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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지막 문장

  • 작성일 2022-04-01
  • 조회수 2,508

[단편소설]



우리의 마지막 문장



박주영





사건을 의뢰받았을 때 처음에는 맡지 않으려고 했다. 너무 낯선 분야였고 내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호했다. 최 변호사는 내가 맡아야만 하는 일이라고 거듭 부탁을 했는데 나는 이 사건이 나의 전문적인 영역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흔히 탐정으로 알고 있는 민간 조사관이기 이전에 소설가였는데, 그 특수성 때문에 사건이 어떤 방식으로든 글로 남길 원하는 이들이 특별히 나를 찾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경우가 아니었다. 가해자인 K는 다수의 악플러와 함께 아이돌 A의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상태였다.
“이거 형 제대로 받으면 정직원 전환이 안 될지도 몰라. 자기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인데 자기는 잘못한 거 없다고 고집을 부리네.”
“철이 없네.”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너도 중요한 시기에 소설 쓴다고 공부 그만뒀잖아.”
“공부했어도 별반 다를 거 없었을 거야. 결국 언제든 소설 쓰고 어차피 지금쯤은 망했을 거야.”
“잘 키운 딸이 하는 짓이 그렇지.”
“막 키운 딸인 거 같은데. 얘는 공부만 잘하면 뭐든 하게 해준 거 같은데, 뭐가 부족해서 다른 사람한테 화풀이를 하는 건지. 난 증오 많은 사람들이 싫어.”
“그게 꼭 그런 게 아닌, 뭐 그런 게 있는 거 같아. 읽어 보면 알 거야.”
나는 최변이 준 자료를 대충 읽었다.
‘언제부터인가 팬들이랑 소통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이해했고, 개 쩌는 퍼포먼스와 앨범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믿고 기다렸는데 열애설이라니…….’
‘너의 사진마다 XX가 찍어 줬나, 라든가 네 이름 앞에 XX의 사랑, 이따위 수식어가 붙을 기사가 빤한 상황을 너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걸 감수할 만큼의 세기의 사랑이니? 너의 그 사랑이 우리의 이 사랑보다 큰지를 묻고 싶다.’
“이게 무슨 소리야?”
“다른 것도 읽어 봐.”
‘우리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너라는 상품 가치가 훼손되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 온 너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을 보는 우리 기분이 어떨 거 같니? 그것도 바로 너 자신으로 인해서.’
“상품 가치? 아이돌은 사람이잖아.”
“순진한 소리한다. 그리고 진짜는 이거.”
“악플을 길게도 썼다.”
“탈덕문이라고 하더라, 그런 걸. 덕질, 그러니까 이제 네 팬 하는 걸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는 글인가 봐.”
처음 탈덕문을 봤을 때 나는 그게 무엇인지도 뭐가 문제인지도 몰랐다. K의 처연한 탈덕문은 게시되자 하루 만에 수십만 개의 ‘좋아요’가 붙었으며 수만 개의 댓글이 달렸고, 다른 사이트로 번져 나가며 더 악의적인 콘텐츠와 부차적인 문제를 만들어냈다.
“싫으면 그만하면 되지. 뭘 이렇게 정성스럽게 길게 글까지 쓰고 해?”
최변이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
“너, 요즘 글이 잘 안 되지?”
글이 안 된 지는 오래되었다고, 아니 사실은 한 번도 잘 된 적이 없었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찬찬히 읽어 보고 결정해.”


결국 내가 이 사건을 맡고 K를 만나러 가게 된 것은 K가 썼다는 탈덕문이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었다. 내가 읽은 그 글은 생생한 일기였으며 공감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몇 년에 걸친 연대기였으며 사랑과 증오와 배신에 대한 세세한 기록이었다. 나는 이런 글은 누가 왜 어떻게 무엇 때문에 쓰는지 궁금해졌고, 그래서 이 일을 맡았고 K를 만나러 갔다.
조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나는 K가 쓰는 용어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보충 설명을 요구해야 해서 이야기의 흐름을 놓치고 있었다. 용어는 나중에 조사로 보충하면 될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녹음을 하려 했으나 K는 반발했다. 인터넷에 글을 썼다가 이런 상황에 놓인 K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럴 수 있었으므로 녹음은 포기해야 했고 인터뷰의 내용은 전부 내 기억에 의존해서 복기해야 했다.


*



A를 처음 본 가을이 아직도 생생해요. 음악 TV 채널에서 하는 오디션 프로였는데, 100명이 넘는 참가자들을 경쟁시키고 거의 매주 탈락시키면서 최종 9명을 뽑아서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시키는 것이 목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예술적 재능과 능력에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결정하는 시스템은 옳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보다 보니까 은근 중독성이 있었어요.
참가자들 가운데 몇 명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나도 모르게 응원하고 매주 온라인 투표를 하게 되더군요. 내가 투표한 지원자가 높은 순위를 기록하면 역시 내가 안목이 있구나, 하는 자부심의 확인 같은 느낌이랄까, 더불어 내가 지지하는 지원자의 실력이 점점 늘고 성장하는 것을 보는 뿌듯함도 있더군요. 지원자와 더불어 나도 뭔가 이루어 나가는 느낌, 운명공동체 같은 기분까지 들었어요.
A는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된 선배 그룹 없는 중소 소속사 출신 연습생인데다가 예쁘다고는 하지만 진짜 인형 같은 비주얼의 지원자들에 비하면 매력 있는 얼굴 정도였고 타고난 피지컬이 좋다고는 하지만 모델 같은 지원자들이 수두룩했으니까요. 무엇보다 A에게는 실력인 노래나 춤, 퍼포먼스를 보여줄 기회가 없었어요. 방송 초반까지는요.
수많은 지원자들 중 A가 그 자리에 있었음을 기억하게 해주는 건 그녀가 리액션을 아주 잘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이 퍼포먼스를 할 때 A는 같이 웃고 걱정하고 격려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장면들이 화면을 탔죠. 제 마음을 움직인 건 그런 A였던 거 같아요. 욕심 없고 자기 몫을 묵묵히 해내고 사람들과 잘 지내는. 어느새 스며들기 시작했죠. 네, 저는 사람들이 A를 잘 알지 못하던 오디션 초기부터 그녀의 팬이었고, 그녀를 주목하면서 그 오디션 프로그램의 애청자가 되었죠.
다른 지원자들의 들러리 같았던 A가 순위를 치고 올라온 건 직캠 덕분이었어요. 한 대의 카메라가 한 명의 지원자를 따라다니면서 찍는 직캠은 그 지원자의 매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사실 살아남은 지원자가 수십 명인데 인터넷에 공개된 걸 전부 보지는 않죠. A가 박수 셔틀이 아니라 숨은 실력자였다는 걸 저는 알아봤어요. 직캠이 공개되고 저처럼 A를 지지하던 팬들은 영업을 시작했죠. 커뮤니티, 소셜미디어에 A의 매력을 나노 단위로 분석하고 그녀의 인성을 집중 조명하는 글을 올렸죠.
제가 정성스럽게 만든 게시물은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여기저기로 퍼져나갔고 A의 직캠 조회 수는 점점 올라갔죠. 중하위권 순위였던 A는 단번에 30위권에 진입했고 두 번째 탈락을 면했습니다. 사실 A의 최종 희망 순위는 18위였어요. 18위는 마지막 파이널 생방송 무대에 설 수 있는 제일 낮은 순위였죠. A는 그 무대에 서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어요. 데뷔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고. 우리는 A의 겸손한 자세에 다시 한번 반했고, 크게 욕심내지 않으면서도 자기 몫을 확실히 해내는 모습이 화면을 타면서 A의 순위는 점점 올라갔고 순위가 올라가니까 화면에도 점점 더 많이 노출되면서 A의 다양한 매력이 더 주목받았죠.
A의 성격이 그룹의 콘셉트인 청순발랄이랑 거리가 있다는 걸 애초에 알아보긴 했어요. 생긴 것만 청순했지 목소리도 은근 저음이고 의외로 랩도 잘하더라고요. 소규모 소속사에서 레슨이나 제대로 받아 봤겠어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전문가들이 따라붙어 춤과 노래, 랩을 가르치자 정말 열심히 배우고 연습해서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였어요. 이 바닥이 재능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여유만만하면서도 악착같은 데가 있는 게 너무 멋있어요.
혐생을 살면서도 우리는 꾸준히 열심히 A를 영업했어요. 그녀만의 매력, 그녀가 가장 예뻐 보이는 순간, 그녀가 제일 잘하는 것, 그녀가 데뷔조에 꼭 있어야 하는 이유, 그녀에게 투표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벤트, 그녀의 데뷔에 도움이 될 만한 건 뭐든 했어요.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었죠. 어쩌다 보니 저는 A의 데뷔를 간절히 바라는, 그래서 뭐든 하는 코어 팬이 되었어요. 결국 70위권에서 시작했던 A는 최종 순위 2위로 데뷔조에 들었고 그때는 내가 정말 뭔가를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A의 인생을 소유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죠. 저는 코어 팬일 뿐 사생은 아니에요.
A가 속한 9인조 아이돌 그룹은 승승장구했죠. 음원 순위, 앨범 판매 순위, 각종 투표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했죠. 우리는 모두 숨밍을 했죠. 빠르게 기존 아이돌 그룹을 제치고 대세로 자리 잡았고, 그 가운데 A의 활약은 대단했죠. A는 데뷔 후 인기가 더 많아졌어요. 무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팬이 전부인 것 같은 A와 함께 우리는 웃고 울었어요.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 팬들이 축제 분위기인 가운데 첫 번째 사건이 터졌어요. 인터넷에 A의 학창 시절 사진이 떴어요.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었는데 테이블에 술병과 담뱃갑이 있었어요. 철없던 시절에 그럴 수 있죠. 그 시절 A가 자신이 검색어 1위를 하는 핫한 연예인이 될 줄 알았을까요. 학폭을 한 것도 아니고 음주운전을 한 것도 아니고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어쨌든 A는 잘못이 없어요. A랑 친구였다는 걸 자랑하고 싶어서 아무 사진이나 올린 사람의 심정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이제 피기 시작한 남의 인생에 피해를 주는 건 친구도 아니죠.
얼마 후 다른 동창이 A는 술, 담배를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방황하는 친구를 끝까지 믿고 도운 의리 있는 친구였다고 글을 썼고, 다른 동창들의 인증과 또 다른 미담이 이어졌어요. 그 과정에서 A가 어릴 적 부모가 이혼했고 그 후로 할머니와 둘이서 어렵게 살았다는 가정사까지 밝혀졌어요. 같은 그룹의 다른 멤버는 금수저로 부모 빽으로 1등을 했다는 구설수에 시달리는 것과 대조적이었죠.
여론은 곧 우호적으로 바뀌었지만 얼마 후 또 다른 사진이 떴어요. 이번에는 타투가 문제였죠. 타투의 의미가 무엇인지 언제 한 건지 어떤 게 지금도 있는지 지운 건 왜 지웠는지 의견이 분분했죠. 그때 우린 A의 이미지를 청순발랄에서 걸크러쉬 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고 A가 나중에는 솔로로 활동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 병크로 우리는 욕을 먹고 공격을 당했어요. 악개들은 깨끗한 소녀 그룹 이미지에 피해를 준다고 A를 비난했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지지하던 지원자를 데뷔시키려고 같이 경쟁하던 사이였던지라 필연적인 갈등이었을지도 몰라요. 그때 A의 개인 팬덤이 더 공고해졌죠. 우리는 A가 속한 그룹이 성장하길 바라는 동시에 A가 그 그룹 내에서 최고가 되길 바랐어요. 굿즈는 물론 그녀가 광고하는 물건을 사고 그녀가 나온 잡지를 예약 구매하고 모든 투표를 하고 개인 서포트도 하고 그녀와 관련된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A는 그룹 내에서 화제성 1위가 되었고 전체 아이돌 중에서도 늘 최상위권이 되었죠. 위기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어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프로젝트 그룹의 계약 기간은 2년이었고 거기서 또 개별 활동과 그룹 멤버 활동이 병행 가능한 연장 1년이 가능한 구조였죠. 2년 만에 그룹의 인기는 정점에 올랐고 팬들은 그들이 함께 조금 더 활동해 주기를 바랐어요. 멤버들의 합이 너무 좋았고 멤버들도 그룹 활동이 끝나도 늘 자기들은 평생 함께 갈 사이라고들 말해 왔기 때문에 1년 연장은 팬들 사이에서는 당연한 순서였어요.
그런데 A가 느닷없이 연장 불가 선언을 한 겁니다. 알고 봤더니 그룹의 계약 연장의 주최는 멤버들이 아니라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자에게 있었고, 제작자가 연장 결정을 하면 멤버들은 따를 수밖에 없는 거였어요. 그룹의 인기가 엄청났으니 제작자는 당연히 연장하려고 했고 A가 그 자동 연장에 반대한 거였어요. A의 변호사는 계약을 연장하려면 수익 분배를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개된 계약서는 데뷔를 빌미로 한 일방적인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었어요. A가 그런 부당한 관행에 이의를 제기한 겁니다. 용기 있죠. 그것마저 우리는 좋았습니다. 단지 A가 계약 분쟁으로 오랫동안 활동을 못 하게 될까 봐 너무 두려웠죠.
다른 멤버의 팬들은 A가 이중적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같이 고생하고 연습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치열한 오디션을 통과해 온 가족 같은 동료들을 돈 때문에 버렸다면서 A의 집안 배경까지 끌고 왔어요. A의 개인 팬들은 A가 변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불공정한 계약이었다면 그런 계약을 묵묵히 지키고 계속 무대에 서야 하는 거냐,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의 편인 거냐, 항변했죠. 저요? 저는 뭔가 혼란스럽긴 했어요. 그건 A의 캐릭터에 맞지 않았거든요. A는 의리가 있고 돈보다는 명예를 중요시하고 무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어야 했거든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아티스트로 완벽한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 목표인 사람.
인기 멤버인 A가 빠지자 그룹의 연장 계약은 무산되었죠. 팬들 사이에서도 완전체가 아닌 활동은 의미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니까요. 그렇게 그룹 활동은 끝났고 멤버들은 다른 그룹을 결성하거나 배우 활동을 하거나 뮤지컬에 출연하거나 솔로 가수 활동을 시작했죠. 하지만 A는 소속사와의 계약 분쟁까지 일어나 재판을 기다려야 해서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었죠. 그 기간이 팬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았어요. A에 대한 루머들이 돌기 시작했으니까요. 돈밖에 모른다, 스폰서가 있다, 건방지다, 인성이 엉망이다, 초심을 잃고 변했다 등등.
우리는 한때는 같은 그룹을 응원했던 팬들과도 싸우고 머글들과도 싸우고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과도 싸우고, 아무튼 피폐한 시간이었죠. 다행히 A가 소송 중 합의를 한 후 소속사를 옮기고 솔로 앨범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어요. 우리는 앨범의 예약 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사재기를 했죠. 네, 한 사람이 몇십 장 몇백 장씩 사면서 팬들의 화력을 보여줬죠.
왜 그렇게까지 사재기를 하냐고요? 팬싸 컷 때문이기도 하지만, 판매 성적이 집계되잖아요. 돈으로 만든 성과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다른 가수들도 다 하는데, 우리 애만 안 할 수는 없죠. 사랑하고 응원하는 만큼 돈도 쓰고 노동도 하는 거예요. 우리의 노동과 화력으로 A의 첫 번째 솔로 미니 앨범은 역대급 판매 기록을 세웠어요. 뿌듯했죠. 소송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을 A를 위로하고 응원하기 위해 팬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저는 우리가 돌판에서 역대급 개인 팬덤이라고 생각해요.
솔로 앨범을 발매하고 음악방송에서 첫 1위를 한 후 우리는 날벼락을 맞았죠. 열애설이 난 거예요. 열 살도 넘게 연상인 배우님과 떡하니 포옹하고 있는 사진이 찍혀서 인터넷에 퍼졌어요. 처음에는 A가 맞다, 아니다로 싸우다가 결국 A가 연애를 인정하자 배우 측 사생이 찍은 사진이다, 이전 소속사 짓이다, 심지어 자작극이다 등등 온갖 음모론이 난무했죠. 아무튼 그 상황에 연애라니, 그것도 나이 많은 배우랑, 게다가 그 배우는 열애설이 처음도 아니었어요. 이미지에 도움이 될 리 없잖아요. 또래랑 풋풋하게 안 들키고 몰래 연애해도 지금 모른 척할까 말까인데 정말 무슨 생각인 거죠?
지금은 연애하기에 가장 나쁜 시기 아닌가요? 솔로 아티스트로 본격적으로 자기 커리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돌판의 금기인 공개 연애라니 어이가 없죠. 팬들은 노심초사하고 떡밥을 기다리며 매일 보고 싶어서 울면서 노동하던 그 시간에 A는 연애를 시작했다는 거잖아요. 팬 기만이죠. 우리가 A 때문에 제일 불행했던 시간에 A는 실컷 쉬고 실컷 놀고 실컷 먹는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거죠.
콩깍지가 벗겨지자 A의 다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A가 멤버를 괴롭히고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는 모습이라든가, 정도 이상으로 무식하다든가, 춤의 박자를 틀리고 대충 추는 장면, 그리고 팬서비스에 소홀했던 것들. 저도 알아요. 예전 같으면 충분히 쉴드칠 수 있었던 것들인데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사실 진짜 제 팬심을 흔들리게 한 건 A의 능력치였어요. A를 영업할 때는 춤, 노래, 랩 다 되는 멀티 플레이어로 밀었는데 막상 솔로로 나오자 춤, 노래, 랩 다 부족한 실력이 여실히 드러난 거예요. 우리 애라는 마인드를 내려놓고 냉정하게 A를 바라보기 시작한 거죠. 부족한 앨범을 내놓고도 스스로 만족하는 것, 무대에서 실수하고도 컨디션 핑계를 대고 별로 고생도 안 한 것 같은데 솔직히 지쳤다느니 징징거리는 것, 자기 자신을 알아야 발전이 있는데 다 실망이었죠. 음악이 좋아서 퍼포먼스가 좋아서 많이 팔린 것이 아니라 기 살리려고 팬들이 무리해서 사고 악착같이 스밍해서 음원 순위 높이고 한 거 정말 모르는 게 아닐까 싶은 거예요. 팬들을 ATM기로 생각하면서 적당히 연예인 하면서 살겠다는 거 아닌가 의심스러웠어요.
정말 타고난 재원이 아니면 솔로 아티스트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데 연애할 시간이 있었으면 작곡 공부라도 하든가, 랩이라도 쓰든가, 무식한 게 귀여운 것도 정도가 있지 책이라도 읽든가, 만날 스펠링 틀리게 쓰고 문법 하나도 안 맞는 영어로 해외 팬들에게 댓글 달던데 영어 공부라도 하든가, 몸매 피부 관리라도 하던가, 하려고 하면 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데 그냥 연애하고 놀았다는 거잖아요. A는 더 이상 우리가 기대하고 우리가 생각하던 그 사람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안타까웠고 나중에는 화가 나더군요.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했더니 정말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작정이었던 걸까요. 이 남자 저 남자 사귀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흥청망청 술이나 마시고 관리하지 않아 살찔 거면 왜 아이돌로 살려는 걸까요. 아이돌 팬들 사이에 유명한 명언이 있죠. 보통 젊은 애들처럼 살고 싶다면 네 통장도 보통 젊은 애들 같아야 한다고요. 수십억을 벌면서 어떻게 보통 애들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나요? 그러려면 아이돌, 그만둬야죠.
가혹하다고요? 뭐가 가혹하다는 거죠? 20대 초반에 모든 걸 다 가졌는데 연애 고작 그걸 못 참나요? 게다가 데뷔 초에 과거사로 팬들에게 그렇게 실망을 주고 쉴드치느라 팬들 정신 못 차리게 하고 팬들 자존심 상하게 한 거 벌써 잊다니, 기가 막히죠. 저는 A가 자기가 버는 돈에, 자기가 받는 사랑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팬이 전부라더니 이젠 팬만 믿고 아무렇게나 해도 좋아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런 태도에 솔직히 좀 지쳤어요. 도대체 이제 뭐가 더 나올지 두려워 정병 올 거 같았어요. 그래서 탈덕글을 쓰게 된 겁니다.
사실 탈덕글을 쓰던 그 순간에도 내 마음이 완전히 A를 떠난 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쓴 거죠. 쓰면서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진짜 A를 떠날 수 있었죠. 한동안은 허전했죠. 매일 하던 스밍이며 투표, SNS 노동을 안 해도 되니까요.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댓글로 싸우지 않아도 되니까 평화롭기도 했어요. 어쨌든 저는 A에 관해서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제 탈덕글을 사람들이 퍼 나르고 자신들도 탈덕을 선언하는 게 제 잘못인가요? 저 혼자 이러는 게 아니고 A를 아꼈던 많은 팬들이 저처럼 느꼈다면 솔직히 가수 잘못도 있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팬들의 진심 어린 충고를 무시하는 거죠?
입덕글도 그랬고 수많은 영업글도 그렇고 마지막 탈덕글까지 모두 사랑에서 시작된 거예요. 우리는 무작정 A를 비난하는 안티가 아니에요. 우리는 A가 잘 되기를 그 누구보다도 더 바랐던 골수팬입니다. 기대감이 없었다면 실망도 없었겠죠. 네, 그래요. 어쩌면 제 환상이 깨져서 A를 놓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제 탈덕글이 틀린 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요. 조용히 떠날 순 없었느냐고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



K를 만난 후 인터뷰를 정리하고 탈덕문을 참고하며 재구성하여 최변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여전히 K를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기록은 K의 1인칭 시점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K가 우리라고 하는 그들이 쓰는 전문용어를 최대한 살리려고 인터넷을 참고하긴 했으나 여전히 넓이와 깊이에서 한계가 있었고, 일부는 제대로 들었음에도 순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지점이 해소되지 않았지만 나는 최소한의 작업만 하고 싶었다. 소설과는 다르게 들인 시간만큼 대가를 받는 것이 이런 글의 최대 장점이었다.
처음부터 민간조사원이 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를 하다가 그 과정을 밟게 되었다. 소설만으로 생계가 어려워지자 작업실에 개인사무소를 열고 민간조사원 일을 하는 동시에 큰 규모의 다른 회사의 하청 일도 같이했다. 착수금을 받고 사건 해결 이후에는 경비 계산을 해서 청구하고, 때로는 그 일에 대해 글을 썼다. 나에게 하청을 주는 대표적인 인물이 고등학교 동창인 최해든 변호사였다.


메일을 보내고 며칠 후 해든이 작업실로 찾아왔다.
“작가님, 진짜 이렇게밖에 못 하니?”
“변호사님, 정확하게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반성하고 끝나게 하는 거지.”
“A가 용서나 합의는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반성문을 진짜 잘 쓰면 되지 않을까?”
“진짜 잘 쓴 반성문이 어떤 건데? 혹시 지금 나한테 반성문을 대신 써달라는 거니?”
“흠, 거기까진 아니고 구성에 관한 조언 같은, 뭐 그런 거 있잖아.”
“있긴 뭐가 있는데?”
“소설이라 생각하면 안 되겠어?”
“넌 도대체 소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니?”
“음…… 진실의 재구성?”
“그 재구성, 네가 더 잘하지 않니?”
“네가 K 좀 설득해 주면 안 되겠니?”
“엄마 말도 변호사 말도 안 듣는데 내가 말한다고 되겠니?”
“너, 내가 널 어떻게 아는지 아직도 기억 안 나지?”
해든과 나는 같은 반이었던 적도 같은 동아리였던 적도 없었다. 이제 와서는 같은 반 친구도 다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내가 해든을 기억하는 건 해든이 전교회장이었고 백일장이나 사생대회,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하고 학교 축제 때 무대에 오르는 유명 인사였기 때문이었다. 둘만의 기억 같은 건 전무한데, 어쨌든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모를 수 없는 그런 사람이 최해든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신춘문예로 데뷔했을 때 바로 해든이 알아보고 연락을 해온 것은 여러모로 좀 의외였다. 그때 잠시 만난 해든은 기자였고 지금은 변호사다. 나는 기자가 어쩌다가 변호사가 되었는지 묻지 않았지만 해든은 공부를 하던 내가 어쩌다가 소설가가 되었는지 궁금해했다.
“네가 내 편지를 대신 써준 적이 있어. 그때 너, 애들 연애편지랑 펜레터 대신 써주고는 했잖아. 네가 나를 위해 누구에게 편지 썼는지 기억 안 나지?”
“모르지, 난.”
“다행이긴 한데 너무 당당하다, 너.”
난 의뢰인이 요청하는 대로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에게 편지를 썼다. 그 누구는 연예인이거나 좋아하는 남자이거나 여자였다.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의뢰인에게는 중요했겠지만 그것까지 자세히 알 필요는 없었다. 그때 우리는 혈기왕성한 십대였고 감정이 널을 뛰었고 에너지를 풀 곳이 필요했다. 다 지나갈 감정이었고, 지나간 후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어야 할 열정이었다.
“그때 난 널 알아봤어. 이런 애가 작가가 되겠지, 하고.”
해든의 이야기는 알 듯 모를 듯했다. 나는 십대 때는 물론 이십대 때도 내가 작가가 될 줄 몰랐다. 모르는 건 계속 모르고 지나갔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해든은 문예반이었고 나는 독서반이었다. 작가가 되는 어떤 교육도 받은 적 없는 나를 작가로 만든 건 독서였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를 작가로 훈련시킨 건 편지였을지도 모르겠다. 돌이켜보니 그 시절만큼 많은 편지를 쓴 적이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아는 척하면서, 알지 못하는 세계를 알고 싶어 하면서.


나는 해든에게 K를 더 조사해 보겠다고 했다. K가 입덕글, 영업글이라고 한 커뮤니티에 쓴 글들을 찾아 읽었고 K가 덕질을 위해 만든 계정들도 조사했다. 그 수많은 글들을 읽으면서 저절로 아이돌 A에 대해서도 A의 팬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사랑이 시작되는 설렘의 순간, 사랑이 집착에서 미움으로 변하는 생생한 과정, 이해했다가 오해하고 실망하고 희망하다가 결국 이별을 결정하기까지 자기 투영이 보여 탈덕글을 비롯한 K가 쓴 글들 모두가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이 일을 시작하고 공식적인 첫 의뢰인에게 물었다. 왜 나인가요? 그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녀에 대해 어떠한 편견도 없는 사람의 의견이 필요했어요. 그때 아마도 나에게는 의문의 표정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는 잠시 망설이고 생각하고 다시 망설이다 말했다. 그러니까, 그렇게 죽은 여자라는 편견 말이에요.
그녀의 이야기를 써주세요. 진실을 담은 제대로 된 이야기요. 꼭 진짜 그대로일 필요는 없어요.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사건보고서를 내 방식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글은 내가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이자 내가 타인을 이해시키는 방식이었다.


*



K를 다시 만났다.
“소설가시라면서요?”
마주 앉자마자 K가 말했다. 내가 소설가인 걸 알면 아주 가끔 저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해하거나 혹은 자기 이야기가 소설이 될까 봐 걱정하거나. 한때는 작가는 더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저 더 잘 기록하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이 쓴 글이 지금도 계속 퍼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고요.”
“그렇게 될 줄 정말 몰랐어요. 우리는 A가 악플을 못 보게 하려고 애썼어요. 좋은 뉴스를 메인에 올리고 악플을 내리고 선플을 올리려고 얼마나 노력했다고요. 피뎁 따는 게 일이었는데…….”
“그런데도 반성문을 쓸 생각이 없나요?”
“뭘 반성해야 하죠? 탈덕이 죄는 아니잖아요? 이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생활 침해 아닌가요? 연예인이라고 해도 그들의 사적인 영역을 유포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그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열애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사화한 기자들은 두고 왜 그 일을 계기로 탈덕한 저한테 이러는 거죠?”
“탈덕문도 그렇고 당신은 그런 글을 왜 쓴 건가요? A가 읽기를 바란 건가요? 당신의 마음을 누군가가 알아줬으면 했던 건가요? 대체 누가 읽기를 바라서 쓴 글이었나요?”
“작가님은 소설 쓸 때 특정한 누가 읽기를 바라고 쓰나요?”
나를 아는 사람이 읽지 말기를 바란 적도 있었고 될수록 많은 사람이 읽기를 바란 적도 있었고 누구라도 읽기를 바란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쓰는 나만 생각했다. 쓰는 순간에는 읽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덕질은 그냥 좋아서, 즐거우려고 하는 거라면서요. 적당히 해요, 적당히. 적당히가 뭔지 모르는 거 같아요.”
즐겁지 않으면 그만두면 되는데 그걸 포기 못 하고 꾸역꾸역 하는 미련에 대해서라면 사실 나도 충고할 입장은 아니었다.
“적당히 하면 아무것도 안 돼요. 작가님도 아시지 않나요?”
“…….”
“저도 즐겁게 살고 싶어요. 치열하게 말고요.”
“그러면서 왜 A는 치열하게 살길 바라는 거죠? 처음에는 A의 여유로운 태도, 욕심이 없어서 좋았다면서요? 그러면서 지금은 왜 아니죠? 대리만족도 아니고, 무슨 마음인 거죠?”
“저도 잘 모르겠어요.”
K가 A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글쓰기는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상황을 정리하는 데도, 스스로를 추스르고 다짐하고 결심하고 다시 시작하는 데도.
“당신이 반성문을 썼으면 좋겠지만 그게 내키지 않는다면 A에게 사과 편지를 써요.”
“도대체 뭘 사과해야 하죠?”
“A에게 상처를 줬잖아요.”
“우리가 받은 상처는요?”
K는 나와 우리라는 주어를 혼용했다. K의 글에 달렸던 열렬한 수많은 공감의 댓글들을 생각했다. 작가는 독자가 어떤 해석을 하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쓸까. 독자의 잘못된 해석과 그로 인해 유발된 행위에 작가는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까. 그들은 혼자 쓰지 않고 함께 썼다. K의 탈덕글은 그들의 댓글로 비로소 완성되었고 그들의 공감으로 영향력을 얻었고 마침내 파괴적인 권력이 되었다.
“A에 대해 당신이 쓴 글은 다 진실인가요?”
“다 진심이었고, 진심을 다해 썼어요.”
“진심과 진실은 다르죠. 당신이 써야 하는 진실은 사실 목적이 있어요. 이 일 때문에 당신 인생이 상처를 받지 않는 거죠. 당신은 탈덕글을 쓸 때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몰랐다고 하지 않았나요? 꼭 사과 편지가 아니어도 돼요. 편지를 쓰다 보면 다른 마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쓰다 보면 무슨 이야기를 쓸지 알게 되는 소설도 있어요.”
“소설을 쓰란 얘기인가요?”
“당신이 쓸 수 있다면 소설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난 생각해요.”
“진심이세요?”
“네, 당신만큼 진심이에요.”
언제까지 진심만으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할까. 언제까지 순수하게 열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심만일 수 있을까.
“제가 A에게 편지를 쓰면 작가님은 저에 대한 글을 쓰실 건가요?”
“…….”
“그 수사 시리즈 봤어요.”
사람들은 내가 쓴 사건보고서를 수사 시리즈라고 불렀다. 그 수사가 말이나 글을 다듬고 꾸며 정연하게 하는 수사修辭인지 찾아서 조사하는 수사搜査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쓰면 좋겠어요?”
“잘 모르겠는데 어떤 이야기가 될지 궁금하긴 하네요.”
“편지를 쓸지 생각해 봐요. 나도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테니까요.”
K는 사랑에 관해서도 쓰고 분노에 관해서도 쓰고 배신에 대해서도 썼다. 그렇다면 용서나 화해에 관해서도 쓰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아마도 K는 그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잘 쓸 것이다. A를 많이 알고 잘 알고 깊이 사랑했으니까. 그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얼마 후 내 조언대로 K는 A에게 편지를 썼고 내 예상대로 선처를 받았고 무사히 정직원이 되었다. 나는 해든에게서 건네받은 K의 편지를 감수했다. K는 마음을 쏟아내는 것에서 나아가고 있었다. 조언을 거쳐 완성된 K의 편지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자기 고백에 가까웠다. 덕질이란 내가 바라보는 대상을 통해 나를 바라보게 되면서 나를 더 잘 알고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결국 K에 대해 무언가를 쓰게 되겠지만 K도 계속 무언가를 쓰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



A가 데뷔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어쩌다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어쩌다’가 아니라 어쩌면 K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인생을 뒤흔드는 지진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그것이 특정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인지, 나 같은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일인지 궁금했다. 어쩌면 나도 K에게 영업을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독보적으로 잘생겼으나 재능은 없어서 잠죽자 하는 소년을 응원하며 매일 투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소년에게서 내가 보여서 응원하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소년이 나와 너무 다른 사람이어서 응원하게 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소년의 데뷔를 바라는 내 마음은 점점 더 진심이 되어 갔다. 다른 사람들은 소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고 소년이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어 검색하다가 커뮤니티에서 어떤 글을 발견했다. 아이디도 닉네임도 달랐고 물론 대상도 달랐지만 나는 K가 그 글을 썼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K의 입덕글은 여기저기 퍼져나가 연습생들의 영업글로 쓰이고 있었다. 나는 K에게 그 글을 링크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역시 작가님! 어떻게 아셨어요? ㅋㅋㅋ 그것이 K의 답이었다. 나는 K에게 다시 그런 사랑에 빠진 거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미처 묻기도 전에 K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작가님 최애는? 나는 소년의 이름을 적어 보냈다. 한 수 배웠어요, 라는 답과 함께 K가 링크해서 보낸 다른 글들을 읽었다. 그 글은 일말의 진심을 담은, 아주 잘 기획되고 아주 잘 쓰인 일종의 소설이었다.
작가님, 제 이야기는 언제 쓰실 건가요? 기대하고 있어요.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K에게서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 힘으로 K는 하루하루를 더 착실하게 더 즐겁게 살아갈까.
처음에 우리는 수백 명 중의 하나였고 이제 우리는 수만 명 중의 하나이고 언젠가는 수백만 명, 수천만 명 중의 하나가 될 거예요. 우리의 지분이 줄어들수록 더 보람찬 한편 공허해지기도 할 거예요.
K가 말하는 우리가 누구인지 이제 나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 후에도 K는 자신이 지지하는 연습생과 내가 지지하는 연습생의 관계성을 때로는 재밌게 때로는 애틋하게 때로는 눈물 나게 글로 엮어 꾸준히 영업했다. 둘이 같이 데뷔해서 한 팀으로 활동하는 걸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이 점점 늘어났다. 나도 그 팬들 중 한 명이었다. 중복 투표가 가능한 시기까지 나는 늘 두 소년을 포함해서 투표했고 마지막 생방송 문자투표에서는 나의 소년에게만 투표했다.
결국 두 아이는 함께 데뷔조에 들어 7인조 아이돌의 멤버가 되었다. 우리는 소년들의 가장 빛나는 첫 순간을 함께했다. 이제 세상은 우리의 아름다운 소년들을 상처 입힐 것이고 그 상처와 함께 그들은 어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여전히 함께 울고 웃고 기뻐하고 아파하고 있을까. 나는 그들에 관한 우리 모두의 마지막 문장이 궁금해졌다.


ps 전문용어와 신조어에 관해서는 잘 아시는 님들이 댓글로 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K나 A를 비롯하여 이 글에 등장하는 어떠한 인물에 대해서도 악플은 사양하며, 마음에 안 드는 댓글은 경고 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박주영
작가소개 / 박주영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실연의 역사』와 장편소설 『백수생활백서』, 『냉장고에서 연애를 꺼내다』, 『무정부주의자들의 그림책』, 『종이달』, 『고요한 밤의 눈』, 『숲의 아이들』이 있다.


《문장웹진 2022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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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2024-07-01
소금 샹들리에

소금 샹들리에 정한아 호주에 사는 김이 오랜만에 귀국해서 친구들이 다 같이 모이기로 했다. 4명이 만나는 건 대략 7년여 만이었다. 방을 잡고 밤새 보자고 해서 오기 직전까지 망설였는데, 남편이 등을 밀었다. 정민이와 자신에게도 내가 없는 날이 필요하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밤새 전화 한 통 없었다. 친구들과는 대학 동기였다. 전공은 문예 창작이었는데, 나는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다. 그렇지만 정작 작가가 된 사람은 나뿐이라고 친구들이 투덜거렸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십 수 년 전 내가 낸 단 한 권의 책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세 명 모두 미혼이었고, 아이를 가지지 않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친구들 사이에서 나만 철 지난 옷차림에 좀처럼 대화에도 섞이지 못했지만, 그런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에 술자리도 즐거웠다. 좋은 친구들이었다. 7년 전 정민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 판정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신의 일처럼 울어 줬고, 이후에도 종종 아이의 간식과 선물을 집으로 보내 줬다. 서서히 연락을 거둔 것은 내 쪽이었다. 애써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힘에 부쳤을 뿐, 그들에게 섭섭한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집이 아닌 곳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 다들 술에 취해서 침대로 간 뒤에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 휴대폰만 들여다보았다. cctv 속 거실은 엉망이었다. 엎어진 식판, 사방에 흩어진 블록 조각, 길게 늘어진 옷가지들. 남편은 불도 끄지 않고 아이를 재우러 방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나는 정지화면 같은 그 풍경을 한참 바라보다가 해 뜰 무렵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맛집마다 대기가 길어 종로의 좁은 골목을 돌고 또 돌았다. 앞장서 구글 맵을 보며 걷던 김이 갑자기 작은 서점 앞에서 멈춰 서더니 책을 사야겠다고 말했다. 지난 이사 때 내 책을 분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 돌아가서 책을 다시 보내 주겠다고 김을 달랬다. 다섯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그 작은 서점에 내 책이 있을 리는 만무했기 때문이다. 김은 막무가내로 서점에 들어갔다. 할 수 없이 그녀를 따라 들어갔다가 전면 책장에 전시된 내 책을 발견했다. 죽은 친구를 만났다고 해도 그처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애 씨!” 그곳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우아한 노부인이었다. 린넨 바지에 화이트 셔츠, 큼지막한 호른 목걸이를 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반장님?” 나는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여자는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와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안은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온몸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오래전 나와 함께 공부했던 문우였다. H 백화점 문화센터 소설 창작 교실의 반장. 친구들이 책을 구경하는 사이 나는 그녀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ldqu

  • 관리자
  • 2024-07-01
그동안의 정의

그동안의 정의 최예솔 작정하고 사라진 사람은 작정하고 찾아야만 한다. 나는 윤정수를 작정하고 찾지 않았다. 보통의 남매 사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윤정수와 나를 그냥 보통 남매, 라고 하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윤정수는 나보다 4년 먼저 태어났다. 그리 적지도, 그리 많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 차이 덕분에 윤정수와 나는 딱히 친해지지 못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윤정수는 중학교에 갔고,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윤정수는 고등학교에 갔다. 물론 윤정수와 내가 영 친해지지 못한 건 우리의 나이 차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윤정수는 내게 없는 사람에 가까웠다. 말수도 없고 센스도 없고 자존심도 없고 공부머리도 없고 돈도 없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나? 아무튼 남매 사이에 정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라도 했을 텐데 그럴 이유조차 없었다. 쥐뿔도 없는 윤정수니까. 특이사항이라곤 개그맨 윤정수와 동명이인이라는 것 정도밖에 없는. 그러니 윤정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갔다고 해도 이상할 것 하나 없었지. 뭐 내가 찾는다고 윤정수가 나타났을 거라는 보장도 없지만 나는 막연히, 어련히 때 되면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윤정수는 죽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내가 죽은 것은 아니다. 윤정수가 죽었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니까, 윤정수는 서른넷에 죽었다. 이제 내게 남은 혈육은 없다······ 아닌가? 고모. 그렇게 부르지 마. 왜요. 낯설어. 저도 고모가 낯설어요. 윤현수는 맹랑하다. 윤정수와 장현아의 딸이라고 해서 윤현수. 그거 좀 유치하지 않니? 물었을 때 윤현수는 뭐 어때요 엄마아빠말곤 모르는데, 하고 대답했다. 이제 나도 아는데? 하니까 이젠 고모도 모르는 척해 달라고 했다. 참 나 어디서 이런 게 굴러왔는지. 현수야. 네. 네 엄마 입국 날이 언제라고 했지? 다음 주 토요일이요. 아직 한참 남았네. 고모도 고모 할일을 해요. 시간 금방 갈걸요. 알겠다 그래. 윤현수를 데리고 온 사람은 장현아다. 이제는 나흘쯤 됐으려나. 아침부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도 시끄러워서 나가 봤더니 장현아가 윤현수의 손을 붙잡고 서 있었다. 장현아는 다짜고짜 윤정수를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오랜만에 듣는 윤정수의 이름에 잠깐 벙쪘다가 네, 저희 오빠네요, 하고 대답했다. 조카입니다. 그날 장현아의 대사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건 도저히 내가 아는 사람이 뱉을 만한 말이 아니어서 대사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겠다. 아직도 문득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윤현수가 정말 나의 조카가 맞고 장현아가 정말 나의 새언니가 맞을까. 가족관계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되는 거라면 이제까지 윤정수와 나는, 또 윤정수와 나와 우리의 부모는, 왜 이렇게 흩어지거나 죽거나 혼자 남을

  • 관리자
  •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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