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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세 번째 앙코르 공연을 뒤돌아보며

  • 작성일 2005-07-15
  • 조회수 2,276

 

유희성(뮤지컬 연출가)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계적인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원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뮤지컬로 각색한 것으로, 2002년 8월 17일~25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을 시작으로 2003년 2월 7일~16일까지 동숭동 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그리고 세 번째 공연으로 2005년 5월 17일~29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정기공연을 했다. 이 작품은 2003년 제9회 한국 뮤지컬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음악상, 연출상, 남우신인상, 여우신인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2003년 9월 26일~28일까지 중국 북경시에 있는 세기극장에서, 2004년 11월 26일~27일까지는 중국 상해시의 예해극장에서 공연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뮤지컬의 한류 열풍을 주도했다.


뮤지컬의 한류열풍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세기를 뛰어넘고 시공을 초월해서, 아직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첫사랑의 향기처럼 늘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유명한 프랑코 제퍼넬리 감독,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금도 생각만 하면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어려울 정도로, 젊은 시절 감수성이 예민했던 모든 이들의 가슴에 못을 박은 것처럼 강렬한 것이었다.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 원작의 정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서울예술단만의 독특한 각색으로 창작된 창작뮤지컬이다. 즉, 맵 여왕이라는 인물을 통해 1400년대의 러브스토리를 끄집어 와 사랑과 축복의 환상 비극으로 만들었다.


원작에서는 두 청춘 남녀가 결국은 죽음으로써 두 가문에 경종을 주는 것으로 끝이 났으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죽음이 곧 죽음이 아니라 죽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값진 희생으로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하늘의 별이 되어, 시대를 초월해 영원토록 함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작품의 이미지가 된 모티브는 별과 꽃이다. 별은 곧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으로 상징된다. 꽃은 풋풋하고 아름답지만 언젠가는 시들어 버린다. 사랑과 인생처럼. 또한 진정한 사랑으로 빛을 발하는 밤하늘의 별은 영원하다. 비가 게인 날에도, 대낮에도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의 영원한 징표가 되어…….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울예술단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명작극장 운영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그동안 서울예술단의 청소년 명작극장에서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흥부전을 각색한 〈대박〉,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등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작품성과 대중성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 세 번째 앙코르 공연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야말로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었다. 그동안 서울예술단의 작품들은 작품성에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은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격이었다. 그 배경에는 탄탄한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충실한 이해제의 뮤지컬 극본, 세미클래식하면서도 서정적이며 대중적인 데냑 바르탁의 음악, 그리고 모든 스태프들과 서울예술단 단원들의 멋진 앙상블이 있었다.


처음 〈로미오와 줄리엣〉 뮤지컬을 연습할 때만 해도 서울예술단에는 뮤지컬 마니아들뿐만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회자되는 배우들 이름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배우의 입장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는 배우들을 돋보이게 해주고자 많은 부분을 각색해 로미오와 줄리엣뿐만 아니라 서브 캐릭터들이 자신의 역할로 확실하게 두드러질 수 있게 했으며, 단원들에게 공연이 끝나고 적어도 8개의 팬카페가 생겨나길 소망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정말로 8개의 팬카페가 생겨나 지금까지도 운영되고 있다.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뮤지컬은 사이버 공간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특히 한국의 뮤지컬 발전에도 온라인이 엄청난 공헌을 했다. 정보 교류는 물론 작품에 대한 모든 것들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광고 홍보란을 통해 너무도 쉽게 기하급수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 또한 배우들의 소개 및 장단점까지도 낱낱이 파헤쳐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로미오와 줄리엣〉을 통해 시작된 서울예술단의 배우들 팬카페는 많은 성장을 했으며, 이번에도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엄청난 예매율을 기록하는 결과까지 가져왔다. 연출로서 가장 보람 있는 일들 중 하나였다.


또한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스포츠조선〉에서 주최하는 제9회 뮤지컬 대상에서 5개 부분을 휩쓴 것이다. 심지어는 지방에서 인접지역끼리 서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유치하기 위해서 다툼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그래서 해마다 5~6곳에서 지방공연을 하며 다소 소외된 듯한 지역들의 문화적인 갈증을 해소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뮤지컬 대상 시상식 때 내가 받았던 연출상은 참으로 민망하고 불편한 상이었다. 그 당시에 나의 스승인 분들과 함께 노미네이트되었기 때문이다. 윤호진 대표님, 강대진 선생님, 이종훈 선생님과 노미네이트된 것만도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 이름이 호명되자 기쁨보다는 심리적인 부담감에 어쩔 줄 몰라 했으며, 그 기분은 아직까지 가시지 않고 있다.


창작과정의 어려움

이제 〈로미오와 줄리엣〉이 6월 18일~19일 부산공연을 마지막으로 세 번째 앙코르 공연의 막을 내린다. 앞으로 또 언제 공연을 하게 될지는 몰라도 관객들의 호응으로 또다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겨두고 있다. 심지어 지방의 한 시장님은 관람 후 모든 시민들이 전부 이 작품을 관람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래서 적어도 그곳에서만이라도 내년에 공연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렇듯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도 마찬가지지만 모든 창작 작품에는 어려운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작품 역시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작품의 컨셉은 명확했지만, 다국적 스태프들이 참여하다 보니 물리적인 시간과 언어 소통에 있어서 힘든 부분들이 있었다. 즉, 작곡을 담당한 데냑 바르탁은 체코 사람이고, 무대미술을 담당했던 가즈에는 일본 사람, 또 조명을 담당했던 무로루시도 일본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을 찾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다행히 총감독이신 신선희 선생님과 드라마 트루그를 담당했던 김성철 님의 해박한 안목과 영어 구사 능력 덕분에 여러모로 큰 도움을 받았다. 뮤지컬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음악은 다행히도 데냑 바르탁이 그동안 서울예술단과 세 번에 걸쳐 작업을 했었기 때문에, 작업 방식과 스타일을 익히 잘 알고 있어서 큰 무리 없이 작업할 수 있었다. 무대 또한 몇 번에 걸친 수정 작업을 거쳐 회전무대를 적절히 이용하여 르네상스 분위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 자체가 워낙에 세계 보편적인 작품이기에 다국적으로 사람들이 모였지만, 작품을 해석하고 하나의 컨셉 아래 표현해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세 번에 걸친 정기공연과 지방공연, 해외공연 등 많은 공연을 하다 보니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도 많이 있었다. 물론 2002년 서울 첫 공연의 피를 말리는 듯한 긴장감은 잊을 수 없겠지만, 첫 공연부터 완전 매진되는 폭발적인 반응으로 작품의 열기는 지속되고 있다. 또 기억에 남는 공연 중 하나는 2003년에 있었던 대구 지방공연이다. 물론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갔으며, 때마침 2002년 월드컵 경기 이후로 당시 야외에 대형 월드 비전을 설치해 세 곳에서 동시에 관객들이 환호하며 관람하는 이색 풍경이 연출되었다. 공연장과 로비, 그리고 야외에 따로 설치된 와이드비전을 통해 세 군데에서 동시 생중계를 하는 듯했다. 그때 세 곳을 오가며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던 기억이 있다.


또 하나는 2003년 북경공연이다. 아직까지 중국은 뮤지컬이 활성화되지 않기도 했거니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여간 걱정이 아니었는데, 놀랄 정도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현지 기획사 측과 우리도 함께 놀랐으며 당시 중국의 많은 방송매체에서 정말 많은 프레스들이 취재를 와서 그 열기를 증명하는 듯했다.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현지 기획사 다섯 군데에서 내년에 중국 5개 지역을 순회공연하자는 제안을 해 왔으나, 서울예술단의 스케줄과 여러 문제들로 인해 공연은 이뤄지지 못했다.


북경 공연의 성공과 에피소드들


그런데 꼭 그렇게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고 정말이지 가슴 철렁한 순간들도 있었다. 2003년 북경공연 때 앙상블 중 한 명인 발레리나가 몸을 푸는 도중 갑자기 발목 인대가 끊어진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해외 첫 공연인데다 병원에서는 받기가 힘든 상태여서 급기야 다시 귀국하기에 이르렀다. 무대 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고 귀국해 다시 정밀검사를 하고보니 순간적인 타박상으로 근육이 놀라서 그런 것이니 안정을 취하면 괜찮다는 의사의 진단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쉰 적이 있었다.


또 한 번은 2005년 서울공연 첫날에 공연 중 펜싱 칼싸움 장면에서 펜싱 칼이 부러져 객석에 앉아 있던 관객에게 날아가 어깨 팔꿈치에 그대로 박혀버린 일이다. 물론 급하게 병원까지 데려가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를 끝내고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진단을 듣고 나서야 또한 안심할 수 있었으나, 그 관객에게 너무나 송구스러워서 여러 가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동원해 위로를 해드렸다. 이 일은 지금 생각해도 숨이 막힐 듯하다. 다행히 이해심이 있어서 그나마 넘어갈 수 있는 사건이었던 것 같다. 이렇듯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도 공연 기간이 길어지면서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연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좋고 힘이 되는 그런 에피소드들만 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도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열화와 같은 호응으로 앞으로도 계속 공연되길 소망한다. 내년에는 프랑스판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이 직수입되어 공연된다고 한다. 똑같은 내용을 두 나라에서 어떻게 다른 정서를 가지고 뮤지컬로 만들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하다.《문장 웹진/2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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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30
시 쓰고 자빠졌네

시 쓰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누군가에게 자주 두들겨 맞았고, 누군가에게 가끔 린치를 가하던 시절이었다. 이웃 여고 문예부 아이들이 어쩐지 예쁠 거 같아서 문예부실을 전전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나가곤 했다. 물론 남달리 예쁜 아이는 없었지만, 어쨌든 17세 남녀가 교복을 입은 채로 노래방에서 듀스나 룰라, 혹은 투투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남달리 아름다웠다. 되도록 빨리 노래방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바사바, 시를 썼다. 빨리 써야 했다. 시는 최초의 노래였으므로. 엉덩이를 두드리듯, 천사를 찾아. 발라드를 부르며 감정 과잉에 빠지는 철수에게 영희는 이렇게 말한다. 시 쓰냐? 그때 우리는 원고지를 눕히던 누런 잔디에서, 어두운 노래방에서, 혹은 밀도가 높은 교실에서 어떤 감정 속에 놓여 있었을까. 난 누군지 또 여기는 어딘지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기에 우리는 분노에 가득 차 교복을 줄이고 담배를 숨기고 몰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수채화 대신에 야간 자율 학습 감독을 주로 하던 미술 선생은 또 말했다. 또, 또 시 쓰냐? 시화전 제출 작품에서 피 흘리는 고등어를 그려 놓고 ?어느 고딩의 죽음?이라 제목을 붙이며 나는 전위를 담당한 듯 당당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남자였다. 미술 선생에게 욕을 먹을 때에도, 맞을 때에도 나는 부끄러움을 몰랐다. 대한민국 학교 다 족구하라 그래. 시 쓰고 자빠졌다, 정말. 정말이란 말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본다. 오래 생각하는 버릇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최대한 짧고 단순하게 사고한 것으로 보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빠르고 무식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시집을 묶어내던 중에 바위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그 부엉이는 정말 새였을까. 도심에서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망루는 정말 구름이었을까. 모두 정말이냐고 정색하며 물어 볼 만한 일들이었다. 분노가 치민다. 지금 나와 싸우자는 건가? 그런데 싸우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아니다. 싸움은 끝났다고, 이제 싸움이 아닌 경쟁의 시대라고 배웠다. 나는 그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화가 났다. 사실 싸움보다 훨씬 경쟁이 무서웠다. 사건은 이미지가 되는 순간 거짓말이 된다. 이 모든 게 차라리 멋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거짓말. 난삽한 이미지. 이미지가 아닌 이미지. 그러므로 차라리 보이는 게 진실이라고 믿어 본다.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한 진실이 시의 배후가 되어 시에 맘껏 개입해도 나는 좋다. 시가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기꺼이 네가 그렇게 하라. 가져간 나의 반쪽! 때문인가. 이제 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리얼리스트 되자. 모던한 리얼리스트가 되자. 모더니스트가 되자. 리얼한 모더니스트가 되자. 장난하느냐고? 그렇다면, 불길한 장나니스트라고 해 두지 뭐. 꼴에 시랍시고 자빠졌네. 이런 말 자주 들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시가 좋다. 그리고 시가 밉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처음 증상을 보일 때는 이렇게 데뷔를 하고 시를 쓰리라 짐작하지 못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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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7-15
일본 소설, 한국 시

일본 소설, 한국 시 한성례 한국에서 일본소설의 베스트셀러 현상 한류바람이 뜨겁게 일본 열도를 달구기 시작한 2000년 이후부터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해왔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인기가 많은 작가가 나올 정도로 한국은 일본소설 홍수 시대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본소설가들조차도 왜 일본소설이 한국에서 그렇게나 많이 팔리는지 몹시 궁금해 한다. 이에 대한 일본 신문의 인터뷰나 원고의뢰가 있을 적마다 나는 현재 한국에서의 한국시에 비유해서 설명을 한다. 이전에도 한국에서 일본소설은 종종 많이 팔렸다. 70년대 중반에 첫 출간된 무라카미 류(村上龍)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는 해적판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출판금지서임에도 안 읽은 사람이 없을 만큼, 문학이나 예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필독서이고 바이블이었다. 1999년 정식으로 저작권 계약을 맺어 커버에 비닐을 씌워 19세 미만 구독불가로서 출간된 후에도 쇄를 거듭하며 읽히는 소설이다. 또한 1989년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란 이름으로 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소설은 당시 크게 각광을 받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읽힌다. 당시 한국은 민주화 쟁취와 맞물려 자의식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향하던 시기였다. 민주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여서 사회, 정치적으로 안정되지 못했고, 급변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고독, 상실감 등이 당시 한국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과 겹쳐지면서 이 소설에 크게 공감했다. 더욱이 하루키의 가독성 높은 문장은 금방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한편으로 문학의 구도자 같은 마루야마 겐지(丸山健二)의 소설도 여러 편 번역 소개되었는데, 이는 주로 문학 창작자들이 마니아였다. 하지만 일본소설의 인기는 단편적일 뿐 전반적인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구소설이 중심을 이뤘다.그러던 것이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쓰지 히토나리, 히라노 게이치로, 요시다 슈이치 등 젊은 작가와 미야베 미유키, 스즈키 코지, 히가시노 게이고 등의 미스터리 소설과 나오키 상을 비롯한 여러 문학상 수상작이 2000년 이후에 대거 한국에 번역 소개되었고, 대형서점에는 코너가 별도로 마련될 만큼 일본소설은 인기를 끌고 있다. 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일본소설은 재미있다. 독자를 의식하고 소설을 썼다는 게 금방 느껴진다. 말하자면 자신의 상품을 사줄 소비자의 위치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일본소설을 읽으면서 비현실적인 주인공을 통해 현실에서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자신의 일탈을 꿈꾸고,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본소설의 주인공 젊은이들은 특별한 목표도 없고, 무기력하며 수동적이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과 기존 질서에 따르지도 않고, 세상을 약간은 냉소적이고 관조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보편적인 부와 명예, 사회적인 안정 등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독특한 상상력과 가독성 높은 문장도 한 몫 한다. 최근 일본과 한국에서 밀리언셀러 판매 기록을 갱신하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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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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