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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 작성일 2016-12-26
  • 조회수 2,073

이 에세이는 [2016년 문학집필공간운영지원사업] 협력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각 집필공간의 추천을 받아 해당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했던 작가의 에세이를 게재합니다.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이후경

 

 

   오늘 아침엔 서리가 내렸다. 어느새 이곳에서 지낸 시간이 깊어져 겨울이 스며들고 있다. 이 방에 머무르게 되면서 책상을 두 번 옮겼다. 원래 놓인 책상은 벽을 향해 있었지만 밖을 내다보며 작업하기 좋아하는 나는 바깥 풍경이 보이는 창 쪽으로 책상을 돌려놓았다. 처음에 그것은 오롯하게 솟은 작은 산을 향했다. 노트북을 들여다보다 눈을 들면 물결치듯 굴곡진 산등이 보였다. 작은 산은 면소재지를 감싸고 있었다. 이 부근의 중심지인 그곳까지는 걸어서 10분쯤 걸린다. 터미널, 우체국, 슈퍼에 볼일이 있을 때 슬슬 걸어가는 곳이다. 밤에 옥상에 올라가 바라보면 반짝이는 불빛들이 제법 화려한 곳이다. 겨우 10분 거리의 불빛들은 이곳을 더욱 호젓하게 느끼게 해주면서도 고립감은 주지 않는다. 들어앉아 글만 쓰기에 딱 적당한 거리이다.
   그렇게 산을 바라보며 며칠을 일하다가 달을 본 지가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문득 든 날, 고개 돌려 동쪽을 보니 주황빛 보름달이 오누이못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오누이못이란 이름은, 못을 아무리 파도 물이 솟지 않다가 위쪽에 하나를 더 팠더니 그제야 물이 나오게 되어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내 방에서 보이는 못은 오누이못 중 아래쪽 못이다. 물 위에도 주황빛 달그림자가 일렁였다.
   처음 왔을 때 저 못은 몇 송이 연꽃만 남아 있을 뿐, 온통 푸른 연잎으로 덮여 있었다. 남은 연꽃들이 시나브로 지더니, 씨앗이 송송 맺힌 연밥들이 고개를 들었고, 연잎들과 연밥들이 갈색으로 시들어 가자 비로소 연못의 물이 드러났다. 그 사이로 연밥 빛깔의 오리들이 몰려다녔다. 산책할 때 늘 지나다니면서도 저 못이 달을 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다시 책상을 옆으로 밀어 못을 향해 놓았다. 달뜨는 시각을 굳이 챙기지 않아도 글 쓰다 고개 들면 달과 눈이 마주치곤 했다. 어두워지면 달을 품는 못은 새벽이면 물안개에 잠겼다. 밤에 깨서 일하다 보면 우유를 쏟아 놓은 듯한 그 물안개를 만나고서야 잠들 때도 있었다. 못을 향해 책상을 놓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이전에 청송에 와본 것은 단 한 번이었다. 10년 전, 강연을 하러 온 길에 방을 얻어 이틀을 묵다 갔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주산지도, 전설이 수없이 깃든 이국적인 주왕산도 다 잊을 수 없었지만 홀로 묵은 방에서 한밤중에 자다 깼을 때 비수처럼 나를 향해 내리꽂히던 그믐달은 그대로 가슴에 박혀버렸다. 쨍 소리가 날 것처럼 짙고 푸른 밤하늘에 떠 있던 애잔하고도 날선 그믐달 한쪽에 홀려 나는 무언가를 썼고, 그것은 훗날 「그믐달」이란 단편의 마지막 부분이 되어 주었다. 그때 청송에는 ‘객주문학관’이 아직 없었다.
   ‘객주문학관’이 청송에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밤을 떠올렸다. 대하소설 『객주』와 작가 김주영 선생까지 떠올리자 마음은 더욱 흔들렸다. 나 또한 겨우 한 해였지만 오일장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한 경험이 있었으니 보부상이 그다지 낯선 말이 아니었다. 비록 패랭이모도 쓰지 않고, 지게도 짊어지진 않았지만.

 

   작가들이 머무는 생활관의 일과는 매우 단순하다. 일어나 책 읽고, 글 쓰고, 밥 먹고, 산책하고, 잠드는 날들의 되풀이다. 그러니 책상을 떠나 벌이는 일들은 모두 그날의 이벤트가 된다. 다행히 문학관 근처에는 ‘외씨버선길’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은 산길도 있고, 사과 과수원이 늘어서 있는 마을길도 있어서 우리들은 운동 삼아, 산책 삼아 잠시 책상을 떠날 수 있다.
   식사 시간 또한 단조로운 일상에서는 대단히 즐거운 휴식의 시간이다. 서로 모여 이야기하며 밥을 먹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온갖 재료의 맛있는 음식들에 매일 탄성을 지르게 된다. 텃밭에서 직접 캐거나 따온 고구마나 토마토는 또 얼마나 맛있는지! 날마다 건강식 뷔페에 가는 기분이다.
   불편한 것이라곤 없는 이런 쾌적한 환경이 유지되는 데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분들의 수고가 깃들어 있다. 건물의 관리를 해주는 분들과 함께 작가들의 모든 문제를 섬세하고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믿음직한 책임자까지 있는 것이다. 사실 작가란 종족은 생활에 서툴러 세상 속에서는 어리석게 사는 일이 많다. 사는 일 하나만으로도 쩔쩔매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다 빼앗기는 일이 다반사이다. 그러니 이곳에서 생활하는 몇 달 동안 유능하고 따뜻한 분들의 보살핌 속에서 어려운 세상사를 잊은 채, 오직 책 읽고 글만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작가들에게 짐작 이상의 큰 축복이다. 그것은 단순히 밥과 잠자리를 제공받는다는 일을 넘어서서 다른 세상과 접촉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선물 받는 일이다. 때론 그 사실에 어깨가 무거워져 강연이나 급한 볼일로 나갔다가도 가능하면 하루도 지체하지 않은 채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렇게 돌아와 방문을 열면 오롯하게 나를 기다리는 공간에 가슴이 벅차진다. 졸음과 게으름을 쫓아내며 또 다른 세상을 넘보려는 노력을 다시금 하게 되는 것이다.

 

   ‘객주문학관’의 본관에는 소설 『객주』와 작가 김주영의 문학세계를 소개하는 전시관이 있다.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산책을 하고 들어가는 길에 나는 다시 기념관에 들렀다. 입주 후 한 번 가본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전문 해설사한테 해설까지 들어가며 제대로 탐방을 했다. 두 번째 탐방을 해도 나는 선생이 장터를 떠돌며 취재한 것을 적어 놓은 노트에 여전히 매료되었다. 잉크에 찍어 쓰는 철필로 적어 간, 돋보기로 확대해야만 볼 수 있을 만큼 깨알 같이 작은 그 글씨들은 내용을 떠나 그 자체의 기이함과 아름다움으로 감동을 주었다. 글씨를 더 작게 쓰기 위해 가늘디가는 철필의 촉마저 뒤집은 채 썼다는 사실도 새로이 전해 들었다.
   선생은 200여 곳이나 되는 장터를 직접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취재를 했다고 한다. 앉아서 쓰는 글이 아닌, 저잣거리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의 사연을 몸에 새겨 벽화처럼 그려 놓은 『객주』, 그것을 이루게 될 피와 살이 그 노트에 담겨 있었다. 체구도 남들보다 큰 선생이 그렇게 정교하고도 단아한 작은 글씨를 쓰다니,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노트북도 없고, 차도 없던 그 시절, 어떻게든 많은 양을 가능한 작은 분량에 넣기 위한 선생의 고육책이었다. 우리 문학의 보물인 대하소설 『객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기념관 1층에는 도서관도 있다. 이 도서관은 독특하게도 소설 전문 도서관이다. 도서관에만 가면 그저 좋은 나로선 글 쓰는 공간 바로 옆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데, 그 도서관이 소설을 전문으로 다루는 도서관이라니 더욱 반가웠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처음에는 욕심내 여러 권을 빌려왔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입주할 때 함께 챙겨온 책만 이미 두 상자였다. 어쩔 수 없이 도서관 책 대출의 욕심은 버려야 했다.
   ‘객주문학관’은 빈 땅에 지은 건물이 아니라 폐교된 진보 제일고등학교의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만든 공간이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 선생이 바로 이 학교의 졸업생이라고 했다. 그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는 갑자기 환청처럼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공간이 더욱 정겹게 여겨졌다.
   전시관 탐방을 마치고 모처럼 들른 도서관에서 나는 절대로 책을 더 빌려 가면 안 된다는 굳은 마음으로 눈으로만 책장을 둘러보다 결국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창밖에는 키 큰 소나무들 위로 하얗게 눈이 쌓이고 있었다. 바로 이 학교의 1회 졸업생들이 심었다는 리기다소나무들이었다. 그 나무들은 이미 건물 높이까지 쭉쭉 뻗어 자라고 있었다.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삶이 내리는 눈 속에서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었다.

 

   저녁이 되면 주위는 어두워지고, 우리는 자기들의 밀실로 기어 들어간다. 저녁 식사는 모여서 먹기도 하지만 각자의 작업 스타일에 따라 따로 먹기도 한다. 나는 리듬이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미리 식당에 가서 밥과 반찬을 도시락에 담아와 작업하다 휴식할 때 먹는 일이 많았다.
   일상이 단절되고 생활에서 떨어져 나갈 때, 나는 비로소 다른 세상으로 들어설 수가 있다. 오랜 시간 내 방을 찾아 헤맸다. 젊은 날에는 ‘방 한 칸’이란 말만 들어도 눈물이 쏟아질 만큼 그것을 간절히 원하기도 했다. 이제 나는 내 방을 가지고 있지만 그 또한 일상이 되어 능률이 떨어지기도 한다.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는 동력이 줄어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일상과 뚝 떨어진 곳에 들어와 있는 시간은 단박에 그것을 회복시켜 준다. 불편이 없는 공동생활이면서도 문 닫고 들어가면 혼자의 세상이 펼쳐지는 이 고적함이 나는 그지없이 좋다. 어찌 보면 이것은 최고 시설을 갖춘 감옥, 글 감옥일 것이다. 그러나 제 발로 걸어 들어간 감옥, 어쩌랴, 그것만이 내가 다른 존재가 되어 살 수 있는 통로라면.

 

   등 뒤로 문이 닫히면 이제 나는 다른 세상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이곳은 그 여행을 떠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나는 다른 존재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산다. 혼자 웃고, 혼자 울며 그 낯선 삶을 받아 적는다. 누군가 이런 나를 몰래카메라로 찍는다면 제정신인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야기를 쓸 때는 숨을 수 있는 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 이곳을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가면 나는 또 생활인이 되어 그다지 튀지 않는 모습으로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리라. 다시 또 숨을 수 있는 방에 깃들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어느 쪽이 진정한 내 자신의 모습인지 내내 의아해 하면서.
   오늘 밤엔 밤새가 운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내 방 앞쪽 우리에 있는 백구는 따라 짖지도 않은 채 고요히 밤을 응시하고만 있다.

 

 

 

 

 

 

 

 

이후경
작가소개 / 이후경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으로 등단 (작품명 「과거순례」)
2006년 아르코 우수문학도서 선정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
2011년 김만중 문학상 소설 부문 금상 수상 (작품명 「저녁의 편도나무」)
2012년 아르코 창작지원금 대상 선정
출간 작품집 「저녁은 어떻게 오는가」 「달의 항구」

 

   《문장웹진 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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