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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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월평] 작용과 반작용, 세상과 글쓰기
(조경란, 「학습의 生」, 『일요일의 철학』, 창비, 2013) 최근 저는 조경란 작가의 「학습의 生」이라는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은 시골의 한 소년과, 그곳에 새로 이사 온 한 여자 사이의 우정과 오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투포환 선수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자는 선생님이었던 적이 있습니다. 소년은 아마도 부모의 매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여자는 회복 불가능한 면역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소년도 여자도 고립되고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소년은 여자를 통해 투포환 선수를 꿈꾼 적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여자는 소년을 통해 잊고 있던 삶에 대한 의지를 떠올립니다. 우정이란 공감을 바탕으로 싹틉니다. 공감은 나와 너의 ‘공통적인’ 무엇이 접속하면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우정, 관계란 것이 늘 그러하듯, 거기에는 사소한 오해와 어긋남이 개입하기도 합니다. 소년과 여자의 우정도 그런 과정을 겪습니다.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 그 오해와 어긋남은 사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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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5월_별_에세이] 미래의 책
미래의 책 조경란 최근에 한 인터뷰 중에 기억나는 것이 있어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인터뷰 기사가 실릴 곳이 온라인 서점이어서 그런지 인터뷰어의 질문들 중엔 유독 ‘책’에 관련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 유년기, 청소년기, 문학청년 시절, 그리고 현재까지, 저에게 인상 깊은 책들이나 크게 영향을 끼친 책들에 관해 각각 이야기해달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청소년기까지야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지만 유년기 때는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지 얼른 떠올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유년기를 초등학생 시절로 간주하고는 그때 저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들에 관해 떠올려보았습니다. 지금 여러분들께서는 그 시절에 대해 상상해 보는 것이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그때는 집에 전화나 텔레비전 한 대만 있어도 부자로 인정받는 시절이었답니다. 지금과 같은 휴대 전화나 인터넷 같은 것들이 있을 리가 없었지요. 특별한 장난감도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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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9)<가족, 그 두 번째 이야기> 이탈꿈꾸던 이들, 화해위해 적극 나서다
이 소설의 주인공 ‘나’가 90년대 여성문학, 특히 조경란 소설의 주인공이었다고 말하면 지나칠까요? 암에 걸려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 아버지의 형상 역시 낯익습니다. 아니, “처자식을 거느렸으면 먹고사는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평생 신조로 간직한 아버지가 아파서 누워 있는 모습이나,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뽑기 장사’를 하다가 다람쥐가 달아나버려 하루 종일 우는 아버지의 모습 역시 90년대의 여성문학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자신의 평생을 바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는 가장의 사명감과 동시에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 소설이 보여주는 것처럼 어쩌면 우리들의 불행의 일면은 모두 가족 때문에 생긴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