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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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일당쟁이
일당쟁이 김해화 하루에 한 번씩 죽어 가기 꼭 꼭 날개를 접고 더러운 세상에 마침표를 찍어 가기 돌아보지 않고 고개 들지 않고 뼈 마디마디 맺힌 고달픔으로부터 불어오는 가을바람 스스로 온몸 마른 잎으로 날려 지는 해를 따라 어둠 속으로 다친 우리 목숨도 떨어져 가기 죽어 비로소 머리 들어 머리 들어 찬란한 해 오름을 기다려 날아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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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가을 풍경소리
가을 풍경소리 김해화 쇳가루 마시면서 스무 해 지났습니다 느을 가슴 뜨거워 쇳물 끓었으니 지금 내 목숨 절반은 쇳덩어리 당신을 향하여 남아 있는 반쪽 부드러운 목숨에 여러해살이풀을 심어 쇳덩어리 파먹으라고 갉아먹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스무 해쯤 더 지나면 속 갉아먹힌 쇳덩이에 희디흰 꽃 한 송이 피어나지 않겠습니까 낮은 언덕에 올라 당신이 내뱉는 숨결에도 가을에는 바람이 일겠지요 아니라고 하여도 바람 한 점 꽃을 흔드는 저녁 얇게 남은 목숨 꽃빛으로 부서지면서 꼭 저 풍경소리로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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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모두 아름다운 목숨이다
모두 아름다운 목숨이다 김해화 고마리는 마디풀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로 물가에 흔하게 난다.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을 수 있는 매우 향기로운 풀이다. 가을에 희거나 연한 붉은색 꽃을 피운다. 고마리는 수질 정화 능력이 뛰어나서 물 속의 유기질은 물론 색소까지도 정화시킨다고 한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마을에는 통시암이라고 하는 마을 공동우물이 있었다. 먹는 물은 물론 빨래며 목욕까지 그 우물에서 다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흘러나가는 생활 폐수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 물은 30m쯤 되는 좁은 도랑을 거쳐 마을 앞 들판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 도랑에 고마리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서 가끔 물길 청소를 한다고 도랑을 치우다 보면 도랑 가득 고마리 뿌리가 마치 커다란 하나의 수세미처럼 얽혀 있었다. 도랑물은 들판으로 나가기 전에 조그만 미나리꽝을 거치는데 미나리꽝 아래 도랑에는 1급수에서만 사는 조그만 송사리들이 무리를 지어 헤엄을 치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