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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조히스트다

  • 작성일 2006-12-05
  • 조회수 4,830

 

[조경란이 만난 사람 4] 시마다 마사히코



나는 마조히스트다




도쿄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다고 해서 뭔가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새로 밥을 지어 동생과 조카들과 점심을 먹곤 씩씩하게 현관문을 탁 닫고 나온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그때부터 저녁까지는 고스란히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런던의 지하철만큼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도쿄 지하철에 이젠 제법 익숙해져 결혼하여 그곳에 살고 있는 동생의 도움 없이도 이리 저리 혼자 갈아타며 나는 우에노도 가고 긴자도 가고 괴상한 차림을 한 젊은이들로 붐비는 밤의 신주쿠, 하라주쿠도 무턱대고 간다. 태어나서 지금껏 살고 있는 봉천동에서나 하릴없이 일주일에도 두 서너 번씩 나가곤 하는 광화문에서처럼, 그리고 다른 어느 낯선 도시에서처럼 정처 없이 걷는다. 그러나 여느 때보단 빠르게 걷는다. 너무 느리게 걸으면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찾고 싶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걸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왜 나는 집을 떠나서는 단 한 줄도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어. 그런 생각에 빠지면 너무나 주눅이 들어서 그만 생각하기로 한다. 낯선 도시에 와서 지나치게 나 자신에 관한 생각에 몰입하면 주변의 것들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고개를 똑바로 세우고 걸음을 재촉한다. 도쿄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


마사히코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아이오와에서 국제문예창작 프로그램에 함께 참가하다가 헤어진 후 받은 첫 번째 편지니 거의 십개월만에 온 소식이었다. 편지는 짧고 간략했다. 나는 그게 마사히코답다고 느낀다. 마사히코다운 게 뭐냐고 묻는다면 특별하게 요목조목 설명할 순 없지만 말이다. 오늘이나 내일 저녁 같이 먹을 수 있니? 나 지금 서울에 있거든. 나는 잠깐 이마를 찡그리고 고민에 빠진 척한다. 그리고 이렇게 답장을 쓴다.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오늘이나 내일은 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나는 지금 도쿄에 있거든. 며칠 후 파친코 취재를 마친 그가 다시 도쿄로 돌아왔고 그가 내 휴대전화―내 일본인 제부가 방향감각도 없으면서 복잡한 도쿄 시내를 무시로 쏘다니는 나를 위해 임시로 마련해준―로 전화를 걸었던 오후에 나는 롯뽄기에 새로 생긴 롯뽄기힐스 52층 ‘모리 뮤지엄’에서 르누아르가 그린 「선상 파티의 오찬」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너 어디냐? 롯뽄기에 있어. 너답다, 그는 킥킥 웃었다. 그래 나는 도시가 좋아. 나는 거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싫다. 내일 만날까? 그래. 어디서? 여기서. 싫다, 우리 학교로 와라. 싫다, 여기 롯뽄기힐스에서 만나자. 어휴!


2004년 8월 29일. 그를 처음 만난 날짜를 기억한다. 그는 다른 작가들보다 늦게 아이오와에 도착했고 처음 만나자마자 우리는 8월 한여름의 무더위를 무릅쓰고 무슨 요량인지 ‘Red Bird’라는 산을 올라야 했으니까 말이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삼십칠 명의 작가들이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살았던 ‘아이오와 호텔’ 프런트에 내려갔더니 웬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입은, 키 작은 동양 남자가 무리에서 멀찌감치 뒤떨어져선 멀뚱멀뚱 서 있었다. 한눈에도 그가 마사히코라는 것을 알았다. 상대를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안면도 없이 먼저 아는 척하는 것은 나로서는 예나지금이나 꽤나 멋쩍은 일이다. 서로 다른 데 서서 눈을 피하다가 불시에 잘못 마주쳤다. 얼떨결에 거의 동시에 너 한국에서 왔지? 너는 마사히코가 틀림없지? 하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세상에! 문청(文靑)이었던 시절부터 그의 책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어왔지만 그가 그토록 수줍고 숫기도 없을 줄은 정말 몰랐다. 나, 너희 나라를 좋아해. 앞으로 잘 지내자. 악수를 청하고 싶은 듯, 손을 내밀듯 말듯 망설이면서 눈을 내리 깐 채 그가 말했다.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고 나도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앞으로 잘 지내자.     


비가 쏟아지다가 반짝 해가 나던 날, 롯본기힐스의 커다란 거미 조각상 밑에서 마사히코를 만났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 사람이 먹는 것, 입는 것, 그 사람의 친구, 읽는 것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것을 안다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입는 것에 관해서는, 그것이 마사히코라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언제나 드는 생각은 뭐랄까, 어이쿠! 정도랄까. 거미 조각상 주변을 서성거리는 그 많은 재패니즈와 관광객들 속에서 그는 아무리 찾지 않을래야 찾지 않을 수가 없는, 새파란 반소매 티셔츠와 군데군데 찢어진 힙합 청바지, 셔츠에 맞춰 신은 듯한 역시 새파란 스니커즈, 그리고 아이오와에서도 그는 모르게 우리들끼리 몰래 놀려대곤 했던, 그 유명한 ‘손가방’을 든 채 눈에 띄게 서 있었다. 서로 이쪽과 저쪽에서 뚜벅뚜벅 걸어 우리는 만났다. 그러고는 맨 처음 하는 말. 야, 이 옷 어떠냐? 잘 어울리지? 나는 웃고 싶은 걸 역시 꾹 참곤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다 그저께 명동에서 사온 거다. 우리는 지상으로 내려가는 야외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뭐 하러 온 거니? ……그냥, 잠시 머물러. 거짓말인 것 같은데? 하는 표정으로 그가 처음으로 빤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새로 쓰고 싶은 소설의 무대가 서울과 도쿄였으면 해서, 그래서 도쿄를 한 번 더 샅샅이 둘러보러왔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구에게라도 그 말을 한번 하고나면 꼭 지켜야 할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아무에게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소설에 대한 약속은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고 있으니까. 어디로 갈 건데? 롯뽄기에서 시부야 쪽으로 난 언덕길을 이런 속도로 걷기에는 조금 숨차다고 생각하며 나는 키는 작아도 걸음은 누구보다 빨리 걷는 마사히코에게 물었다. 나한테 맡겨. 그가 으쓱거리며 말했다.


아이오와에서 보낸 두 달은 예상했던 것보다 스케줄이 빡빡했다. 어떤 것은 너무 벅찼으며 어떤 것은 즐거운 마음으로, 또 어떤 것은 의무감 같은 걸로 해내야 하는 일들도 꽤 있었다. 그 중 낭독회가 가장 즐거웠고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마 그건 거기 모인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낭독회가 끝나면 친하게 지내는 동료 작가들끼리 우르르 몰려 다운타운의 펍으로 맥주를 마시러 나가곤 했으니까. 첫 번째 낭독회는 이번 달 《문장 웹진》에 「슬픔」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 아르헨티나에서 온 젊은 작가 빅토리아가 했다. 그 다음 주는 마사히코 차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마사히코는 한 달간만 머무르고는 학기가 시작되는 9월 말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짧게 머물다 가는 것도 그랬지만 그는 우리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 있다는 것, 우스갯소리를 잘 하고 술을 잘 산다는 것, 러시아어와 이탈리어를 유창하게 한다는 것 등등의 이유로 동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마사히코의 낭독회가 끝나고 모두 펍으로 몰려들갔다. 낭독회 때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모이는 것 같았다. 안 되겠다 싶었는지 마사히코와 그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훗날 빅토리아의 애인이 된 오만에서 온 작가 아심, 이렇게 둘이 뭐라뭐라 서로 귓속말을 했다. 장소를 옮기자, 해놓곤 교묘하게 그 넓지도 않은 아이오와 다운타운의 골목을 돌아돌아 다른 작가들을 따돌렸다. 그렇게 모인 사람이 빅토리아, 아심, 칠레에서 온 시인 쿠르트, 그리고 눈치도 없이 혼자 내 방에 돌아갔다 다시 불려나온 나. 그렇게 다섯이서 맥주를 박스째 사들곤 마사히코의 방으로 갔다. 그 다섯 명의 작가들은 결국 마사히코가 떠날 때까지 거의 매일 저녁마다 모여 저녁을 함께 먹거나 맥주를 마시곤 했다. 때로는 시시한 농담과 잡담을, 때로는 서로 얼굴을 붉혀가며 역사와 철학과 전쟁과 그리고 불교에 대해 진지하고 골치 아픈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또 때로는 대체 너의 가방에 든 것이 무엇이냐? 하며 너무도 궁금한 나머지 우리들이 마사히코의 가방을 열어보기도 했고 대체 네가 매일 밤 보는 게 뭐냐? 하며 그의 컴퓨터를 켜보곤 자지러지게 놀라기도 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도무지 참지를 못하는 아심이 우리를 대신해 그의 가방이나 컴퓨터를 아랑곳없이 열어봐도 마사히코는 한 쪽에 비켜서선 연신 킬킬거리고 있기 일쑤였다. 내내 이토록 뜨거운 날씨가 지속될 것만 같다가 어느 날 비 한 번 내리자 갑자기 가을이 시작되었다. 왈패들처럼 몰려다녔던 한 달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렸고, 이제 이틀 후 마사히코가 떠난다. 부부 작가라 가장 넓은 방을 쓰고 있던 러시아 작가 맥심과 나탈리아가 그 방에서 작별파티를 한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롯뽄기힐스를 빠져나와 우리가 맨 처음 간 곳은 일본에서는 흔한, 앉을 자리도 없이 그냥 선 채로 콩이나 새끼손가락만한 생선을 구운 간단한 안주로 맥주를 마시는 스탠딩 주점이었다. 여기가 첫 번째야. 그는 말했다. 그의 취미 중 하나가 술집 순례하기라는 건 아이오와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아마 서울, 특히 명동과 종로에 있는 술집을 그는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려나 한여름 우기의 오후에 일본식으로 서로 첨잔을 해주면서 천천히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해봐. 그가 호기롭게 휴대전화를 꺼내들고 말했다. 야요이 쿠사마. 나는 단박에 대꾸했다. 임파서블. 그럼, 나라 요시모토. 임파서블. 기타노 다케시. 아마 저 건너편 술집에 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탁 소리나게 전화를 접어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빈 속에 천천히 맥주를 흘려넣듯 마시며 그렇게 옮겨가기 시작한 네 번째 술집에서는 서로 적당히 취기가 올라 있었다. 아까부터 마음에 걸려 있던 걸 나는 이쯤에서는 한번 물어봐도 좋겠지, 싶었다. 일 년 만에 보는 그는, 어딘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다른 때는 지나치게 상냥하고 친절하고 양보심도 많은 것처럼 보였던 그였지만 적어도 문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소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은 야생동물처럼 즉각적으로 드러내곤 했던 그 누구보다 형형히 빛났던 눈빛과 우렁우렁 울렸던 목소리, 자신감, 뭐 이런 것들을 어디 자신만 아는 장소에다 잠깐 다 버려두고 온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새 책을 냈다는 데도 그는 자신의 문학에 대해, 아니 미래의 ‘소설’에 대해 자조적이며 시니컬했다. 어쩌면 사실 그가 늘 그런 태도였을지 모른다. 그걸 나만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건 어쩐지 마사히코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뭐라고 허풍 좀 떨어봐. 아이 씨, 술 마실 맛 안 나잖아. 나는 투덜거렸다. 문득 우리가 아이오와에서 함께 보냈던 날 중, 어느 하루가 떠올랐다. 우리는 다운타운의 허름한 중국식당에서 볶음 국수와 닭고기 튀김을 시켜놓고 깨작거리고 있었다. 살던 곳을 떠나서, 모국어를 쓰지 못하는 곳에서 내가 주눅 들고 의기소침해 있던 그런 날 중 하나였을 것이다. 친구들을 피해 다녔고 책과 지도가 든 배낭을 메곤 밤늦도록 멀리, 날마다 조금씩 더 멀리 걷다 지쳐 한밤에 숙소로 돌아오곤 하던 그런 어느 날. 내가 너보다 오래 살아봐서 말인데, 하며 마사히코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너는 이제 겨우 시작이잖아, 너는 젊어. 그는 나를 위로할 말을 찾느라 고심하고 있었다. 나는 십년 동안 글을 써왔고 나는 이제 곧 마흔 살이 돼. 십년 동안 글을 써온 걸 오래 써왔다고 할 수는 없어. 그리고 마흔 살이면 글을 쓰기엔 아직 너무나 젊은 거다. ……그럼 뭐해, 길이 안 보이는 걸. 이 말은 그냥 혼자 목안으로 삼켰다. 자존심 크게 상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마사히코의 이력은 다채롭다. 1961년 도쿄에서 태어나 그의 표현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때 신의 소리를 듣고는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 후 도쿄 외국어대학에 들어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곤 4학년 때인 1983년 중편소설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회유곡」으로 89회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올랐지만 사상 최연소 수상에는 실패했다. 그 후 그는 여섯 번이나 아쿠타가와상 최종 후보에서 탈락한 것으로도 유명한 작가가 된다. 1985년 『나는 모조인간』, 『천국이 내려오다』, 1986년 『돈나 돈나』, 『미확인 미행물체』, 1989년 『꿈의 사자』, 그리고 1992년에는 그의 대표작이 된 『피안선생』으로 이즈미 쿄카상을 수상했다. 1995년에는 『잊혀진 제국』과 『떠오르는 여자, 가라앉는 남자』를 펴냈으며, 그 후 거의 해마다 한 권씩 소설과 에세이집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무한 캐논』 3부작을 발표했다. 영화와 연극에 출연하고 오페라를 연출하며 소설을 쓰는 사이에도 그는 틈나는 대로 영어와 러시아어, 이탈리아어를 공부했으며 그리고 그가 가장 잘 하는 것 중 하나인 요리를 만드는 것에 탐닉하기도 했다.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하는 것처럼 그는 전 세계 구석구석을 쏘다니고 한 가지에 흥미를 느낀다 싶으면 어느새 다른 것으로 호기심을 옮겨간다. ‘예술’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그것이 그에게는 ‘사는 것’ 즉 ‘일상’에 대한 열정과 흡사해 보인다. (언젠가 나는 그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다. 대체 왜 그렇게 외국어와 요리를 열심히 배우기 시작한 거지? 아이오와 대학 도서관의 사서인 일본인 쯔야끼의 부엌에서 나는 한국요리를, 그는 국적불명의 퓨전요리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는 아심과 빅토리아와 쿠르트, 권지예 선배, 그리고 부엌이 없는 우리들에게 그날 하루 기꺼이 자신의 부엌을 내준 쯔야끼가 포도주와 빵을 먹고 있었다. 팔등으로 콧수염을 쓱 문지르면서 알면서 뭘 묻냐, 하듯 하는 말. 그래야 여자들한테 인기가 있다는 걸 터득했거든!)


광화문에서 가장 큰 서점에 일본소설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을 만큼 일본 소설 열풍이다. 내 짐작으로는 거의 대부분의 일본소설들, 옥석을 구별하지 않은 소설들까지도 번역되어 쏟아져 나오는 것 같다. 그 많은 일본 소설들 중에 최근에 새로 개정판으로 나온 『나는 모조 인간』을 제외하곤 마사히코 소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의 열 권도 넘게 달하는 소설과 산문집들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열풍이 계속되던 십여 년 전에 번역되어 나왔고 지금은 대부분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운 책이 되어 버렸다. 일본 소설이 붐인 것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실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젠가 학생들하고 수업을 하면서 일본 소설이 왜 붐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더 이상 엄숙주의에 머물지 않고 10대, 20대의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풍요로운 일상생활 속에서의 공허함, 관계의 상실감을 그들만의 새로운 감수성으로 담아낸 점이 그들에게 크게 공감을 주고 있다는 말엔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더이상 엄숙주의에 머물지 않고’라는 그 말이 내내 못 박힌 듯 가슴에 아프게 남는 것은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본격 문학과 대중 문학에 대한 구분이 어떤 것인지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새로운 감수성이라는 것이 자칫하면 감상적 로맨스로 빠져버리기 쉬운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 소설 붐이 독자층을 넓히고 있다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는 ‘더 이상 엄숙주의에 머물지 않고’라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나로서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심각하고 무겁고 진지한 것이 나쁜가’라는 의문을 나는 끝내 버릴 수가 없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요즘 일본 소설의 관심사는 역시 연애담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문청이었을 적부터 내가 잘 팔리지도 않는 시마다 마사히코의 소설을 한 권도 빼놓지 않고 읽었던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그의 소설은 감상적 로맨스를 다루지도 않고 소설 말미에 갑자기 이루어지는 무책임하고 허탈한 평화와 화해를 다루고 있지도 않으며 온건하지도 않고 게다가 잘 읽히지도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술술 읽은 그의 책이 있다면 그건 그가 한국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어 하는 『피안 선생』밖에 없는 것 같다. 그의 주인공들은 대개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 일본이라는 국가와 개인을 살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일본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그 정체성 상실을 더 넓은 세계로 확산시키고 싶어 하는 것을 꿰뚫고 있는 작가다. ‘정체성’의 문제를 빼놓고는 그의 소설을 말하기 힘들 것이다. 현재의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현대에 맞서는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해내려는 인물들의 안간힘, 그의 소설에서 나는 그것을 본다.   

 




네 번째, 그날 술집 순례의 마지막 장소는 시부야에 있는 한 대형 주점이었다. 연신 맥주를 마시고는 있어도 저녁을 쫄쫄 굶은 탓인지 몹시 허기가 느껴졌다. 나는 구운 생선과 소금에 절인 콩과 두부를, 마사히코는 해산물을 주문했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테이블 한가득 차려진 음식을 나는 막막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더 취하기 전에 집으로 가야겠다, 생각하는데 마사히코는 지금껏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지하고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역시 작가들끼리 만나면 ‘문학’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부터 꺼내지 않아야 한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작가로서의 마사히코를 위로하는 건 나로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아이오와에 있을 때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적이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대학살의 참상을 쥐와 고양이를 통해 보여준 장편 만화 『쥐』의 작가 아트 슈피겔만이 강연을 온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어느 한 사람이 온다고 해서 그토록 많은 인파가 몰려 소리도 없이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경청하는 장면을 처음 보았다. 그 중엔 우리도 섞여 있었다. 대단하지 않냐? 뭐가? 저 작가, 부도덕하잖아. 저게 예술이야. 뭐가, 부도덕한 게? 아니, 그걸로 압도적인 힘을 발산하는 것. 언젠가 그는 프로페셔널한 작품을 하나의 유토피아로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유토피아가 속임수라는 것, 유토피아와 현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또한 누구보다 독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너무나 뻔뻔스러운 인간이라 그 뫼비우스의 띠 정도는 가위로 싹둑 자를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유토피아가 되기를 꿈꾼다. 지금보다 젊었을 적의 그는 말이다. 내가 이렇게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에 우리가 ‘말’을 하는 목적이 뭔지 아냐?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글쎄, 나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게 바로 소설이 주제를 갖는 목적과 같은 것 같다. 말의 목적이 뭐냐? ‘행동’하게 만드는 거 아니니. 내 소설을 읽고 독자들이 어떤 행동, 움직임을 갖기 시작했다면 그건 내 소설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또 설득 당했다는 뜻이 아니겠냐. 나는 젓가락을 집어 콩 하나를 어렵게 콕 찍었다. 난 누굴 설득하려고 소설을 쓰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러면서 그가 그럼? 이라고 되묻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9월 22일 수요일 저녁, 러시아 작가들 방에서 마사히코의 송별파티가 있었다. 1.5리터짜리 콜라병을 자른 플라스틱 잔에 보드카와 콜라를 섞은 러시아식 폭탄주를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마셨다. 못 마신다고 꽁무니를 빼야 소용없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면 함께 마시고 함께 취하는 게 우정의 표현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마사히코와 빅토리아가 여러 곡의 오페라를 합창했다. 누구는 취해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누구는 훌쩍거리고 누구는 음악을 틀고 사진을 찍고 술을 더 가져오겠다며 화장실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나는 그 모든 것,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취기를 밀어내며 가까스로 지켜보고 있다. 예술작품은 도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예술가에게 도덕적인 목적을 요구하는 것은 예술가로 하여금 파멸로 이끄는 길이다, 라는 괴테의 말은 마사히코에게 썩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예술가의 임무는 생기를 주는 것, 이라는 토마스 만의 말도. 그날 밤, 한 달 동안 몰려다녔던 우리들만 남았을 때 마사히코가 짐짓 큰 고민을 털어놓듯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마조히스트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만 이렇게 말했다. 너 그 말, 소설에서 했잖아.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사디스트다, 라고 말했어도 이렇게 슬픈 마음이 들었을까. 결국 마사히코의 송별파티가 우리 그룹이 함께 했던 마지막 저녁 모임이 되고 말았다.


 

시부야에 다시 천천히 장마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도 없이 우리는 거리에 나와 그대로 잠시 비를 맞고 있다가, 쌩 하고 달려오는 택시를 잡고 있다, 그가 택시 기사에게 큰 목소리로 내 동생의 집 주소를 말해주는 장면, 열심히 써라! 빠이빠이 손을 흔드는 장면…… 이 글은 여기서 그만 끝내야겠다. 하지만 그의 가방 안에 들어 있던 것, 컴퓨터 바탕 화면에 깔려 있던 게 뭐였냐고는 물어봐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정말 말할 수 없으니까. 그건 진짜 비밀이다. 《문장 웹진/ 2006년 12월》


 



     

시마다 마사히코

1961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외국어대학 러시아어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83년, 중편 「부드러운 좌익을 위한 회유곡」이 아쿠타가와상 후보로 올라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1984년 『몽유왕국을 위한 음악』으로 노마(野間) 문예 신인상을, 1992년에 『피안선생』으로 이즈미 교카(泉鏡花) 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꿈의 메신저』, 『나는 모조인간』, 『미확인 미행물체』, 『로코코 거리』, 『천국이 내려오다』, 『떠오르는 여자 가라앉는 남자』, 『악마를 위하여』, 『피안선생』, 『무한 캐논』3부작 등이 있으며 지난해 발표한 『퇴폐 자매』로 최근 제17회 이토세이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호세이대학 국제문예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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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지구 종말의 날까지 분열하라 김지선 1 지구처럼 돌아가는 월세, 지구처럼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 지구처럼 막히는 싱크대, 곧 멸망할 작은 행성을 뒤로 하고 우주를 향해 눈꺼풀을 밟고 고래는 푸른 등을 돌린다 푸른등돌고래는 갈 곳 없는 포유류가 되어 강물에 몸을 담근다 위험한 가정에 등을 돌리지 못하는 고래 한 마리 브래지어에 너를 매단다 언젠가는 멸종하겠지만 고래는 그런 것이고 너는 흐를 것이다 ― 「고래를 잡는 아이를 위한 안내서」 중 세상은 결국 파국을 향해 간다. 당연하게 멸망은 예정되어 있고, 우리는 흐를 것이다. 정규와 비정규, 주류와 비주류, 일류와 삼류가 뚜렷하게 구분된 세상 속에서 혁명은 무력하고 광장은 추억이 되었다. 우리는 가면을 쓰고, 환상을 내면화하며 지겨운 시간을 견딘다. 종말을 향한 불안한 예감, 불길한 전조 속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란 지루하게 화석화되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죽이는 것뿐. 그밖에 선택이란 없어 보인다. 서효인 시의 화자들은 대부분 그렇게 무기력하다. 세계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체득한 자의 무미건조한 발성이 시집을 가득 채운다. 찢기고 구워져 마요네즈에 찍힌 오징어처럼 아스팔트에 구워져 바퀴에 깔리는 환경미화원의 최후(「목격자」), 구운 토스트가 된 채 이틀간 방치된 할망구의 죽음(「냄새나는 사람」)을 읊조리는 목소리는 연민조차 거세되어 냉소를 자아낸다. 냉소란 본래 자조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시에서 삼류 인생들이 사물로 환치되는 것은 자본의 부조리한 체제가 뼛속까지 내면화된 수동성에 대한 적절한 은유다. 그렇지만 서효인 시를 읽는 즐거움은 이런 날카로운 비판적 사회학을 발견하는 것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의 어떤 시들은 의외의 전개로 상황을 밀고 나가는 미성숙한 도발을 그려낸다. 시를 읽어 가다 번쩍 눈이 뜨이는 순간은 바로 그런 똘끼를 발견하게 됐을 때다. 그것은 지루한 시간을 이탈시키는 경쾌한 해방감이며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한다. 서효인의 시가 전하는 즐거움은 시집의 정교한 배열을 주시할 때 더욱 강렬해진다. 시집은 , , , 의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에 따라 아이에서 성인으로 변화하는 시적 페르소나는 그의 시를 성장문학의 하나로 읽게 만든다. 상처의 시간을 딛고 견고해지며 어른으로 자라나는 통과의례는 성장문학이 거치는 당연한 수순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시선이 성장문학에 대한 여타의 방식을 뒤집는다는 것이다. 시에서 어설픈 미성숙의 시간이야말로 존재감이 최고조로 고양된 순간으로 격상된다. 2장의 시선을 확보한 뒤에 다시 읽는 1장의 반항적 소년기는 청년이 되어 버린 시적 자아가 취해야 할 행동 지침을 제시하지 않는가. 3장의 성인이 된 아이의 무기력을 거쳐, 4장 연작은 성인이 된 후에도 우리에게 남은 미성숙의 페르소나를 다시 한 번 이끌어낸다. 이런 서사적 배치는 강렬한 메시지를 내재하고 있는 건 아닐까? 혹 우리가 감지하는 것 이상으로 서효인의 시는 불온한 전복의 수사학으로 무장된 건 아닐까? 막연한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 그의 시에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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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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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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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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