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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느낌의 현재에서 문득 출발하는 것

  • 작성일 2005-10-28
  • 조회수 4,319

 

대담 이시영(시인)

진행?정리 박형준(시인)


동영상 보기


프롤로그

미당과 김수영에 대하여

민중문학의 어제와 오늘

나는 다만 거기에 있었다

사람과 문학

좋은 시란 무엇일까

젊은 시인들


내심 선생과의 인터뷰를 댁이나 그것도 안 된다면, 선생께서 ‘바다 호수’라고 명명하셨던 한강변의 운치 좋은 카페에서라도 진행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선생을 거의 거리에서 뵈었다. 창비가 마포에 있을 때 나는 창비와 가까운 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점심 무렵 거리에서 산책을 하시던 선생께 인사를 꾸벅 하면 선생은 “태준이 판 돌리러 가나”하고 말씀하셨다. 불교방송국에서 PD로 근무하고 있던 후배 시인 문태준을 나와 혼동하신 것이었다. 이런 사정은 문 시인 쪽도 마찬가지여서, 그도 몇 번 내 이름으로 호명된 모양이다. 선생은 껀정한 키에 테가 두꺼운 안경을 쓰고 계시다. 이런 모습에서 조용하고 느릿느릿한 성품이 연상되지만, 그러나 선생은 언제나 날렵하시다. 두꺼운 안경 너머에서 빛나는 눈은 이지적으로 차갑게 반짝인다. 선생은 망설이는 법이 없다. 이쪽이 빈틈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전화를 건 내게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만나지”라고 먼저 선수를 치셨다. 작가회의 사무실이라…… 적당히 폼 잡으며 인터뷰하기는 다 글렀다. 나는 며칠에 걸려 선생의 시집을 다시 읽고 산문집을 밑줄 그어가며 읽었다. 사무실이란 그곳이 어떤 곳이든 사무적이며 공적인 자리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시영 선생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 두꺼운 안경 안쪽에 사랑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선생은 늘상 젖어 있는 눈을 들키기 싫어 안경의 차가운 빛으로 가리고 있는지 모른다. 선생은 어렵게 사는 후배 시인들을 그들 자신들도 모르게 도와준다. 그것도 거의 티가 나지 않도록, 선생의 문학적 후광 안에서 누구를 편애하지 않고 골고루 도와준다. 선생께서 이제껏 써온 많은 시편들이 자연 묘사보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임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가장 사랑하는 고향 구례마저, 그 풍경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선생과 ‘바다 호수’라도 함께 산책을 하며 그 인간의 냄새를 맡고 싶다.



실업, 그리고……


박형준 :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북한에 다녀오셨지요? 남북 문학인 대표 200명이 함께 모여 많은 성과를 이룬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시영 : ‘작가 회담’은 예비회담으로 합의된 단계였습니다. 이면에서 합의된 사항을 실천하는 과정이었지요. ‘6?15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정식 이름이었습니다. 중요한 성과는 ‘6?15 민족작가협회’를 남과 북이 결성하기로 했다는 것, 《통일문학》이라는 기관지를 만들기로 한 것, ‘통일문학상’을 제정하기로 한 것 세 가지입니다.

 

박형준 : 이번에는 여러 가지 자유로운 면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시영 : 감동적인 것은 남쪽 문인 백여 명이 평양 순안공항에 내려서 제한적이었지만 평양 거리를 수차례 지나다녔다는 것과 새벽 세 시에 백두산에서 남북 문인과 해외에서 온 문인들이 일출을 맞이하면서 ‘통일문학의 새벽’이라는 행사를 같이 치러냈다는 것입니다.

 

박형준 : 작년에 창작과 비평사를 그만두셨는데요,

 

오십칠 세의 아침에 그는 갑자기 실직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아주 천천히 일어나 겨울로 향한 보석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이 「실업」(『아르갈의 향기』, 2005)이라는 시가 눈에 띕니다. 느낌이 어떠신지요?

 

이시영 : 두 가지입니다. 허탈감과 해방감을 만끽한다는 것인데, 그것이 ‘보석 창문’의 이미지로 과장되어 나타난 것 같습니다.

 

박형준 : 《내일을 여는 작가》에 실린 약력이 재미있습니다. ‘현재는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로 월요일에 한 번씩 안성 캠퍼스에 내려가 강의하는데 나머지 날들은 완전 백수임’이라는 글이 있던데요.

 

이시영 : 재미있던 에피소드는 박남철 씨가 그 글을 보고 ‘불완전 백수’라고 정정해주었던 일입니다.

 

박형준 : 작가회의의 산 증인이신데요. 그동안 작가회의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올해가 31주년인데요.

 

이시영 : 작가회의와의 인연은 25살부터였습니다. 두 번의 고비가 있었지요.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활동이 정지되었고, 1984년에 새로운 젊은 문인들을 수혈해서 제2기를 이어나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87년에 6월항쟁을 승리로 이끌어내면서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자유실천문인협회에서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새로운 출발을 한 것이 세 번째 단계입니다.

30주년을 맞아 세대교체가 서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난해 총회에서 통과된 정관 개정에서 이사장은 대외적인 대표 역할만 하고,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사무총장은 총회에서 직선하게 되었습니다.

 

박형준 : 2003년 『은빛 호각』 이후 매년 한 권씩 책을 내시고 계신데요. 시를 많이 쓰시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이시영 : 시라는 것이 써지기 위해서는 감정도 민감해지고 정서적 고양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루다의 말처럼 시는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고, 저는 그것을 받아 적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획을 세워서 하는 것은 아니고, 그 순간에 집중적으로 씌어졌을 뿐입니다.

 

박형준 : 오랜 기간 축적되었던 것이 터져 나오고, 그것을 받아 적으신 것처럼 보입니다. 선생님의 시에서는 산책하시는 모습도 떠오릅니다. 창작과 비평사가 마포에 있을 때 점심 무렵에 산책하시는 모습을 뵈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유롭고 한가하면서도 날렵하고 정곡을 찌르는 선생님이 연상되기도 하는데요. 

 

이시영 : 서울에서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틈새라거나 사색을 위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틈틈이 산보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작과 비평사가 마포 사무실에 십여 년 이상 있었는데, 강변을 산책하면서 새들도 많이 구경했습니다. 같이 근무했던 고형렬 시인도 산책을 좋아했습니다.

 

박형준 : 산문집 『곧 수풀은 베어지리라』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선생님과 같이 여백과 정제의 밀도가 높은 압축적인 시를 쓰시는 분의 산문을 좋아하는데요. 그런 산문은 긴장감은 높지 않지만 시인의 오솔길과 같고, 맨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첫 서두가 구례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기차를 타고 구례로 가는 과정이 변주되거나 심화되는데, 고향의 의미를 말씀해주시지요.



서정주와 김수영


이시영 : 《현대시》의 대담에서 유홍준 씨는 ‘시인에게 고향이 있어야 하는가?’라고 반어적으로 상처로서의 고향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고은 시인도 ‘사람에게 고향은 하나뿐인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구례까지는 열한 시간이 걸렸는데 서서 갔습니다. 새벽에 고향에 도착하면 마을 입구에서는 개구리들이 울고 여름 논에서는 강렬한 흙 향기가 느껴졌는데, 그때 저는 흙의 체취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꿈속에서는 고향이 무대가 되곤 합니다. 고향이라는 것은 자기 생에서 삭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원체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형준 : 선생님께서는 ‘어린 시절 천 개의 호주머니를 단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어른이 되어서 그 꿈이 축소될 대로 축소되어서 나는 다만 안경을 쓴 한국의 샐러리맨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간직하고 싶으신 비밀 호주머니가 있다면 무엇을 넣고 싶으신가요?

 

시 한 편을 써서 좋아라며 호주머니에 쑤셔넣고 건들건들 가로수 길을 걸으니 내가 세상에서 제일로 서러운 가난뱅이 같더라.


호주머니 속에 이런 「가난」(『아르갈의 향기』, 2005)과 같은 시가 들어 있을 것 같은데요.

 

이시영 : 지금은 호주머니에 담고 싶은 것들이 소년 시절과 달리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시에서 비유적으로 이야기했듯이 나만이 쓸 수 있는 좋은 시를 담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은 있습니다.

 

박형준 : 산문집에서 쓰신 대로 스승 서정주 시인을 회고하며 의식적으로 그와 거리를 두려고 한 것이 1980년대 상황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시인 수업, 작가 수업이란 자신의 사회적 존재로서의 철저한 물음과 함께 정치적 선택까지를 결단하게 한다.’는 의지가 그것인데요. 한편으로는 시집에도 서정주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산문집에서도 서정주 시인에 대한 그리움이나 연민이 동시에 보입니다.

 

이시영 : 웹진 《문장》의 대담에서 정현종 시인은 ‘미당은 정치적으로 백치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서정주 선생님에 대해서는 양가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서정주 시인이 선택했던 것은 늘 틀렸던 것이고, 시인도 시민의 한 사람이자 국민의 한 사람인데 안이한 선택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시인으로서 서정주는 스승입니다. 지난 학기에는 학부 강의에서 서정주 전집을 읽었는데, 김소월 이래로 한국어를 가장 잘 갈고 닦은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만의 익살과 언어 감각과 통찰로 써내는 시를 보면 한국시에서 서정주라는 산맥을 돌파하지 않고는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형준 : 스승 서정주를 통해서 리얼리스트로서의 확고한 의지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시영 : 반면교사 역할을 한 셈입니다. 아쉬운 것은 돌아가시기 전에 모 시인을 통해서 한번 다녀가라고 하신다는 말씀을 전해 듣고 세배하러 갔었는데, 너무 늦게 가서 뵙지 못했던 일입니다. 

 

박형준 : 선생님의 언어는 언어적 측면에서 보면 서정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보이는 시에서의 익살과 해학이 그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식은 김수영을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 다가갈 때는 서정주가 있고, 기억이나 역사 등 대상과 거리를 둔다는 측면에는 김수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시영 : 김수영은 산문으로 영향을 받았습니다. 산문집을 스무 번 넘게 독파했습니다. 저에게 시론으로 영향을 준 사람은 김수영 시인입니다. 그의 산문은 지금도 현재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를 통해서 영향을 받은 것은 없습니다. 서정주와 김수영의 영향은 모순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시와 현대시에 대한 자각은 김수영 선생에게 배웠습니다.

 

박형준 : 선생님께서는 민중문학을 하셨는데요, ‘민중문학이란 자기 땅 민중들의 염원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문학’이라는 정의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 시대에도 가능한 것인지요. 민중의 실체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이시영 : 신경림 선생의 책 서평에 언급했던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유효하고 어떤 면에서는 개념이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분단된 국가에 사는 시민으로서 ‘모든 통일은 좋은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갖듯이, 그 당시 지식인 사회에서 도출되었던 민중 개념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젊은 시인들의 시를 읽다 보면, 이것이 한국에서 산출되는 우리의 문학인가 하는 의심이 들곤 합니다. 한국에서 시민으로 사는 것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1970년대는 계몽의 시대였습니다. 김지하의 「오적」과 신경림의 「농무」 등이 민중의 발견이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 도시 소시민을 포함한 민중 개념이었는데, 각성 자체는 소중했다고 봅니다. 지금은 노동운동 자체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따라서 차이가 있고, 대기업 노동자들의 요구를 과연 민중들의 요구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달라졌습니다. 

시와 연결시키면 1960년대 시는 난해시 일변도였습니다. 1945년 해방 공간과 6?25전쟁이 있었던 1950년대, 1960년대를 지나면서 생활 현실을 그리는 시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70년대 계몽적 이성이 호출한 민중 개념이 문학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신경림의 「눈길」이라는 시가 <한국일보>에 발표된 것을 보고 이런 시가 있을 수 있나 생각했습니다. 그때 신경림이라는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이렇게 알아듣기 쉬운 시가 있는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창작과 비평》이라는 공간에서 신경림이 부각되었습니다. 《신동아》에서 김우창과 백낙청이 「농무」로 특별대담을 했었습니다. 1970년대의 민중 개념이 문학을 얼마나 변화시켰는가에 관한 것이었지요. 신경림, 황석영 등의 민중 지향 문학이 쌓여서 1975년에 「민족문학의 현단계」라는 논문으로 민족문학이 한국문학에서 도출된 것입니다. 그 책은 판금이 되기도 했습니다.

 

박형준 : 그 시절에는 민중이라는 개념이 현장에 존재했었는데요. 지금 민중문학을 하시는 분들이 그런 현장성을 붙들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시영 : 신경림 선생의 시 자체도 변화해 왔습니다. 「농무」는 광산을 끼고 있는 소읍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전라선에 관한 이야기를 썼는데, 그 당시 철도 옆에는 보따리를 낀 상경(上京) 처녀들이 열차에 오르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로공단으로 올라오는 아가씨들이었습니다.

1970년대에는 문학이 문학판에서만 소통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독교회관에서는 매주 목요기도회가 열렸습니다. 노동자, 농민, 인권운동가, 목사, 시인 등이 모두 거기서 시를 읽었습니다. 그 당시는 정치적인 억압기였기 때문에 문학이 은어처럼 소통되었습니다. 문인 가운데 구속된 사람도 많았습니다. 문학이 지금처럼 왜소한 시대는 아니었지요. 『새벽길』이라는 고은 시집도 그 자리에서 낭송되었던 것입니다. 지금은 과도한 낭만주의적 혁명문학이 아닌가라고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살아 있는 구호로 문학이 소통되었습니다. 정치투쟁적인 문학이긴 했지만 우리끼리 읽는 그런 시는 아니었습니다. 문학을 한다는 것은 위험이 늘 상주한다는 것이었습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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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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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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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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