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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의 시선, 타자의 시학

  • 작성일 2007-06-29
  • 조회수 4,177

 

노마드의 시선, 타자의 시학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서지영 


 


1.  백석에게서 노마드의 영혼을 보다


백석은 우리에게 민족, 전통, 고향, 그리고 동양의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 시인이다. 1936년 1월 20일 그가 발행한 시집 『사슴』은 평안도 북부 지역의 풍부한 방언을 바탕으로 관서 지방의 관습과 일상을 재구성하고, 전설?민담 등의 민속적 내러티브를 독특한 시적 스타일로 형상화함으로써 당대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김기림은 “『사슴』은 그 외관의 철저한 향토 취미에도 불구하고 주책없는 일련의 향토주의와는 명료하게 구별되는 모더니티를 품고 있는 것이다”고 하여 백석 시의 핵심을 간파하였다.1) ‘전통’(향토 취미)과 ‘모더니티’, 상호 이질적인 이 두 요소의 결합이 백석 시의 ‘유니크함’을 구성하는 비밀스러운 구조임을 김기림은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백석은 시에서 추구되는 고향의 토속적인 정취와 상반되는 외모와 이력을 가졌다.


미스터 白石의 프로필은 彫像과 같이 아름답다.

미스터 白石은 西班牙 사람도 같고 필립핀 사람도 같다.

미스터 白石도 필립핀 女子를 좋아하는 것 같다.

미스터 白石에게 西班牙 鬪牛의 옷을 입히면

꼭 어울릴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은 서양화가 정현웅이 《문장》(1939. 6)지에 백석의 프로필을 그리면서 남긴 메모의 일부이다. 조각상처럼 수려한 외모에 서유럽 또는 필리핀 사람을 연상시킨다는 백석의 이미지 속에는 토속적인 조선인 또는 민족주의자의 흔적보다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코스모폴리탄의 자태가 느껴진다. 이러한 백석의 이국적인 풍모에 대해서 김기림도 “연두빛 ‘더불브레스트’를 젖히고 한대(寒帶)의 바다의 물결을 연상시키는 검은 머리의 ‘웨이브’를 휘날리면서 광화문통 네거리를 건너가는 한 청년의 풍채는 나로 하여금 때때로 그 주위를 ‘몽?파르나스’로 환각시킨다”고 기술하였다. 민족의 시인 백석은 외적으로 프랑스 파리에서 온 예술가의 형상을 한 채 근대 문명의 감각을 즐긴 경성 거리의 모던보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국적 몽상가의 눈빛을 가졌던 백석은 그의 빛나던 청춘 시기에 사회?문화의 ‘중심’에서 머물지 않고 ‘변방’을 떠돌았던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해방 전까지의 그의 궤적을 살펴보면, 1912년 평북 정주에서 출생하여 오산학교를 졸업한 후 18세에 동경의 청산학원으로 영문학을 공부하러 떠나면서 당대 근대 문화의 최전방이었던 제국의 메트로폴리스로 진입하게 된다. 4년 후인 1934년에 귀국하여 조선일보사에 취직하여 《여성》, 《조광》잡지의 편집 기자로 일하면서 백석의 모던보이로서의 삶은 정점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중심부에서의 삶은 고작 2년에 그친다. 1936년에 시집 『사슴』을 출간한 후, 백석은 함흥 영생고보 교사로 부임하면서 훌쩍 서울을 떠난다. 1938년에 서울로 잠시 올라오지만 1939년에 다시 만주 신경으로 떠나, 이후 해방 때까지 백석은 만주에서 머무른다. 시인으로서, 기자로서의 주목받는 삶을 뒤로 하고, 갑자기 함흥으로 그리고 만주로 떠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그의 전기적 자료를 추적해 보면, 1936년 함흥 시절에서 1939년 만주 신경으로 떠날 때까지 백석의 삶은 김자야라는 여성과의 로맨스로 채워졌던 시기이다.2) 당시 권번 기생이었던 김자야와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결실을 맺기 힘든 것이었으며, 백석의 만주 행은 사랑의 좌절로 인한 일시적 도피였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백석의 시편들은 이러한 연애 사건을 넘어서 원천적으로 여행자의 노래들에 다름 아니다. 시집 『사슴』은 고향 정주에서의 유년의 기억을 찾아 과거로 떠난 마음의 여행의 기록이다. 그리고 그의 많은 시편들은 서울을 떠나 통영(남해)으로, 함흥으로, 그리고 만주로 떠돌았던 백석의 발길을 담고 있다.

또한, 젊은 시절 동경에서 서구 문학을 접하고 근대 문물의 정점을 체득한 모던보이였지만, 그의 시 대부분은 ‘도시’가 아닌 ‘시골’,  ‘중심’이 아닌 ‘주변’의 공간을 노래하고 있다. 함흥의 석양과 시골 장터를 사랑하고, 북관의 가재미와 당나귀를 사랑하고, 경남 통영의 해안가 객주집의 이름 모를 처녀를 그리워했던 백석의 시에서 우리는 노마드의 영혼을 본다. 결코 머무를 수 없었던, 그리고 주변으로 떠돌았던 백석의 궤적은 과연 청춘기의 혼란과 격정을 참을 수 없었던 시인의 일시적 방랑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떠남 속에는 어떤 개인적 또는 시대적 운명이 교차하고 있었던 것일까?     



2. 연애시 너머의 또 다른 진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아름다운 연애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1938년 3월 《여성》에 발표된 이 시는 백석이 함흥 영생고보에 재직하던 시절, 김자야와의 사랑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성의 조선 권번 출신으로 1936년 당시 함흥 권번에 소속되어 있던 기생 김자야(예명, 김진향)의 회고록에 의하면3) 화류계의 기생이라는 처지로 인해 백석과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 없었던 상황에 절망한 김자야는 빈번히 백석의 곁을 떠났는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그러한 이별의 와중에 지어진 시로 파악된다.4)

위 시는 눈 내리는 함흥의 겨울, 고립된 공간에서 쓸쓸히 소주를 마시며 사랑하는 여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적 화자의 애틋한 심정을 담고 있다. 나타샤와의 진실된 사랑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것에 절망하여 먼 산골로 사랑의 도피를 꿈꾸는 내용을 노래하는 위 시 속에는, 시인이자 교사로서 당대 사회의 존경과 선망을 받는 위치에 있었던 백석과 일급의 전통 가무 전수자였지만 권번 기생으로서 신분적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던 김진향의 안타까운 사랑의 흔적이 발견된다. 그런데 위 시에서 보다 세밀하게 주목할 바는 연시(戀詩)의 틀 이면에 시적 화자가 대상과 관계 맺는 양상과 세계를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이다.

먼저 위 시에서 시적 화자는 인접한 사물이나 대상(동물, 자연)에 대해 친밀한 관계망을 형성한다. 창밖에 푹푹 내리는 눈은 자아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그의 고독을 배가시키는 냉혹한 자연이 아니라, 오히려 시적 화자를 쓸쓸함으로부터 지켜주고 나아가 내면으로부터 사랑의 열정을 일깨우는 매개물이다. ‘당나귀’ 역시 백석의 시와 수필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로서 시적  화자의 ‘alter-ago’(또 다른 나)로 기능한다. 유난히 당나귀를 사랑했던 백석은 수필, 「가재미, 나귀」에서 “이 골목을 나는 나귀를 타고 일없이 왔다 갔다 하고 싶다. 그 처량한 당나귀가 좋아서 좀 더 이놈을 구해보고 있다”5)라고 하였다. 할 일 없이 배회하는 ‘처량한 당나귀’는 대상을 소유하거나 파괴하지 않은 채 풍경 자체를 관조하고 그 풍경의 일부가 되고자 했던 백석의 분신과 같은 존재이다. 4연에서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에서 ‘흰 당나귀’는 두 연인을 그들만의 은신처로 태워주는 보조자일 뿐 아니라, 시적 화자가 추구하고 있는 사랑의 진정한 이해자이다.

흰색의 색깔 상징을 가진 ‘흰 눈’과 ‘흰 당나귀’는 시적 화자의 순결한 내면을 상징하는 객관적 등가물이면서, 나와 나타샤의 사랑의 순수함을 증명하고 이를 축복하는 매개물이다. 또한, 시적 화자가 ‘소주’를 마시는 행위는 스스로를 좌절의 상태로 몰아가고 자아의 고립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추위와 쓸쓸함 나아가 사랑의 균열을 이기고자 하는 열망과 연인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이렇게 화자는 현실적으로 사랑의 위기에 처해 있지만, 사물과 인간에 대한 순결한 애정과 세계에 대한 개방으로 고립의 상태를 넘어선다.

이러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자아와 대상 간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하는 환유적 문체의 특징을 보여준다. 환유적 문체란 시적 언어의 조합이 자아와 대상, 또는 대상과 대상 간의 인접적 원리(공간적 인접성, 시간적 인접성, 의미론적 인접성)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이다.6)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시적 화자와 공간적으로 인접해 있는 대상인 ‘눈’과 ‘당나귀’, ‘소주’는 ‘나’와 분리된 객체가 아니라 자아와 긴밀히 교응하는 관계성 속에 있다. ‘나타샤’ 역시 ‘나’와는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음에도 시인의 사랑에 대한 열망 또는 확신(의미론적 인접성)에 의해 둘 사이의 존재론적 거리감은 해소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나타샤’에 대해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의 믿음을 잃지 않는 시적 화자는 3연의 (나타샤가)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라는 상상을 통해 현재의 상실감을 극복한다. 이렇게 대상과의 거리를 무화시키는 시적 화자의 세계에 대한 애정과 믿음 속에서 인간(나)/자연(눈), 인간(나)/동물(당나귀), 자아(나)/타자(나타샤), 생물(나)/무생물(소주) 사이의 범주적 간극은 무화된다. 은유가 사물과 타자를 자아와 동일시하면서 대상의 속성을 제거하고 자아 속으로 환원시키는 자아 중심적 인식론의 경향을 띤다면, 환유는 자아에 인접해 있는 대상들을 있는 그대로 존재케 하면서 대상과의 존재론적 거리감을 극복하고 더불어 공존하는 관계지향적 인식론과 연계된다. 백석은 비유의 힘을 통해 자아와 세계의 유사성을 극대화하기보다는, 이질적인 사물들과의 인접적인 관계 속에서 인식 주체와 대상 간의 간극을 넘어서고, 대상 자체가 가지는 내밀한 존재성을 발견해내는 시인이다.

눈이 쌓이는 밤에 나타샤와 당나귀를 타고 깊은 산골로 들어가 마가리에 살자라는 진술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시인의 낭만적 전망을 보여준다. 여기서 ‘마가리’는 북한말로 오두막을 뜻하는데, 막처럼 비바람 정도만 막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꾸린 집을 의미한다. 또한, 3연에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구절 속에는 현실적 장애, 세상의 현세적 가치와 맞서서 자신의 사랑을 선택하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와 더불어, 자아를 변형시키고 균열을 가하는 외부의 힘으로부터 스스로의 내밀한 목소리와 시선을 지키고자 하는 존재론적 저항이 자리하고 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사랑의 번민과 고통을 이겨내는 백석의 젊은 날의 풍경을 담고 있는 연애시이면서, 산골 ‘마가리’(오두막)가 상징하는 바, 자아를 훼손시키지 않고 대상?타자와의 조화로운 관계성을 유지하는 이상적 시공간에 대한 백석의 희구를 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중심을 버리고 변방으로 떠돌았던 그의 여행이 이르고자 한 궁극적 목적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타자의 시학―근대의 변방을 떠돌다


백석 시의 크로노토프(시공간)는 ‘근대’와 ‘중심’의 논리를 비켜선 자리에 있다. 그의 시의 주된 배경과 대상은 ‘근대’의 바깥인 민속(전통)의 세계였으며 ‘근대’의 주변인 통영, 함흥, 만주 등의 공간이었다. 이러한 근대의 변방을 배회한 백석의 시선은 ‘나’ 옆에 존재하는 ‘대상’(타자), 그리고 눈에 띄지 않은 채 버려지거나 사라져가는 ‘주변’적인 존재에 먼저 닿아 있다. 남해 연안의 창원, 통영, 고성, 삼천포 등을 여행하면서 쓴 ‘南行詩抄’ 연작들이나 함흥 시절에 쓴 ‘咸州 詩抄’ 연작들, 관서지방을 여행하면서 쓴 ‘西行詩抄’ 연작 등, 그의 지방색 가득한 시편들은 이러한 백석의 타자의 시학을 관통하고 있다.     

      

강이 넓으니 다리가 길어 만세교인데 난간을 기대이면 함흥벌 변두리가 감감쇠리하여 태고같이 아득하고 장진산골 날여멕이 바람이 강물을 스쳐와 회이한 선미(仙味)가 구름 위에 떴구나 하고 생각게 하는데 낮보다도 낮이 기울고 개밥바래기 별이 떠서부터 모작별이 넘어가는 밤 동안 그 위를 지중지중 거니는 것은 함흥사람이 서울사람의 경복궁과 바꾸지 않을 것인 것이다. (「무지개 뻗치듯 만세교」중)7).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서울이라는 공간이 절대적 위계를 형성하기 시작한 식민지 당대에 백석은 함흥의 변두리, 만세교 다리를 한가로이 거니는 체험을 서울의 경복궁과 바꾸지 않겠다고 단언하였다. 이렇게 백석은 식민지 ‘근대’의 서구 지향성과 ‘중심’ 지향성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드문 시인 중의 하나이다. 임화는 「문학상의 지방주의 문제」(《조광》, 1936. 10)에서 백석의 시세계를 “막 소멸하려고 하는 과거적인 모든 것에 대한 끝없는 애수”로 정의하면서 “전조선적 생활의 보편성”을 상실한 유해한 지방주의적 경향에 사로잡혀 있다고 평가하였다. 오장환 역시 「백석론」(《풍림》, 1937. 4)에서 백석을 “시를 장난(즉 향락)하는 한 모-던 청년”으로 폄하하고 그의 시의 “형식의 난잡”과 “인식의 천박”을 비판하였다. 백석 시에서 보편성을 결여한 ‘지방주의’의 한계를 발견한 임화나, 백석 시의 형식적 기교의 가벼움과 인식의 피상성을 지적한 오장환의 견해는 사회주의적 근대라는 ‘보편’을 통해 새로운 ‘중심’을 건설하고자 했던 근대주의자들의 전형적 시선을 담고 있다. 오장환이 “백씨와 나는 근본적으로 상통되지 않은지는 모르나”라고 고백했듯이, 임화와 오장환이 추구했던 ‘근대’와 ‘중심’ 지향의 인식론은 백석이 추구했던 타자와 주변의 시학과 원천적으로 차별화됨을 확인할 수 있다.

‘모더니즘’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그 어떤 이념적 층위의 근대도 부르짖지 않았지만, 타자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주의적 미래에 대한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던 백석은 해방을 기점으로 하여 이북에 정착한다. 이때부터 그의 노마드적 행적은 중단되고, 만주에서 신의주를 거쳐 고향 정주에 도착한 백석은 정착민의 삶을 시작한다. 북한 문단에서 백석은 1950년대까지 활동의 흔적을 보이지만, 1960년대 이후 시인으로서 그의 자취는 공식적인 영역에서 사라진다.8)


시인은 슬픈 사람입니다. 세상의 온갖 슬프지 않은 것에 슬퍼할 줄 아는 혼입니다. ‘외로운 것을 즐기는’ 마음도, 세상 더러운 속중을 보고 ‘친구여’하고 부르는 것도, ‘태양을 등진 거리를 다 떨어진 병정 구두를 끌고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는’ 마음도 다 슬픈 정신입니다. 이렇게 진실로 슬픈 정신에게야 속된 세상에 그득찬 근심과 수고가 그 무엇이겠습니까. 시인은 진실로 슬프고 근심스럽고 괴로운 탓에 이 가운데서 즐거움이 그 마음을 왕래하는 것입니다.(「슬픔과 진실-여수 박팔양 씨 시초 독후감」중)9)


진정한 시인이 되기 위해 ‘슬픔’의 길을 떠났던 백석이 북한에서 정주(定住)의 삶을 선택한 이후, 그의 삶의 궤적이 순탄치 않았음은 현재 확인된 자료를 통해서도 일정 정도 짐작 가능하다. 백석의 떠남은 궁극적으로 자아와 타자 또는 자아와 세계가 조화롭게 관계 맺는 이상적 크로노토프를 지향한 것이었다. 백석의 시는 근대의 이성 중심적 폭력이나 제국주의의 정치적 횡포 등으로 야기된 인간 심성의 변형과 훼손을 거부하고 ‘중심’의 논리가 내포하는 권력 지향적 욕망을 비켜서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북한 체제 속에 정착한 이후 ‘높고 거룩하고 슬픈 정신’을 찾아 떠난 백석의 시적 여정은 미완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를 관통하는 노마드적 시선과 타자의 시학은 ‘근대’라는 역사적 운명에 포획되지 않은 채 시적 정신의 기원을 찾아 떠났던 순례의 기록이라는 면에서 동시대 시 연구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문장 웹진/ 2007년 7월》

    


※후주

1) 김기림, 「『사슴』을 안고-백석 시집 독후감」, 조선일보 1936. 1. 29.

2) 백석과 김자야의 사랑에 대한 기록은 김자야가 직접 남긴「내 사랑 백석」(문학동네, 1995)을 주된 자료로 참고하였다.

3) 김자야, 「내 사랑 백석」, 문학동네, 1995. 98면.

김진향은 1930년대 조선 권번에서 당대 조선 여악(女樂)의 전수자였던 하규일을 통해 궁중 가무를 배운 일급 기생이었다. ‘자야’는 백석이 지어준 김진향의 아호로서, 당시(唐詩) 선집 가운데 이태백이 지은 「자야오가」에서 기원한다.

4) 이 시에서 나타샤가 누구인지를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김자야의 회고록에 의하면 이는 김자야 자신을 지칭하며, 톨스토이의 소설『전쟁과 평화』의 여주인공 나타샤에서 따온 것으로 기술되고 있다. 위 책에는 김자야가 백석과 함께 1930년대 단성사에서 상영된 영화 〈전쟁과 평화〉를 보면서 여주인공 나타샤의 매혹적 외모에 당혹감을 느낀 일화도 소개되어 있다.(김자야, 앞의 책, 123면)

5) 『백석전집』김재용 편, 실천문학사, 2003, 156~157면.

6) 로만 야콥슨에 의하면, 인접 구조에 기반 한 환유적 문체는 산문적 텍스트를 구성하는 특징인데, 여기에는 시간적 인접성(시적 진술이 시간의 선형적 추이에 기반을 두는 것), 공간적 인접성(특정한 대상을 중심축으로 두면서 그것에 인접하는 대상으로 이동하며 묘사가 이루어지는 것), 의미론적 인접성(대상에 대한 진술이 시인의 인과적 사유에 의해 기반하여 전개되는 것)의 요소가 있다.(로만 야콥슨, 「언어학과 시학」,『문학 속의 언어학』, 신문수 역, 문학과지성사, 111~112면)

7) 『백석전집』, 158면.

8) 김재용에 의하면, 북한 체제 속에서 백석은 1950년대까지 번역과 아동문학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1958년에 당으로부터 부르주아적 잔재에 대한 사상 비판을 받으면서 활동이 위축되고, 1962년 이후에는 북한 문화계 전반의 정치적 경직화 속에 일체의 창작활동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된다.(김재용, 「근대인의 고향 상실과 유토피아의 염원」, 앞의 책, 529~549면)  

9) 『백석전집』, 481~48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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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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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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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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