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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탈식민주의 문학을 둘러싼 몇 가지 단상

  • 작성일 2007-11-01
  • 조회수 4,711

 

아프리카의 탈식민주의 문학을 둘러싼 몇 가지 단상



이석호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를 둘러싼 아프리카의 고민


아프리카의 관점에서 볼 때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대륙 내의 식민지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 용어가 보다 상용화되기 시작하는 시점은 정확히 말해 1956년과 1957년 아프리카의 수단 그리고 가나가 식민주의 세력과의 해방전쟁을 통해 순차적으로 독립을 획득하는 시기이다. 나이지리아 및 케냐 등을 비롯한 아프리카의 제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독립을 쟁취하는 시기인 1960년대에 들어서면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이미 일반화의 수준을 넘어 유행의 궤적을 밟게 된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에서 ‘포스트콜로니얼’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과거 식민 세력으로부터의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해방, 그것이다. 다시 말해, ‘탈식민화’가 ‘포스트콜로니얼’의 유일무이한 의미이자 존재 이유인 것이다. 과거 식민 지배자의 독선과 전횡 및 인종 차별을 답습하거나 격세유전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탈식민화가 가능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20세기 초반 유럽 전역에서 부활하는 히틀러와 나치의 망령들을 보면서 서구 휴머니즘의 위선과 결락을 고발했던 카리브해의 에이메 세제르, 그의 뒤를 이어 기왕의 휴머니즘으로는 종말을 향해 가는 인간과 세계를 구원할 수 없다고 믿고 ‘새로운 휴머니즘’과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강력히 권고했던 프란츠 파농, 적나라한 근대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계기를 아프리카인들의 ‘집단정신의 회복’ 및 ‘문화 투쟁’을 통해 확보하려 했던 탄자니아의 줄리어스 니예레레 및 기니 비사우의 아밀카르 카브랄에게 ‘포스트콜로니얼’은 ‘탈식민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포스트콜로니얼’이 단순한 의미의 ‘탈식민화’를 넘어서는 보다 복잡하고 다원적인 의미와 문맥 그리고 내포를 가진 용어로 둔갑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운동사적 차원이 보다 강조된 제3세계의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가 담론사적 차원이 좀더 강화되는 서구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면서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전통적으로 견지해 왔던 실천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아프리카 작가들의 고민


‘탈식민화’를 작업 전통의 주요한 과제로 삼아 왔던 거개의 아프리카 작가들의 고민은 ‘포스트콜로니얼’이라는 명확한 실천적 의제가 서구의 담론사로 편입하면서 현상한 바로 이 실천적 가치의 전복에서 기인한다. ‘네그리뛰드’를 ‘티그리뛰드’로 유비한 소잉카라든가, 역시 ‘네그리뛰드’를 ‘종말론적 선언’으로 격하한 에스키아 음파흐렐레 등속의 작가들은 서구적 의미의 ‘탈식민화’ 논의에 깊게 침윤되어 있는 작가들로 아프리카의 ‘탈식민화’ 작업이 결코 단선적이거나 녹록치 않은 작업임을 적시한다. ‘탈식민화’ 작업에 대한 절대 다수 아프리카 작가들의 고전적 태도 및 해석을 문제 삼는다 해서 소잉카나 음파흐렐레가 딱히 서구의 근대나 탈근대 논의를 추수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소잉카나 음파흐렐레가 아프리카의 ‘탈식민화’와 관련해 ‘네드리뛰드’로 대변되는 전통추수주의자들의 단견을 비판?견제하고 있긴 하지만, 자신들에게도 동일한 비판과 견제가 가해지고 있다는 점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도 아프리카의 ‘탈식민화’를 견인할 만한 이렇다 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작가들의 고민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지난 300~400여 년에 걸쳐 점철된 아프리카의 식민화는 아프리카인들로 하여금 유럽인들과 자기 자신들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전통에 대한 혐오와 근대성에 대한 갈망이 그것이다. 혹은 그 반대로 전통에 대한 막역한 애정과 근대성에 대한 무조건적 배격이 그것이다. 이 둘은 서로 교차하기도 하고 서로 길항하기도 한다. 1920년대 프랑스 파리에서 아프리카와 서인도 제도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일종의 아프리카판 문예부흥 운동인 ‘네그리뛰드’가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를 주도한 세네갈의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와 카리브해 마르띠니끄의 시인 에이메 세제르는 ‘검은 것은 아름답다’라는 선언을 프랑스식으로 감행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온갖 고초와 슬픔, 노역, 좌절, 절망, 수렁’ 등을 견뎌낸 흑인 전통의 유구함과 견결함을 초현실주의라는 프랑스식 모더니즘 형식을 통해 토해 내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가 배출한 천재적인 시인 라베아리벨로는 바로 이 양가적인 자기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고 만다.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이 양가적인 자기모순의 고통을 가장 극명하게 비추어 주는 거울은 바로 식민주의자들의 언어이다. ‘프로스페로와 칼리반 가설’이라고 명명되는 이 거울은 ‘내 어머니 시코락스가 만드신 이 섬에’ 와서 주인을 몰아내고 지배자 행세를 하려 드는 이방인 프로스페로를 극도로 혐오하는 원주민 칼리반이 그의 ‘마법을 배워 그를 몰아내고 마침내 이 섬을 되찾을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언어를 배워 그의 일가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데 있다.

기실 아프리카만큼 서구의 근대적 모순이 위악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곳도 드물다. 사미르 아민이 “아프리카의 비극은 근대의 모순에서 비롯한다”고 했던 말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노예제도, 식민주의, 인종차별 등이 모두 근대의 모순에서 비롯한 것이다. 따라서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근대 혹은 근대성과의 대결은 숙명적이다. 근대 및 근대성을 거부하는 작가이건 혹은 수용하는 작가이건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근대는 깊은 고민의 시작이자 끝이다. 따라서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 속에는 대체로 서구식 근대 혹은 근대성과의 일말의 거리감 혹은 긴장감이 공공연한 형태로 드러난다.         



아프리카 문학의 세계화      


“오늘날 아프리카 문학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근대적 모순과의 시적 긴장이 가장 강렬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타 지역의 문학들이 근대로 혹은 탈근대로 별다른 저항 없이 쉽게 이행하고 투항할 때에도 아프리카 문학은 도전의 정신을 끝내 간직하고 있었다.” 1950년대 말 남아공의 드럼 시대를 대표하던 루이스 응코시가 한 말이다. 그는 또한 덧붙이기를 “지난 4백여 년 동안 지속된 식민 지배가 역설적이게도 아프리카인들을 가장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인종으로 만들었다. 지구촌 방방곡곡으로 이산한 아프리카인들이 지구촌 방방곡곡의 언어로 분사해내는 피억압자의 세계관이 장차 가장 이상적인 ‘포스트콜로니얼’한 세계의 한 전범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문학의 세계성은 실로 이산의 광역화로 인한 자연 발생적인 다양성의 확보와 현재 인류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제3세계 시민들의 기억 속에 공히 각인되어 있는 공통의 경험틀, 즉 식민주의의 역사적 경험을 확보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유기적으로 획득된 바가 짙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리카 작가들에게 글을 쓰는 행위는, 굳이 아체베와 응구기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임과 동시에 글쓰기 주체의 주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 문학은 개인과 역사가 만나는 장을 자연스럽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아프리카의 근대 혹은 현대 문학이 지닌 이런 발생학적 배경을 ‘이데올로기적 생경함 혹은 전투성’이라는 이름으로 문제 삼는다. 아프리카, 나아가 제3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텍스트를 일련의 알레고리로 읽는 프레더릭 제임슨이나 “미적 전통의 상대적 취약함으로 인해 아프리카에서는 제임스 조이스나 사무엘 베케트 같은 작가가 출현하지 않을 것”이라는 섣부른 예단을 줄기차게 제출한 일련의 유럽의 미학사가들이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이러한 논객들을 향해 우간다의 시인 타반 로 리용은 말한다. “아프리카의 모든 문학과 문화는 서사시의 확장”이라고. 타반 로 리용의 이 잠언은 오늘날 문학이 지나치게 사소설화되고 인접 장르의 양식을 모방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내러티브를 상실해 결국 스스로 위기의 샘을 파고 있는 한국의 문학판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산자에서 세계의 시민으로


아프리카는 유라시아 다음으로 지구상에서 큰 대륙이다. 국가 수는 총 53(4)개국이고 인구 수는 약 9억에 이른다. 여기에 지중해 너머 유럽으로 건너간 아프리카인들과 이집트를 지나 아라비아 반도로, 인도양을 통해 인도, 파키스탄 등지의 서아시아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로 그리고 대서양 노예 무역을 통해 카리브해와 중남미는 물론 북미 등 아메리카 전 대륙으로 강제 이주된 아프리카인들의 수를 합하면 그 수는 물경 11억에 이른다.

현재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 중 그 누구보다도 조직적으로 그리고 대대적으로 이산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유태인이 아니다. 아프리카인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의 문화는 역설적으로 전 세계적이다. 오늘날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공부가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이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한 중요한 문화적 축선에 대한 자동적인 이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탈식민주의와 아프리카 문학


오늘날 아프리카 작가들은 세계 문학사의 일방적 독점과 전유를 통해 지구촌 전체를 포괄하는 ‘건강한 근대(성)’보다는 자기중심적이고 배타적인 ‘모순적 근대(성)’를 창궐케 한 구미 문학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월리 소잉카를 비롯해 치누아 아체베, 응구기 와 씨옹고, 제이크 음다, 루이스 응코시 등으로 대표되는 영어권 아프리카 작가들은 물론이고 나빌 파레스, 라쉬드 미무니, 하비브 텡구르 같은 불어권 아프리카 작가들 그리고 미아 꾸토와 작신뚜 등으로 대변되는 루소포네(포루투갈어권) 작가들이 동시대 서구의 ‘근대(성)’를 정면으로 심문하는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들은 비록 식민주의자들이 남기고 간 프로스페로의 언어로 창작을 하지만, 그 주인의 언어를 주리 틀고, 뒤섞고, 혼성 모방함으로써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세계관을 새로운 방식으로 길어내는 창발적인 문학적 풍경을 연출한다. 

세계적인 아프리카 문학평론가인 콜레 오모토소의 지적처럼 오늘날 아프리카 문학은 “주인이 만들어 놓은 감옥의 사슬을 뚫고 천변만화의 광경을 창조”해내는 형국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이 광경이 문학이라는 이름의 장을 넘어 마침내 전방위적으로 현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웨덴의 한림원은 2003년 노벨문학상의 수상자로 남아공의 네덜란드계 백인 출신 소설가인 존 쿳시를 선정했다. 이로써 남아공은 1992년 나딘 고디머가 첫 번째 노벨문학상을 거머쥔 이래 같은 상을 수상한 작가를 둘이나 배출한 문학 강국이 되었다. 아프리카는 이외에도 1986년 아프리카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나이지리아의 월리 쇼잉카와 1989년 이집트의 나깁 마후프스를 합해 지금까지 총 4명에 이르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 출신의 흑인 여성 작가로 몇 해 전 노벨문학상을 기 수상한 토니 모리슨과 카리브해 출신으로 오래 전 같은 상을 수상한 흑인 시인인 데렉 왈콧을 더하면 그 수는 무려 6명에 달한다. 

아프리카가 기실 문학적으로 이러한 눈부신 약진을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고학적이고 인류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아프리카인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아주 오래 전에 인류 최초로 굽은 허리를 곧추 세우고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살푸른 사하라의 풀밭을 넘어 아라비아의 대평원으로, 툰드라의 유럽으로, 혹한의 시베리아로, 베링 해와 알래스카 사이에 난 육로를 따라 아메리카 대륙으로 걸어 나가 인류 최초로 문명을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역사 시대 이래로도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고대 오리엔트 문명, 그리스와 로마 문명, 비잔틴 문명, 이슬람 문명, 인더스 문명, 신대륙 문명 등과 부침을 거듭하며 때로는 황금, 상아, 소금, 설탕이라는 이름으로, 또 때로는 지배자 혹은 노예의 신분으로, 또 때로는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줄기차게 신선한 피를 수혈해 온 대륙이 바로 아프리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계문명사에 혁혁한 공헌을 한 아프리카 문명이 오늘날 대단히 왜소한 초상을 가진 위악적인 문명으로 둔갑을 하게 된 데에는 서구의 근대가 끼친 해악이 적지 않다. 근대 이후 세계사의 패권을 장악하고 각기 근대국가로의 발돋움을 준비하던 서유럽은 종교적, 인종적, 언어적, 문화적으로 동일한 그리스?로마 문명을 각 국민국가의 전범으로 이상화하는 과정에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기타 문명을 의도적으로 타자화 하기에 이른다. 이 타자화의 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피해를 입은 대륙이 아프리카이다. 따라서 소위 탈식민주의 시대라 일컬어지는 오늘날 아프리카인들의 눈으로 세계사를 다시 읽고 또 다시 쓰는 일은 정언명령에 가깝다. 바로 이 점이 동시대 아프리카 작가들을 범세계적인 작가들로 만드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문장 웹진/200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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