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숙녀를 만나다

  • 작성일 2008-02-11
  • 조회수 4,687

[조경란이 만난 사람]⑨- 現代文學, 양숙진 주간



숙녀를 만나다




누군가 날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싶은 날


장편소설을 끝내자마자 뭣에 홀린 듯이 사흘 만에 단편소설을 한 편 쓴 적이 있다. 몇 달 동안 매일 매일 앉아 왔던 책상을 떠나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미리 구상해 둔 게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아무려나 내 소설 중 가장 분량이 짧고 명랑한 그런 소설을 썼다. 그게 지난 가을의 일이다. 그 후 책상 앞에 앉지 못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 단편소설을 쓰고 싶었을 거다. 한번 책상 앞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고 애를 써야 한다는 걸 뻔히 잘 알고 있으니까. 소설쓰기란 오래했다고 해서 점점 쉬워지는 것도 만만해지는 것도, 딱히 지름길이 보이는 것도 아니어서 쓸 때마다 언제나 곤혹스럽다 못해 좌절감을 느끼기까지 할 때가 있다. 게다가 너무 오래 쓰지 않으면 그나마 글쓰는 솜씨도 어째 퇴행해 버린 건 아닐까, 스스로 의심스러울 때도 많다. 대가들의 인터뷰나 산문을 읽다 보면 그들은 조금씩 매일 매일 쓰는 것 같다. 그것 참 좋은 방법일 것 같은데, 난 평생 못할 것 같다. 나는 오래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첫 문장이 떠오르면 그날부터 일상적인 생활은 잠시 접어 둔 채 하루를 삼등분으로 나눠 자고 먹고 쓰고 자고 먹고 쓰는 타입의 작가인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갖고 있는 최상의 집중력, 육체적인 에너지를 다 쏟아 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따지고 보면 쓰는 날보단 쓰지 않는 날이 훨씬 더 많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매일 매일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지만 일기는 제법 자주 쓰는 편이니 그걸로나마 위안을 삼아야 할까.


아무튼 몇 개월 만에 단편소설 한 편을 쓰고 나니 ‘잠수’한 지 열이틀 만에 밖에 나가고 싶어졌다. 나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술도 한잔 걸치고 찬바람도 쐬고 책도 사고 음반도 사고 싶다. 혼자 뭘 하는 데 퍽 익숙한 편이어도 원고 마친 날 만큼은 정말이지, 안나 가발다의 소설 제목처럼 ‘누군가 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저녁엔 현대문학 양숙진 선생과 저녁 식사 선약이 있었다. 밖에 나가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한번 ‘잠수’를 타면 휴대전화도 물론 꺼 놓는데 그래도 틈틈이 메시지 같은 건 확인하곤 한다. 뭐랄까.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고독을 원하지만 고독에 대한 증인이 필요한 그런 심정이랄까. 문자메시지는 이랬다. ‘하여간 잠수하는 버릇, 그 단호함이 신통해요. 빨리 수면으로 급부상하길 소망, 2월 5일 교보문고 이층 라브리에서 만나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여간’이라는 부사는 양선생의 단골 어법이다. 이를테면, 하여간 그 사람은 왜 그런 짓을 할까? 하여간 못 말리는 사람이지 뭐예요, 하여간 그 작간 정말 끝내주게 잘 쓰잖아? 하여간, 하여간…… 나는 외출 준비를 한다. 문득 다른 일행이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그런 자리엔 안 가지만 양선생이 초대한 자리라면 간다. 그러고 보니 양선생과 이제 꽤 ‘우정’이라는 게 생긴 모양이다. 물론, 처음엔 안 그랬다.


 




상원사에 가다


나는 대개의 도덕주의자들처럼 소심한 데다 붙임성도 없고 인사성도 없는 사람이다. 친구가 없는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소심하고 붙임성도 없어서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 가까워지지 못한 적도 많다. 어째볼 도리가 없지만 역시 성격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게다가 처음 만난 사람이 생김새에 관한 이야기부터 꺼내면 나는 정말 까칠하게 반응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 내 소설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나는 확실히 좀 납득할 수 없는 데가 있긴 한 것 같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양선생을 처음 만난 건 인사동 ‘평화 만들기’ 화장실 앞에서였다. 화장실에서 막 나오는데 거기 나처럼 아래위로 검은 옷을 입고 단발머리를 한, 또 나와는 다르게 체격이 아주 좋은 한 여성이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조경란씨?’ 했다. 그리곤 잡지에서 얼굴 많이 봤어요, 했다. 역시 난 까칠하게 네, 그러곤 그만이었다. 그러느라 작가가 되기 아주 오래 전부터 《현대문학》을 매호 구독하고 있다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월간지라는 것도 말하지 못했다. 게다가 《현대문학》은 등단작 이후 처음으로 내 소설이 게재된 그런 지면이기도 했는데.

 



불문학자 김화영 선생에게 연락이 왔다. 현대문학 편집위원들이 상원사로 1박2일 여행을 가는데 함께 가자고 했다. 상원사, 적멸보궁 앞에서 보는 보름달이 정말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고 했다. 달은 원래도 아름다운데 기가 막히게까지 아름답다면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 걸까?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현대문학 건물 앞에서 막 자동차를 주차하고 있는 양선생을 만났다. 내 기억으론 그게 두 번째 만남이고 지금으로부터 한 오년 전 일이다. 기껏 들떠서 갔는데 운이 좋지 않았는지 그날 밤 흐리고 안개가 가득했다. 보름달은 터진 노른자처럼 불분명하고 희끄무레해 보였다. 그래도 달을 볼 땐 언제나 기분이 좋다. 나는 내 옥탑방이 있는 옥상에서 보던 달을 떠올렸다(그 후 돌아와서 「나는 봉천동에 산다」를 썼다). 모두에게 거기서 보는 크고 선명한 그런 달을 보여 주고 싶었다. 여행은 목적이 아니라 동행자가 중요할 때가 많다. 달이 흐리거나 말거나 유쾌하게 웃고 떠들면서 저녁도 술도 맛있게 먹고 마셨다. 그러는 사이에 양선생과 《현대문학》 윤희영 팀장이 사라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가 머물게 될 숙소에 문제가 생겨 여기저기 숙소를 알아보러 다닌 모양이었다. 자동차가 없으면 기동력이 전혀 없는 그 한적한 일대를 줄곧 걸어 다니면서 말이다. 결국 여성들은 모두 한방에서 자게 되었다. 겨우 하룻밤이었는데 선생은 다른 여성들, 김소연 시인, 윤희영 팀장, 그리고 나에게 몹시 미안해하였다. 정말 그럴 일은 아니었는데.

 



 

이런 여자가 좋더라


서로 눈치를 보다가 가장 연장자인 양선생이 먼저 욕실을 쓰기로 했다. 잠시 후 머리에 커다란 타월을 두른 양선생이 나왔다. 일본 온천에서나 입는 ‘유카타’처럼 소매가 넓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더 이상한 사람 같다. 선생이 하는 양을 왜 그렇게 유심히 봤는지 모르겠다. 이미 나는 선생에 대해 어떤 장난스런 호기심 같은 걸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선생이 이불을 펴고 반듯하게 누웠다. 그게 마치 차렷! 자세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쿡쿡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그래도 궁금한 건 역시 못 참겠어서 그 옆으로 살금살금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선생에게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왜 베개는 안 베고 주무세요? 선생이 말했다. 목에 주름 생겨서요.

어쩌면 바로 그 순간이었을까. 양선생한테 ‘인간적인’ 친밀감 같은 게 생긴 때가(선생이 지난해 육순이었으니 그때는 오십대 중반쯤 되었겠다). 나는 정말 단박에 선생이 좋아지고 말았다.


여성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런 타입의 여성들을 좋아한다. 변진섭 버전으로~: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단발머리가 잘 어울리는 여자, 짧은 치마가 잘 어울리는 여자, 다리가 예쁜 여자, 진주목걸이가 잘 어울리는 여자, 검은색이 잘 어울리는 여자, 포크와 나이프를 우아하게 사용하는 여자, 운동을 열심히 하는 여자, 책을 많이 읽는 여자,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 엽서를 자주 쓰는 여자, 운전을 잘하는 여자, 하이힐이 잘 어울리는 여자, 운동화가 잘 어울리는 여자, 웃는 게 매력적인 여자,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여자, ‘나이’를 무기로 삼지 않는 여자, 경청을 잘하는 여자, 밥을 잘 사주는 여자,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 여자, 너무 마르지 않은 여자, 목소리가 좋은 여자, 싫고 좋은 걸 분명하게 말하는 여자, 그리고 책을 만드는 여자.


그 여행 후, 일 년에 한두 번쯤 선생을 만나기도 했다. 작가와 편집인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서로 호감은 있어도 사적으로 친밀해졌거나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 건 아니다. 어느 땐 데면데면하게, 어느 자리에선 반갑게 만났다. 주로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가고 있었다. 건축가 P선생에게서 저녁을 먹자는 전화가 왔다. 늘 그렇듯 사진작가 강운구 선생이나 도서출판 까치 사장님이 나오겠거니 하고 갔다. 부정기적으로 밥을 먹는 모임이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양선생을 다시 만났다. 서로, 어머 여긴 어쩐 일로? 하는 눈빛을 일이초쯤 주고받다가 얼른 표정을 수습하곤 어머 반가워요, 악수를 나눴다. 그 멤버에서 한두 명 부정기적으로 새로 나오는 사람을 제외하곤, 그렇게 고정 멤버가 되었다. 그러니까 선생과 내가 그 멤버의 유일한 여성 멤버이며, 우리는 적어도 두서너 달에 한 번씩은 저녁 모임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문화적인 일


몇 년 전 《현대문학》이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게 된 적이 있었다. 내가 알기로 주간이자 사장인 양선생에게 힘들게 월간지 만들지 말고 이제 그만 포기하고 편하게 살아라, 라고 설득하는 사람도 선생 주변에 꽤 많았다. 《현대문학》은 1955년 1월에 ‘한국의 현대문학’을 건설하자는 것을 그 목표로 창간된 순수문학 월간지이다. 배출해낸 작가로는 그 이름만으로도 화려한 박재삼, 황동규, 마종기, 이승훈, 정현종, 이범선, 최일남, 박경리, 이문구, 김원일, 김윤식, 조정래 등의 작가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그 순수 문예 월간지가 폐간 위기를 맞은 것이다. 얼마 후 선생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작가들에게, 주변의 문학인, 문화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후원금을 모금한다는 간명하고 슬픈 편지였다. 그 편지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선생의 넓은 친화력 때문이었을까. 《현대문학》은 다시 만들어졌고 그때부터인가 표지나 디자인 같은 것들도 더 세련되고 근사해져 갔다. 디자인과 그림을 보는 눈, 잡지에 실릴 현대미술 작가를 선택하는 눈에 있어서는 선생을 따라갈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그때, 《현대문학》이 위기에 처했을 때 선생의 심정을 물어봤다.

‘새벽마다 산에 올랐어요. 너무나 막막해서, 그땐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거든. 그리고 기도했어요. 이 난관을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다른 건 몰라도 《현대문학》만큼은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한 나라에 문화라는 게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잖아요. 이런 문학잡지 같은 게 한두 개쯤은 꼭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여간 난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작가들 때문에라도 포기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도 선생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새벽 네 시쯤, 산에 오르곤 한다. 그러면서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 난관을 어떻게 해쳐 나갈 것인가, 하고. 잘 팔리지 않는 잡지를 만들지 않아도, 책을 만들지 않아도 어쩌면 선생은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현대문학》을 지탱하고 있는 건 ‘문화’에 대한 선생의 갈망, 욕구 때문일 거라고 나는 짐작해 본다. 한 나라의 문화란 정말이지 하룻밤 사이에 만들어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누군가는 아주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그 ‘문화적인 일들’을 위해 애를 써야 하니까.

 

 





사랑을 하지 않는 자들의 두 가지 변명

  

내가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어떤 이와 너무 친밀해지는 것도 있다. 나도 안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두려움인지. 하지만 난 너무 가까워서 느끼게 되는 고통(특히 상대가 이성일 때), 너무 가까워서 느끼게 되는 불충분한 기대 같은 것이 두렵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틈’을 잘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도 안다. 그러니 때때로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애인도 없고 친구가 없는 이유를, 다른 사람 탓을 해서는 안 되겠지? 예전처럼 단편소설을 일주일 동안 써내지 못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는데도 철이 들긴 아직 멀었나 보다. 아무려나 동성의 누군가와 새로 교제를 할 때도 나는 잔뜩 몸을 사린다. 상대방이 가까운 걸 무기삼아 너무 무람없이 아무 질문이나 해대는 것도 싫다. 내 방에 와서 자고 간다고 하는 것도 싫다. 책을 빌려 달라고 하는 것도 싫다. 내 가방을 마구 열어 보는 것도 싫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엄마는 짝 소리 나게 내 등짝을 후려치며 사람이 혼자 사는 줄 아냐! 라고 하신다. 맞는 말씀이다.

 


 

이제 좀 가까워졌다는 걸 핑계 삼아 양선생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11월이었고, 여름내 붙들고 있던 장편소설 『혀』가 나온 직후였다. 게다가 그날은 <색, 계>가 개봉한 날이었다. 선생과 나는 그 영화를 함께 관람한 후 작고 아담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사십대 중반쯤 선생이 사별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다시 사랑을 하지 않는 걸까? 왜 다시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걸까? 궁금했다. 누가 나에게 물어봤다면 단박에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을 그런 질문들을, 이번엔 내가 선생에게 하고 만 것이다. 선생의 부군을 L이라고 하자.

‘L이 출장에서 돌아올 때면 난 아침 일찍 일어나 꽃시장으로 달려갔어요. L이 좋아하는 꽃들을 사다가 온 집안에 꽃아 놓곤 남편을 기다렸죠. 그건 L역시 마찬가지였어요. 내가 여행이나 출장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랬죠. 우린 서로를 정말 사랑했어요. 이 세상에 단 두 사람만 존재하는 것처럼요. 일생 동안 받을 사랑을 L에게 다 받았고 내가 줄 수 있는 사랑도 L에게 다 주었어요. 그러니 어떻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겠어요. 난 정말로 행복한 사랑을 경험해 본 사람인데.’

선생의 눈빛이 촉촉해 보인다. 누가 그런 말 안 했나? 진정한 사랑이란 건 순수한 사람만이 해 볼 수 있는 생의 가장 큰 경험이라고. 어쩐지 그런 것 같다. 나는 순수하지 못한 사람 같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는 말이다. 나는 선생이 말한 그런 사랑을 해 보지도 못하고, 지금은 그런 사랑을 원하지도 않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러나 나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다. 가슴에 아직 흉터 같은 게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고, 그런 말을 태연하게 하고 다니기는 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사실일까.      

선생의 부군은 간단한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로 들어갔다. 그게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와인 잔을 들어 잔을 부딪친 뒤 한 모금씩 마셨다. 나이차도 한참 나는 어려운 선생과 둘이 마주앉아 갑자기 사랑 이야기라니. 이게 다 방금 보고 온 <색, 계> 때문인 것 같다.    



하여간, 숙녀를 만나다


또 지각이다. 연장자를 만날 때는 늦지 않으려고 더 고심하는데도 늘 이 모양이다. <라브리>, 한갓진 룸에 미리 앉아 있는 사람은 양선생과 까치 사장님, 그리고 곧 K가 오고, 이렇게 나까지 네 사람이 모두 모였다. 설 연휴가 시작되기 바로 전날이다. 나는 연장자들 앞에서도 붙임성 있게 굴거나 우스운 이야기를 해 자리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지는 못할망정 기껏 잠수를 끝내고 나왔더니 세상은 연휴가 시작되더라, 라는 썰렁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어떤 실수를 해도 이젠 그러려니 이해해줄 것 같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맛있는 음식과 와인이 놓여 있으니 말이다. 밖에서 먹는 밥이 가장 맛있게 느껴질 때는 역시 원고를 끝내 놓고 첫 외출을 했을 때다. 새로 쓴 원고, 어디에 발표하게 되느냐고 양선생이 묻는다. 이럴 땐 진짜 미안하다. 그 원고, 펑크만 안 냈더라면 《현대문학》 12월호에 실릴 원고였는데. 선생님 죄송해요, 라고 나는 속으로 사과한다. 한 가지 더 사과할 일이 있는데.

 



 

원고를 쓰기 전에, 구상이 잘 되지 않으면 나는 주로 이 세 가지 것들을 한다. 국립도서관에 가서 책 읽기, 무작정 걷기, 시장이나 백화점 쇼핑하기. 구상이 전혀 안 되면 이 세 가지 것들을 한꺼번에 할 때도 있다. 12월 말쯤이었다. 국립도서관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세 정거장만 가면, 우리집에서도 가까운 S백화점이 있다. 딱히 어떤 물건을 찾거나 구경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 복잡한 백화점 안에서도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걷다가 지치면 식당가에서 혼자 밥을 사먹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어슬렁어슬렁 S백화점을 걷고 있는데, 올라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낯익은 검은 단발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크, 나는 잽싸게 에스컬레이터를 지나갔다. 역시 양선생이다. 아들과 며느리로 보이는 젊은 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며 계속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반가웠는데, 왜 나는 나답지 않은 잽싼 몸놀림으로 자리를 피했을까. 아니, 그게 나다운 것 같다. 그래도 소심주의자답게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모른 척한 게 무척이나 마음에 걸린다. 정말로 미안한 일은 그 다음 다음 날 생겼다. 생일 선물로 양선생이 택배로 와인을 보내온 것이다. 그건 S백화점 포장지로 잘 싸여 있었다.

K까지, 네 사람이 모인 건 처음인 것 같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작가가 나올 것인가 못 나올 것인가, 그럼 어느 작가가 수상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클까? 나훈아 괴담은 어디까지 진실이고 허구일까? 문학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무엇일까? 궁서체가 왜 촌스럽게 느껴질까? 뭐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는 양선생에게 지난 일월 보스톤에 갔을 때, 하버드 북샵, 그리고 COOP라는 서점에서 내가 본, 거의 매대 전체에 전시돼 있다시피 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본 즐거움에 대해 말했다. 이건 말하지 않았다. 내가 그 책을 한 권 더 사왔다는 사실도. 그리고 지난번 한 대형문고에서 그 책 특별전을 했을 때 세 권이나 구입했다는 사실도. 똑같은 책을 왜? 라고 묻는다면,

나는 《현대문학》을 정말 오랫동안 읽고 싶은 사람 중 하나니까.   

K는 다시 회사로 들어가고 방향도 다른 세 사람이 함께 택시를 탔다. 정말 연휴가 시작되려는지 도심이 한적하다. 택시는 쌩쌩 한강다리를 건넌다. 문득 숙녀(淑女)라는 고전적인 단어가 생각난다. 숙녀: ①교양?예의?품격을 갖춘 점잖은 여자. ②상류사회의 여자. ↔신사. 딱 양선생이다. 

그런데, 다음에 양선생이 이런 말을 하면 어쩌나 싶다.

“나에 관한 글을 왜 썼어요, 하여간!”《문장 웹진/ 2008년 2월》


추천 콘텐츠

소년, 지구 종말의 날까지 분열하라

소년, 지구 종말의 날까지 분열하라 김지선 1 지구처럼 돌아가는 월세, 지구처럼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 지구처럼 막히는 싱크대, 곧 멸망할 작은 행성을 뒤로 하고 우주를 향해 눈꺼풀을 밟고 고래는 푸른 등을 돌린다 푸른등돌고래는 갈 곳 없는 포유류가 되어 강물에 몸을 담근다 위험한 가정에 등을 돌리지 못하는 고래 한 마리 브래지어에 너를 매단다 언젠가는 멸종하겠지만 고래는 그런 것이고 너는 흐를 것이다 ― 「고래를 잡는 아이를 위한 안내서」 중 세상은 결국 파국을 향해 간다. 당연하게 멸망은 예정되어 있고, 우리는 흐를 것이다. 정규와 비정규, 주류와 비주류, 일류와 삼류가 뚜렷하게 구분된 세상 속에서 혁명은 무력하고 광장은 추억이 되었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환상을 내면화하며 지겨운 시간을 견딘다. 종말을 향한 불안한 예감, 불길한 전조 속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란 지루하게 화석화되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뿐. 그밖에 선택이란 없어 보인다. 서효인 시의 화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무기력하다. 세계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체득한 자의 무미건조한 발성이 시집을 가득 채운다. 찢기고 구워져 마요네즈에 찍힌 오징어처럼 아스팔트에 구워져 바퀴에 깔리는 환경미화원의 최후(「목격자」), 구운 토스트가 된 채 이틀간 방치된 할망구의 죽음(「냄새나는 사람」)을 읊조리는 목소리는 연민조차 거세되어 냉소를 자아낸다. 냉소란 본래 자조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시에서 삼류 인생들이 사물로 환치되는 것은 자본의 부조리한 체제가 뼛속까지 내면화된 수동성에 대한 적절한 은유다. 그렇지만 서효인 시를 읽는 즐거움은 이런 날카로운 비판적 사회학을 발견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의 어떤 시들은 의외의 전개로 상황을 밀고 나가는 미성숙한 도발을 그려낸다. 시를 읽어 가다 번쩍 눈이 뜨이는 순간은 바로 그런 똘끼를 발견하게 됐을 때다. 그것은 지루한 시간을 이탈시키는 경쾌한 해방감이며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서효인의 시가 전하는 즐거움은 시집의 정교한 배열을 주시할 때 더욱 강렬해진다. 시집은 , , , 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에 따라 아이에서 성인으로 변화하는 시적 페르소나는 그의 시를 성장문학의 하나로 읽게 만든다. 상처의 시간을 딛고 견고해지며 어른으로 자라나는 통과의례는 성장문학이 거치는 당연한 수순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시선이 성장문학에 대한 여타의 방식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시에서 어설픈 미성숙의 시간이야말로 존재감이 최고조로 고양된 순간으로 격상된다. 2장의 시선을 확보한 뒤에 다시 읽는 1장의 반항적 소년기는 청년이 되어 버린 시적 자아가 취해야 할 행동 지침을 제시하지 않는가. 3장의 성인이 된 아이의 무기력을 거쳐, 4장 연작은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에게 남은 미성숙의 페르소나를 다시 한 번 이끌어낸다. 이런 서사적 배치는 강렬한 메시지를 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 우리가 감지하는 것 이상으로 서효인의 시는 불온한 전복의 수사학으로 무장된 건 아닐까? 막연한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그의 시에 천천히

  • wikisoft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 wikisoft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 wikisoft
  • 2010-05-28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