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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준

  • 작성일 2024-05-01
  • 조회수 580

[에세이]


   어떤 기준


전석순


   “그래도 꽃은 잊지도 않고 제때제때 피네.”

   예년보다 개화가 늦어지던 해였다. 어머니는 작년 봄 집 근처 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살펴보며 분명 이번 주쯤에는 피었어야 했다고 중얼거렸다. 이어서 괜히 달력을 들춰 보며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사진 속 날짜와 일치했지만 어째선지 올해는 아직 봉오리조차 불거지지 않았다. 왠지 노크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뭐 잊은 거 없냐고. 어디선가 계절을 알려주는 나무는 계절관측목이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 같은. 이 기준에 따르면 아직 봄이 오지 않은 셈이었다.

   옆에서 발톱을 깎던 아버지는 아마 까먹은 거 같다고 말하며 히죽였다. 사람도 깜빡깜빡하는데 꽃이라고 다를 게 있겠냐면서. 심드렁하게 이어지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슬쩍 흘겨봤다. 안 그래도 요새 외출하고 집에 들어올 때 수선 맡긴 바지를 찾아와야 한다거나 식초와 긴장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더러 잊었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머니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닌 눈치였다. 몇 번쯤 길을 걷다가도 순간순간 또 뭔갈 잊고 지나쳐 버린 건 없는지 따져 보는 것 같았다. 한참 골몰하다가 겨우 친목회 회비 날짜를 기억해 낼 때도 있었다. 그때부터 사소한 거라도 핸드폰에 따로 메모를 해두고 수시로 빠뜨린 건 없는지 살펴봤다. 요가 교실 수업 신청 날짜나 관리비 납부 마감일과 함께 수리기사 방문 일정까지.

   고개를 들다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돌아앉으며 우물댔다.

   “한 해쯤 그냥 지나가면 뭐 어때서.”

   아버지의 생각과는 달리 뉴스에서는 연일 전국 봄꽃 개화 예상 일정을 내보내며 전문가까지 나와 늦어진 원인을 분석했다. 동네 사람들은 환경오염을 들먹이며 사나워진 날씨 탓에 종잡을 수 없는 계절 때문일 거라고 입을 모았다. 꽃도 계절을 헷갈리는 거라고. 개중에는 진짜 꽃이 피지도 않고 봄이 지나가는 게 아닐지 염려하는 이도 많았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나중에는 꽃을 향해 잊을 것 같으면 알람을 맞춰 두거나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해 줄 기세였다.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앞산을 내다보고 매일 지나다니던 화단과 공원을 천천히 돌아봤다. 더러 까치발까지 하고선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했다. 혹시 진즉 만개한 꽃을 놓친 게 아닌가 싶은 듯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한 기색이더니 나중에는 아예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나도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꽃이 필 기미가 보이는지 기웃거렸다. 언뜻 봉오리라도 보이면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드리려 했지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바람까지 서늘하니 날짜와는 상관없이 정말 봄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러다가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이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그즈음 제법 많은 양의 봄비가 내리더니 하루 사이에 기온이 크게 올랐다. 곧 지천으로 사방이 꽃이었다. 지난해 유난히 다닥다닥 모여 있는 꽃 때문에 행인의 시선이 오랫동안 머물던 담장에도, 사진을 찍으려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북적이던 나무에도 빠짐없이 모두. 한 번도 잊은 적 없다는 듯이 더없이 선명하고 고운 자태였다. 그제야 어머니는 얼마간 안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종종거리던 걸음은 느긋해졌고 시선도 더는 분주하지 않았다. 마치 메모해 둔 것 중 아무것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해결한 사람 같았다. 어머니는 잊지 않고 피어난 꽃을 본받아 앞으로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해는 어머니가 만 65세를 앞둔 때이기도 했다. 그맘때 병원에 들렀던 어머니는 만 65세 이상 어르신 대상 예방접종 안내문을 잘못 도착한 편지처럼 받았다. 안내문은 마치 어머니의 계절이 달라졌음을 알려주는 나무 같았다. 일정을 꼭 확인하라는 간호사의 목소리에 반송도 못 하고 꼼짝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고 했다. 그래선지 겨우 종이 한 장인 안내문이 육중한 냉장고처럼 무거웠다고.


   새삼 나이를 떠올리자 어머니는 삶에 매듭 하나를 단단히 묶는 것처럼 결연하게 보였다. 만 65세는 예전과 딱히 다를 게 없을 듯하면서도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일단 경로 우대에 들어갔다. 늘 엄마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의 몫이라고만 여겼던 경로 우대에. 어머니는 경로를 사전에서 찾아보고선 나에게 노인을 공경한다는 뜻이라고 일러줬다. 뒤에 가선 짧은 탄식 끝에 “세상에 노인이라니······ 노인······.”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이후에도 어머니는 경로를 발음할 때마다 입안에서 겉도는지 숨을 고르거나 잠깐 멈칫했다. 그러고 나서도 껄끄러운 사포 조각을 뱉어내는 사람처럼 미간을 좁혔다.

   “이건 누가 정해 놓은 기준인지 원!”

   숫제 못마땅하다는 말투였다. 

   어머니가 만 65세가 되기 전 나는 부랴부랴 경로 혜택을 찾아 살뜰히 알려드렸다. 지자체에서는 교통비를 지원해 줬고 통신비도 할인받을 수 있었다. 다달이 타는 연금까지 얘기했을 때도 어머니는 평소 말갛던 얼굴로 돌아오지 않았다. 요즘은 어딜 놀러 나서면 입장권을 끊기 전 먼저 나서서 경로 할인은 없는지 묻고, 괜찮아 보이는 악극이나 콘서트 포스터를 유심히 살펴보다가도 웃음기가 도는 얼굴로 불쑥 소리칠 때도 잦았다.

   “여기! 여기도 경로 우대야.” 

   하지만 그때는 어딘지 모르게 누가 한쪽을 갉아 먹은 것처럼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집을 송두리째 도둑맞은 얼굴과 오랫동안 써둔 메모가 싹 지워진 얼굴이 차례차례 지나갔다. 거기에 뭔가에 쫓기는 듯한 얼굴까지 겹치면서 중요한 약속을 잊은 사람처럼 허둥대는 일도 잦았다.

   언제부턴가 어머니는 경로 대상에 들어서기 전 뭔가 놓친 게 있진 않은지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생각은 또렷하게 흘러가지 않고 막연하기만 했다. 그래서 괜히 고향 친구들이 모처럼 집으로 놀러 왔을 때 안부 인사를 전하며 슬쩍 경로 우대받기 전에 하지 않아서 후회했던 일이나 노인이 될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캐물었다. 같은 해에 태어난 친구라도 당시 출생신고가 제각각이라 어머니와 같은 처지인 친구도 있었고 이미 경로 우대를 맘껏 누리는 중인 친구도 꽤 많았다.

   “뭘 준비씩이나? 단단히 준비하고 맞이하는 나이가 어딨다고. 안 그러니?”

   이어서 호탕한 웃음 끝에 여행이라도 한 번 더 다녀오라는 충고가 이어지더니 아는 사람은 운전면허증부터 반납했다는 얘기가 보태졌다. 눈이 더 나빠지기 전 독서를 시작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보험부터 잘 챙겨 놓으라는 목소리에 어머니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이 되는 순간 보험료와 혜택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아무래도 젊었을 때와는 차이가 있을 테니까. 결국 세상은 노인에게 친절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는 게 공통의 의견이었다. 어머니는 그러고 보니 이제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여의찮을 거라고 말했다.

   “일자리라면 노인 공공근로가 있어.”

   어머니가 반색하자 반대쪽에서 목소리가 나왔다.

   “참! 아직 임플란트는 하지 마. 만 65세부터 지원되는 거 있다던데.”

   “그리고 요즘 노인정은 만 65세는 어려서 안 끼워 주는 거 알지? ·····또 뭐 없나······?”

   “넌 뭐 아는 거 없어?”

   어머니의 목소리에 친구 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 쪽을 향했다.

   뒤에서 내내 멀뚱거리고 있던 나는 괜히 멋쩍어져서 핸드폰으로 만 65세가 넘으면 할 수 없는 일을 찾았다. 청소년 월드컵이나 청년 인턴 같은 건 당연히 안 됐고 공무원은 가능한지 확인해 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시큰둥한 기색이 역력해지더니 더 들어 볼 것도 없다는 듯 하나둘 고개를 홱 돌렸다. 괜한 조바심에 나는 뭔가 새로운 정보가 있을까 싶어 계속 인터넷을 뒤적이고 있었다. 

   “어? 여기 보니까 출가도 50세까지만 가능하다는데요?”

   다시 시선이 몰려들었다.

   “그래? 아깝다. 나중에 출가는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다 틀렸네. 뭐 그런 기준이 다 있다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거실을 한참 맴돌았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게 또 있었다. 일단 큼큼거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만 65세 이상이면 놀이기구도 못 타고요.”

   일순 웃음이 딱 끊어졌다. 다들 눈짓만 주고받을 뿐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나는 근처 대도시에 있는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교통편이 나쁘지 않아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는데도 꼭 먼 여행길에 오른 듯했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기라도 할 듯. 출발하기 전 어머니는 주민등록증부터 챙겼다. 누가 만 65세 이상이라 못 탄다고 제지하면 아직 안 넘었다면서 당당한 기세로 내밀 주민등록증을.


   놀이공원에 가는 동안 지하철 안에서 나는 내심 미안한 마음에 입을 앙다물었다. 어머니가 놀이공원에 처음 가본다고 한 다음부터였다. 나는 재작년쯤인가 친구들과 다녀온 기억이 있었다. 그전에도 몇 번쯤. 그사이 어머니는 놀이기구를 탈 수 없을 나이에 한 걸음씩 다가가 이제 곧 도달할 참이었다.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어머니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미안해할 거 없어. 너 어릴 때 놀이공원 한 번 못 데리고 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 시절에도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누가 정했는지 알 수 없고 법으로도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성실하게 돈을 모아 차곡차곡 저축해야 하는 나이, 나들이나 휴가 따윈 뒤로 미루고 가게 문부터 열어야 하는 나이라는 기준이. 돌이켜보면 우리는 모두 여태껏 나이에 따른 기준을 성실하게 지키고 무탈하게 지나오면서 이 순간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 떨어져서 하룻밤 자봐야 하는 나이와 자식을 데리고 처음 목욕탕에 가봐야 하는 나이와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를 마셔 보고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여야 하는 나이를 매끄럽게 통과하고 이제는 여기에. 

   어머니가 놀이공원에 가봐야 하는 나이에 늦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회전목마나 탈 줄 알았던 어머니는 공중에서 한 바퀴 도는 열차와 너무 빨리 움직여 눈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우주선과 정글 속에서 급류에 밀리다가 사나운 물살을 가르는 배를 탈 때도 거침없었다. 38m 높이에서 시속 100km로 떨어진다는 기구 앞에서도 망설이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순간 누구보다 가깝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에게도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다. 운행이 끝난 줄 알았던 놀이기구는 방심하는 틈에 한 번 더 튕기면서 한껏 치솟았다. 옆에서 어머니가 내지른 맑은 환호성이 귓가에 오랫동안 남았다. 우리는 밥때도 잊은 채 늦게까지 놀이기구를 탔다. 어쩌면 어머니처럼 그날 나도 내 나이에 꼭 하고 넘어가야 할일 중 한 가지를 한 것일지도 몰랐다.


   올해도 때맞춰 꽃이 활짝 피었다. 기준에 맞춰 여기저기 봄기운도 완연하게 부풀어 올랐다. 공기는 한층 부드러워졌고 왠지 바닥도 말랑말랑해진 것 같았다. 이제 어머니는 기준을 따져 보는 대신 나이에 상관없이 꼭 해야 할일들을 찾았다. 오늘은 흐드러지게 핀 봄꽃의 안부를 빠짐없이 확인하며 호숫가를 오래 거닐다가 노을이 질 무렵 다 같이 둘러앉아 국수를 먹어야 할 나이였다. 그건 어머니가 오늘 아침 불현듯 그냥 정해 본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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