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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름다운 목숨이다

  • 작성일 2007-11-27
  • 조회수 2,262

 

모두 아름다운 목숨이다




김해화




고마리는 마디풀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로 물가에 흔하게 난다.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을 수 있는 매우 향기로운 풀이다. 가을에 희거나 연한 붉은색 꽃을 피운다. 고마리는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나서 물 속의 유기질은 물론 색소까지도 정화시킨다고 한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마을에는 통시암이라고 하는 마을 공동우물이 있었다. 먹는 물은 물론 빨래며 목욕까지 그 우물에서 다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흘러나가는 생활 폐수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 물은 30m쯤 되는 좁은 도랑을 거쳐 마을 앞 들판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 도랑에 고마리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가끔 물길 청소를 한다고 도랑을 치우다 보면 도랑 가득 고마리 뿌리가 마치 커다란 하나의 수세미처럼 얽혀 있었다. 도랑물은 들판으로 나가기 전에 조그만 미나리꽝을 거치는데 미나리꽝 아래 도랑에는 1급수에서만 사는 조그만 송사리들이 무리를 지어 헤엄을 치고 다녔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좁은 도랑의 고마리며 미나리꽝들은 마을 우물에서 발생하는 오염된 물을 정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나와 꽃의 인연은 이 고마리로부터 비롯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친구들은 학생이 되었고,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과 나는 농사꾼이 되었다.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20리 떨어진 학교에 가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나서는 시각이면 우리는 지게에 바지게를 얹어 지거나 늘어진 꼴망태를 어깨에 메고 소에게 먹일 풀을 베러 들로 나섰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나락이 익기 전 초가을 농촌은 아직 어린 우리들에게 소 먹일 풀을 베는 일 말고는 별로 할 일이 없을 만큼 한가로웠다. 지금처럼 소에게 사료를 먹이는 것도 아니고 거의 들이나 산에서 풀을 베어 소를 먹이던 시절이어서 소 먹일 풀 한 짐이나 한 망태를 채우려면 한 나절 내내 온 들판이나 산골을 쏘다녀야 했다. 아침 일찍 나서서 이슬이 개이기 전부터 서두르면 그래도 좀 나은 편이어서 나는 이른 아침부터 들판으로 나서고는 했다. 논둑에 지게를 받쳐두고 풀을 베다 보면 코끝에 스며드는 고마리 향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그날 아침 이슬에 젖은 고마리꽃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희고 붉은 쌀알만 한 꽃, 몸 안이 들여다보일 듯 투명해 보이면서도 꽃빛 말고는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는 꽃, 나는 풀을 베던 낫을 놓고 그 꽃 가까이, 아주 가까이 눈을 가져가 한참을 그 꽃과 눈을 맞췄다. 그러다가 그 작은 꽃송이와 입을 맞추고 나 혼자서 부끄러워했다. 그날 나는 고마리가 지천인 들판에서 더 이상 부드러운 들풀을 베지 못하고 산골로 가서 억센 산풀로 바지게를 채워야 했다.

 


강 건너 양송이 공장이 들어섰다. 양송이버섯을 직접 키워서 통조림으로 가공해 수출을 하는 회사였다. 나는 보일러실 조수로 취직을 했다. 회사 오가는 길, 내가 다닌 초등학교 앞에 조그만 사진관이 있었다. 회사 오가면서 그 사진관을 드나들었다. 사진관 주인과 형님동생 하면서 사진관 일도 거들고 사진 일도 배웠다. 사진기를 빌려다 사진도 찍고 했는데 내가 주로 찍은 사진이 고마리꽃이었다. 그때 사진관에서 빌려 주는 사진기는 35mm 필름 한 판에 두 장이 찍히는 하프사이즈 자동카메라로 필름 넣고 그냥 셔터만 누르면 되는 것이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쌀알만한 고마리꽃을 꽃만큼 예쁘게 찍을 수가 없었다. 접사 기능이 따로 없는 카메라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날 내가 눈을 맞춘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찍어 보고 싶은 욕망은 자연스럽게 나를 카메라와 사진에 몰두하게 만들었다.

 


어느 사주쟁이가 나에게 역마살이 끼었다고 했다. 그 뒤로 나는 두 번 다시 사주를 보지 않았다. 사주팔자가 맞는 것인지 고향을 떠나 참 많은 곳을 떠돌았다. 전업사, 봉제인형 공장, 과자 공장, 조선소, 인쇄소, 양계장, 그러다가 고향에 돌아가 빚 얻어 농사짓는다고 설치다가 망해 먹고 공사장으로 흘러들어 지금까지 온 나라 공사장을 떠돌고 있으니, 역마살이 낀 사주팔자가 맞긴 맞는 모양이다. 1982년 공사장에 발을 들여 놓은 뒤로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우여곡절 끝에 주암댐 공사장 철근 일을 하게 되어 고향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14인 신인작품집 『시여 무기여』를 통해 등단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난 뒤였다. 댐이 완공되고 나면 물에 잠길 마을 사람들은 보상을 받아 이미 이곳저곳으로 다 떠나고 텅 빈 마을 폐허에 가을꽃들이 피어 미쳐 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사진기를 들고 공사장 일이 끝나면 대광리며 낙수리 같은 마을들을 찾아가 쑥부쟁이며 구절초 같은 그 꽃들을 사진에 담았다. 그러면서 나도 꽃들에게 미쳐 갔다.

 


흘러온 여느 다른 공사장에서처럼, 임금 인상, 근로 조건 개선 같은 이유로 몇 차례 파업을 주도하고 주동자로 몰려 댐 공사장에서 쫓겨나 1987년 겨울 창원의 아파트 공사장으로 옮겨 갔다. 가난한 살림 속에서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는 제대로 꽃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와 렌즈를 월부로 샀다.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창원에 있는 비음산으로, 일 없는 날은 첫차를 타고 모후산으로 꽃을 찾아 나섰다. 모후산에는 히어리가 있고 매미꽃이 있었다.

 


“진짜로 선녀같이 이뻤재. 아무리 항복하믄 살려 준다고 해도 안 나오고 결국은 굴 안에서 타 죽어 부렀어.”

“아따 징헌 놈들이 가랑이에따가 솔나무로 말뚝을 박아 죽여 가꼬 안 나뒀능가?”

“손꾸락으로 갈치기만 허믄 쳐 죽였어.”

여순사건 때 학살과 저항과 죽음이 끊이지 않았던 모후산이었다.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자랐던 여순사건, 그 여순의 핏자국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후산에는 잎에서도 꽃대에서도 상처가 나면 붉은 피를 흘리는 매미꽃이 지천이다. 그뿐인가, 봄이면 가장 맑은 불빛으로 꽃등불을 밝히는 히어리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도 모후산이다. 두 식물은 한국 특산종이다. 고마리꽃과의 눈맞춤에서 비롯되었던 꽃과 나의 인연은 한이 많은 남도의 산하에 피고 지는 모든 꽃들과 맺어져서 나뉠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고 꽃이 사람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도 꽃도 다 아름다운 목숨이다. 나는 가끔 사람에게서 꽃을 느끼고 꽃에게서 사람을 느끼기도 한다.《문장 웹진/200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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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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