쓸 때는 늘 누군가 내 손을 잡고 함께 걷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소설을 쓸 때만은 언제나 조용해지고 싶었고, 더 참고 싶었고, 더 기다리고 싶었다. 그 아름다운 곳으로, 고통이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고통이 우리를 자라게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성장에 대한 이야기다.

 

 

이건 꿈이야, 잘 알고 있지,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 때가 그랬다. 엄마는 꿈에서 잭의 콩나무처럼 구름 위로 멈추지 않고 자랐다. 무섭다거나 두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성장은 정말 기분좋은 속도감이었다.

고개를 숙여보니 세상의 일들이 모두 한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서 엄마는 낯익은 두 사람을 만났다. 그것은 죽은 외할머니와 노파의 영혼이었다. 엄마는 두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해주려고 했으나 그들은 이미 친구였다. 외할머니는 노파에게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버지가 된 남자 중학생들은 엄마와 두 손 모아 악수를 했고 정치인이 된 조합원들은 엄마에게 깨끗한 한 표를 부탁했다. 엄마는 기꺼이 투표를 했다.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조사관들에게 손수건을 건네준 엄마는, 이내 병든 아내와 함께 영국식 아침식사를 하는 아빠를 발견했다. 엄마는 그에게 행운의 키스를 보냈다. 엄마는 차례로 그들을 지나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빴던 일들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엄마는 헤어짐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것은 믿기지 않을 만큼 평화로운 기분이었다. 꿈속에서 엄마는 자신의 몸이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뭔가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 폭신하며 향긋한 느낌이 밀려왔다. 그것은 살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엄마를 가득 채웠던 성장이었다.

엄마가 눈을 떴을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엄마는 천장에 머리를 찧지 않도록 조심조심 일어나서 물을 마셨다. 물맛은 아주 개운하고 맑았다. 엄마는 낡은 장롱에서 두꺼운 이불을 꺼내 깔았다. 그리고 베개 위에 머리를 가만히 뉘었다. 엄마는 온몸을 쭉 폈다. 팔다리의 근육에 무척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어떻게 되더라도 이상한 주사 같은 것은 맞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크게 되는 것만은 나의 의지였으니까, 라고 엄마는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고 나자 많은 것들이 선명해졌다. 엄마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그때 나는 엄마의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감독이 떠나기 전 날 나는 엄마의 집을 두드렸다. 엄마의 집은 아주 반갑게 나를 받아들였다. 그곳은 원래 나의 자리였던 것처럼 긴 여행에 지친 나를 품어주었다. 나는 조용히 엄마에게로 내려앉았다. 엄마를 사랑하기는 아주 쉬웠다. 이제 엄마도 혼자가 아니었다.

엄마의 심장박동은 점차 안정적으로 변했다. 나는 마음을 놓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불을 끌어당겨 따뜻하게 덮는 엄마. 훈기는 금세 온몸에 퍼졌다. 우리는 동시에 편안함을 느꼈다. (「나를 위해 웃다」중에서,  p31~33)

 

 

 

휴일의 음악

 

 

작가의 말

 

잠이 안 오는 날 밤에는 할머니랑 마주 앉아서 밤을 까먹는다. 나는 주로 손 하나 안 대고 할머니가 까주는 밤을 날름날름 받아먹는다. 그때 할머니로부터 듣는 이야기는 늘 정해져 있다. 첫사랑 이야기, 동생들을 키운 이야기, 시집 와서 고생한 이야기. 이 소설에 나오는 바닷가의 할머니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세 동생을 데리고 온종일 걷고 또 걸어 바닷가에 도착한 이야기. 그곳에서 보았던 할머니의 생애 첫 바다. 할머니는 아실까나, 손녀가 그 이야기를 떡하니 소설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다는 걸?

 

 

바다로 통하는 길은 서늘하고 조용했다. 나는 이끼로 뒤덮인 길을 걸어가며 축축하게 젖은 바위들을 내려다보았다.

오른 쪽 길로 계속해서 걸어가면 버려진 나룻배가 하나 보인다고 했는데,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때, 멀지 않은 곳에 선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할머니는 커다란 아이보리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나는 아이처럼 그 옆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기분이 좀 나아 보이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할머니의 물기 없이 마른 손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물결 같은 주름들. 나는 손에 힘을 주었다. 그곳에서는 바다로 이어지는 방파제가 보였다. 멀리서 희미하게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열여섯 살에, 바닷가에 처음 가봤단다.”

할머니가 말했다.

“어제 말이다. 동생들을 데리고 어머니를 보러 영광에 갔던 일이 떠올랐거든.”

할머니는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감았다.

“그런 건 처음이었어. 끝없는 모래, 푸르고 짙은 물결, 그 갈매기들…… 그 때 나는 갓난아기인 동생을 업고 나머지 두 명의 동생 손을 잡았는데, 자꾸 발이 모래 속에 폭폭 빠졌어. 어린 것들은 재미있어서 키득거리고 웃는데, 나는 그저 걱정이 되기만 했지. 어머니가 왜 왔냐고 야단을 치면 어떻게 하나. 어머니는 우리를 고향에 맡기고 돈을 벌러 떠나 계셨거든. 어머니는 무척 엄격한 분이셨어.”

할머니는 스카프 끝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물어물어 간 집 안에 낯모를 사람들이 가득했어. 아마 장에서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 어머니는 나를 보고 놀라서 눈을 끔벅거리더니, 먼저 포대기를 풀어서 아기를 받아들었어. 동생 둘이 엉거주춤 어머니 치마폭에 안겼지.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았어. 우리를 하나하나 데려가서 직접 손을 씻겼지. 손으로 땅을 짚고 왔냐, 하시면서. 추석을 앞둔 때라 당신도 우리가 그리웠던 거야.”

 할머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까맣게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아주 생생했어.”

 바람에 나뭇잎 두어장이 땅으로 떨어졌다. 할머니는 땅바닥을 바라보았다.

“내 삶은 늘 어딘가 텅 비어 있었단다. 나는 항상 내가 절름발이처럼 느껴졌어. 그런데 기억이 늘어날수록 내 삶이, 이해가 돼. 구겨져서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할머니는 잠시 짬을 두고 자그맣게 말했다.

 “나는 구름처럼 높은 곳에서 나를 바라본단다.” (「휴일의 음악」 중에서, p229~231)

 

소설/낭송 : 정한아

출전 : 정한아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문학동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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